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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 (마7:7-12)

본문

우리 모두가 짧은 한 생을 살면서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불확실한 많은 일들과 역경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주신 이 말씀만큼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 붙들고 마음껏 털어놓고 싶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또 귀를 기울이는 분들이 있다 할지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이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우리 모두가 오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조용히 묵상할 때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말씀이 이해하기 매우 쉽습니다. 초등학생도 읽으면 무슨 뜻인지금방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아주 소박한 표현들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말씀 자체를 가슴에 안고 조용히 묵상하며 계속 그 말씀을 반추하면서 마음에 담으면, 이것이 우리 마음을 물댄 동산같이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 다음에 참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그 앞에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자식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줄 자가 없고' 자식이 생선을 달라는 데 뱀을 쥐어 줄 부모가 없습니다. '너희가 악할 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걸 줄줄 알지 않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 마음에 와서 아주 강하게 우리 마음을 찡하게 울리도록 만드는 은혜의 말씀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6장에서 간곡하게 말씀하시던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던 주님이 7장에 와서는 구하라고 하십니다. 찾으라고 합니다. 두드리라고 합니다.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합니까 기도는 염려 백신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염려가 조용해질 수가 있지만 기도를 그만두면 염려가 발병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염려 안 하기와 기도하기는 신앙생활에서 항상 병행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도 똑같은 맥락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뒤 그 다음에 이어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고 기도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제대로 병행될 때 우리의 영혼이 푸른 초장에서 뛰노는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양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를 안 하는데 기도도 안 합니까 반드시 우리의 영혼은 병들고 맙니다. 이 사실을 꼭 명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너무 구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열정을 담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기도는 끈기 있게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절대 포기하지 아니하는 집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좀더 강하게 말씀하기 위해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는 삼중 강조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이런 대단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일단 마음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입술만 가지고 몇 마디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드릴 때 그저 한두 마디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가 될 수는 있지만 진짜 기도의 핵심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열정과 끈기와 집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두 번 기도하다가 그만 두어버리는 것을 기도라 하지 않으십니다. 끝을 볼 때까지 매달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절박한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입니다. 누가복음 11장에 가면, 마태복음에서 읽은 똑같은 본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주님께서 설명하기 위해서 아름다운 예화를 하나 인용하고 계십니다. 어떤 가정에 밤늦게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요즘처럼 전화가 있으면 예고를 하고 오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손님이 들어 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따라 만들어놓은 빵이 전부 동이 나서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빵을 금방 구울 수도 없지 않습니까 발효시켜서 구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귀한 손님이 하루종일 먼 길을 걸어서 밤늦게 찾아 오셨습니다. 매우 시장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 이거 야단났습니다. '그대로 오늘 저녁에는 주무십시오.' 하기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궁리하다 못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친구집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찾아가 보니 벌써 창문에 불이 꺼졌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난 시간입니다. 유대나라 집은 조그만 합니다. 마당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문을 누르고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방문 앞에 가서 두들기고 이야기하면 다 주고받을 수 있는 조그마한 집들입니다. 친구집 문밖에 서서 한참 망설였습니다. '두드릴까 말까, 두드릴까 말까' 그러다가 오늘 밤 시장기를 감추고 잠을 자야 할 손님을 생각하니 도무지 안 되겠습니다. 체면불구하고 두드립니다. '똑똑똑' 안에서 "누구요"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 나 누구야, 우리집에 너무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빵이 없다네. 이렇게 늦게 와서 괴롭혀서 정말 죄송한데, 날 좀 도와주게나. 빵이 있으면 몇 개만 빌려줘.자네가 보다시피 나는 애들하고 벌써 잠자리에 들었어. 어떻게 일어나겠나 오늘 저녁만 참으라고 해. 죄송해. 이제 돌아가주면 좋겠네." 그 말을 들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용기가 없어졌습니다. 문밖에 서서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주저하고 있습니다. 방에 있는 친구는 '자, 이제 갔겠지.' 하고 잠을 청하는데,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자, 안되겠다. 얼굴에 철판 깔고 빵을 얻어 가야 되겠어.' 하고는 전보다도 더 강하게 '땅땅' 두드렸습니다. "야, 정말 괴롭히지 말라는데, 왜 그러니 돌아가라. 오늘 저녁에 난 줄 수 없어. 제발 좀 날 도와줘." 그러자 밖에서는 "제발 날 좀 도와줘. 내가 어떻게 이렇게 돌아가겠니 내가 어떻게 손님을 굶기고 재우겠니 네가 조금만 수고해주면 되지 않니" 하고는 땅땅 두들깁니다. 계속 두드립니다. 일어날 때까지 두드립니다. 자, 이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누가 이길까요 밖에서 두드리는 사람이 이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일어나서 친구에게 빵을 주어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주님이 이야기 말미에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11장 8절입니다. '비록 벗 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친구사이를 생각하면 절대 들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못살게 구니, 저러다가 내가 잠을 못 잘 위험이 있어 할 수 없이 귀찮아서 들어주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이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줄 아십니까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
그러므로 주님이 원하는 기도가 무슨 기도입니까 끝까지 두드리는 기도요, 구하는 기도요, 찾는 기도라 그 말입니다. 주님이 그걸 원하십니다. 이런 기도의 성격을 파악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면 우리가 묵상할 때마다 마음에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몇 가지만 생각해봅시다.
첫째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기도라야 한다.' 라는 암시가 들어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받아내기만 할 수 있다면, 구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두드리고 있습니까 한번 기도하면 끝날 텐데, 한번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실 텐데 왜 집요하게 버티고 서서 두드리고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구하고, 안되면 찾고, 안되면 끝까지 두드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때가 따로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셔야 비로소 내가 무언가 응답을 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계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자세를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어나서 드디어 행동하실 때에는 놀라운 응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그때를 기다리는 기도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워봐서 알지만 머리를 조금만 쓰는 부모들이라면 철 없는 애들이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한다고 해서 다 사주거나 주지 않습니다.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아무리 쇼핑을 해도 애가 달라는 대로 사주는 부모가 없습니다. 부모는 애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기 원하지만 마음으로는 교육적인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아이를 유익하게 하고, 잘 교육시키는 것일까 따라서 아이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서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하나씩 줍니다. 어리석고, 어떤 면에선 악하다고 하는 세상 부모도 이렇게 생각하고 주는데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달란다고 막 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셔서 '기다려야 되겠다'고 하시면 절대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계실 동안 우리는 계속 하나님 앞에 매달립니다. 그러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점점 돈독해지고,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지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인품 전체가 하나님의 눈에 온전하게 기능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녀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면서 어쩔 때는 오래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철 없는 자식이 아니라, 철난 자식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꼭 믿어야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철야기도회가 있습니다. 주보를 보시면 '365일 철야기도회' 광고에 그 시간이 나와 있습니다. 참 놀라운 분들이 많습니다. 한 70-80명이 모여서 밤마다 기도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기도회에 참석한 어느 부인의 간증문을 제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한 10년 하신 분입니다. 가난한 집안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뼈가 부서져라 열심히 일을 했지만 부채는 자꾸 늘어나 갚을 길이 없을 정도로 많아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너무 힘이 없어서 마음으로 좌절을 했습니다. 남편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살고 싶지도 않고, '이러다가 죽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믿어봤자 뾰족한 수가 있나' 하고 자기의 신앙도 회의가 생기는 등,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사랑의 교회 철야기도회가 있다는데, 가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작심을 하고 철야기도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돈 있는 사람 같으면 자가용을 끌고 나오거나 택시를 타고 올 거리입니다. 걸어서 꼬박 45분을 걸어야 나올 수 있습니다. 하루종일 일하고 이제 쉬어야 할 그 시간에 45분을 걸어서 철야기도회에 참석합니다. 기도하다 보면 어떤 때는 2시, 어떤 때는 3시가 되어서 다시 45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잠깐 눈 붙이고, 또 일을 시작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심을 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매를 사랑하셨나 봅니다. 기도하고 나서 보니다달이 필요한 것만큼 재물을 채워주시는 것을 그가 체험했습니다. 장사를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지만, 다달이 필요한 것만큼 하나님이 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급해서 하나님 앞에 막 매달렸는데, 하나님이 귀하게 응답하시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딸이 고3이었는데,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걱정을 했습니다. 철야기도회 나와서 걱정을 했더니 전도사님이 "딸의 눈과 마음과 손이 오답을 찍지 않고 정답을 찍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시험을 앞두고는 밤마다 '하나님이여, 내 딸이 오답을 찍지 않고 꼭 정답만 찍을 수 있도록 우리 딸을 꼭 붙잡아주세요.' 하고는 매달렸답니다. 딸이 제일 어려워하는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막상 시험장에 들어가서 수학시험지를 받아 보니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문제가 한 대여섯 문제가 되더랍니다. 그래서 답을 쓰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 이 딸이 진짜로 찍었습니다. 그 다섯 문제 중에서 4문제가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이거 기적입니다. 그 때문에 성적이 오히려 나아져서 특차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막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이 부인이 밤마다 나와서 기도하면서 깨달은 큰 진리가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썼습니다. '기도하면 바로 응답 받는 것도 있지만, 인내하면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내하면서 오래 기다리고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하는 기도 속에는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사실을 마음에 꼭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11절에 나오지 않습니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대충 상식적으로도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지신 분입니다. 그에게는 부족함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그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그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구더기와 같고 하루살이와 같은 우리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시고 인격적으로 대우 해주시면서 불쌍히 여기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뿐입니까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의 모든 약속은 하나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지키시기를 원하시는 성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분,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는 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 한번 약속하시면 반드시 지키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십니다. 그분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찾는 것입니다. 그분의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에게 일어난 많은 기적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기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맘놓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보면 권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입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가서 그 사람을 보고 "아버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가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영광과 권세를 자기가 같이 누리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아무나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아닙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다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된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을 아무나 아버지라 부르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은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권세를 주셨습니다. '언제든지 나를 아버지라 불러라.'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아버지를 향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로는 그것을 다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마음에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100% 신뢰를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느냐 하면 기도 안 하는 걸 보면 압니다. 진짜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한다면 기도를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그저 형식적으로 몇 마디하고 끝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그만큼 내가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 인터넷에 있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교역자들이 10여명씩 제자 훈련생들을 모아 놓고 훈련하는 장면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인도하는 여제자반이 공개가 되어 있어서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2시간 가량 들여다 봤습니다. 제자 훈련을 어떻게 하는지 보려면 그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목은 '하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자연히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공부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하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하나하나 배우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목사님과 자매들이 그 말씀을 배우면서 많은 은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든 내용을 다 공부하고난 다음에 목사님이 한번 더 못질을 하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배웠는데, 여러분은 진짜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느 자리 같으면 "아멘!" 하면 끝나겠지만, 10여 명이 모여 제자 훈련을 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속도 없는 아멘 소리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을 다 서로 나누는 시간이기에 "아멘"을 하고 싶어도 양심상 금방 안 나오는 것입니다. '나도 안 믿는 구석이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자매가 그러는 것입니다. "목사님. 이렇게 말씀을 배울 때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고 인정을 하는데, 실제로는 잘 안 믿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게 우리 모두의 현주소입니다. 이런 불신을 성령께서 이 시간 씻어 낼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 하고 부르짖을 때마다 감격스러운 사실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험한 세상 살아갈 동안 그 하나님은 우리 곁에 함께 걸으십니다. 내 손을 잡고 아,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시면 반드시 실천하시는 성실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세상을 걸어가는 아버지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다가 물 가운데로 들어갈 때 내 곁에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걸어가신다고 하는데 구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지금 물에 빠지는데 구하지 않겠습니까 찾지 않겠습니까 두드리지 않겠습니까 두드리고, 찾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럽습니까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가다가 미끄러지면 "아빠!" 하고 부르짖는 거야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진정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내 인생 길을 함께 걸어가시는데,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것이 뭐가 이상합니까 정말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믿는다면 구하고 찾고 기도하는 것, 부르짖는 것, 두드리는 것, 무엇이 그리 이상하다는 겁니까 기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가 "아버지!" 하고 부를 때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뭔지 아십니까 우리가 집요하게 '하나님, 주시옵소서. 하나님,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강청을 들으시고 마음을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참 희한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아버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육신적인 아버지를 생각하면, 주로 두개의 이미지가 마음에 떠오릅니다. 하나는 고집 세고, 한번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 부인 말도, 자식 말도,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끝까지 관철하는 완고한 아버지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도 그런 형에 속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해 보았자 소용없다. 가만히 있어야지 무슨 말을 했다간 집안에 아우성이 날 테니까.' 하는 식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한편 또 다른 이미지가 있습니다. 자상하시고, 부드럽고, 항상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래서 서로 대화를 하다가 자녀의 말을 들어 보았을 때 자기 생각보다는 자녀들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면 스스럼없이 자기 생각을 접고 자녀들의 소원대로 들어주시는 너그러운 아버지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어떤 이미지가 머리에 떠오릅니까 완고한 하나님입니까 어떤 사람은 그렇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한번 뜻을 정하시면 절대로 뜻을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다. 그가 뜻을 정하시면 반드시 그 뜻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고 생각하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그렇게 가르칠 수 있는 근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참 하나님 앞에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내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반드시 일치한다고 장담할 수 있는 기도가 몇 가지나 됩니까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다 모릅니다. 그저 우리는 너무나 절박한 문제를 안고 견딜 수가 없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이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기도인지 잘 모릅니다. 급하기 때문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부르짖는 것인데, '하나님은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자기 뜻을 절대 바꾸지 않으신다.'라는 전제가 분명하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왜 구하라고 합니까 왜 찾으라고 합니까 왜 집요하게 문을 두드리라고 합니까 '네 기도 들어보고 내가 설득을 당할 수도 있다. 네 기도 때문에 내가 설득을 당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내가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까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참 경건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던 젊은 왕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라는 왕입니다. 그 왕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많은 축복을 주셨는데, 그만 30대 후반에 치명적인 병에 걸려서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투병생활을 하던 중 어느날,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히스기야 왕에게 가서 내 뜻을 전해라. 내가 히스기야를 생명을 취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 유언을 준비하라고 알려주어라."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히스기야 왕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왕이여 하나님의 뜻입니다. 왕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집안을 정리하고 유언하십시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고 왕 앞을 떠난 후, 히스기야 왕이 얼마나 슬프고 절망을 했는지 몸을 돌려 벽을 향해 누워서는 방성대곡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되돌아가는 선지자의 걸음을 돌이키도록 했습니다. "히스기야에게로 다시 돌아가라. 내가 마음을 바꾸었다고 전해라." 그리고는 히스기야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의 눈물을 보셨다고 합니다. 왕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시고 왕에게 15년을 더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왕이여 소망을 가지시고 일어나십시오." 이렇듯 하나님의 큰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본적인 뜻은 바뀌지 않습니다. 곧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틀 안에서 우리 개인의 문제를 다루실 때는 경우에 따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기의 뜻을 바꾸기도 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설득당하시는 것같이 보일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 이유는 너그러우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달라스 윌라드라고 하는 유명한 저자의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뜻을 못 바꿀 하나님이라면 그는 전능하신 분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자기 뜻을 바꾸지 못하고 매여있다면 어떻게 그런 분이 전능한 분이냐'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라면 능히 하나님은 자기의 마음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음을 바꾸실 수 있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향해 구합니다. 찾습니다. 두드립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세 번째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인간은 자식에게 잘해준다고 하지만 사실상 본성이 다 악한 부모들입니다. 이렇게 악한 부모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녀에게 나쁜 것을 주려고 하는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미국 새크라멘토(Sacramento)에 소재한 샌프란시스코 주립 형무소에 패터슨이라는 사람이 지금 복역 중에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가정을 다 던져버리고 나와 강도 짓을 하고 마약을 복용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무슨 죄를 범하고는 결국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악한 사람을 아버지요, 남편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복역 중에 자기 딸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는 이 아버지가 선뜻 나선 것입니다. 그 딸은 콩팥이 하나밖에 없는 이상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하나밖에 없는 콩팥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자기 콩팥을 기증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더욱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이 아버지에게도 콩팥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하나 남은 자기 콩팥을 딸에게 기증하고 자기는 죽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아버지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선하시고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꼭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그것이 내 눈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좋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까 예를 들었듯이 시험문제에 답을 찍었는데 5개 중 4개가 맞은 것을 보고 기도 응답 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것이 좋으셨는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가끔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하나님은 좋다고 주시는데 우리 눈에는 안 좋은 응답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떡이라고 주시는데 내가 보기에는 돌입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눈에 돌로 보여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까 좋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오히려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서 정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돌이 아니고 떡이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영안이 어둡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돌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 '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위해서 주신 좋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하여 위기에 빠져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은, 우리의 실수를 바꾸어서 선으로 바꾸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가 꼭 믿어야 합니다. 어느 자매가 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집사님은 사랑의교회에 온지 7년 정도 되는 분입니다. 예수를 믿은 지는 오래 되었는데 신앙생활이 별로 뜨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오히려 직장생활을 하면서 너무 주님을 위해서 충성을 많이 하자 그것이 보기 싫어 집안에서 은근히 남편을 핍박하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신앙 좋은 남편에게 감화를 받아서 그랬는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성경대학에 입학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갑자기 병원으로부터 직장암 초기라고 하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절망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이런 말로 위로를 했다고 합니다. "여보, 이 병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좋은 것일 거야. 나쁜 것이 아냐. 좋은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돼." 그 남편의 말을 의지하고 1년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5일 동안 연속해서 주사 맞는 일정이 남아있는데 그 주사를 계속 맞으면서 이 자매가 영적으로 침체되어 버렸습니다. '좋은 걸 주실 줄 알았는데, 기껏해야 이건가' 하는 생각이 또 들고, 믿음이 흔들리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럴 때 심방을 오신 목사님께 자기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그 목사님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나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주십니다. 믿으십시오." 이제 1년 동안의 치료를 마치고 나서 의사 앞에 결과를 듣기 위해 갔습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암세포는 다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가 좀 미흡합니다. 뭔가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습니다. 혹시 전이가 되지 않았을까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러니 검사를 조금 더하고 한달 후에 다시 한번 봅시다."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이 자매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믿어봐야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이 정도 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허탈감이 물밀듯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교회도 가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바에는 하나님 앞에 한번 매달려보자.' 하고는 남편과 함께 새벽기도에 나가기로 작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열심히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하나님이여, 머리로만 주님을 믿지 말고 마음으로 믿게 해주세요. 하나님이여, 구원의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 주세요.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나에게 주신 이 병의 의미가 뭔지 가르쳐주세요. 그리고 고쳐주세요." 그러나 새벽기도도 한 보름쯤 하고 나니 또 영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영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마구 흔들리고, 회의가 생기고, 하나님 믿어봐야 별 볼일 없다고 하는 생각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는 과정에 믿지 아니하는 어떤 자매를 만났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지금 불평하고 있는 하나님을 전하는 겁니다. 자기가 지금 의심하고 있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고난 다음에 이 부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눈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썼습니다. 그대로 읽을 테니 들어보십시오. "목사님, 갑자기 제 맘이 편안해지는 겁니다. 답답하던 마음이 싹 없어지고, 분한 마음도 없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날 이후 제 마음에 쌓인 여러 가지 생각들이 정리가 되면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게 되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병도, 영적인 갈등도 나에게 다 필요해서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의사의 판정이 어떻게 나든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며, 병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낫던지, 안 낫던지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남편과 나를 다루고 계시며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세움을 입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1년 동안 치료 받고 의사에게서 다 나았다는 판정을 그 자리에서 받았다면 지금처럼 제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을까요 목사님, 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이제껏 신앙생활을 한 중에서 요즘처럼 그냥 좋은 때가 없었습니다. 남들은 이해 못 할 겁니다. 목사님께 이 이야기를 꼭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정도의 고백과 간증을 할 수 있다면, 진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 주십니다. 내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은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셔서 어떤 응답을 받았던지 간에 그 응답을 곰곰이 되새겨보십시오. 내 눈이 어두워서 돌로 보이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내 눈을 열어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이야 말로 떡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믿고 찬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끝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는 남을 먼저 대접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여러분, 이 말씀이 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 다음에 나오는지 아십니까 내가 비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우리 눈에 있는 들보는 안 보이고 남의 눈의 티를 가지고 비판하고 싶고, 괴롭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럴 때, 그 사람을 진짜 대접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겁니다. '주여, 나의 눈에 있는 들보를 뽑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눈에 들보를 뽑으시고 형제의 눈에 티를 보던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내가 변하는 겁니다. 기도하다가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바뀌면 나는 다른 형제를 대접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을 대접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겁니다. 그를 위하여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마음의 문고리는 안에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면 그 사람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를 욕하고 비판하던 사람이 변화를 받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그를 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도한다는 것은 다른 형제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잘 담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 아니하면 안 되는 상황에 지금 놓여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연일연야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백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는 한발을 맞고 있습니다. 온 땅이 메마르고 있습니다. 비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아니하시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할 때 왜 찾고 구하고 두드리지 않겠습니까 환경이 오염되어 우리에게 어떤 병이 발병할 지 도무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갑자기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맞아서 하루하루 살고 있으면서 내 곁에 동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 앞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왜 하지 않겠습니까 내 자녀를 아무리 사랑해도 탈선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터넷 앞에 앉아서 감독할 수 없는 시간에 제 맘대로 인터넷에 빠져들어가 못된 것들을 다 접촉하는 내 자녀를 누가 지키고 보호하겠습니까 이런 자녀를 앞에 놓고 전능하신 아버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부모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지 않겠느냐 그 말입니다. 생활고를 놓고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아빠의 직장을 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문제던지 간에 나에게 절박한 문제라고 인식되는 것은 서슴지 말고 들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가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뜻이 어떠했던지 간에 우리의 구하는 바를 들으시고 자기 마음을 바꾸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좋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십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기도함으로써 승리하는 삶, 기도함으로써 기적을 창출하는 삶,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승리자의 삶의 살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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