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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통은 치료될 수 있습니다 (출15:22-27)

본문

여호와 하나님은 내 인생을 치료하십니다. 지난주간에 어떤 성도로부터 설교 테이프 몇 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설교를 몇 차례 듣는 중에 중대한 문제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설교자가 강단에서 간혹 범하기 쉬운 단순한 순간적인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몸에 배여 있는 체질화 된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평범한 성도들의 안목에서 쉽게 발견될 수 없는 신학적인 성경 해석학의 문제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경 구절만 많이 인용하면 성경적인 설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말씀 선포를 위해 어떤 본문을 확정하였으면 일차적으로 그 본문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전후 문맥 속에서 그 시대적인 상황을 살핀 후에 오늘의 입장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의 구절을 인용할 때도 최소한 그 말씀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된 의미를 바로 파악하고 인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성경을 마음대로 인용하면 도덕론적인 윤리 강연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속 역사를 구원하는 구속 역사의 복음인 계시 선포는 될 수 없습니다. 설령 그것이 구원 역사를 증거하는 말씀으로 포장해서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다 해도 그 양무리를 온전히 세우는데는 문제가 있으며, 나아가서 설교자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목자의 사명을 온전히 다하지 못한 영적인 직무 유기입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설교 원고가 필요 없이 그때그때 주시는 영감으로 설교합니다 저는 간혹 이러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특별한 경우에는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적 목회 사역인 강단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면 아주 위험한 발상으로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강단 사역에 수종 드는 설교자가 받은 영감을 성경을 기록한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가 받은 영감과 동일시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은 성령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님의 나타나심이 시대를 따라 다르게 역사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록된 계시가 없던 시대와 기록된 계시가 주어질 시대와 기록된 계시가 완료된 시대에 성령님의 역사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늘날 성령님의 역사는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 역사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말씀의 사역자들은 계시된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엎드려 기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 강단의 설교 사역입니다. 설교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신의 음성이 담긴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양을 맡은 목자는 신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신지식을 얻기 위해 삶의 전 영역에서 전인적인 신학 수업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목회자가 되려면 좋은 설교자가 되어야 하며, 좋은 설교자가 되려면 건전한 신학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설교자로서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본문의 말씀에 충실한 것입니다. 본문의 주된 의미가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파악하여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다음은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그 당시의 정황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 당시에 어떻게 증거 되었으며, 지금까지 시공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이 오늘날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며, 이 말씀을 통해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성경 구절을 함부로 인용함은 나중에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게 됨으로 구원 역사를 바르게 증거할 수 없습니다.
첫째:모든 인생에게는 마라의 고통이 있습니다. 읽을 말씀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22-23절) 오늘의 본문은 출애굽기 강해 여섯번째 말씀으로 수르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면서 “모세에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린도전서 10:2) 광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사흘 길을 헤메었으나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생명은 물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이 없다는 것은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최악의 고통입니다. 수르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은 앞으로 있을 40년 광야 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그토록 헤매다가 한곳에 이르러 물을 찾았습니다. 그 감격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갈한 목을 적시기 위해서 모두가 물을 마셨으나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쓴물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젠 전보다 더 큰 고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갈한 심령에 쓴물이 들어가니 우리의 심령 속에 부패한 죄된 쓴 것이 다 토해져 나옵니다. 그들은 마음에서부터 증오의 생각으로 충만했으며, 그들의 입술에는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찼으며, 그들의 육체는 행군할 기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쓴물이 자아낸 마라의 실상입니다. 오늘날 수르광야를 헤매든 인생이 기갈 중에 허덕이다가 뜻밖에 물을 찾았습니다. 너무도 감격해서 마셔 보았으나 그물은 생수가 아니라 쓴 독소였습니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망가지게 하는 쓴 죄악의 독소였습니다. 당신이 수양을 위해 찾아간 불교의 석가가 고통의 번뇌에서 자유함을 주지 못했습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보고자 윤리적인 삶을 위해 유교의 공자를 찾아보았으나 부패된 심령의 깨끗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무속사상도 내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라의 인생에게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마라와 같은 쓴 인생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둘째:마라의 인생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읽을 말씀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레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24-26) 마라의 쓴물을 치료하기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백성들은 탄식하고 원망하고 불평했으나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이 듣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눈이 열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게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한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그 나무를 던져 넣으니 마라의 쓴물은 달아졌습니다. 당신의 눈이 열리면 지금 당신의 곁에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쓴물을 치료하기 위하여 자신이 친히 예비하신 메시야적인 예표가 있었습니다. 천지창조시에는 가죽옷을 지시하시고(창세기 3:21), 출애굽시절에는 유월절 어린양을 지시하셨고(출애굽기 12:3), 율법시대에는 성소에 받쳐진 아사셀을 지시하셨습니다(레위기 16:8). 은혜시대에 와서는 세상죄를 짊어지고 가신 주님을 직접 보내주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9). 하나님이 지시하신 것은 한 나무 입니다. 그 나무는 독생하신 아들이요(요한복음 3:16), 한알의 밀알이요(요한복음 12:24), 유일한 이름입니다(사도행전 4:12). 당신의 삶속에 이 나무가 던져지면 쓴 인생이 달아지는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당신의 삶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리고의 삭개오는 세리장으로서 많은 돈을 모았으나 그 심령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자신과 자기 가정에 모셨을 때 그 인생의 쓴 모든 것이 토설하게 된 것입니다(누가복음 19:8-9). 수가성에 다섯 남편을 거느린 여인은 세상 쾌락을 다 누렸으나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나고 쓴 물동이를 버리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밤중에 주님을 찾아와 거듭나는 비밀을 깨닫고 쓴 율법의 바리새적인 삶을 버린 것입니다(요한복음 7:51). 당신의 삶속에 예수가 들어오면 변합니다. 예수는 당신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셋째: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엘림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읽을 말씀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27절)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강하게 가르쳐 주는 영적인 교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하늘의 구름 기둥 과 불기둥은 한 순간도 성민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샘을 주어 영육간에 안식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약궤 속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의 징표로 돌판계시인 언약의 십계명 과 아론의 싹난 권능의 지팡이 와 항아리에 생명의 떡을 담은 만나 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 ,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신다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무언의 설교였습니다. 수르광야에서 헤메던 자들이 마라에 쓴물로 인하여 탄식할 때 한 나무를 지시하여 단물로 변화시켜 주시고, 약속의 땅의 그림자인 엘림으로 인도하십니다. 엘림은 샘과 숲이 우거진 사막의 오와시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열두샘과 칠십 종려나무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도 오묘합니다. 열두 지파를 위한 열두 샘이나, 칠십장로를 위한 칠십 종려나무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예비하신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도 정확하고 오묘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에서 바치라고 했을 때 그가 삼일길을 걸어서 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삼일길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의 수르광야의 삶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리아에서 이삭을 결박하여 번제로 드릴 때는 그 인생에 최악의 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순종한 아브라함에게는 숲풀에 매달아 놓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손길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수르광야와 길을 헤매다가 마라의 쓴물을 만나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의 지시하신 손길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면 엘림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르광야 마라의 인생은 고통의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하신 한 나무를 발견하는 순간 그 고통은 치료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마라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축복의 엘림을 예비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어떠한 고통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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