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이스라엘의 신앙 (창32:22-28)

본문

20여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에게 형 에서가 사백명의 군인을 이끌고 자기를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집니다. 20여년전 형 에서가 자신에게 품고 있었던 원한을 기억하는 야곱에게 에서가 군인을 사백명씩이나 거느리고 자신에게 나아온다는 소식은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야곱은 그때 자신이 꼼짝 없이 형 에서의 손에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그때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해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32:7) 7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약 20년 가까이 우리 한국은 세계가 놀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국민소득 만불을 넘어서고 바야흐로 선진국 진입을 바로 코 앞에 두게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우리는 뜻밖에 경제위기라고하는 복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국민소득은 6천불 수준으로 떨어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혼란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진짜 어려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하니 그와같은 소식이 우리를 얼마나 두렵고 답답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상황과 마음이 오늘 본문의 야곱과 꼭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야곱은 그와같은 상황을 만났을 때 두려움 가운데 걱정만하며 있지 않았습니다. 즉시 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우리는 야곱에게서 그와 같은 정신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야곱과 같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어떻게 하든지 그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최선을 다한다면 세상에 풀지 못할 어려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고 하여도 해결할 수 있는 길과 방법은 반듯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시험 당할 때에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몇주전에 우리가 예배 드리고 있는 이 예배당 안에 새 한 마리가 들어왔었습니다. 그 새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자꾸 유리창에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출구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새가 그 출구를 쉽게 찾지 못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날 예배를 드린 우리 수천명의 교인들은 그 출구로 다 들어오고 또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출구뿐만 아니라 사실은 열려있는 창문도 있었습니다. 새는 당황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마 두렵고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새로서는 죽을 수 있는 그런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러다가는 저 새가 정말 죽겠구나하는 염려와 걱정이 저에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새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출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새는 새로운 생명을 찾아 밖으로 날아갔습니다. 청년 하나가 예배후 저에게 와서 그 새가 결국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야곱이 당한 상황과 지금 우리가 당한 상황이 그때 새가 당한 상황과 비슷합니다. 새로서는 출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결국은 출구를 찾아 무사히 탈출하였습니다. 야곱으로서는 당시 에서의 문제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결국은 야곱도 에서의 문제에서 성공적으로 탈출을 하였습니다. 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결하는 길과 방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 새가 출구를 찾아 왔다 갔다 할 때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출구를 아는데 새만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가 내 말만 알아 들을 수 있다면 그 새는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고도 쉽게 예배당을 빠져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상황이 더 나빠서 새가 나갈 수 있는 출구가 다 막혀 있다고 하였어도 그 새가 나에게 와서 문좀 열어달라고 부탁하였다면 나는 틀림없이 그 새를 살려주기 위하여 문을 열어 주었을 것입니다. 새로서는 거의 불가능하여 살 소망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여도 나에게는 그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 작은 일중의 작은 일이었습니다. 새는 다행이 나갈 문이 열려 있었지만 야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살았습니다. 출구를 찾아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자신의 문을 열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냥 부탁한 것이 아니고 매달려 부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부탁을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살려 주시는 것은 내가 새를 살려 주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살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야곱은 나름대로 자신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략을 세워보기도 하고 뇌물을 써서 에서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다 허사였습니다. 야곱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어려움을 당한 야곱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야곱 주위에 있었으나 에서의 손에서 야곱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야곱은 그 절박한 상황속에 홀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야곱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매달려 하나님과 씨름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위기라고 하는 상상할 수 없는 큰 파도 앞에 서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그리고 조금만 지나면 나아지겠지 희망도 가져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느끼게 될 뿐입니다. 국가도 국가이지만 이 국가적인 재난으로 인하여 에서의 위기를 만난 야곱과 같은 상황에 빠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틀림없이 오늘 이 자리에 나아와 예배하시는 여러분들 중에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에게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눈은 시도 때도 없이 캄캄해 지지만 하나님께는 캄캄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길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길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길이라고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물으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출구가 닫혀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께 부탁하면 얼마든지 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드리면 열어 주시겠다고 약속도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면 망한다면 그것은 길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문이 닫혔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고 망하는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결국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믿으면 살고 안 믿으면 죽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를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쉽게 야곱의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씨름은 밤이 새기까지 계속되었던 것이고 그래서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질 때 까지도 끝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의도가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이와같은 절호의 기회를 통하여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물론 야곱은 에서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은 에서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위하여 야곱에게 환도뼈가 부러지는 지루한 고난의 밤을 주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기도를 열심히 하시고 교회 봉사도 앞장 서서 그러나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시며 더 나아가 정말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시는 교인 가운데도 어려움을 당한 교인이 있다는 것이고 그 어려움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와같은 연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로 만드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정금같은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와 같은 연단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되었고 욥은 그와 같은 연단을 통하여 정금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도 그와같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욥도 그와 같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을 한 곳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는데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도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욥이 욥기 42장 5절에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쉽게 풀리지는 않을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하여 우리도 이스라엘이 되고 정금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 씨름을 새벽까지 끌고 가실는지 모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환도뼈를 꺽으실런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좀 오래간다고 환도뼈가 부러졌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스라엘로 만드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처럼 끈질기게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축복하시기 전에는 놓을 수 없다고 떼를 쓰시기 바랍니다. 건성으로 적당히 그리고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마시고 정말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딩굴고 울부짖으면서 매달려
기도하십시다.
. 야곱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와 여러분의 기도도 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문제도 결국은 다 해결이 되고 뿐만아니라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축복 즉 여러분을 정금과 같은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겸하여 주실줄로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이번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 동안교회와 한국교회에 정금과 같은 이스라엘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저들과 함께 일할 앞날을 기대합니다. 저는 아무런 고난 없이 그냥 부요해진 야곱과 함께 일하는 것을 소원하지 않습니다.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통하여 연단을 받아 정금 같아진 이스라엘과 함께 일하는 것을 소원합니다.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면하여 직접 본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이겠습니까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처럼 매달려 생명을 걸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어려움이 새벽까지 계속되어도 절대로 하나님 잡은 손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하나님이 여러분의 환도뼈를 부러트리신다고 하여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통하여 이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시지만 이 어려움을 야곱같은 믿음으로 이겨내 정금같은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다 받으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7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