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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일꾼의 의미 (마9:35-38)

본문

사람은 외모로 볼 때 다 똑같게 보여집니다. 나는 것과 사는 것, 죽는 것, 가만히 보면 다 비슷비슷하게 그렇게 보여집니다만은 그 본질에서와 그 생각과 그 관심과 그리고 그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인간은 확실하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는 세 부류가 있습니다. 그 첫째의 인간이 생리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입니다. 이것은 생물학적 원초적 본능에 끌려 살다가 그런 생물학적 존재로서 생을 마치는 그런 사람의 군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잠깐 텔레비전을 보는 중에 스웨덴에서 제작을 했다고 하는 이런 프로 하나를 보면서 몹시도 기분이 언짢았던 일이 한번 있습니다. 그건 뭐냐하면 동물들이 서로 사랑하는, 새끼 낳기 위해서 수놈이 암놈 쫓아다니고 하는 뭐 그런 모습을 쭉 보여줘요. 그것까지는 동물의 세계니까 괜찮은데 바로 그 뒤에 계속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연애하는 장면을 거기다가 계속 따라가면서 보여줘요. 그래서 동물의 세계 하나 보여주고 사람 보여주고, 동물의 세계 보여주고 사람… 이 오버랩해서 보여주는데 아주 혐오감을 느꼈어요. 저걸 제작한 사람은 저건 무신론자요, 진화론자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사람의 사랑을 동물, 새끼 나려고 쫓아다니는 거기다 비교 할거요. 그것과 사람이 같다, 그들이 싸우는 것과 같다, 그들이 죽는 것과 같다. 인간을 이렇게 본답니다. 이게 바로 biological being이요, 생물학적 인간.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철학적 인간이올시다.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이론에서 살고 특별히 지식을 추구하며 살고 깨닫는 기쁨에 살아갑니다. 공부하면서 새로운 것을 깨닫고 진리를 깨닫고 많은 예술적 가치, 이런 철학을 깨달으면서 거기서 기쁨을 얻습니다. 또 스스로 그래서 '아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깨달음으로써 인간이라고 하는 거기에 도덕적 성향과 인간의 인간 된 철학적 가치가 있습니다. 높은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이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또 하나는 신학적 인간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서 인간입니다. 육체가 있어서도 아니고 이성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 된 그 깊은 본질이 있어서 인간은 인간이다. 이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평가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또 하나님을 향하여 기뻐하고 그를 예배하는 것을 생의 목적을 삼고, 또 설사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 가는 기쁨을 가지고 주 앞으로 갑니다. 이것이 신학적 인간이올시다. 이러한 역사관 역사 의식, 세계관 그 가치관 이것에 의해서 사람의 가치 존재가, 혹은 조그마한 현실 사건 앞에서도 사람의 모습이 거기서 완연하게 다르게 표출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과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고난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여러분은 이것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의미로 소화하고 있습니까 여기서 또한 인간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 한 분이 요새 같이 이렇게 어려운 때인데 특별히 러시아를 왔다갔다하면서 바삐 다니더라고요. 늘 전화 걸어보면 거기 갔다고 없어요. "러시아는 왜 다닙니까아시는대로 나는 사업가니까 돈 벌러 다니지요." 러시아가 지금 인플레가 50%, 100% 막 뛰고 경제가 몹시 혼란한데 거기를 무엇 하러 다니느냐고 그랬더니 "목사님, 목사님은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는 전문이지만 돈 버는 것은 제가 전문입니다. 그건 얘기하지 마세요. 돈이란 혼란기에 버는 겁니다. 안정 됐다면 벌써 끝난 겁니다. 진짜 돈은 어려운 때에 벌어야 됩니다. 위기가 적기입니다." 그 말에 제가 할 말이 없어요. 여러분 돈 벌고 싶습니까 지금이 적기입니다. 이 역사 그 겉으로만 봐서는 안돼요. 그 깊은 곳에 흐름이 있습니다. 도대체 깊은 세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또 이 흐름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까 지나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잠깐 들은 비유적인 말씀이지만은 예수님의 세계관과 역사의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역사, 혼란한 현실, 이 모든 것을 보시면서 '역사는 농사다!' 이렇게 이해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농부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농사꾼의 농사하는 그러한 것으로 운행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추수기다!' 이랬어요. '농사하는 중에 지금은 추수 때다!' 이렇게 예수님은 보고 계십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의 그 현실을 보면서 예수님 말씀이 '아! 추수 때가 됐다.' 이렇게 보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치고 또 그리고 병자를 고치고. 왜요 추수하기 위해서 거둬들이느라고 이렇게 애썼더라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추수 때라고 하는 것은 아주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외상으로 나타난 이 현실을 보신게 아니라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심령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영적 상태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무르익었어요. 지금 막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어요. 이것을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 하나를 우물가에서 만나서 전도를 합니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딱 한마디 말했는데 이 사람이 예수를 믿어요. 예수를 영접하고 그렇게 기뻐합니다. 그리고 동리 방에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이렇게 전도를 합니다. 그랬더니 또 동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뵈올려고 그 먼 거리에서, 뜨거운 햇빛에 다 나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예수님께로 오는 것을 보시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세요.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게 예수님의 세계관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휘어져 추수 때가 되었도다." 예수님이 그렇게 보셨어요. 얼마나 갈급하고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목자 없는 양 같이 헤매다가 이제 주의 음성이 들려질 때에 다 그 주님 앞으로 몰려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추수 때가 되었도다.' 이런 말씀이요. 그건 영적으로 추수, 가을이 됐다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농부요, 우리는 하나님의 포도원이요, 또 역사는 그의 농사 길이다.'하는 말씀이올시다. 여러분 농사하는 이치를 아십니까 농사할 때는 먼저 종자가 있어야 됩니다. 이건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종자의 생명력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농사하느라고 발버둥을 쳐도 종자, 좋은 종자가 없으면 안돼요. 이건 하나님이 주시는 종자, 그 종자를 뿌리는 일에 또 혹은 종자를 심는 일에 농부의 수고가 있습니다. 봄에 나가서 밭을 갈고 돌을 제하고 그 다음에 씨 뿌리는 그 작업, 굉장히 힘든 일이올시다. 그러나 이것은 첫 번째 단계요. 두 번째 단계는 또 가꾸는 겁니다. 씨를 뿌렸다고 내버려두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가서 김도 메야 되지요, 혹은 어떤 때 햇빛이 뜨거우면 덮주어야 되지요. 아주 어린아이를 키우듯이 정성을 다해야 됩니다. 특별히 거기에 잡초가 났을 때에 계속 김을 메는데 어떤 것은 두 번 메지만은 어떤 것은 세 번, 네 번 메야 됩니다. 더구나 이 조밭 같은 것은 조가 이렇게 높이 자랐을 때에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 김을 메면은 사람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땅 기운이 올라오는 데서 김을 맵니다. 손으로 풀을 뜯고 김을 이렇게 하는 것, 그거 해보지 않고는 모르겠는데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가꾸어 나갑니다. 우스운 얘기입니다 만은 바로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제 어머니가 늘 이렇게 손톱을 깎을 때가 있는데 손톱깎이로 깎는 것이 아니고요 가위로 깎아요. 그것도 딱 쥐고요, 손톱을 양쪽 귀퉁이만 깎아요. 가운데는 깎지를 않으세요. 왜요! 깎을 필요가 없어요. 다 닳아 없어져서. "나는 한 평생 손톱을 가운데를 잘라 본 일이 없다"고 그랬어요. 하도 일을 많이 일을 해서 다 닳아 없어지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누구든 간에 손톱 길은 여자는 제가 좋아 안 해요. 뭐 좋아해도 별일 없지만은… 손톱 기르고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어요. 그건 나 일 안 한다 그 소리인데 영 나는 그런 사람은 쳐다보고 싶지 않아요. 왜요 손톱이 다 닳아 없어지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에요. 자, 이렇게 수고해서 그 농사일을 하는 거예요. 가꾸어야 돼요. 가꾸는데 온 정성을 기울여, 이 수고입니다. 소망 중의 가을이 올 것을 생각하며 이 고생을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요 또 있지요. 이제 가을에 가면 추수를 합니다. 사실 이 추수하는 것도 아주 힘듭니다. 나가서 새벽부터 계속 낫으로 베어 들여야 되고 걷어들여야 되고 아주 힘든 일이지만은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 추수하는 것은 기쁩니다. 추수하는 것은 힘들지가 않습니다. 씨 뿌리는 수고와 가꾸는 수고하고 비교할 수가 없어요. 가을은 축제요. 추수할 때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모두가 내 곡식이던 남의 곡식이던 내 밭이던 남의 밭이던 다같이 기쁜 마음으로 거둬들이는 겁니다. 이 추수하는 기쁨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추수케 해서 추수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도 북한에 갔을 때 농사가 어떻게 잘 됐나, 늘 걱정이 돼서 들에 나가 보았습니다. 근데 잘 안됐어요. 거기에 한국에서 가신 옥수수 박사, 이름은 대지 않겠습니다만은 유명한 옥수수 박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가 계시는데 거기서 여러 번 뵀어요. "그래 농사가 잘 됐어요" 그랬더니 "아이고 목사님, 아 여기다가 좋은 종자를 갔다 뿌렸는데 잘 자라나서 됐다 했더니 굵게 옥수수가 잘 자라서 성공했다 싶었는데 가을에 가서 옥수수 이삭이 안 나오고 말았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거 왜 그랬소" 그랬더니 "땅 기운이 모자라요." 그래요. 땅에 영양이 모자라서 잘 자라가지고 끝에 가서 이삭이 안 나오고 말았어요. 이래서 가슴 아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싹이 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를 주시고 또 은혜 주셔서 마지막에 이삭이 나오고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여기까지 계속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해서야 곡식을 거둬들일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여기서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은 추수기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렸고,그 동안에 가꾸었어요. 많은 수고를 해서 이제 가꿀 때가 왔다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 믿는 거 거저 믿게 됐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기에 엄청난 하나님의 이미 주신 은혜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순교를 당했습니까!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이 있는 겁니다. 제 가정 얘기만 하더라도 저희 할아버지가 한 오십 리 근처에 있는 송촌, 소래 송촌이라는 데서 선교사를 만나서 예수를 믿었답니다. 그리고 상투를 자르고 집에 돌아왔더니 저희 할아버지가 3대 독자인대도 불구하고 얼마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주 매질을 하며 나가라 그래서 쫓겨나서 한달 후에야 집에 들어갔다 그래요. 그리고 그 고향에서부터 교회까지가 오십 리입니다. 이렇게 먼길을, 오십 리 길이면은 적어도 네 시간을 걸어야 됩니다. 네 시간을 걸어서 교회에 가는데 그렇게 7년 동안 교회를 다녔어요. 네 시간 걸어서 그리고 열심히 기도해서 자기 사는 고향에다가 교회를 세웠어요. 옛날에 이렇게 예수 믿었어요. 많은 핍박받아 가면서 많이 죽어가면서 예수 믿어서 터를 닦아 놓았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추수하게 하셔서 오늘과 같은 우리의 교회가 있고, 우리 교회 신앙 생활이 있는 거예요. 제가 인천에서 목회 할 때만 해도 15년을 목회하면서 늘 괴로웠던 것은 뭐냐하면 많은 사람이 교회 나오고 있지만은 자세히 조사해 보면 생전 처음 나오는 사람이 몇 사람이 없어요. 난 그걸 반가워서 특별히 찾아 방문하고 이렇게 해 보았습니다만은 정말 몇 사람 없습니다. 생전 처음 나오는 사람은 다 다른 교회 있다가 오기도 하고, 이사 오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 순수한 첫 교인이 많지 않은데 제가 이 소망교회에서 놀란 것은 뭐 그렇게 그때처럼 열심히 방문하고 목회 하는 것도 아닌데도 저희 교회 나오는 전체 중에 통계학적으로 보면 65%가 처음 믿는사람이에요. 원래 목회학에서는 5%만 돼도 성공적인 목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계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학자들이 세계에 다닐 때마다 소망교회는 65%가 Conversion member, 처음 회심 교인이 있다, 이걸 자랑합니다. 사실 자랑할 만한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무르익은 겁니다. 누가 특별히 수고해서 된 것이 아니에요. 이미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경륜 속에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가 오늘 우리는 여기서 추수하는 것이에요. 거두어들이는 것 뿐이요.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 전 얘기입니다만 한국 모 대학의 총장으로 계시던 분이 임종하게 되셨다고 그래요. 물론 교회 나오는 분은 아니에요. 제가 소개받아서 꼭 와달라고 해서 꼭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가 보았더니 말씀을 못 하세요. 종이를 들고 유언을 하시려고 종이에다 글로 쓰는데 놀라운 것은 "제가 유아세례 교인이요, 장로 아들입니다." 한번도 교회에 안 나왔대요. 그 부인 말씀이 이 사람이 교인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대요.
그런데 유언하시라고 그랬더니 첫 마디가 '예수 잘 믿어라.' 딱 끝났어요. 이 사람 하나가 예수 믿게 하기 위해서 많은 역사가 있었어요. 어쩌면 그분이 병원에 있지 않았다면 끝내 예수를 안 믿고 갔을는지도 몰라요. 모든 여건을 많은 희생을 많은 땀을 다 보내서 나 하나를 하나님의 사람 되게 했다는 걸 잊지 말아야 돼요. 추수해요. 거두어들이는 거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나 외의 누군가의 수고가 여기에 있었다는 말씀이지요. 요한복음 4장 37절에 보면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를 노력하지 아니 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들은 그 노력한 것에 참예했느니라." 오늘 내가 한 수고를 너무 과장하지 마세요. 과대평가하지 마세요. 이 일이 하나 이루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많은 수고와 피땀과 희생이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 자리에서 거두어들이는 것 뿐이요. 이 추수라고 하는 것은 수고는 수고요, 땀은 땀이요 희생은 수고로되, 이것은 기쁜 것이요 행복한 수고요, 은사적 수고입니다. 우리가 지금 수고하고 있는 것은 은사적이요 행복한 수고입니다. 여러분, 어떤 수고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신 일이요, 고맙게도 추수의 기쁨에 동참하는 그 시점에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정치사회 모든 것에 혼란이 있습니다. 세대가 끝나고 무너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역사는 이제 시작이요, 이제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추수 때가 되어서 휘어져 들판이 누렇게 익었단 말입니다. 이제 서둘러 거두어들여야겠다고 재촉하십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영적으로 보세요. 가끔 그런 얘기를 하고 간증합니다만은 아시는 대로 저희 교회가 이렇게 나오다가 지난 3월 달에 만부득이 너무 자리가 좁아서 5부 예배를 보자 그랬어요. 5부 예배 볼 때 제 생각에는 한 300명 나올라나 그랬어요. 우리 교인들도 걱정이 돼서 너무 쓸쓸할까봐 또한번 더 참예한 분들도 계세요. 걱정이 되서.
그런데 웬일이요, 5부 예배 때도 그대로 꽉 찼어요. 지금 5부 예배도 여러분 2부 보는 것처럼 2층까지 꽉 차는 걸 볼 수가 있어요. 추수 때가 된 겁니다. 전 그런 생각을 해요. 요새 같은 때도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이에요. 안 그래요 하나님이 몰아 치는데 어떡할 거요. 딴 문제는 추수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누가 어려움 당할까 모르니까 빨리 달려가세요. 거두어들어야 합니다. 누가 병들었다, 빨리 방문하세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추수 때가 되었으니 일꾼을 보내소서라고 기도하라!" 여러분이 곧 그 일꾼입니다. 결실기에 왔습니다. 추수하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합니다. 한 사람을 거두어들이고 추수의 기쁨을 여러분 스스로도 가슴 깊이 만족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행복한 추수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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