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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돈6 (마1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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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한번 설교 중에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 미국 오크랜드 (oakland)로 가던 한국의 유학생이 비행기를 갈아타는 도중에 뉴우질랜드의 옥크랜드(auckland)로 가는 비행기의 안내 방송을 잘못 알아듣고 비행기를 잘못 탔다가 뉴질랜드까지 갔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그와 같은 실수를 하면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정확한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지를 확인하지 아니하고 그냥 적당히 비슷한 이름의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잘못 날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크랜드(oakland)와 옥크랜드(auckland)가 전혀 다른 것처럼 예수 믿는 것과 교회를 다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교회를 다니는 것을 예수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열심히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마치 oakland로 가야하는 사람이 auckland로 가야하는 비행기를 잘못 탄 것과 같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으려고 예수를 믿습니다. 정확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하여 비행기를 타듯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가야할 목적지 없이 비행기를 타는 사람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를 하면서 구원에 대한 분명한 목적과 욕심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제일 먼저 이 비행기를 어디로 가는 비행기라는 안내 방송을 합니다. 다시 한번 목적지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여러분들에게 그와 같은 안내 방송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비행기의 최종 목적지는 구원입니다. 우리는 구원이라고 하는 곳에 가기 위하여 신앙이라고 하는 비행기를 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비행기표를 점검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이란 천국을 의미합니다.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 그리고 살아서 그 천당의 삶을 사는 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합니다. 천당과 천국을 우리는 그냥 하늘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하늘입니다. 하늘에 올라가기 위하여 예수를 믿고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삶을 살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구원과 하늘을 욕심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인간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다 구원을 얻습니다. 여러분 정말 구원을 얻고 하늘을 살게 되면 땅과 세상은 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초막과 궁궐이 큰 차이가 없게 되고 가난함과 부함이 별 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근사한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는 구원을 얻기 이하여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과 비교 할 수 있는 복은 세상에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초막과 궁궐이 차이가 없고 가난과 부함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그 놀라운 구원의 삶을 욕심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예수를 믿으시고 그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요즘 '신앙과 돈'이라는 설교를 하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만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돈도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돈에도 두 종류의 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돈과 구원받지 못한 돈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본문을 통하여 '땅에 쌓는 보물'과 '하늘에 쌓는 보물'이라고 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구원 받은 보물을 의미하는 것이고 땅에 쌓는 보물은 구원받지 못한 보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석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돈만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돈에 대한 욕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물론 구원 얻은 사람이라고 하여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구원받지 못한 돈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구원받지 못한 돈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다면 그는 한번쯤 '자신이 정말 구원을 얻은 사람일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아주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믿음은 그렇게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음이란 입으로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만 모든 삶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 것으로 완성이 됩니다. 물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생각과 행동이 신앙적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발버둥질치는 자세와 노력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인정해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돈이 세상과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솔직히 이 세상에 돈만큼 귀하고 중한 것도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돈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돈에 대하여 신앙적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돈'이라는 주제의 설교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돈이 구원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 돈을 구원받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과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이 있습니다.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이 구원을 받은 돈이고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은 구원을 받지 못한 돈입니다. 구원을 받은 돈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영향을 미치고 구원받지 못한 돈은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데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돈이라고 아무 돈이나 함부로 손대로 소유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하늘에 쌓을 수 있는 구원받은 돈에만 욕심을 가져야지 하늘에 쌓을 수 없는 구원받지 못한 돈에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에 함부로 손대로 소유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돈과 함께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돈에 몫이 있다는 말씀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내 손에 들어 온 돈이라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다 내 몫의 돈이 아닙니다. 그 돈 중에는 하나님의 몫이 있고 다른 사람의 몫이 있습니다. 돈을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이 되게 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몫 가르기입니다. 몫 가르기가 정확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돈에 대하여 깨끗하고 반듯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제일 먼저 예수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몫 가르기에 대하여 정확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몫을 정확히 구별할 줄 아는 사람되기를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몫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십일조와 하나님께서원하고 약속한 헌금입니다. 십일조가 제일 중요한 하나님의 몫입니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만 정확하게 구별할 줄 안다면 그는 하나님의 몫을 정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가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몫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것은 헌금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말을 정확히 하려고 한다면 십일조를 드린다는 말 보다 십일조를 구별하여 뗀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헌금은 십일조 외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십일조 외의 헌금은 하나님께서 내 몫으로 인정해 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얼마가 되어도 상관이 없고 또 어디다 드려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결정하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헌금은 몰라도 십일조만큼은 자기가 등록한 교회에 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 외에도 자기가 자원해서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한 헌금은 하나님 몫의 돈이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앞에서 작정하고 약속한 건축헌금이라든지 특별한 선교헌금이 그에 해당됩니다. 우리 교회도 건축을 하면서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건축헌금을 약정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그 약속을 이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는 아닙니다. 약정한 건축헌금 중에 10억 원 이상이 미납되었습니다. 건축 헌금을 미납한 사람 중에는 정말 돈이 없어서 드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아까워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거나 미루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이지만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과 서원하고 약속한 헌금을 드리지 않고 있는 분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몫을 정확하게 가를 줄 모르는 신앙의 초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의 초보가 신앙의 초보처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신앙의 초보가 아닌 사람이 신앙의 초보처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섭섭해하십니다. 무척이나 섭섭해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섭섭해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초보 노릇과 신앙의 어른 노릇을 동시에 이중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건축헌금을 놓고 볼 때 정직한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하고 교회의 어른 노릇을 하려고 하는 사람과 정당한 자기 몫의 건축헌금을 작정하지 못하거나 작정해 놓고도 드리지 않으면서 교회의 어른 노릇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른 역할과 어른 노릇은 좀 다릅니다. 어른 역할은 어른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른 노릇은 어른 역할은 하지 않고 행세만 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문제는 어른 역할은 감당하려 하지 않고 어른 노릇만을 감당하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그런 문제가 저는 우리 동안교회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내가 그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닌가를 살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가장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과 제가 내 몫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 하나님의 몫은 정확히 구별하여 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정말 최소한의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이 자기 몫으로 떼어 주시고 허락해 주신 것 중에서도 절약하여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줄 아는 사람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청년이 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청년들을 위하여 제가 하여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른 역할입니다. 어른 노릇이 아니라 어른 역할입니다. 누군가가 어른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청년들이 건강하게 바르게 아름답게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동안교회가 청년들이 많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동안교회는 청년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보다 5년 후 그리고 5년 후 보다 십년 후가 더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이 그냥 청년들만 많다고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청년들로 하여금 교회와 세상의 희망으로 자라나게 하려면 어른이 있어야만 합니다. 청년들이 본과 모델로 삼을만한 어른들이 있어야합니다. 어른이 없는 곳에서 자라난 청년들은 교회와 세상의 희망으로 자라기가 어렵습니다. 청년이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입니다.
누가 이 많은 청년들의 어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어른 노릇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으나 어른 역할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청년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저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돈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에 대하여 반듯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돈에 대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에 대하여 여러분들의 자녀와 젊은이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수천명의 청년들이 교회로 몰려오는 참으로 복 받은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저들을 믿음으로 잘 가르치고 양육하면 우리 교회의 희망이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동안교회를 믿으시고 저들을 우리 교회로 몰아 주셨는데 우리 어른들이 저들의 본이 되지 못하고 저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우리에게 중히 물으실 것입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몫을 가르는 것을 제일 먼저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준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 몫으로 인정해 주신 것을 아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동안교회 청년들이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약속한 헌금도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뒤끝을 흐리는 그런 청년들이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런 청년은 수천명이 아니라 수 만 명이 모여온다고 하여도 교회와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돈에 대하여 청년들과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하여 최소한 하나님의 몫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뗄 줄 아는 사람되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직도 하나님의 몫에 대하여 정직하지 못하신 분들이 있으십니까 오늘 이 설교를 들으시고 회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몫에 대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이 되시지 마시고 모든 것에 대하여 신앙적인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돈에 대하여 신앙적인 사람이 되기를 욕심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요즘 이 설교를 하면서 돈에 대한 구체적인 제 생활을 다시 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누구보다도 이 설교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제 설교대로 사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나 노력하려고 합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듣기 힘들고 그대로 살기는 더 힘든 설교이지만 기도하고 노력하여 돈에 대하여 신앙적인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평을 들을 수 있는, 그리하여 청년들과 자녀들에게 돈에 대하여 가르치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어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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