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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들의 고대 (롬8:19-23)

본문

사람을 가리켜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회 환경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맹자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맹자가 어렸을 때 시장 가까운 곳에 살았더니 밤낮 장사하는 흉내만 내면서 놀고, 묘지 가까운 곳에 살았더니 밤낮 상여 메고 나가는 것만 흉내 내며 놀더랍니다. 그것이 교육적으로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가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였더니 그 다음부터 맹자가 책 읽고 공부하는 흉내를 내면서 놀더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하여 주위 환경이 우리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좋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와 같은 영향을 끼치는 환경은 누구의 영향을 받는지 아십니까 환경은 절대적으로 인간의 영향을 받습니다. 환경은 어떤 인간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환경이 좋아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면 환경이 나빠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환경이 서로 상생의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서로를 축복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처음 창조를 하실 때 좋은 사람과 좋은 환경을 창조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축복하면서 살도록 창조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축복의 관계는 우리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함으로부터 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면서부터 사람이 나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이 나빠지자 환경이 나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면서부터 인간은 이기적인 욕심을 가진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을 범죄 한 이후 환경을 축복하는 것보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었지만 단기적으로 볼 때 환경을 축복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환경을 희생하는 것이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기 전 사람에게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관심은 무엇이 내게 유익한가에 있지 아니하고 어느 것이 더 옳고 바른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이후 인간의 생각과 관심은 의에서 이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가를 생각하기보다 무엇이 더 내게 유리하고 유익한가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의를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야만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마실 것과 같은 것들이 따라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유익은 불의를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의를 통해서 얻어 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지 아니하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도 챙길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의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뒤로 미룰 때 결과적으로 자신도 큰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세상의 이치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의를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뒤로 미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가 밥 먹여 주느냐는 말을 서슴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하여 서슴없이 진리를 거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진리가 밥을 먹여주는 것입니다. 좀 불편한 것 같고 우리에게 불리한 것 같아도 진리를 따라 행하고 살아야만 모두가 다 축복을 받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하여 저들은 서슴없이 진리를 거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서라면 다른 사람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통하여 자기의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은 만만치 않은 사람들과 싸우면서까지 자기의 유익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상대인 사람과 싸우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에게 자연과 환경은 상대적으로 볼 때 만만한 상대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연과 환경도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자연과 환경은 처음부터 인간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작고 만만한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하더니 과학과 문명을 발달을 통하여 이제는 대규모로 자연과 환경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일들을 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사람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이익들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불행과 손해를 가져다주는 것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회복하려면 그것을 파괴함으로 얻었던 이익의 몇 십 배 아니 몇 백 배를 투자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공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산업혁명을 통하여 많은 공장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공장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영국인가 미국인가 어느 지방은 공장 굴뚝의 연기로 하늘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우리들은 공장이 없어서 맑은 하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공장굴뚝의 연기로 말미암아 하늘이 보이지 않았던 미국과 영국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잘 사는 것인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며 맑은 하늘 깨끗한 물 사라지는 것은 걱정도 하지 아니하고 공장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우리도 결국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었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지하고 어리석었던 교육의 결과로 우리도 이제는 자가용을 타고 집집마다 냉장고를 놓고 사는 세상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 마음놓고 물 마시고 마음놓고 깨끗한 숨을 쉴 수 있었던 그 아름다운 세상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전에는 몰라서 그랬는데 이제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얼마나 투자하고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환경이 개선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처럼 환경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환경의 파괴는 인간의 어리석음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데 그 이유와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악함입니다. 환경의 중요성은 이제 잘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환경 개선을 조금만 외면하면 지금도 당장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마다하고 환경을 개선하고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좀처럼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두가 다 일시에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환경을 보호하려고 한다고 하여도 쉽지 않은데 몰래 몰래 슬쩍 슬쩍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만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며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려고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저는 동부간선도로를 주로 이용하여 출퇴근을 합니다. 동부간선도로 옆에는 중랑천이 흐릅니다. 옛날 제가 어렸을 때 중랑천은 참으로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던 곳이었습니다. 여름마다 그곳에서 수영을 하고 고기를 잡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대표적으로 오염된 하천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도 보니 잉어 수만 마리가 중랑천에 떠올라서 그것을 살리느라고 야단을 떨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비가 많이 와서 중랑천에 눈이 넘치게 되면 그 하천이 깨끗해질까요 아니면 더 오염이 될까요 상식적으로는 비가 오면 깨끗해져야 하는데 실제는 더 오염이 됩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비가 올 때 주변에 있는 공장이 폐수를 방류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올 때 폐수를 방류하면 추적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장 안에 폐수를 정화하는 시설이 있지만 그것을 가동하려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비가 올 때 그냥 하천에 방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을 어쩌다 한 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어쩌다 한 두 사람 빼놓고는 다 하기 때문에 비만 오면 중랑천이 오염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환경보호는 교육과 과학의 힘으로만은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기 전에는 어떠한 교육과 과학으로도 환경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을 개선하고 환경을 보호하려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그것은 이익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의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와 같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피조물들이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이 아들들은 그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자연과 환경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킴으로 자기가 산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신의 축복과 생명이 사람과 자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자연을 희생하고 파괴해야만 자기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자신의 축복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고 믿고 삽니다. 그러므로 굳이 사람과 자연을 희생시키고 파괴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과 자연을 축복하고 섬기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의 고대대로 이 땅에도 이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네 명중에 한 명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리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무늬만 하나님의 사람이고 실제는 아직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좀처럼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람과 세상의 덕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덕을 보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만 만족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덕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여러분 세상과 사람의 덕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차고 넘침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오히려 축복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동안교회 교인들과 제가 그와 같은 수준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과 세상을 축복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것이 내게 더 유리하고 편리한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내가 좀 불편하고 당장은 내게 좀 불리하다고 하여도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며 저들을 축복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손해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이 저들에게 줄 수 없는 축복을 주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는 세상을 축복하며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사람이 좋아지고 우리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좋아지고 아름다워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환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세상과 환경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같이 세상과 환경을 파괴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우리 사람을 믿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살고 세상은 우리 인간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아름답고 건강하게 유지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우리를 믿고 사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깨끗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환경은 자연 환경뿐만이 아닙니다. 자연환경을 포함한 모든 사회환경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 근원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온통 오염되었습니다. 정치환경, 경제환경, 문화환경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오염되었습니다. 오염된 정치환경 때문에 정치가 바로 되지 않습니다. 오염된 경제환경 때문에 좀처럼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염된 문화환경 때문에 마음놓고 자식을 기를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오염된 세상의 모든 환경을 깨끗하게 하여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오염된 세상의 환경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오염된 세상과 환경의 덕을 보려하지 아니하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욕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손해보는 것과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살아감으로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할 사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책임과 소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얼마나 안타까운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앞장서서 세상의 물을 흐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부끄럽고 하나님께 죄스럽습니다.
얼마 전에도 신문에 보니 40 여 시간 만에 장관에서 물러난 사람이 아들 병역비리 문제에 연루된 분이었다고 하는데 신문에서 취재하러 집에 갔더니 기도원에 가고 없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그렇게 부끄럽고 죄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한 나라의 장관이 될만한 능력과 실력을 갖추고 거기에다가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를 할만큼의 신앙을 가졌으면 세상의 물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앞장서서 세상의 물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 기독교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덕만 보고 살겠다는 믿음과 고집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람과 세상의 덕을 보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덕만 보고 다른 사람과 세상은 내 덕을 보게 해 주겠다는 근사한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사람과 세상 환경을 훼손하고 그 덕을 보겠다는 좁은 마음을 버려야만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그 하나만으로 잘 살고도 남게 될 것입니다. 그 남은 것으로 세상과 환경 그리고 사람들을 축복하면서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환경은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연환경과 정치환경 그리고 모든 사회환경과 문화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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