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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사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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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날 제 고향의 군수가 강연을 해달라고 초청해서 다녀왔습니다. 복음의 접촉점을 찾아볼까 하기도 했고 또 오라는 강청을 뿌리치기가 힘들어서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에 같이 다녔던 고향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또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어른들이 제가 왔다고 만나주셔서 많은 분들에게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농촌의 분노를 많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1년 지은 농사인데, 국가에서 수매한 쌀 이외에는 어느 시장에 내놔도 사가는 사람이 없고 그처럼 애쓰고 수고해서 키워놓은 배추도 추수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밭에 심겨져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 농민들의 분노를 보면서 "한국 농촌이 거덜났구나. 이제 한국에서 농업은 산업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어 참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그런가하면 한국 경제는 어떻습니까 요즘 제 2의 경제위기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위기 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라가 어려운데 정치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모습보다 자기들끼리 싸우는데만 골몰해 있는 것 같습니다. 신문과 TV를 안보고 안듣는 것이 더 마음 편하고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몹시 어렵고 힘든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렇게 어렵고 힘든 세월 속, 아무 것도 보기 싫은 현실 속에서도 우리들이 보아야할 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바라 봐야할 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분은 아기로 우리에게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개념이 아닙니다. 사상이 아닙니다. 교훈이 아닙니다. 품에 안을 아기로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될 초점은 '한 아기'입니다. 아니, 사실은 세계가 그 한 아기의 태어남에 의해서 새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아기가 태어나자 예수 그리스도 이전과 예수 그리스도 이후라는 B.C와 A.D의 분기점을 만들었습니다. 2000년이라는 의미는 아기 예수께서 이 역사 속에 오신 햇수를 말합니다. 그 분의 어깨에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승천하시면서 외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한 아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과 시선을 마주칩시다. 그러면 거기서 그 분이 이 땅에 사셨던 삶의 영광스러움이 보입니다. 기묘자라, 모사라!
첫째로 그 분은 '기묘자라, 모사라'고 했습니다. 둘로 떼는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 말을 영어로 'Wonderful Counsellor'라고 번역했습니다. 사실 그 보다는 더 깊은 뜻이 있지만 그렇게 번역해도 그냥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상담자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태어나서 제일 처음 부모와 상담하면서 자랍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상담합니다. 알든지 모르든지 친구들과 상담하면서 삽니다. 무수한 상담으로 내 생애가 채워져 있습니다. 어떤 상담은 내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떤 상담은 격려하기도 합니다. 어떤 상담은 내게 소망을 주기도 하고 어떤 상담은 나를 절망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그 상담자로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평범한 상담자가 아니라 신묘막측한 상담자입니다. 내가 "야, 끝났구나!"하고 낙심했는데 대로를 만드시는 상담자, 외로와서 저녁에 잠을 못 이루는 깊은 절망의 밤을 가고 있는데 그 깊숙한 곳까지 터치하셔서 내 마음을 소망으로 바꿔주시는 상담자입니다. 그 분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만나 가나안 복지까지 안내하신 상담자입니다. 애굽의 무서운 탄압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해 구원시켜서 가나안 복지로 가게 하신 상담자이셨습니다. 그 상담자가 이스라엘 역사 속에만 있었느냐구요 아닙니다. 대한 민국 역사 속에도 있었습니다. 제가 서두에서 최근의 나쁜 소식들만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몹시 마음이 화급하시지요 그렇지만 정직하게 생각해보십시다. 대한민국 일간지와 TV에 이 나라 정치 잘 된다고 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대한민국 경제가 잘 된다는 보도를 지금까지 들어보셨습니까 심지어는 그 영특한 김대중 대통령마저도 야당 시절 경부 고속도로를 착공할 때, 제 2의 만리장성을 쌓는 우거(愚擧)라고, 이것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열렬하게 외쳤던 것 제가 지금도 기억합니다. 신문이 정치 공격하는 것 옳습니다. 사실입니다. 우리 경제 형편 어려운 것을 지적하는 것, 진실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그 폭압 정치에서 벗어나서 민주주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정치는 망했고 정치가들 못된 짓만 했는데, 이 나라에 자유 민주주의가 수립되었지 않느냔 말이예요 한국 경제 망한다고 공부 많이 한 박사들이 그렇게 많이 지적했습니다. 지금 같은 계절이면 신문 사회면에 연탄 가스로 죽은 사람들의 기사가 매일 올라왔습니다. 새벽에 얼어죽은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고가 없어졌습니다. 정치가들도 엉망이었습니다. 경제인들도 협잡만 하고 거짓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Wonderful Counsellor' 때문입니다. 신묘막측한 역사의 운행자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넘어지고 있는데 그 분은 우리가 모르는 이 방향으로 이 민족 역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설명 불능의 역사입니다. 누가 아시는 분 있으면 설명 좀 해주세요.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온 그 근거를 좀 설명해주세요. 제 생각에 황장엽씨가 이 나라 정치판 보면 개판이라고 그러실거예요.
그런데 그런 개판 역사가 오늘 자유 민주주의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협잡 같은 사업이 오늘의 부를 축적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살았던 집의 규모가 어땠습니까 그래도 저는 함평에서 제일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지금 여러분 사는 집은 어떻습니까 Wonderful Counsellor! 그 말 밖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역사를 주장하시는 신묘막측하신 그 분의 지혜, 제가 이 나라에 소망을 두는 것은 정치가 때문이 아닙니다. 이 나라가 잘 될 것을 확신하는 것은 Wonderful Counsellor, 그 분 때문입니다. 그 분이 여러분의 인도자이십니다. 그 분이 나의 상담자이십니다. 우리에게 안겨 준 그 아기는 신묘막측한 상담자입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 두 번째로 그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거대한 타이타닉호, 격침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수면 위의 호텔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파도가 갈릴리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아기로 오신 그 분이 그 물을 밟았더니 바닷물이 고체보다도 더 튼튼한 반석이 되어 그의 두 다리를 버텨주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발을 옮길 때마다 강철보다 무쇠보다 더 든든하게 받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바람과 바다를 향해서 외쳤습니다. "잔잔하라 고요하라." 그랬더니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소아마비로 한번 죽어버린 근육이나 조직들은 어떤 영양 공급으로도 다시 회복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혈기마른 사람을 향해서 손을 내밀라 그랬더니 그 손이 우쑥 올라왔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시신경이 완전히 죽어 태어났을 때부터 앞을 못 보는 맹인에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랬더니 그 눈이 보여졌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울고 있는 가운데 한 가정의 고명딸이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소녀를 보면서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랬더니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죽은 지 나흘 된 시신, 공동묘지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나신 아기로 오신 그 분이 명령했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만약 "시체야, 나오너라" 했으면 그 공동묘지의 모든 시체들이 다 일어날 뻔했는데 그 분이 나사로만 불렀기 때문에 나사로만 벌떡 일어났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그 아들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신묘막측한 상담자일 뿐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그런가하면 그 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라는 단어 속에 숨겨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가시고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처럼 감동하는 것은 거기에 숨겨있는 그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희 아버님을 회상하면 그렇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라고 확신하면서 자랐습니다. 9남매나 되니까 아홉을 다 맞춰줄 여유도 없겠거니와 6.25 직후에 친구의 권면으로 고아원을 시작해 더 정신이 없었기에 저희 자식들은 완전히 외면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사랑이라는 단어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랬다가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나를 진실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밤새도록 울어봤습니다. 1971년 제가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 안수 받는 것이 마음에 무거워서 전날 밤, 잠을 못 자고 있는데 뒤척거리는 것을 안방에서 들으시고 한밤중에 아버님이 제게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버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늘 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사업해서 이제는 한 군에서 가장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데까지 올라섰다. 그래서 신학교에 입학을 했더니 6.25가 일어났고 홀홀 단신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가족들 데려오지 못했던 처지인지라 매달려 기도하기를 우리 가족 살려주기만 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서약했었다." 사실 6.25 때 저희 가족들은 부자라는 이유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겪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나중에는 다 살았거든요. 전쟁이 끝나고 온 가족이 다 만났습니다. 그 때 마침 함평군수로 계셨던 분이 아버님과 신학교에 같이 다닌 친구였더랍니다. 다른 지방 군수로 옮겨가시면서 당시 함평에서 돌보던 고아들을 모아놓고 제 아버지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이들을 맡길 사람은 자네 밖에 없네. 대신 맡아주게." 그 순간 6.25 때 부산에서 하나님께 매달렸던 서원 기도, 내 가족을 살려주면 재산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그 약속의 실천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아원을 시작해서 평생을 이 일을 하며 살아왔다고 회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 "
그런데 내가 그처럼 되고 싶었던 목사, 네가 대신되어주니까 내가 이 밤 감격스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밤 아버지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노년에 뇌일혈로 쓰러지셨다가 일어나셨는데 신체 반쪽에 이상이 왔습니다. 오른쪽 팔, 다리에 이상이 왔습니다. 그리고 치매도 함께 왔습니다. 점점 많은 것을 잊어버리십니다. 그래도 잊어버리지 않는 이름이 있습니다. 제 이름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되어가십니다. 제가 아버님 만나 뵈러 간다고 전화드리면 그 시간부터 옷을 정장하고 문간에 앉아 계신답니다. "아들 오는 것이 그렇게 좋소" 묻는 옆 사람들에게 "암. 대통령 오는 것 보다 몇 배나 좋소." 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하지 않은 대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에게는 모든 의식이 사라져가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고 세상의 어떤 사람 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이더라구요. 아버지에게 소중하지 않은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 아기가 바로 그 아버지로 오셨단 말입니다. 제가 이제는 두 아들의 아버지로 살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을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를 날마다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그 아이들에게 아까운 것 없습니다. 내 몸이라도 녹여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얼마 있다가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사랑 못 줄 날이 온다는 것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사랑이 차단된 자녀들을 생각해보셨냐구요
그런데 아기로 오신 그 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 앞에 가장 소중한 당신입니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의식이 소멸되어 가도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자녀입니다. 그 아버지로 아기 예수는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이요 그리고 그 아기는 평강의 왕입니다. 로마 시대에 'Pax Romana'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 안에서의 평화입니다. 그것을 이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지금은 'Pax Americana' 그러지요 지금은 미국이 세계를 지배해서 다스린다고 해서 'Pax Americana'라는 말을 씁니다. 아메리카 안에서의 세계 평화 질서입니다. 이것들에는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아들 안에서 평화가 있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화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소유나 환경이나 여건이 흔들지 못하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암으로 신음하는 형제에게서 그 암의 고통마저도 빼앗지 못하는 평화를 심방 가서 많이 봅니다.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극한 슬픔 속에서도 그 슬픔은 슬픔이지만, 그 슬픔이 정복할 수 없는 주안에서의 평화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빛나는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 안의 평화입니다. 그 아기 안의 평화입니다. 그 분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우리 주님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며 평강의 왕입니다. 그 분과 눈을 맞춰 보십시오. 그 분은 어떤 분입니까 이미 주신 이 축복들이 날마다 더해진다고 말합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더해주고 굳게 세워진다"고 말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편견이 있을 수 있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는 내 자식 사랑하기 위해서 다른 자식들을 홀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식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다른 자식의 손해를 감내하는 것이 우리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대학 입시 보면 꼭 자기 자식만 합격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다른 집 자녀들은 어떻게 되라는 말이예요 그것이 부모의 편견이고 편협된 사랑입니다.
그런데 아기로 오신 그 분의 사랑에는 공평과 정의가 늘 있겠다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다치지 않고 누구든지 풍요합니다. 그런 놀라운 사랑이 계속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그리고 이것을 여호와의 열심이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시더니 2천년 전에 그 아기가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젖을 먹여주지 않으면 굶어죽을 아기로 오셨습니다. 강보에 싸놓지 않았으면 얼어죽을 아이로 오셨습니다. 부모의 사랑의 보살핌이 필요한 구체적인 생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 아기와 눈동자를 마주치고 있습니까 우리는 신묘막측한 상담자를 내 구세주로 붙잡고 삽니다. 유한한 인간이 그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놀라운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쏟아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만납니다. 그리고 세상에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평화를 왕 되신 그 분 안에서 만나고 누립니다. 이것이 크리스챤의 삶입니다. 그 아기가 내 생애 속에서 탄생했습니까 내 인생 속에 아기 예수가 탄생한 사람만이 기쁘다 구주 오셨다고 노래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노래의 의미를 모르는 채 술집의 권주가 정도로밖에 안 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 속에 탄생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 분과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습니까 왜 그 분 안에서 그 분의 지혜를 내 것으로 소유하지 못하십니까 왜 그 분 안에서 그의 능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지 않으십니까 그의 아버지되심 안에서 내 모든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십니까 그 아기 안에 이미 숨겨놓은 넘치는 평화로 흔들리는 세상이 감당 못할 평화를 찬양하지 않습니까 아기 예수가 우리 위해 나셨습니다.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이 시간에 선물로 주신 아기를 받으십시오. 그 분에게 Wonderful Counselling을 받으십시오. 내 능력의 한계에 매인 인생을 살지 마시고 전능하신 그 분의 능력을 의지해서 여러분의 생애가 쓰임 받기 원합니다. 쏟아지는 폭포가 중단될 수 없는 것처럼, 그 분에게서 쏟아지는 부은바 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십시오. 그 안에서 어떤 것도 흔들지 못하는 평강을 소유하십시오. 크리스마스는 이 아기가 오신 날입니다. 그 아기 오심이 중심으로 찬양되는 복스러운 크리스마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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