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 (삼상16:6-7)
본문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사람의 눈치를 잘 봐야겠지만 우리 성도들은 나님의 눈치를 잘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이 무엇을 귀중히 보시고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파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영적 분별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1.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키가 크고 준수하고 잘생긴 사울을 기름 부어 왕을 삼았지만 왕이된 후에는 점점 교만해지고 제 고집만 내세우고 제 욕심만 부리므로 사울을 버리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명하여 이세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 중에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세의 집에 가서 아들들을 보자고 해서 먼저 장자 엘리압을 보니 키가 크고 잘생겨서" 과연 임금님 감이로구나"하고 기름을 부르려고 했더니 천만 뜻밖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는데 "너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을 보자고 했더니 아비나답이 들어오는데 역시 아니라고 하시고,
셋째 삼마가 들어오는데 또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이뿐이냐"고 했더니 이새는 신통치 않게 생각하고 말째 아들이 하나 더 있긴 한데 지금 들판에 양을 치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무엘은 어서 데려오라고 해서 다윗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보니까 머리 매는 수건은 질끈 동여매고 몸에는 양 노린내와 양 똥내가 몸에 베어서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도무지 왕될 사람이라고 생각이 안되었지만 하나님은 "바로 이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취하여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속 중심을 살펴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겉모습 잘 생긴 사람을 미워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중심을 관심 깊게 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취직을 해도 결혼을 해도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 하지만 하나님은 속중심을 보시니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1 진실성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가운데 '중'자와 마음 '심'자가 바로 그런 뜻이 아닙니까 겉으로는 착해 보이지만 속은 거짓된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볼품도 없고 착해 보이지도 않지만 지나볼수록 진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막둥이, 목동이었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마음에는 쏙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거짓됨이 없으시므로 진실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부모님이 보시나, 안 보시나 진실 되게 양떼를 돌보고, 그러다가 사자나 곰이 나타나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가 싸워서 양을 되찾아 오는 진실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엊그제 감리교 거물 목사님과 식사할 때 깜짝 놀랄 말을 또 들었습니다. 작년여름 곽 장로가 세무감사 받을 때 전국 장로 여름 수련회를 가졌는데 그 때 그 분한테 "금란교회는 담임목사를 바꾸어야 겠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뭐요 왜 바꿔요"했더니 얼른 "아니요, 은퇴한 다음에요"하고 얼버무리더랍니다. 그때 나는 자기를 살리려고 전국 장로들한테 온 힘을 다해 호소하고 장관들과 안기부장을 두세 번이나 만나면서 온갖 힘을 다 쏟고 다니는데 자기는 나를 음해하며 내쫓을 생각을 하고 다녔으니 얼마나 겉다르고 속이 다른 배신자입니까 하나님은 그 배신자, 위선자를 척결 해 주시려고 치시는 것인데 그때에 구속되거나 부도나게 뒀으면 오늘날 이 고통은 안 당할 것인데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살려 주려고만 애쓰고 명성 교회에서 돈 30억까지 빌려다가 부도를 막아 주었으니 얼마나 제가 어리석었습니까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를 하나님은 제일 가증히 여기십니다.
2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충성심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충"자는 가운데 '중'자밑에 마음 '심'자요. 말씀 '언'변에 이룰 '성'자인데 괴로우나 즐거우나 이익이 오거나 손해가 오거나 변함없이 변절하지 않고 충성하는 것을 하나님은 귀중히 보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부모 형제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사자나 곰이 나타나 위태할 때에도 도망치지 않고 충성을 다 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적으로도 시험이 오고 어려운 일 당할 때 정말로 충성된 자가 돋보입니다. 마치 기차가 캄캄한 터널을 지날 때 전등불이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제 잇속만 차리고 제 명예만 앞세우면서 껍데기로만 믿던 사람은 그가 집사든지, 장로든지, 목사든지 언젠가는 본색이 드러나고 마침내 지옥 불에 던지워집니다. 따라서 진실한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약속한 바를 어떤 손해가 와도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변절하지도 않고 변덕을 부리지도 않습니다.(민수기 30장 2절, 신명기 23장 21-23절, 요한계시록 2장 10절, 에베소서 6장 24절)
2. 사람은 행위의 결과만 보지만 하나님은 숨은 동기를 먼저 보십니다. 사람은 눈앞에 본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전에 그 마음과 생각 속에 숨은 동기를 살펴보십니다. 사람들은 동기가 불순해도 결과적으로 나타난 행위만 중요하게 보지만 하나님은 숨은 동기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구약은 외적이요 형식적이라 한다면, 신약은 내면적이요 영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마음에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미워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살인죄를 지은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에 또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죄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숨은 동기를 더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편 139편 23-24절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시니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시편 51편 6절에는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로 알게 하시리이다" 중심에 진실한데서 나오는 것이라야 참된 지혜라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성전에 앉아 많은 사람들이 헌금 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이 사람들 중에 헌금을 가장 많이 드린 사람이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부는 구차한 중에 그날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는 정성이 가장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은 육신을 귀중히 보지만 하나님은 영혼을 더 귀중히 보십니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말씀은 이 지구상에 있는 금. 은 보화를 여의도 광장에 다 모아 쌓아 놓아도 그 옆에 거지같은 아이의 영혼이 더 귀중히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계란 껍질이 중요하지만, 흰자위가 더 중요하고, 흰자위보다 노른자위가 더 중한 것처럼 육신도 귀하지만 그의 영혼 즉 정신이 더 중요한 혼보다 영원히 사는 영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도 육신적 믿음이 있고 혼적인 믿음이 있고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기도와 찬송도 영적인 것이어야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영적 믿음은
1 보이는 것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폭풍이 몰아쳐서 탄 배가 금방 뒤집힐 것같아도 그 물결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육지로 지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낳는 것입니다. 12명의 정탐꾼 중에 10명은 눈에 보이는 철옹 성벽 같은 여리고성을 보고 실망 낙담했지만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 앞에는 여리고 성도 종잇장 하나에 지나지 않게 보고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도 하나님 앞에는 메뚜기 새끼만도 못하게 보고 "어서 갑시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하고 긍정적인 말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굳세게 의지하는 다윗은 눈앞에 무서운 사자가 나타날 때나 곰이 나타날 떼나 무적의 장수 골리앗이나 다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는 고뿔 감기나 암병이나 같은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로다" 했고 히브리서 11장 1절에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2 영적인 믿음의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감정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감정의 지배를 받지는 않습니다. 감정이나 느낌이나 기분에 의해 좌우되면 아직 온전한 영적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에 성령님의 불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설교를 하거나 기도를 할 때 꼭 뜨끈, 화끈해야 "아하 하나님이 임재하셨구나"하는 믿음이 생기고 병자를 위해 기도 할 때에도 뜨끈 화끈한 무엇이 느껴지면 "병이 낫겠구나"하는 확신을 가졌지만 성숙한 귀에는 그런 느낌이 없이도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곤 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귀는 느낌을 가지고 우리를 속이려들때가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나 느낌에 좌우되지 말아야 마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3 영적인 믿음은 계산과 타산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타산이나 이론은 흔히 혼에 속한 것이지 영에 속한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계산을 앞세운 가룟유다에게는 영적인 믿음의 소유자 마리아의 옥합을 깨뜨려 붓는 행위가 못마땅했습니다. 대번에 화를 내면서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좋을 텐데 왜 허비하느냐" 책망했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믿음의 소유자 마리아를 칭찬하시고 가룟유다는 책망했습니다. 영적인 믿음의 단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타산만 앞세우기 때문에 아까워서 생전 십일조나 정성어린 감사 헌금을 한번도 못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은 빚을 져도 굶어도 십일조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계산이나 혼적인 생각은 유익 되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육신이 잘되는 것보다 영원한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때로는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과 고난을 허락 하실 때가 많습니다. 육신이 편안하고 물질적으로 풍부해지면 영혼은 쇠퇴하게 되고 기도에 게을리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1.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키가 크고 준수하고 잘생긴 사울을 기름 부어 왕을 삼았지만 왕이된 후에는 점점 교만해지고 제 고집만 내세우고 제 욕심만 부리므로 사울을 버리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명하여 이세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 중에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세의 집에 가서 아들들을 보자고 해서 먼저 장자 엘리압을 보니 키가 크고 잘생겨서" 과연 임금님 감이로구나"하고 기름을 부르려고 했더니 천만 뜻밖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는데 "너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을 보자고 했더니 아비나답이 들어오는데 역시 아니라고 하시고,
셋째 삼마가 들어오는데 또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이뿐이냐"고 했더니 이새는 신통치 않게 생각하고 말째 아들이 하나 더 있긴 한데 지금 들판에 양을 치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무엘은 어서 데려오라고 해서 다윗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보니까 머리 매는 수건은 질끈 동여매고 몸에는 양 노린내와 양 똥내가 몸에 베어서 냄새가 진동했을 것입니다. 도무지 왕될 사람이라고 생각이 안되었지만 하나님은 "바로 이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름을 취하여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속 중심을 살펴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겉모습 잘 생긴 사람을 미워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중심을 관심 깊게 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취직을 해도 결혼을 해도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 하지만 하나님은 속중심을 보시니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1 진실성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가운데 '중'자와 마음 '심'자가 바로 그런 뜻이 아닙니까 겉으로는 착해 보이지만 속은 거짓된 사람이 있고 겉으로는 볼품도 없고 착해 보이지도 않지만 지나볼수록 진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막둥이, 목동이었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마음에는 쏙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거짓됨이 없으시므로 진실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다윗은 부모님이 보시나, 안 보시나 진실 되게 양떼를 돌보고, 그러다가 사자나 곰이 나타나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가 싸워서 양을 되찾아 오는 진실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엊그제 감리교 거물 목사님과 식사할 때 깜짝 놀랄 말을 또 들었습니다. 작년여름 곽 장로가 세무감사 받을 때 전국 장로 여름 수련회를 가졌는데 그 때 그 분한테 "금란교회는 담임목사를 바꾸어야 겠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뭐요 왜 바꿔요"했더니 얼른 "아니요, 은퇴한 다음에요"하고 얼버무리더랍니다. 그때 나는 자기를 살리려고 전국 장로들한테 온 힘을 다해 호소하고 장관들과 안기부장을 두세 번이나 만나면서 온갖 힘을 다 쏟고 다니는데 자기는 나를 음해하며 내쫓을 생각을 하고 다녔으니 얼마나 겉다르고 속이 다른 배신자입니까 하나님은 그 배신자, 위선자를 척결 해 주시려고 치시는 것인데 그때에 구속되거나 부도나게 뒀으면 오늘날 이 고통은 안 당할 것인데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살려 주려고만 애쓰고 명성 교회에서 돈 30억까지 빌려다가 부도를 막아 주었으니 얼마나 제가 어리석었습니까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를 하나님은 제일 가증히 여기십니다.
2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충성심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충"자는 가운데 '중'자밑에 마음 '심'자요. 말씀 '언'변에 이룰 '성'자인데 괴로우나 즐거우나 이익이 오거나 손해가 오거나 변함없이 변절하지 않고 충성하는 것을 하나님은 귀중히 보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부모 형제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사자나 곰이 나타나 위태할 때에도 도망치지 않고 충성을 다 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적으로도 시험이 오고 어려운 일 당할 때 정말로 충성된 자가 돋보입니다. 마치 기차가 캄캄한 터널을 지날 때 전등불이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제 잇속만 차리고 제 명예만 앞세우면서 껍데기로만 믿던 사람은 그가 집사든지, 장로든지, 목사든지 언젠가는 본색이 드러나고 마침내 지옥 불에 던지워집니다. 따라서 진실한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약속한 바를 어떤 손해가 와도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변절하지도 않고 변덕을 부리지도 않습니다.(민수기 30장 2절, 신명기 23장 21-23절, 요한계시록 2장 10절, 에베소서 6장 24절)
2. 사람은 행위의 결과만 보지만 하나님은 숨은 동기를 먼저 보십니다. 사람은 눈앞에 본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전에 그 마음과 생각 속에 숨은 동기를 살펴보십니다. 사람들은 동기가 불순해도 결과적으로 나타난 행위만 중요하게 보지만 하나님은 숨은 동기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구약은 외적이요 형식적이라 한다면, 신약은 내면적이요 영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마음에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미워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살인죄를 지은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에 또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죄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숨은 동기를 더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편 139편 23-24절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시니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시편 51편 6절에는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로 알게 하시리이다" 중심에 진실한데서 나오는 것이라야 참된 지혜라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성전에 앉아 많은 사람들이 헌금 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이 사람들 중에 헌금을 가장 많이 드린 사람이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부는 구차한 중에 그날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는 정성이 가장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은 육신을 귀중히 보지만 하나님은 영혼을 더 귀중히 보십니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말씀은 이 지구상에 있는 금. 은 보화를 여의도 광장에 다 모아 쌓아 놓아도 그 옆에 거지같은 아이의 영혼이 더 귀중히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계란 껍질이 중요하지만, 흰자위가 더 중요하고, 흰자위보다 노른자위가 더 중한 것처럼 육신도 귀하지만 그의 영혼 즉 정신이 더 중요한 혼보다 영원히 사는 영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도 육신적 믿음이 있고 혼적인 믿음이 있고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기도와 찬송도 영적인 것이어야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영적 믿음은
1 보이는 것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폭풍이 몰아쳐서 탄 배가 금방 뒤집힐 것같아도 그 물결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육지로 지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낳는 것입니다. 12명의 정탐꾼 중에 10명은 눈에 보이는 철옹 성벽 같은 여리고성을 보고 실망 낙담했지만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 앞에는 여리고 성도 종잇장 하나에 지나지 않게 보고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도 하나님 앞에는 메뚜기 새끼만도 못하게 보고 "어서 갑시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하고 긍정적인 말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굳세게 의지하는 다윗은 눈앞에 무서운 사자가 나타날 때나 곰이 나타날 떼나 무적의 장수 골리앗이나 다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는 고뿔 감기나 암병이나 같은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로다" 했고 히브리서 11장 1절에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2 영적인 믿음의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감정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감정의 지배를 받지는 않습니다. 감정이나 느낌이나 기분에 의해 좌우되면 아직 온전한 영적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에 성령님의 불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설교를 하거나 기도를 할 때 꼭 뜨끈, 화끈해야 "아하 하나님이 임재하셨구나"하는 믿음이 생기고 병자를 위해 기도 할 때에도 뜨끈 화끈한 무엇이 느껴지면 "병이 낫겠구나"하는 확신을 가졌지만 성숙한 귀에는 그런 느낌이 없이도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곤 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귀는 느낌을 가지고 우리를 속이려들때가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나 느낌에 좌우되지 말아야 마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3 영적인 믿음은 계산과 타산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타산이나 이론은 흔히 혼에 속한 것이지 영에 속한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계산을 앞세운 가룟유다에게는 영적인 믿음의 소유자 마리아의 옥합을 깨뜨려 붓는 행위가 못마땅했습니다. 대번에 화를 내면서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좋을 텐데 왜 허비하느냐" 책망했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믿음의 소유자 마리아를 칭찬하시고 가룟유다는 책망했습니다. 영적인 믿음의 단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타산만 앞세우기 때문에 아까워서 생전 십일조나 정성어린 감사 헌금을 한번도 못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은 빚을 져도 굶어도 십일조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계산이나 혼적인 생각은 유익 되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육신이 잘되는 것보다 영원한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때로는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과 고난을 허락 하실 때가 많습니다. 육신이 편안하고 물질적으로 풍부해지면 영혼은 쇠퇴하게 되고 기도에 게을리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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