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쉬십시오 (막6:30-34)
본문
문화부 장관을 지내신 이어령씨가 쓴 책 가운데 신한국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새로운 시대의 한국인과 옛날의 전통적인 한국인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옛날 한국인과 새 시대의 한국인의 하나의 생활패턴의 가장 커다란 차이를 속도감에서 찾고 있습니다. 속도감각이 다르다. 한국인이 기다림에 익숙한 인내의 세대이었다면 요즈음 새로운 시대의 한국인은 조급해진 소위 빨리 빨리의 세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분의 다른 표현을 빌리면 소위 밥세대와 라면세대의 차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나 혹은 자녀들을 위해서 가정의 주부들 어머니들은 밥을 지어놓고 아랫목에 그 뜸을 들이기 위해서 묻어 놓은 밥의 온기처럼 그렇게 은근한 기다림의 세대였다면 오늘의 시대는 그런 여유나 그런 낭만을 다소간 아니 어쩌면 상당히 잃어버린 세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조급하고 어쩌면 독하기까지 한 그런 이웃들의 얼굴을 우리는 거리에서 쉽게 만나 볼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읖조리던 소월의 시 가운데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시가 있었는데 요즘 이 시는 바뀌었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간편 살자. 간편하게 살자 그래서 간편한 삶을 대표하는 상징이 바로 라면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소위 인스턴트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제가 언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라면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숫자별로 다 있더라구요. 그래서 일 뭐가 있습니까 일번지라면 이는 이백냥라면 삼은 삼양라면 또 사는 사발면 또 오는 오향면 육은 육개장라면 칠은 세븐 뭐요 세븐 뭐 있어요 없으면 누가 그 라면을 발명하시기 바랍니다. 팔은 팔도라면. 숫자별로 있더라구요. 패스트 산업의 발달은 확실히 우리들의 속도감을 촉진 시켰습니다. 좋은 결과도 있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많다고 생각 하는데 그 중에 우리가 가장 잃어버린 커다란 손실이 인내심의 상실이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을 낭비로 생각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휴식의 의미 혹은 안식의 축복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분의30절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 합니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갔다 들어 왔습니다. 그들을 왜 사도라 불렀는고 하니 사도란 말의 뜻이 보내심을 받은 자다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내심을 받아 전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도에 상당한 실적을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보고를 시작 합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헐레벌떡 예수님 앞에 보고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의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아마도 그 보고를 중단 시킨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우리 어디 조용한데 가서 한적한데 가서 쉬면서 같이 얘기하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갈릴리 사역은 상당한 성공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제자들의 전도 활동은 많은 결신자를 얻었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또한 고침을 받고, 귀신들린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고, 많은 무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예수의 명성은 높아졌고 주님의 이름은 찬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다소간 지치기는 했지만은 흥분을 가누기 어려운 감동이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격앙된 심정으로 주님 우리가 가버나움에서는 이런 일을 경험 했구요, 또 나가서 전도할 때 저기서는 이런 놀라운 결과가 일어 났습니다. 이렇게 보고를 올리는 도중에 주님은 갑자기 보고를 중단시키고 휴식을 제안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31절이예요. 자 본문의 31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31절 시작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자 주님이 왜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 하셨을까요 우리 이 질문을 바꾸어서 매우 중요한 이런 질문으로 다시 바꿔 볼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도상에서 삶의 길에서 왜 무엇 때문에 휴식은 필요 할까요 중요한 질문입니다. 휴식은 왜 필요할까요. 우리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본문에서 몇 가지로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성취를 돌아보기 위한 여유를 갖기 위해서 휴식은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성취를 돌아보기 위한 여유 바로 그 여유를 위해서 휴식은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30절을 가만히 읽어보시면 어떤 긴장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 본문이 시작하는 3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어떤 단어가 스트레스를 일으킵니까 낱낱이 그렇죠 정확하다는 면에서 매우 좋은 것이예요. 그러나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착하자 마자 아마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몰아 세우면서 그들이 있었던 일들을 막 보고 하기 시작 했을 거예요. 낱낱이 보고하자 주님은 제자들을 얼굴을 바라 보시다가 그 보고를 중단 시킨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마도 그 보다 중요한 안식의 여유가 제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주님이 판단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안식이란 단어가 맨 처음 나오는 곳은 어디 일까요 안식이라는 단어. 네 창세기에 나오죠. 몇 장에 나옵니까 1장에 나와요 2장에 네 두 장만 인내하고 읽으셨으면 대답을 알 수가 있습니다. 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 하시고 그리고 제 칠일 날 하나님이 쉬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하나님도 쉬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해요. 왜 쉬셨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돌아봄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다. 하나님도 돌아보시고 싶어 하셨다. 그 창조의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창세기 1장에 보시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
그런데 여섯쨋날 창조를 완료 하신 다음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뭐라 그랬어요 심히 좋았다. 하나님이 창조 해 놓은 것을 보면서 야 좋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오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고통의 시기 어떤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지만 저마다 땀 흘려서 우리는 여기까지 인생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돌아 온 인생을 길을 여러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최근에 가져 보셨습니까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이 여유란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저 시카고에 가면 기독교 명문인 윗튼 이라는 대학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 윗튼 대학에서 기독교 문학을 가르키는 라이켄 박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라이켄교수는 이런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기능적 우주로만 창조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보다 더 심미적 우주로 지으셨다. 이란 매우 중요한 애기를 했습니다. 심미적 우주란 말은 아티스틱 유니버스 아름다운 우주로 지으셨다. 여러분 만약 하나님께서 이 우주라는 땅덩이를 기능적으로 살기에 편리한 곳으로만 지으셨다면 우린 그냥 편리하게만 살아가면 되요. 그러나라이켄 교수는 말하기는 하나님은 지구를 살기에 편리한 곳일 뿐만 아니라, 살기에 적합하니까 지구에서 오랫동안 인류가 생존해 왔겠죠 이 지구는 살기에 편리한 곳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살기에 아름다운 곳이다. 살기에 아름다운 지구다. 만약 편리만이 목적이었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라이켄 교수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 자연 사철마다 옷을 갈아 입는 이 자연에게 번거럽고 황홀한 변신은 왜 필요 했을까요 라이켄 교수는 계속 이렇게 글을 씁니다. 여름마다 바다에는 해일이 넘치고 가을에는 낙엽이 져야하고 겨울에는 백설이 대지를 덮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왜 이 우주는 신묘한 음악 그리고 절묘한 미학을 지닌 광채로 가득차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만약 이 전도에서 돌아 온 제자들이 전도의 상당한 실적을 보고하고 싶은 급한 마음이 있었겠지만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전도하러 내 보내서 그 전도에 대한 놀라운 결과가 있게 하시고 전도의 보람을 체험하도록 도우신 주님 정말 감사해요.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보고를 드리기 앞서서 우리 주님을 좀 찬양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예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시작 되었다면 주님이 절대로 중단 시키지 않으셨을 것 같애요. 그러나 서둘러서 보고 그 자체에만 지금 메달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 속에 그들의 그 아름다운 일 그들이 성취한 놀라운 것들을 마음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현대는 소위 실용주의적 가치관 혹은 실용주의적 윤리관에 설득 당한 나머지 오늘 우리는 행동하고 있는 시간 움직이는 시간만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시간은 낭비다.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사실은 여유, 한가함 이것이 보다 위대한 창조의 전제가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숲 속에서 두 노동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은 시작에서 똑같은 시간까지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 작업을 했습니다. 같이 시작했어요. 같이 끝났어요. 한 사람은 점심 시간에 잠깐 한 20분 정도 브레이크 타임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한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4차례 정도 넉넉히 쉬어가며 그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시간에 일이 완료되고 나서 일을 비교를 해 보니까 4번씩이나 쉬어가며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찍어 놨어요. 그러니까 이 첫번째 사람 조금밖에 쉬지 않고 일했던 사람이 놀라면서 아니 당신은 나 보다 훨씬 더 많이 쉬면서 일을 했는데 어째서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단 말이요. 이때 쉬어 가면서 일한 일꾼이 이런 대답을 했답니다. 자네가 잘 보면 나는 쉬면서도끼의 날을 세우고 있었다네. 그 도끼를 다듬고 날을 세우고 있었다네. 그리고 나는 쉬고 나서 더 힘차게 이 나무를 찍었고 그리고 더 많은 결과를 자네보다 얻을 수가 있었다네. 여러분 여유가 낭비가 아니예요. 여유는 성취를 돌아보고 또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 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인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까지 달려온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그 여유를 위해서 휴식은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의 성취를 잠시 돌아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새로운 힘을, 오늘 이 현재에서 새로운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휴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휴식을 필요로 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본문의 31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을 봤습니까 마지막에 쉬라고 주께서 제안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음식도 먹지 못하고 지금 '보고'라는 행동에 매달리는 것을 봤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제자들이 조금 있다가 음식도 먹지 못한 상태속에서 이렇게 서두르다가 그들이 탈진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탈진의 징후, burn-out징후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하신 것입니다. 잠깐 접어두고 우리 가서 먼저 쉬십시다. 그리고 쉬면서 우리 얘기 하십시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쉼이 필요없는, 안식이 필요없는 유일한 분이 있다면 저는 그것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도 쉼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 쉼을 필요로 하신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도 새로워지고자 하셨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에게도 이 새로워짐의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는 어느 날 이 안식을 주제로 하는 성경공부를 하다가 이 성경 한 구절앞에서 무척 놀랐습니다.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출애굽기 31장17절의 말씀입니다. 성경찾을 수 있는 여유가 계신 분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쉬기만 하신 것이 아니예요, 쉬었다는 단어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쉬어 평안하였다.'
그런데 이 '평안하였다'라는 말이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 보시면 영어 단어에는 이런 단어가 씌어있어요. God(하나님이) refreshed Himself.-하나님이 자신을 새롭게 하셨다. 하나님이 쉬면서 자신을 새롭게 하셨다.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새로운 힘을 얻으신 것이예요. 하나님에게 새로워짐의 필요가 있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피조물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얼마나 새로워짐의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먹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지금 이 순간 제자들에겐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한 것입니다. 우리 한적한 곳으로 갑시다. 문자 그대로 한적한 곳은 사막입니다. 이 사막은 멀리 간 것은 아니예요. 갈릴리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벳세다라는 평야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막, 아주 작은 사막이었습니다. 저는 문자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기만의 사막, 자기만의 광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안에 방 하나를 여러분 사막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쉴 수가 있는 곳, 혹은 여러분 집 근처의 조용한 오솔길, 혹은 어느 산마루, 늘 내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찾을 수 있는 사막, 거기서 주 앞에 엎드리고 기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사막, 자기만의 광야가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문자 그대로 우리의 삶의 회복을 위해서 이 한적한 곳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한 사람이 아주 흥미있는 실험을 했어요. 어떤 조용한 도서관을 찾아가서 하루를 머물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매 시간 책을 잔뜩 끼고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 책을 고의성있게 떨어뜨렸습니다. 책을 왕창 떨어뜨리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줄 것 아니예요
그런데 얼마나 도와주었느냐 적어도 지나가던 사람들의 50%이상이 책을 떨어뜨린 이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을 1시간 간격으로 실험을 해 보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똑같은 실험을 하는데, 그러나 똑같은 실험을 하기에 앞서서 도서관에 양해를 구하고 도서관 바로 바깥에다가 잔디깍는 기계를 작동시켰습니다. 부르릉-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똑같은 시간에 시작해서 1시간 간격으로 또 책을 떨어뜨리는 거예요. 그랬더니 얼마나 많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주었을 것 같습니까 10%미만이었어요. '시끄럽다'-이 시끄러움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여유를 빼앗아 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용함 가운데 여유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조용함의 여유, 조용함이라는 축복을 누리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일상 생활을 가만히 복음서에서 관찰해 보면 예수님은 바쁘셨어요. 한가하신 분이 아니예요. 굉장히 바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허둥거리는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바쁘셨으나 여전히 침착한 그 분의 삶,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예수님의 전기를 시도해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저는 가장 감동적인 '예수전'의 작가인 르낭의 글의 한 부분을 기억합니다.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르낭이라는 사람은 절묘한 필체로 예수님의 일상 생활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번역을 해 봤습니다. 그대로 번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이처럼 완벽하고 조화된 풍성한 삶의 모본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열심히 일하셨다. 그러나 그는 적절히 쉬셨다. 그는 일할 때와 쉬실때를 아셨다. 그는 열중할 때와 관조할 때를 아셨다. 그는 즐거워할 때와 슬퍼할 때를 아셨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를 아셨고, 홀로 있을 때를 아셨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그는 홀로 있을 때도 여유로우셨다. 그에게는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겁게 그를 따라 다닐 수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잔치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웃음이 있었고, 그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순간 조용히 다시 자신의 침묵의 성소로 돌아오셨다. 그는 자주 하늘을 응시하셨다. 그리고 자주 그는 들판을 내다 보셨다. 그의 눈길은 숲과 산에 머물러 있었다. 겟세마네동산 가는 길, 포도원 밭길, 기드론 시냇가, 이 길은 언제나 예수의 산책로요, 기도의 오솔길이었다. 그는 확고하셨으나 부드러우셨다. 그는 천천히, 단호하게 십자가를 향해 걸어 가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내 사명을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가 있었다. 그의 삶은 충만한 생명 그 자체였다." 뭐 느낌이 와요 여유가 있어야 이것도 느낌이 오죠 새로워짐-소위 refreshment, 휴식이 우리 주님에게도 이러한 여유를 주셨던 것입니다. 바쁘고 급박한 인생길에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러기에 휴식은 우리에게 얼마나 더 필요한 것입니까 새로워짐의 회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세번째로 휴식은 왜 필요할까요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휴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쉼을 제안하시고 그리고 쉬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속 쉬신것은 아니예요. 사실상 예수님은 쉴 팔자도 되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볼 수가 있어요. 자, 33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벳세다에 갔더니 예수님이 벳세다에 가셨다는 소문이 나면서 먼저 많은 사람들이 진치고 있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곧바로 다시 사역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4절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전혀 쉴 수가 없을까요 어떤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가졌던 유일한 쉼은 배타고 가시면서 취했던 선상의 휴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32절에 보세요.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 자, 이 가버나움 타운으로부터 시작해서 갈릴리 동편에 있는 베세다로 가기 위해서 탔던 짧은 거리의 선상에 휴식. 그러나 이 잠깐의 휴식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함께 필요한 휴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긴 안식만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예요. 잠깐의 안식, 여러분 잠깐의 새우잠, 얼마나 달아요. 잠깐의 낮잠, 잠깐의 산책, 잠깐의 망중한, 이 잠깐의 휴식도 우리 인생의 장에서 얼마나 여유를 제공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은 그리고 다시 이 잠깐의 휴식을 통해서 얻어진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다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산적한 문제앞에 서서 복음을 외치고 말씀의 사역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쉼은 그에게 재충전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다시 새로운 창조를 위한 사역의 장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휴식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RECREAT
ION' 새로운 창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한 그리고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역의 장에 주님은 휴식 후에 담대하게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사랑하시는 여러분, 휴식은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안식이라는 것은 억지로라도 선택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유대인 출신 심리학자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린이라느 분이 계십니다. 소위 의미의 요법이라는 것을 창안한 분입니다. 이 분이 나치 독일에게서 체포 되어서 감옥소에서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나중에 그것을 회고하는 전기를, 책을 썼습니다. 자, 이 비참한 감옥, 나치 독일의 비참한 감옥 속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자기 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다. 저들은 나치 독일은 우리에게서 부모를 빼앗아 갔고, 처자식을 빼앗아갔고, 사랑하는 친구를 빼앗아 갔고 사랑하는 애인을 빼앗아 갔습니다. 저들은 우리에게서 편리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결코 빼앗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스런 환경 속에 있지마는 이 고통스런 환경속에 어떻게 반응 하느냐, 반응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 이것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여호와를 찬양하셔야 합니다. 위대한 미래를 꿈꾸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우리만의 선택입니다. 여러분, 경제위기 시대에 우리가 다 같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고통에 반응하는 것 이것은 사람마다 달라요. 이 고통 속에 좌절하고 생을 포기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러나 이 고통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고통 앞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설계하는 선택은 아직도 가능합니다. 다같이 불행하지만, 불행 앞에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빅터 플랭크린 박사는 말하기를 '나는 여기에서 묵상을 선택한다. 나는 눈을 감고 미래를 쳐다본다. 그리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서 나는 나아간다. 나는 이 감옥에서도 희망을 선택한다.' 여러분, 그래서 휴식이라는 것은 억지로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 그러면 어디로 가는 것만을 생각지 마세요. 우리가 좀 돈이 없어도, 여유가 없어도, 우리 식구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푸짐한 선물이 없어도 여러분, 가족들이 오래간만에 좋은 시간을 가져보세요. 전화코드도 뽑아버리고, 온 식구들이 가슴을 폭 놓고 인생도 이야기하고, 하나님도 찬양하고 예배도 들이고 오래간만에 이 조촐한 시간, 이것도 위대한 안식 아니예요 진장한 안식은 영적인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안식일 수가 있습니다. 이따금식 보면 예배시간에도 삐삐. '그렇게 인생을 살 필요가 있냐' 그것을 꺼버리고 예배 시간만이라도 마음으로라도 안식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거 없으면 인생을 못 살아요 저는 삐삐를 팔아치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유있게 사세요. 인생을 여유있게. 그렇게 살지 말아요. 이번 추석절에 쉬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나와도 괜찮아요. 가끔 빠지시기 바랍니다. 밤낮 제 얼굴 보고 사는 것 여러분 얼마나 피곤해요 네, 주님 바라보시고 오랫만에 가족들과 푹 쉬세요. 어떤 영어 번역에 보니까 오늘 본문에 '잠깐 와서 쉬어라.' 이 영어 번역을 어떤 영어 성경 번역은 독특하게 했어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Come with me' 나와 함께 같이 가자. 휴식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우리 주와 더불어 함께 있는 것이예요. 여러분 오래간만에 주님을 묵상하시고 깊이 주님 안에 빠져보세요. 주님은 안식의 주인인 줄로 믿습니다. 자,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하던 주님,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 주님이 오늘 우리의 주님인 것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안식의 주인이라고 친히 선포하신 분, 그는 참으로 안식의 주님이십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요, 전도자 가운데 버논 맥기라는 분이 계십니다. 신학교 학장도 지내신 분인데 버논 맥기 박사가 어느 날 안식교인을 만났어요. 이 안식 교인들은 토요일 날 예배드리죠. 토요일을 안식일로 그래서 구약 시대에도 그랬어요. 그래서 버논 맥기 박사를 만나갔고, 이 분이 입에 거품을 물면서 안식일은 토요일날 지켜야지 왜 일요일 날 지킵니까 성경에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change 되었다는 성서적 근거가 있습니까 이때 버논 맥기 박사가 뜻밖에도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그날이 change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안식일입니다. 그러니까 깜짝 놀라서 그러면 토요일날 예배를 드리셔야지 왜 주일 날 드리십니까 그 날이 change 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날을 지키셔야죠. 이때 버논 맥기 박사가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그래요. 맞습니다. 그날은 'The day was not changed.' 그 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바뀌었습니다. 'I am changed.' 내가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게 찾아 온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와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가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삶의 비전을 주시고, 그리고 이 땅에서 진정한 삶의 축복을 나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내게 영생의 소망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에 안식 후 첫날, 그 다음날 주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부활의 날, 내가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 그주 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 줄 믿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 그리고 영원한 안식 그리고 영원한 평안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삶의 능력과 소망을 주신 주님인 것을 인해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Come with me' 나와 함께 가자. 잠깐 쉬십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내 영혼이 쉬지 못하는 분, 삶의 고통, 걱정, 괴롭고 아파 잠이 들 수 없는 안식을 갖지 못하는 아프고 외롭고 영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생에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안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죄가 우리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죄가 우리를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나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내 짐을, 죄악의 짐을 대신 지신 그분, 죄의짐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짐을 짊어지시는 바로 그분,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리스도 앞에 오는 자 그를 의지하는 자 죄사함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워 집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인생을 살다보면 다시 무거운 짐이 얹어지고 허우적거립니다. 충분히 묵상하지 못할 때 여유를 잃어버릴 때, 주님을 향한 시선을 잃어버릴 때 우리도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조용히 주님을 바라보십시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조용히 기도하시며 찬양하십시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분들 몸부림치지 마시고 주님 앞에 다 의탁하세요. 그 주님을 의뢰하시고 주님 안에 쉬어보세요.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안식이 온다면 우리는 이 거친 세상을 향해서 다시 도전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해요 주님. 깊이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기도하십시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만져주시고 이시간 우리를 치료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혼을 주께서 만져주시고, 우리의 상처들이 씻어지고 새로워지고, 이 세대를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찰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들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 저들의 심령이 새로워지게 도와 주시고, 아버지, 이 세대를 이기는 주의 놀라운 능력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에게 쉼을 주시 옵소서.) 아무도 이 세대의 고통에서 예외일 수 없는, 그래서 우리 모두 아프고 우리 모두 외롭고 우리 모두 고통스러운 걸음 걸음.
그런데 하나님, 한가위 추석절이 찾아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식구들과 함께 어울려서도 노래할 용기조차 없는 고통스런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불안한 미래, 기약 없는 내일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아픈 가슴으로 이 추석절에 식구들과 둘러 앉아야 하는 가정들, 하나님, 이런 가정들 속에 특별히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님으로 임하시옵소서. 저들의 가슴을 치료해주시 옵소서.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저들의 마음 속에 노래와 하늘의 기쁨으로 채워지게 도와 주시 옵소서. 다시 일어나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비전과 꿈이 회복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땅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땅에 주의 자비와 긍휼을 내려 주시 옵소서. 하나님, 복음이 이 민족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되도록 도와주시 옵소서. 이 땅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도와 주시 옵소서. 십자기 앞에 무릎꿇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이 참된 안식과 평강의 주인이신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케 하심이 오늘도 주를 예배하고 다시 삶의 장으로 나아가는 모든 주의 자녀들의 머리 위에 저들의 삶의 현장마다 성령님의 권능 그리고 성령님의 샬롬,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첫째로 성취를 돌아보기 위한 여유를 갖기 위해서 휴식은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성취를 돌아보기 위한 여유 바로 그 여유를 위해서 휴식은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30절을 가만히 읽어보시면 어떤 긴장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 본문이 시작하는 3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어떤 단어가 스트레스를 일으킵니까 낱낱이 그렇죠 정확하다는 면에서 매우 좋은 것이예요. 그러나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착하자 마자 아마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몰아 세우면서 그들이 있었던 일들을 막 보고 하기 시작 했을 거예요. 낱낱이 보고하자 주님은 제자들을 얼굴을 바라 보시다가 그 보고를 중단 시킨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마도 그 보다 중요한 안식의 여유가 제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주님이 판단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안식이란 단어가 맨 처음 나오는 곳은 어디 일까요 안식이라는 단어. 네 창세기에 나오죠. 몇 장에 나옵니까 1장에 나와요 2장에 네 두 장만 인내하고 읽으셨으면 대답을 알 수가 있습니다. 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 하시고 그리고 제 칠일 날 하나님이 쉬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하나님도 쉬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해요. 왜 쉬셨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돌아봄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다. 하나님도 돌아보시고 싶어 하셨다. 그 창조의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창세기 1장에 보시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
그런데 여섯쨋날 창조를 완료 하신 다음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뭐라 그랬어요 심히 좋았다. 하나님이 창조 해 놓은 것을 보면서 야 좋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오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고통의 시기 어떤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지만 저마다 땀 흘려서 우리는 여기까지 인생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돌아 온 인생을 길을 여러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최근에 가져 보셨습니까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이 여유란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저 시카고에 가면 기독교 명문인 윗튼 이라는 대학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 윗튼 대학에서 기독교 문학을 가르키는 라이켄 박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라이켄교수는 이런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기능적 우주로만 창조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보다 더 심미적 우주로 지으셨다. 이란 매우 중요한 애기를 했습니다. 심미적 우주란 말은 아티스틱 유니버스 아름다운 우주로 지으셨다. 여러분 만약 하나님께서 이 우주라는 땅덩이를 기능적으로 살기에 편리한 곳으로만 지으셨다면 우린 그냥 편리하게만 살아가면 되요. 그러나라이켄 교수는 말하기는 하나님은 지구를 살기에 편리한 곳일 뿐만 아니라, 살기에 적합하니까 지구에서 오랫동안 인류가 생존해 왔겠죠 이 지구는 살기에 편리한 곳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살기에 아름다운 곳이다. 살기에 아름다운 지구다. 만약 편리만이 목적이었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라이켄 교수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 자연 사철마다 옷을 갈아 입는 이 자연에게 번거럽고 황홀한 변신은 왜 필요 했을까요 라이켄 교수는 계속 이렇게 글을 씁니다. 여름마다 바다에는 해일이 넘치고 가을에는 낙엽이 져야하고 겨울에는 백설이 대지를 덮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왜 이 우주는 신묘한 음악 그리고 절묘한 미학을 지닌 광채로 가득차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만약 이 전도에서 돌아 온 제자들이 전도의 상당한 실적을 보고하고 싶은 급한 마음이 있었겠지만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전도하러 내 보내서 그 전도에 대한 놀라운 결과가 있게 하시고 전도의 보람을 체험하도록 도우신 주님 정말 감사해요.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보고를 드리기 앞서서 우리 주님을 좀 찬양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예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시작 되었다면 주님이 절대로 중단 시키지 않으셨을 것 같애요. 그러나 서둘러서 보고 그 자체에만 지금 메달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 속에 그들의 그 아름다운 일 그들이 성취한 놀라운 것들을 마음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현대는 소위 실용주의적 가치관 혹은 실용주의적 윤리관에 설득 당한 나머지 오늘 우리는 행동하고 있는 시간 움직이는 시간만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시간은 낭비다.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사실은 여유, 한가함 이것이 보다 위대한 창조의 전제가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숲 속에서 두 노동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은 시작에서 똑같은 시간까지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 작업을 했습니다. 같이 시작했어요. 같이 끝났어요. 한 사람은 점심 시간에 잠깐 한 20분 정도 브레이크 타임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한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4차례 정도 넉넉히 쉬어가며 그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시간에 일이 완료되고 나서 일을 비교를 해 보니까 4번씩이나 쉬어가며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찍어 놨어요. 그러니까 이 첫번째 사람 조금밖에 쉬지 않고 일했던 사람이 놀라면서 아니 당신은 나 보다 훨씬 더 많이 쉬면서 일을 했는데 어째서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단 말이요. 이때 쉬어 가면서 일한 일꾼이 이런 대답을 했답니다. 자네가 잘 보면 나는 쉬면서도끼의 날을 세우고 있었다네. 그 도끼를 다듬고 날을 세우고 있었다네. 그리고 나는 쉬고 나서 더 힘차게 이 나무를 찍었고 그리고 더 많은 결과를 자네보다 얻을 수가 있었다네. 여러분 여유가 낭비가 아니예요. 여유는 성취를 돌아보고 또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 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인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까지 달려온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 그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그 여유를 위해서 휴식은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의 성취를 잠시 돌아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새로운 힘을, 오늘 이 현재에서 새로운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휴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휴식을 필요로 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본문의 31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을 봤습니까 마지막에 쉬라고 주께서 제안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음식도 먹지 못하고 지금 '보고'라는 행동에 매달리는 것을 봤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제자들이 조금 있다가 음식도 먹지 못한 상태속에서 이렇게 서두르다가 그들이 탈진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서 탈진의 징후, burn-out징후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하신 것입니다. 잠깐 접어두고 우리 가서 먼저 쉬십시다. 그리고 쉬면서 우리 얘기 하십시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쉼이 필요없는, 안식이 필요없는 유일한 분이 있다면 저는 그것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도 쉼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 쉼을 필요로 하신 이유 중의 하나는 하나님도 새로워지고자 하셨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에게도 이 새로워짐의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는 어느 날 이 안식을 주제로 하는 성경공부를 하다가 이 성경 한 구절앞에서 무척 놀랐습니다. 한 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출애굽기 31장17절의 말씀입니다. 성경찾을 수 있는 여유가 계신 분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쉬기만 하신 것이 아니예요, 쉬었다는 단어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쉬어 평안하였다.'
그런데 이 '평안하였다'라는 말이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 보시면 영어 단어에는 이런 단어가 씌어있어요. God(하나님이) refreshed Himself.-하나님이 자신을 새롭게 하셨다. 하나님이 쉬면서 자신을 새롭게 하셨다.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새로운 힘을 얻으신 것이예요. 하나님에게 새로워짐의 필요가 있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피조물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얼마나 새로워짐의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먹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지금 이 순간 제자들에겐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한 것입니다. 우리 한적한 곳으로 갑시다. 문자 그대로 한적한 곳은 사막입니다. 이 사막은 멀리 간 것은 아니예요. 갈릴리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벳세다라는 평야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막, 아주 작은 사막이었습니다. 저는 문자 그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기만의 사막, 자기만의 광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안에 방 하나를 여러분 사막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쉴 수가 있는 곳, 혹은 여러분 집 근처의 조용한 오솔길, 혹은 어느 산마루, 늘 내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찾을 수 있는 사막, 거기서 주 앞에 엎드리고 기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사막, 자기만의 광야가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문자 그대로 우리의 삶의 회복을 위해서 이 한적한 곳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한 사람이 아주 흥미있는 실험을 했어요. 어떤 조용한 도서관을 찾아가서 하루를 머물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매 시간 책을 잔뜩 끼고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 책을 고의성있게 떨어뜨렸습니다. 책을 왕창 떨어뜨리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줄 것 아니예요
그런데 얼마나 도와주었느냐 적어도 지나가던 사람들의 50%이상이 책을 떨어뜨린 이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을 1시간 간격으로 실험을 해 보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똑같은 실험을 하는데, 그러나 똑같은 실험을 하기에 앞서서 도서관에 양해를 구하고 도서관 바로 바깥에다가 잔디깍는 기계를 작동시켰습니다. 부르릉-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똑같은 시간에 시작해서 1시간 간격으로 또 책을 떨어뜨리는 거예요. 그랬더니 얼마나 많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주었을 것 같습니까 10%미만이었어요. '시끄럽다'-이 시끄러움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여유를 빼앗아 간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용함 가운데 여유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조용함의 여유, 조용함이라는 축복을 누리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일상 생활을 가만히 복음서에서 관찰해 보면 예수님은 바쁘셨어요. 한가하신 분이 아니예요. 굉장히 바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허둥거리는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바쁘셨으나 여전히 침착한 그 분의 삶,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예수님의 전기를 시도해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저는 가장 감동적인 '예수전'의 작가인 르낭의 글의 한 부분을 기억합니다.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르낭이라는 사람은 절묘한 필체로 예수님의 일상 생활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번역을 해 봤습니다. 그대로 번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 이처럼 완벽하고 조화된 풍성한 삶의 모본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열심히 일하셨다. 그러나 그는 적절히 쉬셨다. 그는 일할 때와 쉬실때를 아셨다. 그는 열중할 때와 관조할 때를 아셨다. 그는 즐거워할 때와 슬퍼할 때를 아셨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를 아셨고, 홀로 있을 때를 아셨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그는 홀로 있을 때도 여유로우셨다. 그에게는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겁게 그를 따라 다닐 수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잔치가 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웃음이 있었고, 그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순간 조용히 다시 자신의 침묵의 성소로 돌아오셨다. 그는 자주 하늘을 응시하셨다. 그리고 자주 그는 들판을 내다 보셨다. 그의 눈길은 숲과 산에 머물러 있었다. 겟세마네동산 가는 길, 포도원 밭길, 기드론 시냇가, 이 길은 언제나 예수의 산책로요, 기도의 오솔길이었다. 그는 확고하셨으나 부드러우셨다. 그는 천천히, 단호하게 십자가를 향해 걸어 가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내 사명을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가 있었다. 그의 삶은 충만한 생명 그 자체였다." 뭐 느낌이 와요 여유가 있어야 이것도 느낌이 오죠 새로워짐-소위 refreshment, 휴식이 우리 주님에게도 이러한 여유를 주셨던 것입니다. 바쁘고 급박한 인생길에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그러기에 휴식은 우리에게 얼마나 더 필요한 것입니까 새로워짐의 회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세번째로 휴식은 왜 필요할까요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휴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쉼을 제안하시고 그리고 쉬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속 쉬신것은 아니예요. 사실상 예수님은 쉴 팔자도 되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볼 수가 있어요. 자, 33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벳세다에 갔더니 예수님이 벳세다에 가셨다는 소문이 나면서 먼저 많은 사람들이 진치고 있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곧바로 다시 사역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34절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전혀 쉴 수가 없을까요 어떤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가졌던 유일한 쉼은 배타고 가시면서 취했던 선상의 휴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32절에 보세요.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 자, 이 가버나움 타운으로부터 시작해서 갈릴리 동편에 있는 베세다로 가기 위해서 탔던 짧은 거리의 선상에 휴식. 그러나 이 잠깐의 휴식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함께 필요한 휴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긴 안식만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예요. 잠깐의 안식, 여러분 잠깐의 새우잠, 얼마나 달아요. 잠깐의 낮잠, 잠깐의 산책, 잠깐의 망중한, 이 잠깐의 휴식도 우리 인생의 장에서 얼마나 여유를 제공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은 그리고 다시 이 잠깐의 휴식을 통해서 얻어진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다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산적한 문제앞에 서서 복음을 외치고 말씀의 사역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쉼은 그에게 재충전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다시 새로운 창조를 위한 사역의 장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휴식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RECREAT
ION' 새로운 창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한 그리고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역의 장에 주님은 휴식 후에 담대하게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사랑하시는 여러분, 휴식은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안식이라는 것은 억지로라도 선택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유대인 출신 심리학자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린이라느 분이 계십니다. 소위 의미의 요법이라는 것을 창안한 분입니다. 이 분이 나치 독일에게서 체포 되어서 감옥소에서 많은 세월을 보내면서 나중에 그것을 회고하는 전기를, 책을 썼습니다. 자, 이 비참한 감옥, 나치 독일의 비참한 감옥 속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자기 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다. 저들은 나치 독일은 우리에게서 부모를 빼앗아 갔고, 처자식을 빼앗아갔고, 사랑하는 친구를 빼앗아 갔고 사랑하는 애인을 빼앗아 갔습니다. 저들은 우리에게서 편리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결코 빼앗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스런 환경 속에 있지마는 이 고통스런 환경속에 어떻게 반응 하느냐, 반응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 이것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여호와를 찬양하셔야 합니다. 위대한 미래를 꿈꾸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우리만의 선택입니다. 여러분, 경제위기 시대에 우리가 다 같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고통에 반응하는 것 이것은 사람마다 달라요. 이 고통 속에 좌절하고 생을 포기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러나 이 고통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고통 앞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설계하는 선택은 아직도 가능합니다. 다같이 불행하지만, 불행 앞에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빅터 플랭크린 박사는 말하기를 '나는 여기에서 묵상을 선택한다. 나는 눈을 감고 미래를 쳐다본다. 그리고 빛나는 미래를 향해서 나는 나아간다. 나는 이 감옥에서도 희망을 선택한다.' 여러분, 그래서 휴식이라는 것은 억지로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휴식 그러면 어디로 가는 것만을 생각지 마세요. 우리가 좀 돈이 없어도, 여유가 없어도, 우리 식구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푸짐한 선물이 없어도 여러분, 가족들이 오래간만에 좋은 시간을 가져보세요. 전화코드도 뽑아버리고, 온 식구들이 가슴을 폭 놓고 인생도 이야기하고, 하나님도 찬양하고 예배도 들이고 오래간만에 이 조촐한 시간, 이것도 위대한 안식 아니예요 진장한 안식은 영적인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안식일 수가 있습니다. 이따금식 보면 예배시간에도 삐삐. '그렇게 인생을 살 필요가 있냐' 그것을 꺼버리고 예배 시간만이라도 마음으로라도 안식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거 없으면 인생을 못 살아요 저는 삐삐를 팔아치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유있게 사세요. 인생을 여유있게. 그렇게 살지 말아요. 이번 추석절에 쉬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나와도 괜찮아요. 가끔 빠지시기 바랍니다. 밤낮 제 얼굴 보고 사는 것 여러분 얼마나 피곤해요 네, 주님 바라보시고 오랫만에 가족들과 푹 쉬세요. 어떤 영어 번역에 보니까 오늘 본문에 '잠깐 와서 쉬어라.' 이 영어 번역을 어떤 영어 성경 번역은 독특하게 했어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Come with me' 나와 함께 같이 가자. 휴식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우리 주와 더불어 함께 있는 것이예요. 여러분 오래간만에 주님을 묵상하시고 깊이 주님 안에 빠져보세요. 주님은 안식의 주인인 줄로 믿습니다. 자,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안하던 주님,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 주님이 오늘 우리의 주님인 것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안식의 주인이라고 친히 선포하신 분, 그는 참으로 안식의 주님이십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요, 전도자 가운데 버논 맥기라는 분이 계십니다. 신학교 학장도 지내신 분인데 버논 맥기 박사가 어느 날 안식교인을 만났어요. 이 안식 교인들은 토요일 날 예배드리죠. 토요일을 안식일로 그래서 구약 시대에도 그랬어요. 그래서 버논 맥기 박사를 만나갔고, 이 분이 입에 거품을 물면서 안식일은 토요일날 지켜야지 왜 일요일 날 지킵니까 성경에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change 되었다는 성서적 근거가 있습니까 이때 버논 맥기 박사가 뜻밖에도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그날이 change되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안식일입니다. 그러니까 깜짝 놀라서 그러면 토요일날 예배를 드리셔야지 왜 주일 날 드리십니까 그 날이 change 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날을 지키셔야죠. 이때 버논 맥기 박사가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그래요. 맞습니다. 그날은 'The day was not changed.' 그 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바뀌었습니다. 'I am changed.' 내가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게 찾아 온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와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가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삶의 비전을 주시고, 그리고 이 땅에서 진정한 삶의 축복을 나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내게 영생의 소망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에 안식 후 첫날, 그 다음날 주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부활의 날, 내가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 그주 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 줄 믿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 그리고 영원한 안식 그리고 영원한 평안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삶의 능력과 소망을 주신 주님인 것을 인해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Come with me' 나와 함께 가자. 잠깐 쉬십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내 영혼이 쉬지 못하는 분, 삶의 고통, 걱정, 괴롭고 아파 잠이 들 수 없는 안식을 갖지 못하는 아프고 외롭고 영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생에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안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죄가 우리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죄가 우리를 방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나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내 짐을, 죄악의 짐을 대신 지신 그분, 죄의짐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짐을 짊어지시는 바로 그분,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리스도 앞에 오는 자 그를 의지하는 자 죄사함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워 집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인생을 살다보면 다시 무거운 짐이 얹어지고 허우적거립니다. 충분히 묵상하지 못할 때 여유를 잃어버릴 때, 주님을 향한 시선을 잃어버릴 때 우리도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조용히 주님을 바라보십시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조용히 기도하시며 찬양하십시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분들 몸부림치지 마시고 주님 앞에 다 의탁하세요. 그 주님을 의뢰하시고 주님 안에 쉬어보세요.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안식이 온다면 우리는 이 거친 세상을 향해서 다시 도전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해요 주님. 깊이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기도하십시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만져주시고 이시간 우리를 치료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혼을 주께서 만져주시고, 우리의 상처들이 씻어지고 새로워지고, 이 세대를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찰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들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 저들의 심령이 새로워지게 도와 주시고, 아버지, 이 세대를 이기는 주의 놀라운 능력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에게 쉼을 주시 옵소서.) 아무도 이 세대의 고통에서 예외일 수 없는, 그래서 우리 모두 아프고 우리 모두 외롭고 우리 모두 고통스러운 걸음 걸음.
그런데 하나님, 한가위 추석절이 찾아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식구들과 함께 어울려서도 노래할 용기조차 없는 고통스런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불안한 미래, 기약 없는 내일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아픈 가슴으로 이 추석절에 식구들과 둘러 앉아야 하는 가정들, 하나님, 이런 가정들 속에 특별히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님으로 임하시옵소서. 저들의 가슴을 치료해주시 옵소서.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저들의 마음 속에 노래와 하늘의 기쁨으로 채워지게 도와 주시 옵소서. 다시 일어나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비전과 꿈이 회복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땅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땅에 주의 자비와 긍휼을 내려 주시 옵소서. 하나님, 복음이 이 민족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되도록 도와주시 옵소서. 이 땅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도와 주시 옵소서. 십자기 앞에 무릎꿇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이 참된 안식과 평강의 주인이신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케 하심이 오늘도 주를 예배하고 다시 삶의 장으로 나아가는 모든 주의 자녀들의 머리 위에 저들의 삶의 현장마다 성령님의 권능 그리고 성령님의 샬롬,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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