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아라 (마6:25-34)
본문
얼마 전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후배 목사가 논문 준비를 위하여 한국에 나왔다가 저와 얼마 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리더쉽과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는데 그 목사는 자기 나름대로 본 나의 은사 몇 가지 중에 하나가 믿음의 은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도 믿음에 관하여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기뻤습니다. 저는 사실 그 날 그 후배 목사로부터 처음 믿음의 은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으면서 믿음이 은사라는 것을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은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원죄가 있어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그와 같은 마음과 본능을 넘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정말 그것은 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이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믿음이 하나님의 은사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선물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많고 다양합니다. 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 중에 가장 귀한 은혜와 축복이 있다면 저는 자신 있게 그것을 믿음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제 아이 결혼주례를 하라면 주례사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라'라고 말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믿음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 그리고 축복이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시편 119편 5절의 말씀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물론 저도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 믿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져서 그 말씀대로 따라 살아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작지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삶의 발에 등불이 되어 주셨고 내 삶의 길에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등을 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빛을 삼아 그 말씀을 좇아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렵다고 하여도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강하다고 하여도 능히 그것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은사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등과 빛을 삼아 그 말씀이 인도 하시는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와 기쁨과 축복이 충만한 승리의 삶을 사시게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실패하고 망하게 되는 이유를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성경은 우리를 망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는 죄의 뿌리가 욕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 여러분 사망의 원인은 죄고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의 뿌리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염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밤낮 그것을 염려하며 삽니다. 그런데 그 염려가 욕심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저는 형제 없이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밤에 혹시 사탕을 사오거나 하셔도 저는 자다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염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도 그 사탕은 그대로 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저는 사탕에 대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염려가 적으면 욕심도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 형제인 제 아이들은 어려서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탕은 사오면 졸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그것을 꼭 삼등분하곤 하였습니다. 자기 몫을 정확히 챙겨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몫에 대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 욕심이 사탕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강하게 하여 졸음이 와도 일어나 자기 몫을 챙기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염려가 욕심의 뿌리입니다. 염려하면서 욕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욕심을 부리면서 죄를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죄를 멀리하지 못하면서 진정한 삶의 승리와 성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염려의 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염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 아이들은 전과 같이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물론 사탕에 대해서도 그렇고 옷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금 자기 나이에 욕심이 나는 물건에 대해서도 별로 욕심을 부리고 다투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아이들이 저를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감사하게도 나름대로의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주는 것이 큰 이유입니다 만은 또 다른 이유 하나가 있습니다. 아버지인 제가 자기 삼 형제가 필요한 것을 언제나 공급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별로 그와 같은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세상의 아버지도 믿을 수 있으면 염려가 줄어들고 욕심이 줄어드는데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 않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실패하고 망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 죄의 원인은 욕심입니다. 그 욕심의 뿌리는 염려입니다. 그리고 그 염려의 뿌리는 불 신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은사를 받게 된다면 그리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시시한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염려가 없어지면 욕심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욕심이 없어지면 죄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죄가 없어지면 우리의 삶의 길을 밝아지고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염려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서의 문제입니다. 제가 좋아하여 설교 중에 몇 번 말씀을 드린 말씀인데 대학(大學)이라는 책에 "만물에는 근본이 되는 것과 지엽이 되는 것이 있나니 곧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라 사람이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바로 알면 도(道에) 가까우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근본과 지엽이라는 한자어도 좋지만 우리말이 더 좋습니다. 우리말로 근본을 으뜸이라 합니다. 우리말로 지엽을 딸림이라 합니다. 으뜸은 근본입니다. 으뜸이라는 말속에는 이미 근본적인 것은 먼저 (으뜸)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딸림이라는 말속에는 이미 근본적인 것을 먼저하면 자동적으로 지엽적인 것은 딸려 온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순서입니다. 어느 것을 먼저하고 어느 것을 나중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할 것을 나중하고 나중 할 것을 먼저하면 인생을 그릇치게 됩니다. 근본을 먼저하면 지엽을 따라 옵니다. 그렇게 하면 근본과 지엽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근본을 먼저하면 근본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엽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엽을 먼저하면 근본을 잃습니다. 근본은 지엽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엽은 근본을 먼저 할 때만 존재합니다. 지엽을 먼저하면 근본만 잃는 것이 아니라 지엽도 잃습니다.
그러므로 순서가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근본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지엽인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이 따라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사람들이 그 중요한 순서를 지키지 못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근본보다 지엽을 더 중히 여기게 되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근본을 먼저 행하다가 지엽을 잃게 될 것을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지엽보다 근본을 더 귀히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지엽보다 근본을 먼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도통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은사를 받으면 도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너희를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시며 당신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공중의 새보다 더 사랑하시고 들의 백합화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 그리고 염려로부터 자유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제가 제 아이 결혼주례를 하라면 주례사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라'라고 말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믿음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 그리고 축복이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시편 119편 5절의 말씀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물론 저도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다 믿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져서 그 말씀대로 따라 살아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작지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삶의 발에 등불이 되어 주셨고 내 삶의 길에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등을 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빛을 삼아 그 말씀을 좇아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렵다고 하여도 그리고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강하다고 하여도 능히 그것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은사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등과 빛을 삼아 그 말씀이 인도 하시는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은혜와 기쁨과 축복이 충만한 승리의 삶을 사시게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실패하고 망하게 되는 이유를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성경은 우리를 망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는 죄의 뿌리가 욕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 여러분 사망의 원인은 죄고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의 뿌리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염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밤낮 그것을 염려하며 삽니다. 그런데 그 염려가 욕심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저는 형제 없이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밤에 혹시 사탕을 사오거나 하셔도 저는 자다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염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도 그 사탕은 그대로 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저는 사탕에 대한 욕심이 없었습니다. 염려가 적으면 욕심도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 형제인 제 아이들은 어려서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탕은 사오면 졸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그것을 꼭 삼등분하곤 하였습니다. 자기 몫을 정확히 챙겨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몫에 대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 욕심이 사탕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강하게 하여 졸음이 와도 일어나 자기 몫을 챙기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염려가 욕심의 뿌리입니다. 염려하면서 욕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욕심을 부리면서 죄를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죄를 멀리하지 못하면서 진정한 삶의 승리와 성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염려의 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염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 아이들은 전과 같이 그렇게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물론 사탕에 대해서도 그렇고 옷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금 자기 나이에 욕심이 나는 물건에 대해서도 별로 욕심을 부리고 다투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아이들이 저를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감사하게도 나름대로의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주는 것이 큰 이유입니다 만은 또 다른 이유 하나가 있습니다. 아버지인 제가 자기 삼 형제가 필요한 것을 언제나 공급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별로 그와 같은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세상의 아버지도 믿을 수 있으면 염려가 줄어들고 욕심이 줄어드는데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 않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실패하고 망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 죄의 원인은 욕심입니다. 그 욕심의 뿌리는 염려입니다. 그리고 그 염려의 뿌리는 불 신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은사를 받게 된다면 그리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시시한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염려가 없어지면 욕심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욕심이 없어지면 죄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죄가 없어지면 우리의 삶의 길을 밝아지고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염려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서의 문제입니다. 제가 좋아하여 설교 중에 몇 번 말씀을 드린 말씀인데 대학(大學)이라는 책에 "만물에는 근본이 되는 것과 지엽이 되는 것이 있나니 곧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라 사람이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바로 알면 도(道에) 가까우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근본과 지엽이라는 한자어도 좋지만 우리말이 더 좋습니다. 우리말로 근본을 으뜸이라 합니다. 우리말로 지엽을 딸림이라 합니다. 으뜸은 근본입니다. 으뜸이라는 말속에는 이미 근본적인 것은 먼저 (으뜸)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딸림이라는 말속에는 이미 근본적인 것을 먼저하면 자동적으로 지엽적인 것은 딸려 온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순서입니다. 어느 것을 먼저하고 어느 것을 나중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할 것을 나중하고 나중 할 것을 먼저하면 인생을 그릇치게 됩니다. 근본을 먼저하면 지엽을 따라 옵니다. 그렇게 하면 근본과 지엽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근본을 먼저하면 근본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엽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엽을 먼저하면 근본을 잃습니다. 근본은 지엽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엽은 근본을 먼저 할 때만 존재합니다. 지엽을 먼저하면 근본만 잃는 것이 아니라 지엽도 잃습니다.
그러므로 순서가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근본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지엽인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이 따라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사람들이 그 중요한 순서를 지키지 못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근본보다 지엽을 더 중히 여기게 되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근본을 먼저 행하다가 지엽을 잃게 될 것을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지엽보다 근본을 더 귀히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지엽보다 근본을 먼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도통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은사를 받으면 도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너희를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시며 당신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공중의 새보다 더 사랑하시고 들의 백합화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 그리고 염려로부터 자유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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