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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롬8:1-11)

본문

우리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느냐,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느냐'인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살고 인간이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살면 거기에 가치와 보람이 있고 행복과 자유함이 있는 줄로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지하수를 개발하듯이 하나님을 떠나 어디에서 땅을 파도 샘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합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합니다. 거기에 못을 든든하게 박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나의 기쁨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영광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인의 삶을 고독한 삶, 방황하는 삶, 또 기쁨이 없는 삶이라 합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오늘 이 시대같이 기쁨이 없는 시대는 없었다고 말합니다. 정말 기쁨이 없습니다. 농사짓는 분들도 노래가 있었습니다. 모를 심으면 모 심으면서 노래 부르고, 밭 갈면서 노래 부르고 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노래 불렀습니다. 운동장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았습니다. 그러나 농촌에도 노래가 떠났습니다. 기쁨이 다 떠났습니다. 밭에서, 논에서 일하는 기쁨이 없습니다. 요사이는 왕따 당하고 기합이나 받으니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입시에 대한, 공부에 대한, 앞날에 대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모두 심히 고민하면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가정에도 기쁨이 없습니다. 어디에도 기쁨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기쁨을 땅에서 찾는, 하나님을 떠나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새로운 새 시대의 문화가 홍수처럼 몰려오고 있습니까 그래도 기쁨은 없습니다.
TV프로 어느 것 하나도 우리에게 맞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채널을 맞추는 것 같지마는 모든 채널은 우리에게 맞추고 있습니다. 어디를 틀어도 우리가 웃고 만족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 밖에서 기쁨을 얻으려는데 바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한없는 만족과 부유함과 영광과 생명과 행복과 영원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이십니다. 우리와 만나야 할 신이고 사귀어야 할 신이십니다. 파트너입니다. 연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인간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인간은 원숭이도 아니고 인간은 동물도 아닙니다. 버러지도 아닙니다. 지렁이가 인간이 된 게 아닙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사귀도록,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은 그 위에 있습니다. 저 높이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할 때가 참 좋고 사귈 때가 좋고 만날 때가 좋고 인정받을수록 좋습니다. 또 더 높은 분에게 인정받을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저희 영광여고도 내년부터는 남녀 공학으로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데는 대체로 다 남녀공학인데 우리나라만 여자대학, 여학교가 유난히 많습니다. 남자학교도 많습니다. 요사이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제일 좋은 길 중 하나가 남녀공학을 만드는 것입니다. 교실에 남학생이 들어오면 여학생의 가슴이 더 커집니다. 더 부풀어오릅니다. 남학생들도 신납니다. 여학생이 같이 앉아있다라는 것 때문에 세수도 더 잘하고 옷도 더 잘 갈아입고 말도 달라집니다. 전혀 싸움이 없어지고 완전히 바뀐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랬잖습니까 우리도 학교 다닐 때 헌옷이지마는 얼마나 다림질했습니까 왜 잘 보이려고. '누군가 나를 봐주지 않겠냐 너는 여학생이니까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겠냐' 저도 이마가 좁았는데 쪽집게로 밤낮 뽑아서 이렇게 올라간 것입니다. '여학생이 옆에 있다, 여학생하고 만난다, 사귄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것은 수명은 짧습니다. 그러나 잠깐이지만 어쨌든 우리에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되고 기쁨이 되고 활력소가 되고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옷을 자주 갈아입게 만들고 단정하게 만들고 말을 달라지게 합니다. 사귐이 모두를 고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사귀고 만나고 가까이 하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에너지가 되겠습니까 이것은 잠깐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영원한 힘이 되고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이 하나님과의 사귐이요 만남입니다. 제가 잘 아는 제 친구 목사님 한 분이 아이를 셋 놓고 막내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마흔 다섯에 막내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이렇게 길렀는데 50 중반쯤 되니까 이 애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위는 벌써 고등학교 다니는데 애가 이제 초등학교를 다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애가 5학년 되던 날 며칠 전부터 그렇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하고 예쁘게 앉고, 말도 너무너무 달라진 겁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애가 왜 이렇게 달라지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 방에 청소하러 들어갔다가 편지를 하나 봤습니다. 보니까 초등학교 5학년 같은 반에 있는 친구가 편지를 한 것입니다. '야, 나는 네가 참 내 마음에 든다. 너는 참 내가 너를 볼 때 참 내 마음은 늘 기쁘다. 그래서 내가 학교 갈 때에도 이리로 안가고 꼭 네 집 앞으로 간다.' 이런 내용입니다. '난 너를 생각하면 참 앞날에 큰 소망이 있다.' 이런 편지를 쭉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끝에 뭐가 있냐면 '내일 아침에 8시 반에 너희 집을 지나서 학교를 갈 테니까 너 그 때 잠깐만 얼굴만 보여줘도 난 하루가 즐거울 것 같다.' 이런 것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내일 아침 일찍 나갈 것 같은 것을 엄마는 알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애를 먹을 것을 주고 하는데 6시부터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얼굴을 아주 아름답게 꾸미고는 8시쯤 되니까 엄마한테 그러더래요. "엄마, 밖에 공기가 좋을 것 같아서 좀 나가서 좋은 공기를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애" 그래서 엄마가 얘야 공기는 여기 공기나 거기 공기나 똑같은 거야. "아니예요. 난 밖에 가면 참 좋을 것만 같애.엄마 난 8시 반에 잠깐 나가서 운동 좀 하고 싶어" 아니, 운동 여기서 해라 꼭 밖에 나갈 필요 있냐 "아니에요, 난 밖에 나가서 운동해야 좋은 운동이 될 거 같애 엄마 난 밖에 나가는 것이 마음 문이 열릴 것 같애" 계속 나갈려고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의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만남입니다. 사귐입니다. 인간적인, 결국에는 상처만 남는, 결국에는 별 것 아닌 이러한 만남들도 이렇게 우리를 좋게 하는데 위에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사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 삶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귀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삶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됩니다. 영적인 백성으로 살아야 됩니다. 오늘날 조그마한 인간의 지식의 발달이 창조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게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 아무 소망이 없는데도 세상을 바라보게 세상을 의지하게 만든 것이 오늘 우리가 지식으로 말미암아 얻은 잘못된 유산인 것입니다. 성전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교회를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이 우리에게 부유함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많이 가져서 부유한 것 아닙니다. 건강해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은 크로스비같이, 헬렌켈러 같이 아무것도 없어도 천국같이 살 수 있습니다. 사귐이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분에게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안동에 가면 김수만 장로님이라고 하는 귀한 분이 계십니다. 김 장로님은 안동에서 개척교회만 12개를 세운 분입니다. 저희들도 이 어른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 장로님은 다리가 하나 없습니다. 옛날에는 요사이 같은 의족도 없던 시대라 '목발'을 그냥 붙잡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교회 잘 나오시고 전도를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높은 산꼭대기에도 기어이 올라가서 전도해서 교회를 12개나 세웠던 분입니다. 천국같이 사셨습니다. 하루는 장로님께서 밤에 동네를 지나가시는데 아이들이 새끼줄을 걸어놓고 장로님이 걸리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한쪽발로 건너다가 새끼줄에 걸리니까 그냥 나가떨어져서 떼굴떼굴 굴렀습니다. 목발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일어나 앉으셔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오늘 저를 넘어뜨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분 다 예수 믿어 장로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다 장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두 발이 있어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 많아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디에 가서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귀는 자가 큰일을 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만족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위에 기쁨을 올려야 아래에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위를 영화롭게 해야 인간의 영광이 빛이 나게 되어져 있습니다. 위를 부유하게 하신 하나님이 기뻐해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부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어떤 분이 어제 책을 한 권 가지고 오셨습니다. 지금 세계 수 십 개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입니다. 책이름이 '발로 쓴 노래'입니다. 책을 발가락으로 쓴 것입니다. 이 사람은 여자인데 태어날 때부터 양 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발로써 글을 쓰고 발로 밥을 먹는 것입니다. 발가락에 수저를 넣어 먹는데도 잘 먹습니다.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데 잘칩니다. 노래도 얼마나 잘 부르는지요. 세계를 다니면서 집회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3월에 온다고 합니다. 이분은 우리처럼 좋은 것을 다 갖지는 않았지마는 기쁘게 살아갑니다.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갑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누가 있기 때문입니까 이 안에 영혼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귀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사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 저 영원한 나라에 가게 되어져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에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도록 지음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육에 속한 삶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만족도 없거니와 그 속에는 악의 영이 역사하여, 사탄이 역사하여 사탄이 이끄는 대로 가서 결국 이 땅을 떠나서 사탄과 함께 영원히 지옥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한 선언이요 선포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치지 아니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쁨도 우리가 찾는 모든 보화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찬송가 241장 중에서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나는 참 기쁘다 주 예수 날 사랑하시오니 내가 또 예수를 사랑하네 날 구해 주시려 내려오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네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나는 참 기쁘다 주 예수 날 사랑하시오니 마귀가 놀라서 물러가네 주 예수 이렇게 사랑하니 우리는 어떻게 보답할까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주 나를 사랑하시오니 나는 참 기쁘다 우리의 집에 기쁨이, 이 나라에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사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영적인 삶이 있을 때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도 모든 잘못된 것이 위험수위에 와 있습니다. 마약도 어마어마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에이즈도 얼마나 번져나가고 있습니까 범죄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청소년 문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와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지는 부작용도 너무너무 많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자살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루에 233쌍이 결혼하고 70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따라가고 있습니다. 왜 이런 부유함이, 왜 이런 충만함이, 왜 이런 우리의 지성이 이런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앞으로 이 민족이, 이 나라가 10년 후에 어느 길로 가겠습니까 이런 길로는 소망이 없습니다. 꿈이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새로운 우리의 신앙 부흥 운동을 일으켜야 될 줄로 믿습니다. 거기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어두움이 없습니다. 좌절이 없습니다. 가난과 궁핍함과 괴로움이 없습니다. 주님과 사귀는데 그런 일이 올 리가 없습니다. 가정의 불행이 있다는 게 기적입니다. 하나님 떠나 잘못된다는 게 기적입니다. 기적!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삶 속에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 성경을 한번 보겠습니다. 드릴 말씀도 많지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오늘 말씀 전체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로마서 8장 1절, 2절을 우리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첫째 정죄함이 없습니다. 죄에서 해방됩니다. 먹보다 더 검은 죄, 머리털보다 많은 죄, 이것보다 큰 죄가 사라져갑니다. 죄는 떠나갑니다. 죄에서는 건짐 받습니다. 눈보다 더 희게 됩니다. 이번에 서울에 내린 흰 눈보다 더 흰 마음이 됩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죄에서 건져주시는 겁니다. 사망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생명이 사망을 삼키는 것입니다. 사망을 삼켜버립니다. 악어가 굉장히 강하지만 지난번에 이야기가 수달한테 진다는 것입니다. 왔다갔다 이러면 막 달려들다가도 포기한다고 합니다. 그래가지고는 등을 다 뜯어 먹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악어 같은 이 사망의 세력, 죄의 세력도 예수 믿으면 성령의 능력이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다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악어가 아무리 그래도 수달이 와서 콱 그러면 나중에는 포기한다고 합니다. 그래 와서 먹어라 하고 포기해 버린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능력이 큰 것 같지마는 성령의 능력 앞에서는 꼼짝을 못합니다. 예수의 보혈 앞에는 비둘기같이 떠나가는,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보겠습니다. 3절, 4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이라는 말은, 육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난 삶을 말합니다. 육이라는 말은 죄라는 말입니다. 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육이라는 것은 마귀에게 속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범죄하여 육이 되어버렸습니다. 동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생명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면 잠깐 들어가도 죽어버리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잠깐이지만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육이 살아 있어도 하나님이 없는 육은 죽은 것입니다. 오직 있다면 그것은 육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깃덩어리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다 육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이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육으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을 건져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그 아들을 육신의 몸을 입혀 이 세상, 육신이 있는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육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구원받지 못하는 우리 인류를 위해서 이 아들이 육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갑니다. 육신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육신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습니다. 예수님은 영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육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은 죽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육신이 범한, 하나님이 없는 이 육을 위하여 당신이 육이 되어 오셔서 육으로 대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육에 빠진 육으로 있는 우리 인간을 건져내신 것입니다. 감옥에 주님이 친히 들어가셔서 감옥에서 대표적으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감옥 문을 활짝 열어 하나님 앞으로 구원하여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듯이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을 건지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육신이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이 육을 건져주셔서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주님이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육신에게 있는 저주는 떠나가고 육신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옷은 벗겨지고 주님이 다 지불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 집으로 나오게 된 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아버지 집입니다. 교도소는 집이 아닙니다. 집은 집이라도 가정집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떠나서 갇혔는데 거기에서 해방되어야 자기 집으로 돌아오듯이 오늘 우리가 육에서 해방됨으로 하나님 아버지 집에 나아와 아버지 자녀가 되어서 아버지를 섬기게 된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육신으로 살아가지마는, 육신의 몸을 입고 있지마는 해방된 육, 하나님의 자녀된 육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전의 육신이 아닙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육이요 영원한 영육으로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5절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렇습니다. 사람은 두 가지 삶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육에 속한 삶, 하나는 영에 속한 삶. 육에 속한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자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세상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영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생각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가대 찬양한 대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우리는 사슴처럼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인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삶은 평안합니다. 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저렇게 높으신 분이 나와 함께 하기에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저렇게 부유하신 분이 같이 하니 의식주에 대한 염려 없습니다. 저렇게 완전한 분이 나를 지켜주니 안보에 대해서 염려 없습니다. 저렇게 완전한 분이 능력 있는 분이 나와 동행하여 주시니 예배 마치고 가면 차탈 때 또 동행하니 그 걱정 없고 아무 염려 없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번에 집회를 마치고 홍콩에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탔는데 안 뜨는 겁니다. 오후 네 시, 여기로 말하면 여섯 시 정도 되는데 안뜨는 겁니다. '야, 이상하다 했더니 서울에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가 뜰 수 없기 때문에 서울 관제탑과 지금 연락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시간이 되어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서울에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가 내릴 수 없기 때문에 한시간만 더 기다려 보라고 해서 또한시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또한 시간. 또 갈 수가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이 편안해서 열심으로 성경 읽고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의 백성들 몸 닳면 저를 보내게 하실 거고 안 가게 하시면 여기서 하룻밤 자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 여기서도 좋고 거기서도 좋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안이 오는 겁니다. 마음의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찬송가 466장 중에서 나 어느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 왜 누구 때문입니까 나 때문입니까 평안이 없습니다. 세상입니까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이 주님을 사랑하면 늘 평안이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이 평안은 영원한 평안입니다. 생명과 같이 오는 평안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평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이 죽음입니다. 죽음을 넘을 자, 죽음을 지나서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상급이 죽음입니다. 반드시 죽음입니다. 우리는 죽음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같이 7절 8절을 보겠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제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굉장한 세상의 것을 다 갖추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 육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원수. 세상에 속한자,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갔다오니까 우리 손자를 며느리가 데려왔습니다. 당회장실에 데려왔습니다. 첫돌 지난지 얼마 안 됬는데도 만나니까 얼마나 기쁜지요. "아이고, 영준아 이리오너라." 그러면 뛰어오는 겁니다. 내가 이 애를 왜 이렇게 좋아합니까 저도 제 할아버지를 알아보는 겁니다. 이 조상을 아는 겁니다. 야, 나는 기쁜 겁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영준아 잘 있었냐 다 너에게 주고 싶다." 왜 그래요 내 혈통입니다. 내 영이, 내 피가 흐르는 곳입니다. '너는 내 몸이야, 우리 집이야, 내 자식이야.' 그러니까 이유 없이 좋은 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일반 종교처럼 잘해야 하나님 하는 것만큼 계단에 올라간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한 100년 공을 들이면 하나님 앞에 요만큼 좋게 되는 것, 그런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예 아버지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여러분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육으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가 없고 아버지 말씀에 굴복을 못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창조 웃기네, 누가 창조했다는 거야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야 너 저기 속지 마라. 주일날 교회 가야 하나님이 복 주신다. 야, 복은 거기 있는게 아니야.' 굴복을 안합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이다. 똑같은데 뭐 거룩한 날이 따로 있어' 굴복을 안합니다 '술먹으면 나쁘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소화에도 좋단다.' 굴복을 안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을 안합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면 은혜 받습니다. 기도하면 응답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시고 우리를 잘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시편 147편에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 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 지어다 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144편에는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고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박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합니다. 교회가 좋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귀합니다. 기도가 귀하고 찬송이 귀합니다. 미국의 12대 대통령으로 있었던 테일러라고 하는 분은 1849년 3월 4일날 대통령으로 취임을 해야되는데 그 날이 주일날입니다 기어이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주일날 취임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설득하고 언론도 설득했지만 기어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날 어떻게 대통령 취임식을 하냐' 그래서 상원에서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3월 4일 주일날 12시부터 월요일날 12시까지 임시 대통령을 상원에서 만들었습니다. '하루 대통령'
왜냐하면 헌법이 그 날로 대통령 임기가 끝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취임을 해야 이것이 넘어가는데 취임을 안 하니까 이 하루를 위해서 에치슨이라고 하는 대통령을 하루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하루 대통령이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거의 예배와 같은데도 미국은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천배, 만배 엄청난 힘과 지혜와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의 법에 얼마나 굴복합니까 미국 대통령이 굴복합니다. 새벽기도도 나가고 기도합니다. 지금 부시도 그러고 클린턴도 하나님의 법에 굴복합니다. 그러나 천배 만배 가난하고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육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굴복을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하나가 믿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하라는 것 따라가면 여러분은 만배나 이 나라와 이 민족이 잘되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잘되게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앞날을 책임져 주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읽고 마치겠습니다. 9절 한 번 읽겠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참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그것 하나만 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에 이끌려 하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드린 말씀대로 남자친구 편지 하나 받아도 애가 새벽에 벌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거기 가 있으면 벌써 자기 몸을 누가 지배합니까 그 5학년 머슴애가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지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우리를 교회로 이끌어 가고 예배를 이끌어 가게하고 신앙생활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교회 생활이 참으로 은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나오신 모든 성도에게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목표를 정하여 남은 생애에 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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