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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기회 (고전5: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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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소년원에 간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폭력, 절도, 본드 흡입등과 같은 죄목을 가지고 소년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이었습니다. 특별히 남자 아이들보다 여자 아이들의 생활이 집중적으로 보도 되었는데 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헐씬 더 성실하고 착실하게 소년원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원 안에 세워진 중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여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미용과 같은 기술을 익혀 자격증을 따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와 같은 성취를 통하여 많은 아이들이 전에 저질렀던 모든 잘못된 일에서 벗어나 정말 능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한다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에 깊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저들이 소년원에서 새 사람이 되어서 나온다고 하여도 세상이 선뜻 저들을 받아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소년원 출신이라는 딱지는 평생 저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 딱지 때문에 평생 새로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전과자라는 멍에를 메고 사회와 세상의 변두리에서 거의 살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아무리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여도 세상은 쉽게 저들을 받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들을 쉽게 믿어 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저들을 쉽게 믿고 받아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속담은 우리의 경험속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믿음 때문에 발등이 찍혀 본 경험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누군가를 믿으려고 하면 발등을 찍힐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믿음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발등 찍힐 각오를 요구하고 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누군가를 믿고 그에게 어떤 일을 맡기고 그에게 나름대로 기회를 주려고 할 때 언제나 자기의 발등을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대로 그와 같은 손해와 실패의 가능성이 적은 사람을 선택하려고 애쓰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소년원 출신의 아이들을 선뜻 믿어 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년원 출신 아이들은 보통 다른 아이들보다 발등이 찍힐 확률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가 아닙니다. 저에게도 가끔씩 전과가 있는 분들이 출옥한 후 찾아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솔직히 아직 한 번도 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일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몇번 정도 솔직히 말하면 몇번도 아닙니다. 보통 한 번 많아야 두세번 정도 약간의 물질적인 도움을 준적은 있으나 그 이상의 도움을 드린 적은 없습니다. 발등을 찍힐 확률이 높다는 생각 때문에 선뜻 저들을 믿고 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저들중에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어떤 사람들 보다도 더 훌륭한 삶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낼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낼 사람과 우리의 발등을 찍을 사람을 구별해 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저들 모두를 가능하면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참으로 새롭고 훌륭한 삶을 살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도 좀처럼 그와 같은 기회가 돌아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참으로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참으로 불쌍했습니다. 그리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의 기회를 빼앗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삯을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텔레비젼을 보면서 그 아이들과 저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저 아이들은 죄인이고 나는 의인인가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과 저의 차이는 죄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그 죄가 드러났느냐 드러나지 않았느냐의 차이이었습니다. 저들은 드러난 죄인이었고 저는 드러나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저들은 걸린 죄인이고 저는 걸리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차이는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저 아이들에게는 희망과 기회가 초생달 아니 그믐달 만큼도 주어지지 않는데 오십이 다 되오는 저에게는 아직도 희망과 기회가 보름달처럼 그것도 정월 보름달처럼 주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의 기준에 의하면 저와 저들간의 차이는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와 세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저와 저들간의 차이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저와 저들이 조금도 덜함이 없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저의 죄를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의 눈은 피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죄가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 죄들이 드러난다면 저도 소년원 출신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삶의 기회들을 단번에 잃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저의 온 삶을 일격에 무너트릴 상상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진 죄악들이 제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무도 모르는 오직 하나님과 저 자신만이 아는 죄악들이 있습니다. 의인인척 훌륭한 목사인척 남들을 속이고 저 스스로 까지를 속이며 살고 있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몰라서 저를 인정해 주고 받아 주고 믿어 줍니다. 그리고 기회를 줍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잘 몰라서 동안 교회의 목사로 받아 주고 믿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설교를 듣고도 은혜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도 저에 대한 믿음이 깨진 분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제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몰라서 저를 믿어주고 인정해주고 저에게 기회를 주지만 하나님은 저를 아십니다. 하나님이 저를 아신다면 하나님도 마땅히 저를 불신하고 정죄하셔야만 하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저를 믿어 주십니다. 받아 주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그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아주 깨끗이 잊어 버리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새로운 기회로 인하여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발등을 찍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발등을 찍히시면서도 계속 우리를 믿어 주시고 받아 주시며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저의 모든 죄를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은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저에게도 발등이 찍히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벌써 여러번 발등이 찍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언제나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언제나 발등 찍히실 것을 각오하시고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믿음이 저의 생명이 되었고 구원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려고 하는 사랑을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위해서라고 하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시겠다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러한 마음만 가지신 것이 아니라 이미 감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 때문에 발등만 찍히신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 달려 물한방울 피한방울 남김 없이 다 쏟으셨습니다.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흉악한 강도같은 우리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는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그 강도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말씀이 바로 나에게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도 없이 하나님의 발등을 찍으면서 살아온 강도같은 흉악한 죄인이었으나, 마지막 한 번밖에 남지 않은 회개를 들어 주시고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저에게 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믿고 맡겨 주셔서 천사도 감당할 수 없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며 사는 천국의 삶, 낙원의 삶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삶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그 십자가의 보혈과 그 보혈속에 녹아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단번에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믿습니다. 그 십자가에 나의 구원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 십자가에 나의 소망이 있으며 나의 기회가 있음을 나는 믿습니다. 오늘 본문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은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말씀의 증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안에 우리의 기회가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안에만 우리의 기회가 있습니다. 모든 절망은 그안에서 소망이 됩니다. 기회가 됩니다. 어떤 절망의 풍랑이 우리의 삶을 엄습한다고 하여도 그안에 있으면 결국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어려움의 중심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시말해서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어 주신 분이십니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 우리의 영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육을 구원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안에 기회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에 예수밖으로 밀려나면 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안으로 파고 들면 삽니다.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증인이 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힘들때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만큼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속에 우리의 희망과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소년원 출신 아이들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 까닭은 세상 사람들이 저들을 쉽게 믿어 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들을 쉽게 믿어 주려 하지 않는 까닭은 저들 때문에 손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희생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들 때문에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까닭은 저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저들을 사랑한다면 저들 때문에 당할 손해를 크게 두려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을 믿어 줄 것입니다. 저들을 믿어 주면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새로운 삶을 결심하고 준비한 아이들은 모두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당하는 어떠한 고난과 희생도 두려워 하지 않으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결심하고 준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믿어 주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의 소망과 새로운 삶의 기회는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우리의 소망과 기회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절망적인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절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소망과 기회가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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