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1-8)
본문
여러분은 농기계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제 농촌에서는 그 어느 집에든지 도끼라고 하는 아주 흔한 농기구가 있습니다. 도끼 날은 쇠로 된 것입니다만은 도끼자루는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끼자루라고 하는 나무는 보통나무로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를 깎아서 만일에 도끼자루를 만들었다면 한 번 내려치면은 다 부러져 나갑니다. 이 도끼자루라고 하는 이 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무 중에 가장 강하고, 튼튼하고, 굳은, 그런 나무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자기 손자를 데리고 "자 우리 오늘은 산에 가서 도끼자루를 좀 찍어보자."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손자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산 중턱에 보니까 그 바위틈에 곧게 자란 좋은 도끼자루 될 만한 참나무가 있습니다. 손자가 말하기를 "저걸 찍어서 도끼자루를 하면 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니다." 그러십니다. 그 힘든 골짜기를 오르고 올라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한 참나무를 보고 "저걸 찍어라"하고 말합니다. "저런 나무는 저 산밑에도 있었는데요. 저 나무 그늘 속에도 있었고, 바위틈에도 있었고, 계속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 높은 곳에 와서 똑같은 저 참나무를 찍으라는 겁니까" 그 때에 할아버지는 말하기를 "비바람을 많이 맞지 아니하고 자란 나무는 아무 소용이 없다. 같은 이름의 참나무이지만은 비바람을 많이 맞고 자란 그 나무라야만 쓸만한 도끼자루가 되느니라." 이것이 옛날 어른들이 손자에게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성공과 성취는 같은 게 아닙니다. 어떤 객관적 이유에서 성공할 수는 있어도, 그가 누리는 성취라고 하는 것은 그건 자기 나름의 것입니다. 성장과 성숙은 또 같은 게 아닙니다. 성장이란 키가 자란다는 얘기입니다. 멀끔하게, 아주 훤하게, 튼튼하게 몸은 자랐습니다만은 성숙이라고 하면 이것은 속 사람 내적 성장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성장은 있고 성숙이 없다면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입니까! 몸의 성장은 있어요. 혹은 지식의 성장도 있어요. 많이 배웠어요. 똑똑해요. 인격의 성숙함이 없다고 한다면 그 또한 아무 소용없는 인재올시다. 성숙함이 없다고 한다면 그 또한 아무 소용없는 인재올시다. 그런고로 성숙한 인격, 성숙한 품격, 여기에 우리는 다시 초점을 맞추고 생각을 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은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가슴을 찌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들어보십시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여러분, 징계는 아픈 겁니다. 그러나 징계가 없다면 내 자식 아니라는 거예요. 내 자식이요, 내가 사랑하고 내가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이 자식에게는 꼭 징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징계 없이 사람되지 못하니까요. 징계 없이 공부를 할 수는 있어도, 징계 없이 인격이 바로 되지는 않아요. 그런고로 많은 비바람을 맞고 많은 역경을 통해서 단련시켜서, 징계를 통하여 성숙한 인격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참 부모요, 그리고 참 아들에게 대하는 태도란 말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시련이 없다면 이건 죽은 것입니다. 또 시련이 없다면 포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권면하고 징계하고 또 책망하고 하다가 마지막에 아주 낙심해서 포기할 때에는 '될 대로 되라' 그래 버리고 맙니다. 그 다음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건 버려진 인간입니다. 포기된 인격입니다. 파산된 양심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살아있습니다. 기대를 걸만 합니다. 그럴 때에 그에게 징계가 있고 시험이 있고 시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련이 있다는 것은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매질하는 사람은 없어요. 포기한 인간을 향해서 징계를 운운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시험이나 시련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회피형입니다. 어떻게 하던지 피해보려고 또 시험 없게 해 보려고 합니다. 부모님들의 잘못입니다. 시험,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는 그저 편하게, 편하게, 편하게… 그거 아닙니다. 회피시키는 것, 그거 잘하는 게 아니에요. 절대로 잘하는 게 아닙니다. 어쨌든 시험을 피해보려고 하는 그 마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원망형입니다. 그 책임을 남에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다 원망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달하고, 그리고 항상 원망과 불평에 살아가는 그런 인격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모님의 권고나 징계까지도 원망합니다. 또한 비관형입니다.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생각해서 그만 절망해 버리고 맙니다. 또 하나는 낙관형입니다. 그 사람은 소망 가운데서 문제를 다시 재해석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시험, 모든 시련을 풀 수 있는 Master key는, 열쇠는 바로 소망문제입니다. 소망이 있느냐, 약속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소망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 있으면 오늘의 시련이란 문제 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다음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그것을 똑바로 알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떤 시련인들 문제 삼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최근 미국에 스웬슨 박사님이 쓰신 "Margin"이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의 구조를 설명하고 그 특성을 말하는 중에 한마디로 말해서 Margin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유가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 여유가 없느냐 없는 게 아니에요. 넉넉한데 스스로 자기 스스로 여유 없는 존재로 자기 자신을 가두고 속박해 나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정서적 메마름이 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정서적으로 고갈돼 있고, 또한 신체적으로 탈진상태에 있어요. 대개 보면 현대인이 피곤해 보여요. 얼굴 보면 떴어요. 누렇게 떴어요. 벌써 화기가 없어요. 생기를 잃어 버렸어요. 먹기는 잘 먹는 것 같은데 벌써 화색이 없어요. 건강지수가 떨어졌습니다. 또 쫓기는 삶입니다. 자유가 없어요. 언제나 무엇에 쫓겨서 뭐 그렇게 바쁜지 조금도 여유가 없어요. 그리고 재정적 압박감을 누리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은 정말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밥을 굶은 것도 아니고, 옷을 벗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돈에 쪼들리는 지. 어떻게 이보다 더 어려운 때도 살았는데… 우리는 넉넉히 가지고도 아주 빈곤한 사람으로 살아요.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야 하느냐 이것이 바로 여유 없는 인간, 현대인의 특징이란 말입니다. 경험주의 신학자인 다니엘 데이 윌리암스라고 하는 박사님의 우리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 그 주는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해 나가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많은 시련을 통해서
Identity를 얻는다" 그래요. 정체감을 알게 된다. 좀더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우린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우린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려운 시련에 딱 부딪칠 때 '내가 누구냐' 다시 말하면 한계상황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가 끝이구나. 내가 추구했던 것이 뭐냐, 내가 바랬던 것이 뭐냐!'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욕심을 정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15절에 보면은 유명한 말씀 있지 않습니까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를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저는 그래서 요새 그런 생각을 해요. 욕심이 잉태하여 경제위기를 낳고. 이제 회개하지 못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그걸 알아야 돼요. 이 무얼 말하는 거예요. 도대체가. 우리의 욕심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어떤 작가가 재미있는 글을 썼더라고요. 이제 앉아서 자기 묘비명을 써라. 나의 무덤에 묘비명을 먼저 써 놓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남은 시간을 살아라. 내가 죽은 다음에 내 비석을 뭐라고 쓸 겁니까 당신 스스로 한 번 써 보세요. 아주 욕심 덩어리입니까 형편없는 인간입니까 무슨 묘비명을 써야 됩니까 어떤 부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아버지를 위해서 묘비를 쓰려고, 그래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서 써 달라고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느냐 아, 뭐라고 뭐라고 설명을 아무리 해도 설명할 게 없어요. 그거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버지 욕심이 많았어요. 그랬어요. 그래, 그 묘비명을 쓰는 분이 뭐라고 썼는고 하니 '먹다, 죽다.' 그랬다고 그래요. 뭐 그것밖에 쓸 게 없으니까. 당신의 묘비명을 당신이 써라 이거예요.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기 죽음에 대해서 미리 말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을 사랑한 사람이다. 그 한마디가 내 마지막 소원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묘비명을 써야 합니까 또한 지능 목록을 한번 살펴보세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또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이제는 정리해야 될 때가 됐습니다. 저는 조금 불만이 있어요. 가끔 식당에 식사하러 가면 뭐라고 써 붙였는고 하니 '냉면전문'하고 써 붙였어요. 그 냉면 하나 밖에 없어서 잘하나 보다 들어갔더니 냉면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불고기에다, 만두에다가, 지짐에다가, 뭐 많이 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집이 냉면전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 때문에 우리가 망한 걸 아십니까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아요 냉면 하려거든 냉면만 잘 하시고 다른 거 좋아하는 분은 좀 다른 집으로 가라고 하세요. 한 집에서 다 팔아버리려고 하지 말고 안 그래요 만두 좋아하는 사람은 저 집으로 가고, 빈대떡 좋아하는 사람은 저 집으로 가세요. 오로지 냉면만 우리 집으로 오세요. 이게 바로 정리해고라는 거예요. 이게 구조조정이라는 거예요. 도대체 재벌이라는 말과 회장이라는 말은 이것은 영어로 번역 받지 못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영어로 '자이벌' 그런다고요. 왜요 세상에 없는 말이니까.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요 한 가지, One item! 하나만 좀 잘하세요 제발! 하나도 신통치 않으면서 뭐 그렇게 많이 해서 욕심부리다가 이 난리를 맞은 거예요. 그 좀 다른 사람도 벌어먹도록 해주세요. 왜 저만 벌겠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 사업도 좀 되게 해주세요. 왜 나만 혼자 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망조라고요. 전문화, 세계화는 전문화예요. 기능화올시다. 생각을 바꾸세요. 다른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이건 저런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이것 하나만! 그것이 충실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시련을 통해서 욕심을 조정해야 돼요. 줄여야 돼요. 아주 작게, 아주 작게! 여태까지 작은 사업, 작은 정부 그건 무얼 말합니까 수없이 들으면서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요. 이제는 깨끗한 마음으로 내가 할 일 내가 하고, 다른 사람이 할 일은 다른 사람에게. 정체를 분명히 해야 돼요. 한계의 상황을 바로 이해해야 된다 말이에요. 이것이 시련을 통해 얻는 것이에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한계를 알게 합니다. 또 하나는 Communication! 소통을 가능케 합니다. 대개 보면 일이 잘못될 때는 다같이 교만해요. 그래서 소통이 없어요. 아내와도 말이 없고, 친구와도 말이 없고 모든 사람은 다 그저 무시하고 자기만 잘났지. 이것이 바로 어려운 시련을 당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제 이 시험과 함께 우린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요. 그래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알고, 이웃과의 대화를 열어야 되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열어야 돼요. 이제 비로소 낮추고 낮춰서 아주 겸손한 가운데서 벽 없이 격이 없이 마음을 열고 소통합니다. 아시는 대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해요. 실패한 사람들끼리 소통해요. 실패하고도 아직도 소통이 없다면 그 사람은 좀 더, 좀 더 뜨거워야 돼요. 아주 발바닥이 밑에 땅에 닿을 때까지 겸손해 져서 아주 완전한 서민으로 돌아가서 너와 나의 수평관계에서 대화할 수 있는 그러한 소통을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또한 그 다음에는 치유능력이 생깁니다. 이건 좋지 않은 말입니다만은 지금 북한에 식량이 없어서 너무 어렵거든요. 식량배급을 못 주어서. 그러니까 그분들하고 얘기를 하면서 "아이고! 이렇게 몇 달 동안 혹은 어떤 때는 몇 년 동안 식량배급을 안 주면 어떻게 사노. 당신들 참 딱하다."고 했더니 대답이 뭔지 아세요 "아니에요. 식량배급을 안 주어 봤더니 자생능력이 생겨요." 그래요. 이 무서운 소리입니다. 자생능력이요. 하기야 그렇죠. 여러분, 우리가 이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 속에 깊이 들어가 보면은요 사실은 자생능력을 얻습니다. 자기 치유능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도 3D 기피 현상이 있습니다.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 안 하겠다고. 요새도 보니까 어떤 회사에서 사람을 모집해도 사람이 안 온대요. 힘들다고. 며칠하고 다 가버린대요. 이게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러나 아시는 대로 분명히 생각해 보세요. 3D를 떠나서는 절대로 지식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남달리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에요. 돈 없고 힘든 일 한 사람이에요. 뼈가 부러지도록 일한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능력의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고난 속에서 힘을 얻습니다. 자생능력을 얻습니다. 극기 능력을 얻습니다. 이 3D속에 깊이 들어 갈 때 창조적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성경말씀은 말합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 온전하다는 말은 텔레이오스라(perfect)가 아니고 이것은 파스(every)라고 하는 말입니다. Every circumstances, 모든 경우에서 기쁘게 여기라. 이런 일을 당하나 저런 일을 당하나 모든 경우에서 기쁘게 여기라. 왜요 믿음의 시련이기 때문에. 이 사건을 통해서 믿음을 얻고, 믿음을 굳히고, 믿음을 성장케 하기 때문에 금보다 귀한 중요한 가장 큰 신용과 믿음, 이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요. 우리는 건강을 잃으면서 믿음 얻는 사람 많이 봅니다. 재산 잃어버리고 모처럼 믿음을 정비하는 사람을 봅니다. 믿음의 시련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외의 다른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 그 뜻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인내를 이룬다고 했어요. 끈기를 이룹니다. 구체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또 현대인이라는게 대체로 너무 약해요. 의지가 약해요. 이건 시련을 못 겪었기 때문이에요. 많은 시련을 겪어야 돼요. 끈기 있는 인간이 됩니다. 세상에서 뭐 요새 골프가 유행입니다만은 야구라고 하는 운동이 있는데 베이브 루스라고 하는 유명한 야구 왕이 있습니다. 그는 1976년까지는 세계 제일입니다.
왜냐하면 홈런 왕으로써 714개의 홈런을 날렸어요. 그래서 홈런 왕이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이 사람이 홈런 왕인 동시에 Strike-out 세계 기록보유자라는 건 모르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는 1330번의 Strike-out을 당했습니다. 1330번의 실패가 있고 714개의 홈런을 날린 것이요. 사람들은 실패한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홈런 왕만 생각하더란 말입니다. 많은 시련이 없이 강인한 인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믿음도 없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 오늘 성경 말씀은 '온전히 기뻐하라.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여야 한다.' 구비한다는 말은 완전무장이라는 말이에요. 능숙해진다는 말이에요. 앞으로 어떤 시련을 당해도 잘 넘길 수 있어요. 문제가 되질 않아요. 저는 이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어요. 다방 레지로 있던 사람이 결혼을 하면 그렇게 잘 산다면서요. 그거 왜 그러냐 하니까 다방 레지로 있을 때 그 별 남자들 많잖아요 그 싱거운 소리하는 걸 다 척척 받아넘기다가 능숙해져서 그 다음에 결혼해 가지고 남자 하나쯤 휘어 잡는 건 문제가 아니래요 그것은. 좀 능숙해야 된다 이거예요. 근데 뭐 한마디에 눈물 짜고 죽는니 사는니 이런 겁나는 여자하고 어떻게 삽니까 안 그래요 좀 능숙해 져야 되는데 이게 어디서 오느냐 많은 시련 속에서. 그런고로 과거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요, 오로지 미래!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 이 오늘의 당한 시련은 잘 견딜 수가 있는 것이요. 여러분! '왜' 라고 하는 질문은 더이상 하지 맙시다. 과거는 그만 합시다. 그만 들추어요. 밤낮 청문회 해 봤자 별 것도 아네요. 그만하고 우리에겐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살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요, 쓸모가 있기 때문이요, 적어도 온전히 기쁘게 여길 것은 아직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생각하시고 더 유익하게 더 훌륭하게 더 크게 쓰시고자 하시는 깊은 섭리가 있는 것으로 확실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거기에 도달해야 오늘의 시련을 극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끼자루라고 하는 나무는 보통나무로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를 깎아서 만일에 도끼자루를 만들었다면 한 번 내려치면은 다 부러져 나갑니다. 이 도끼자루라고 하는 이 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무 중에 가장 강하고, 튼튼하고, 굳은, 그런 나무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자기 손자를 데리고 "자 우리 오늘은 산에 가서 도끼자루를 좀 찍어보자."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손자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산 중턱에 보니까 그 바위틈에 곧게 자란 좋은 도끼자루 될 만한 참나무가 있습니다. 손자가 말하기를 "저걸 찍어서 도끼자루를 하면 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니다." 그러십니다. 그 힘든 골짜기를 오르고 올라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한 참나무를 보고 "저걸 찍어라"하고 말합니다. "저런 나무는 저 산밑에도 있었는데요. 저 나무 그늘 속에도 있었고, 바위틈에도 있었고, 계속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 높은 곳에 와서 똑같은 저 참나무를 찍으라는 겁니까" 그 때에 할아버지는 말하기를 "비바람을 많이 맞지 아니하고 자란 나무는 아무 소용이 없다. 같은 이름의 참나무이지만은 비바람을 많이 맞고 자란 그 나무라야만 쓸만한 도끼자루가 되느니라." 이것이 옛날 어른들이 손자에게 가르쳐 준 교훈입니다. 성공과 성취는 같은 게 아닙니다. 어떤 객관적 이유에서 성공할 수는 있어도, 그가 누리는 성취라고 하는 것은 그건 자기 나름의 것입니다. 성장과 성숙은 또 같은 게 아닙니다. 성장이란 키가 자란다는 얘기입니다. 멀끔하게, 아주 훤하게, 튼튼하게 몸은 자랐습니다만은 성숙이라고 하면 이것은 속 사람 내적 성장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성장은 있고 성숙이 없다면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입니까! 몸의 성장은 있어요. 혹은 지식의 성장도 있어요. 많이 배웠어요. 똑똑해요. 인격의 성숙함이 없다고 한다면 그 또한 아무 소용없는 인재올시다. 성숙함이 없다고 한다면 그 또한 아무 소용없는 인재올시다. 그런고로 성숙한 인격, 성숙한 품격, 여기에 우리는 다시 초점을 맞추고 생각을 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은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가슴을 찌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들어보십시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여러분, 징계는 아픈 겁니다. 그러나 징계가 없다면 내 자식 아니라는 거예요. 내 자식이요, 내가 사랑하고 내가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이 자식에게는 꼭 징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징계 없이 사람되지 못하니까요. 징계 없이 공부를 할 수는 있어도, 징계 없이 인격이 바로 되지는 않아요. 그런고로 많은 비바람을 맞고 많은 역경을 통해서 단련시켜서, 징계를 통하여 성숙한 인격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참 부모요, 그리고 참 아들에게 대하는 태도란 말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시련이 없다면 이건 죽은 것입니다. 또 시련이 없다면 포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권면하고 징계하고 또 책망하고 하다가 마지막에 아주 낙심해서 포기할 때에는 '될 대로 되라' 그래 버리고 맙니다. 그 다음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건 버려진 인간입니다. 포기된 인격입니다. 파산된 양심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살아있습니다. 기대를 걸만 합니다. 그럴 때에 그에게 징계가 있고 시험이 있고 시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련이 있다는 것은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매질하는 사람은 없어요. 포기한 인간을 향해서 징계를 운운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시험이나 시련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회피형입니다. 어떻게 하던지 피해보려고 또 시험 없게 해 보려고 합니다. 부모님들의 잘못입니다. 시험,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는 그저 편하게, 편하게, 편하게… 그거 아닙니다. 회피시키는 것, 그거 잘하는 게 아니에요. 절대로 잘하는 게 아닙니다. 어쨌든 시험을 피해보려고 하는 그 마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원망형입니다. 그 책임을 남에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다 원망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달하고, 그리고 항상 원망과 불평에 살아가는 그런 인격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모님의 권고나 징계까지도 원망합니다. 또한 비관형입니다.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생각해서 그만 절망해 버리고 맙니다. 또 하나는 낙관형입니다. 그 사람은 소망 가운데서 문제를 다시 재해석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시험, 모든 시련을 풀 수 있는 Master key는, 열쇠는 바로 소망문제입니다. 소망이 있느냐, 약속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소망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 있으면 오늘의 시련이란 문제 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다음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주시려고 하십니까 그것을 똑바로 알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떤 시련인들 문제 삼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최근 미국에 스웬슨 박사님이 쓰신 "Margin"이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의 구조를 설명하고 그 특성을 말하는 중에 한마디로 말해서 Margin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유가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 여유가 없느냐 없는 게 아니에요. 넉넉한데 스스로 자기 스스로 여유 없는 존재로 자기 자신을 가두고 속박해 나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정서적 메마름이 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정서적으로 고갈돼 있고, 또한 신체적으로 탈진상태에 있어요. 대개 보면 현대인이 피곤해 보여요. 얼굴 보면 떴어요. 누렇게 떴어요. 벌써 화기가 없어요. 생기를 잃어 버렸어요. 먹기는 잘 먹는 것 같은데 벌써 화색이 없어요. 건강지수가 떨어졌습니다. 또 쫓기는 삶입니다. 자유가 없어요. 언제나 무엇에 쫓겨서 뭐 그렇게 바쁜지 조금도 여유가 없어요. 그리고 재정적 압박감을 누리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은 정말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밥을 굶은 것도 아니고, 옷을 벗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돈에 쪼들리는 지. 어떻게 이보다 더 어려운 때도 살았는데… 우리는 넉넉히 가지고도 아주 빈곤한 사람으로 살아요.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야 하느냐 이것이 바로 여유 없는 인간, 현대인의 특징이란 말입니다. 경험주의 신학자인 다니엘 데이 윌리암스라고 하는 박사님의 우리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 그 주는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해 나가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많은 시련을 통해서
Identity를 얻는다" 그래요. 정체감을 알게 된다. 좀더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우린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우린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려운 시련에 딱 부딪칠 때 '내가 누구냐' 다시 말하면 한계상황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가 끝이구나. 내가 추구했던 것이 뭐냐, 내가 바랬던 것이 뭐냐!'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욕심을 정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15절에 보면은 유명한 말씀 있지 않습니까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를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저는 그래서 요새 그런 생각을 해요. 욕심이 잉태하여 경제위기를 낳고. 이제 회개하지 못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그걸 알아야 돼요. 이 무얼 말하는 거예요. 도대체가. 우리의 욕심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어떤 작가가 재미있는 글을 썼더라고요. 이제 앉아서 자기 묘비명을 써라. 나의 무덤에 묘비명을 먼저 써 놓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남은 시간을 살아라. 내가 죽은 다음에 내 비석을 뭐라고 쓸 겁니까 당신 스스로 한 번 써 보세요. 아주 욕심 덩어리입니까 형편없는 인간입니까 무슨 묘비명을 써야 됩니까 어떤 부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아버지를 위해서 묘비를 쓰려고, 그래 유명한 사람을 찾아가서 써 달라고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느냐 아, 뭐라고 뭐라고 설명을 아무리 해도 설명할 게 없어요. 그거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버지 욕심이 많았어요. 그랬어요. 그래, 그 묘비명을 쓰는 분이 뭐라고 썼는고 하니 '먹다, 죽다.' 그랬다고 그래요. 뭐 그것밖에 쓸 게 없으니까. 당신의 묘비명을 당신이 써라 이거예요.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기 죽음에 대해서 미리 말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모든 사람을 사랑한 사람이다. 그 한마디가 내 마지막 소원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묘비명을 써야 합니까 또한 지능 목록을 한번 살펴보세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또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이제는 정리해야 될 때가 됐습니다. 저는 조금 불만이 있어요. 가끔 식당에 식사하러 가면 뭐라고 써 붙였는고 하니 '냉면전문'하고 써 붙였어요. 그 냉면 하나 밖에 없어서 잘하나 보다 들어갔더니 냉면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불고기에다, 만두에다가, 지짐에다가, 뭐 많이 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집이 냉면전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 때문에 우리가 망한 걸 아십니까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아요 냉면 하려거든 냉면만 잘 하시고 다른 거 좋아하는 분은 좀 다른 집으로 가라고 하세요. 한 집에서 다 팔아버리려고 하지 말고 안 그래요 만두 좋아하는 사람은 저 집으로 가고, 빈대떡 좋아하는 사람은 저 집으로 가세요. 오로지 냉면만 우리 집으로 오세요. 이게 바로 정리해고라는 거예요. 이게 구조조정이라는 거예요. 도대체 재벌이라는 말과 회장이라는 말은 이것은 영어로 번역 받지 못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영어로 '자이벌' 그런다고요. 왜요 세상에 없는 말이니까.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요 한 가지, One item! 하나만 좀 잘하세요 제발! 하나도 신통치 않으면서 뭐 그렇게 많이 해서 욕심부리다가 이 난리를 맞은 거예요. 그 좀 다른 사람도 벌어먹도록 해주세요. 왜 저만 벌겠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 사업도 좀 되게 해주세요. 왜 나만 혼자 하겠다는 거예요. 이게 망조라고요. 전문화, 세계화는 전문화예요. 기능화올시다. 생각을 바꾸세요. 다른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이건 저런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이것 하나만! 그것이 충실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시련을 통해서 욕심을 조정해야 돼요. 줄여야 돼요. 아주 작게, 아주 작게! 여태까지 작은 사업, 작은 정부 그건 무얼 말합니까 수없이 들으면서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요. 이제는 깨끗한 마음으로 내가 할 일 내가 하고, 다른 사람이 할 일은 다른 사람에게. 정체를 분명히 해야 돼요. 한계의 상황을 바로 이해해야 된다 말이에요. 이것이 시련을 통해 얻는 것이에요.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한계를 알게 합니다. 또 하나는 Communication! 소통을 가능케 합니다. 대개 보면 일이 잘못될 때는 다같이 교만해요. 그래서 소통이 없어요. 아내와도 말이 없고, 친구와도 말이 없고 모든 사람은 다 그저 무시하고 자기만 잘났지. 이것이 바로 어려운 시련을 당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제 이 시험과 함께 우린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요. 그래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알고, 이웃과의 대화를 열어야 되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열어야 돼요. 이제 비로소 낮추고 낮춰서 아주 겸손한 가운데서 벽 없이 격이 없이 마음을 열고 소통합니다. 아시는 대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끼리 소통해요. 실패한 사람들끼리 소통해요. 실패하고도 아직도 소통이 없다면 그 사람은 좀 더, 좀 더 뜨거워야 돼요. 아주 발바닥이 밑에 땅에 닿을 때까지 겸손해 져서 아주 완전한 서민으로 돌아가서 너와 나의 수평관계에서 대화할 수 있는 그러한 소통을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또한 그 다음에는 치유능력이 생깁니다. 이건 좋지 않은 말입니다만은 지금 북한에 식량이 없어서 너무 어렵거든요. 식량배급을 못 주어서. 그러니까 그분들하고 얘기를 하면서 "아이고! 이렇게 몇 달 동안 혹은 어떤 때는 몇 년 동안 식량배급을 안 주면 어떻게 사노. 당신들 참 딱하다."고 했더니 대답이 뭔지 아세요 "아니에요. 식량배급을 안 주어 봤더니 자생능력이 생겨요." 그래요. 이 무서운 소리입니다. 자생능력이요. 하기야 그렇죠. 여러분, 우리가 이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 속에 깊이 들어가 보면은요 사실은 자생능력을 얻습니다. 자기 치유능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도 3D 기피 현상이 있습니다.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 안 하겠다고. 요새도 보니까 어떤 회사에서 사람을 모집해도 사람이 안 온대요. 힘들다고. 며칠하고 다 가버린대요. 이게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러나 아시는 대로 분명히 생각해 보세요. 3D를 떠나서는 절대로 지식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남달리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에요. 돈 없고 힘든 일 한 사람이에요. 뼈가 부러지도록 일한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능력의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고난 속에서 힘을 얻습니다. 자생능력을 얻습니다. 극기 능력을 얻습니다. 이 3D속에 깊이 들어 갈 때 창조적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오늘 성경말씀은 말합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 온전하다는 말은 텔레이오스라(perfect)가 아니고 이것은 파스(every)라고 하는 말입니다. Every circumstances, 모든 경우에서 기쁘게 여기라. 이런 일을 당하나 저런 일을 당하나 모든 경우에서 기쁘게 여기라. 왜요 믿음의 시련이기 때문에. 이 사건을 통해서 믿음을 얻고, 믿음을 굳히고, 믿음을 성장케 하기 때문에 금보다 귀한 중요한 가장 큰 신용과 믿음, 이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요. 우리는 건강을 잃으면서 믿음 얻는 사람 많이 봅니다. 재산 잃어버리고 모처럼 믿음을 정비하는 사람을 봅니다. 믿음의 시련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외의 다른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 그 뜻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인내를 이룬다고 했어요. 끈기를 이룹니다. 구체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또 현대인이라는게 대체로 너무 약해요. 의지가 약해요. 이건 시련을 못 겪었기 때문이에요. 많은 시련을 겪어야 돼요. 끈기 있는 인간이 됩니다. 세상에서 뭐 요새 골프가 유행입니다만은 야구라고 하는 운동이 있는데 베이브 루스라고 하는 유명한 야구 왕이 있습니다. 그는 1976년까지는 세계 제일입니다.
왜냐하면 홈런 왕으로써 714개의 홈런을 날렸어요. 그래서 홈런 왕이라고 기록되고 있는데 이 사람이 홈런 왕인 동시에 Strike-out 세계 기록보유자라는 건 모르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는 1330번의 Strike-out을 당했습니다. 1330번의 실패가 있고 714개의 홈런을 날린 것이요. 사람들은 실패한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홈런 왕만 생각하더란 말입니다. 많은 시련이 없이 강인한 인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믿음도 없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 오늘 성경 말씀은 '온전히 기뻐하라.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여야 한다.' 구비한다는 말은 완전무장이라는 말이에요. 능숙해진다는 말이에요. 앞으로 어떤 시련을 당해도 잘 넘길 수 있어요. 문제가 되질 않아요. 저는 이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어요. 다방 레지로 있던 사람이 결혼을 하면 그렇게 잘 산다면서요. 그거 왜 그러냐 하니까 다방 레지로 있을 때 그 별 남자들 많잖아요 그 싱거운 소리하는 걸 다 척척 받아넘기다가 능숙해져서 그 다음에 결혼해 가지고 남자 하나쯤 휘어 잡는 건 문제가 아니래요 그것은. 좀 능숙해야 된다 이거예요. 근데 뭐 한마디에 눈물 짜고 죽는니 사는니 이런 겁나는 여자하고 어떻게 삽니까 안 그래요 좀 능숙해 져야 되는데 이게 어디서 오느냐 많은 시련 속에서. 그런고로 과거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요, 오로지 미래!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 이 오늘의 당한 시련은 잘 견딜 수가 있는 것이요. 여러분! '왜' 라고 하는 질문은 더이상 하지 맙시다. 과거는 그만 합시다. 그만 들추어요. 밤낮 청문회 해 봤자 별 것도 아네요. 그만하고 우리에겐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살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요, 쓸모가 있기 때문이요, 적어도 온전히 기쁘게 여길 것은 아직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생각하시고 더 유익하게 더 훌륭하게 더 크게 쓰시고자 하시는 깊은 섭리가 있는 것으로 확실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거기에 도달해야 오늘의 시련을 극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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