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전터 (대하3:1-2)
본문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 많은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피지(FIJI)는 남태평양 한 가운데 있는 인구 백만명을 가진 조그만 섬나라인데 일찍이 선교사가 들어가 제일 높은 추장을 예수 믿게 해서 몽땅 다 예수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나라 인구의 약 45%는 인도 사람들인데 그들 중에는 3%정도만이 예수를 믿지만 피지(FIJI)사람들은 거의 100% 예수를 믿고 대부분이 감리교인들입니다. 이번에 교역자 집회에 약 2,000명이 모였는데 그 중에는 평신도 지도자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놀라운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고 3일 동안은 그 나라의 대도시 슈바, 난디, 라우토카등지의 공설 운동장에서 집회를 가지고 동시에 라디오로 중계 방송도 했는데 그들의 말로는 사상 최고의 군중이 모였고 큰 영적 각성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주일날에는 운동장에서 각 교회와 연합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지옥" 설교를 했더니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설교 도중에 몇 번이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밤에도 역시 공설 운동장에서 집회를 가졌는데 만 여명 이상이 모여서 은혜를 받는데 예배가 끝났는데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있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악수를 하겠다고 운동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늘어서서 악수를 하는데도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역들을 가는 곳마다 환영식과 송별식을 해주는데 왕이나 추장에게만 하는 의식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감리교 감독 회장이라고 하니 국빈 대우를 하는데 공항에 들어갈 때나 출국할 때도 이민국 수속도 밟지 않고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라에는 특별 손님을 대접하는 "로보"라는 음식이 있는데 땅을 파고 벌겋게 달군 돌들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돼지나, 닭이나, 생선을 넣고 그 위에 야자나 바나나 잎을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가 몇 시간 후에 꺼내먹습니다. 그러면 기름이 다 빠지고 잘 익어서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100여년 전만 해도, 그들이 식인종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먹을 때에도 그런식으로 잡아서 익혀 먹었다고 합니다. 1887년 7월 21일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가 들어와 전도를 하다가 잡혀서 "로보"라는 음식으로 땅에 묻혀서 익혀 먹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가죽 장화를 한쪽만 신은 채 끌려왔는데 다른 것은 다 뜯어먹었는데 장화는 질겨서 뜯어먹을 수가 없어서 그 장화 한 짝을 남겨두었던 것이 지금도 박물관에 간직되어 있다고 합니다. 토마스 목사가 이런 희생의 제물이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 피지(FIJI)의 전 국민이 예수 믿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한진관 목사님이 성지 순례하는 중에 아시아 일곱 교회를 순방하고 와서 하시는 말씀이 그 때 당시에는 "생명 놓고 생명 먹기"로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즉 전도하다가 순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생명을 던지며 영혼을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짧은 두 절 가운데는 엄청난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그 터가 바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이었고, 먼 훗날 다윗왕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상당한 값으로 사서 소를 잡아 값진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런 희생의 제사를 드리던 그 자리가 예루살렘 성전의 터가 되었던 것입니다.
1. 모리아산은 독자를 제물로 드린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어 하나님의 언약대로 독자 이삭을 받았는데 금지옥엽보다 더 귀중히 키우는데 청년기에 접어들만큼 자랐을 때 어느 날 청천 벽력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는데 "그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귀하고 천하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하나님이 도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낳을 수 없을 때 낳게 하신 하나님이 번제로 제사를 드려도 태운 재 가운데서도 살려 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칼을 들어 묶어 놓는 아들의 목을 내리 치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안이 열려 주위를 살펴보니까 한 수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도망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종 후에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고, 남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양으로 대신 제사를 드리고 그 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 즉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다"는 뜻으로 그 땅 이름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터가 어쩌다 정해진 곳이 아니라 바로 이런 엄청난 희생의 제물이 드려진 모리아산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독자를 드리는 것과 같은 희생과 헌신이 깔려 있는 곳에 지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었습니다. 이 말씀의 내역은 역대상 21장에 나오는데 다윗왕이 통일 왕국을 이루고 나서 교만하여져서 사탄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역대상 21장 1절에 보면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다윗의 마음을 격동하니까 잔뜩 교만해져서 우쭐하는 마음으로 군대의 수를 계수해 보라고 했습니다. 요압장군도 왠지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베냐민지파 같은 것은 빼고 대충대충 세어서 보고하기를 "칼을 뺄만한 자만 47만 명입니다."라고 보고했는데 그 다음절(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셨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다윗을 괘씸히 여겼습니까 다윗이 백전백승한 것도 제가 잘났거나 군대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것이고 또 이새의 말째 아들, 천민 목동 출신을 왕으로 삼아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해 주셨는데 이런 하나님의 은혜도 잊어버리고 교만 마귀에 사로 잡혀서 군대의 수를 세어 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이스라엘을 치시는데 세 가지 벌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3년 기근의 벌을 받겠느냐,
둘째 석달 전쟁에 패하여 쫓겨다니는 벌을 받겠느냐,
셋째 3일간 온역의 징계를 받겠느냐 하는 것 중에서 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3일 유행병으로 벌을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했더니 하나님이 온역으로 치시는데 역대상 21장 14절에 "이스라엘의 죽은 자가 칠 만이었더라"고 했습니다. 3일 사이에 죽은 자가 칠 만이나 되었다는 것은 군대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는 것을 다윗왕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칼을 빼어 들고 나타나 예루살렘편을 가리키니다윗이 굵은 베를 입고 장로들과 더불어 엎드려 경배하면서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도 나요,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도 내니이다 나와 내 아비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하고 기도했더니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르난이 타작하다가 천사도 보고 다윗을 보고 엎드려 절을 했더니다윗이 "이 땅을 상당한 값에 팔라 여기서 제사를 드리겠노라" 했더니 오르난이 "땅도 드리고 이 소도 거져 드리겠사오니 어서 제사를 드리십시오" 할 때에 다윗은 "그렇지 않다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즉 값싼 제사 정성 없는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값진 제사를 드렸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응답하셨고 하나님이 천사를 명하여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시니 재앙이 그쳤습니다. 바로 땅값을 금 600세겔이나 지불하고 값진 제사를 드리고 재앙을 멈추게 한 그 자리가 바로 예루살렘 성전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희생과 헌신이 없이 값싸게 성전 건축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저희 교회가 큰 시련을 겪으면서 잠시 건축이 중단까지 되었을 때 저는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이런 의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사람의 집을 짓습니까 내 집을 짓습니까 이 시대에 큰 사명 감당키 위해 하나님의 큰 성전을 건축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이런 배신자가 생기고 이런 사탄의 총공격을 받게 하십니까"하고 기도를 할 때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가 되고 세계 최대의 감리교의 성전을 건축하면서 건축 헌금도 작정하지 않고 경상비나 저축하고, 쉽게 건축하려고 하느냐 더욱이 어떤 한 사람을 의지하고, 간절히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 마음도 없이 건축이 완성되리라고 믿느냐"하는 음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드리듯이 다윗이 값진 제사를 드리듯이 생명과 같은 것을 드리며 피를 짜내는 듯한 희생과 헌신이 없이 작은 교회도 아닌 세계 최대의 감리교 성전을 건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그 후 간절히 기도하면서 성도들의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음이 마음속에 들려 오거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3. 이것은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독자까지 제단에 올려놓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으나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린 사람이므로 하나님이 허락지 않고 그 아들 솔로몬 때에 건축하게 해서 다윗은 많은 금은 보화와 대리석 백향목 나무등을 준비만 했습니다. 마치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도록 어시스트(assist)만 한 것 같이 준비만 했는데도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 때에 사상 유래 없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 방주를 건축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 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학개서에 보면 성전 건축에 힘쓰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한재, 풍재로 치셨고 뚫어진 전대에 돈이 새어나가는 것처럼 개인들의 물질을 치셨습니다. 학개 2장 7-9절에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니라. 이 전(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 건축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은 축복 받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도 건축하지 못했던 일에 우리들이 기도로, 물질로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다가 생명까지 바친 리빙스턴(Livingston)은 고국에 돌아왔을 때 선교를 위해서 많은 고생을 하며 큰 희생을 했다고 칭찬할 때 그는 그 말을 부인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특권이지 희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끔 고통도, 질병도, 위험도 당했지만 그것은 잠깐이요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에 비교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결코 희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더욱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보좌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하면 결코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저 기독교 TV를 보다가 미국에 이민가서 온갖 고생을 하던 정일권 장로 라는 분이 간증을 하시는데, 이것 저것하다가 다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세탁소를 하다가 그것마저도 실패하고 정리하여 빚을 다 갚고나니 돈이 12,000불이 남더랍니다. 마침 교회가 성전 건축을 하느라고 어려운 형편에 있어서 그것을 몽땅 건축 헌금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일 후에 큰 제품업을 하는 유태인 사장이 부르더니 이것 좀 해보지 않겠느냐며 자본금도 없이 일거리를 받아서 하기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축복을 받아 봉제 공장이 열 군데가 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정일권 장로님이 매월 드리는 십일조만 해도 엄청난 금액임을 강조했습니다. 주를 위해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터의 유래는 우리에게 큰 진리를 가르쳐 주며 축복의 길을 보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저는 지난 몇주 동안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헌금 설교하기 싫어하는 저에게 하필이면 경제 불황에 이런 일을 하게 하십니까"하고 여러날 고민하고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은 "이것은 금란교회와 성도들을 축복하기 위함이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00여년 전만 해도, 그들이 식인종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먹을 때에도 그런식으로 잡아서 익혀 먹었다고 합니다. 1887년 7월 21일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가 들어와 전도를 하다가 잡혀서 "로보"라는 음식으로 땅에 묻혀서 익혀 먹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가죽 장화를 한쪽만 신은 채 끌려왔는데 다른 것은 다 뜯어먹었는데 장화는 질겨서 뜯어먹을 수가 없어서 그 장화 한 짝을 남겨두었던 것이 지금도 박물관에 간직되어 있다고 합니다. 토마스 목사가 이런 희생의 제물이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 피지(FIJI)의 전 국민이 예수 믿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한진관 목사님이 성지 순례하는 중에 아시아 일곱 교회를 순방하고 와서 하시는 말씀이 그 때 당시에는 "생명 놓고 생명 먹기"로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즉 전도하다가 순교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생명을 던지며 영혼을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짧은 두 절 가운데는 엄청난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그 터가 바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이었고, 먼 훗날 다윗왕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상당한 값으로 사서 소를 잡아 값진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런 희생의 제사를 드리던 그 자리가 예루살렘 성전의 터가 되었던 것입니다.
1. 모리아산은 독자를 제물로 드린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어 하나님의 언약대로 독자 이삭을 받았는데 금지옥엽보다 더 귀중히 키우는데 청년기에 접어들만큼 자랐을 때 어느 날 청천 벽력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는데 "그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귀하고 천하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하나님이 도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낳을 수 없을 때 낳게 하신 하나님이 번제로 제사를 드려도 태운 재 가운데서도 살려 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칼을 들어 묶어 놓는 아들의 목을 내리 치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안이 열려 주위를 살펴보니까 한 수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도망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종 후에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고, 남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양으로 대신 제사를 드리고 그 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 즉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다"는 뜻으로 그 땅 이름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터가 어쩌다 정해진 곳이 아니라 바로 이런 엄청난 희생의 제물이 드려진 모리아산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독자를 드리는 것과 같은 희생과 헌신이 깔려 있는 곳에 지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었습니다. 이 말씀의 내역은 역대상 21장에 나오는데 다윗왕이 통일 왕국을 이루고 나서 교만하여져서 사탄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역대상 21장 1절에 보면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다윗의 마음을 격동하니까 잔뜩 교만해져서 우쭐하는 마음으로 군대의 수를 계수해 보라고 했습니다. 요압장군도 왠지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베냐민지파 같은 것은 빼고 대충대충 세어서 보고하기를 "칼을 뺄만한 자만 47만 명입니다."라고 보고했는데 그 다음절(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셨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다윗을 괘씸히 여겼습니까 다윗이 백전백승한 것도 제가 잘났거나 군대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것이고 또 이새의 말째 아들, 천민 목동 출신을 왕으로 삼아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해 주셨는데 이런 하나님의 은혜도 잊어버리고 교만 마귀에 사로 잡혀서 군대의 수를 세어 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이스라엘을 치시는데 세 가지 벌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3년 기근의 벌을 받겠느냐,
둘째 석달 전쟁에 패하여 쫓겨다니는 벌을 받겠느냐,
셋째 3일간 온역의 징계를 받겠느냐 하는 것 중에서 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3일 유행병으로 벌을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했더니 하나님이 온역으로 치시는데 역대상 21장 14절에 "이스라엘의 죽은 자가 칠 만이었더라"고 했습니다. 3일 사이에 죽은 자가 칠 만이나 되었다는 것은 군대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는 것을 다윗왕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칼을 빼어 들고 나타나 예루살렘편을 가리키니다윗이 굵은 베를 입고 장로들과 더불어 엎드려 경배하면서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도 나요,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도 내니이다 나와 내 아비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하고 기도했더니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르난이 타작하다가 천사도 보고 다윗을 보고 엎드려 절을 했더니다윗이 "이 땅을 상당한 값에 팔라 여기서 제사를 드리겠노라" 했더니 오르난이 "땅도 드리고 이 소도 거져 드리겠사오니 어서 제사를 드리십시오" 할 때에 다윗은 "그렇지 않다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즉 값싼 제사 정성 없는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값진 제사를 드렸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응답하셨고 하나님이 천사를 명하여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시니 재앙이 그쳤습니다. 바로 땅값을 금 600세겔이나 지불하고 값진 제사를 드리고 재앙을 멈추게 한 그 자리가 바로 예루살렘 성전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희생과 헌신이 없이 값싸게 성전 건축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저희 교회가 큰 시련을 겪으면서 잠시 건축이 중단까지 되었을 때 저는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이런 의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사람의 집을 짓습니까 내 집을 짓습니까 이 시대에 큰 사명 감당키 위해 하나님의 큰 성전을 건축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이런 배신자가 생기고 이런 사탄의 총공격을 받게 하십니까"하고 기도를 할 때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가 되고 세계 최대의 감리교의 성전을 건축하면서 건축 헌금도 작정하지 않고 경상비나 저축하고, 쉽게 건축하려고 하느냐 더욱이 어떤 한 사람을 의지하고, 간절히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 마음도 없이 건축이 완성되리라고 믿느냐"하는 음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드리듯이 다윗이 값진 제사를 드리듯이 생명과 같은 것을 드리며 피를 짜내는 듯한 희생과 헌신이 없이 작은 교회도 아닌 세계 최대의 감리교 성전을 건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그 후 간절히 기도하면서 성도들의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음이 마음속에 들려 오거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3. 이것은 축복이며 특권입니다. 독자까지 제단에 올려놓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었으나 전쟁으로 많은 피를 흘린 사람이므로 하나님이 허락지 않고 그 아들 솔로몬 때에 건축하게 해서 다윗은 많은 금은 보화와 대리석 백향목 나무등을 준비만 했습니다. 마치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도록 어시스트(assist)만 한 것 같이 준비만 했는데도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 때에 사상 유래 없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 방주를 건축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 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학개서에 보면 성전 건축에 힘쓰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한재, 풍재로 치셨고 뚫어진 전대에 돈이 새어나가는 것처럼 개인들의 물질을 치셨습니다. 학개 2장 7-9절에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니라. 이 전(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 건축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은 축복 받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도 건축하지 못했던 일에 우리들이 기도로, 물질로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다가 생명까지 바친 리빙스턴(Livingston)은 고국에 돌아왔을 때 선교를 위해서 많은 고생을 하며 큰 희생을 했다고 칭찬할 때 그는 그 말을 부인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특권이지 희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끔 고통도, 질병도, 위험도 당했지만 그것은 잠깐이요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에 비교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결코 희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더욱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보좌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하면 결코 희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얼마저 기독교 TV를 보다가 미국에 이민가서 온갖 고생을 하던 정일권 장로 라는 분이 간증을 하시는데, 이것 저것하다가 다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세탁소를 하다가 그것마저도 실패하고 정리하여 빚을 다 갚고나니 돈이 12,000불이 남더랍니다. 마침 교회가 성전 건축을 하느라고 어려운 형편에 있어서 그것을 몽땅 건축 헌금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일 후에 큰 제품업을 하는 유태인 사장이 부르더니 이것 좀 해보지 않겠느냐며 자본금도 없이 일거리를 받아서 하기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축복을 받아 봉제 공장이 열 군데가 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정일권 장로님이 매월 드리는 십일조만 해도 엄청난 금액임을 강조했습니다. 주를 위해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터의 유래는 우리에게 큰 진리를 가르쳐 주며 축복의 길을 보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저는 지난 몇주 동안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헌금 설교하기 싫어하는 저에게 하필이면 경제 불황에 이런 일을 하게 하십니까"하고 여러날 고민하고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은 "이것은 금란교회와 성도들을 축복하기 위함이라"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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