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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향한 주님의 뜻을 아십니까? (마21:1-11)

본문

주님을 업으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땅 위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죄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믿지 않고, 성령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를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당신의 이성적인 지각으로서는 도무지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므로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님을 받으라”(요한복음 20:22)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의 영이기 때문에 자연히 예수를 당신의 주로 모시게 되며, 당신은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래서 마가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성령님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마가복음 3:29)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삼년간의 공생의 사역을 마칠 마지막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러서 제자들을 불러 맞은편 마을에 가서 나귀 새끼를 풀어 오게 하시고는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해서 성전에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태복음 21:12)고 하시면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 세상 죄로 얼룩져 더렵혀진 성전을 헐고 자기 몸을 바쳐서 새로운 전을 새우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주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가셨습니다. 구원사역을 마감하는 마지막 길에 주님을 등에 업고 간 나귀는 참으로 존귀한 사역에 쓰임받은 최후의 순간입니다. 나귀새끼를 구원사역에 사용하신 주님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오늘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셨는가
첫째:주님은 매인 당신을 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읽을말씀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1-2) 주님은 벳바게 마을 맞은편에 매인 나귀를 보셨습니다. 두 제자를 보내어 매인 나귀를 풀어 오라 고 했습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주가 쓰시겠다 고 하면 즉시 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인 나귀의 소원은 풀림을 받는 것입니다. 매인 나귀는 그 행동방경이 고비의 줄에 제한을 받습니다. 아무리 움직이고 싶어도 줄이 허락지 않으면 못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구간 지푸라기만 밟는 정도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매인 나귀에게 풀림의 때가 왔습니다. 주님이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은 사단권세 아래 매인 인생을 풀어 주려고 왔습니다. 사단은 공중의 권세를 잡고 불순종하는 영으로서 역사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립니다(에베소서2:1-2). 우리는 이 땅 위에 사단권세 아래 직접 묶여서 있는 자들을 많이 봅니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영을 대적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단이 이용하는 도구에 묶인간접적인 종들이 많습니다. 1 재물의 줄에 매인 인생이 있습니다. 사단은 돈을 잡고 돈의 줄에 사람을 묶어 둡니다. 재물의 욕심 때문에 주일성수를 못하고, 십일조를 못하고, 봉사생활을 못합니다. 가롯유다는 삼년을 주님 곁에 따라 다니면서도 돈의 줄에 묶여 사단의 도구로 일해왔습니다.
2 쾌락의 줄에 매인 인생이 있습니다. 인간이 즐기는 향락 때문에 주님을 영접하지 못합니다. 술과 담배와 도박을 끊지 못하여 주님께로 나아오지 못합니다. 수가성 여인은 세상 향락을 즐기기 위하여 다섯 남편을 사귀어 보았으나 그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3 권력과 명예의 줄에 매인 인생이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에 취하여 주님 앞으로 나아오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권력의 고삐에 묶여서 가이사 황제에게 충성하기 위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밖는 일을 했습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예수님은 자유를 주기 위하여 오셨던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고 했습니다. 감람산 벳바게를 통과하시는 주님은 오늘날 죄악의 쇠사슬에 매인 당신을 풀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주님의 손에서 존귀하게 쓰임을 받기를 바랍니다.
둘째:주님은 당신을 직접 쓰기를 원하십니다. 읽을말씀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3-5) 당신이 주님의 손에 쓰임받기 이전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나귀 새끼인 보잘 것 없는 하찮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나귀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주님의 손에 쓰임받기 전에는 당신의 인격에 제한받는 지극히 인간적인 자연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주님의 손에 잡히는 순간에 새로운 인생으로 거듭납니다. 주님이 원하실 때 모든 피조물이 이 사건에 복종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은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요,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주관자요, 최후에 판단하실 심판자이심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1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전혀 알지도 모르는 자에게 가서 주님의 분부대로 행하여 나귀를 끌어 왔습니다.
2 나귀 새끼 주인의 순종입니다. 나귀 새끼의 주인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마 구약의 스가랴의 예언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치 않고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나귀를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나귀새끼의 순종입니다. 나귀 어미면 몰라도 나귀 새끼를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울음도 없이 순종함은 주님이 통치자이심을 증거하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순종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고 하실 때는 순종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당신을 쓰고자 합니다. 당신이 가진 재물이나 지식이나 재주을 잠간 쓰고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기쁨으로 드리는 순간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주님은 당신이 사명의 십자가 지기를 원하십니다. 읽을말씀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매,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6-9) 나귀의 가는 길은 극히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주인의 여행에 동행할 때는 거칠은 사막길에 가죽부대를 실고 가는 것이 그의 사명입니다. 앞에서는 고삐가 달려 있고 뒤에는 채찍이 항상 따라 다닙니다. 그 생애는 고달픈 생입니다. 이것은 마치 죄악의 짐을 지고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나귀가 주님을 등에 엎고 가는 순간 그 나귀는 예루살렘 황금길을 걷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업은 나귀는 사명의 십자가를 지신 나귀입니다. 그가 가는 길에는 놀라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1 겉옷을 길에 펴는 자들이 있습니다. 나귀가 가는 길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황금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를 향하여 매질하는 무리들이 걷옷을 펴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을 축하하는 백성들의 가식없는 존경의 표시입니다.
2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서 깔아 줍니다. 평화의 왕이 도래함을 보고 백성들이 환영하는 표시입니다. 3 호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호산나 란 구원하소서 란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입니다. 나귀는 비천한 존재인데 이러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누구의 덕분인가 등에 엎힌 주님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가 자기 재주로 된줄로 생각하여 날뛰어 주님을 떨어뜨리면 회초리에 매를 맞게됩니다. 이러한 나귀가 주의할 사항이 무엇인가 힘이 들어도 참아야 합니다. 주변의 칭송에 교만해서도 않되며, 겸손히 인내하면 주님을 업고가는 사명자의 길을 갈 때 주님을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넷째:주님은 온성에 메시야운동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10-11)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니 온 예루살렘에 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구약에 미리 예언된 것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리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것 곧 나귀새끼니라”(스가랴 9:9)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이 나귀 새끼를 탔는가 1 공의의 메시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말을 타고 칼로서 나라를 정복합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 주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실 무저항의 상징인 나귀새끼를 탄 것입니다.
2 구원의 메시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없는 몸으로 이 땅위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한번도 타보지 않은 순결한 나귀 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3 겸손의 메시야이기 때문입니다. 왕중의 왕이신 만왕의 왕되신 주님이 가장 비천한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심은 겸손하신 메시야상입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예수를 등에 업고 가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당신의 가정이나 직장에나 산업에 공의와 구원과 겸손한 주님의 모습으로 나아가면 당신의 삶에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이 비록 나귀 새끼와 같이 비천한 존재일지라도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잡히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당신은 모세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나, 다윗의 손에 쥐어진 물맷돌이나 바울의 손에 쥐어진 손수건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나귀새끼와 같이 하찮은 것이나 하나님의 장중에서 쓰임받을 때 놀라운 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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