애매히 고난을 받으면 (벧전2:19-21)
본문
지난주 전군 군목 영성 수련회를 은혜 중에 잘 마쳤습니다. 모두들 말하기를 과거 어느 때 보다 성령님의 역사가 더 크게 나타나 제일 큰 은혜를 받았다고 간증들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며 배후에서 간절히 기도해 주신 성도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신 인물들은 남달리 애매한 고난을 많이 겪으신 사실을 발견하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애매한 고난"이란 말은 "온당치 않은 고난(Unjust suffering)" 혹은 "부당하게 받은 고난(Wrongfully)"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이 더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 "애매히"란 말은 그게 아닌데 설명할 수 없는 것, 또는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이란 뜻입니다.
1.모세가 받은 애매한 고난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를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광야로 인도해 냈는데 고생이 너무 많으니까 그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쳐죽이려고 한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야는 낮에는 계란이 익을 정도로 뜨거운데다, 밤에는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춥습니다.
그런데다 사막 같은 땅에 물을 제대로 마실 수가 있습니까 빵을 제대로 먹을 수 있습니까 채소나 고기는 더욱 먹을 수가 없으니까, "애굽에 있을 때는 비록 종살이는 할지언정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도 꺼내 먹을 수가 있었고, 부추, 마늘, 외등 채소도 먹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진력나는 만나 밖에 먹을 수 없지 않느냐 우리를 왜 광야로 이끌어 내어 여기서 죽게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모세는 입술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바로에게 갈 수 없다고 하는데도 가게 해 놓고는 이와 같은 고난을 당하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차라리, 날 죽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도 했고 어떤 때는 "하나님, 내가 이 많은 백성을 낳기를 했습니까 어떻게 이 많은 백성을 품에 안으라고 하십니까"라고 몸부림치는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더욱이 모세는 바위를 칠 때 "이 패역한 백성들아!"하고 너무나 화가 나서 한번 칠 것을 두번 치며 화를 냈다고 해서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죽었으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고 하나님과 자기만 아는 애매한 고난을 많이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억울하다고 애매한 고난을 벗어 던지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의 큰 축복과 상급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2.요셉이 받은 애매한 고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은 결국 웅덩이에 빠져 죽을 뻔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애굽상인들에게 은 20냥에 팔려 갈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해는 뉘엿뉘엿져가고 석양 햇살을 받으며 붙들려 갈 때 형들을 멀리멀리 바라보며 얼마나 눈이 퉁퉁 붇도록 울었겠습니까 그 때 형들은 이렇게 욕을 했을 것입니다.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너한테 절을 한다고 꼴 좋다. 열 한 곡식단이 너한테 엎드려 절한다고 어디 그 꿈 이루어지나 보자 혼자 잘난 체하고 아버지한테 아첨하더니 꼴 좋구나 종살이하며 고생이나 실컷 하다 죽어 봐라"고 하며 비아냥거리며 낄낄거리며 웃으며 욕을 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요셉의 귀에다 "요셉아 너 조금만 참으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고 네 민족을 기근에서 구원하게 될 거야"라고 한마디나 했다면 고통을 견디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런 음성도, 계시도 없었습니다. 더욱 애매한 고난은 그가 보디발장군의 집에서 머슴살이 하다가 주인의 여자가 옷깃을 부여잡으며 유혹할 때 "하나님 앞에서 어찌 이 큰 악을 행할 수 있사오리까"하고 뿌리치고 나올 때 부여잡은 옷깃을 벗어 던진 옷이 보디발 아내의 유일한 증거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해명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 일로 애매하게 2년 동안이나 감옥 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이 요셉이 장차 전 애굽나라를 기근에서 구원하고 자기 민족을 구원할 자인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애매한 고난을 참지 못하면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룰 수가 없고 큰그릇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욥이 받은 애매한 고난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으나 하루아침에 재산을 도적 맞고 불 타 없어졌고 또한 열 자녀가 맏형의 집에서 잔치를 하다가 태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몽땅 압사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욥의 입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욥의 온몸에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리고 구더기가 나서 기어 다닐 정도 였습니다. 가려워 기왓장으로 긁으면 피가 나고 그냥 두면 가렵고 견딜 수가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은 위로해 주어야 할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고 가깝던 친구들은 욥을 보고 입을 가리우고 말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하는 말은 "필시 네가 하나님께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니 회개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욥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많아서 당하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아니고야 이런 고통을 당할 리가 있느냐고 다그치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애매히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은 결과 전 보다 곱절의 축복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 모르드개가 받은 애매한 고난 모르드개는 하나님 외에 어떤 우상에게나 사람에게 결코 절하지 않는 지조 있는 독실한 신앙의 사람이어서 당시 하만이 지나갈 때는 모두 엎드려 절하는데 모르드개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고개를 든 채 절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하만은 모르드개를 미워한 나머지 그를 50규빗 되는 장대에 매달아 죽일 뿐 아니라, 바사와 매대의 온 나라 유대인이 하루아침에 살육을 당하고 재산은 몰수를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온 유대인들이 얼마나 모르드개를 욕하고 원망했겠습니까 "너 때문에 온 유대인이다 도륙을 당하게 되었다", "너 혼자 잘 믿는 체하고 고개를 안 숙여서 우리가 다 몰살을 당하게 되었다", "너 혼자 독불장군으로 잘 믿는 체 할게 뭐냐", "때로는 적당히 고개 숙일 때, 고개를 숙일 것이지 독선적으로 혼자 잘 믿는 체하다가 우리를 다 죽게 하느냐"별별 원망의 소리를 다 들었을 것입니다. 남달리 신앙의 절개를 지키려다 애매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뭐라고 설명하겠습니까 뭐라고 해명할 수도 없고 변명할 수도 없는 애매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온 백성이 왕후 에스더와 더불어 기도한 결과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던 장대에 달려 죽었고 유대인들은 신분과 입지가 더 좋아졌습니다. 오늘날도 남달리 마귀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려고 할 때는 사탄이 더 공격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몇년전 무서운 이단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싸워 훈계시킬 때 온갖 위협과 협박을 다 받았으며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고 덤벼듭니다.
5. 예수님이 받으신 애매한 고난 예수님은 마른땅에서 나온 연한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모 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걸머지시고 우리의 질고를 당하셔서 모진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고 사람들은 죄가 많아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인데" 사람들은 죄가 많아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애매한 고난입니까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로 툭툭 치며 조롱을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거기서 뛰어 내려오지 못하느냐"고 조롱을 퍼부어 댔습니다. 얼마나 매매한 고난입니까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로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질투한 나머지, 죽이려 했던 것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였던 것입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 한 것도 돈을 많이 번 유대인들을 시기하여 그 돈을 뺏기 위해 죽였다는 것입니다. 네로황제 때 기독교인들을 무참하게 죽인 것도, 기독교인들이 십일조도 하고 축복을 많이 받아 잘 사는 것을 시기해서 죽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하나님이 영적으로 축복하셔서 대형 교회들이 많이 생겼는데 이를 좋게 보는 사람들은 1%도 안된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그런 시각으로 보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타 종교인들이나 더욱이 좌경 분자들이야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대통령 선거 몇 달 전에 어느 목사님한테 편지가 왔는데 "000씨가 대통령 된답니다."하고 그 음성을 듣고난 다음에 하늘을 쳐다보니까 맑개 개인 하늘에 먹구름이 사방에서 몰려오더니 하늘이 캄캄하게 되더랍니다. 그 다음 또 다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기를 영계에 큰 혼란이 오고 교회에 사탄의 무서운 핍박이 온다고 하더랍니다. 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이 온다고 알려 주더랍니다. 저는 그 편지를 보고 어느 신비주의자가 이런 편지를 보냈구나 생각하고 즉시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 하나 그의 말대로 되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정부나 대통령이 그런 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좌익분자들이나 타 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에 군살 빼기 작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즉 대형 교회들을 파괴하는데 목사들을 먼저 매장시키면 목사는 외국으로나 산으로 도망가고 교회 교인들은 그런 방송을 보고 와르르 무너질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대형 교회들을 불 싸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순서는 우리 금란교회가 아니고 강남의 S교회 다음은 여의도 모교회 다음은 K모교회. 이렇게 순서가 되어 있었는데 금란교회에서 출교된 모장로가 엉터리 제보를 하고 저의 보수 신앙을 미워하고 또 시기하는 무리들이 합작을 해서 이와 같은 작품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 짚은 것입니다. 제가 외국으로 도망도 안가고 우리 교회가 무너지지도 않고 더 똘똘 뭉치고 더 뜨겁게 기도하는 가운데 부흥되고 있습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첫 번째 얻어맞게 앞에 내세웠느냐 하면 웬만한 교회 같으면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온 기독교인들이 합심해서 잘못된 매스컴에서 항복을 받아 내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핍박이 옵니다. 결코 저 개인이나 금란교회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탄과의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언론 중재위원회에도 제소했고 형사, 민사에 소송도 제기하고 손해 배상 청구도 하고 있습니다. 결코 물러 설 수 없는 일입니다. 승리 할 때까지 합심해서 강력히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김홍도 목사나 금란교회가 이런 사탄과의 영적 싸움 앞장 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김홍도 목사와 금란교회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선교의 길을 가로 막았다고 만 생각할 터이니 이 얼마나 애매한 고난입니까 금년도 표어대로 이런 면에서도 "영적 파수꾼"의 사명을 다 하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모세가 받은 애매한 고난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를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광야로 인도해 냈는데 고생이 너무 많으니까 그 백성이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쳐죽이려고 한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야는 낮에는 계란이 익을 정도로 뜨거운데다, 밤에는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춥습니다.
그런데다 사막 같은 땅에 물을 제대로 마실 수가 있습니까 빵을 제대로 먹을 수 있습니까 채소나 고기는 더욱 먹을 수가 없으니까, "애굽에 있을 때는 비록 종살이는 할지언정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도 꺼내 먹을 수가 있었고, 부추, 마늘, 외등 채소도 먹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진력나는 만나 밖에 먹을 수 없지 않느냐 우리를 왜 광야로 이끌어 내어 여기서 죽게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모세는 입술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바로에게 갈 수 없다고 하는데도 가게 해 놓고는 이와 같은 고난을 당하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차라리, 날 죽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도 했고 어떤 때는 "하나님, 내가 이 많은 백성을 낳기를 했습니까 어떻게 이 많은 백성을 품에 안으라고 하십니까"라고 몸부림치는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더욱이 모세는 바위를 칠 때 "이 패역한 백성들아!"하고 너무나 화가 나서 한번 칠 것을 두번 치며 화를 냈다고 해서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죽었으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고 하나님과 자기만 아는 애매한 고난을 많이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억울하다고 애매한 고난을 벗어 던지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의 큰 축복과 상급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2.요셉이 받은 애매한 고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은 결국 웅덩이에 빠져 죽을 뻔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애굽상인들에게 은 20냥에 팔려 갈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해는 뉘엿뉘엿져가고 석양 햇살을 받으며 붙들려 갈 때 형들을 멀리멀리 바라보며 얼마나 눈이 퉁퉁 붇도록 울었겠습니까 그 때 형들은 이렇게 욕을 했을 것입니다.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너한테 절을 한다고 꼴 좋다. 열 한 곡식단이 너한테 엎드려 절한다고 어디 그 꿈 이루어지나 보자 혼자 잘난 체하고 아버지한테 아첨하더니 꼴 좋구나 종살이하며 고생이나 실컷 하다 죽어 봐라"고 하며 비아냥거리며 낄낄거리며 웃으며 욕을 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요셉의 귀에다 "요셉아 너 조금만 참으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고 네 민족을 기근에서 구원하게 될 거야"라고 한마디나 했다면 고통을 견디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런 음성도, 계시도 없었습니다. 더욱 애매한 고난은 그가 보디발장군의 집에서 머슴살이 하다가 주인의 여자가 옷깃을 부여잡으며 유혹할 때 "하나님 앞에서 어찌 이 큰 악을 행할 수 있사오리까"하고 뿌리치고 나올 때 부여잡은 옷깃을 벗어 던진 옷이 보디발 아내의 유일한 증거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해명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 일로 애매하게 2년 동안이나 감옥 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이 요셉이 장차 전 애굽나라를 기근에서 구원하고 자기 민족을 구원할 자인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애매한 고난을 참지 못하면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룰 수가 없고 큰그릇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욥이 받은 애매한 고난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으나 하루아침에 재산을 도적 맞고 불 타 없어졌고 또한 열 자녀가 맏형의 집에서 잔치를 하다가 태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몽땅 압사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욥의 입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욥의 온몸에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리고 구더기가 나서 기어 다닐 정도 였습니다. 가려워 기왓장으로 긁으면 피가 나고 그냥 두면 가렵고 견딜 수가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은 위로해 주어야 할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고 가깝던 친구들은 욥을 보고 입을 가리우고 말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하는 말은 "필시 네가 하나님께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니 회개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욥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많아서 당하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아니고야 이런 고통을 당할 리가 있느냐고 다그치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애매히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은 결과 전 보다 곱절의 축복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 모르드개가 받은 애매한 고난 모르드개는 하나님 외에 어떤 우상에게나 사람에게 결코 절하지 않는 지조 있는 독실한 신앙의 사람이어서 당시 하만이 지나갈 때는 모두 엎드려 절하는데 모르드개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고개를 든 채 절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하만은 모르드개를 미워한 나머지 그를 50규빗 되는 장대에 매달아 죽일 뿐 아니라, 바사와 매대의 온 나라 유대인이 하루아침에 살육을 당하고 재산은 몰수를 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때 온 유대인들이 얼마나 모르드개를 욕하고 원망했겠습니까 "너 때문에 온 유대인이다 도륙을 당하게 되었다", "너 혼자 잘 믿는 체하고 고개를 안 숙여서 우리가 다 몰살을 당하게 되었다", "너 혼자 독불장군으로 잘 믿는 체 할게 뭐냐", "때로는 적당히 고개 숙일 때, 고개를 숙일 것이지 독선적으로 혼자 잘 믿는 체하다가 우리를 다 죽게 하느냐"별별 원망의 소리를 다 들었을 것입니다. 남달리 신앙의 절개를 지키려다 애매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뭐라고 설명하겠습니까 뭐라고 해명할 수도 없고 변명할 수도 없는 애매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온 백성이 왕후 에스더와 더불어 기도한 결과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던 장대에 달려 죽었고 유대인들은 신분과 입지가 더 좋아졌습니다. 오늘날도 남달리 마귀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려고 할 때는 사탄이 더 공격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몇년전 무서운 이단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싸워 훈계시킬 때 온갖 위협과 협박을 다 받았으며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고 덤벼듭니다.
5. 예수님이 받으신 애매한 고난 예수님은 마른땅에서 나온 연한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모 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걸머지시고 우리의 질고를 당하셔서 모진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고 사람들은 죄가 많아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인데" 사람들은 죄가 많아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애매한 고난입니까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로 툭툭 치며 조롱을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거기서 뛰어 내려오지 못하느냐"고 조롱을 퍼부어 댔습니다. 얼마나 매매한 고난입니까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로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편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질투한 나머지, 죽이려 했던 것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였던 것입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 한 것도 돈을 많이 번 유대인들을 시기하여 그 돈을 뺏기 위해 죽였다는 것입니다. 네로황제 때 기독교인들을 무참하게 죽인 것도, 기독교인들이 십일조도 하고 축복을 많이 받아 잘 사는 것을 시기해서 죽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하나님이 영적으로 축복하셔서 대형 교회들이 많이 생겼는데 이를 좋게 보는 사람들은 1%도 안된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그런 시각으로 보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타 종교인들이나 더욱이 좌경 분자들이야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대통령 선거 몇 달 전에 어느 목사님한테 편지가 왔는데 "000씨가 대통령 된답니다."하고 그 음성을 듣고난 다음에 하늘을 쳐다보니까 맑개 개인 하늘에 먹구름이 사방에서 몰려오더니 하늘이 캄캄하게 되더랍니다. 그 다음 또 다시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기를 영계에 큰 혼란이 오고 교회에 사탄의 무서운 핍박이 온다고 하더랍니다. 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이 온다고 알려 주더랍니다. 저는 그 편지를 보고 어느 신비주의자가 이런 편지를 보냈구나 생각하고 즉시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 하나 그의 말대로 되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정부나 대통령이 그런 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좌익분자들이나 타 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에 군살 빼기 작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즉 대형 교회들을 파괴하는데 목사들을 먼저 매장시키면 목사는 외국으로나 산으로 도망가고 교회 교인들은 그런 방송을 보고 와르르 무너질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대형 교회들을 불 싸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순서는 우리 금란교회가 아니고 강남의 S교회 다음은 여의도 모교회 다음은 K모교회. 이렇게 순서가 되어 있었는데 금란교회에서 출교된 모장로가 엉터리 제보를 하고 저의 보수 신앙을 미워하고 또 시기하는 무리들이 합작을 해서 이와 같은 작품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 짚은 것입니다. 제가 외국으로 도망도 안가고 우리 교회가 무너지지도 않고 더 똘똘 뭉치고 더 뜨겁게 기도하는 가운데 부흥되고 있습니다. 왜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첫 번째 얻어맞게 앞에 내세웠느냐 하면 웬만한 교회 같으면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온 기독교인들이 합심해서 잘못된 매스컴에서 항복을 받아 내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핍박이 옵니다. 결코 저 개인이나 금란교회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탄과의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언론 중재위원회에도 제소했고 형사, 민사에 소송도 제기하고 손해 배상 청구도 하고 있습니다. 결코 물러 설 수 없는 일입니다. 승리 할 때까지 합심해서 강력히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김홍도 목사나 금란교회가 이런 사탄과의 영적 싸움 앞장 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김홍도 목사와 금란교회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선교의 길을 가로 막았다고 만 생각할 터이니 이 얼마나 애매한 고난입니까 금년도 표어대로 이런 면에서도 "영적 파수꾼"의 사명을 다 하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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