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중의 빛나는 의 (마5:10-12)
본문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전도로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언제나 새해가 되면 첫주일부터 몇주간은 그해의 표어를 중심으로 설교를 하곤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당분간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나라 처한 상황이 너무나 긴박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동안도 어려운 때가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와 어려움은 준적은 그렇게 많지를 않았습니다. 물가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오른다는 것은 문제도 될 수 없고 많은 가정들이 연쇄부도와 정리해고의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으며 실제로 그와같은 피해를 입은 가정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연말부터 연초에 이르기까지 몇주일 동안은 '절망하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와 뜻이 있다' '희망이 있다'는 내용의 설교를 하여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와같은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와같은 설교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을 격는다고 하여도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살아나게 될 것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만 난다면 고난은 엄청난 훈련과 연단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게 되어 도리어 고난받은 것이 유익이 되는 결과를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와같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고난과 역경중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그와같은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붙잡는자는 어떠한 환난과 역경속에서도 능히 소망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411장 1절과 3절)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일세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135장 1절) 힘들고 어려울 때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붙들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될 것이고 빛난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안교회의 식구들도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므로 승리하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 십자가를 붙드는 것보다 더 강력한 길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능히 그것을 이겨내고 승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당한 고난과 역경이 오히려 빛나는 면류관이 되게하는데 십자가를 붙드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강력한 길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십자가를 붙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는 십자가를 붙들어야만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려울 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환난과 역경중에 쓰러지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6.25와 같이 참으로 힘들고 위험할 때 독신자들의 생존률이 오히려 낮다는 것을 혹시 여러분 아십니까 그와 같이 위험하고 먹고사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되는 때 가족과 자녀가 없이 혼자 몸이라면 오히려 더 살기가 쉬울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짐과 부담이 됨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결국 성공하고 승리한다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사람들을 부담이 없어야 사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부담이 없으면 살기가 오히려 어렵습니다. 부담이 있어야만 삽니다. 혹 여러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피난둥이입니다. 저로 인하여 저희 부모님들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격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가 있었음으로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저를 어떻게 하든지 먹여 살려야만 한다는 정신력은 6.25의 그 고난과 역경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평상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만은 보편적으로 볼 때 독신으로 사는 사람은 성공률이 낮습니다. 혼자 살면 부담이 없어서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지고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벌어서 한 사람이 쓰는 것보다 한 사람이 벌어서 여럿이 쓸 때 사람은 경제적으로 더 안정이 되고 여유 있어 집니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을 때 경제적인 부담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크지만 아이가 있을 때 오히려 저축이 늘고 재산이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마 다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살기 어려울 때 자녀는 정말 십자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없는 사람보다 그 십자가가 있는 사람이 더 안전하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편해 보이지만 위험한 사람입니다. 좋아 보이지만 불안한 사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십자가를 붙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부담스럽다고 내려놓으면 위험합니다. 잘못하면 죽습니다. 어렸을 때 주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주 추운 눈길을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보니 길거리에 쓰러져서 얼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버려 둘 수가 없어서 데리고 가려고 하였으나 한 사람은 자기 혼자 걸어가는 것도 힘이 드는데 그 사람까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혼자 길을 떠났습니다. 할 수 없이 그 사람은 혼자서 그 사람을 업고 추운 눈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한 사람이 길에서 얼어죽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까 먼저 길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추워서 얼어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을 업고 온 사람은 무사히 목적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많이 힘이 들었지만 힘이 들었기 때문에 몸에 열이나서 그 무서운 추위를 이기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면 죽는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십자가를 져야만 삽니다. 어려운 때 십자가를 회피하면 죽고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죽고 망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삶은 참으로 역설적인 것입니다. 작년에 우리는 예산대로 결산하지 못했습니다. 약 4천만원 가량이 미달되었습니다. 27억원이 좀 넘는 예산중에 4천만원 미달은 나라의 경제가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잘한 것입니다. 올해는 작년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힘들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예산을 동결하여 편성하였습니다.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그것도 어려울 것입니다.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는 98년도 예산을 전년도보다 늘려 잡았습니다. 그만큼의 예산이 필요해서도 그랬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만 이 어려운 때를 능히 헤쳐 나갈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시 연말과 연초를 보내면서 여러분들이 헌금하시는 것이 약해 지셨습니다. 성탄헌금과 송구영신예배시 드리는 헌금이 예산에 미달되었습니다. 해마다 새해 첫달이 되면 전년도와 확연히 차이가 나리만큼 헌금이 신장되었으나 올해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조금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경제가 나쁘고 상황이 나쁘다는것은 알지만 제가 보기에 경기보다 믿음이 더 빨리 죽는 것 같습니다. 버텨 볼려고 애도 써보지 아니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백기를 들고 물러서고 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살림을 절약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옳은 일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림을 줄이기에 앞서서 헌금을 먼저 줄였습니다.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입니다. 이삭줍기를 하던 사람이 이삭줍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하던 분들 중에 몇 사람이 슬그머니 십일조를 그만 두었습니다. 특별 절기 헌금도 많이 줄였습니다. 그 결과 작년 결산이 미달 된 것입니다. 물론 헌금이 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도 물론 줄 수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헌금은 가장 마지막에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줄여보고 그래도 안되면 집도 줄여보는 등 최선을 다하고 발버둥질을 치다가 그래도 정 할 수 없을 때 헌금을 줄여야 옳았을 것입니다. 전에도 물론 헌금생활이 힘들었지만 그것을 십자가라고 까지 이야기 하기는 좀 어려웠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98년도에 97년도와 같은 아니 그 이상의 헌금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될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담이 된다고 생각 없이 내려놓으면 살 것 같지만 못삽니다. 그런 정신으로는 절대로 이 어려운 난관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부담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 십자가를 감당하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발버둥질 치는 것이 있어야만 합니다. 지난 주 어느 집사님 한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은행 빚도 많고 해서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만 열심히 일을 해서 꽤 많이 발전하고 성장한 분입니다. 작년 일년동안 자기 집에 생활비도 넉넉히 가져다 쓰지 못하면서도 매월 김창기 목사님 자녀 교육비로 10만원 그리고 이름을 밝히기는 어려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목회자 가정을 위하여 매달 20만원씩을 헌금하였습니다. 김창기 목사님 자녀 교육비는 매월 교회로 직접 헌금을 하였고 목회자 가정을 돕는 20만원은 매달 저를 통하여 직접 그 가정에 전해드렸습니다. 아직도 공장을 세울 때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많이 남아있고 금리가 오름으로 여러 가지 타격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사님은 김창기 목사님 자녀 교육비도 5만원을 올리고 또 어려운 목회자 가정을 돕는 일에도 5만원을 올리겠다는 편지를 저에게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편지 중에 특히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다른 해와는 달리 1년 동안 어려움 없이 이 헌금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하는 정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지금까지 여러 어려운 고비마다 밝은 길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올해는 특별히 좋은 길을 보여 주시시라 믿는 마음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더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는 마음과 정신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란 '핍박을 받아도 의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이 바로 그와 같은 정신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제일 먼저 의를 포기하는 그 나약한 정신으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올해가 제 안식년이기 때문에 주중에는 지방에 내려가 지내고 있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을 책보고 성경 읽고 원고 쓰고 기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읽은 책 중에 아주 귀한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느 미국의 목사님이 현대 교회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영어로 commitment라고 하면 헌신 또는 책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로 committee라고 하면 그 뜻은 위원회라는 말이 됩니다. 그 목사님은 이 두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요즘 교회의 문제는 committee는 있는데 commitment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얼마나 적절한 말인지 모릅니다. 제직회와 당회와 같은 committee는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정작 중요한 헌신 즉 commitment는 없습니다. 그것이 요즘 현대 교회의 문제요 또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의를 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발버둥질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동안교회에도 committee보다 commitment가 필요합니다. 저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십자가 십자가 말만 하면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되어 우리와 직접 상관이 없는 말이 되고 맙니다. 추상적인 십자가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을 것입니다. 올해는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해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는 예산을 증액하였습니다. 그 예산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힘들고 어려울 때 물러서지 아니하고 더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만만하게 보고 헌금부터 절약해서는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헌금을 줄이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십시다. 헌금의 십자가를 지십시다. 헌금 때문에 핍박을 받으십시다. 그렇게 될 때 정말 올 98년도는 누가 무어라고해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해요 주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은 한해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동안교회 교인들이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어려움을 직면한다면 능히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고 승리할 것이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긴 것에 대하여 반드시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의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의의 면류관의 주인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는 98년도 예산을 전년도보다 늘려 잡았습니다. 그만큼의 예산이 필요해서도 그랬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만 이 어려운 때를 능히 헤쳐 나갈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시 연말과 연초를 보내면서 여러분들이 헌금하시는 것이 약해 지셨습니다. 성탄헌금과 송구영신예배시 드리는 헌금이 예산에 미달되었습니다. 해마다 새해 첫달이 되면 전년도와 확연히 차이가 나리만큼 헌금이 신장되었으나 올해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조금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경제가 나쁘고 상황이 나쁘다는것은 알지만 제가 보기에 경기보다 믿음이 더 빨리 죽는 것 같습니다. 버텨 볼려고 애도 써보지 아니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백기를 들고 물러서고 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살림을 절약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옳은 일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림을 줄이기에 앞서서 헌금을 먼저 줄였습니다.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입니다. 이삭줍기를 하던 사람이 이삭줍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하던 분들 중에 몇 사람이 슬그머니 십일조를 그만 두었습니다. 특별 절기 헌금도 많이 줄였습니다. 그 결과 작년 결산이 미달 된 것입니다. 물론 헌금이 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도 물론 줄 수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헌금은 가장 마지막에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줄여보고 그래도 안되면 집도 줄여보는 등 최선을 다하고 발버둥질을 치다가 그래도 정 할 수 없을 때 헌금을 줄여야 옳았을 것입니다. 전에도 물론 헌금생활이 힘들었지만 그것을 십자가라고 까지 이야기 하기는 좀 어려웠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98년도에 97년도와 같은 아니 그 이상의 헌금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될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담이 된다고 생각 없이 내려놓으면 살 것 같지만 못삽니다. 그런 정신으로는 절대로 이 어려운 난관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부담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 십자가를 감당하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발버둥질 치는 것이 있어야만 합니다. 지난 주 어느 집사님 한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은행 빚도 많고 해서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만 열심히 일을 해서 꽤 많이 발전하고 성장한 분입니다. 작년 일년동안 자기 집에 생활비도 넉넉히 가져다 쓰지 못하면서도 매월 김창기 목사님 자녀 교육비로 10만원 그리고 이름을 밝히기는 어려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목회자 가정을 위하여 매달 20만원씩을 헌금하였습니다. 김창기 목사님 자녀 교육비는 매월 교회로 직접 헌금을 하였고 목회자 가정을 돕는 20만원은 매달 저를 통하여 직접 그 가정에 전해드렸습니다. 아직도 공장을 세울 때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많이 남아있고 금리가 오름으로 여러 가지 타격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사님은 김창기 목사님 자녀 교육비도 5만원을 올리고 또 어려운 목회자 가정을 돕는 일에도 5만원을 올리겠다는 편지를 저에게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편지 중에 특히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다른 해와는 달리 1년 동안 어려움 없이 이 헌금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하는 정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지금까지 여러 어려운 고비마다 밝은 길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올해는 특별히 좋은 길을 보여 주시시라 믿는 마음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더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는 마음과 정신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란 '핍박을 받아도 의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이 바로 그와 같은 정신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제일 먼저 의를 포기하는 그 나약한 정신으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올해가 제 안식년이기 때문에 주중에는 지방에 내려가 지내고 있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을 책보고 성경 읽고 원고 쓰고 기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읽은 책 중에 아주 귀한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느 미국의 목사님이 현대 교회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영어로 commitment라고 하면 헌신 또는 책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로 committee라고 하면 그 뜻은 위원회라는 말이 됩니다. 그 목사님은 이 두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요즘 교회의 문제는 committee는 있는데 commitment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얼마나 적절한 말인지 모릅니다. 제직회와 당회와 같은 committee는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정작 중요한 헌신 즉 commitment는 없습니다. 그것이 요즘 현대 교회의 문제요 또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의를 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발버둥질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동안교회에도 committee보다 commitment가 필요합니다. 저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십자가 십자가 말만 하면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되어 우리와 직접 상관이 없는 말이 되고 맙니다. 추상적인 십자가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을 것입니다. 올해는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해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는 예산을 증액하였습니다. 그 예산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힘들고 어려울 때 물러서지 아니하고 더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만만하게 보고 헌금부터 절약해서는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헌금을 줄이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십시다. 헌금의 십자가를 지십시다. 헌금 때문에 핍박을 받으십시다. 그렇게 될 때 정말 올 98년도는 누가 무어라고해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해요 주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은 한해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동안교회 교인들이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어려움을 직면한다면 능히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고 승리할 것이고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긴 것에 대하여 반드시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의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의의 면류관의 주인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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