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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돈9 (마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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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목회자들이 목회를 하면서 가지는 욕심 중에 하나는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한번 출판해 보는 것입니다. 저도 늘 자기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는 분들이 부러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동안교회에 부임한 2-3년 후부터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는데 상당히 많은 수의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다작을 하게 되어 책을 엉터리로 막 쓰는 것 같아 그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지만 그래도 제 이름으로 출판된 책은 마치 제자식과 같아서 속으로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릅니다. 저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는 못됩니다. 그래도 제법 많은 분들이 제 책을 읽어 주시기 때문에 책을 출판하면 거의 빠짐없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저는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것은 단순히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를 많이 받게 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내가 쓴 책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 준다는 것이 더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것은 책을 쓰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과 생각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책과 글에 대하여 이런 저런 평을 해 주시는데 좋은 평도 있고 혹독한 평도 있습니다. 물론 혹독한 평이 저에게 더 좋은 평이지만 그냥 저를 좋게 보고 평해 주시는 평 중에 하나는 제가 역발상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뒤집어 생각하는 것을 비교적 잘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한번 뒤집어 보고 잘 생각하지 못하던 반대적인 측면에서 나름대로 귀한 것들을 찾아내는 일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공부해서 남 주자' '서울을 못 가는 한이 있어도 똑바로 가자' '자식의 은혜' '진리가 밥 먹여 준다'라는 말과 같은 것들이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공부해서 남 주냐'라고 말을 하는데 그것을 뒤집어서 '공부해서 남 주자'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과 진리를 찾아낼 수 있고, 보통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뒤집어서 '서울을 못 가는 한이 있어도 바로 가자'라고 말을 해보니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근사한 생각이 되었습니다. 흔히들 상식의 허실이라는 말을 합니다. 상식으로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진실이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은 진실과 사실로 알고 살아간다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것이 우리의 신앙 가운데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벌써 여러 주일에 걸쳐서 '신앙과 돈'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잠시 가정과 환경에 대한 설교를 하느라고 쉬었었는데 오늘부터 다시 몇 주일 계속해서 '신앙과 돈'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다루어 보려고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돈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는 것 중에 상식의 허실이 없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 중에 그와 같은 상식의 허실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드리고 싶어서 애를 쓰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 동안 상식적으로 알고 생각했던 것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보통 상식이 아니라 신앙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을 바꾼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앙과 돈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이후에는 계속해서 저희 교회 인터넷 게시판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중요하고도 예민한 주제를 다시 한번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다지 해석이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그 말씀을 별로 어렵지 않게 쉽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저는 중요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단순해 보이는 말씀 속에 얼마나 중요한 진리와 원칙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그냥 쉽게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해석을 합니다. 불행한 것은 그 상식이 기독교적이지 않고 그 동안 우리가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불교와 유교적인 상식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불교와 유교의 상식과는 다른 독특한 기독교의 가르침이 그 말씀 속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라'는 예수님을 말씀을 그냥 쉽게 생각하여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고 사는 것을 전체적으로 부정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정은 전체 부정이 아니라 부분 부정 또는 조건 부정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사탄에 대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과도 같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떡을 부정적으로 말씀하셨는데 떡에 대한 예수님의 부정은 전적인 부정이 아니라 부분 부정이었습니다. 전체 부정과 부분 부정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떡에 대한 전체 부정은 떡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떡에 대한 부분 부정은 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떡에 대한 잘못된 조건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우선하고 반하면서까지 떡을 생각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떡에 대한 부분 부정은 떡을 부정하지 아니하고 긍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을 것'은 전체 부정이 아니라 부분 부정입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며 사는 것 전체와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잘못된 조건과 전제를 부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잘못된 전제와 조건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밤낮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마실 것 만 생각하며 사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혹 생각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나중에 생각하고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잘못된 조건과 전제를 부정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은 그와 같은 부분 부정으로 보지 아니하고 전체 부정으로 보려고 하는 우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되면 우리 기독교의 탁월한 진리가 그냥 세상적인 진리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생각하며 사는 것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잘 아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모든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마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을 것을 생각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자세와 조건을 부정하신 것이지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무것이나 먹고 마시고 입고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것이나 먹고 아무것이나 입고 아무것이나 마시고 사는 것을 훌륭한 것으로 가르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물이나 먹고 물이나 마시고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불의를 행하며 그 대가로 호의호식 하는 것을 당당하게 부정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살겠다는 자세와 정신은 귀하고 아름답고 귀한 것이지만 그와 같은 전제 없이 무조건 나물 먹고 물만 마시고 사는 것을 훌륭한 것으로 보는 것 그리고 무조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의복을 입으며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악하게 보는 것은 다분히 금욕주의적입니다. 그와 같은 금욕주의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저의 궁극적인 관심도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되기를 원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옳고 근사한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리가 밥 먹여 주냐' 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이야기 할 때 흥분하며 '너는 밥만 먹으면 사냐' '서울을 못 가는 한이 있어도 똑바로 가라'며 도전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는 밥만 먹으면 사냐'는 말과 '서울을 못 가는 한이 있어도 똑 바로 가라'는 말과 생각도 신앙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근사하고 당당한 것이었지만 신앙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불 신앙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진리가 밥 먹여 주냐'는 말과 '너는 밥만 먹으면 사냐'는 말이 전혀 다른 말과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 서로 달라 보이는 말 중에 서로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진리대로 살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과 '서울을 못 가는 한이 있어도 바로 가라'는 말은 전혀 다른 말과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 서로 달라 보이는 두 말 중에 서로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똑 바로 가면 서울을 갈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진리와 의를 무력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옳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진리와 의를 무력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하여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서울과 밥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제가 나중에 알고 깨닫게 된 기독교적인 건강하고도 바른 생각은 '진리가 밥 먹여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똑바로 가면 서울을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밥과 서울을 부정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살면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마시며 사는 생활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살아야 좋은 것을 먹고 마시며 입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좋은 것을 마시려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면 안됩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의 소원대로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마시고 살려면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마시고 살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좋은 것을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는 사는 것을 귀히 보시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사는 사람을 끝까지 그렇게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불의한 세상입니다. 때문에 의롭게 살려면 부자가 되기보다는 가난해 질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에서 바르게 살려하다가 가난해 진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부요함만을 추구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차라리 불의한 방법으로 부하게 되는 것 보다 의를 고집하다가 가난해 지는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가난은 오히려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가난의 면류관으로 우리 신앙의 궁극을 삼아서는 안됩니다.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세상은 의롭게 살면 가난해 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세상입니다. 잘못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왜곡되는 세상입니다. 왜곡된 세상에서 독야청청 혼자서만 깨끗하고 고고한 삶을 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거기서 우리의 걸음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뜻과 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사람은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세상입니다. 여러분 무조건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좋은 것이나 먹고 마시고 입으려고 예수를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고 해서 우리 기독교를 믿으면 꼭 나물만 먹고 물만 마시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과 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살자고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여 불의를 겸한 부함에 욕심 없는 깨끗한 사람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여 우리 후손에게 불의한 자는 가난하게 되고 의로운 자는 부하게 되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후손들이 나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것에 더하여 나의 후손들이 나보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으며 좋은 것을 마시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가난을 무서워하지는 않겠으나 절대로 가난을 좋아하지는 않겠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진리를 외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굶어 죽는 길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저의 최종적인 기도의 제목을 삼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진리가 밥을 먹여주고 똑바로 가야만 서울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특별히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저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이 좋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저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임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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