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방인의 경건 (행10:1-8)
본문
앤소니 드 멜로우라고 하는 신부님이 쓴 '종교박람회'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낸 친구, 그는 믿지 않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뭐 그런 얘기입니다. 믿지 않는 친구가 처음 예수 믿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래, 자네 요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며"라고 묻습니다. "그렇게 됐네"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알겠구만.글쎄, 뭐 그렇게 아는 것이 없는데.그러면 내가 묻겠는데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태어났나모르겠는데.그러면 몇 살 때 죽었지그것도 모르겠는데.설교를 몇 번이나 하셨나그것도 모르겠는데." 대화가 이쯤 되니까 그 믿지 않는 친구가 예수 믿는다는 친구를 비웃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구만. 그래도 예수 믿는 건가 한심하게 보이누만." 그때에 예수 믿는 친구가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별로 아는 게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것 같으네. 그러나 내가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서 달라진 게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그걸 알기 시작했고,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변화가 왔구만. 내 자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내가 보고 나 스스로 놀라고 있네. 자네도 알다시피 3년전 까지는 나는 주정뱅이요 빚도 많았고,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내가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는 아이와 아내 할 것 없이 온 집안 식구가 나를 무서워했네. 그리고 모두가 나를 반가와 하지 않았고, 또 반가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기에 늘 골 부리면서 화를 내며 그렇게 살아왔는데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은 모든 사람이 나를 반가와 하네. 또 나도 내 가족들과 아이들과 만나는 것이 이렇게 반갑고 즐거울 수가 없구만. 그리고 나는 몰랐는데 오래 전부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 그 한가지를 배웠네. 그러고 보니까 감사하고, 내가 사는 하루하루의 생이 얼마나 소중한 지 삶 자체가 소중해졌네." 이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 믿지 않는 친구는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어서 얼마나 공부를 했습니까 가끔 보면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 자신은 하나도 안 달라지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젊은 목사님의 설교에 그런 말이 있더라구요. 지방에 살면서 서울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 하숙을 했는데 그 하숙집 마나님이 예수 잘 믿는 사람이에요. 전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고, 금식도 잘하고, 전도 많이 해서 전도상도 타고 이런 권사님인데 좌우간 집에서 부부싸움을 할 때는 온 동네가 알게 시끄럽게 싸우는 거예요. 이 청년이 갈등을 일으켰다는 거예요. '저렇게 잘 믿고 열심히 믿는 사람이 왜 사람은 저 모양일까 왜 이럴까' 이거 고민하다가 그거 해결하겠다고 신학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까지도 그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데요. 여러분 이걸 아셔야 됩니다. 결국은 사랑이라는 것은 혹은 믿음이라는 것은 그 믿음과 사랑으로 인해서 내가 나도 모르게 달라지는 것이에요. 그것이 경건이요, 경건의 능력이요, 경건의 신비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방사람 하나가 경건하게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 이방인의 경건이 있는데 그건 아주 심각한 신학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과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 되겠다."고 했는데 사도행전은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된 이야기 사마리아의 전도, 그 다음에 땅 끝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가, 가이사랴에 와 있는 로마 사람 전형적인 로마 백부장이 예수를 믿는 겁니다. 땅 끝으로 향하는 관문이요. 이렇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는 군인입니다. 점령지의 군인이요, 부자요, 이방인인데 이 사람이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골적으로 민족 차별을 하던 남아공화국을 여러분이 아실겁니다. 거기에 있던 실화입니다. 남아공화국 거기는 흑인, 백인이 따로 따로 예배를 드리는데 흑인 교회에 Holy Church of Zion, '시온성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성만찬을 하기 전에 세족예라고 하는 것을 행하게 됩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겁니다. 여기에 그 세족예가 있는 날 올리버라고 하는 백인이면서 대법원장, 지체높은 대법원장이 이 흑인 교회에 혼자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세족예를 하는 시간에 자기가 지명해서 마르다라고 하는 여성을 불러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어 줍니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백인이, 그것도 귀족이, 고관이 어떻게 흑인의 발을 씻기는냐" 이거죠. 그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던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집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 씻겨 주었습니다. 그걸 내가 늘 보면서 마음이 괴로웠는데 오늘 내가 이 거룩한 날 우리집의 아이들을 씻어준 바로 이 사람, 내가 그의 발을 씻겨 주어야만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오늘 그의 발을 한번 씻겼는데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고 대답을 합니다. 결국은 이 대법원장은 이것 때문에 파면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제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참 경건이 뭡니까 오늘 이 사람은 로마 사람이요. 정치적으로는 로마 군인이요. 당당한 로마 군인 문화적으로는 헬라 철학에 도통한 사람이요.
그런데 종교적으로는 피지배계급인 점령지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었단 말이요. 이 자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조그만 한 것, 별 것도 아닌 것을 극복하지 못해서 예수 못 믿는 사람 많습니다. 어떤 남편은 부인이 집사인데 교회 안 나오는 사람이 "왜 안 나오냐" 그러니까 "마누라가 먼저 나가서 예수 믿기 때문에 내가 뒤따라 갈 수 없잖아요." 나보고 농담 삼아 그러더라고요. "몇 년 나가면 장로 주겠소"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못 줘." 그러고 말았어요. 도대체 이 사람 자기 마누라가 집사니까 나는 장로가 되어야지. 어떻게 내가 치마꼬리 따라 가겠느냐 참 답답한 사람들이죠. 별것도 아닌 자존심 때문에 예수 못 믿는, 이런 시원치 않는 남편들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지혜로운 부인들은 예수를 10년 믿으면서도 세례를 안 받다가 남편 믿게 해 가지고 같이 나와서 받는 분이 계세요. 나는 그걸 보면서 '부인은 착하지만 남편은 못났다.' 생각했어요. 얼마나 못됐으면 아내가 그렇게 작정 계획을 세웠겠어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요. 별것도 아닌 자존심 말이에요. 구원의 문제야 그까짓 자존심이 문제입니까 그리고 그 시각으로 오늘 성경을 보세요. 로마 군인이 점령지에 와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요 이것은 참 어려운 겁니다. 가끔 보면 돈 좀 있다고 그래서 어떤 사람은 또 교회 나가면 자꾸 돈 내라고 그러니까 안 나가겠다고 그러더라구요. 요새는 헌금대가 이렇게 돌아갑니다만 옛날에는 매미채가 있었거든요. 북한에서는 아직도 그 매미채로 합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것이에요. 그런 줄이나 아세요. 옛날에 매미채 같은 게 있었어요. 그거 가지고 "돈 달라고 한다고 나 교회 안 나간다." 도대체 몇 푼 가졌다고 이렇게 거만한 겁니까 사람 이런 것 다 벗어 버리기가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로마 군인 고넬료 여기서 그 피지배 사람들이 믿는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유대교를 믿으면서 경건하게 살았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평가해야 됩니다.
그런데 참 경건이라는 것은 야고보서 1장 2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 대한 경건인 동시에 경건은 행동적이라야 돼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불쌍히 여기는 행동이 따를 때 이게 경건이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데요. 오늘 특별히 제 마음을 감동시키는 부분은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 집으로 더불어, 이게 마음에 들어요. 요새 보면 오랫동안 교회 나오면서도 원두막처럼 자기 혼자만 믿는 사람 있어요. 오뚝 서 가지고 저만 잘 믿겠다고. 그러나 오늘 이 사람은 온 집으로 더불어 자기가 믿고 귀한 신앙이기 때문에 온 친척, 온 친구까지 다 믿도록 해요. 온 집으로 더불어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고 가정을 인도하고, 자녀들을 인도하고, 친척을 인도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경건한 생활 아주 중요합니다. 그 속에서 귀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 속에서 귀한 자녀들이 키워집니다. 세상이 이로써 밝아지는 겁니다. 어떤 희생을 지불해서라도 온 집으로 더불어 경건한 생활하는 것은 참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 하나님께서 좋은 눈을 주셔서 저 뒤에 있는 사람까지 제가 알아보거든요. 잘 봅니다. 잘 보여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연세 높은 어머니, 제가 어머님을 북한에 두고 혼자 남하했었기 때문에 늘 그 생각이 그리워요. 부러워요. 연세 높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그 다음에 거기에 나이 많은 아들이 있고, 그 다음에 부인이 있고,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주루룩 한 의자에 길게 앉아서 예배 드리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너무너무 귀한 일이에요. "온 집으로 더불어 경건하게 살았다." 또 기도했다. "항상 기도했다." 그랬어요. 이 기도는 또 '항상'이라는 말에 일상적 의미가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병들면 기도하고, 실패하면 기도하고, 억울하면 기도하고, 꼭 기도할 때가 따로 있어요. 이것은 경건이 아니에요. 경건은 항상 기도해요. 일이 있건 없건 항상 기도해요. 유대사람들은 특별히 하루 세 번씩 시간을 정하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항상 기도하는 거예요. 항상, 시간을 따라서 온 집으로 더불어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특별기도 열심히 하는 것 보다 온 집으로 더불어 같이 앉아서 하나님 앞에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참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또 뿐만아니라 "구제했다."고 했어요. 그 신앙이 생활화되면서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데 피점령지 사람들을 돌아보았어요. 정복자로서 그 약소민족에 속한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았어요. 비참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어요. 권력자가 피지배자의 형편을 돌아보는 그런 마음을 가졌어요. 대단히 귀한 일입니다. 여러분, 경제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가난한 자를 돌아보지 못한 죄로 인하여 가난하게 되는 겁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가끔 어떤 분들은 ‘이제 경제위기시대인데.‘ 그러니까 더 돌아보아야지요. 이상하게도 옛날에 얻어먹는 사람이 많을 때 보면 부잣집에 가면 못 얻어 먹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돌아봅니다. 가장 어려운 사람이 오히려 구제를 하지, 부자는 구제를 하는 일이 없어요. 그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구제하는 사람 만들기 위해서 구제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경제위기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걸 알아야 해요. 가진 자는 더 가지고, 더 가지려고 욕심만 부렸지. 불쌍한 사람을 돌아보는 마음이 없었어요. 요새 특별히 남북회담이 시작되는가 하더니 그만 결렬되고 말았어요. 너무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아, 비료 주려고 갔으면 비료 주면 되지. 왜 이산가족 문제를 놓고 이렇게 줄다리기를 하다가 비료와 자주권을 바꿀 수는 없다는 선언과 함께 끝나고 말았어요. 왜 이래야 됩니까 지금 이 비료 문제라는 것은 시간을 다투는 겁니다. 엄청난 식량과 관계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절박한 시간에 이걸 놓고서 줄다리기를 해요. 이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구제를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 2차대전 나찌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고 있을 때 독일 사람들이 이 유대 사람을 전부 죽이기 위해서 ‘유대 사람은 전부 가슴에 노란 별을 붙이라.’ 그랬어요. 전부 노란 별을 붙이게 될 때 이래가지고는 하나씩 하나씩 잡아가는 거예요. 잡아다 처형하는 거예요. 덴마크 크리스찬 10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은 온 국민에게 "다 노란 별을 붙여라. 덴마크 사람은 다 붙여라." 모두가 노란 별을 붙였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어떤 불이익이 온다하더라도 우리는 유대 사람들이 죄없이 죽어 가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다. 여러분, 이게 쉬운 일입니까 우리가 남을 구제한다 할 때는 벌써 그 사람의 처지와 나와 이게 동일시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불이익도 따르고 비난도 따릅니다. 그것은 악세사리가 아니요. 구제는 훈장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이것은 희생입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참 구제일 수가 없단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말씀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했다." 그랬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제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한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기억하신 바 된다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고넬료가 하는 일은 정성껏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제가 몇 일전에 북한에 갔을 때에도 차를 타고 밤중에 지나가는데 보니까 그 식량을 구하느라고 보따리 하나씩 걸머쥐고 캄캄한 밤에 불빛 하나 없는데 그냥 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너무 안 되어서 가다가 차를 세우고 타라고 몇 사람 태워놓고 가다가 보니까 아 옷이 그런대로 괜찮아요. 전에 입던 옷이 아니고 깨끗한 옷을 입었어요. 그래서 제가 "거 옷이 좋습니다." 그랬더니 "이거요. 평화그룹에서 보내준 거예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분이 "이 분이 평화그룹 이사장이요." 그랬어요. 우리 교회에서 보내는 모든 것은 교회 이름으로 보내는 게 아닙니다. 평화그룹이라는 이름으로 갑니다. 이름을 숨기고 평화그룹 다 압니다. 평화그룹은 소망교회라는 걸 압니다. 평화그룹에서 보내 온 거예요. 문서적으로는 평화그룹에서
그런데 또한마디 뜨거운 마음이 있어요. 참 귀한 말씀이 있어요 나를 기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 곳에서 옷을 보내 오는게 있는데 평화그룹에서 오는 게 젤 좋고 깨끗해요." 어떻게 기분이 좋은지. 그게 반대로 되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평화그룹에서 온 게 제일 깨끗하고 좋다." 그래요. 그래 내가 악수를 하고 말이에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의 하는 일이 좋은 일이지만은
첫째는 받는 사람이 받을만 해야지요. 받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야 되고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돼요. 하나님의 마음을. 그걸 잊지 말아야 돼요. 이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몰라요. 난 그래서 나 스스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교회마다 이 경제위기 사건 때문에 교인도 줄고, 헌금도 줄고 그럽니다 지금. 그러나 우리 교회는 교인도 늘고, 헌금도 늡니다. 줄지 않습니다. 그것은 북한을 돕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구제하기 때문이다. 선한 일 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그리고 오늘 성경에 보니까 기도를 응답하셨다. 기도한다고 몸부림친다고 그것이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셔야지요. 하나님이 응답하셨어요.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어요.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는데, 지금까지 가졌던 유대교적 경건, 거기서 한단 높여서 기독교적, 복음적 경건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경건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높은 차원의 경건을 주시는데 그래서 저 시몬, 욥바에 있는 시몬을 데려 오라 그럽니다. 그 시몬이 머물렀다는 집이 지금도 바닷가에 있습니다. 가보면 거기 있는데 제가 한 번 예루살렘에 갔을 때 보고 한참 서서 생각했습니다만 "그 집에 가서 베드로를 청해 오라" 그래요. 청해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깐 이건 순종이지요. 주시는 말씀에 대한 순종, 이것이 경건이요. 그 다음에는 영접하는 모습을 보세요. 온 집으로 더불어 꿇어 엎드리고 얼마나 정성껏 절을 했는지.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입니다. 초라한 그저 덥수부리 영감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군인입니다. 같이 있는 사람들도 장교입니다. 훈장을 단 로마 군인, 화려한 군인인데 다 엎드려 절을 하는데 얼마나 간절하게 엎드렸던 간에 원래 '부르스 쿠 내오'라고 하는 헬라어는 '발에 입 맞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나 간절히 절을 했던지 베드로가 절하는 사람을 일으키면서 "나도 사람이요." 그럽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하는 절처럼 신에게 하는 것을 한 거죠. "나도 사람이요. 일어나세요." 얼마나 진실하고 경건했던가를 말해주는 겁니다. 그뿐아니라 모두가 함께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말씀을 듣기 위하여 우리가 다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베드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는 신앙적으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을 합니다. 아랍말로 설교했겠지만 듣는 사람은 방언의 역사가 나타나서 각각 자기말로 듣게 됩니다. 다 알아들어요. "방언을 하더라" 그랬어요. 이래서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저는 늘 이 장면을 소중히 여깁니다. 베드로라는 사람을 본 게 아니요. 하나님이 보내신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저 한 것 뿐이에요. 여기에 경건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배의 경건, 예배의 경건이 있었어요. 말씀을 듣는 경건이 있었습니다. 큰 역사가 나타나고 마침내 고넬료의 가족이 다 세례를 받습니다. 전설대로 보면 이들은 로마로 돌아가서,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하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이 됩니다. 너무너무 귀한 일 아닙니까 그는 귀족 의식이나 계급 의식이나 자존심이나 자기 명예를 다 포기하고 그런 경건,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하면서 하나님 앞에 있는 그 말씀을 듣는 복음적 경건이 있었기에 그와같이 하나님 앞에 소중하게 쓰여지는 이방사람으로서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첫 번 열매가 됩니다. 이 놀라운 경건의 능력을 우리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과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 되겠다."고 했는데 사도행전은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된 이야기 사마리아의 전도, 그 다음에 땅 끝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가, 가이사랴에 와 있는 로마 사람 전형적인 로마 백부장이 예수를 믿는 겁니다. 땅 끝으로 향하는 관문이요. 이렇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는 군인입니다. 점령지의 군인이요, 부자요, 이방인인데 이 사람이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골적으로 민족 차별을 하던 남아공화국을 여러분이 아실겁니다. 거기에 있던 실화입니다. 남아공화국 거기는 흑인, 백인이 따로 따로 예배를 드리는데 흑인 교회에 Holy Church of Zion, '시온성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성만찬을 하기 전에 세족예라고 하는 것을 행하게 됩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겁니다. 여기에 그 세족예가 있는 날 올리버라고 하는 백인이면서 대법원장, 지체높은 대법원장이 이 흑인 교회에 혼자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세족예를 하는 시간에 자기가 지명해서 마르다라고 하는 여성을 불러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서 발을 씻어 줍니다.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백인이, 그것도 귀족이, 고관이 어떻게 흑인의 발을 씻기는냐" 이거죠. 그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집에 노예로 있던 사람입니다. 한평생 우리집 아이들의 발을 수백 번 씻겨 주었습니다. 그걸 내가 늘 보면서 마음이 괴로웠는데 오늘 내가 이 거룩한 날 우리집의 아이들을 씻어준 바로 이 사람, 내가 그의 발을 씻겨 주어야만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오늘 그의 발을 한번 씻겼는데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고 대답을 합니다. 결국은 이 대법원장은 이것 때문에 파면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제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참 경건이 뭡니까 오늘 이 사람은 로마 사람이요. 정치적으로는 로마 군인이요. 당당한 로마 군인 문화적으로는 헬라 철학에 도통한 사람이요.
그런데 종교적으로는 피지배계급인 점령지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었단 말이요. 이 자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조그만 한 것, 별 것도 아닌 것을 극복하지 못해서 예수 못 믿는 사람 많습니다. 어떤 남편은 부인이 집사인데 교회 안 나오는 사람이 "왜 안 나오냐" 그러니까 "마누라가 먼저 나가서 예수 믿기 때문에 내가 뒤따라 갈 수 없잖아요." 나보고 농담 삼아 그러더라고요. "몇 년 나가면 장로 주겠소"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못 줘." 그러고 말았어요. 도대체 이 사람 자기 마누라가 집사니까 나는 장로가 되어야지. 어떻게 내가 치마꼬리 따라 가겠느냐 참 답답한 사람들이죠. 별것도 아닌 자존심 때문에 예수 못 믿는, 이런 시원치 않는 남편들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지혜로운 부인들은 예수를 10년 믿으면서도 세례를 안 받다가 남편 믿게 해 가지고 같이 나와서 받는 분이 계세요. 나는 그걸 보면서 '부인은 착하지만 남편은 못났다.' 생각했어요. 얼마나 못됐으면 아내가 그렇게 작정 계획을 세웠겠어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요. 별것도 아닌 자존심 말이에요. 구원의 문제야 그까짓 자존심이 문제입니까 그리고 그 시각으로 오늘 성경을 보세요. 로마 군인이 점령지에 와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요 이것은 참 어려운 겁니다. 가끔 보면 돈 좀 있다고 그래서 어떤 사람은 또 교회 나가면 자꾸 돈 내라고 그러니까 안 나가겠다고 그러더라구요. 요새는 헌금대가 이렇게 돌아갑니다만 옛날에는 매미채가 있었거든요. 북한에서는 아직도 그 매미채로 합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것이에요. 그런 줄이나 아세요. 옛날에 매미채 같은 게 있었어요. 그거 가지고 "돈 달라고 한다고 나 교회 안 나간다." 도대체 몇 푼 가졌다고 이렇게 거만한 겁니까 사람 이런 것 다 벗어 버리기가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로마 군인 고넬료 여기서 그 피지배 사람들이 믿는 그 나라 사람들이 믿는 유대교를 믿으면서 경건하게 살았다는 것은 대단히 크게 평가해야 됩니다.
그런데 참 경건이라는 것은 야고보서 1장 2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 대한 경건인 동시에 경건은 행동적이라야 돼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불쌍히 여기는 행동이 따를 때 이게 경건이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데요. 오늘 특별히 제 마음을 감동시키는 부분은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 집으로 더불어, 이게 마음에 들어요. 요새 보면 오랫동안 교회 나오면서도 원두막처럼 자기 혼자만 믿는 사람 있어요. 오뚝 서 가지고 저만 잘 믿겠다고. 그러나 오늘 이 사람은 온 집으로 더불어 자기가 믿고 귀한 신앙이기 때문에 온 친척, 온 친구까지 다 믿도록 해요. 온 집으로 더불어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고 가정을 인도하고, 자녀들을 인도하고, 친척을 인도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경건한 생활 아주 중요합니다. 그 속에서 귀한 인물이 나옵니다. 그 속에서 귀한 자녀들이 키워집니다. 세상이 이로써 밝아지는 겁니다. 어떤 희생을 지불해서라도 온 집으로 더불어 경건한 생활하는 것은 참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 하나님께서 좋은 눈을 주셔서 저 뒤에 있는 사람까지 제가 알아보거든요. 잘 봅니다. 잘 보여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연세 높은 어머니, 제가 어머님을 북한에 두고 혼자 남하했었기 때문에 늘 그 생각이 그리워요. 부러워요. 연세 높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그 다음에 거기에 나이 많은 아들이 있고, 그 다음에 부인이 있고,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주루룩 한 의자에 길게 앉아서 예배 드리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너무너무 귀한 일이에요. "온 집으로 더불어 경건하게 살았다." 또 기도했다. "항상 기도했다." 그랬어요. 이 기도는 또 '항상'이라는 말에 일상적 의미가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병들면 기도하고, 실패하면 기도하고, 억울하면 기도하고, 꼭 기도할 때가 따로 있어요. 이것은 경건이 아니에요. 경건은 항상 기도해요. 일이 있건 없건 항상 기도해요. 유대사람들은 특별히 하루 세 번씩 시간을 정하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항상 기도하는 거예요. 항상, 시간을 따라서 온 집으로 더불어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특별기도 열심히 하는 것 보다 온 집으로 더불어 같이 앉아서 하나님 앞에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참으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또 뿐만아니라 "구제했다."고 했어요. 그 신앙이 생활화되면서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데 피점령지 사람들을 돌아보았어요. 정복자로서 그 약소민족에 속한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았어요. 비참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어요. 권력자가 피지배자의 형편을 돌아보는 그런 마음을 가졌어요. 대단히 귀한 일입니다. 여러분, 경제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가난한 자를 돌아보지 못한 죄로 인하여 가난하게 되는 겁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가끔 어떤 분들은 ‘이제 경제위기시대인데.‘ 그러니까 더 돌아보아야지요. 이상하게도 옛날에 얻어먹는 사람이 많을 때 보면 부잣집에 가면 못 얻어 먹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돌아봅니다. 가장 어려운 사람이 오히려 구제를 하지, 부자는 구제를 하는 일이 없어요. 그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구제하는 사람 만들기 위해서 구제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경제위기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걸 알아야 해요. 가진 자는 더 가지고, 더 가지려고 욕심만 부렸지. 불쌍한 사람을 돌아보는 마음이 없었어요. 요새 특별히 남북회담이 시작되는가 하더니 그만 결렬되고 말았어요. 너무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아, 비료 주려고 갔으면 비료 주면 되지. 왜 이산가족 문제를 놓고 이렇게 줄다리기를 하다가 비료와 자주권을 바꿀 수는 없다는 선언과 함께 끝나고 말았어요. 왜 이래야 됩니까 지금 이 비료 문제라는 것은 시간을 다투는 겁니다. 엄청난 식량과 관계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절박한 시간에 이걸 놓고서 줄다리기를 해요. 이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구제를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 2차대전 나찌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고 있을 때 독일 사람들이 이 유대 사람을 전부 죽이기 위해서 ‘유대 사람은 전부 가슴에 노란 별을 붙이라.’ 그랬어요. 전부 노란 별을 붙이게 될 때 이래가지고는 하나씩 하나씩 잡아가는 거예요. 잡아다 처형하는 거예요. 덴마크 크리스찬 10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은 온 국민에게 "다 노란 별을 붙여라. 덴마크 사람은 다 붙여라." 모두가 노란 별을 붙였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어떤 불이익이 온다하더라도 우리는 유대 사람들이 죄없이 죽어 가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다. 여러분, 이게 쉬운 일입니까 우리가 남을 구제한다 할 때는 벌써 그 사람의 처지와 나와 이게 동일시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불이익도 따르고 비난도 따릅니다. 그것은 악세사리가 아니요. 구제는 훈장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이것은 희생입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참 구제일 수가 없단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말씀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했다." 그랬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제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한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기억하신 바 된다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고넬료가 하는 일은 정성껏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제가 몇 일전에 북한에 갔을 때에도 차를 타고 밤중에 지나가는데 보니까 그 식량을 구하느라고 보따리 하나씩 걸머쥐고 캄캄한 밤에 불빛 하나 없는데 그냥 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너무 안 되어서 가다가 차를 세우고 타라고 몇 사람 태워놓고 가다가 보니까 아 옷이 그런대로 괜찮아요. 전에 입던 옷이 아니고 깨끗한 옷을 입었어요. 그래서 제가 "거 옷이 좋습니다." 그랬더니 "이거요. 평화그룹에서 보내준 거예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분이 "이 분이 평화그룹 이사장이요." 그랬어요. 우리 교회에서 보내는 모든 것은 교회 이름으로 보내는 게 아닙니다. 평화그룹이라는 이름으로 갑니다. 이름을 숨기고 평화그룹 다 압니다. 평화그룹은 소망교회라는 걸 압니다. 평화그룹에서 보내 온 거예요. 문서적으로는 평화그룹에서
그런데 또한마디 뜨거운 마음이 있어요. 참 귀한 말씀이 있어요 나를 기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 곳에서 옷을 보내 오는게 있는데 평화그룹에서 오는 게 젤 좋고 깨끗해요." 어떻게 기분이 좋은지. 그게 반대로 되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평화그룹에서 온 게 제일 깨끗하고 좋다." 그래요. 그래 내가 악수를 하고 말이에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의 하는 일이 좋은 일이지만은
첫째는 받는 사람이 받을만 해야지요. 받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야 되고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돼요. 하나님의 마음을. 그걸 잊지 말아야 돼요. 이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몰라요. 난 그래서 나 스스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교회마다 이 경제위기 사건 때문에 교인도 줄고, 헌금도 줄고 그럽니다 지금. 그러나 우리 교회는 교인도 늘고, 헌금도 늡니다. 줄지 않습니다. 그것은 북한을 돕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구제하기 때문이다. 선한 일 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그리고 오늘 성경에 보니까 기도를 응답하셨다. 기도한다고 몸부림친다고 그것이 되는 겁니까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셔야지요. 하나님이 응답하셨어요.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어요.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는데, 지금까지 가졌던 유대교적 경건, 거기서 한단 높여서 기독교적, 복음적 경건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경건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높은 차원의 경건을 주시는데 그래서 저 시몬, 욥바에 있는 시몬을 데려 오라 그럽니다. 그 시몬이 머물렀다는 집이 지금도 바닷가에 있습니다. 가보면 거기 있는데 제가 한 번 예루살렘에 갔을 때 보고 한참 서서 생각했습니다만 "그 집에 가서 베드로를 청해 오라" 그래요. 청해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깐 이건 순종이지요. 주시는 말씀에 대한 순종, 이것이 경건이요. 그 다음에는 영접하는 모습을 보세요. 온 집으로 더불어 꿇어 엎드리고 얼마나 정성껏 절을 했는지.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입니다. 초라한 그저 덥수부리 영감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군인입니다. 같이 있는 사람들도 장교입니다. 훈장을 단 로마 군인, 화려한 군인인데 다 엎드려 절을 하는데 얼마나 간절하게 엎드렸던 간에 원래 '부르스 쿠 내오'라고 하는 헬라어는 '발에 입 맞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나 간절히 절을 했던지 베드로가 절하는 사람을 일으키면서 "나도 사람이요." 그럽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하는 절처럼 신에게 하는 것을 한 거죠. "나도 사람이요. 일어나세요." 얼마나 진실하고 경건했던가를 말해주는 겁니다. 그뿐아니라 모두가 함께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말씀을 듣기 위하여 우리가 다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베드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는 신앙적으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을 합니다. 아랍말로 설교했겠지만 듣는 사람은 방언의 역사가 나타나서 각각 자기말로 듣게 됩니다. 다 알아들어요. "방언을 하더라" 그랬어요. 이래서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저는 늘 이 장면을 소중히 여깁니다. 베드로라는 사람을 본 게 아니요. 하나님이 보내신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저 한 것 뿐이에요. 여기에 경건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배의 경건, 예배의 경건이 있었어요. 말씀을 듣는 경건이 있었습니다. 큰 역사가 나타나고 마침내 고넬료의 가족이 다 세례를 받습니다. 전설대로 보면 이들은 로마로 돌아가서, 로마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하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이 됩니다. 너무너무 귀한 일 아닙니까 그는 귀족 의식이나 계급 의식이나 자존심이나 자기 명예를 다 포기하고 그런 경건,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하면서 하나님 앞에 있는 그 말씀을 듣는 복음적 경건이 있었기에 그와같이 하나님 앞에 소중하게 쓰여지는 이방사람으로서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첫 번 열매가 됩니다. 이 놀라운 경건의 능력을 우리도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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