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을 위하여 (막2:1-12)
본문
여러분 앨버트 슈바이처라는 이름을 우리는 다 기억합니다. 그가 아프리카 람바네레로 떠나가기 직전에 그가 살던 고향 도시지역 신문들은 닥터 앨버트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사실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가 좋은 의료인의 조건, 또 여러 개의 학위, 보장된 미래와 출세를 포기하고 떠나간다는 것이 그 때만 해도 굉장한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이런 결단을 하셨습니까 닥터 앨버트 슈바이처는 조용히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빚 갚기 위해서 입니다.제가 철이 들면서 생각해 보니까, 저라는 인생은 온통 빚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을 제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 저는 온통 빚지고 산 것입니다. 이제 빚 갚는 생애를 살고 싶습니다.이 말은 얼마나 실감 있는 고백입니까 여러분! 우리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내가 호흡하며 이 자리에 있기까지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 우리의 부모, 우리의 스승, 또 아니 우리가 먹고살고 존재하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이름 없는 수 많은 우리 이웃들의 헌신과 땀 흘림-그 수고 없이 오늘 여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자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하죠 나는 빚진 자라.바울은 헬라인에게도, 야만한 사람에게도, 부강한 나라에게도, 가난한 나라에게도, 이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빚지고 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바울을 지배했던 일생을 통한 삶의 동기, 그것은 빚 갚고자 하는 생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생애였다-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석양녘, 그가 살아왔던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그는 이렇게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렇다면 이 은혜에 빚지고 사는 자들 어떻게 빚을 갚을 수가 있을까요 탈무드에 보니까 이런 유명한 말이 있어요. 빚진 자들이여! 힘을 합하십시오. 그리고 누군가 당신들 곁의 한 사람에게 축복의 등불이 되어 주십시오. 결국 이것이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축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는 말씀하고 같은 말씀이지요. 오늘 본문에는 바로 그런 얘기가 기록됩니다. 네 사람의 친구가 자기의 사랑하는 한 친구가 중풍병으로 누워 미래를 잃어버리고 있었던 이 병들었던 자기의 친구를 돕기 위해서 네 명의 사람이 이 한 생명을 위하여 펼치고 있는 사랑의 드라마, 그 자선의 드라마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네 사람에게서 이웃 사랑의 실천의 모본을 발견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웃을 돕고자 할 때 어떻게 도울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으로 도울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어떻게 도울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믿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2장 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예수께서 저희의 믿음, 네 사람 네 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여기서 그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자 중풍병을 앓고 누워 있었던 자기의 친구, 이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로 오기만 한다면 예수님이 그를 도우실 것이다. 그를 고칠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생명, 그의 구원, 그의 소망이 되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이것이 바로 네 친구가 가졌던 믿음이지요 믿음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이웃들을 도우면서 산다고 하지만 도와 봤자 얼마나 도울 수가 있을까요 저는 때로 우리가 이웃들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교만한 생각의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뭘 우리가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한계를 생각할 때, 우리의 모자람을 생각할 때, 나의 나 된 인생의 원색적인 모습을, 내 실존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무엇으로 도울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 자체가 어쩌면 교만한 우리 인간의 허위의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내가 도울 수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와야 할 그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데리고 가면 주님은 이 사람을 도울 수가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그리스인들의 사랑의 사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도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이라면 그에게 도움이 되어 줄 수가 있다. 그것을 믿는다. 주님은 그의 구원, 그의 생명, 그의 소망, 그의 진정한 능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이웃을 향한 사랑의 출발점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믿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야 한다. 야고보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메시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 네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 친구를 도와줄 거다. 그러니까 주님에게 맡긴다. 기도하면 됐지 뭐.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관념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이런 믿음이야말로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친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 예수님이면 내 친구를 도와 줄 수가 있다. 내 친구는 다시 새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일어날 수가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드디어 행함으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 줬던 믿음은, 행함은 창조적인 행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우리가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 받게 되면 그 도움을 거절하는 우리들의 가장 보편적인 핑계나 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죠 도울 것이 없다. 내가 돕고 싶어도 나는 도울 것이 없다. 혹은 도울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핑계입니다.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돕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도울 길이 없다면 그 길을 만듭니다. 만들어서라도 우리는 도울 방법을 찾아내면 됩니다. 도울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예요. 자, 오늘 본문에 나타난 네 명의 친구, 사랑하는 중풍병자 친구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오고자 했어요.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는지 갈 길이 차단되고 있었잖아요. 본문의 2절을 보면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에워싸고 있었어요. 나갈 길이 없어요. 그 길이 차단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포기했습니까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있어야지. 주님 앞에 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그들은 생각합니다. 돕기를 원했기 때문에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찾아냈어요. 어떻게 찾아냈어요 주님 앞으로 직접 갈 수가 없으니까 네 친구는 서로 의논해서 지붕으로 올라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지붕을 뜯어서 자기의 사랑하는 친구를 들것에 눕히고 그리고 예수님이 계신 그 앞으로 달아 내기로 한 것입니다. 얼마나 창의적인 행동이예요. 얼마나 창조적인 행동이예요.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을까요 물론 팔레스타인 중동지방의 지붕은 한국지역의 그런 지붕처럼 그렇게 견고한 지붕은 아닙니다. 여기만 해도 열대지방이니까. 잘하면 손재주 없는 저도 팔레스타인 지붕쯤은 저도 뜯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굉장한 역사라고 생각하시면 안돼요. 그렇지만 그래도 이것은 모험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방안에 있었던 예수님을 위시한 사람들이 당황했겠어요 무례하다고 비난받아야 마땅할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친구를 살려야 한다. 우리 친구 살려야 한다. 이 한 사람의 친구를 살리기 위하여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은 이 무모하기조차 한 이 행동을 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었어요. 행함이었어요. 자, 무엇으로 도울 수가 있을까요 무엇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이웃을 도울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영적인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영적인 도움이 우선입니다. 이것을 본문이 가르칩니다. 자,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앞에 달아 내린 그 병자를 보면서 주님의 첫 번째 말씀, 제 일성이 어떤 말씀이었어요 5절같이 읽어요.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물론 이 대답은 중풍 병자가 기대 했던 대답은 아니었을 거예요. 중풍 병자가 기대한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네 병이 나았느니라. 이것은 중풍병자가 기대한 대답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중풍병자의 근본적 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필요, 병 고침보다도 육신의 병보다도 더 중요한 근본적 필요를 보신거시예요. 그 필요는 죄 사함이었어요. 여러분, 죄 사함은 인간이 부딪쳐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필요라고 믿으십니까 이 죄 사함, 인간의 불행, 인간의 허무, 인간의 방황 왜 그럴까요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 죄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고 죄 때문에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 하고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이 땅에 오신 목적, 무엇 때문에 오셨어요 자, 그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아들을 나으리니 이름을 뭐라고 하라 예수라 하라예수의 뜻이 뭡니까 구원,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구원. 그것을 위해 오신 거예요.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십자가로 가신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예요.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삶의 딜레마,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생은 성공하고도 마지막은 실패입니다. 파산입니다. 파멸입니다. 절망입니다. 심판입니다. 죄 문제 해결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거기에 서기관들이 있었는데, 서기관들이 흥분합니다. 아니, 저 사람이 누군데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가 있단 말인가흥분했어요. 그 흥분은 타당한 것이예요. 이유 있는 흥분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한가지, 뭘 몰랐습니까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지 못하면 아직도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거예요.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짊어지셨습니다.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나 대신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으시고 골고다의 언덕에 보배로운 피를 떨구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는 즉 사함이 없느니라.그의 피 흘림으로 용서받은 사실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근본문제의 해결이예요. 우리가 이웃들을 도울 때 이 복음을 가지고 이웃들에게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 근본적으로 도와주어야 할 사실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미션 바로 이 복음 전하여 사람들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사역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도움만 베푸신 것이 아니예요. 영적 도움만 베푸신 것이 아니라, 그는 육체적 도움도 간과하지 않으셨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중풍병자에게너 죄 사함 받았다. 너 천당 간다. 가장 중요한 문제해결 했으니까 그냥 가라.그러시지 않았어요. 무엇까지 해결하셨어요. 병까지. 먼저 죄 문제 해결해 주시고 그리고 어떻게 선포하십니까 그 다음에 11절 보시기 바랍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일어나라. 일어날 수 없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 12절에 보면 일어났어요 못 일어났어요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상을 가지고 주님은 거기까지 도우셨어요. 육체의 필요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으셨어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복음 전하여 사람들이 죄 사함 받고 구원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의 육체적 필요를 절대로 간과하지 않습니다. 여기 기독교의 또 하나의 미션이 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을 돌보는 일,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돕는 일 여기 또 하나의 중요한 미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여리고 길을 걸어가다 강도 맞아 쓰러진 사람, 주님은 어떻게 하기를 요구하셨습니까 그에게 가서 복음도 전해야 합니다. 복음 받아들이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러나 주님이 그 상황, 그 마당에서 칭찬하신 사건은 어떤 사건이었어요 이 복음의 미션 중요한 미션이지만 또 하나 어떤 점을 칭찬하셨습니까 그의 실제적 필요, 어떤 필요가 있었어요 상처를 싸 메는 일입니다. 그리고 강도 맞은 이 사람을 데리고 주막으로 가는 일입니다. 그를 돌봐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희들도 이와 같이 하라그리스도인들이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소명, 이웃 사랑 실천에 중요한 또 하나의 소명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정 생활 세미나를 시작하는 복된 날입니다. 동시에 오늘은 장기 기증 캠페인의 날입니다. 저는 몇 주전에 제자신의 간증을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장기 기증 운동 본부 대표 목사님을 초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드리는 이 헌신 앞에 우리 교인들 가운데 같이 드릴 수 있는 분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귀한 헌신에, 이 사역에 우리 고통받는 이웃들을 돌아보기 위해서 우리 육체의 한 부분을 내어주는 일, 우리가 육체 사용하며 한 평생을 살다가 더이상 육체가 필요하지 않은 그 마지막 시점에 도달했을 때 만약 내 눈을 이웃들에게 준다면 볼 수 없는 이웃들이 볼 수 있고 내 장기, 내 신장을 줄 수가 있다면 얼마나 사람들이 도움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오늘 아침 일어나더니 우리 와이프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해요. 여보, 당신 드린다고 그러는데 나도 뭐 받쳐야 되는데 뭐 받쳐요 그래요. 그래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당신 보니까 당신의 매력의 포인트는 눈이다. 당신의 그 매력 있는 그 눈을 받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근데 무섭대요. 상상해 보니까 무섭대요. 그때 무서운 것 깨닫지도 못할 텐데, 뭘 걱정하느냐고. 근데 제가 무식해서 눈을 다 파 가는 줄 알았는데, 오늘 아침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니까, 그게 아니라 눈은 가만히 있고 각막만 살짝 가져가는 거래요. 그 얘길 듣더니 1부 예배 후에 우리 집사람이 말하기를아이구 살았다.그러더라구요.
그렇다면 각막 바칠 수 있대요. 저는 여러분이 감상적인 결정을 하지 마십시오. 프랫셔에 의해서 결정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인도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결단을 내릴 때 항상 저해 요인이 있습니다. 항상 장애물이 있습니다. 섭섭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무덤이 있어야지 오고 그러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무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쓸 사람은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덤 속에 들어가면 어차피 썩는 건데. 그러나 내 눈 ,내 장기가 이웃들에게 쓰여진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삶의 기간 동안 거기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얼마나 축복 된 일이예요. 더욱이 저는 한국 교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교회 묘지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교회, 전국이 묘지화 되어 가고 있는데 교회까지 묘지를 갖는 것 저는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묘지 갖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 중에 어떤 분이 이만 평을 충북 괴산에 있는 땅을, 아주 아름다운 땅을 기증해 주셨어요. 저는 거기에 우리 교회 훈련의 집이 우리 교회의 다음 프로젝트로 주께서 기뻐하시는 시간 안에 아주 아름다운 훈련의 집이 세워져 그래서 우리 교인들이 와서 거기서 기도도 하고 훈련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 동산에 저는 부활의 채플을 지을 꿈을 갖고 있습니다. 될 겁니다. 부활의 채플 장기 기증한 사람들, 각막 기증한 사람들, 시신 기증한 사람들 이름을 다 써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저는 화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화장해도 괜찮아요. 화장하면 부활 못 되는 것 아니예요. 이상한 사상이 우리를 지배해서 부활사상이 꼭 무덤이 있어야만 부활한다는 생각인데, 여러분! 화장해도 부활에 조금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제가 보증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무덤까지 돌본다는 것이 힘들어요. 그러나 우리가 다 그 부활의 채플에 와서 가족들이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 거기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그래서 오늘 한국 교회가 이런 면에서 전혀 무지했을 때 이 일에 개척자적인 역할을 하신분, 많은 오해도 받으셨대요.-제가 간증을 들으면서 너무나 감동이 됐어요. 그러면서 마침내 그 많은 시련을 이기고 가장 건강한 사랑의 기증 운동 본부로서 이 땅에서 귀한 사역을 수행하고 계시는 박진탁 목사님을 오늘 모셨습니다. 나마지 시간은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나오실 때 따뜻한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박 목사를 만나면 눈을 가져간다고 그런 대는데 가까이 가면 신장을 내놔야 한다고 그러는데 많은 사람들이 저를 가까이 안 할려고 그러는데 여러분이 뜨거운 박수를 쳐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박 목사님 얘기 말고 우리 이동원 목사님 얘기 듣고 다 등록할 거니까 안심하세요. 다 그런 표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 고대 부속 병원 원목으로 한 7년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만 있으면 수술을 하는데 피가 없어서 수술을 못하는 그런 환자가 눈앞에 있어서 처음 헌혈 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1968년부터 제가 헌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장기 기증 운동을 위해서 돈을 달라고 그러면 없다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피를 달라 그러면 나는 피가 없다. 그럴 사람은 없겠지. 사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잘 되겠다.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많은 친구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만날 때마다야, 우리 오래간만이다. 우리 피 한 병 뽑자.뭐 드라큐라를 만나는 것 같대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돈은 줄 수 있어도 헌혈은 못하겠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1970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사랑하는 첫 딸을 주셨습니다. 아침에 병원에 가니까요. 밤중에 애기를 낳았대요. 신생아실에서 꿈틀거리는 어린 생명을 보는 순간 야, 저 놈한테서 피 한 병을 뽑을 수가 없을까 너만은 아빠의 뜻을 따라 주겠지. 너만은 아빠를 이해해 주겠지. 한 병을 뽑자. 그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구뇨.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아,
그런데 지금은 안돼. 16년이 빨리 16년이 지나, 그래서 이름을 제가 박 뽑기라고 지었습니다. 또 딸을 나면 또 뽑기라고 짖자. 두번째는 아들을 낳아서 제가 박 헌혈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두 아이들이 지금 다 하버드를 나와서 전부 박사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매달려서 우리 나라의 헌혈 운동이 교회가 앞장을 서서 이제사회 운동이 되어서 잘 되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는 240만 명이 헌혈을 했습니다. 이제 헌혈이 잘 되어서 적십자사가 하기로 하고 저는 장기 기증 운동에 몸을 던졌습니다. 장기를 기증한다고 하면 열 가지, 한 열 두 가지쯤 정도를 기증 할 수 있습니다. 살아서 줄 수 있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피도 장기의 일종이예요. 보편화되어 있죠. 제가 1968년부터 두 달에 한번씩 30년 가까이 헌혈을 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골수 기증 등록을 받으려고 했는데요. 시약이 떨어졌어요. 다음으로 연기했습니다. 골수에 관한 건 여러분 이런 장기 기증 핸드북을 드렸지요 잘 보시면 있습니다. 또 신장을 기증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다 누구나 자기 주먹만 한 것 두개, 옆구리 뒤쪽에 신장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낭콩 비슷하다고 그래서 콩팥이라고 합니다. 피를 맑게 하는, 우리 몸의 불순물을 걸러 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망가지면 옛날에는 방법이 없었는데요 요즘에는 동맥에서 피를 뽑아서 인공 신장기에서 깨끗케 돌려서 정맥을 통해서 집어넣는 혈액 투석이라고 하는 치료를 이틀에 한번씩, 한번에 5시간씩 병원에 가서 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의료 보험이 되고도 한 달에 4-5 십만 원씩 치료비가 들어갑니다. 물을 한 모금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소변이 나오질 않습니다. 성생활이 정지가 됩니다. 이렇게 혈액 투석을 시작했다 그러면 평균 한 10년쯤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신장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두개를 가지고 있는데 두개가 합해서 평소에 백의 기능을 하는데 한 개가 없어졌습니다. 한 3-4개월 지나는 사이에 한 개가 백의 기능을 합니다. 정말 그래요 외국에서 2백 명, 3백 명 둘 가지고 사는 사람, 하나 가지고 사는 사람 쭉 조사를 하니까 마찬가지 다 변화가 없다. 그래서 괜찮다 그럽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는 신장이 망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뇌사자가 주는 것으로 80%가 해결이 되고 가족끼리 주는 것으로 20%가 해결이 되서 해결이 됩니다마는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뇌사자 주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가끔 있죠. 그래서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없는데, 남을 위해서 사랑으로 신장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신장을 하나 줘도 괜찮다고 하니까 해 봐야지. 제 왼쪽에 있는 신장을 띄어서 91년에 남한테 준 일이 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450명 가량 정도가 순수한 사랑으로 신장을 준 일이 있었습니다. 많이 보도가 된 것을 보셨지요 그래서 가족간에 주는 것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장을 이식 받아야 할 환자들이 한 만 천명쯤 되는데 아직 멀었습니다. 남을 위해서 신장을 주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주기는 어렵지만 여러분이 오늘 가족이 돌아가시면 우리 가족 몇입니까 한 다섯 사람되지요. 우리끼리 우리 부부끼리 우리 형제끼리 우리끼리는 건강했을 때 살아가다가 불행하게 한 사람이 신장이 망가진다 할 때 우리 중에 한 사람이 준다고 약속 좀 하고 살자. 가족 캠페인을 하자 그런 얘기입니다. 딸이 아프면 엄마가 주면 되는데 열 가정 중 여덟 가정은 주는데 한 두가 정은 안 줘요. 부모가 아프면 자식이 주면 되는데 안주는 거예요. 또 부부 중에 한 사람이 띄어 주고 같이 살면 되는데. 우리 헤어지자. 헤어지는게 55%입니다. 그러지 말자고 하는 거죠. 요즘에 많은 젊은 목사들이요 걱정이 굉장히 많대요. 예수님은 몸까지 다 주셨는데 하나를 띄어 줘도 괜찮다는데 나도 줘야 되는 건가 막 기도하고 고민을 한대요. 목사님 가운데도 이런 분이 한 삼십 명 있거든요. 우리는 검은 동자 앞에 하얀 각막이라고 하는 막이 있습니다. 그래서 빛을 받아서 시신경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세상에 태어날 때는 빛을 봤는데 반드시 살아가다가 후천적으로 각막에 손상을 입어서 못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돌아가신 분의 각막을 띄어서 붙여 주면 한 일주일 입원하고 치료비 7,8십만을 들이면 다시 보게 되는 겁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앞을 못 보는 시각 장애인들이 십 육만 명이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예요. 그 중에 10%는 만 육천 명 정도는 각막만 이식을 받으면 보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각막을 기증한다고 약속을 했어요 몇 분 있겠지요. 각막을 띄어 가면 아프지 않을까 숨을 거둬 갔는데 어떻게 아픈걸 알아요 나는 시력이 시원치 않은데. 주지 않을 사람은 그러죠. 시력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나는 나이가 많은데 괜찮을까 97년 2월 17일에 중국을 지배하던 등소평이 세상을 떠나면서 93세에 각막을 주었습니다. 그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몰려가서 각막을 기증한다고 등록을 했대요. 얼마 전에 보도가 또 나왔어요. 죽어서도 중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 측근을 찾아갔습니다. 대통령 내외분께서도 언젠가 각막을 기증한다고 그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고 그랬는데 언제 답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우리 나라에서 24만 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각막이 몇 개예요. 48만개가 다 어디로 갔습니까 40만개는 땅속에다 묻고 8만개는 화장터에 가 태웠다구요. 여러분 주보 보니까 세분이 돌아가셨네요. 각막이 여섯 개가 어디로 갔습니까 어디로 갔어요. 우리가 축복 된 삶을 살다가 어디로 갑니까 하늘나라로 천국으로 이사를 갑니다. 내가 천국으로 이사 갈 때 내가 일생 동안 사용 한 것 재활용 할 수 있는 것인데 재활용하도록 주고 가자. 요즘 재활용 업이 잘 된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각막이 모자라서요 모자란다는 것이 표현이 안돼서 턱없이 모자라서 외국에서 호주에서 미국에서 각막 하나에 600불씩 수입을 해옵니다. 수입을 해서 이식을 했더니 눈이 파랗지 않고 검어서 성공을 했다. 얼마나 창피한 얘기예요. 사실이예요. 뼈를 수입해 오는 것도 200만불 어치 수입을 해와요. 4년 전에 성수대교가 무너졌었지요. 지나가던 버스가 물에 들어갔습니다. 여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습니다. 남서울 교회 그때 홍정길 목사님이 계실 때예요. 성가대원 서울교육대 3학년 이승연양이 학생이었는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연락을 해 왔어요. 우리 딸이 세상을 떠나서 대학교 1학년 때 각막을 기증한다고 등록을 했으니까 어서 각막을 띄어 가세요. 의사가 가는 거예요. 의사가 가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의사들이 자꾸 얼굴을 살펴보더니 진찰을 해 보더니 각막이 못 쓰게 되었대요. 물 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 동안에 못쓰게 되었대요. 여러분, 운명하시면 눈을 이렇게 감겨 주지요 운명한 뒤에 한 두시간만 눈을 안 감겨 주면 그 동안에 각막이 못쓰게 된대요. 어머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 몰라요. 우리 딸의 유언인데 각막이 못 쓰게 되어서 어떻게 하느냐구요. 저를 붙들고 그러면 다른 거 뭘 기증할 수 있는게 뭐가 있어요 손을 꼭 잡고 어머님! 시신도 기증할 수 있어요. 그럼 시신을 기증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로 시신을 의과 대학에 기증했습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서울시 공무원을 막 붙잡고 우리 딸을 살려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이 어머니가요 시신을 붙들고 시신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고 딸을 불러 가신 것도 하나님인데 우리 예쁜 딸이 21년 동안 엄마 곁에서 웃으면서 살아준 것만도 감사하지요. 감사하다고 우는 거예요. 죽음을 사랑으로 극복한 어머니라고 사회면 1면 톱으로 전부 났습니다. 육개월이 지난 후에 2억 5천 보상금을 받았는데 교회장학금으로 내 놓았어요. 의과대학에서는 두 학생이 시신 한 그루를 가지고 공부를 해야 되는데 서울대학에서는 30명이 시신 한 그루를 가지고 공부한다고 해요. 그래서는 좋은 의사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오진 율이 많다. 내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지음 받은 것인데 내가 일생 사는 동안 내 몸을 내가 관리할 책임만 있었는데 이제 관리할 책임이 없어졌으니까. 묻어서 20년이면 파보면 아무 것도 없는데, 화장해서 재를 뿌리지 말고 시신을 의과 대학에 기증함으로 인해서 좋은 의사를 만들어 낸다고 하면 그 한 의사가 수 천명의 건강을 돌보지 않겠느냐. 그래서 우리는 사는 날까지만 걱정하고 죽은 다음에는 걱정하지 말고 706-0101로 전화해서 다 가져 가십시오. 그래 버리면 좋다. 우리 나라에는 묘가 2천만 개가 있습니다. 일년에 여의도 두 개 만한 땅이 없어집니다. 여러분 여행하시다 보면 양지바른 곳에 전부 묘가 있죠. 언제까지 그럴 것이냐. 앞에 앉으신 장로님 한 분이 지난 주 저녁에 막 쓰시더라구요. 여러분도 지금 각막 기증한다는 곳에 동그라미를 치시라구요. 목사님, 질문 할께 한가지 있어요. 그래 깜짝 놀라서왜 그러세요하나만 썼어요. 하나만 해도 괜찮지요고맙지요. 하나만해도
그런데 왜 그러세요하나는 있어야 부활 할 때 천당을 찾아갈 수 있잖아요.부활하곤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한다고 그랬어요. 헌혈하는 것은 기본적인 의무로 생각하고 골수 기증 등록이나 각막 기증등록을 하는 것은 우리의 필수과목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고요. 분당에 사는 사람들이 안 한다고 하면 누가 할거예요. 지구촌 교회 교인들이 안 한다면 우리 나라에서 누가 할거예요. 난 못해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부하는 옛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각막을 기증한다고 등록을 하니까 세수도 잘하게 되더래요. 눈을 잘 보호했다가 남을 주어야 하니까 우리 머리가 뇌가 대뇌 소뇌 뇌간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을 뇌사상태라고 합니다. 식물인간은 뇌사상태가 아닙니다. 반드시 산소마스크를 부착을 하고 약을 투입을 해서 심장이 뛰고 있는 겁니다. 산소 마스크를 띄면은 10분 안에 멎어 버립니다. 약을 투입하지 않으면 숨이 멎어 버립니다. 그때 의사가 되어서 뇌사 상태를 잘못 인정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뇌사 판정을 정확하게 했다고 하면 결코 살아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뇌사는 죽음이다. 이런 법을 만들겠다고 입법 예고를 했고 얼마 후에는 국회를 통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뇌사상태에서 기증하겠다 그러면 그 뇌사상태를 계속 유지시켜 놓으면서 필요한 장기, 각막 두개, 신장 두개, 췌장, 간장, 심장, 폐장, 연골, 뼈 열 가지 한 열 두 가지쯤을 기증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뇌사 상태 일 때만 뇌사 상태라고 하는 것은 100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그 중에 한 사람에 해당이 됩니다. 대개 교통사고로 머리를 많이 다쳤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런 경우입니다. 잘 사시다 집에서 돌아가시면 각막 하나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뇌사상태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축복 받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사람을 살리고 갔으니까, 그런 기사 여러분 많이 보셨죠 이왕 세상을 떠나는데 많은 사람을 살리고 갔으니까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볼 수도 있고 내 심장이 다른 사람 한테서 뛴다고 하는 그런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불란서 형법에 보니까 위급함에 있는 사람을 구해줘도 제 삼자나 자기한테 해롭지 안는데도 구해주지 않았다고 하면 360프랑 벌금을 먹여야 되 그런 사마리아인 규정이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안 된다는 얘기죠. 우리 나라 이조 말 형법에 보니까요 나하고 동거하고 있는 사람이 나하고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남을 헤치려고 하는 못된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내가 미리 알고 막지 않았다면 곤장 백대를 쳐라. 그런 규정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엽서를 쓰셨으면 반을 접으셔서 찢어 가지고 이 빨간 스티커가 있는 부분은 가져가시는 겁니다. 그래서 각막을 기증한다고 그러면 이 스티커를 찢어서 운전 면허증이나 주민등록증에 붙이는 겁니다. 그러다 마음이 변하면 다시 그냥 띄어 버리면 되는 겁니다. 교회 은혜 받는 다고 갔는데 왜 교회 눈을 뽑아 준다고 약속하고 왔어. 그러면 여보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효래요.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누가 연락을 해줘요. 그래서 먼저 약속을 하고 그 다음에 동의를 하고 그런 겁니다. 저희가 마음대로 만든 것이 아니고 정부가 저희한테 위임을 해줘서 이런 제도를 작년부터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기증을 하지 않았는데 하고 어떡하지 마음에 부담이 되네. 그러시면 그 밑에 후원 회원이 있습니다. 얼마를 매달 내겠다 그래야 저희가 운동을 하지요. 요즘이 어렵다 그래서 저희가 한 분에게 많은 것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서 이런 예쁜 후원 카드를 만들어 왔습니다. 예쁜 카드인데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없는데 여러분이 만원을 후원했다 그러면 만원 짜리 후원카드를 영수증대신 주는 이런 것을 많이 만들어 와서 여러분이 나가시는 입구에 저희 직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리고 우리가 성찬 예식을 행하지요.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한 이 말씀은 이 나는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못으로 박히고 창으로 찔리고 생명까지 주었는데 너희들은 이웃을 위해서 장기를 나눠 가지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장기를 준다고 하는 것은 장기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우리의 삶을 나눠 갖는 것입니다. 장기를 기증한다고 약속을 하고 나니까 교회에 오니까 왜 이렇게 봉사할 곳이 많고 어려운 사람이 많이 보이고, 몸을 드린다 그랬는데 시간을 내는 것쯤, 재물을 내는 것, 십의 이조를 드리고 싶네. 뭐든지 남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우러난다고 하는 겁니다. 빌립보서 1장 2
2. 23절에 보면 온통 내 삶 전체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죽는 것도 이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좀더 살아서 보람있는 일을 할 수가 있다면 나는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이나 어느 것이던지 언제든지 나는 자유스럽게 선택을 하겠습니다. 죽음을 극복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교회 잘못 선택해 갖고 어떤 분은 눈도 바치고 장기도 신장도 바치게 생겼구나. 잘못 선택해서가 아니라 잘 선택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남들의 압력에 의해서 하실 필요는 없어요. 자유롭게 기도하시면서 그러나 최소한도 각막 정도는 바칠 수가 있지 않을까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서는 운전 면허를 받거나 면허증 갱신하러 가면 묻습니다. 각막 기증하시겠습니까, 장기 기증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겠다고 그러면 꼭 스티커를 붙여 줘요. 운전면허증에다. 그것이 자랑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생활화되기 시작했어요. 뭐 굉장한 결단이 아니예요. 우리가 작은사랑의 실천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했어요. 도대체 예수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장기 기증 운동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습니까 10% 미만입니다. 그러시더라구요. 한국 교회가 많이 욕을 먹고 하지마는 그래도 저는 한국 교회가 소망이라고 생각해요. 90%가, 장기 기증 운동의 90%가 그리스도인 들에 의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이 땅의 역사에 소망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앞장서서 헌신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이 은혜에 빚지고 사는 자들 어떻게 빚을 갚을 수가 있을까요 탈무드에 보니까 이런 유명한 말이 있어요. 빚진 자들이여! 힘을 합하십시오. 그리고 누군가 당신들 곁의 한 사람에게 축복의 등불이 되어 주십시오. 결국 이것이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축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는 말씀하고 같은 말씀이지요. 오늘 본문에는 바로 그런 얘기가 기록됩니다. 네 사람의 친구가 자기의 사랑하는 한 친구가 중풍병으로 누워 미래를 잃어버리고 있었던 이 병들었던 자기의 친구를 돕기 위해서 네 명의 사람이 이 한 생명을 위하여 펼치고 있는 사랑의 드라마, 그 자선의 드라마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네 사람에게서 이웃 사랑의 실천의 모본을 발견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웃을 돕고자 할 때 어떻게 도울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으로 도울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어떻게 도울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믿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2장 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예수께서 저희의 믿음, 네 사람 네 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여기서 그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자 중풍병을 앓고 누워 있었던 자기의 친구, 이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로 오기만 한다면 예수님이 그를 도우실 것이다. 그를 고칠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생명, 그의 구원, 그의 소망이 되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이것이 바로 네 친구가 가졌던 믿음이지요 믿음의 본질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이웃들을 도우면서 산다고 하지만 도와 봤자 얼마나 도울 수가 있을까요 저는 때로 우리가 이웃들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교만한 생각의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뭘 우리가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한계를 생각할 때, 우리의 모자람을 생각할 때, 나의 나 된 인생의 원색적인 모습을, 내 실존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무엇으로 도울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 자체가 어쩌면 교만한 우리 인간의 허위의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내가 도울 수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와야 할 그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데리고 가면 주님은 이 사람을 도울 수가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그리스인들의 사랑의 사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도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이라면 그에게 도움이 되어 줄 수가 있다. 그것을 믿는다. 주님은 그의 구원, 그의 생명, 그의 소망, 그의 진정한 능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이웃을 향한 사랑의 출발점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믿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야 한다. 야고보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메시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 네 친구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 친구를 도와줄 거다. 그러니까 주님에게 맡긴다. 기도하면 됐지 뭐.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관념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이런 믿음이야말로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친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 예수님이면 내 친구를 도와 줄 수가 있다. 내 친구는 다시 새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일어날 수가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드디어 행함으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 줬던 믿음은, 행함은 창조적인 행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우리가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 받게 되면 그 도움을 거절하는 우리들의 가장 보편적인 핑계나 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죠 도울 것이 없다. 내가 돕고 싶어도 나는 도울 것이 없다. 혹은 도울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핑계입니다.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돕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도울 길이 없다면 그 길을 만듭니다. 만들어서라도 우리는 도울 방법을 찾아내면 됩니다. 도울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예요. 자, 오늘 본문에 나타난 네 명의 친구, 사랑하는 중풍병자 친구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오고자 했어요.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는지 갈 길이 차단되고 있었잖아요. 본문의 2절을 보면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에워싸고 있었어요. 나갈 길이 없어요. 그 길이 차단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포기했습니까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있어야지. 주님 앞에 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그들은 생각합니다. 돕기를 원했기 때문에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찾아냈어요. 어떻게 찾아냈어요 주님 앞으로 직접 갈 수가 없으니까 네 친구는 서로 의논해서 지붕으로 올라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지붕을 뜯어서 자기의 사랑하는 친구를 들것에 눕히고 그리고 예수님이 계신 그 앞으로 달아 내기로 한 것입니다. 얼마나 창의적인 행동이예요. 얼마나 창조적인 행동이예요.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을까요 물론 팔레스타인 중동지방의 지붕은 한국지역의 그런 지붕처럼 그렇게 견고한 지붕은 아닙니다. 여기만 해도 열대지방이니까. 잘하면 손재주 없는 저도 팔레스타인 지붕쯤은 저도 뜯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굉장한 역사라고 생각하시면 안돼요. 그렇지만 그래도 이것은 모험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방안에 있었던 예수님을 위시한 사람들이 당황했겠어요 무례하다고 비난받아야 마땅할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친구를 살려야 한다. 우리 친구 살려야 한다. 이 한 사람의 친구를 살리기 위하여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은 이 무모하기조차 한 이 행동을 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었어요. 행함이었어요. 자, 무엇으로 도울 수가 있을까요 무엇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이웃을 도울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영적인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영적인 도움이 우선입니다. 이것을 본문이 가르칩니다. 자,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앞에 달아 내린 그 병자를 보면서 주님의 첫 번째 말씀, 제 일성이 어떤 말씀이었어요 5절같이 읽어요.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물론 이 대답은 중풍 병자가 기대 했던 대답은 아니었을 거예요. 중풍 병자가 기대한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네 병이 나았느니라. 이것은 중풍병자가 기대한 대답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중풍병자의 근본적 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필요, 병 고침보다도 육신의 병보다도 더 중요한 근본적 필요를 보신거시예요. 그 필요는 죄 사함이었어요. 여러분, 죄 사함은 인간이 부딪쳐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필요라고 믿으십니까 이 죄 사함, 인간의 불행, 인간의 허무, 인간의 방황 왜 그럴까요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 죄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고 죄 때문에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 하고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이 땅에 오신 목적, 무엇 때문에 오셨어요 자, 그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아들을 나으리니 이름을 뭐라고 하라 예수라 하라예수의 뜻이 뭡니까 구원,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구원. 그것을 위해 오신 거예요.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십자가로 가신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예요.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삶의 딜레마, 이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생은 성공하고도 마지막은 실패입니다. 파산입니다. 파멸입니다. 절망입니다. 심판입니다. 죄 문제 해결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거기에 서기관들이 있었는데, 서기관들이 흥분합니다. 아니, 저 사람이 누군데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가 있단 말인가흥분했어요. 그 흥분은 타당한 것이예요. 이유 있는 흥분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한가지, 뭘 몰랐습니까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지 못하면 아직도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거예요.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짊어지셨습니다.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나 대신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으시고 골고다의 언덕에 보배로운 피를 떨구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는 즉 사함이 없느니라.그의 피 흘림으로 용서받은 사실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근본문제의 해결이예요. 우리가 이웃들을 도울 때 이 복음을 가지고 이웃들에게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 근본적으로 도와주어야 할 사실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미션 바로 이 복음 전하여 사람들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사역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도움만 베푸신 것이 아니예요. 영적 도움만 베푸신 것이 아니라, 그는 육체적 도움도 간과하지 않으셨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중풍병자에게너 죄 사함 받았다. 너 천당 간다. 가장 중요한 문제해결 했으니까 그냥 가라.그러시지 않았어요. 무엇까지 해결하셨어요. 병까지. 먼저 죄 문제 해결해 주시고 그리고 어떻게 선포하십니까 그 다음에 11절 보시기 바랍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일어나라. 일어날 수 없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 12절에 보면 일어났어요 못 일어났어요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상을 가지고 주님은 거기까지 도우셨어요. 육체의 필요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으셨어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복음 전하여 사람들이 죄 사함 받고 구원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의 육체적 필요를 절대로 간과하지 않습니다. 여기 기독교의 또 하나의 미션이 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을 돌보는 일,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돕는 일 여기 또 하나의 중요한 미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여리고 길을 걸어가다 강도 맞아 쓰러진 사람, 주님은 어떻게 하기를 요구하셨습니까 그에게 가서 복음도 전해야 합니다. 복음 받아들이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러나 주님이 그 상황, 그 마당에서 칭찬하신 사건은 어떤 사건이었어요 이 복음의 미션 중요한 미션이지만 또 하나 어떤 점을 칭찬하셨습니까 그의 실제적 필요, 어떤 필요가 있었어요 상처를 싸 메는 일입니다. 그리고 강도 맞은 이 사람을 데리고 주막으로 가는 일입니다. 그를 돌봐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희들도 이와 같이 하라그리스도인들이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소명, 이웃 사랑 실천에 중요한 또 하나의 소명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정 생활 세미나를 시작하는 복된 날입니다. 동시에 오늘은 장기 기증 캠페인의 날입니다. 저는 몇 주전에 제자신의 간증을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장기 기증 운동 본부 대표 목사님을 초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드리는 이 헌신 앞에 우리 교인들 가운데 같이 드릴 수 있는 분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귀한 헌신에, 이 사역에 우리 고통받는 이웃들을 돌아보기 위해서 우리 육체의 한 부분을 내어주는 일, 우리가 육체 사용하며 한 평생을 살다가 더이상 육체가 필요하지 않은 그 마지막 시점에 도달했을 때 만약 내 눈을 이웃들에게 준다면 볼 수 없는 이웃들이 볼 수 있고 내 장기, 내 신장을 줄 수가 있다면 얼마나 사람들이 도움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오늘 아침 일어나더니 우리 와이프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해요. 여보, 당신 드린다고 그러는데 나도 뭐 받쳐야 되는데 뭐 받쳐요 그래요. 그래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당신 보니까 당신의 매력의 포인트는 눈이다. 당신의 그 매력 있는 그 눈을 받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근데 무섭대요. 상상해 보니까 무섭대요. 그때 무서운 것 깨닫지도 못할 텐데, 뭘 걱정하느냐고. 근데 제가 무식해서 눈을 다 파 가는 줄 알았는데, 오늘 아침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니까, 그게 아니라 눈은 가만히 있고 각막만 살짝 가져가는 거래요. 그 얘길 듣더니 1부 예배 후에 우리 집사람이 말하기를아이구 살았다.그러더라구요.
그렇다면 각막 바칠 수 있대요. 저는 여러분이 감상적인 결정을 하지 마십시오. 프랫셔에 의해서 결정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인도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결단을 내릴 때 항상 저해 요인이 있습니다. 항상 장애물이 있습니다. 섭섭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무덤이 있어야지 오고 그러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무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쓸 사람은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덤 속에 들어가면 어차피 썩는 건데. 그러나 내 눈 ,내 장기가 이웃들에게 쓰여진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삶의 기간 동안 거기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얼마나 축복 된 일이예요. 더욱이 저는 한국 교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교회 묘지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교회, 전국이 묘지화 되어 가고 있는데 교회까지 묘지를 갖는 것 저는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묘지 갖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 중에 어떤 분이 이만 평을 충북 괴산에 있는 땅을, 아주 아름다운 땅을 기증해 주셨어요. 저는 거기에 우리 교회 훈련의 집이 우리 교회의 다음 프로젝트로 주께서 기뻐하시는 시간 안에 아주 아름다운 훈련의 집이 세워져 그래서 우리 교인들이 와서 거기서 기도도 하고 훈련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 동산에 저는 부활의 채플을 지을 꿈을 갖고 있습니다. 될 겁니다. 부활의 채플 장기 기증한 사람들, 각막 기증한 사람들, 시신 기증한 사람들 이름을 다 써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저는 화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화장해도 괜찮아요. 화장하면 부활 못 되는 것 아니예요. 이상한 사상이 우리를 지배해서 부활사상이 꼭 무덤이 있어야만 부활한다는 생각인데, 여러분! 화장해도 부활에 조금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제가 보증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무덤까지 돌본다는 것이 힘들어요. 그러나 우리가 다 그 부활의 채플에 와서 가족들이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 거기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그래서 오늘 한국 교회가 이런 면에서 전혀 무지했을 때 이 일에 개척자적인 역할을 하신분, 많은 오해도 받으셨대요.-제가 간증을 들으면서 너무나 감동이 됐어요. 그러면서 마침내 그 많은 시련을 이기고 가장 건강한 사랑의 기증 운동 본부로서 이 땅에서 귀한 사역을 수행하고 계시는 박진탁 목사님을 오늘 모셨습니다. 나마지 시간은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나오실 때 따뜻한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박 목사를 만나면 눈을 가져간다고 그런 대는데 가까이 가면 신장을 내놔야 한다고 그러는데 많은 사람들이 저를 가까이 안 할려고 그러는데 여러분이 뜨거운 박수를 쳐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박 목사님 얘기 말고 우리 이동원 목사님 얘기 듣고 다 등록할 거니까 안심하세요. 다 그런 표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 고대 부속 병원 원목으로 한 7년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만 있으면 수술을 하는데 피가 없어서 수술을 못하는 그런 환자가 눈앞에 있어서 처음 헌혈 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서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1968년부터 제가 헌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장기 기증 운동을 위해서 돈을 달라고 그러면 없다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피를 달라 그러면 나는 피가 없다. 그럴 사람은 없겠지. 사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잘 되겠다. 그래서 시작을 했습니다.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많은 친구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만날 때마다야, 우리 오래간만이다. 우리 피 한 병 뽑자.뭐 드라큐라를 만나는 것 같대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돈은 줄 수 있어도 헌혈은 못하겠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1970년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사랑하는 첫 딸을 주셨습니다. 아침에 병원에 가니까요. 밤중에 애기를 낳았대요. 신생아실에서 꿈틀거리는 어린 생명을 보는 순간 야, 저 놈한테서 피 한 병을 뽑을 수가 없을까 너만은 아빠의 뜻을 따라 주겠지. 너만은 아빠를 이해해 주겠지. 한 병을 뽑자. 그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구뇨.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아,
그런데 지금은 안돼. 16년이 빨리 16년이 지나, 그래서 이름을 제가 박 뽑기라고 지었습니다. 또 딸을 나면 또 뽑기라고 짖자. 두번째는 아들을 낳아서 제가 박 헌혈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두 아이들이 지금 다 하버드를 나와서 전부 박사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매달려서 우리 나라의 헌혈 운동이 교회가 앞장을 서서 이제사회 운동이 되어서 잘 되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는 240만 명이 헌혈을 했습니다. 이제 헌혈이 잘 되어서 적십자사가 하기로 하고 저는 장기 기증 운동에 몸을 던졌습니다. 장기를 기증한다고 하면 열 가지, 한 열 두 가지쯤 정도를 기증 할 수 있습니다. 살아서 줄 수 있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피도 장기의 일종이예요. 보편화되어 있죠. 제가 1968년부터 두 달에 한번씩 30년 가까이 헌혈을 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골수 기증 등록을 받으려고 했는데요. 시약이 떨어졌어요. 다음으로 연기했습니다. 골수에 관한 건 여러분 이런 장기 기증 핸드북을 드렸지요 잘 보시면 있습니다. 또 신장을 기증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다 누구나 자기 주먹만 한 것 두개, 옆구리 뒤쪽에 신장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낭콩 비슷하다고 그래서 콩팥이라고 합니다. 피를 맑게 하는, 우리 몸의 불순물을 걸러 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망가지면 옛날에는 방법이 없었는데요 요즘에는 동맥에서 피를 뽑아서 인공 신장기에서 깨끗케 돌려서 정맥을 통해서 집어넣는 혈액 투석이라고 하는 치료를 이틀에 한번씩, 한번에 5시간씩 병원에 가서 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의료 보험이 되고도 한 달에 4-5 십만 원씩 치료비가 들어갑니다. 물을 한 모금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소변이 나오질 않습니다. 성생활이 정지가 됩니다. 이렇게 혈액 투석을 시작했다 그러면 평균 한 10년쯤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신장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두개를 가지고 있는데 두개가 합해서 평소에 백의 기능을 하는데 한 개가 없어졌습니다. 한 3-4개월 지나는 사이에 한 개가 백의 기능을 합니다. 정말 그래요 외국에서 2백 명, 3백 명 둘 가지고 사는 사람, 하나 가지고 사는 사람 쭉 조사를 하니까 마찬가지 다 변화가 없다. 그래서 괜찮다 그럽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는 신장이 망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뇌사자가 주는 것으로 80%가 해결이 되고 가족끼리 주는 것으로 20%가 해결이 되서 해결이 됩니다마는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뇌사자 주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가끔 있죠. 그래서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 없는데, 남을 위해서 사랑으로 신장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신장을 하나 줘도 괜찮다고 하니까 해 봐야지. 제 왼쪽에 있는 신장을 띄어서 91년에 남한테 준 일이 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450명 가량 정도가 순수한 사랑으로 신장을 준 일이 있었습니다. 많이 보도가 된 것을 보셨지요 그래서 가족간에 주는 것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장을 이식 받아야 할 환자들이 한 만 천명쯤 되는데 아직 멀었습니다. 남을 위해서 신장을 주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주기는 어렵지만 여러분이 오늘 가족이 돌아가시면 우리 가족 몇입니까 한 다섯 사람되지요. 우리끼리 우리 부부끼리 우리 형제끼리 우리끼리는 건강했을 때 살아가다가 불행하게 한 사람이 신장이 망가진다 할 때 우리 중에 한 사람이 준다고 약속 좀 하고 살자. 가족 캠페인을 하자 그런 얘기입니다. 딸이 아프면 엄마가 주면 되는데 열 가정 중 여덟 가정은 주는데 한 두가 정은 안 줘요. 부모가 아프면 자식이 주면 되는데 안주는 거예요. 또 부부 중에 한 사람이 띄어 주고 같이 살면 되는데. 우리 헤어지자. 헤어지는게 55%입니다. 그러지 말자고 하는 거죠. 요즘에 많은 젊은 목사들이요 걱정이 굉장히 많대요. 예수님은 몸까지 다 주셨는데 하나를 띄어 줘도 괜찮다는데 나도 줘야 되는 건가 막 기도하고 고민을 한대요. 목사님 가운데도 이런 분이 한 삼십 명 있거든요. 우리는 검은 동자 앞에 하얀 각막이라고 하는 막이 있습니다. 그래서 빛을 받아서 시신경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세상에 태어날 때는 빛을 봤는데 반드시 살아가다가 후천적으로 각막에 손상을 입어서 못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돌아가신 분의 각막을 띄어서 붙여 주면 한 일주일 입원하고 치료비 7,8십만을 들이면 다시 보게 되는 겁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앞을 못 보는 시각 장애인들이 십 육만 명이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예요. 그 중에 10%는 만 육천 명 정도는 각막만 이식을 받으면 보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각막을 기증한다고 약속을 했어요 몇 분 있겠지요. 각막을 띄어 가면 아프지 않을까 숨을 거둬 갔는데 어떻게 아픈걸 알아요 나는 시력이 시원치 않은데. 주지 않을 사람은 그러죠. 시력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나는 나이가 많은데 괜찮을까 97년 2월 17일에 중국을 지배하던 등소평이 세상을 떠나면서 93세에 각막을 주었습니다. 그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몰려가서 각막을 기증한다고 등록을 했대요. 얼마 전에 보도가 또 나왔어요. 죽어서도 중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이번에 대통령에 당선된 측근을 찾아갔습니다. 대통령 내외분께서도 언젠가 각막을 기증한다고 그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고 그랬는데 언제 답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우리 나라에서 24만 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각막이 몇 개예요. 48만개가 다 어디로 갔습니까 40만개는 땅속에다 묻고 8만개는 화장터에 가 태웠다구요. 여러분 주보 보니까 세분이 돌아가셨네요. 각막이 여섯 개가 어디로 갔습니까 어디로 갔어요. 우리가 축복 된 삶을 살다가 어디로 갑니까 하늘나라로 천국으로 이사를 갑니다. 내가 천국으로 이사 갈 때 내가 일생 동안 사용 한 것 재활용 할 수 있는 것인데 재활용하도록 주고 가자. 요즘 재활용 업이 잘 된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각막이 모자라서요 모자란다는 것이 표현이 안돼서 턱없이 모자라서 외국에서 호주에서 미국에서 각막 하나에 600불씩 수입을 해옵니다. 수입을 해서 이식을 했더니 눈이 파랗지 않고 검어서 성공을 했다. 얼마나 창피한 얘기예요. 사실이예요. 뼈를 수입해 오는 것도 200만불 어치 수입을 해와요. 4년 전에 성수대교가 무너졌었지요. 지나가던 버스가 물에 들어갔습니다. 여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습니다. 남서울 교회 그때 홍정길 목사님이 계실 때예요. 성가대원 서울교육대 3학년 이승연양이 학생이었는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연락을 해 왔어요. 우리 딸이 세상을 떠나서 대학교 1학년 때 각막을 기증한다고 등록을 했으니까 어서 각막을 띄어 가세요. 의사가 가는 거예요. 의사가 가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의사들이 자꾸 얼굴을 살펴보더니 진찰을 해 보더니 각막이 못 쓰게 되었대요. 물 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 동안에 못쓰게 되었대요. 여러분, 운명하시면 눈을 이렇게 감겨 주지요 운명한 뒤에 한 두시간만 눈을 안 감겨 주면 그 동안에 각막이 못쓰게 된대요. 어머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는지 몰라요. 우리 딸의 유언인데 각막이 못 쓰게 되어서 어떻게 하느냐구요. 저를 붙들고 그러면 다른 거 뭘 기증할 수 있는게 뭐가 있어요 손을 꼭 잡고 어머님! 시신도 기증할 수 있어요. 그럼 시신을 기증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로 시신을 의과 대학에 기증했습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서울시 공무원을 막 붙잡고 우리 딸을 살려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이 어머니가요 시신을 붙들고 시신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고 딸을 불러 가신 것도 하나님인데 우리 예쁜 딸이 21년 동안 엄마 곁에서 웃으면서 살아준 것만도 감사하지요. 감사하다고 우는 거예요. 죽음을 사랑으로 극복한 어머니라고 사회면 1면 톱으로 전부 났습니다. 육개월이 지난 후에 2억 5천 보상금을 받았는데 교회장학금으로 내 놓았어요. 의과대학에서는 두 학생이 시신 한 그루를 가지고 공부를 해야 되는데 서울대학에서는 30명이 시신 한 그루를 가지고 공부한다고 해요. 그래서는 좋은 의사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오진 율이 많다. 내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지음 받은 것인데 내가 일생 사는 동안 내 몸을 내가 관리할 책임만 있었는데 이제 관리할 책임이 없어졌으니까. 묻어서 20년이면 파보면 아무 것도 없는데, 화장해서 재를 뿌리지 말고 시신을 의과 대학에 기증함으로 인해서 좋은 의사를 만들어 낸다고 하면 그 한 의사가 수 천명의 건강을 돌보지 않겠느냐. 그래서 우리는 사는 날까지만 걱정하고 죽은 다음에는 걱정하지 말고 706-0101로 전화해서 다 가져 가십시오. 그래 버리면 좋다. 우리 나라에는 묘가 2천만 개가 있습니다. 일년에 여의도 두 개 만한 땅이 없어집니다. 여러분 여행하시다 보면 양지바른 곳에 전부 묘가 있죠. 언제까지 그럴 것이냐. 앞에 앉으신 장로님 한 분이 지난 주 저녁에 막 쓰시더라구요. 여러분도 지금 각막 기증한다는 곳에 동그라미를 치시라구요. 목사님, 질문 할께 한가지 있어요. 그래 깜짝 놀라서왜 그러세요하나만 썼어요. 하나만 해도 괜찮지요고맙지요. 하나만해도
그런데 왜 그러세요하나는 있어야 부활 할 때 천당을 찾아갈 수 있잖아요.부활하곤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한다고 그랬어요. 헌혈하는 것은 기본적인 의무로 생각하고 골수 기증 등록이나 각막 기증등록을 하는 것은 우리의 필수과목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고요. 분당에 사는 사람들이 안 한다고 하면 누가 할거예요. 지구촌 교회 교인들이 안 한다면 우리 나라에서 누가 할거예요. 난 못해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부하는 옛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각막을 기증한다고 등록을 하니까 세수도 잘하게 되더래요. 눈을 잘 보호했다가 남을 주어야 하니까 우리 머리가 뇌가 대뇌 소뇌 뇌간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을 뇌사상태라고 합니다. 식물인간은 뇌사상태가 아닙니다. 반드시 산소마스크를 부착을 하고 약을 투입을 해서 심장이 뛰고 있는 겁니다. 산소 마스크를 띄면은 10분 안에 멎어 버립니다. 약을 투입하지 않으면 숨이 멎어 버립니다. 그때 의사가 되어서 뇌사 상태를 잘못 인정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뇌사 판정을 정확하게 했다고 하면 결코 살아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도 뇌사는 죽음이다. 이런 법을 만들겠다고 입법 예고를 했고 얼마 후에는 국회를 통과할 것입니다. 그래서 뇌사상태에서 기증하겠다 그러면 그 뇌사상태를 계속 유지시켜 놓으면서 필요한 장기, 각막 두개, 신장 두개, 췌장, 간장, 심장, 폐장, 연골, 뼈 열 가지 한 열 두 가지쯤을 기증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뇌사 상태 일 때만 뇌사 상태라고 하는 것은 100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그 중에 한 사람에 해당이 됩니다. 대개 교통사고로 머리를 많이 다쳤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런 경우입니다. 잘 사시다 집에서 돌아가시면 각막 하나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뇌사상태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축복 받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 많은 사람을 살리고 갔으니까, 그런 기사 여러분 많이 보셨죠 이왕 세상을 떠나는데 많은 사람을 살리고 갔으니까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볼 수도 있고 내 심장이 다른 사람 한테서 뛴다고 하는 그런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불란서 형법에 보니까 위급함에 있는 사람을 구해줘도 제 삼자나 자기한테 해롭지 안는데도 구해주지 않았다고 하면 360프랑 벌금을 먹여야 되 그런 사마리아인 규정이 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안 된다는 얘기죠. 우리 나라 이조 말 형법에 보니까요 나하고 동거하고 있는 사람이 나하고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남을 헤치려고 하는 못된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내가 미리 알고 막지 않았다면 곤장 백대를 쳐라. 그런 규정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엽서를 쓰셨으면 반을 접으셔서 찢어 가지고 이 빨간 스티커가 있는 부분은 가져가시는 겁니다. 그래서 각막을 기증한다고 그러면 이 스티커를 찢어서 운전 면허증이나 주민등록증에 붙이는 겁니다. 그러다 마음이 변하면 다시 그냥 띄어 버리면 되는 겁니다. 교회 은혜 받는 다고 갔는데 왜 교회 눈을 뽑아 준다고 약속하고 왔어. 그러면 여보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효래요.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누가 연락을 해줘요. 그래서 먼저 약속을 하고 그 다음에 동의를 하고 그런 겁니다. 저희가 마음대로 만든 것이 아니고 정부가 저희한테 위임을 해줘서 이런 제도를 작년부터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기증을 하지 않았는데 하고 어떡하지 마음에 부담이 되네. 그러시면 그 밑에 후원 회원이 있습니다. 얼마를 매달 내겠다 그래야 저희가 운동을 하지요. 요즘이 어렵다 그래서 저희가 한 분에게 많은 것을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서 이런 예쁜 후원 카드를 만들어 왔습니다. 예쁜 카드인데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없는데 여러분이 만원을 후원했다 그러면 만원 짜리 후원카드를 영수증대신 주는 이런 것을 많이 만들어 와서 여러분이 나가시는 입구에 저희 직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리고 우리가 성찬 예식을 행하지요.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한 이 말씀은 이 나는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못으로 박히고 창으로 찔리고 생명까지 주었는데 너희들은 이웃을 위해서 장기를 나눠 가지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장기를 준다고 하는 것은 장기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우리의 삶을 나눠 갖는 것입니다. 장기를 기증한다고 약속을 하고 나니까 교회에 오니까 왜 이렇게 봉사할 곳이 많고 어려운 사람이 많이 보이고, 몸을 드린다 그랬는데 시간을 내는 것쯤, 재물을 내는 것, 십의 이조를 드리고 싶네. 뭐든지 남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우러난다고 하는 겁니다. 빌립보서 1장 2
2. 23절에 보면 온통 내 삶 전체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죽는 것도 이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좀더 살아서 보람있는 일을 할 수가 있다면 나는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이나 어느 것이던지 언제든지 나는 자유스럽게 선택을 하겠습니다. 죽음을 극복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교회 잘못 선택해 갖고 어떤 분은 눈도 바치고 장기도 신장도 바치게 생겼구나. 잘못 선택해서가 아니라 잘 선택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남들의 압력에 의해서 하실 필요는 없어요. 자유롭게 기도하시면서 그러나 최소한도 각막 정도는 바칠 수가 있지 않을까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서는 운전 면허를 받거나 면허증 갱신하러 가면 묻습니다. 각막 기증하시겠습니까, 장기 기증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겠다고 그러면 꼭 스티커를 붙여 줘요. 운전면허증에다. 그것이 자랑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생활화되기 시작했어요. 뭐 굉장한 결단이 아니예요. 우리가 작은사랑의 실천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했어요. 도대체 예수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장기 기증 운동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습니까 10% 미만입니다. 그러시더라구요. 한국 교회가 많이 욕을 먹고 하지마는 그래도 저는 한국 교회가 소망이라고 생각해요. 90%가, 장기 기증 운동의 90%가 그리스도인 들에 의해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이 땅의 역사에 소망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앞장서서 헌신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