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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요14:16-18)

본문

성경 말씀은 한 분의 음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분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읽으면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것은 거룩한 소리요 은혜로운 소리요 하늘의 소리요 신령한 소리입니다. 성경은 영혼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을 들으면 기쁘고 감사하고 소망이 넘칩니다. 때에 따라서는 책망도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가르쳐 주는 지혜로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한 분의 소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말씀이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제가 살던 시골은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기껏해야 한 20여 호 되는 마을입니다. 저녁때가 되면 온 마을이 요란해집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 때문입니다. 학교 갔다온 아이들은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 놉니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부모님은 밥을 해 놓고 아이들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부르십니다. 그 소리가 온 동리에 다 들립니다. 마을이 작으니까요. 누구 집에 싸우는 것도 온 동리가 다 압니다. 소리가 다 들려요. 애들이 말하고 개가 짖어도 산울림이 되어서 다 들립니다. 누구 집에 아기 낳은 것 한시간 전에 낳아도 온 동리가 다 압니다. 또 누구 집에 손님 오는 것도 다 압니다. 특히 음식도 무슨 음식을 했는지 가만히 해 먹을 수가 없습니다. 냄새가 금방 퍼져요. 아예 차라리 나눠 먹는 게 낫지 숨길 길이 없습니다. 이런 작은 마을에 저녁이 되면 온 동리가 시끌시끌합니다. 꼴 하러 나간 사랑하는 아들을 부르십니다. 빨리 오라고, 저녁 먹으라고…. 그래서 일 여덟 명이 앉았다가도 부르는대로 하나, 둘 나갑니다.인간은 고아가 아닙니다. 부모님이 계신 분은 때가 되면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언제나 우리를 부르십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저녁 준비를 다 해 놓으시고 우리를 식탁으로 부르십니다. 밤이 오니 가서 쉴 곳,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 부르심을 받고 따라갈 때 삶이 아름답고 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아!" 부르셨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갈릴리로 다니시면서 한 분, 한 분을 불러내시고, 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야! 내려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오늘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고 계십니다. 인간의 행복은, 축복은, 능력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을 떠날 때 인간의 불행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따라가는 분에게 가나안이 있고 부르심을 따라가는 자에게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인도하시는 그 음성을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음성 밖에, 부르심 밖에….성경에는 유혹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책이 룻기서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두 내외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모압 땅으로 가게 됩니다. 모압에 가면 잘 살 줄 알았습니다. 모압에 가서 자녀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음성이 있는, 하나님의 소리가 있는 곳, 베들레헴을 떠납니다. 성지, 거룩한 땅을 떠납니다. 찬송소리가 있고 기도소리가 있고 예배가 있는 곳, 선지자들의 부르는 소리가 있는 곳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는 모압 땅에 갔다가 큰 불행을 당합니다. 낭패를 당합니다.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남편을 잃었습니다. 아들 말룐과 기룐도 잃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비참해졌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곳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없는 곳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주를 받고 더 이상 전혀 한 발걸음도 나갈 수 없는 마지막 밑바닥에서 소리를 듣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이 소생하는 은혜의 소리입니다. 무슨 소리를 들었지요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을 권고하셔서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소식을 듣습니다. 오고가는 사람을 통하여 그 이야기를 듣고 이 나오미가 용기를 냅니다.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고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다 없지만 희망이 솟아납니다. '가야 된다.' 이제는 부끄러울 것도 없고 지체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여유, 따질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영적으로 음성이 있는 곳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 때 며느리 하나가 따라옵니다. 누가 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음성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누구든지 오면 됩니다. 음성이 있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그들은 베들레헴,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곳에서 회복을 합니다. 슬픔이 기쁨이 되고, 저주가 축복이 되고, 가난이 부유함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 왕의 조상이 됩니다. 우리는 음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좋은 음성을 듣는 사람, 거룩한 음성을 듣는 사람은 거룩하게 됩니다. 위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위를 바라보게 됩니다. 신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것 따지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를 듣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생 라합이 있지 않습니까 기생인데 소리를 듣는 거예요. 저 애굽을 드나드는 대상을 통하여 술을 따라 주면서 소리를 듣는 거예요. 이야기 중에 "야, 이스라엘 민족은 참 특이한 민족이야! 애굽의 바로도 다 졌대. 아니 그들은 홍해도 건넜대. 대낮인데도 먹을 것이 뚝뚝 떨어진대. 다 산대. 구리 뱀을 달더니 병도 다 나았대." 매일 술을 따라 주면서 소리를 듣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 영적인 소리를 듣는 거예요. 무슨 소리를 듣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통하여서 복음을 들었어요. 기쁜 소식을 들었어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들었어요. 정탐꾼이 들어 왔을 때 그대로 맞이해서 숨겨주는 거예요. 소리 듣고 소리 믿고 나가서 그 소리대로 그들에게 이야기했어요. "너희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지. 너희 하나님은 상천하지에 유일한 하나님이야. 너희 하나님이 앞으로 이 땅을 다 너희들에게 줄 거야. 이 성은 멸망할 터인데 나를 건져주시오. 내 가족을 살려주시오, 너희 하나님은 위대한 하나님이다." 그래서 그 여자도 축복을 받는데 역시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소리예요. 우리를 부르는 소리예요. 은혜로운 소리예요. 우리를 모두 사랑하셔서 부르는 소리예요.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그 음성 듣는 자들이 복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소리의 종교입니다. 위의 소리입니다. 거룩한 소리, 성령의 소리입니다. 여러분, 좋은 교인이 되는 길이 뭔지 아세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좋은 소리를 듣는 거예요. 교인이 시험에 왜 드는지 아세요 소리 때문에 시험 들어요. 아무리 좋은 교회 만나도, 은혜 받아도, 축복 받아도 그 주변의 속닥거리는 소리, 이상한 소리 들으면 천하에 없는 사람의 신앙도 실패합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좋은 소리 따라가면 좋은 길이 열리고, 은혜로운 소리 따라가면 은혜 받고, 거룩한 소리 따라가면 거룩한 은혜를 받는 줄로 믿습니다. 실패한 교인을 보면 똑같은 진리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천하에 없는 인삼, 녹용 먹어도 소리 잘못 들으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거예요. 망치는 거예요. 마귀는 우리를 향하여 얼마나 유혹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떠나 밖의 소리를 듣게 합니다. 밖의 소리로 유혹합니다. "이 세상 그런 소리들을 필요 뭐 있냐 너 힘있게 살고 잘 살고 그 소리 듣지 말고 너는 할 수 있다. 너의 지식으로, 너의 힘으로, 너의 용맹으로, 너의 능력으로, 물질로 이 세상을 멋있게 살아봐."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다른 이의 음성은 듣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따라가지도 아니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양의 행복은, 양의 축복은 목자의 소리를,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스라엘에서 원래 양떼를 지키던 목자의 옷으로 변장을 하고 그 목자의 소리를 똑같이 냈는데도 양들이 분별을 하는 거예요. 얼마나 양들이 그걸 잘 아는지 그 조금 다른 걸 알고 안 따라가는 거예요. 우리는 비슷한 소리가 너무 많습니다. 신령한 것 같으나 신령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것 같으나 거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같으나 말씀이 아닌 소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밀한 주의 음성을 듣고 끝까지 주를 따라가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긴 긴 밤에, 그 하룻밤에 많은 일을 한다는 그런 이야기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는데 만리를 쌓는 거예요. 많은 남자들을 동원해서 그 성을 쌓아 올립니다. 낮은 데는 10m, 높은 데는 30m 정도로, 위에는 여섯 명의 군인들이 행군할 수 있을 정도로 쌓았습니다. 그러니 그 성이 정말 어떤 성이겠습니까 수천 미터나 되는 설악산 같이 높은 산도 그대로 쌓아 올라가고 사람 하나 살 수 없는 사막도 그대로 성을 쌓으니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겠어요. 기계도 하나 없으니 남자란 남자는 다 동원되는 거예요. 어떤 곳에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어떤 날, 관리가 이 남편을 찾아내서 잡아가는 거예요. 숨을 수가 없어서 끌려 나왔어요. 아무리 사정하고 붙들고 울었지만 붙들려 갔어요. 그리고 3년만 기다리면 돌려 보내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3년이 되었는데도 남편이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너무 사모하던 남편을 찾아 만리장성을 쌓는 곳에 갔어요.
그런데 진시황으로부터 다시 어명이 내려서 3년을 또 연장하게 되었어요. 남편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보고 싶고 다시 한번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어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돌아가는 이 여인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보던 그 감독자가 뒤를 따라가서 말했어요. 나하고 하룻밤만 자면 남편을 며칠동안 만나게 해 주겠다고. 휴가를 주겠다고. 그래서 사모하는 남편을 꼭 만나야 되겠다는 그 마음으로 하룻밤을 잤어요. 그 다음날 드디어 남편이 휴가를 받게 되어 집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러나 몇 날은 금방 지나가고 또 헤어질 일을 생각하니 죽는 것만 같아서 두 사람이 깊은 산골로 변장하여 숨어 그곳에 살게 되었어요. 그러나 돌아올 줄 알고 보내었던 이 관리는 그 보낸 죗값으로 하룻밤 때문에 만리장성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거예요. 얼마나 이런 일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하룻밤 때문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분이 많고 한 순간에 세상적인 이 죄악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다가 마귀의 종 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찮은 것 때문에 사람이 불행해지고 저주를 받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니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수천 명이 되는데 다 보면 하룻밤 때문이더라고요. 그 착하고 착한 사람이 어떻게 하다가 하룻밤 실수 때문에 온 몸이 문둥병같이 썩어 들어가는 거예요. 30살, 31살, 32살, 어떤 사람은 20대 초반도 있는데 두 눈으로 볼 수 없어요. 그 하룻밤을 얼마나 얼마나 원통하고 저주스럽고…. 기쁨은 기쁨입니다. 그러나 참 기쁨이 아닙니다. 축복이 아닙니다. 다 빼앗아가기 위해서 하룻밤의 유혹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끝까지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의 음성이 없는 곳은 어디든지 유혹이지 낙원이 아닙니다. 우리를 넘어뜨려 우리를 빼앗기 위한 사탄의 전략에 지나지 않습니다. 잘 박힌 못처럼 믿음을 든든히 못박아야 됩니다. 프랑스의 마지노 진지와 같이 그의 음성을 듣는 우리의 성을 굳센 철옹벽 성으로 우리를 구축해야 하는 것입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어떤 추위와 비바람이 몰아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 이 행복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발걸음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상이에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어요. 우리가 예수를 잘 믿을 수 있어요 평생 잘 믿을 수 있단 말이에요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잘 믿을 사람이 있겠어요 없어요. 우리가 어떻게 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어요 어떻게 우리가 늘 전진할 수 있어요 어떻게 우리가 성령으로 도움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는 길이 어디 있어요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연약한 어린아이 같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함께 하셔서 내 능력으로는 주님을 잘 믿을 수 없지만 주님이 늘 도와주시고, 내 믿음은 늘 넘어지지만 늘 일으켜 주시고 늘 힘을 주셔서 성령으로 승리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잘 믿으려면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의 생활 잘 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저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 높은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올라가는 줄 알았더니 아니에요. 다 셀파의 힘이고 전부 장비의 힘이에요. 그들이 전부 짐을 실어다 가져다주는 거예요. 저는 생각하던 것이 있었어요. '높은 산에 어떻게 올라가 혼자서 어디에 놓고 사진을 찍었을까'늘 이걸 내가 몰라서 궁금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산밑에 살면서 고산지역에 적응하면서 사는 사람이 도와주는 거예요. 다 올려 주는 거예요. 물론 노력을 많이 하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높은 산에 올라가십니까 내 힘으로 못 올라갑니다. 성령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믿음의 생활 잘 하는 길이 있습니까 성령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전도 잘 할 수 있습니까 성령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우십니다. 부족한 우리를 도우십니다. 몸과 마음을 도우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도우시고, 시험을 도우시고, 우리의 건강을 도우시고, 연약한 믿음을 도우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도록 도우시고, 전도하도록 도우십니다. 기도 해 보십시오.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주일을 지켜보십시오. 지키도록 도우십니다. 교회에 나와 보십시오. 잘 걸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모든 주변의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기도하는 것도 내가 아닙니다. 기도하도록 주님이 도우십니다. 내 모든 연약한 허물을 덮어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 성령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 이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떳떳한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인들은 이야기만 하면 주님의 도움 받은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내 배후에 높은 사람 있고 누구 만난 이야기하면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입만 열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은혜 주신 것을 말하고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가 좋은 성도입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교회에 왜 나옵니까 주님의 도움 받으러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주님이 연약한 우리를 도우십니다. 힘 주십니다. 능력 주십니다. 믿음 더하여 주십니다. 도우십니다. 만가지로 도우십니다. 이 세상을 승리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주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는 어떤 것도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꾸미면 더 좋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갈 때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항상 꾸며야 합니다. 나보다 더 좋은 '나'가 필요합니다. 더 좋은 인물이어야 합니다. 더 많이 아는 척 해야 합니다. 더 높은 지위가 필요합니다. 사람을 향해서는 있는 척 해야 합니다. 돈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더 많이 도와줍니다. 알래스카에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비행기가 연착이 되는 거예요. 왜 안가냐고 하니까 일등 손님이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해요. 다 먹고 와야 된대요. 만약에 삼등 손님이 라면을 끓여 먹으면 세상은 있어야 되고, 세상은 잘나야 되고, 세상은 꾸며야 됩니다. 아름다워야 되고 힘 있어야 되고 돈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우리 어머니가 날 부르듯이 "삼환아" 그냥 나 부르는 거예요. 밥 먹으라고 부르는 것이지 다른 삼환이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주님 앞에서는 없으면 없는 대로 나오는 거예요. 돈이 없어요 괜찮아요. 없는 대로 나오세요. 죄인입니까 그대로 나오시라고요. 그대로 이야기하라고요. 그리고 도와 달라는 말을 꼭 하시라고요. '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는 자를 주님은 찾으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와서 주님 앞에 도움을 구하고 울부짖고 기도하고 부르짖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성령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고아와 같이 홀로 두지 않습니다. 내 허물이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주님의 도움을 받는 한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있는 한 이 세상에 누구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인간의 도움이 사실 귀하고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모든 도움이 다 없을지라도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살지만 모두가 우리를 도울지라도 주님이 우리를 안 도우시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우리 한국 근대사에서 제가 큰 충격을 받고 저의 믿음이 더해진 사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돌아가실 때 경호실장, 그 앞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 살려고 모두 도망친 것을 보고 내가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에게 총을 쏜 분은 그에게 도움을 받던 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그런 것이었구나. 그 모든 도움이 헛된 도움이었구나' 여러분, 누구의 도움도 자랑하지 말고 믿지 마십시오. 누가 우리를 도와준다는 것입니까 병들어 늙고, 실패하고, 이 세상에 아무 소망 없을 때, 누가 나를 도와 줄 것입니까 한 분이십니다. 성령이십니다. 도우십니다. 넉넉히 도우십니다. 다 도와주실 줄로 믿습니다.성령은 능력입니다. 어떤 적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모든 실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그런 실력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다 갖추고 살고 싶지만 누가 그럴 사람이 있겠어요. 그럴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이 되십니다. 참 인간이 가져야 할 능력을 성령이 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약하지만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와 그 능력으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믿음의 능력도 주시고, 나와 너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랑의 능력도 주시고, 이 세상 모든 일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의 성령이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좋은 일은 성령이 하십니다. 나쁜 것도 능력입니다. 죄도 능력이 있어야 죄를 짓는 거예요. 요사이 부모를 죽이는 사람도 너무 많고 자식을 죽이는 사람은 더 많습니다. 형제간에, 부부간에 살인 사건이 왜 이렇게도 많습니까 오늘 신문에 보니까 같이 옆에 공부하던 친구를 '친구'라는 영화를 보고 그냥 찔러 죽였습니다. 이것이 다 힘입니다. 죄도 힘이에요. 악한 것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힘은 없어졌어요. 인간이 범죄함으로 나쁜 힘만 내 안에 꽉 차있어요. 기회만 주어지면 온갖 일을 행할 수 있는 나쁜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선을 넘지 못하도록 법을 정해놓고 철저하게 감독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나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우리를 이 모든 저주에서 건져 주실 이가 있는데 바로 성령이십니다.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성령이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유혹도 물리칩니다. 마귀도 물리칩니다. 죄악도 물리칩니다. 악한 세력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저는 어려서 내 친구가 만년필을 하나 가지면 그 만년필을 갖고 싶었습니다. 나도 얼마나 유혹이 많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너무너무 만년필이 갖고 싶어요. 그래서 그 친구의 만년필을 사려고 돈을 모으고 온갖 그 친구에게 충성을 해서 그 만년필을 사 보니 잉크도 안나오는 만년필이에요. 늘 그래도 꽂고 다녔어요. 잉크는 안나오지만 만년필을 내가 갖고 있다는 걸 보이기 위해서 늘 그랬어요. 사람은 유혹에 약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성령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어떤 가난한 부부가 숲 속에서 사는데 한번만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나 어디 금 덩어리가 떨어졌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던 어느 날 숲 속에서 누군가가 수군수군 하는 거예요. 가서 보니까 도둑들이 와서 금괴를 거기 숨겨 놓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금괴를 가지고 이 부부가 행복에 겨워서 길을 가는데 앞에 왠 농부가 소 한 마리를 몰고 가는데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이 부부는 금은 아무 것도 아니고 그 소 몰고 가는데 유혹을 받는 거예요. '아, 저 소를 먹이고 소를 몰고 농사를 짓고 음매 하는 동산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사정사정해서 금을 다 주고 그 소와 바꾸는 거예요. 소를 먹여보니 소죽을 끓이고 외양간 치우고 너무 힘들고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소를 몰고 가다가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을 보고 부부가 노래를 부르면서 너무 부러워서 '이까짓 소 먹여서 뭐하나. 저 노래를 부르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소를 팔아 가지고 그 백파이프를 사는 거예요. 그러나 연주 할 줄도 모르는 분이 가져다 놓으니 하나도 아름다운 것도 없고 짐만 되고 무거운 거예요.
그런데 추운 겨울날 너무 힘들게 백파이프를 들고 길을 가다가 보니 누가 장갑을 끼고 가는 거예요. '아유, 저 장갑을 끼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파이프하고 장갑하고 바꾸는 거예요. 나중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거지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저는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많이 봅니다. 직장생활 잘 하다가 식당을 보고 생각을 합니다. '저 식당은 누가 간섭하는 것도 없고 얼마나 편하고 좋겠나' 여러분, 내 남편 입만 맞추기도 어려운데 그 많은 손님의 입맞추기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건 전혀 생각지도 않습니다. 가락시장에 가서 늘 사다가…. 정말 식당같이 어려운 게 없습니다. 밥상도 하루 이틀이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마다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아야 해요. 우리 교인이 서울에서 잘 살다가 '시골에 염소 먹이고 농장 하면 얼마나 좋겠나'해서 몇 억 가지고 농촌에 가서 염소 농장하는 거예요. 염소 한 마리를 끌어도 그것이 따라 오는 줄 알아요 죽어라고 안 따라 옵니다. 이런 것 하나 모르고 유혹을 받는 분이 너무 많아요. 내 가정에 감사하시고 주의 음성을 감사하고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밖의 소리 듣지 말아요. 너무 많은 유혹 듣지 말아요. 성공하는 사람은 한 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의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복된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성령은 늘 우리를 전진하게 합니다. 머뭇거리거나 퇴보하게 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46장에 보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이 북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북문으로 돌아가지 말고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북문으로 갈지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항상 전진하기를 바랍니다. '이만하면 잘 믿고 이만하면 됐지.' 이런 마음 갖지 마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으로 항상 전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성령은 우리에게 신령한 기쁨을 주십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육의 사람은 세상이 좋습니다. 세상이 좋아서 교회에 못나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위의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좋고 하나님의 음성이 좋습니다. 늘 나를 향하여 '삼환아' 부르시는 그 음성이 이 세상의 어떤 음성과 비교할 수 없이 좋습니다. 나를 찾아, 나를 위하여 밥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는 주님의 품안으로 돌아갈 때에 인간은 배부름을 얻고 평안을 얻고 안정을 얻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성령은 정복자입니다. 강한 능력입니다. 어떤 테러리스트도 우리 삶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강하게 지켜주십니다.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도록 성령은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모든 저주가 성령 안에서는 꼼짝도 못합니다. 인간의 연약함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십니다. 못 쓸 습관들, 온갖 저주들을 성령이 다 정복하여 어두움을 몰아내고 우리의 삶에 평화를, 자유를, 축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성령은 광야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 힘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고 잘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생수가 있어야지요. 오아시스 없는 사람이 답답하고 목말라 살수 있습니까 성령은 우리의 생수입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에게 기쁨의 생수가 되시고 은혜의 생수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8장 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성령은 강입니다. 생수의 강입니다. 어디서 흐릅니까 내 안에, 심령에 흐르는 강입니다. 강의 의미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강은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강은 평안함을 의미합니다. 다녀보면 제일 좋은 호텔들이 다 강가에 있고 바닷가에 있어요. 제일 좋은 별장들이 다 강가나 바닷가에 있습니다. 제일 좋은 골프장도 강과 바다를 끼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를 보면 다 그런 곳에 있습니다. 강이 없는 곳은 인공으로 파 가지고라도 만들더라고요. 왜 그 강을 봐야 시원하고 평안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강이 우리에게 정말로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한 순간이지요. 강가에서 자살 사건이 제일 많아요. 얼마 전에도 부산 태종대 앞에서 자살한 것을 보세요. 서울 시민들이 한강 가에 와서 많이 싸웁니다. 한강가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분들도 처음에는 한강을 보는 것이 그렇게 좋았대요.
그런데 강도 하루 이틀이지, 흐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흘러가니까 인생이 흘러가서 정신이 돈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늘 흘러가니까요. 보다가 도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생수의 강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이 안에는 강이 없는데 밖에 있는 강을 보니까 더 허전해지는 겁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에 어디 가도 강이요 어디 가도 기쁨이요 어디 가도 은혜요 어디 가도 평화인 줄로 믿습니다. 인간은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창조주와 함께 살아가는 에덴동산의 삶을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교인. 성령이 함께 해야 교인입니다. 무슨 교회 건물이 크고 헌금 많이 나오고 누가 나오고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고아가 아닙니다. 늘 부르십니다. 여러분 조금만 잘못 가보세요. 교회에 한 주일만 결석해 보세요. 부르십니다. 왜 그런 길로 가느냐고 마음에서 부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행복이요 능력이요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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