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당한 경주 (히12:1-13)
본문
작년말부터 시작된 우리 나라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직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점점 더 그 심각한 증상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우리의 삶을 죄어오고 있습니다. 마치 호랑이에게 물려가고 있는 것과 이때 우리들이 하여야 할 일은 무엇 보다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성격이 무엇인지 그 원인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찾아내어야만 합니다. 만일 그와 같은 것을 찾아내고 규명해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그 문제로 인하여 실패하고 파멸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당하고 있는 이 어려움과 문제의 성격은 과연 어떤 것이며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매우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역경과 어려움등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입니다. 오늘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역경들이 만일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어려움과 역경이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심판과 징계의 중요한 차이인 것입니다. 심판과 징계가 그 모양은 비슷해 보이나 그 본질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안식년 동안에도 KOSTA 집회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우리 민족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나다의 뱅쿠버와 토론토 그리고 미국의 시카고 그리고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모두 청년 집회를 가졌습니다. 모든 청년 집회가 다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정말 은혜 충만하고 성령님 충만한 집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토와 시카고에서 있어서 코스타 집회는 그 어느해 보다도 많은 청년들이 모여와서 저들을 다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등록을 하지 못한 학생들은 근처에 모텔을 잡아놓고 집회에 참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뱅쿠버에서의 집회는 예정에 없었던 집회이었는데 그 지역의 청년을 사랑하는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이 사흘씩 금식까지하며 이틀간의 집회를 준비했는데 참석한 청년들이 아침 열시부터 밤12시가 넘기까지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까지 줄여가며 집회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이고 뜨거운 집회이었는지 모릅니다. 가는 곳마다 집회 장소를 꽉꽉 채우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열심히 집회에 참석하며 은혜를 받는 수천명의 청년들을 보면서 저는 이번에 우리 민족이 당한 시련이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버리셨다면 가는 곳마다 청년들이 뜨겁게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을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자신있게 오늘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심판이 아니라 징계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경제위기의 프로그램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프로그램대로 이 문제를 풀어간다면 그 문제가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지를 막론하고 틀림없이 성공적으로 풀어갈 수 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당한 문제를 경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1절 하반절에 보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문제들을 일어나 힘써 달려가야 할 경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으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낙심하고 앉아 있어도 안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일어나 달려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승리하여야만 합니다. 경주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첫째, 이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소망과 반드이 승리하겠다는 의욕이 무엇 보다도 필요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번에 당한 우리 민족의 어려움은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생자로 보시지 않으시고 참아들로 보시기 때문에 주신 사랑의 채찍입니다. 망하라고 주신 채찍이 아니라 망하지 말라고 주신 채찍입니다. 그것은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요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당한 어려움은 주저 앉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일어나 뛰라고 주신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수영을 알 줄 아는 사람도 물에 빠져 물을 좀 먹고 당황하게 되면 수영의 폼을 잊어 버리고 허부적 거리게 됩니다. 문제가 없이 편안할 때는 예수님도 생각나고 하나님의 말씀도 어느 정도 기억이 되지만 정작 어려움을 만나고 앞이 캄캄할 때는 예수님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도 생각나지 않기 마련입니다.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허부적 거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다가 무엇을 보고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를 잃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한 어려움이 경주라면 그리고 우리가 당한 경주에서 패배하지 아니하고 승리하려면 무엇을 보고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당황하여 허부적 거리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단거리 경주든 장거리 경주는 코스를 이탈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스를 이탈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는 삶을 위하여 아무리 다급하여도 지켜야 할 코스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온갖 꾀와 편법을 동원해 나름대로 앞서 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뛰는 사람들 때문에 불안해 할 것 없습니다. 저들을 따라 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저들은 코스를 이탈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뛰어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는 사람은 코스대로 뛰는 사람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 때 무엇 보다도 당황하여 예수님을 놓치지 아니하도록 조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붙잡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를 붙잡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지푸라기처럼 의지할 수 없는 세상과 사람 그리고 저들의 꾀를 의지하여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셋째,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만 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경주에서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육상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하여 신발의 무게를 줄이려고 애쓰며 수영 선수들이 물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겠다고 머리를 깍기도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는 절대로 생의 경주에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주를 패배케하는 무거운 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짓는 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 죄가 있습니다. 승리하려면 그 짐을 벗어야만 합니다. 그 죄의 짐을 벗지 아니하면 절대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벗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강제로 벗기십니다. 그 강제로 벗기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채찍질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먼저 자신의 죄를 생각하여야만 합니다. 어떠한 죄를 우리에게서 벗겨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이 징계의 채찍을 들으셨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모든 고난이 다 죄 때문은 아닙니다. 더러 욥과 같이 의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통의 경우 자신이 고난을 당하면 욥과 같은 의인은 고난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죄인이 당하는 고난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채찍을 맞을 때 그것이 심판이 아니라 징계라는 것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채찍질 하심은 우리가 하나님께 사생자가 아니라 참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소망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징계와 채찍질의 목적인 우리들의 죄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회개하여야 할 죄가 있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닌가를 꼼꼼히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 당하는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전에 당신의 채찍을 놓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채찍을 놓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징계에서 심판으로 돌아서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쉽게 포기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를 정확히 이해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기 전에는 절대로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확한 회개가 있어야만 합니다.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약 일년전에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어께를 좀 상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충 약을 먹기도하고 침을 맞기도 하였는데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고 점점 더 나빠져서 지난 주에는 축복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제법 고생을 하였습니다. 정확히 의사의 진단을 받고 치료하여야 했었을 것을 대수롭지 않게 대충 생각하다가 병을 오히려 키운 셈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적당히 생각하고 대처하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몇 년씩 그 채찍을 맞으면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삶의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나의 어떤 죄와 허물이 나의 삶을 무겁게 하고 있는 가를 정확히 살펴 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돌아서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징계를 졸업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당한 환난과 어려움을 심판으로 오해하여 낙심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사랑하여 채찍질 하시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여 마땅히 회개하여야 할 죄를 하나님 앞에 낱낱히 회개하고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전열을 가다듬는다면 우리는 이 힘들고 어려운 경주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될 줄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이니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십시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허우적 대지 말고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만 바라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무겁게하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뿐만 아니라 그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에서 승리하며 그 아름다운 승리의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그 자신의 죄를 자각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뛰는 것을 잘 보면서도 자신의 죄의 짐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문제와 역경을 경주해야 할 경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 여러분의 경주를 경주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경제위기의 프로그램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프로그램대로 이 문제를 풀어간다면 그 문제가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지를 막론하고 틀림없이 성공적으로 풀어갈 수 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당한 문제를 경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1절 하반절에 보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문제들을 일어나 힘써 달려가야 할 경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으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낙심하고 앉아 있어도 안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일어나 달려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승리하여야만 합니다. 경주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첫째, 이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소망과 반드이 승리하겠다는 의욕이 무엇 보다도 필요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번에 당한 우리 민족의 어려움은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생자로 보시지 않으시고 참아들로 보시기 때문에 주신 사랑의 채찍입니다. 망하라고 주신 채찍이 아니라 망하지 말라고 주신 채찍입니다. 그것은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요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당한 어려움은 주저 앉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일어나 뛰라고 주신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수영을 알 줄 아는 사람도 물에 빠져 물을 좀 먹고 당황하게 되면 수영의 폼을 잊어 버리고 허부적 거리게 됩니다. 문제가 없이 편안할 때는 예수님도 생각나고 하나님의 말씀도 어느 정도 기억이 되지만 정작 어려움을 만나고 앞이 캄캄할 때는 예수님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도 생각나지 않기 마련입니다.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허부적 거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다가 무엇을 보고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를 잃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한 어려움이 경주라면 그리고 우리가 당한 경주에서 패배하지 아니하고 승리하려면 무엇을 보고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당황하여 허부적 거리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단거리 경주든 장거리 경주는 코스를 이탈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스를 이탈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는 삶을 위하여 아무리 다급하여도 지켜야 할 코스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온갖 꾀와 편법을 동원해 나름대로 앞서 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뛰는 사람들 때문에 불안해 할 것 없습니다. 저들을 따라 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저들은 코스를 이탈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뛰어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는 사람은 코스대로 뛰는 사람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울 때 무엇 보다도 당황하여 예수님을 놓치지 아니하도록 조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붙잡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를 붙잡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지푸라기처럼 의지할 수 없는 세상과 사람 그리고 저들의 꾀를 의지하여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셋째,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만 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경주에서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육상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하여 신발의 무게를 줄이려고 애쓰며 수영 선수들이 물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겠다고 머리를 깍기도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는 절대로 생의 경주에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주를 패배케하는 무거운 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짓는 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 죄가 있습니다. 승리하려면 그 짐을 벗어야만 합니다. 그 죄의 짐을 벗지 아니하면 절대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벗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강제로 벗기십니다. 그 강제로 벗기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채찍질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먼저 자신의 죄를 생각하여야만 합니다. 어떠한 죄를 우리에게서 벗겨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이 징계의 채찍을 들으셨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모든 고난이 다 죄 때문은 아닙니다. 더러 욥과 같이 의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통의 경우 자신이 고난을 당하면 욥과 같은 의인은 고난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죄인이 당하는 고난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채찍을 맞을 때 그것이 심판이 아니라 징계라는 것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채찍질 하심은 우리가 하나님께 사생자가 아니라 참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소망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징계와 채찍질의 목적인 우리들의 죄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회개하여야 할 죄가 있기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닌가를 꼼꼼히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 당하는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전에 당신의 채찍을 놓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당신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채찍을 놓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징계에서 심판으로 돌아서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쉽게 포기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를 정확히 이해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기 전에는 절대로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확한 회개가 있어야만 합니다.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약 일년전에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어께를 좀 상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충 약을 먹기도하고 침을 맞기도 하였는데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고 점점 더 나빠져서 지난 주에는 축복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제법 고생을 하였습니다. 정확히 의사의 진단을 받고 치료하여야 했었을 것을 대수롭지 않게 대충 생각하다가 병을 오히려 키운 셈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적당히 생각하고 대처하다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몇 년씩 그 채찍을 맞으면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삶의 짐이 점점 무거워 질 때 나의 어떤 죄와 허물이 나의 삶을 무겁게 하고 있는 가를 정확히 살펴 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돌아서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징계를 졸업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당한 환난과 어려움을 심판으로 오해하여 낙심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사랑하여 채찍질 하시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여 마땅히 회개하여야 할 죄를 하나님 앞에 낱낱히 회개하고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전열을 가다듬는다면 우리는 이 힘들고 어려운 경주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될 줄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이니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십시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허우적 대지 말고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님만 바라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무겁게하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뿐만 아니라 그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에서 승리하며 그 아름다운 승리의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그 자신의 죄를 자각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뛰는 것을 잘 보면서도 자신의 죄의 짐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문제와 역경을 경주해야 할 경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 여러분의 경주를 경주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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