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됨의 지혜 (마24:45-51)
본문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 저는 할아버지의 교훈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장로님이었는데 우리 한국 교회사의 맨 처음에 예수 믿을 때는 담배 피우면서 예수 믿었거든요. 그러다가 너무 담배를 많이 피워서 예배보는데 기침도 많이 나고 시끄러워서 담배를 중간에 금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담배 피울 때 좌우간 예수 믿으셨어요. 그래서 왜 흔히 우리가 말하기를 호랑이 담배 피울 때 뭐 그런 말하잖아요. 우리 할아버지보고 언제 예수 믿었냐고 누가 물으면 담배 피울 때 믿었지 그러더라고요. 아무튼 저희 할아버지에게 얘기를 해 달라고 늘 조르니까 그저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늘 그렀습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재주가 많아서 말씀하는 줄 알았더니 좀 커서 보니까 책에 다 있더라고요. 그게요. 책보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아주 덕망이 높은 부자였는데 환갑이 돼서 잔치를 했다는 겁니다. 옛날은 이런 잔치를 하면 한 일주일 동안 하거든요. 마당에다가 천막을 쳐 놓고, 그리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대접하면서 굉장한 잔치를 하게 되는데, 환갑잔치 바로 전날 저녁에 주인은 종들을 다 불러놓고 모든 종들에게 짚 한 단씩을 주고 "이 한 단의 짚을 가지고 오늘 밤새 여기 앉아서 새끼를 꽈라. 새끼를 꼬는데 가장 가늘게 길게, 가늘게 길게 꽈라." 이렇게 얘기하고 나가 버렸습니다. 종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이 영감이 우리를 부려먹다가 환갑 잔치하는 날까지 이렇게 우리를 부려먹다니, 그것도 이걸 가늘게 꼬려면 밤새 꽈야할 모양인데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는 불만에 있어서 굵게굵게 그냥 꽈서 몇 미터 되게 꽈 가지고 내던지고 잠을 자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종은 "그런게 아니지. 꼬라면 꼬는 거지 무슨 말이 많아. 그래서 종이 새끼 꼬는 거 당연한 것이지." 그래서, 주인의 명령대로 가늘게 가늘게, 길게 길게 꼬았단 말입니다. 아침에 주인이 나타나 가지고 그 종들을 다 불러서 "이리 오너라." 그리고, 광 문을 열고, 창고 문을 열고 "자 여기 있는 엽전, (
그런데 옛날의 엽전, 구멍 뚫린 돈 잔득 쌓아 놨는데) 마음대로 끼워 가지고 네가 꿸 수 있는데 까지 다 꿰어 가지고 가라. 오늘부터 너희들은 자유다." 그랬대요. 아 이거 굵게 꼰 사람들은 거기다가 몇 개 이렇게 꽂아 놓고 가슴을 치게 됐고, 이 가늘게 꼰 사람들은 한나절 꽂는 겁니다. 바리바리 싣고 집을 나가서 처자식 다 얻고 잘 살다 죽었답니다. 그런 얘기예요.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많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세대를 세 가지로 규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첫째가 충격시대입니다. 우리는 늘 충격을 많이 받습니다. 이 충격에 면역이 됐지요. 깜짝 놀랄만한 일들을 계속 당합니다. 역사상 처음, 몇 백년만의 한 번 뭐 그리지요. 역사의 Context를 거스르는 그러한 사건들이 많아요. 게다가 불확실 시대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홍수다, 지진이다, 재난이다, 전쟁이다, 학살이다 뭐 지금 우리가 멀리 있어서 뭘 모르고 있지마는 인도에서 너무 날이 더워 가지고
2,500명이 죽었다면서요.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더워서 더위에 지쳐 수 천명이 죽어갑니다. 뭐 그런가 하면 큰 도시 몇 개가 그대로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서 몇 만명이 다 없어지고 말았다는 뭐 그런 시대에 삽니다. 충격적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는 비 이성시대라고 하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책을 지으면서 이름을 'Escape from Reason'이라고 했어요. "이성으로의 도피" 그런 시대다.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에요. 요새 사람들 많이 알아요. 다 알면서도 아는 대로 살지 않아요. 옛날 사람들은 몰라서 그랬지만 요새는 알고도 뻔한 길을 가요. 요컨대, 담배가 나쁘다는 거 알면서 담배 피우고, 술 먹는다는 거 술 먹으면 패가 망신. 자기도 알지요. 그래도 먹고요, 하는 짓들이 전부가 참 알면서 이성의 지시와 이성의 가르치는 바를 거스려 사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 너무나 잘 알아요. 그러나 그렇게 살아요. 이것이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알기도 하고 말도 잘해요.
그런데 실천하지를 않아요. 합리적으로 살지 않고 이성의 지시에 따라서 논리적으로 바르게 살지를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해서 밝은 이성을 주었는데 그 밝은 이성마저 흐리게 만들어요. 그것이 술 먹는 것이요, 그것이 도박이요, 그것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마약이요, 이 모든 일들이 다 비 이성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불신시대입니다. 참 그 어느 때 보다도 이제는 서로 못 믿는 세상이 됐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로 오늘 우리가 당하는 게 부도 시대 아닙니까 신용이 부도 났고, 수표가 부도 났고, 경제가 부도 났고, 마지막 진실의 보장이라고 하는 은행도 못 믿어요. 요새 보니까 믿지 말라고 그러드만요. 8월 이후에는 믿지 말라고 했어요. 이게 뭘 말하는 겁니까 불신시대요, 믿을 수 없는 시대요. 특별히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어요. 거기에 무슨 안정이 있고, 무슨 평화가 있고, 무슨 능력이 있고, 무슨 축복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현실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지식이다, 경험이다, 자본이다, 노력이다, 뭐 이건 옛날 얘기예요.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의 문제는 바로 신뢰성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한 이 경제위기란 사건도 신뢰성 구축을 위한 수단입니다. 신뢰성이 무너졌기 때문에 다시 세우라 그거예요. 그것이 오만 명령이 아닙니까!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됐으니까 어디서부터라도 다시 시작을 해서 믿는 사회가 돼야 경제가 산다 그거 아니겠습니까. '프란시스 후꼬야마' 라고 하는 분이 쓴 책에 '트러스트'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적어도 지성인들은 한 번씩은 꼭 봐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구나 사업하시는 분들은.
그런데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은 신뢰라고 하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경제적 가치라는 거예요. 경제가치, 기본이 신뢰요. 또 이것이 사회자본이라는 것입니다. 무형자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신뢰라고 하는 자본이요, 밑천이에요. 신뢰라고 하는 밑천이 떨어지면 다 끝난 거예요. 돈 떨어져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밑천 떨어지면 끝나는데 그게 바로 신뢰란 말이에요. 못 믿으면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 학자의 책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신뢰를 문화적 산물로 보았어요. 그래서 문화 배경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문화에 따라서 이런 문화에선 이런 문화, 이런 문화 구조에서 이런 신뢰가 있고 없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실상 신뢰의 문제는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없이는 그 어느 때라도 믿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믿음을 말한다면 그 신뢰는 수단입니다. 수단으로써의 신뢰라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공산주의 사회가 왜 무너졌습니까 더구나 동구라파를 가 보면은 자 그 좋은 문화적 배경, 그 예술, 그 광활한 대지. 뭐 자본으로부터 기술로부터 달나라를 먼저 올라갔지요, 원자탄은, 잠수함에다 뭘 못 가진 게 있습니까! 다 가졌어요. 넘치게 가졌는데 망했어요. 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신 때문입니다. KGB가 무엇입니까 못 믿기 때문에. 그래서 숙청을 하는 거예요. 못 믿으니까 숙청, 숙청. 일년에 백만 명을 숙청을 해도 끝도 없어요. 그래도 안돼는 거예요. 길거리다 세워 놓고 사람을 총살을 해도 신뢰성은 그로써 회복할 수는 없었어요. 한 사람에게 명령을 하고 그 뒤에 감시자를 세우고, 또 그 뒤에 감시자를 세우고, 이게 바로 KGB가 아닙니까! 계속 감시해 봐도 믿을 수가 없어요. 결국은 '신뢰성이 무너짐으로써 사회가 나라가 경제가 다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이 결론입니다. 여러분, 내가 남을 믿을 수 없을 때에 불안에 떨게 됩니다. 저가 나를 믿지 않는다는 걸 알 때에 내 모든 능력은 다 소실됩니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할 수도 없습니다. 모두가 나를 믿어 준다 할 때에 일 할 수 있는 것이지 믿어 주지 않는다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어느 사이에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강한 문제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멀리 가면서 그 종들을 집에 두고 갔다.
그런데 이렇게 주인이 없는 동안에 그 종들 가운데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자가 있었다" 그랬어요. 충성되고 지혜로운 자! 한번 짚고 넘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똑똑하다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은 대체로 남을 믿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노처녀가 많아요. 왜 못 믿으니까. 어느 놈을 믿어! 그러니까 늙어 마땅하지. 그래 될 수밖에. 안 믿으니까요. 그 안 믿는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당신 자신의 병이요. 이건 구제 불능한 병입니다. 안 믿는 거예요. 누구도 못 믿겠다는 거예요. 똑똑하지요. 그러면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인생 다 가도 믿을 사람 없어요.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구를 믿어요. 바로 이것, 의심은 병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 이예요. 그러니까 '지혜롭다'는 말과 '충성되다'는 말을 하나의 뜻으로 연결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여기에 진리가 있는 겁니다. 충성됨은 곧 지혜요. 충성된 자, 진실한 자가 지혜로운 자라는걸 잊지 말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흔히 정직하고 충성된 사람은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에덴동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원죄적 성격이 있는 죄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나무 열매를 먹으면 죽으리라" 사탄은 말합니다. 뱀은 말하기를 "안 죽는다." 그래요. 의심합니다. 여기서 망조가 든 게 아닙니까 결국은 우리 마음속의 의심. 참으로 무서운 겁니다. 이것이 바로 병입니다. 지혜 있는 체하나 그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바로 불신은 어리석음이란 말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충성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말해줍니다. 먼저는 "주인이 없을 때" 그런 얘기입니다. 주인은 멀리 가서 안 계십니다. 언제 오실는지도 모릅니다. 요새 말마따나 무슨 전화가 오는 것도 아네요, 팩스가 오는 것도 아네요. 주인은 멀리 갔어요. 이제 이 종이 충성 되단 말이에요. 그 말은 주인의 감시가 없을 때, 계시던 안 계시던, 보던 안 보던… 이게 바로 정직이요, 진실입니다. 정직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진실하면은 조건을 묻지 않습니다. 내 진실은 내가 지킬 따름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에 어느 잡지에서 본 얘기입니다만은 그런 일이 있었더래요. 미국사람들은 넓은 벌판에 차를 타고 가다가 이 신호등이 있어요. 십자거리에 신호등이 있으면 붉은 신호가 딱 나오면 사람이 보던 안 보던 차가 있던 없던 붉은 신호 앞에 섰다가 푸른 신호가 나오면 갑니다.
그런데 구소련에서 살던 사람들 가운데에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망명한 사람들은 미국 와서 사는 동안에 아주 통계를 내보면 틀림없이 그렇대요. 붉은 신호등 앞에 딱 서서 휘휘 둘러보고 아무도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백 사람같이 다 이렇게 한답니다. 이게 바로 공산주의 치하에서 그가 받은 타성이라는 것을 자기도 모르고 있어요. 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적당 적당히 살아야돼요. 거짓말은 해야 되는 거예요. 없이 살아갈 수 없어요. 그렇게 그렇게. 이게 체질이 되는 거예요.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여러분, 밖에 나가서 이제 신호등 앞에 딱 서 보세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푸른 신호 나오기 전에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난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일찍 죽을 거다.' 저렇게 서두르니까. 신호 바뀔 때까지 서 있으면 뒤에서 '빵빵' 거려요. 빨리 가라고. 이게 바로 우리 수준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신뢰성 수준입니다. 우리 진실의 정도란 말이에요. 남이 보건 안 보건 무슨 상관이 있어요. 딱지를 떼고 안 떼고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난 나대로 진실한 것이에요. 왜 내 양심이요, 자존심이니까. 이건 기본적인 것이지 수단이 아니에요. 누가 보고 안 보고,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렇게 저속한 짓들을 많이 하니까 마음이 쫄아 들어서 비겁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정정당당하게 살 것이지요. 왜 그렇게 너만 알고 나만 알아야 되는 일이 많아요. 왜 이렇게 숨겨야 될 말이 많이 많은 거예요. 왜 그렇게 비밀이 많습니까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주인이 있던 없던 나는 주인의 종이요. 내가 해야할 진실과 충성은 내가 할 뿐이요. 보던 안 보던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정직함은 하나님 앞에 있을 뿐이요, 사람의 눈치는 볼 필요가 없어요. 이것이 바로 정직의 기본이요. 또 뿐만 아니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됩니다. 이 정직함의 보상이 뭡니까 내가 진실하면 그 다음에 어떤 축복이 오는 겁니까 그걸 물을 필요가 없어요. 난 나대로 정직할 뿐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싸전트라고 하는 목사님이 아직도 미국의 노예제도가 있을 때 어떤 날 노예시장을 지나가다 보니까 예쁘게 생긴 소녀 하나가 지금 그 악한 사람에 의해서 붙들려 와 가지고 지금 노예시장에서 팔려 갈려고 하는 거예요. 지금 경매하고 있는 중이요. "얼마요, 얼마요"하고. 이걸 보고 너무 불쌍해서 가까이 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 놈이 너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너무 못되게 놀아서 주인이 갖다가 파는가 보다 생각을 하고 가까이 가서 말하기를 "얘야, 내가 너를 사 줄께. 저 악한 주인으로부터 내가 너를 사 줄 테니까 그러면 네가 정직하게 살겠냐"하고 물었더니 이 소년이 방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입니다.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사 주던 말던 나는 정직할 것입니다." 이 말에 목사님이 몹시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자유로워지던 자유롭지 못하던 주인이 악하던 선하던 관계가 없는 거예요. 나는 정직할 뿐이요. 나는 충성될 뿐이요. 이것이 충성의 기본이요.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어요. 아무 조건도 없고 보상 바라는 마음 없이 정직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요. 내가 정직하면 무엇이 주어지나. 그 다음 어떻게 잘 되나, 못되나 왜, 그것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요 정직 자체가 너무나도 크고 중요한데 말이에요. 또한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사람의 진실은 생산적인 것이었어요. 능률적이고 경영학적이었어요. 자기가 정직하게 충성되게 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양식을 주고 함께 일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이게 파급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정직할 때 다른 사람도 충성될 수가 있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다 부정직하게 되면 나도 흔들리기가 쉽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착한 사람은 자기가 정직할 뿐 만 아니라 주변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일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어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양식을 주고 일을 시켰어요. 자기도 하고 남도 하고. 이것이 진실함이에요. 그뿐 아니라 좀더 나아가서는 이 사람은 아주 부지런했습니다. 특별히 주인이 언제 오시느냐 하는데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악한 사람들은 주인이 오실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해서 술 먹고 방탕하고 놀고 때리고 이렇게 살았거든. 그러나 오늘 착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주인이 언제 오느냐 상관이 없어요. 아침에 오면 어떻고 저녁에 오면 어때요 안 오시면 어때요. 난 나대로 진실할 뿐이요. 이것이 충성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공부를 가르쳐 보아도 공부 잘하는 학생은 시험 보는데 대해서 신경을 안 써요. 그저 공부 열심히 해요.
그런데 시원치 않은 학생은 꼭 물어봐요. "시험 언제 보나요" 그거 신경 쓰고요, 또 하나있어요. 어떤 사람은 "시험문제 어떻게 나나요" 그건 알아서 뭐해 그건 내 권한이지. 이런데 눈치 작전을 하고 신경을 쓰는 거 이거 기회주의자거든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살 수 없어요 남이 보던 말던, 듣던 말던, 보상이야 있건 없건 언제 예수님이 오시던, 언제 죽던 살던 상관없어요. 난 나대로 충성할 뿐이요. 이것이 진실이에요. 우리는 너무 정직함마저 사업적이었어요. 그런고로 이 어려움을 겪는 거예요.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충성과 정직함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신뢰성을 회복해야 됩니다. 문제는 신뢰요. 여러분 얼마나 자신을 믿고 있습니까 얼마나 아내를 믿을 수 있고 남편을 믿을 수 있습니까 얼마나 자식을 믿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저는 이런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한학기 공부할 돈을 주었는데 얘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 가지고 이것 가지고 포커 해 가지고 돈을 다 없앴어요. 하숙집에서도 쫓겨나 가지고 공원 벤치에서 밤을 새는 거예요. 그때 아버지를 만났어요. 얘는 벌벌 떨면서 울고 그랬지만은 아버지는 그에게 제가 보는데서 돈 이만 불을 주는 것을 봤습니다. "이거 일년 공부할 거다" 모든 사람이 말렸어요. 그 애는 돈 관리 할 능력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조금씩 조금씩 주어야겠습니다. "아니, 나는 내 아들을 믿습니다. 언제라도 돈은 네가 관리해야 된다." 이만 불 딱 줘버렸어요. 그 후로부터 얼마나 그 아버지에게 감사했는지 다시 부모로 부터 돈을 지원 받지 않고 고학해서 공부하는 걸 봤어요. 믿어야지요. 믿어줘야지요. 언제까지 의심할 거예요. 이러고 어떻게 살아날 수가 있겠어요. 高 신뢰 사회, 高 신뢰성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이것은 문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향한 바른 신앙, 거기에 신뢰가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쓰시는 콜-케이트라고 하는 치약이 있을 겁니다. 그가 콜-케이트라고 하는 사람이 열일곱 살 때 뉴욕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배 안에서 점잖게 생긴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가나뉴욕갑니다.왜 가나성공해 보려고 갑니다.뭘 할건데아직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서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렵니다.자네 할 수 있는 일이 뭔가우리 삼촌댁에서 비누 만드는 공장에서 심부름을 좀 했습니다.그러면 비누 만들면 되겠구만.아 그 기회를 주시면 제가 만들지요.그러면 값을 생각하지 말고 성공과 출세도 생각하지 말고 가장 정직하고 가장 좋은 비누를 만들게.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꼭 십일조를 바치게나."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정말 뉴욕에 들어가서 비누, 치약을 만들어서 오늘 우리가 쓰는 것처럼 콜-케이트 유명한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신용이 자본입니다. 신용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 하나가 더 없습니다. 이것만 가지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재주가 많아서 말씀하는 줄 알았더니 좀 커서 보니까 책에 다 있더라고요. 그게요. 책보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아주 덕망이 높은 부자였는데 환갑이 돼서 잔치를 했다는 겁니다. 옛날은 이런 잔치를 하면 한 일주일 동안 하거든요. 마당에다가 천막을 쳐 놓고, 그리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대접하면서 굉장한 잔치를 하게 되는데, 환갑잔치 바로 전날 저녁에 주인은 종들을 다 불러놓고 모든 종들에게 짚 한 단씩을 주고 "이 한 단의 짚을 가지고 오늘 밤새 여기 앉아서 새끼를 꽈라. 새끼를 꼬는데 가장 가늘게 길게, 가늘게 길게 꽈라." 이렇게 얘기하고 나가 버렸습니다. 종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이 영감이 우리를 부려먹다가 환갑 잔치하는 날까지 이렇게 우리를 부려먹다니, 그것도 이걸 가늘게 꼬려면 밤새 꽈야할 모양인데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는 불만에 있어서 굵게굵게 그냥 꽈서 몇 미터 되게 꽈 가지고 내던지고 잠을 자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종은 "그런게 아니지. 꼬라면 꼬는 거지 무슨 말이 많아. 그래서 종이 새끼 꼬는 거 당연한 것이지." 그래서, 주인의 명령대로 가늘게 가늘게, 길게 길게 꼬았단 말입니다. 아침에 주인이 나타나 가지고 그 종들을 다 불러서 "이리 오너라." 그리고, 광 문을 열고, 창고 문을 열고 "자 여기 있는 엽전, (
그런데 옛날의 엽전, 구멍 뚫린 돈 잔득 쌓아 놨는데) 마음대로 끼워 가지고 네가 꿸 수 있는데 까지 다 꿰어 가지고 가라. 오늘부터 너희들은 자유다." 그랬대요. 아 이거 굵게 꼰 사람들은 거기다가 몇 개 이렇게 꽂아 놓고 가슴을 치게 됐고, 이 가늘게 꼰 사람들은 한나절 꽂는 겁니다. 바리바리 싣고 집을 나가서 처자식 다 얻고 잘 살다 죽었답니다. 그런 얘기예요.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많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세대를 세 가지로 규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첫째가 충격시대입니다. 우리는 늘 충격을 많이 받습니다. 이 충격에 면역이 됐지요. 깜짝 놀랄만한 일들을 계속 당합니다. 역사상 처음, 몇 백년만의 한 번 뭐 그리지요. 역사의 Context를 거스르는 그러한 사건들이 많아요. 게다가 불확실 시대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홍수다, 지진이다, 재난이다, 전쟁이다, 학살이다 뭐 지금 우리가 멀리 있어서 뭘 모르고 있지마는 인도에서 너무 날이 더워 가지고
2,500명이 죽었다면서요.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더워서 더위에 지쳐 수 천명이 죽어갑니다. 뭐 그런가 하면 큰 도시 몇 개가 그대로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서 몇 만명이 다 없어지고 말았다는 뭐 그런 시대에 삽니다. 충격적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는 비 이성시대라고 하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책을 지으면서 이름을 'Escape from Reason'이라고 했어요. "이성으로의 도피" 그런 시대다.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에요. 요새 사람들 많이 알아요. 다 알면서도 아는 대로 살지 않아요. 옛날 사람들은 몰라서 그랬지만 요새는 알고도 뻔한 길을 가요. 요컨대, 담배가 나쁘다는 거 알면서 담배 피우고, 술 먹는다는 거 술 먹으면 패가 망신. 자기도 알지요. 그래도 먹고요, 하는 짓들이 전부가 참 알면서 이성의 지시와 이성의 가르치는 바를 거스려 사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 너무나 잘 알아요. 그러나 그렇게 살아요. 이것이 현대인의 특징입니다. 알기도 하고 말도 잘해요.
그런데 실천하지를 않아요. 합리적으로 살지 않고 이성의 지시에 따라서 논리적으로 바르게 살지를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해서 밝은 이성을 주었는데 그 밝은 이성마저 흐리게 만들어요. 그것이 술 먹는 것이요, 그것이 도박이요, 그것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마약이요, 이 모든 일들이 다 비 이성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불신시대입니다. 참 그 어느 때 보다도 이제는 서로 못 믿는 세상이 됐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로 오늘 우리가 당하는 게 부도 시대 아닙니까 신용이 부도 났고, 수표가 부도 났고, 경제가 부도 났고, 마지막 진실의 보장이라고 하는 은행도 못 믿어요. 요새 보니까 믿지 말라고 그러드만요. 8월 이후에는 믿지 말라고 했어요. 이게 뭘 말하는 겁니까 불신시대요, 믿을 수 없는 시대요. 특별히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어요. 거기에 무슨 안정이 있고, 무슨 평화가 있고, 무슨 능력이 있고, 무슨 축복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현실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지식이다, 경험이다, 자본이다, 노력이다, 뭐 이건 옛날 얘기예요.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의 문제는 바로 신뢰성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한 이 경제위기란 사건도 신뢰성 구축을 위한 수단입니다. 신뢰성이 무너졌기 때문에 다시 세우라 그거예요. 그것이 오만 명령이 아닙니까!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됐으니까 어디서부터라도 다시 시작을 해서 믿는 사회가 돼야 경제가 산다 그거 아니겠습니까. '프란시스 후꼬야마' 라고 하는 분이 쓴 책에 '트러스트'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적어도 지성인들은 한 번씩은 꼭 봐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구나 사업하시는 분들은.
그런데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은 신뢰라고 하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경제적 가치라는 거예요. 경제가치, 기본이 신뢰요. 또 이것이 사회자본이라는 것입니다. 무형자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신뢰라고 하는 자본이요, 밑천이에요. 신뢰라고 하는 밑천이 떨어지면 다 끝난 거예요. 돈 떨어져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밑천 떨어지면 끝나는데 그게 바로 신뢰란 말이에요. 못 믿으면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 학자의 책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신뢰를 문화적 산물로 보았어요. 그래서 문화 배경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문화에 따라서 이런 문화에선 이런 문화, 이런 문화 구조에서 이런 신뢰가 있고 없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실상 신뢰의 문제는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없이는 그 어느 때라도 믿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에 믿음을 말한다면 그 신뢰는 수단입니다. 수단으로써의 신뢰라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공산주의 사회가 왜 무너졌습니까 더구나 동구라파를 가 보면은 자 그 좋은 문화적 배경, 그 예술, 그 광활한 대지. 뭐 자본으로부터 기술로부터 달나라를 먼저 올라갔지요, 원자탄은, 잠수함에다 뭘 못 가진 게 있습니까! 다 가졌어요. 넘치게 가졌는데 망했어요. 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불신 때문입니다. KGB가 무엇입니까 못 믿기 때문에. 그래서 숙청을 하는 거예요. 못 믿으니까 숙청, 숙청. 일년에 백만 명을 숙청을 해도 끝도 없어요. 그래도 안돼는 거예요. 길거리다 세워 놓고 사람을 총살을 해도 신뢰성은 그로써 회복할 수는 없었어요. 한 사람에게 명령을 하고 그 뒤에 감시자를 세우고, 또 그 뒤에 감시자를 세우고, 이게 바로 KGB가 아닙니까! 계속 감시해 봐도 믿을 수가 없어요. 결국은 '신뢰성이 무너짐으로써 사회가 나라가 경제가 다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이 결론입니다. 여러분, 내가 남을 믿을 수 없을 때에 불안에 떨게 됩니다. 저가 나를 믿지 않는다는 걸 알 때에 내 모든 능력은 다 소실됩니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할 수도 없습니다. 모두가 나를 믿어 준다 할 때에 일 할 수 있는 것이지 믿어 주지 않는다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어느 사이에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강한 문제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멀리 가면서 그 종들을 집에 두고 갔다.
그런데 이렇게 주인이 없는 동안에 그 종들 가운데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자가 있었다" 그랬어요. 충성되고 지혜로운 자! 한번 짚고 넘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똑똑하다는 사람은 누구냐 하면은 대체로 남을 믿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노처녀가 많아요. 왜 못 믿으니까. 어느 놈을 믿어! 그러니까 늙어 마땅하지. 그래 될 수밖에. 안 믿으니까요. 그 안 믿는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당신 자신의 병이요. 이건 구제 불능한 병입니다. 안 믿는 거예요. 누구도 못 믿겠다는 거예요. 똑똑하지요. 그러면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인생 다 가도 믿을 사람 없어요.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구를 믿어요. 바로 이것, 의심은 병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 이예요. 그러니까 '지혜롭다'는 말과 '충성되다'는 말을 하나의 뜻으로 연결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여기에 진리가 있는 겁니다. 충성됨은 곧 지혜요. 충성된 자, 진실한 자가 지혜로운 자라는걸 잊지 말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흔히 정직하고 충성된 사람은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에덴동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원죄적 성격이 있는 죄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나무 열매를 먹으면 죽으리라" 사탄은 말합니다. 뱀은 말하기를 "안 죽는다." 그래요. 의심합니다. 여기서 망조가 든 게 아닙니까 결국은 우리 마음속의 의심. 참으로 무서운 겁니다. 이것이 바로 병입니다. 지혜 있는 체하나 그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바로 불신은 어리석음이란 말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충성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말해줍니다. 먼저는 "주인이 없을 때" 그런 얘기입니다. 주인은 멀리 가서 안 계십니다. 언제 오실는지도 모릅니다. 요새 말마따나 무슨 전화가 오는 것도 아네요, 팩스가 오는 것도 아네요. 주인은 멀리 갔어요. 이제 이 종이 충성 되단 말이에요. 그 말은 주인의 감시가 없을 때, 계시던 안 계시던, 보던 안 보던… 이게 바로 정직이요, 진실입니다. 정직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진실하면은 조건을 묻지 않습니다. 내 진실은 내가 지킬 따름입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에 어느 잡지에서 본 얘기입니다만은 그런 일이 있었더래요. 미국사람들은 넓은 벌판에 차를 타고 가다가 이 신호등이 있어요. 십자거리에 신호등이 있으면 붉은 신호가 딱 나오면 사람이 보던 안 보던 차가 있던 없던 붉은 신호 앞에 섰다가 푸른 신호가 나오면 갑니다.
그런데 구소련에서 살던 사람들 가운데에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망명한 사람들은 미국 와서 사는 동안에 아주 통계를 내보면 틀림없이 그렇대요. 붉은 신호등 앞에 딱 서서 휘휘 둘러보고 아무도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백 사람같이 다 이렇게 한답니다. 이게 바로 공산주의 치하에서 그가 받은 타성이라는 것을 자기도 모르고 있어요. 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적당 적당히 살아야돼요. 거짓말은 해야 되는 거예요. 없이 살아갈 수 없어요. 그렇게 그렇게. 이게 체질이 되는 거예요.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도 여러분, 밖에 나가서 이제 신호등 앞에 딱 서 보세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푸른 신호 나오기 전에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난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일찍 죽을 거다.' 저렇게 서두르니까. 신호 바뀔 때까지 서 있으면 뒤에서 '빵빵' 거려요. 빨리 가라고. 이게 바로 우리 수준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신뢰성 수준입니다. 우리 진실의 정도란 말이에요. 남이 보건 안 보건 무슨 상관이 있어요. 딱지를 떼고 안 떼고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난 나대로 진실한 것이에요. 왜 내 양심이요, 자존심이니까. 이건 기본적인 것이지 수단이 아니에요. 누가 보고 안 보고,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렇게 저속한 짓들을 많이 하니까 마음이 쫄아 들어서 비겁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정정당당하게 살 것이지요. 왜 그렇게 너만 알고 나만 알아야 되는 일이 많아요. 왜 이렇게 숨겨야 될 말이 많이 많은 거예요. 왜 그렇게 비밀이 많습니까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주인이 있던 없던 나는 주인의 종이요. 내가 해야할 진실과 충성은 내가 할 뿐이요. 보던 안 보던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정직함은 하나님 앞에 있을 뿐이요, 사람의 눈치는 볼 필요가 없어요. 이것이 바로 정직의 기본이요. 또 뿐만 아니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됩니다. 이 정직함의 보상이 뭡니까 내가 진실하면 그 다음에 어떤 축복이 오는 겁니까 그걸 물을 필요가 없어요. 난 나대로 정직할 뿐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싸전트라고 하는 목사님이 아직도 미국의 노예제도가 있을 때 어떤 날 노예시장을 지나가다 보니까 예쁘게 생긴 소녀 하나가 지금 그 악한 사람에 의해서 붙들려 와 가지고 지금 노예시장에서 팔려 갈려고 하는 거예요. 지금 경매하고 있는 중이요. "얼마요, 얼마요"하고. 이걸 보고 너무 불쌍해서 가까이 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 놈이 너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너무 못되게 놀아서 주인이 갖다가 파는가 보다 생각을 하고 가까이 가서 말하기를 "얘야, 내가 너를 사 줄께. 저 악한 주인으로부터 내가 너를 사 줄 테니까 그러면 네가 정직하게 살겠냐"하고 물었더니 이 소년이 방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입니다.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사 주던 말던 나는 정직할 것입니다." 이 말에 목사님이 몹시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자유로워지던 자유롭지 못하던 주인이 악하던 선하던 관계가 없는 거예요. 나는 정직할 뿐이요. 나는 충성될 뿐이요. 이것이 충성의 기본이요.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어요. 아무 조건도 없고 보상 바라는 마음 없이 정직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요. 내가 정직하면 무엇이 주어지나. 그 다음 어떻게 잘 되나, 못되나 왜, 그것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요 정직 자체가 너무나도 크고 중요한데 말이에요. 또한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사람의 진실은 생산적인 것이었어요. 능률적이고 경영학적이었어요. 자기가 정직하게 충성되게 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양식을 주고 함께 일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이게 파급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정직할 때 다른 사람도 충성될 수가 있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다 부정직하게 되면 나도 흔들리기가 쉽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착한 사람은 자기가 정직할 뿐 만 아니라 주변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일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어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양식을 주고 일을 시켰어요. 자기도 하고 남도 하고. 이것이 진실함이에요. 그뿐 아니라 좀더 나아가서는 이 사람은 아주 부지런했습니다. 특별히 주인이 언제 오시느냐 하는데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악한 사람들은 주인이 오실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해서 술 먹고 방탕하고 놀고 때리고 이렇게 살았거든. 그러나 오늘 착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주인이 언제 오느냐 상관이 없어요. 아침에 오면 어떻고 저녁에 오면 어때요 안 오시면 어때요. 난 나대로 진실할 뿐이요. 이것이 충성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공부를 가르쳐 보아도 공부 잘하는 학생은 시험 보는데 대해서 신경을 안 써요. 그저 공부 열심히 해요.
그런데 시원치 않은 학생은 꼭 물어봐요. "시험 언제 보나요" 그거 신경 쓰고요, 또 하나있어요. 어떤 사람은 "시험문제 어떻게 나나요" 그건 알아서 뭐해 그건 내 권한이지. 이런데 눈치 작전을 하고 신경을 쓰는 거 이거 기회주의자거든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살 수 없어요 남이 보던 말던, 듣던 말던, 보상이야 있건 없건 언제 예수님이 오시던, 언제 죽던 살던 상관없어요. 난 나대로 충성할 뿐이요. 이것이 진실이에요. 우리는 너무 정직함마저 사업적이었어요. 그런고로 이 어려움을 겪는 거예요.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충성과 정직함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신뢰성을 회복해야 됩니다. 문제는 신뢰요. 여러분 얼마나 자신을 믿고 있습니까 얼마나 아내를 믿을 수 있고 남편을 믿을 수 있습니까 얼마나 자식을 믿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저는 이런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한학기 공부할 돈을 주었는데 얘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 가지고 이것 가지고 포커 해 가지고 돈을 다 없앴어요. 하숙집에서도 쫓겨나 가지고 공원 벤치에서 밤을 새는 거예요. 그때 아버지를 만났어요. 얘는 벌벌 떨면서 울고 그랬지만은 아버지는 그에게 제가 보는데서 돈 이만 불을 주는 것을 봤습니다. "이거 일년 공부할 거다" 모든 사람이 말렸어요. 그 애는 돈 관리 할 능력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조금씩 조금씩 주어야겠습니다. "아니, 나는 내 아들을 믿습니다. 언제라도 돈은 네가 관리해야 된다." 이만 불 딱 줘버렸어요. 그 후로부터 얼마나 그 아버지에게 감사했는지 다시 부모로 부터 돈을 지원 받지 않고 고학해서 공부하는 걸 봤어요. 믿어야지요. 믿어줘야지요. 언제까지 의심할 거예요. 이러고 어떻게 살아날 수가 있겠어요. 高 신뢰 사회, 高 신뢰성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이것은 문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향한 바른 신앙, 거기에 신뢰가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쓰시는 콜-케이트라고 하는 치약이 있을 겁니다. 그가 콜-케이트라고 하는 사람이 열일곱 살 때 뉴욕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배 안에서 점잖게 생긴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가나뉴욕갑니다.왜 가나성공해 보려고 갑니다.뭘 할건데아직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서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렵니다.자네 할 수 있는 일이 뭔가우리 삼촌댁에서 비누 만드는 공장에서 심부름을 좀 했습니다.그러면 비누 만들면 되겠구만.아 그 기회를 주시면 제가 만들지요.그러면 값을 생각하지 말고 성공과 출세도 생각하지 말고 가장 정직하고 가장 좋은 비누를 만들게.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꼭 십일조를 바치게나."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정말 뉴욕에 들어가서 비누, 치약을 만들어서 오늘 우리가 쓰는 것처럼 콜-케이트 유명한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신용이 자본입니다. 신용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 하나가 더 없습니다. 이것만 가지면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