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주님편에 설 수 있는 용기 (마10:34-39)

본문

초대 교회때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polycarp)은 사도 요한의 친구이며 생도 였는데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일 때 지방 총독이 그 감독을 존경하기 때문에 조용히 불러다가 예수를 욕하면 풀어 주겠노라고 강권했습니다. 그 때 폴리캅이 대답하기를 "86년 동한 내가 주님을 섬겼는데 그는 한번도 나는 해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의 왕 나의 구세주를 모독하겠는가"라고 대답하고 화형을 당했는데, 그 불이 타지를 않아서 끌어내져 다른 방법으로 죽였다고 합니다. 주님을 따르며 참된 신앙을 지킬 때 칭찬과 영광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핍박도 받고 고통도 받고 때로는 목숨을 지키느냐 신앙의 지조를 지키느냐 하는 기로에 놓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1. 주님을 따를 대 핍박과 고통도 받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화평과 사랑만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화와 칼도 주러 왔다고 했습니다.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히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고 했습니다. 흑암과 죄악 가운데 살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빛의 자녀가 되고나면 구원받지 못한 식구들 즉 부모 형제와도 불화가 생기고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사랑의 사도로 오신 분이지만 그 평화는 비진리와 타협하거나 사탄 마귀에게 양보하면서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위한 투쟁이 있은 다음에 오는 평화요 죄악으로 썩어 가는 곳에는 검으로 수술하는 고통과 투쟁이 있은 후에 오는 평화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라 세상의 부모나 자식을 더 귀중히 여겨서 예수님을 배반하면 그것을 참된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예수님께서 "아비나 어미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는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침 안개와 같은 육신의 목숨 잃는 것이 두려워서 영원한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돌아서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환난의 날에 큰 핍박이 일어날 때 목숨을 버릴지언정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는 지조 있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집도 전답도 재산도 포기해야 할 때 가서는 포기해야 하늘나라의 면류관과 영원한 상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마가복음 10장 29절) 요한계시록 2장 8절에 핍박받는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말씀하시고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주님 편에 서기 위해서는 핍박과 고난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2. 주님 편에 서는 용기 편안할 때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믿음 있는 것 같아도 참 신앙인지 아닌지는 핍박과 환난을 당해 봐야 합니다. 어떤 위험이 오고 손해가 오더라도 주님 편에 서고 진리를 사수하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편안할 때 입으로 "주여, 주여"하고 찬송 부르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이 몰아닥칠 때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지 안지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빌라도 총독이 소신대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비겁하게 죄없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내어 주고는 "나는 죄가 없다. 너희가 이 죗값을 받으라"하며 죄없다는 뜻으로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2,000년 동안 수억만 기독교인들이 사도 신경을 외우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외우곤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분쟁을 피하려고, 인기를 잃지 않으려고, 적당히 마귀와 타협하는 사람은총독 빌라도가 손을 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룟유다와 같이 돈 몇 푼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교회를 파멸하게 내어 주고 주님의 종들을 매장하고 죽는데 내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리는 단두대 위에 있다"는 말은 명언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소위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갈멜산에 올라갔는데 엘리야는 혼자이고 바알 선지자는 450명이고 아세라 선지자는 400명 도합 850명이나 되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여호와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편을 들어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의 선지자와 이방신 선지자들 사이에 눈치만 슬슬 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으면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 지니라(열왕기상 18장 21절)"고 호통을 쳤습니다.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두 사이에 머뭇머뭇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같이 외쳤겠습니까 북한에 예수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공산당이 들어서서 점점 핍박이 강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저버리고 사탄의 사상인 공산주의와 타협하고 일신의 안락을 선택했습니다. 오죽 했으면 목사였던 강장욱이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회유책에 넘어가 북한의 부수상까지 지내다 지옥에 갔겠습니까 제가 북한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도 그렇게 많던 신자들이 거의가 믿음을 져 버리고 교회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지키던 몇명않되는 학생들은 엄청난 핍박을 말았습니다. 남한에서는 토요일, 일요일이 오면 좋아 하지만 북한에서는 "또 주일이 돌아 왔구나"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무서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을 지키고 나면 명단을 다 가지고 있다가 자아비판을 당하고 매를 맞고 조롱을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것은 그들이 거의가 남한에 넘어와서 목사, 장로들이 되고 신앙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받으며 신앙 생활할 때 제일 가슴에 사무치는 말씀은 마태복음 10장 32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 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너, 종교가 뭐냐"고 할 때 "종교 없습니다."하던가 "예수 믿지 않습니다"하고 한마디하면 편안히 잘 살수 있고 그 지긋지긋한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아니요"한 마디 할 수가 없어서 핍박을 받고 순교도 하는 것입니다. 대 로마 박해 시대에도 예수님을 "주(퀴리오스)"라고 부르면 사자 밥이 되고 황제의 우상에게 "주"라고 하면 편안히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환경을 생각하면서 로마서 10장 10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뜻 깊은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신 말씀, 또 고린도전서 12장 2-3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말세에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에는 무서운 핍박이 일어날 터인데 그 때가
1,200만 신자들 중에 몇%나 남게될런지 참으로 의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우상 앞에 한번만 절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데 머리를 숙이지 않고 순교한 사람이 그 얼마인지 모르고 "예수 믿지 않는다"고 한마디하면 살터인데 그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면서 끔찍하게 죽은 사람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몇 년 전 이단 교수들과 싸워서 승리하여 출교시켰습니다만 그들은 "예수만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하면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으며 "예수님의 구속의 피를 믿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그쪽 편을 드는 목사, 신학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며 심지어 감독들 중에도 몇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예수께서 말세에 대하여 예언을 말씀하시는 중에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고,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원주의는 물론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고 예수님을 The christ가 아니라 여러 christs중에 하나 즉 a crist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7-8절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가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고 했습니다. 지금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 말세의 징조로서 매스컴을 통하여 은근히 교회를 파괴하고 주의 종들을 매장시키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사탄과의 싸움에서 물러나며 그야말로 큰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어느 편에 서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 입니다. 말세에는 주님 편에 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왔다 갔다 흔들흔들하면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용감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지조 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불의 사자 엘리야가 자기를 “하나님께 열심이 특실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남들은 가만있는데 850:1로 담대히 나아가 싸웠습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두 사이에 머뭇머뭇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구역질나게 하는 신자들입니다. 다니엘은 기도한다는 핑계로 사자 굴에 들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여전히 창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열심이 특실한 사람, 지조를 굽히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는 사람을 통해 큰 일을 하십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실수한 때는 있어도 의분을 가지고 예수님의 편에 서서 싸우려고 하다가 말고의 귀를 자르기도 한 사람입니다. 주님 편에 서서 일하다가 주님을 위해 순교까지 한 사람입니다. 선거를 해 보거나 교단 일을 할 때 적극적으로 나설 줄 알았는데 양다리를 걸고 어느 쪽이 유리한 편인가 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보통 섭섭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른편에 있는 양과 왼편에 있는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잇속을 따라서 마귀 편에 섰다가 예수님편에도 섰다가 하는 회색분자들이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라고 봅니다. 교회가 어려운 일 당할 때 목사가 어려운 일 당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거나 적과 내통하면서 자기 잇속만 차리려는 사람을 볼 때에는 가슴을 째고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또 열심히 뛰고 일하던 사람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지면서 두로 물러서 숨는 것을 보면 가슴이 섬짓하면서 사람은 믿을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당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영적 싸움에 동참하는 것을 볼 때 그 고마운 마음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 MBC앞에서 시위할 때 나와서 최루탄을 맞고 곤봉을 맞으면서도 열심 외치면서 동참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바와 같이 MBC와의 싸움은 사탄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교파를 초월해서 지지 성명서가 나오고 격려의 편지가 엄청나게 옵니다. 기도하는 분들은 이것이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다 알고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단 내에서 불신앙의 무리들과 나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무리들이 외적이 침입해 들어오는데, 총 뿌리를 안으로 들이대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6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