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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삭개오 (눅19:1-10)

본문

성경에는 나오지를 않았지만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새벽마다 밖에 나가더랍니다. 하루는 부인이 하도 이상해서 뒤따라 가 봤더니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뽕나무에 가서 물도 주고 쓰다듬으면서 "내가 이 나무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또 예수님을 모시고 또 이렇게 변화 받게 되었지."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랍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만남의 축복이 무엇보다 큰 것 같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상사를 만나고, 좋은 교회, 좋은 목사를 만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 사람의 만남이 그의 운명을 좌우하고 나아가서 영원한 운명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영원한 축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생애 동안에 예수님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바르게 영접한다면 다른 모든 만남이 잘못 되었더라도 그 사람은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영접하면 금세와 내세의 영원한 운명이 바뀌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에게 개나 돼지 취급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받던 키가 작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엄청난 은헤와 축복을 받고 영원한 운명이 바뀐 사실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1. 아이 같이 된 어른 삭개오 삭개오는 유대인들에게 매국노 취급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이었지만 당시에 세리장이면, 요사이 세무서장이며, 고급 공무원이요 부자였습니다. 이렇게 점잔빼고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 삭개오는 어린아이처럼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거리를 뛰어갔습니다. "앞으로 달려갔다(4절)"고 했습니다. 거리를 뛰어가는 것은 아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영국 신사들은 폭우가 쏟아져도 천천히 걸어간다고 합니다. 또 삭개오는 뽕나무에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남달리 키가 작은 삭개오는 군중들 틈에서 아무리 발끝을 들고 보아도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무에 기어올라가는 것은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어른이 그것도 고급 공무원이 할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칼빈은 "호기심과 단순성(Curiosity, Simplicity)이 믿음을 얻는데 준비 과정이다"라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이 많은 군중이 따르는가"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어린아이같이 애타게 사모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7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다가도 거듭나지 못하고 은혜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어린아이같이 단순하고 겸손하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삭개오를 찾아보신 예수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해서 급히 달려와 뽕나무에까지 올라갔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 온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호기심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과 단순한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있던 삭개오에게 다가와서는 뜻밖에 이름까지 부르면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19장 10절에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찾은 것 같지만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예수님이 삭개오의 심령 상태를 알고 찾아 오신 것입니다. 본래 잃어버린 영혼은 구세주를 찾지 못하는 법입니다. 로마서 3장 11절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했고 우리의 선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던 것입니다.(창세기 3장 1-10절)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소망 없는 죄인들의 영혼을 애타게 찾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잃은 드라크마 찾는 비유와 100마리 중에 양 하나를 잃고 온 산과 들을 헤매며 찾으시는 말씀이나 잃어버린 아들을 애타게 찾으시는 비유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이 잃어버린 영혼을 애타게 찾고 계신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을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애타게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삭개오가 구원받기까지 배후에서 어떻게 역사 하셨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세리였던 레위가 예수님에 관해서 삭개오에게 말해 주었는지, 혹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준 사람이 있었는지, 부자된 것으로 만족을 얻지 못한 삭개오에게 더 귀한 영적인 것을 갈구했는지 우리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도 삭개오와 같이 성령님 충만을 간절히 사모하고 신령한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면 하나님이 찾아와 만나 주시고 흡족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셨고 예레미야 29장 12-13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07편 9절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라"라고 하셨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해 봐도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간구하는 사람들이 성령님 충만도 받고 은사도 받고 병고침도 받는 것이지 줄 테면 주고 말테면 마시요하는 자세로 무관심하게 나오는 사람은 남들 다 받아도 그 사람은 못 받습니다. 사모하는 만큼 큰 은혜를 받습니다.
3. 작은 자가 큰 자가 된 삭개오 삭개오가 키가 작은 것은 자기 책임이 아니었습니다. 군중 가운데서 도저히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삭개오는 자신의 장애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세무서장의 위엄이나 위신 같은 것은 다 던져 버리고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큰 자가 되어 예수님을 바라 볼 수가 있었고, 남들 다 예수님과 이야기 한번도 못해 보는데 삭개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도 대접하고 주무시게도 하시면서 엄청난 구원의 은총을 받고 인생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작은 삭개오가 가장 큰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키가 작은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볼 수 있을 만큼 큰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키가 작은 자들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키가 작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키가 큰 줄로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표준으로 자신을 측정합니다. 돈, 지위, 권위, 인기 등으로 자기가 큰 사람인줄 아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것들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죄도 많고 키도 작고 남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존재였지만 어린아이 같이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뽕나무에 올라 갈 만큼 간절히 사모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4. 가난한 자가 부요한 자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가 부정 축재해서 부자된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영적으로 잃어버린 자 궁핍한자요, 눈먼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을 절실히 필요한 가련한 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귀중한 선물을 받은 자입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신 예수님을 자기집으로 초대한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삭개오와 같은 마음으로 사모하고 영접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영생의 선물을 주시고 그와 동행하여 주십니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삭개오는 선한 행실을 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분의 말씀으로 구원받고 은혜 받고 나니까 감격하여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며 보상해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도적놈이 자기의 죄를 스스로 자백할 때에는 훔친 것에 5분의 1을 더해서 보상하고 속죄 제물을 드리면 됩니다.(레위기 6장 1-7절) 훔친 것을 내놓을 수 없을 때는 4배를 갚아야 하고(출애굽기 23장 1절) 물건과 함께 붙잡히면 배로 갚게 되어 있습니다.(출애굽기 22장 4절) 삭개오는 스스로 4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 소리로 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고 변화 받고 보니까 너무 감격하여 최고의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나고 은혜를 받으면 물질관이 달라집니다. 돈밖에 모르고 인색하던 사람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되고 남에게 선을 베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한 다음에 기사와 표적을 나타낼 때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결과입니다.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신령한 복을 분급 받았기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풍성히 받았고(에베소서 1장 7절, 2장 4절)",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의 모든 쓸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장 19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 11장 33절)"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거듭난 크리스천은 말할 수 없는 부자가 된 것입니다. 세상이 다 이해할 수 없고, 찾을 수 없고 다함이 없는 세상의 박사라도 알지 못하는 부요함을 가진 자들입니다.
5. 주인이 객이된 삭개오 원래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초대받은 객이 었으나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변화 받고 보니 예수님이 그 집에 주님(Master)이 되시고 삭개오는 주님 명령에 순종하는 객이된 것입니다. 거듭나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은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만왕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리며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말에는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잃어버린 영혼,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어른이 아이 된 사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으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키가 작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가장 큰 자가 된 사실, 가난한 자가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고, 주인이 객이 되고 객으로 오신 예수님이 주인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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