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가꾸라 (삼하16:5-14)
본문
저는 화장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뭐 그렇다고 요란하게 덕지덕 지 화장하는 걸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은은하면서도 그 사람의 멋이 한껏 드러나는 화장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겉만 화장하는데 있지요. 인격과 내면적인 아름다 움을 뒷받침되지 않는 데, 겉만 두들겨 화장을 한다고 아름다워 집니까 집안도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집을 가보면 지뢰 밟듯이 해야 합니다. 그냥 막 어지럽혀져 있습니다. 그냥 대충 사는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도 덩달아 삶의 의욕이 없어집니다. 삶의 질서도 혼 란스러운 집 같습니다. 어떤 집을 방문하면 깨끗합니다. 호텔에 온 기분이고, 깔끔한 레스토랑에 온 기분입니다.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이런 집을 방문하면 삶의 의욕이 솟습니다. 사람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있는 것을 망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있는 것을 겨우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없는 것 도 가꾸는 사람입니다. 사실 뭐 집안을 깨끗이 하는 사람이 감동적일 때는 월세방일 때 입니다. 이런 사람은 60평을 줘도 잘 가꿉니다. 월세방을 잘 안 가꾸는 사람은 120평을 주면 다 쓰레기 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실 미모가 좀 뛰어나면 화장을 안 해도 예쁩니다. 그렇지만 미 모는 좀 떨어지지만, 늘 가꾸려고 애쓰는 사람이 더 감동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게 없는 데, 뭘 가꿔! 내 남편 이 저 모양인데 뭘 가꿔! 우리 집안은 이미 틀린 집안인데 뭐 더 노력을 해! 지금 마음이 괴로워 딱 줄을 지경인데 가꾸기는 뭘 가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어려울 때, 형편이 안될 때일 수록 자기의 삶을 열심히 가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있는 것도 까먹는 사람도 있고, 없는 것도 가꿔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와 같이 대비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과 다윗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삶을 가꾸지 못하고 망가트렸습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 사울은 용모가 준수했습니다. 키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컸습니다.(삼상10:23) 그의 정치생활 은, 처음에는 백성들에게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 냐' 하고 멸시를 당했지만 이내 암몬과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 고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이 때가 사울의 나이 사 십입니다. 이후로는 아주 탄탄대로였습니다. 블레셋과 아말렉의 전투에서도 승리합니다. 이제사울은 명실 상부한 왕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특히 왕조의 첫 임금은 태조입니다. 태조는 그것만으 로도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걸 잘 유지하고 가꾸기 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잘 가꾸지 못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 때에 너무 전황이 다급한 나머지 사무엘이 오기 를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한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투 때는 모두 진멸하라는 여호와 의 명령을 어기고 기름진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취했습니다. 두번 이나 결정적인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였더라"고 했습니다.(삼상 15:35) 잘 시작해서 망친 결과입니다. 있는 것도 망가트린 사람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장자가 중요시 되는 시대에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사무엘에게 일찍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등극하지도 못한 채 파란 만장한 도피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울의 암살을 피해 도피하는 세월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적국 블레셋으 로 망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 지 근 10년간을 도피와 망명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친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또 도피의 길에 오릅니다. 이런 악조 건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최고로 끌어 올렸습니다. 이스라 엘의 성군이 되었습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비결 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가꿨다는 데 있습니다.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호와를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가꿨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윗은 자신의 삶을 가꿨을까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삶을 가꾸는 사람 다윗은 위기 관리를 잘했습니다. 먼저는 사울과의 갈등 때에 위기 관리를 잘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은 위기 관리를 잘합니다. 상황은 어 렵습니다. 다윗은 정말 사울에게 잘 해 줬습니다. 두번이나 암살 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 왔지만 암살하지 않고 살려 주었습니다. 에인게디에서입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 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 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삼상24:6-7) 십 황무지 하길라 산에서입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 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다윗이 아비 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삼상26:8-9) 그래도 사울은 계속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 같 아서는 빨리 죽이고 왕위에 오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때는 이 미 다윗이 사울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던 때입니다. 그도 안되면 괴로운 나머지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막 나갔을지도 모릅니다. 도피의 기간, 망명의 기간이 길어질 수록 극단적인 충동이 커지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다윗은 끈질기게 기다렸습니다. 절망에 빠 지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내가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나에게 이뤄진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잘 가꿔 나갔습니다. 오히 려 주위의 동조자를 넓혀 갔습니다. 심지어는 사울왕의 아들 요 나단의 마음도 얻을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이 요나단으로 인해 죽음의 상황을 여러 번 빠져 나오게 됩니다. 그 다음은 압살롬의 반역 기간에도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잘 가 꿨습니다. 친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맨발로 울면서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꾸었습니다. 위기를 잘 관리했습니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경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자포자기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다윗의 믿음은 세 가지로 유명합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 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삼하15:24-25) 법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그 자 체가 중요한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엘리 제사장 때처럼 마음 속 중심에 하나님 경외가 없는 법궤는 오히려 패배를 불러온다는 것 을 누구보다도 잘 았았습니다.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절대믿음입니다. 다윗은 그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둘째는 시므이가 도피길의 다윗왕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할 때에 하나님의 징계로 알고 그를 칼로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 려 시므이의 소리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궁 지에 몰리면 공격적이 됩니다. 더구나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에게 관대할 수 없는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모든 인간의 감 정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 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 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 하고 "(삼하16:9-10)
셋째는 압살롬을 원수로 갚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삼하18:11-12)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압살롬이 말타다가 상수리 나 무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다는 것을 보고한 사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 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 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절대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울의 암살에 시달 릴 때도 그랬습니다. 다윗의 철칙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윗은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납니다. 위기를 어떻게 관리 하느냐가 그 사람의 용량입니다. 신앙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코 너에 몰렸을 때, 하나님의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 진짜 말씀의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 자신의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범죄의 순간에 자신의 삶을 잘 가꾸는 사람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나서, 처절한 회개를 통한 자신 의 삶을 잘 회복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암몬 등 주변 나라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수 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깁니다. 이스라엘의 지경은 가장 넓어졌습니다. 남으로는 아카바항 까지 이르고, 북으로는 카데스 까지 넓 어졌습니다. 우리가 광개토 대왕을 그리워하듯이, 이스라엘은 3천 년이 지난 지금도 다윗 때의 이런 국경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부강하고 여호와의 궤도 예루살렘에 안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왕성한 국가 경영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에도 다윗은 결정적인 범죄를 저지릅니다. 바로 암몬과의 3차 전투 중 에 밧세바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이 책망하자, 다윗은 제왕의 체면을 유지하려 고 무리수를 두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은폐하거나 변명하지도 않 았습니다. 즉시 회개했습니다. 통곡하며 눈물로 침상을 띄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삶을 잘 가꾸는 자 입니다. 베드로도 그 랬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영 실패에 집착해 있었습니다. 한 번 실수에 헤어나질 못합니다. 단 한번 실수가 일평생을 망치는 유형입니다. 한번 곤두박질 치면 영 삶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 입니다. 성경에 한 번 실 수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은, 실패의 순간에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실패에서 실패로 끝나 침 몰하는 자가 있습니다. 무기력한 자입니다. 큰 실패에도 불구하고 딛고 일어나는 자가 있습니다.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후 자에 속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뼈아픈 회개를 했는가는 시편 51 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 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 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 (시51:1-4)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때문에 실패의 순간에는 회개하는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회개야말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 가장 풍성하게 가꾸는 지름길입니다. 왜요 깨끗하게 씻는 것 이니까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패를 회개하는 사람 은, 늘 깨끗하고 신선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꽂을 가꾸는 데도 가지치기를 잘 해 주어야 합니다. 개를 기를 때도 털을 잘 깎아 주고, 목욕을 잘 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깊은 회개는 우리의 사람을 신선하고 깨끗 하게 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회개로 가꾸어야 합니다. 사람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있는 것을 망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있는 그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없는 것도 가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사울쪽입니까 다윗 쪽입니까 주신 은총을 망가트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척박한 환경도 가꿔서 풍성히 하는 사람입니까 한번의 실패에 영영 침몰하는 실패자입 니까 아니면, 큰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총을 덧입고 일어 서는 오뚝이입니까 주님은 이 시간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여러분의 삶을 끝까지 믿음으로 가꾸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죄 악을 저지르고서도 포기하지 말고 회개의 삶을 가꾸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믿음의 삶을 가꾸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큰 은총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런 승리가 여러분의 한 주간 에 사람에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겉만 화장하는데 있지요. 인격과 내면적인 아름다 움을 뒷받침되지 않는 데, 겉만 두들겨 화장을 한다고 아름다워 집니까 집안도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집을 가보면 지뢰 밟듯이 해야 합니다. 그냥 막 어지럽혀져 있습니다. 그냥 대충 사는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도 덩달아 삶의 의욕이 없어집니다. 삶의 질서도 혼 란스러운 집 같습니다. 어떤 집을 방문하면 깨끗합니다. 호텔에 온 기분이고, 깔끔한 레스토랑에 온 기분입니다.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이런 집을 방문하면 삶의 의욕이 솟습니다. 사람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있는 것을 망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있는 것을 겨우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없는 것 도 가꾸는 사람입니다. 사실 뭐 집안을 깨끗이 하는 사람이 감동적일 때는 월세방일 때 입니다. 이런 사람은 60평을 줘도 잘 가꿉니다. 월세방을 잘 안 가꾸는 사람은 120평을 주면 다 쓰레기 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실 미모가 좀 뛰어나면 화장을 안 해도 예쁩니다. 그렇지만 미 모는 좀 떨어지지만, 늘 가꾸려고 애쓰는 사람이 더 감동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게 없는 데, 뭘 가꿔! 내 남편 이 저 모양인데 뭘 가꿔! 우리 집안은 이미 틀린 집안인데 뭐 더 노력을 해! 지금 마음이 괴로워 딱 줄을 지경인데 가꾸기는 뭘 가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어려울 때, 형편이 안될 때일 수록 자기의 삶을 열심히 가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있는 것도 까먹는 사람도 있고, 없는 것도 가꿔서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와 같이 대비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과 다윗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삶을 가꾸지 못하고 망가트렸습니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 사울은 용모가 준수했습니다. 키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컸습니다.(삼상10:23) 그의 정치생활 은, 처음에는 백성들에게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 냐' 하고 멸시를 당했지만 이내 암몬과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 고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이 때가 사울의 나이 사 십입니다. 이후로는 아주 탄탄대로였습니다. 블레셋과 아말렉의 전투에서도 승리합니다. 이제사울은 명실 상부한 왕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특히 왕조의 첫 임금은 태조입니다. 태조는 그것만으 로도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걸 잘 유지하고 가꾸기 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잘 가꾸지 못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 때에 너무 전황이 다급한 나머지 사무엘이 오기 를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한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투 때는 모두 진멸하라는 여호와 의 명령을 어기고 기름진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취했습니다. 두번 이나 결정적인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였더라"고 했습니다.(삼상 15:35) 잘 시작해서 망친 결과입니다. 있는 것도 망가트린 사람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다윗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장자가 중요시 되는 시대에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사무엘에게 일찍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등극하지도 못한 채 파란 만장한 도피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울의 암살을 피해 도피하는 세월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적국 블레셋으 로 망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 지 근 10년간을 도피와 망명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친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또 도피의 길에 오릅니다. 이런 악조 건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최고로 끌어 올렸습니다. 이스라 엘의 성군이 되었습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비결 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가꿨다는 데 있습니다.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호와를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가꿨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윗은 자신의 삶을 가꿨을까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삶을 가꾸는 사람 다윗은 위기 관리를 잘했습니다. 먼저는 사울과의 갈등 때에 위기 관리를 잘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은 위기 관리를 잘합니다. 상황은 어 렵습니다. 다윗은 정말 사울에게 잘 해 줬습니다. 두번이나 암살 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 왔지만 암살하지 않고 살려 주었습니다. 에인게디에서입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 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 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삼상24:6-7) 십 황무지 하길라 산에서입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 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다윗이 아비 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삼상26:8-9) 그래도 사울은 계속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 같 아서는 빨리 죽이고 왕위에 오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때는 이 미 다윗이 사울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던 때입니다. 그도 안되면 괴로운 나머지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막 나갔을지도 모릅니다. 도피의 기간, 망명의 기간이 길어질 수록 극단적인 충동이 커지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다윗은 끈질기게 기다렸습니다. 절망에 빠 지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내가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나에게 이뤄진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잘 가꿔 나갔습니다. 오히 려 주위의 동조자를 넓혀 갔습니다. 심지어는 사울왕의 아들 요 나단의 마음도 얻을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이 요나단으로 인해 죽음의 상황을 여러 번 빠져 나오게 됩니다. 그 다음은 압살롬의 반역 기간에도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잘 가 꿨습니다. 친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맨발로 울면서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꾸었습니다. 위기를 잘 관리했습니다.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경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자포자기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다윗의 믿음은 세 가지로 유명합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 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삼하15:24-25) 법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그 자 체가 중요한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엘리 제사장 때처럼 마음 속 중심에 하나님 경외가 없는 법궤는 오히려 패배를 불러온다는 것 을 누구보다도 잘 았았습니다.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절대믿음입니다. 다윗은 그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둘째는 시므이가 도피길의 다윗왕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할 때에 하나님의 징계로 알고 그를 칼로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 려 시므이의 소리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궁 지에 몰리면 공격적이 됩니다. 더구나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에게 관대할 수 없는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모든 인간의 감 정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 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 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 하고 "(삼하16:9-10)
셋째는 압살롬을 원수로 갚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삼하18:11-12)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압살롬이 말타다가 상수리 나 무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다는 것을 보고한 사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 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 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절대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울의 암살에 시달 릴 때도 그랬습니다. 다윗의 철칙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윗은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납니다. 위기를 어떻게 관리 하느냐가 그 사람의 용량입니다. 신앙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코 너에 몰렸을 때, 하나님의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 진짜 말씀의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 자신의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범죄의 순간에 자신의 삶을 잘 가꾸는 사람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나서, 처절한 회개를 통한 자신 의 삶을 잘 회복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암몬 등 주변 나라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수 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깁니다. 이스라엘의 지경은 가장 넓어졌습니다. 남으로는 아카바항 까지 이르고, 북으로는 카데스 까지 넓 어졌습니다. 우리가 광개토 대왕을 그리워하듯이, 이스라엘은 3천 년이 지난 지금도 다윗 때의 이런 국경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부강하고 여호와의 궤도 예루살렘에 안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왕성한 국가 경영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에도 다윗은 결정적인 범죄를 저지릅니다. 바로 암몬과의 3차 전투 중 에 밧세바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이 책망하자, 다윗은 제왕의 체면을 유지하려 고 무리수를 두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은폐하거나 변명하지도 않 았습니다. 즉시 회개했습니다. 통곡하며 눈물로 침상을 띄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삶을 잘 가꾸는 자 입니다. 베드로도 그 랬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영 실패에 집착해 있었습니다. 한 번 실수에 헤어나질 못합니다. 단 한번 실수가 일평생을 망치는 유형입니다. 한번 곤두박질 치면 영 삶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 입니다. 성경에 한 번 실 수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은, 실패의 순간에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실패에서 실패로 끝나 침 몰하는 자가 있습니다. 무기력한 자입니다. 큰 실패에도 불구하고 딛고 일어나는 자가 있습니다. 큰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후 자에 속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뼈아픈 회개를 했는가는 시편 51 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 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 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 (시51:1-4)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때문에 실패의 순간에는 회개하는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회개야말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 가장 풍성하게 가꾸는 지름길입니다. 왜요 깨끗하게 씻는 것 이니까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패를 회개하는 사람 은, 늘 깨끗하고 신선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꽂을 가꾸는 데도 가지치기를 잘 해 주어야 합니다. 개를 기를 때도 털을 잘 깎아 주고, 목욕을 잘 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깊은 회개는 우리의 사람을 신선하고 깨끗 하게 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회개로 가꾸어야 합니다. 사람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있는 것을 망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있는 그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없는 것도 가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사울쪽입니까 다윗 쪽입니까 주신 은총을 망가트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척박한 환경도 가꿔서 풍성히 하는 사람입니까 한번의 실패에 영영 침몰하는 실패자입 니까 아니면, 큰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총을 덧입고 일어 서는 오뚝이입니까 주님은 이 시간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여러분의 삶을 끝까지 믿음으로 가꾸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죄 악을 저지르고서도 포기하지 말고 회개의 삶을 가꾸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믿음의 삶을 가꾸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큰 은총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런 승리가 여러분의 한 주간 에 사람에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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