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을 안 붙이는 신앙 (단3:13-18)
본문
불란서에 레오날드 우드경(Sir. leonard Wood)이 어느 날 왕의 초대를 받아 왕궁에 들어갔더니 반가워하면 내일 식사나 같이 하자고 초대를 했습니다. 레오날드경은 다음 날 왕궁에 들어갔더니 왜 왔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저를 식사에 초대해서 왔습니다."고 했더니 왕이 "어제 식사에 초대할 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아서 안 오는 줄 알았소"라고 말할 때 명언을 말했습니다. "폐하! 왕의 초대에는 대답이 필요 없고 오직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A King's invitation is never to he answered, but to he obeyed)" 세상 왕의 명령에도 구실을 달수가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에는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자라면 전적으로 믿고 따를 뿐이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이의를 붙이거나 조건을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을 듣습니다. "이번에 아들 안 주시면 하나님이 안 계신 거지뭐", "이번에 기도 응답 안해 주시면 교회 안다닐꺼야", "언제까지 부도 안 막아 주시면 예수 안 믿을 꺼야", 등등 혹은 "이런 것 해결 안해 주시면 하나님 편이 손해지뭐" 이런 말도 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기도 응답도 많이 받아 보고 여러 가지 체험도 많이 있어서 믿음이 상당히 있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어떤 조건을 붙이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이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절대적으로 믿는 신앙은 하나님께 어떤 조건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모범적인 절대 신앙의 사람 몇을 찾아보면 은혜 받고자 합니다.
1.'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의 믿음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벧느고는 신앙의 최고봉에 우뚝선 사람들입니다. 바벨론 나라의 느브갇네살왕이 전에 큰 금신상의 꿈을 꾼 것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종교의 힘을 빌리어서 자기의 권력을 유지할 계책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큰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각양 악기를 불어 댈 때에 모든 백성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영을 내렸습니다. 만약 이 법령을 어기면 누구를 막론하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넣어서 태워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에 신앙이 독실한 이 세 청년은 성경 계명 중에 첫째,둘째 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며,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해서 그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젊은이들을 시기하던 무리들이 이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심히 노하고 분했지만 비록 포로들이지만 이 들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세 청년을 불러다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내가 만든 우상 앞에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하고 협박하며 회유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세 청년은 대답하기를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도 기가 막힌 위대한 신앙의 표현이지만 다음 말이 더 위대한 신앙의 말입니다. "그리하니 하실 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절대 신앙의 말을 한 것입니다.
즉,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런 풀무불 쯤은 문제없이 우리를 구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 우리는 신앙 앞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풀무불에 타 죽게 내버려둘지라도 우리는 우상 숭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믿고 맡기는 것이지 어떤 조건을 하나님께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는 다면 어떤 조건을 붙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병고쳐 주지 않으면 안 믿겠습니다", "문제 해결 안 해주시면 교회 안 다니겠습니다", "언제까지 기도 응답 안해 주시면 십일조 안하겠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무서운 풀무불에서 문제없이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지마는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 즉 풀무에 타 죽어도 신앙의 지조는 굽히지 않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통을 앞에 놓고 밤새도록 피땀을 흘려 가며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옵소서"하고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마지막에는 "그러나 내원대로 되게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고 하나님의 뜻에 맡겼습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의 뜻대로 되어지이다"라고 결론 내려야지 다른 조건을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 청년은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한뒤 풀무불에 들어갔지만 이름을 집어넣던 사람들은 타 죽었어도 이들은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했고 고의 빛도 면하지 않고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탄 것은 그들을 결박했던 밧줄뿐입니다.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의 신앙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일사각오의 신앙은 물론 그들이 구출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난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창조주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금방 죽을 것 같고 다 망한 것 같지만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의 신앙만 가지면 못이길 시험이 없습니다.
2. '그가 나를 죽이실 찌라도'의 신앙 욥은 당대 의인이었지만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이 다 없어 졌고 10자녀가 대풍에 집이 무너져 다 죽어 버렸고, 자기 몸에는 악창이 나서 피 고름이 흐르다 못해 구더기가 들끓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믿어 봐야 소용없구나 다 때려치우자" 혹은 "의롭게 살아봐도 소용없구나 실컷 죄만 짓자" 그러지 않았습니다. 도리에 머리털을 밀고 엎드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수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 실 자니이다"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더 훌륭한 것은 욥기 13장 15절이 우리말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지만 15절란 아래 각주를 보거나 다른 말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겠노라(Though He slay me, yet will I trust Him)"고 했습니다. 재산 다 불타고, 도적 맞아 없어지고 10자녀가 몽땅 깔려 죽고 자기 몸에 문둥병 같은 악창이 나서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는 그 지경에서라도 "그가 나를 죽이실 찌라도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조건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완전한 신앙입니다. 어떤 이해 할 수 없는 고통과 실패와 시련이 와도 절대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결국 욥은 병이 낫고 그전 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더 예쁘고 잘생긴 10자녀를 받았습니다. 죽은 10자녀는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갔기 때문에 10남매만 받았어도 갑절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환경이나 고난 속에서도 조건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하는 믿음을 가져야 온전한 신앙입니다. 우리 인간편에서 조건을 붙일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 내 기도에 이렇게 응답해 주시면 이렇게 헌신하겠습니다"하고 서원 기도 같은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처사에 원망이나 불평이나 조건을 붙여서 불 신앙적인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조급하게 굴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으로 조급히 생각하고 행동해선 안됩니다. 욥처럼 그 극심한 고통 중에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을 안해 주신다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 찌라도 나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다가 천당가겠습니다" 하는 믿음을 가져야 시험을 이길 수 있고,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해 하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느긋해야 마귀로 이깁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신앙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꼭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꼭 죽어야 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살면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니 좋고 죽으면 늘 사모하던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되니 그것도 좋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어떤 조건을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아무리 믿고 간절히 기도해도 우리의 생각대로만 응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전에도 말씀 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방법이 세 가지 있습니다.
1 즉각 응답해 주시는 '오냐(Yes)'2 '기다려라(wait)'즉 적합할 때에 가서 응답해 주시는 것
3 '안된다(No)'가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조급하게 당장 주셨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더 큰 신앙의 타락을 가져올 수 있거나 교만해지거나 죄지을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안주십니다. 다서살짜리 아이가 시퍼런 칼을 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위험하기 때문에 안줍니다. 그 대신에 사탕이나 과자를 줍니다. 뭐든지 내 계획과 생각의 틀에 맞추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는 조건을 붙일 수가 없고 조급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달콤한 복을 주실 때도 있고 때로는 쓰디쓴 고통의 시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때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달아도 삼키고 써도 삼켜야 됩니다. 지나고 보면 다 내 영혼의 건강에 유익한 것입니다. 이번에 MBC 2580이 터졌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제 목회 생명은 죽은 거이나 다름없고 교회는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통쾌하게 승리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렸습니다. 제 마음속으로 중심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시험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살려주면 복음 전하여 영혼 구원하고 죽으라면 괴롬 많은 세상 하직하고 늘 사모하던 천국에 간다 하는 신앙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란교회가 내 교회입니까 주님의 교회이지, 이 많은 성도가 주님의 양떼이지 내 양떼입니까 다 주님께 맡깁니다. 성전 건축에 그렇게 사탄의 방해가 많지만 하나님의 집을 짓지 내 집을 짓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할 때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집니다. 욥은 "죽일 테면 죽여 주십시오 그대로 나는 하나님만 신뢰하겠습니다."하는 조건을 붙이지 않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3. '해로울 찌라도'의 신앙 시편 15편에 보면 주의 장막에 유할 자의 자격을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자의 삶의 자세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 중에 15장 4절에 보면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아니하며"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늘 진실해서 누가, 사람들이 몰라도 내 마음으로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어떤 손해가 있어도 이행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하여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고 첩 브닌난의 멸시와 천대를 받을 때 불타는 소원으로 기도하기를 "아들 하나만 주시면 젖떨어지자마자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하고 서원했는데 지키기 어려운 그 시험을 이기고 실천했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영적 큰 부흥 운동을 일으키고 멸망 직전에 있던 나라를 구원했습니다. 민수기 30장 2절에 "사람이 여호와께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 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신명기 23장 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기로 작정했으면 병낫기 위해 믿기 시작했어도 병안낫고 죽어도 믿고 천당가겠습니다라고 해야지 실제로 병도 고쳐주십시오. 고쳐 주면 믿고 않고 쳐주면 그만 두겠습니다 하는 조건을 걸면 신앙이 제대로 안된 것입니다. 십일조 하기로 작정했으면 빛을 져도 하고 굶어도 하고 등록금이 없어도 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마음놓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언젠가는 축복이 오지마는 "해가 올지라도, 실패가 올지라도 나는 죽어도 하겠습니다." 할 때에 그 무조건의 신앙을 보시고 마음놓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오늘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의 신앙, '그가 나를 죽이실 찌라도'의 신앙, '해로울지라도'의 신앙을 가지면 반드시 사탄의 시험을 이길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보장해 주시고 엄청난 축복의 사람도 될 것입니다.
1.'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의 믿음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벧느고는 신앙의 최고봉에 우뚝선 사람들입니다. 바벨론 나라의 느브갇네살왕이 전에 큰 금신상의 꿈을 꾼 것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종교의 힘을 빌리어서 자기의 권력을 유지할 계책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큰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각양 악기를 불어 댈 때에 모든 백성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영을 내렸습니다. 만약 이 법령을 어기면 누구를 막론하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넣어서 태워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에 신앙이 독실한 이 세 청년은 성경 계명 중에 첫째,둘째 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며,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해서 그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젊은이들을 시기하던 무리들이 이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심히 노하고 분했지만 비록 포로들이지만 이 들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세 청년을 불러다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내가 만든 우상 앞에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하고 협박하며 회유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세 청년은 대답하기를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도 기가 막힌 위대한 신앙의 표현이지만 다음 말이 더 위대한 신앙의 말입니다. "그리하니 하실 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절대 신앙의 말을 한 것입니다.
즉,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런 풀무불 쯤은 문제없이 우리를 구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 우리는 신앙 앞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풀무불에 타 죽게 내버려둘지라도 우리는 우상 숭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믿고 맡기는 것이지 어떤 조건을 하나님께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는 다면 어떤 조건을 붙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병고쳐 주지 않으면 안 믿겠습니다", "문제 해결 안 해주시면 교회 안 다니겠습니다", "언제까지 기도 응답 안해 주시면 십일조 안하겠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무서운 풀무불에서 문제없이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지마는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 즉 풀무에 타 죽어도 신앙의 지조는 굽히지 않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통을 앞에 놓고 밤새도록 피땀을 흘려 가며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옵소서"하고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마지막에는 "그러나 내원대로 되게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고 하나님의 뜻에 맡겼습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의 뜻대로 되어지이다"라고 결론 내려야지 다른 조건을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 청년은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한뒤 풀무불에 들어갔지만 이름을 집어넣던 사람들은 타 죽었어도 이들은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했고 고의 빛도 면하지 않고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탄 것은 그들을 결박했던 밧줄뿐입니다.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의 신앙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일사각오의 신앙은 물론 그들이 구출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난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창조주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금방 죽을 것 같고 다 망한 것 같지만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의 신앙만 가지면 못이길 시험이 없습니다.
2. '그가 나를 죽이실 찌라도'의 신앙 욥은 당대 의인이었지만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이 다 없어 졌고 10자녀가 대풍에 집이 무너져 다 죽어 버렸고, 자기 몸에는 악창이 나서 피 고름이 흐르다 못해 구더기가 들끓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믿어 봐야 소용없구나 다 때려치우자" 혹은 "의롭게 살아봐도 소용없구나 실컷 죄만 짓자" 그러지 않았습니다. 도리에 머리털을 밀고 엎드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수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 실 자니이다"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더 훌륭한 것은 욥기 13장 15절이 우리말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지만 15절란 아래 각주를 보거나 다른 말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겠노라(Though He slay me, yet will I trust Him)"고 했습니다. 재산 다 불타고, 도적 맞아 없어지고 10자녀가 몽땅 깔려 죽고 자기 몸에 문둥병 같은 악창이 나서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는 그 지경에서라도 "그가 나를 죽이실 찌라도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겠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조건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완전한 신앙입니다. 어떤 이해 할 수 없는 고통과 실패와 시련이 와도 절대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결국 욥은 병이 낫고 그전 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더 예쁘고 잘생긴 10자녀를 받았습니다. 죽은 10자녀는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갔기 때문에 10남매만 받았어도 갑절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환경이나 고난 속에서도 조건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하는 믿음을 가져야 온전한 신앙입니다. 우리 인간편에서 조건을 붙일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 내 기도에 이렇게 응답해 주시면 이렇게 헌신하겠습니다"하고 서원 기도 같은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처사에 원망이나 불평이나 조건을 붙여서 불 신앙적인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조급하게 굴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으로 조급히 생각하고 행동해선 안됩니다. 욥처럼 그 극심한 고통 중에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을 안해 주신다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 찌라도 나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다가 천당가겠습니다" 하는 믿음을 가져야 시험을 이길 수 있고,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해 하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느긋해야 마귀로 이깁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신앙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꼭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꼭 죽어야 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살면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니 좋고 죽으면 늘 사모하던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되니 그것도 좋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어떤 조건을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아무리 믿고 간절히 기도해도 우리의 생각대로만 응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전에도 말씀 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방법이 세 가지 있습니다.
1 즉각 응답해 주시는 '오냐(Yes)'2 '기다려라(wait)'즉 적합할 때에 가서 응답해 주시는 것
3 '안된다(No)'가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조급하게 당장 주셨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더 큰 신앙의 타락을 가져올 수 있거나 교만해지거나 죄지을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안주십니다. 다서살짜리 아이가 시퍼런 칼을 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위험하기 때문에 안줍니다. 그 대신에 사탕이나 과자를 줍니다. 뭐든지 내 계획과 생각의 틀에 맞추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는 조건을 붙일 수가 없고 조급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달콤한 복을 주실 때도 있고 때로는 쓰디쓴 고통의 시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때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달아도 삼키고 써도 삼켜야 됩니다. 지나고 보면 다 내 영혼의 건강에 유익한 것입니다. 이번에 MBC 2580이 터졌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제 목회 생명은 죽은 거이나 다름없고 교회는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통쾌하게 승리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렸습니다. 제 마음속으로 중심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니까 마음이 편안하고 시험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살려주면 복음 전하여 영혼 구원하고 죽으라면 괴롬 많은 세상 하직하고 늘 사모하던 천국에 간다 하는 신앙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란교회가 내 교회입니까 주님의 교회이지, 이 많은 성도가 주님의 양떼이지 내 양떼입니까 다 주님께 맡깁니다. 성전 건축에 그렇게 사탄의 방해가 많지만 하나님의 집을 짓지 내 집을 짓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할 때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집니다. 욥은 "죽일 테면 죽여 주십시오 그대로 나는 하나님만 신뢰하겠습니다."하는 조건을 붙이지 않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3. '해로울 찌라도'의 신앙 시편 15편에 보면 주의 장막에 유할 자의 자격을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자의 삶의 자세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 중에 15장 4절에 보면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아니하며"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늘 진실해서 누가, 사람들이 몰라도 내 마음으로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어떤 손해가 있어도 이행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하여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고 첩 브닌난의 멸시와 천대를 받을 때 불타는 소원으로 기도하기를 "아들 하나만 주시면 젖떨어지자마자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하고 서원했는데 지키기 어려운 그 시험을 이기고 실천했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영적 큰 부흥 운동을 일으키고 멸망 직전에 있던 나라를 구원했습니다. 민수기 30장 2절에 "사람이 여호와께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 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신명기 23장 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기로 작정했으면 병낫기 위해 믿기 시작했어도 병안낫고 죽어도 믿고 천당가겠습니다라고 해야지 실제로 병도 고쳐주십시오. 고쳐 주면 믿고 않고 쳐주면 그만 두겠습니다 하는 조건을 걸면 신앙이 제대로 안된 것입니다. 십일조 하기로 작정했으면 빛을 져도 하고 굶어도 하고 등록금이 없어도 한다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마음놓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언젠가는 축복이 오지마는 "해가 올지라도, 실패가 올지라도 나는 죽어도 하겠습니다." 할 때에 그 무조건의 신앙을 보시고 마음놓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오늘 '그리 아니 하실 찌라도'의 신앙, '그가 나를 죽이실 찌라도'의 신앙, '해로울지라도'의 신앙을 가지면 반드시 사탄의 시험을 이길 것이고 반드시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보장해 주시고 엄청난 축복의 사람도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