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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열쇠의 비밀 (마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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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적분야에서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재미있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그 책이름은 이렇습니다. '교회에 가기 싫은 일흔 일곱가지 이유' 그런 책입니다. 교회 안 다니던 사람이던 다니던 사람이던 교회 가기 싫은 이유, 일흔 일곱가지 있답니다. 이 책은 사십대 이후에 예수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만재 선생께서 신세대들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 놓은 책입니다. 일흔 일곱가지 이유를 상세하게 다 말씀드릴 것은 없고요 분류해서 보면, 간추려 볼 때 다섯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첫째는 우선 인상이 시끄럽고 유난스럽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꼭 거리에서 노방 전도를 한다고 북을 치고 말이지요. 또 뭘 이렇게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그대로 붙들고 "어디에 사느냐 이름이 뭐냐 직업이 뭐냐 식구는 몇이냐 결혼은 몇 번이나 했냐" 별것 다 갖고 물어보는데 아주 질색이에요. 아주 너무 유난스럽게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에이 겁이 나서 교회 못 나가겠다.' 그런 얘기고요. 두 번째는 교회생활 한다는 사람들이 집안 살림을 전혀 신경 쓰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게 또 문제예요. 그래서 교회 열심히 나가는 사람들이 더 가정 생활이 좋아야 하겠는데 소망교회는 빼고… 그렇게 좀 문제가 있어요. 이게 문제가 많아요. 열심히 믿는 사람일수록 집안에 대해서 충실치 못하다. 아이들은 문제아가 되고 남편들은 밖으로 나돌고 그리고 부부싸움이 잦고 뭐 소리가 나거든요. '도대체 이렇게 교회에 나가면서 가정과 자기생활에 불충실하다. 내 이 꼴 때문에 교회에 못 나가겠다.' 이런 것들이 교회 걸림돌이 되고. 또 하나는 각종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이요. 교회 오자마자 아직 믿음이 생기기 전에 "여전도회 나와라. 구역예배 나와라. 남선교회 나와라. 봉사하러 가자." 그러면 이 사람이 지쳐 가지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믿음이 자라는 것과 이것이 병행을 해야 하는데 그만 이런 외적 일에 대해서 너무 강요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예요.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 하는 얘기고요. 또한번만 빠져도 당장 찾아와서 "왜 안 나왔느냐"고 그럴 수도 있지. 그것을 따지면 참 힘들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배타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만 잘났다고 그러고 착한 사람인양하고 이렇게 된다는 거요. 그리고 먼저 믿었다고 해서 무슨 큰 벼슬이나 하는 것처럼 뒤에 온 사람 무시하고 말이에요. "그것도 모르냐"고. 여러분 그것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믿었다고 성경구절도 좀 알고 찬송가도 좀 잘 부른다고 해서 처음 와서 어리둥절한 사람을 이렇게 해서는 안되죠. 그래서 제가 성경 읽을 때도 꼭 "신약 몇 페이지 찾으세요." 왜요 그냥 호세아 몇 장하면 알 수가 있나 호세아 몇 장이 어디에 들었는지 그러나 믿는 사람은 잘 아나 오래 믿은 사람은 처음 믿는 사람은 모르는데 이럴 때는 "구약성경 몇 면을 보십시오." 하면 페이지를 찾으면 되잖아요. 어쨌든 간에 '먼저 믿었다고 되게 잰다'는 거예요. 이게 참 힘들다고. 뒤에 나온 사람들이 편안하게 예배 드릴 수 있도록 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서 뒤에 나오는 분들이 '교회 가기 싫더라. 잘난척하는 사람들 보기 싫어서' 그런 얘기고 자기들만 다 의인이고 세상사람은 다 죄인인 것처럼 다 몰아 치는데 이런 것들이 거슬린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는 "교회와 세상이 별다를 뜻이 없더라." 하는 얘기입니다. 교인과 세상 사람들이 매한가지더라.
왜냐하면 교회에서도 보니까 학력, 신분 따라 대우하고, 경쟁심 많고, 공명심 많고, 자기 이름 내려고 하고, 시기, 질투가 많고,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더라. 그래서 저희가 결혼식을 한다든가 할 때 절대 돈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우대하는 법이 없습니다. 똑같이 교회에서 만들어 놓은 화분 딱 두개 놓고 그대로 할 것이지. "우리는 돈이 많으니까 화려하게 하고 싶습니다." 안돼요. 이 교회에는 그런 것 없어요. 교회에 들어선 이상에는 있고 없고, 가난하고 부하고, 세상에서 높고 낮고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여기는 똑같아야 되는데 이렇지 못하고 이걸 세상의 신분대로 또 돈 있는 대로 특별하게 대해주고 이런다고 하면 이 교회가 교회 될 수 없다. '이런 것들이 거슬리더라'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좋으나 교회 가기 싫다.'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존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오늘 여러분은 교회에 왜 나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한 교훈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특별히 열 두 제자를 쭉 가르쳐 나가다가 그 교훈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합니다. 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주시는 아주 소중한 말씀입니다. 역사적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지금도 이 도시가 있는데요. 이 가이사랴 빌립보는 당시에 로마 사람들이 이 중동지구를 지배하는 군사 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번영지입니다. 거기에 로마 사람들의 군사령부가 있어요. 지금도 그때의 지어 놓았던 건물들이 있습니다. 이 로마의 그 어느 부분을 옮겨놓은 것 같은 그럼 시설들이 원형극장도 있고 다 있습니다. 이렇게 로마 군인들이 여기에 와서 진을 치고 있었어요. 그 로마 군사기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한번 가 볼 필요가 있어요. 예수님이 그 길로 지나가면서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합니다. 제자들이 이 길로 지나가며 이 로마 사람들의 그 군사기지를 보고 그 군인들이 훈련하는 모습이나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 이런 걸 볼 때 약소국가에 사는 사람들, 피지배국가에 사는 이 소수민족으로 볼 때에는 참 부러워죽겠거든요. '우리는 언제나 나라가 독립하나 언제나 우리는 이렇게 큰 소리를 치며 살 수 있을까' 세상적으로 볼 때 너무 유대나라는 불쌍해요. 빼앗기고 짓눌리고 약탈당하는 거요. 그리고 남의 나라 군사들이 와서 제멋대로 자기나라처럼 이렇게 휘젓고 돌아가는데 너무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침을 흘린 것 같아요.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아, 참 좋다. 어떻게 우리고 저럴 수 없을까 그리고 언제나 우리는 자유함을 얻고 정권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부러워하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이래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묻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열 세 사람뿐입니다. 열 두 제자를 앞에 놓고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고 고백을 할 때 고백하는 순간 여기서 결정적인 역사가 창조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창립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여기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지금은 초라하게 보입니다. 적은 무리요 하찮은 사람들같이 보이지만 거기서 역사가 바뀝니다. 그래서 오늘의 역사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기원이 시작이 됩니다. 놀라운 얘기가 아닙니까 그런고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이 말 한마디, 이 고백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교회가 건립이 되고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더라 그 말입니다. 그래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신앙고백과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고 베드로와 천국열쇠" 이렇게 이어지는 겁니다. 이 이야기들이 모여서 오늘의 복음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 이제 핵심은 오늘 말씀 드리려고 하는 주제는 천국열쇠입니다. 오늘 이것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천국열쇠 이거 무슨 뜻입니까 천국열쇠라고 하는 말의 개념은 먼저는 이 천국문제가 결코 심리학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무슨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고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어떤 때 좀 편안하게 일도 잘 되고 누가 다 좀 안정이 되면은 '여기가 천국이다.' 그래 생각을 합니다마는 그따위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분은 그런 얘기도 합디다마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저 시골에 계신 분이 한번 우리교회 와서 큰 예배당에서 많은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오늘 같이 이렇게 좋은 성가를 듣고 하는 말이 "여기가 천국이구먼." 그럽디다만은 여러분은 그걸 못 느끼죠 정말이에요.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너무 감격하고 은혜로울 때 여기가 천국이다, 가정이 천국이다, 내 마음이 천국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마는 오늘 성경말씀은 그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천국은 종말적이고, 역사적이고, 현실적이고, 구체적 천국을 말하는 것이에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이요 원리요 중심이요 획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할 문제는 '천국이 열쇠다'하는 말은 결코 천국을 건설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혹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천국을 건설하라. 천국을 만들어라." 뭐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천국은 주께서 오심으로 이루어지고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천국은 들어가는 것이지 천국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천국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해요. 그런고로 천국은 전파되는 것이지 내가 천국을 건설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그건 절대로 그런 일이 아니에요. 이루신 천국을 전파하는 것뿐입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들어간다는 것 거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고요. 또 하나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문제 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도덕이나 지식이나 선행이나 그의 의를 묻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좋은 일 많이 해야 하고, 적선을 해야 하고, 고행도 많이 하고, 명상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그래야 어느 수준에 도달한 다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듯이 말이죠. 그렇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마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게 아니에요. 천국열쇠는 열쇠 가진 사람만 들어간다 그 말이요. 천국열쇠는 딱 하나 뿐이요. 이걸 가지고 들어간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14층 아파트 꼭대기에 사는데 어느 날 밖에 외출했다가 돌아오면서 차에서 내려 가지고 방으로 올라가려고 했더니 엘리베이터가 마침 고장수리! '아이구 큰일났구나!' 무릎이 아프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걸어서 헐떡헐떡 걸어서 14층을 간신히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문을 열려고 열쇠를 찾는데 열쇠가 없어요. 차에다 두고 왔어요. '이런 낭패가 있나' 이거 분명히 내 집이지만 열쇠 없다고 들어오지 말래. 안 그렇습니까 열쇠 없으면 그만이예요. 그래서 답답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두들긴다고 되겠습니까 부신다고 되겠습니까 호령을 한다고 되겠습니까 오로지 열쇠만 필요한 거예요. 그것도 자물쇠에 맞는 열쇠, 그거 하나만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시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 자동차에 가보니까 자동차에도 열쇠가 없어요. 이게 어디로 갔나 보니까 주머니에 그대로 있어요. 여기 웃는 사람들 다 경험했어요 보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내 집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맞는 열쇠가 없으면 못 들어간다 그거예요. 그러나 열쇠 가진 사람이면 도둑놈이라도 들어가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주님 앞에 갈 때는 바로 이 열쇠를 가지고 들어가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 가운데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때 왕의 아들 잔치가 있었다. 왕은 기뻐서 사방의 사람들에게 "자, 내가 아들의 잔치를 하게 되니, 내 아들 잔치가 있으니 백물을 갖추어 놓았으니 와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했더니 저마다 오지 않았대요. 나는 내가 할 일이 많고 밭을 샀고, 소를 샀고, 나도 장가를 갔고, 나 안 간다고 거절을 하더라. 왕이 섭섭해서 그 다음에 "산으로 다니면서 모조리, 누구든지 병신이든 뭐든 상관없다. 다 불러 오라. 그래서 내 집을 채워라." 손님이 없으면 이것 잔치는 낭패거든요. 내 집을 채워라 그래서 채웠답니다. 주인이 마지막에 나와서 그거 다 보고 기뻐하게 되는데 보니까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옷들이 다 좋지 않았거든요. 거 2000년 전에 옷이 오죽했겠어요 그러니까 잔치를 할 때 만일에 그냥 손님들 오게 하십시오 하게 되면 분위기가 영 엉망이 되니까 그래서 이 손님을 청하는 주인집에서 예복을 보냈어요. 보내서 이것을 입고 오십시오. 이렇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예복을 입고 왔는데 오직 한 사람은 예복을 안 입었더랍니다. 왜 안 입었을 것 같습니까 내 옷이 더 좋으니까… '주인이 보낸 저 옷보다 내 옷이 더 좋다.' 그런 생각을 해요. 옷 자랑하느라고 안 입고 요새 말로 개성 있게 나왔단 말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말합니다. 아주 엄하게 책망합니다. "바깥 어둠에 내어 쫓으라. 지옥으로 떨어뜨려라.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니 잔치에 와서 먹으라고 초청을 할 때는 언제고 옷 좀 안 입었기로서니 그렇게까지 벌을 해야 하나' 여기에 신학적 의미가 있는 거예요. 자기 의를 가지고 나오는 건 안돼요. 주인이 보낸 의의 옷을 의롭다하는 그 의의 옷을 입고 나와야만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열쇠입니다.
그런데 오늘 분명히 생각해야 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고백, 이것이 열쇠요. 이 고백과 함께 교회가 설립이 되고 천국의 열쇠가 주어집니다. 이 믿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 노아의 방주를 아시죠 창세기 6장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합니다. 사람이 육체가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영적으로는 이미 다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방주를 만들고 이 모든 사람들을 다 진멸할 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구원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의로우냐, 선하냐, 선한 일을 많이 했느냐 그거 하나도 묻지 않아요. 오로지 방주에 들어간 사람만 살았어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바로 그 방주의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교회에 의미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실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신앙이 뭡니까 나는 복잡하게 생각 안해요.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선행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하나님이 아시지 난 알바가 아니요. 제가 40년 목회 하면서 느끼는 것은 교회 출석 잘해야 되요. 교회 출석이 뜸해지기 시작하면 시험에 빠져요. 틀림없이… 교회에 나오면서 은혜 받고 교회에 나와서 깨닫고 교회 나와서 여기서 깨닫고 사업도 하고 여기서 깨닫고 화목도 하고 여기서 깨닫고 결심하고 원수도 사랑하고 이렇게 되더라고요. 열심히 교회 나와야 해요. 시간 시간 이게 방주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보면 이 교회를 등한시 여겨요.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 와서 졸다가요. 그래서 공치는 날도 있죠. 그래도 나와서 졸아야 되요. 졸아도 나와서 졸아야지. '오늘은 어떠니까 분위기가 어떠니까 안 나온다.' 그러기 시작하면 시험에 빠져요. 이것은 사회학적 통계가 나와 있어요. 넉 달만 안 나오면 완전히 Non Christian이 되어 버려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이걸 깨닫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하루도 안 나가면 안 된다. 한 시간도 빠지면 나는 내 영혼은 죽는다. 이것이 교인이요. 방주에 들어가야 구원받는 거지요. 내가 의로워서 내가 어째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요. 이게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 자세히 보면 도대체 이 천국열쇠 천국에 들어가는 이 열쇠가 아주 신비로운 의미를 가졌어요. 이건 뭐 책에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러나 그 신비로운 말씀을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요점만 몇 가지 말씀합니다. 문제만 제시합니다.
첫째는 이 열쇠는 축복이라는 거예요. 오늘 이 사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니까 주님 말씀이 "네가 복되다." 그럽니다. 복입니다. 복이 뭡니까 하나님께로 주어지는 은사를 말합니다. 내 노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건 복입니다. 예수 믿는 것 큰 복입니다. 꼭 믿어야 할 사람인데도 안 믿는 사람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못 믿어요. 제가 목회 하면서 임종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만나면 그저 안 믿는 사람 마지막이라도 붙들고 전도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부탁을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다." 그러면은 좀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안 믿어." 그러고 죽어요. 참 이거 어떻게 하면 좋아요 이거. 그럴 때는 며칠 동안 어떻게 기분이 나쁜지 몰라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거 마음대로 못하는 거예요. 또 그런가 하면 어떤 분은 그렇게 시원케 믿은 것 같지 않았는데 임종하는 순간에 하늘을 바라보며 환한 얼굴로 "나를 데려가기 위해서 저기 하얀 가마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고 죽잖아요. 이게 얼마나 아름다워요. 이게 복이지 이게 자기 노력으로 되는 겁니까 이게 그런고로 말씀이에요. 천국열쇠요 이건 축복입니다. 내가 복이 있다. 여러분은 복된 사람인 걸 알아야 되요. 안 믿는 사람 안 믿는 이유가 있어요. 교회 안 나온 사람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 끝도 없는 거예요. 그러나 믿는 사람은 믿어요. 믿어지어야 믿지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할거요 무슨 수로 믿게 할 수 있어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이건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고요. 또 성령님으로 말미암았어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혈육이 알게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알게 한 것이다. 즉 성령님이 너를 감동해서 내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했고 믿게 했다. 성령님의 역사지 네 지식도 아니고 네 경험도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신비가 있고요. 또한가지는 교회와의 관계입니다. 이제 교회를 세우리라. 오늘의 역사가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네가 구원받는데 머물지 않고 이제 계속해서 교회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것을 말씀합니다. 교회의 신비. 이것이 천국열쇠요. 또 베드로 그는 증인입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그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복음을 전하는 증인 그에게 천국열쇠가 있는 것이에요. 복음을 들어야 구원을 받으니까. 너는 이 천국열쇠를 가지고 전하는 엄청난 권세와 책임을 맡은 거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더욱 신비한 것은 하늘과 땅의 역사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맬 것이요.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평생 목회 하면서 당회를 통해서 누구를 책벌하는 일을 안 했고, 앞으로도 안 하려고 합니다. 왜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니까요. 교회의 권세가 천국열쇠와 같은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요. 교회에서 풀면 풀리고 교회에서 매면 맨다는 것이에요. 땅과 하늘의 역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나온 목적이 뭡니까 교회를 무엇으로 알고 나오셨습니까 친절을 원하십니까 친절하면 어떻고 안 하면 어떻습니까 그 악수해 주는 것을 원하십니까 저 악수를 다 못합니다마는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가끔 어떤 때에 우리 여집사님들이 저를 만났어요. 저 교회 앞에 만나 가지고 "목사님, 제가 누군지 모르시죠저는 모릅니다.저 소망교회 집사인데 모르세요모릅니다." 제가 한마디합니다. "자고로 나는 여자 얼굴을 똑똑히 안 봅니다." 그러나 한마디합니다. "내가 알고 모르고가 뭐 그렇게 중요하오 그리스도가 알면 되고 하나님이 아시면 되고 이게 중요한 거지." 곽목사가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때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여러분 이 교회는 주님과 나와의 관계예요. 천국열쇠를 내가 네게 준다. 이제 천국 열쇠를 손에 쥐고 오늘을 사는 거예요. 언젠가라도 이 열쇠를 가지고 주님 앞에 갈 것이에요. 천국에 가는 티켓을 받아 가지고 오늘을 사는 거예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요.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 생활입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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