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의 꿈 (막4:30-32)
본문
젊은 청교도 목사 가운데 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1637년에 미국 신대륙의 꿈을 안고 미국 땅에 찾아 왔습니다. 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펼치면서 한번 살아 보자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그는 미국 땅에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불과 1년이 지나지 못한 1638년에 폐결핵 진단을 받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결핵은 아주 심각한 병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자신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임종 직전에 자기의 재산을 헤아려 보니까 별로 없고, 이 사람이 책을 좋아 했는데 자기 책이 한 300권이 있었어요.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자기도시에 새롭게 시작된 대학 뉴타운 칼리지라는 대학이 있었는데 그 대학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책 300권을 기증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기증서에다가 한장의 편지를 더 첨부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이 사람의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혹은 신앙 고백서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문의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해요. '나는 이땅에 꿈을 안고 찾아 왔습니다. 나는 좀더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좀더 법률도 공부하고 싶었고 또 과학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훌륭한 신학자, 훌륭한 법률가, 훌륭한 과학자는 나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부르신것 같습니다. 내 이땅에서 다하지 못한 꿈 이것을 나의 후학들을 통해서, 후배들을 통해서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합니다. 내가 학교에 제공하는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훌륭한 신학자, 훌륭한 법학자, 훌륭한 과학자들이 이 대학에서 길러져 이 땅을 풍성하게 하고 인류에 기여하는 위대한 거인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합니다. 감동적인 이 책 헌정서를 받은 이 학교의 이사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이제 이 젊은 목사 쟌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성을 따서 학교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이 사람의 full name, 전체 이름이 뭐냐하면 쟌 하버드였습니다. 이 학교는 뉴타운 칼리지에서 하버드 대학으로 변경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이 대학을 통해서 분명히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이의 꿈, 이 젊은 이의 기도 속에서 위대한 미국, 위대한 하버드의 꿈이 자라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을 가르켜서 'visionary'다. 여러분, 'missionary' 라는 말이 있죠. 비슷한 단어인데 'visionary' 비젼을 가진 사람, 꿈을 가진 사람들. 시대가 어두울수록, 시대가 고통스러울 수록 이런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명의 제자를 부르셨을 때 예수님은 이들을 단순히 제자로 써먹자. 이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꿈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 그 시대를 바꾸었으면 좋겠다. 주님은 열 두명에게 인류 역사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제일 먼저 하신 이야기가 꿈 이야기를 하셨어요.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를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 중의 한 토막입니다. 즉, 겨자씨의 비유 이렇게 일컬어지죠 어떤 사람이 작은 겨자씨 하나를 심었습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 하나,
그런데 그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나물이 됩니다. 나물 보다 더 커다란 나무가 드디어 됩니다. 가지를 펼치게 되고, 펼쳐진 가지, 가지를 가진 울창한 나무가 되었을 때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짖고, 그래서 이 나무는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아름다운 자리를 제공 할 수 있었다는 얘기, 겨지씨 한 알 속에 들어 있는 꿈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대하고 싶었던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제자들이 그 시대의 visionary 가 될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제자로 오늘 이 시대에 부르셨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꿈을 갖고 계실까요 여러분과 저에게 우리 주님은 어떤 꿈을 기대하고 계실까요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 이 고통의 시대, 이 어둠의 시대에서 우리가 주님이 기대하시는 visionary 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 위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쓰시는 그런 꿈을 펼치는 사람이 되려면 제일 처음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우리의 작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작다는 현실, 또 고통스럽다는 오늘의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왜냐고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것은 반드시 시련이라는 과정을 겪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에 예수님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 굉장히 큰 기대가 있었을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최고의 수퍼 스타가 있었습니다. 그 수퍼 스타는 누구였을까요 예수님이 아니라 요한 이었습니다. 침례 요한, 세례 요한, 그는 그 시대의 수퍼 스타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사람 치고 이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각 처에서, 각 지방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이 사람의 설교를 듣고,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 들어가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요한은 어느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내 뒤에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하리라. 도대체 이 위대한 수퍼 스타가 누구를 말씀하고 있는가 드디어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한 후에 역사의 무대 뒤로 서서히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요한을 따르던 사람까지 이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어요. 자, 굉장한 기대를 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다녀바야 별로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요. 몇 건의 작은 기적을 행하기는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막 들고 일어나고,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코너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해 보았지만 별로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겨자씨 한알의 비유를 다루고 있는 누가 복음 13장을 읽어보시면 이 사건 직후에 제자들이 나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전도하려고 해도 적은 숫자밖에는 따라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 예수님과 제자들, 일단의 무리들, 그들의 영향력은 아주 왜소했습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와 핍박 앞에 부딪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과연 승산이 있느냐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무슨 큰 사건이 있겠느냐 제자들은 폐배주의와 비관론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예수께서 하신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예요. 왜 그러셨을까요 겨자씨는 자라난다. 겨자씨는 작다. 그러나 이 작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작다는 현실을 우리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늘 강조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조그만 나라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유달리 큰 것을 좋아합니다. 안그래요 그래서 우리 나라 이름부터 뭐라고 했어요 세계에서 우리 나라 이름처럼 위대한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호가 뭡니까 '대한 민국'이죠. 그냥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 민국'이예요. 우리 나라 최고 수반을 뭐라고 불러요 '대-통령', 최고 학부는 '대-학교, 대학원' 우리 나라에서 외국으로 파송하는 외교관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대사님' 소사님 봤어요 한국의 모든 길들을 보면 다 대로예요. 양재대로, 강남대로, 소로 이런거 봤어요 있기는 있을지 모르죠. 그러나 소로 참 아름다운데 그런게 없어요. 그리고 다리를 놓아도 다 대교예요. 성수대교를 위시해서 다 대교예요. 술을 조그만 것을 먹을 때도 '대포' 하여튼 큰것을 좋아해요. 이것이 어떤 열등감, 이 작다는 열등감을 보상 할려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것들도 비하시켜요. 자꾸만 작다는 것을 감추려고 그러고, 작다는 것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 말과 관련된 것을 연구해 보면 작다는 것은 다 안 좋은 쪽으로 쓰여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그런 말이 많이 쓰여졌는데 지금도 그 말이 쓰여지는 모르겠는데 사람이 잘다, 작다. 뭐 이런 말도 있었는데 '좀씨' 요즘도 써요 사람이 조그맣다. 말이이죠. 근데 사실은 작은 것이 얼마나 중요해요. 성수대교 건설할 때 작은 나사하나, 작은 시멘트 하나가 제대로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면 그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겠죠. 이 작은 것이 소중한 것인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작은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고 작은 것 속에서 미래를 볼 줄 아는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12명, 한줌의 제자들 그리고 비관주의와 그리고 절망 속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알의 꿈 이야기를 하신 이유, 왜 그럴까요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과정을 거친다. 한꺼번에 어느날 갑자기 커질 수는 없는 것이다.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들어 오기 직전에 예수님이 사실은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마가복음 4장, 오늘 본문이 30절 부턴데요, 26절부터 읽어보세요. 29절까지입니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때가 이르렀음이니라.' 자, 열매를 거둬 들이기 위해서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먼저 이 선행하는 비유 속에서 씨가 자라나는 과정을 설명하시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처음에는 싹이다. 그 다음에는 이삭이다.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 되고 열매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우리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27절에 저가 밤낮 자고 깨고하는 그동안에 자라나는 것이다. 과정이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한 순간에 선진국이 되기를 원했어요. 한순간에 우리 나라가. 그러다가 깨져버린 거예요. 자, 저는 그러나 이 경제위기라는 이 고난의 민족 역사의 과정이 우리 민족에게 먼 안목으로 볼 때 결코 마이너스만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종종 저는 오늘 이시대를 살고 있는 소위 신세대, 젊은 세대를 바라볼 때 부러운 면이 많아요. 오늘 젊은 세대는 아주 information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똑똑합니다. 유능합니다. 유망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젊은 세대들에게 늘 실망스러운 것은 뭐냐하면, 너무 쉽게 포기해요. 근성이 없어요.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방 쓰러져요.
그런데 우리 기성 세대들은 좀 많이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6.25를 겪는 가운데 고난을 알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나 오늘 이 경제위기시절에 우리 젊은 세대가 잘 견딜 수만 있다면 소중한 것을 배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돌파할 수 있는 힘, 진정 이 경제위기 시대를 잘 능동적으로 우리가 처리하고 이긴다면, 오늘의 이 새로운 세대가 진정한 의미에서 저는 '터프 가이'가 나타나리라고 믿습니다.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근성과 힘을 갖출 때 우리는 또한번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작은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그리고 오늘 일시적으로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고난의 과정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다. 작고 고난에 찬 현실, 이것은 위대한 일의 시작일 수가 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본문의 첫 번째 교훈. 두 번째로, 우리가 정말 visionary 가, 하나님이 쓰시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두번째로 우리 안에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겨자씨의 이 비유를 통해서 단순히 작은 것의 중요성만을 가르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것을 대표하려는 의도만 있었더라면 주님의 교훈에서 겨자씨 말고도 도구로 쓰일 수 있는 다른 작은 것이 많이 있어요. 자, 모래알도 작은 거구요, 먼지도 작은 거잖아요. 그러나 궂이 겨자씨의 비유를 선택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겨자씨가 모래하고 다른 게 뭐예요 생명력이 있어요. 그래서 어때요 자라납니다. 자, 자랄 수가 있는 것 그것은 생명 때문입니다. Life. 생명력. 그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 겨자씨가 자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비밀은 바로 생명력입니다. 그래서 자라납니다. 처음에 겨자씨, 아주 작은 것. 겨우 눈에도 띨까 말까 한 작은 것.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의 겨자씨는 그 크기가 직경이 1mm 그리고 얼마나 작은지 몰라요. 무게가 1mg정도밖에 되지 않는데요. 이렇게 작은 겨자씨. 눈에 띌까 말까 한 작은 겨자씨. 그러나 그렇게 작은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평균 키가 어느 정도 되냐면
1.5m 까지는 자라납니다.
1.5m. 그러나 어떤 겨자씨는 종자에 따라 3m 이상도 자란대요. 3m이상 자라나요. 굉장하죠. 여러분. 3m이상이면 굉장한 겁니다. 거기에 가지를 펼치고 새들이 날아와 앉는 안식처를 만드는 이 거대한 나무에로의 성장. 이 작은 겨자씨. 눈에 띌까 말까 한 작은 겨자씨. 그러나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력 때문입니다. 도대체 주께서 뭘 얘기 하시려고 합니까 겨자씨의 생명력. 주님은 그것을 복음의 생명력에 비유하고 싶어 하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복음의 생명력. 복음이란 뭘까요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예수가 Good news. 예수가 복음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예수가 생명이시고 예수가 능력이십니다. 여러분,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런 불평을 했을지 몰라요. 예수 따라 다녀 봤자 예수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했을 지 몰라요. 뭐 별로 다른 거 생기는 것도 없지 않느냐.
그런데 여러분 예수를 과소평가하면 안돼요. 기독교의 최대의 자산, 우리의 최대 자산, 우리 인생의 꿈, 우리의 소망, 우리의 반석, 우리의 능력, 우리의 모든 것, 그것은 예수가 모든 것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 붙들고 있으면 다예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신 예수. 그래서 마지막 한줌의 제자 밖에 안되는 11명의 제자를 향해 그가 남기신 교훈. "가서 모든 족속으로 네 제자를 삼으라. 세계 모든 곳을 바꾸어라"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마지막에 어떻게 말씀하세요 "볼지어다. 세상끝날까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믿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혹시 우리 가운데도 이런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거 뭐 교회 나와봤자 수지 맞는 게 있느냐 오늘같이 이렇게 비오는 날 이 수지 산구석까지 와야 수지 맞는 게 있느냐 이런 생각을 하실 분 있을지 몰라요. 밤낮 예수. 예수. 그러나 예수가 누구이십니까 예수가. 여러분 혹시 골로새서를 공부해 보셨습니까 골로새서의 대주제. 골로새서의 단일 메시지. 그것은 이것입니다. "예수가 모든 것이다예수가 충만이시다. 예수가 모든 것이 되시다"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작은 일이예요 주님만 함께 계시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은 우리를 통해서 벌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입이 줄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가 함께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이것이 소망이예요. 이것이 비전입니다. 비전이란 무엇이예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오늘 현실이 고독하지만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현실 저 건너편에서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위대한 내일을 준비하셨다. 그 내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좌절했을까요 그러나 주를 믿는 그 믿음이 부족한 것. 여러분 복음서에 보시면 예수께서 간질병 걸린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제자들이 씨름하다가 고치려고 하다가 못 고쳤어요. 거기 예수님이 오시죠.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죠. "예수님. 우리가 어찌해야 이 어린아이를 도울 수가 없었습니까 고칠 수가 없었습니까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뭐예요 간결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의 믿음이 적다." 믿음이 적다. 없다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를 향한 어떤 믿음이 있으니까, 어떤 유형의 믿음이라도 있으니까. 그래도 예수님 따라다니고 그래도 예수님 붙잡고 다니고, 그래도 예수님 찬송하고 그랬겠죠. 그러나 너희의 믿음이 적다. 그러셨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얘기를 하셨습니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다면 뭐예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다면 이산을 명하여 저리로 옮겨라 해도 옮길 것이요. 문제는 이 믿음이 부족하다. 주를 향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주님, 당신이 대답하십시요. 우리는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은 불투명하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그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은 나의 주님, My Load. 주님은 나의 주님 그 주님을 신뢰합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일어날 겁니다. 이 주님을 통하여 미래를 보는 눈을 주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통한 위대한 가능성, 그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분이 바로 예수의 Visionary. 예수의 꿈을 꾸는 사람들 인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정말 그 고통스런 시대에 주님이 쓰실 만한 우리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가 있을까요 마지막 세 번째로는 우리의 성장이 이웃들에게 축복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장이, 우리의 변화가, 자! 지금은 작지만 우리는 자라날 것입니다. 지금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다시 재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날 내 삶은 우리의 이웃들에게 반드시 축복이 되리라. 이것을 믿습니까, 여러분 이 고통의 시기를 넘어설 때 나는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는 이웃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는 그런 민족, 그리고 그런 가정, 그런 교회가 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 환상이 있어야 돼요, 이 기대가 있어야 돼요. 이 것이 겨자씨 한 알의 꿈이예요, 작은 겨자씨의 꿈. 내가 자라나 울창한 나무가 될 때, 가지를 펼칠 때 새들은 날아오리라. 그들에게 나는 안식처를 제공하리라. 새들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리라. 내 인생들에게, 내 주변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노래를 주고, 꿈을 주고, 그리고 축복을 나누는 인생, 나는 그런 인생을 기어이 살고야 말 것이다. 이 기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대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겨자씨 한 알의 꿈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입니다. 여러분, 세속적인 성공관과 기독교의 성공관이 어떻게 다릅니까 세속적인 성공관은 내가 열심히 살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공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면, 내가 잘 되면 내가 그 축복으로 이웃을 섬기리라.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제가 자라날 때만 해도 공부하라고 부모들에게 핍박받을 때 그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요즈음도 많이 하는지 모르겠어요. "야 이놈아 공부 좀 해라 배워서 남 주니 "지금도 합니까, 안합니까, 하세요 배워서 남 주니 여러분! 배워서 남 주는 것이예요. 그것 아십니까 배워서 남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식을 얻어서 그 지식으로 자기가 치부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예요. 내가 얻어진 지식으로 겸허하게 인류를 섬기기 위해서, 우리의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서, 역사를 섬기고, 시대를 섬기고, 민족을 섬기고 남 주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벌어서 남 주나" 벌어서 남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버는 중요한 목적이 남을 주기 위해서 버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입니다. 기독교의 재물관이어야 합니다. 저는 그 동안 한국 사회의 최대의 비극 중의 하나가 있었다면 우리 한국에는 깨끗한 부자가 많지 못했다는 사실이예요. 더러 더러, 가끔 가끔 있었지만은 깨끗한 부자의 케이스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외국의 예를 보면 기독교 문화의, 기독교 윤리의 영향을 받은 외국에는 깨끗한 부자가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정직하게 버는 사람들, 또 그들은 어느 정도 벌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foundation, 재단을 만듭니다. 그리고 자기 재산을 공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다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생을 마무리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적 전통이예요. 소위 캘빈주의의 전통이, 신학적인 전통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 끼친 윤리적인 영향의 중요한 가치관이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없었던 한국 역사속에는 더러 더러 부자들이 있었지만은 그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불의했습니다. 잘못된 과정으로 재물을 축적했단 말이지요. 또 재물을 축적한 다음에 자기만을 위해 썼어요. 이웃을 위해 사용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오늘날 경제위기라는 회오리 바람이 불자 우리는 재벌이 이 한국의,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에 책임이 있다. 우리가 지금 그 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만약 경제위기가 우리 민족에게 한 가지 소중한 교훈을 가르칠 수가 있다면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깨끗해 지기를
기도하십시다.
. 그리고 앞으로는 깨끗한 부자가 나올수 있도록 기대하십시다. 깨끗한 부자들! 정직하게 땀흘려 그 대가로 부를 축적할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 부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그리고 나에 의한, 그리고 나의 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웃들을 위해서 그의 모든 것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 그의 땀흘림이 이웃들에게 축복이 되고, 그의 노력이 이웃들에게 선한 아름다움이 되는 이런 위대한 축복의 환상을 나눌 수 있는 비전, 겨자씨 한 알의 꿈, 이런 꿈을 가진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읽어보면 이 사람은 에피소드도 많이 남기지요. 또 별명도 많습니다. 생긴게 워낙 괴상해 갖고, 참 별명도 많았어요.
그런데 나쁜 별명도 있고 좋은 별명도 있었는데 뭐 고릴라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 생긴게 꼭 고릴라 같잖아요. 또 좋은 별명도 많았어요. 이 사람이 가진 좋은 별명 중 하나는 '정직한 에이브' 그가 어린 시절부터, 틴 에이져 시절부터 그가 받았던 별명가운데 하나가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틴 에이져 시절에, 그가 점원으로 일하는데, 가게에서 일을 합니다. 그가 열심히 정직하게 일을 했습니다. 주인의 눈에 들어서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그 가게에 관리자가 된 것입니다. 정직하게 관리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손님이 와서 돈을 지불하고 갔습니다. 나중에 다시 에이브라함 링컨이 계산해 보니까 10센트를 주지 않았어요. 상대방에게 10센트가 더 가야 되는데 안 줬단 말이지요. 그것 때문에 밤새도록 괴로워합니다. 10센트 때문에, 손님에게 가야할 10센트 때문에, 그가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마침 그 이튿날이 휴일이었어요. 그래서 손님을 찾습니다. 3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거기까지 갑니다. 그리고 그 고객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10센트를 돌려 주고 왔습니다. 주변에서 막 칭찬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정직한 사람이 있다니!
그런데 이 칭찬을 받으면서 에이브는 하나도 기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왜 칭찬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가 가져야 할 것, 그 분에게 돌려드려야 할 것을 돌려드렸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칭찬을 받다니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어느 날 제가 당연히 해야할 것 때문에 칭찬받는 자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그 이상의 일을 함으로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당연히 해야 할 일 말고 당연히 해야 할 그 이상의 일, 그것 때문에 내가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에이브라함 링컨이 변호사가 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어떤 것인줄 아십니까 그는 자기 마을에 가난한 어떤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소송을 하지 못하고 있던 어떤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를 찾아가 무료 변론을 제의합니다. 그리고 그는 변호사가 된 기념으로 처음으로 무료 변론을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일기 가운데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나는 오늘 틴 에이져 시절에 내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처음으로 해 볼 수가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그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참 마음이 기쁘다. 여러분! 그것을 위해서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을 아세요 링컨의 삶, 그가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가 이런 삶에 대한 비전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어머니의 성경, 어머니가 그 손에 쥐어 줬던 바이블의 영향,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최후의 기대를 아십니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예요 그를 축복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앞에 오신 여러분 축복 받으시길 바랍니다. 받을 것입니다, 여려분! 그러나 왜 주님이 나를 축복하시는가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왜 축복하십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면서 궁극적인 그의 기대를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축복의 근원, 무슨 뜻이에요 축복을 받아서 누리는 자가 아니라 축복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패스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 내가 축복받아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자로 쓰임을 받을 수가 있다. 이 얼마나 얼마나 커다란 기쁨이예요 제가 한 두 달전에 우리 이랜드 박성수 사장이 여러가지로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서 같이 기도하고 싶어서 사장실에 찾아갔습니다. "어렵지요 요즈음 많이 어렵지요" 뭐라고 얘기하는 줄 아세요 "저는 괜찮아요. 직원들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직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요. 오늘 이 시대의 기업주 가운데, 자기의 직원들 가운데 회사사원들의 고통 때문에 자기가 더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이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축복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에이브라함 링컨, 축복받을 만한 존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고통스럽고 왜소하지만 꿈을 가지고 예수와 함께 하고 주님의 꿈을 꾸는 사람들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나누는 자가 될 것입니다. 고통의 현실 저 건너편에서 우리가 깨끗한 민족이 되어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는 민족이 될 수가 있을 때 우리는 경제위기를 허용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의 꿈! 이 꿈속에서 민족의 꿈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꿈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의 꿈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견디겠습니다. 주님 붙들겠습니다. 주님 함께 하신다면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꿈을 꿀 것입니다. 그리고 기어이 가지를 펼치고 새들에게 노래를 제공하는 위대한 인생의 꿈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꿈,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꿈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 어렵지요 그렇습니다. 적지 않은 우리 교회 식구들 가운데서도 고통 당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꿈을 버리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체념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도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 미래를 보여주시면서 조금만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신 교훈을 받겠습니다. 제대로 받겠습니다. 그리고 견디겠습니다. 주님 의지하겠습니다. 신뢰하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그런데 그 다음에 불과 1년이 지나지 못한 1638년에 폐결핵 진단을 받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결핵은 아주 심각한 병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자신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임종 직전에 자기의 재산을 헤아려 보니까 별로 없고, 이 사람이 책을 좋아 했는데 자기 책이 한 300권이 있었어요. 어떻게 할까 기도하다가 자기도시에 새롭게 시작된 대학 뉴타운 칼리지라는 대학이 있었는데 그 대학에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책 300권을 기증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기증서에다가 한장의 편지를 더 첨부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이 사람의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혹은 신앙 고백서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문의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해요. '나는 이땅에 꿈을 안고 찾아 왔습니다. 나는 좀더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좀더 법률도 공부하고 싶었고 또 과학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훌륭한 신학자, 훌륭한 법률가, 훌륭한 과학자는 나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부르신것 같습니다. 내 이땅에서 다하지 못한 꿈 이것을 나의 후학들을 통해서, 후배들을 통해서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합니다. 내가 학교에 제공하는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훌륭한 신학자, 훌륭한 법학자, 훌륭한 과학자들이 이 대학에서 길러져 이 땅을 풍성하게 하고 인류에 기여하는 위대한 거인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합니다. 감동적인 이 책 헌정서를 받은 이 학교의 이사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이제 이 젊은 목사 쟌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성을 따서 학교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이 사람의 full name, 전체 이름이 뭐냐하면 쟌 하버드였습니다. 이 학교는 뉴타운 칼리지에서 하버드 대학으로 변경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이 대학을 통해서 분명히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이의 꿈, 이 젊은 이의 기도 속에서 위대한 미국, 위대한 하버드의 꿈이 자라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을 가르켜서 'visionary'다. 여러분, 'missionary' 라는 말이 있죠. 비슷한 단어인데 'visionary' 비젼을 가진 사람, 꿈을 가진 사람들. 시대가 어두울수록, 시대가 고통스러울 수록 이런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명의 제자를 부르셨을 때 예수님은 이들을 단순히 제자로 써먹자. 이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꿈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 그 시대를 바꾸었으면 좋겠다. 주님은 열 두명에게 인류 역사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제일 먼저 하신 이야기가 꿈 이야기를 하셨어요.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를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 중의 한 토막입니다. 즉, 겨자씨의 비유 이렇게 일컬어지죠 어떤 사람이 작은 겨자씨 하나를 심었습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 하나,
그런데 그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나물이 됩니다. 나물 보다 더 커다란 나무가 드디어 됩니다. 가지를 펼치게 되고, 펼쳐진 가지, 가지를 가진 울창한 나무가 되었을 때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짖고, 그래서 이 나무는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아름다운 자리를 제공 할 수 있었다는 얘기, 겨지씨 한 알 속에 들어 있는 꿈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기대하고 싶었던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제자들이 그 시대의 visionary 가 될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제자로 오늘 이 시대에 부르셨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꿈을 갖고 계실까요 여러분과 저에게 우리 주님은 어떤 꿈을 기대하고 계실까요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 이 고통의 시대, 이 어둠의 시대에서 우리가 주님이 기대하시는 visionary 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 위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쓰시는 그런 꿈을 펼치는 사람이 되려면 제일 처음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우리의 작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작다는 현실, 또 고통스럽다는 오늘의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왜냐고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것은 반드시 시련이라는 과정을 겪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에 예수님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 굉장히 큰 기대가 있었을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최고의 수퍼 스타가 있었습니다. 그 수퍼 스타는 누구였을까요 예수님이 아니라 요한 이었습니다. 침례 요한, 세례 요한, 그는 그 시대의 수퍼 스타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사람 치고 이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각 처에서, 각 지방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이 사람의 설교를 듣고,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 들어가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요한은 어느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내 뒤에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하리라. 도대체 이 위대한 수퍼 스타가 누구를 말씀하고 있는가 드디어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한 후에 역사의 무대 뒤로 서서히 사라져갑니다. 그래서 요한을 따르던 사람까지 이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어요. 자, 굉장한 기대를 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다녀바야 별로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요. 몇 건의 작은 기적을 행하기는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막 들고 일어나고,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코너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해 보았지만 별로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겨자씨 한알의 비유를 다루고 있는 누가 복음 13장을 읽어보시면 이 사건 직후에 제자들이 나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전도하려고 해도 적은 숫자밖에는 따라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 예수님과 제자들, 일단의 무리들, 그들의 영향력은 아주 왜소했습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와 핍박 앞에 부딪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과연 승산이 있느냐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무슨 큰 사건이 있겠느냐 제자들은 폐배주의와 비관론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예수께서 하신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예요. 왜 그러셨을까요 겨자씨는 자라난다. 겨자씨는 작다. 그러나 이 작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작다는 현실을 우리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늘 강조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조그만 나라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유달리 큰 것을 좋아합니다. 안그래요 그래서 우리 나라 이름부터 뭐라고 했어요 세계에서 우리 나라 이름처럼 위대한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호가 뭡니까 '대한 민국'이죠. 그냥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 민국'이예요. 우리 나라 최고 수반을 뭐라고 불러요 '대-통령', 최고 학부는 '대-학교, 대학원' 우리 나라에서 외국으로 파송하는 외교관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대사님' 소사님 봤어요 한국의 모든 길들을 보면 다 대로예요. 양재대로, 강남대로, 소로 이런거 봤어요 있기는 있을지 모르죠. 그러나 소로 참 아름다운데 그런게 없어요. 그리고 다리를 놓아도 다 대교예요. 성수대교를 위시해서 다 대교예요. 술을 조그만 것을 먹을 때도 '대포' 하여튼 큰것을 좋아해요. 이것이 어떤 열등감, 이 작다는 열등감을 보상 할려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것들도 비하시켜요. 자꾸만 작다는 것을 감추려고 그러고, 작다는 것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 말과 관련된 것을 연구해 보면 작다는 것은 다 안 좋은 쪽으로 쓰여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그런 말이 많이 쓰여졌는데 지금도 그 말이 쓰여지는 모르겠는데 사람이 잘다, 작다. 뭐 이런 말도 있었는데 '좀씨' 요즘도 써요 사람이 조그맣다. 말이이죠. 근데 사실은 작은 것이 얼마나 중요해요. 성수대교 건설할 때 작은 나사하나, 작은 시멘트 하나가 제대로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면 그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겠죠. 이 작은 것이 소중한 것인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작은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고 작은 것 속에서 미래를 볼 줄 아는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12명, 한줌의 제자들 그리고 비관주의와 그리고 절망 속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알의 꿈 이야기를 하신 이유, 왜 그럴까요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과정을 거친다. 한꺼번에 어느날 갑자기 커질 수는 없는 것이다.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들어 오기 직전에 예수님이 사실은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마가복음 4장, 오늘 본문이 30절 부턴데요, 26절부터 읽어보세요. 29절까지입니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때가 이르렀음이니라.' 자, 열매를 거둬 들이기 위해서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먼저 이 선행하는 비유 속에서 씨가 자라나는 과정을 설명하시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처음에는 싹이다. 그 다음에는 이삭이다.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 되고 열매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우리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27절에 저가 밤낮 자고 깨고하는 그동안에 자라나는 것이다. 과정이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한 순간에 선진국이 되기를 원했어요. 한순간에 우리 나라가. 그러다가 깨져버린 거예요. 자, 저는 그러나 이 경제위기라는 이 고난의 민족 역사의 과정이 우리 민족에게 먼 안목으로 볼 때 결코 마이너스만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종종 저는 오늘 이시대를 살고 있는 소위 신세대, 젊은 세대를 바라볼 때 부러운 면이 많아요. 오늘 젊은 세대는 아주 information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똑똑합니다. 유능합니다. 유망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젊은 세대들에게 늘 실망스러운 것은 뭐냐하면, 너무 쉽게 포기해요. 근성이 없어요.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방 쓰러져요.
그런데 우리 기성 세대들은 좀 많이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6.25를 겪는 가운데 고난을 알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나 오늘 이 경제위기시절에 우리 젊은 세대가 잘 견딜 수만 있다면 소중한 것을 배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돌파할 수 있는 힘, 진정 이 경제위기 시대를 잘 능동적으로 우리가 처리하고 이긴다면, 오늘의 이 새로운 세대가 진정한 의미에서 저는 '터프 가이'가 나타나리라고 믿습니다.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근성과 힘을 갖출 때 우리는 또한번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작은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그리고 오늘 일시적으로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고난의 과정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다. 작고 고난에 찬 현실, 이것은 위대한 일의 시작일 수가 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본문의 첫 번째 교훈. 두 번째로, 우리가 정말 visionary 가, 하나님이 쓰시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두번째로 우리 안에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겨자씨의 이 비유를 통해서 단순히 작은 것의 중요성만을 가르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것을 대표하려는 의도만 있었더라면 주님의 교훈에서 겨자씨 말고도 도구로 쓰일 수 있는 다른 작은 것이 많이 있어요. 자, 모래알도 작은 거구요, 먼지도 작은 거잖아요. 그러나 궂이 겨자씨의 비유를 선택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겨자씨가 모래하고 다른 게 뭐예요 생명력이 있어요. 그래서 어때요 자라납니다. 자, 자랄 수가 있는 것 그것은 생명 때문입니다. Life. 생명력. 그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 겨자씨가 자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비밀은 바로 생명력입니다. 그래서 자라납니다. 처음에 겨자씨, 아주 작은 것. 겨우 눈에도 띨까 말까 한 작은 것.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의 겨자씨는 그 크기가 직경이 1mm 그리고 얼마나 작은지 몰라요. 무게가 1mg정도밖에 되지 않는데요. 이렇게 작은 겨자씨. 눈에 띌까 말까 한 작은 겨자씨. 그러나 그렇게 작은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평균 키가 어느 정도 되냐면
1.5m 까지는 자라납니다.
1.5m. 그러나 어떤 겨자씨는 종자에 따라 3m 이상도 자란대요. 3m이상 자라나요. 굉장하죠. 여러분. 3m이상이면 굉장한 겁니다. 거기에 가지를 펼치고 새들이 날아와 앉는 안식처를 만드는 이 거대한 나무에로의 성장. 이 작은 겨자씨. 눈에 띌까 말까 한 작은 겨자씨. 그러나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력 때문입니다. 도대체 주께서 뭘 얘기 하시려고 합니까 겨자씨의 생명력. 주님은 그것을 복음의 생명력에 비유하고 싶어 하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복음의 생명력. 복음이란 뭘까요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예수가 Good news. 예수가 복음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예수가 생명이시고 예수가 능력이십니다. 여러분,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런 불평을 했을지 몰라요. 예수 따라 다녀 봤자 예수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했을 지 몰라요. 뭐 별로 다른 거 생기는 것도 없지 않느냐.
그런데 여러분 예수를 과소평가하면 안돼요. 기독교의 최대의 자산, 우리의 최대 자산, 우리 인생의 꿈, 우리의 소망, 우리의 반석, 우리의 능력, 우리의 모든 것, 그것은 예수가 모든 것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 붙들고 있으면 다예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신 예수. 그래서 마지막 한줌의 제자 밖에 안되는 11명의 제자를 향해 그가 남기신 교훈. "가서 모든 족속으로 네 제자를 삼으라. 세계 모든 곳을 바꾸어라"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마지막에 어떻게 말씀하세요 "볼지어다. 세상끝날까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믿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혹시 우리 가운데도 이런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거 뭐 교회 나와봤자 수지 맞는 게 있느냐 오늘같이 이렇게 비오는 날 이 수지 산구석까지 와야 수지 맞는 게 있느냐 이런 생각을 하실 분 있을지 몰라요. 밤낮 예수. 예수. 그러나 예수가 누구이십니까 예수가. 여러분 혹시 골로새서를 공부해 보셨습니까 골로새서의 대주제. 골로새서의 단일 메시지. 그것은 이것입니다. "예수가 모든 것이다예수가 충만이시다. 예수가 모든 것이 되시다" 예수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작은 일이예요 주님만 함께 계시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일은 우리를 통해서 벌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입이 줄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가 함께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이것이 소망이예요. 이것이 비전입니다. 비전이란 무엇이예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오늘 현실이 고독하지만 현실이 고통스럽지만 현실 저 건너편에서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위대한 내일을 준비하셨다. 그 내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좌절했을까요 그러나 주를 믿는 그 믿음이 부족한 것. 여러분 복음서에 보시면 예수께서 간질병 걸린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제자들이 씨름하다가 고치려고 하다가 못 고쳤어요. 거기 예수님이 오시죠.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죠. "예수님. 우리가 어찌해야 이 어린아이를 도울 수가 없었습니까 고칠 수가 없었습니까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뭐예요 간결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의 믿음이 적다." 믿음이 적다. 없다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를 향한 어떤 믿음이 있으니까, 어떤 유형의 믿음이라도 있으니까. 그래도 예수님 따라다니고 그래도 예수님 붙잡고 다니고, 그래도 예수님 찬송하고 그랬겠죠. 그러나 너희의 믿음이 적다. 그러셨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얘기를 하셨습니까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다면 뭐예요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다면 이산을 명하여 저리로 옮겨라 해도 옮길 것이요. 문제는 이 믿음이 부족하다. 주를 향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주님, 당신이 대답하십시요. 우리는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은 불투명하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그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은 나의 주님, My Load. 주님은 나의 주님 그 주님을 신뢰합니다. 그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일어날 겁니다. 이 주님을 통하여 미래를 보는 눈을 주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통한 위대한 가능성, 그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분이 바로 예수의 Visionary. 예수의 꿈을 꾸는 사람들 인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정말 그 고통스런 시대에 주님이 쓰실 만한 우리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가 있을까요 마지막 세 번째로는 우리의 성장이 이웃들에게 축복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장이, 우리의 변화가, 자! 지금은 작지만 우리는 자라날 것입니다. 지금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다시 재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날 내 삶은 우리의 이웃들에게 반드시 축복이 되리라. 이것을 믿습니까, 여러분 이 고통의 시기를 넘어설 때 나는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는 이웃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는 그런 민족, 그리고 그런 가정, 그런 교회가 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 환상이 있어야 돼요, 이 기대가 있어야 돼요. 이 것이 겨자씨 한 알의 꿈이예요, 작은 겨자씨의 꿈. 내가 자라나 울창한 나무가 될 때, 가지를 펼칠 때 새들은 날아오리라. 그들에게 나는 안식처를 제공하리라. 새들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리라. 내 인생들에게, 내 주변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노래를 주고, 꿈을 주고, 그리고 축복을 나누는 인생, 나는 그런 인생을 기어이 살고야 말 것이다. 이 기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대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겨자씨 한 알의 꿈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입니다. 여러분, 세속적인 성공관과 기독교의 성공관이 어떻게 다릅니까 세속적인 성공관은 내가 열심히 살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공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면, 내가 잘 되면 내가 그 축복으로 이웃을 섬기리라.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제가 자라날 때만 해도 공부하라고 부모들에게 핍박받을 때 그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요즈음도 많이 하는지 모르겠어요. "야 이놈아 공부 좀 해라 배워서 남 주니 "지금도 합니까, 안합니까, 하세요 배워서 남 주니 여러분! 배워서 남 주는 것이예요. 그것 아십니까 배워서 남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식을 얻어서 그 지식으로 자기가 치부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예요. 내가 얻어진 지식으로 겸허하게 인류를 섬기기 위해서, 우리의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서, 역사를 섬기고, 시대를 섬기고, 민족을 섬기고 남 주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벌어서 남 주나" 벌어서 남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버는 중요한 목적이 남을 주기 위해서 버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입니다. 기독교의 재물관이어야 합니다. 저는 그 동안 한국 사회의 최대의 비극 중의 하나가 있었다면 우리 한국에는 깨끗한 부자가 많지 못했다는 사실이예요. 더러 더러, 가끔 가끔 있었지만은 깨끗한 부자의 케이스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외국의 예를 보면 기독교 문화의, 기독교 윤리의 영향을 받은 외국에는 깨끗한 부자가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정직하게 버는 사람들, 또 그들은 어느 정도 벌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foundation, 재단을 만듭니다. 그리고 자기 재산을 공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다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생을 마무리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적 전통이예요. 소위 캘빈주의의 전통이, 신학적인 전통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 끼친 윤리적인 영향의 중요한 가치관이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없었던 한국 역사속에는 더러 더러 부자들이 있었지만은 그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불의했습니다. 잘못된 과정으로 재물을 축적했단 말이지요. 또 재물을 축적한 다음에 자기만을 위해 썼어요. 이웃을 위해 사용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오늘날 경제위기라는 회오리 바람이 불자 우리는 재벌이 이 한국의,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에 책임이 있다. 우리가 지금 그 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만약 경제위기가 우리 민족에게 한 가지 소중한 교훈을 가르칠 수가 있다면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깨끗해 지기를
기도하십시다.
. 그리고 앞으로는 깨끗한 부자가 나올수 있도록 기대하십시다. 깨끗한 부자들! 정직하게 땀흘려 그 대가로 부를 축적할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 부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나를 위한, 그리고 나에 의한, 그리고 나의 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웃들을 위해서 그의 모든 것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 그의 땀흘림이 이웃들에게 축복이 되고, 그의 노력이 이웃들에게 선한 아름다움이 되는 이런 위대한 축복의 환상을 나눌 수 있는 비전, 겨자씨 한 알의 꿈, 이런 꿈을 가진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읽어보면 이 사람은 에피소드도 많이 남기지요. 또 별명도 많습니다. 생긴게 워낙 괴상해 갖고, 참 별명도 많았어요.
그런데 나쁜 별명도 있고 좋은 별명도 있었는데 뭐 고릴라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 생긴게 꼭 고릴라 같잖아요. 또 좋은 별명도 많았어요. 이 사람이 가진 좋은 별명 중 하나는 '정직한 에이브' 그가 어린 시절부터, 틴 에이져 시절부터 그가 받았던 별명가운데 하나가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틴 에이져 시절에, 그가 점원으로 일하는데, 가게에서 일을 합니다. 그가 열심히 정직하게 일을 했습니다. 주인의 눈에 들어서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그 가게에 관리자가 된 것입니다. 정직하게 관리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손님이 와서 돈을 지불하고 갔습니다. 나중에 다시 에이브라함 링컨이 계산해 보니까 10센트를 주지 않았어요. 상대방에게 10센트가 더 가야 되는데 안 줬단 말이지요. 그것 때문에 밤새도록 괴로워합니다. 10센트 때문에, 손님에게 가야할 10센트 때문에, 그가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마침 그 이튿날이 휴일이었어요. 그래서 손님을 찾습니다. 3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거기까지 갑니다. 그리고 그 고객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10센트를 돌려 주고 왔습니다. 주변에서 막 칭찬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정직한 사람이 있다니!
그런데 이 칭찬을 받으면서 에이브는 하나도 기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왜 칭찬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가 가져야 할 것, 그 분에게 돌려드려야 할 것을 돌려드렸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칭찬을 받다니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어느 날 제가 당연히 해야할 것 때문에 칭찬받는 자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그 이상의 일을 함으로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당연히 해야 할 일 말고 당연히 해야 할 그 이상의 일, 그것 때문에 내가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에이브라함 링컨이 변호사가 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어떤 것인줄 아십니까 그는 자기 마을에 가난한 어떤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소송을 하지 못하고 있던 어떤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를 찾아가 무료 변론을 제의합니다. 그리고 그는 변호사가 된 기념으로 처음으로 무료 변론을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일기 가운데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나는 오늘 틴 에이져 시절에 내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처음으로 해 볼 수가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그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참 마음이 기쁘다. 여러분! 그것을 위해서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을 아세요 링컨의 삶, 그가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가 이런 삶에 대한 비전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어머니의 성경, 어머니가 그 손에 쥐어 줬던 바이블의 영향,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최후의 기대를 아십니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예요 그를 축복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앞에 오신 여러분 축복 받으시길 바랍니다. 받을 것입니다, 여려분! 그러나 왜 주님이 나를 축복하시는가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왜 축복하십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면서 궁극적인 그의 기대를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축복의 근원, 무슨 뜻이에요 축복을 받아서 누리는 자가 아니라 축복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패스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 축복의 통로가 되리라. 내가 축복받아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자로 쓰임을 받을 수가 있다. 이 얼마나 얼마나 커다란 기쁨이예요 제가 한 두 달전에 우리 이랜드 박성수 사장이 여러가지로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서 같이 기도하고 싶어서 사장실에 찾아갔습니다. "어렵지요 요즈음 많이 어렵지요" 뭐라고 얘기하는 줄 아세요 "저는 괜찮아요. 직원들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직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요. 오늘 이 시대의 기업주 가운데, 자기의 직원들 가운데 회사사원들의 고통 때문에 자기가 더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이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축복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에이브라함 링컨, 축복받을 만한 존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고통스럽고 왜소하지만 꿈을 가지고 예수와 함께 하고 주님의 꿈을 꾸는 사람들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나누는 자가 될 것입니다. 고통의 현실 저 건너편에서 우리가 깨끗한 민족이 되어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는 민족이 될 수가 있을 때 우리는 경제위기를 허용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의 꿈! 이 꿈속에서 민족의 꿈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꿈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의 꿈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견디겠습니다. 주님 붙들겠습니다. 주님 함께 하신다면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꿈을 꿀 것입니다. 그리고 기어이 가지를 펼치고 새들에게 노래를 제공하는 위대한 인생의 꿈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꿈,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꿈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 어렵지요 그렇습니다. 적지 않은 우리 교회 식구들 가운데서도 고통 당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꿈을 버리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체념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도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그 미래를 보여주시면서 조금만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주님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신 교훈을 받겠습니다. 제대로 받겠습니다. 그리고 견디겠습니다. 주님 의지하겠습니다. 신뢰하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일어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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