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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1 (고전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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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8세의 사랑 1894년부터 1972년까지 이 땅에 살았던 윈저 공(Duke of Windsor)은 황태자 시절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면서 특별히 문화와 예술에 대한 탁견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황태자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많은 사람과 사귀었기 때문에 모두들 그의 할아버지 에드워드 7세 같은 영걸 군주가 되겠다고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조지 5세가 1936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때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각으로 왕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랬는데 그가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 여자는 심프슨 부인입니다. 원래 그의 이름이 워필드입니다. 10년 동안 미국에서 해군장교와 살다가 이혼하고 영국의 명망가인 심프슨과 결혼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젊은 황태자와 결혼하려면 또 다시 이혼을 해야했습니다. 그가 만약 황태자였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왕으로 즉위했기 때문에 이 일로 전 영국이 들끓었습니다. 영국 재상인 몰드윈이 전 내각을 총동원해서 이 결혼을 저지시켰습니다. 그러자 그 해 겨울,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없는 왕관보다 왕관이 없는 사랑을 택하겠다." 그리고 미련 없이 영국 왕위를 버렸습니다. 아마 20세기 최대의 로맨스일 것입니다. 사랑이 뭐 길래 전 영국민의 촉망을 받던 그가 5대양 6대주의 해질 날이 없었던 강력한 천하무적의 제국의 왕의 직위를 스스로 버리고 한 여인과의 사랑의 길을 선택했을까요 그리고는 세계를 전전하다가 파리에서 사랑하는 자기 아내 심프슨의 품안에 안겨서 생애를 끝냈습니다. 사랑이 뭐 길래,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사랑이 뭐 길래 아가서 8장 6절은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또 아가서 8장 7절은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 도대체 뭐 길래 그렇게 말하니까 옛날에 TV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언제 보니까 중국에서도 '사랑이 뭐 길래'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집에 돌아 가길래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 길래'를 보려고 그런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채널을 맞춰놓고 보니까 대발이가 중국말을 얼마나 능숙하게 하는지 제가 놀랐습니다. 저는 100여번 다녀도 "니 하우" 밖에 못하는데, 그 대발이는 중국말에 능통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다시 재방영했을 때도 그렇게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아가페 성경은 사랑을 세 모습으로 설명합니다. '에로스'라는 단어가 원래 사랑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처음에는 분명하게 구분이 안 되는 모든 사랑을 총칭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의 저작을 보면 '에로스'는 정신적인 사랑이라고 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뜻이 바뀌어져 성경을 기록할 때 즈음되면 이 '에로스'는 완전히 육욕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으로 한정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그런 육욕적인 사랑 말고, 좀 더 높은 가치를 향한 사랑이라는 뜻의 단어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필레오'입니다. Philosophy, 철학이라는 말은 원래 Phileo와 Sophia가 합쳐져서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또 Philadelphia는 '형제사랑'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우정 같은 높은 가치를 사랑하는 것을 '필레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로 오늘 성경이 말하는 단어는 이 두 단어와 다릅니다. Agape입니다. 이 단어는 대부분 동사형으로 쓰였습니다. 명사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도무지 사랑할 대상의 조건과 상관없는 무조건적인 불변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모습을 우리 주변에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예가 있다면 똑같지는 않지만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예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아가페입니다. 제가 이 아가페의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또 밀알 학교의 자폐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자폐아가 가장 어려운 장애다.'
왜냐하면 자폐증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도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엄마가 사랑하든지, 아버지가 사랑하든지, 선생님이 사랑하든지 간에 자기 속에 갇혀서 남이 사랑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장애 중에 가장 어려운 장애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장애는 어떤 장애든지 자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자폐아는 그것을 모릅니다. 제가 자폐아들을 3년 여 가까이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예수 믿기 전에 하나님 앞의 내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가 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크신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그 사랑을 몰랐습니다. 터키에 처음 갔을 때 무척 놀랐던 것은 터키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몹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우리 나라를 형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터키 사람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폐 증세를 오랫동안 보여왔습니다. 아마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도무지 받을 자격 없는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대가성을 바라지 않는 불변의 사랑, 이것을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 가슴에 있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서 흘러나와야 된다고 말합니다. 이 사랑이 흘러나지 않는 인생은 이처럼 세 가지를 갖췄다 할지라도 얼마나 그것이 값어치 없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람이 갖는 언어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플루타크 영웅전'을 보면 전설적인 웅변가인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데모스테네스는 어떤 말이든 그가 말하기만 하면 셰익스피어의 문장 보다 더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그의 말솜씨를 전 아테네(Athens)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북쪽의 마케도니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알렉산더가 새롭게 창기병을 무장해서 온 세계를 정복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데베(Thebes)를 일거에 정복하고 스파르타(Sparta)를 함락시키고 계속 군사를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너희들, 나와 화친해서 새로운 제국을 만들든지, 그렇지 않으면 멸절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 그 때 데모스테네스는 그 화려한 웅변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우리 아테네는 비록 적은 도시국가지만 한번도 원수의 말발굽이 이 아크로폴리스(Acropolis)를 디뎌본 적이 없다. 백만의 페르시아의 대군이 그처럼 우리에게 져서 패퇴했거늘, 기껏 북쪽 오랑캐 마케도니아 정도야!" 그가 말할 때마다 젊은이들은 손에 힘을 주면서 전쟁해야된다고 외쳐댔습니다. 그 때 백전 노장인 포키온(Phocion)이라는 장군은 화려하지 않지만 중심 어린 마음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피를 토하듯이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여러분, 나는 평생 전쟁터 속에서 산 사람입니다. 여러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처럼 흉맹스러운 세력을 저는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저와 화친하지 않으면 그 거대한 군대는 우리 도시 국가인 아테네를 영원히 멸절 시킬 것입니다. 나는 전쟁의 참화를 너무나 잘 아는 장군입니다." 그는 간절하게 애끓는 마음으로 호소했습니다. 그러니까 아테네 사람들이 "그래, 화친하자."라고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말 웅변의 힘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웅변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방언, 내가 모르는 이상한 현상, 내 기도를 끌어가고 힘을 주는 방언을 가진다 할지라도, 아니 사람의 언어를 완전히 떠난 천사의 말을 갖는다 할지라도 그 중심에 이 아가페의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라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여러분, 사람의 지식은 능력입니다. 우리는 오늘 지식 사회를 삽니다. 그래서 컴퓨터 아래서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못해본 새로운 환경을 날마다 만납니다. 지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계속 안겨주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환경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지식만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지식 보다 더 크게 변화시키는 것은 믿음입니다. 은사로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아갈 때 바다에 육지처럼 대로를 만들어서 걸었습니다. 저들이 믿음을 가질 때,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머리 하나 그으르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거대한 성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저들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운행하던 태양이 정지했습니다. 믿음은 또 하나의 엄청난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환경변화를 일으키는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아가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 볼 때는 굉장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속에 그 사랑이 없으면 "
I'm nothing!"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랑이 내 마음속에 있을 때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난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 내가 나를 봐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가하면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제입니다. 헌신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실제로 구제하는 것 참 힘듭니다. 이번 주 화요일날 밤에 KBS Radio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기회로 남북 나눔 운동을 소개하고 의견을 나누는 전화 인터뷰를 15분 정도하자고 했는데 인터뷰할 질문지를 보내왔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 남쪽에도 가난한 사람 참 많은데 굳이 북쪽에 있는 동포를 도와야 되는가 라는 비판과 반대에 부딪쳤을 때 그 반대를 어떻게 이겼습니까" 그러면 제가 이렇게 답변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정말로 가까이 있는 노숙자나 철거민들, 이재민들 그렇게 불쌍히 여기십니까 그러면 북한 돕지 말고 그 사람들 열심히 도우십시오. 그렇게 돕고 나면 북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언제 그것을 깨달았느냐면요, 과거에 남서울 교회개척 후 얼마 안되어서 처음 선교사를 파송할 때입니다. 성미 급한 분이 제게 쫓아와서 "홍목사님, 이 한국에도 전도할 때가 그렇게 많은데, 철새인 아파트 사람 데리고 태국에 선교사를 보내요" 그 때 반포에서 교회개척해서 1년, 교인 120명 밖에 안될 때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집사님께 "집사님은 국내의 개인 전도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옆에 있는 사람 열심히 전도하세요. 세계를 향해 선교하는 사람은 방해하지 마시구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분 보니까 평생 전도 안합니다. 평생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복음 안 전하더라구요. 도와 보지 않으면 돕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리고 돕기 시작하면 도움의 눈은 계속 커집니다. 구제는 힘듭니다. 구제는 귀한 것입니다. 오늘 터키의 참전 용사께서 우리 교회를 방문하셨는데 만약 초라한 집이지만 간이 주택이라도 지어주지 않고 만났으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 정도가 아닙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라고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의 승려들이 자기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죽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은 결국 통일이 되었습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일이 국가적으로도 큰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구제와 내 몸의 불타는 헌신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할지라도 그 가슴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넘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나가지 않으면 내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가슴, 사랑이 없는 멋진 언어는 울림 밖에 안되고 내가 엄청난 영향력으로 환경의 변화를 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할지라도 내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오늘 내 삶을 바라보면서 '내가 과연, 아가페의 사랑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가 내가 그 아가페의 사랑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줄 때에도 그 사랑을 함께 가지고 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내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 돈의 가치를 제일의 가치로 생각하고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한 신문기사를 읽어 보겠습니다.
2000년 6월 9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벤처투자 1백억대 번 L씨의 불면 속사정'부동산이 40억, 유가증권이 30억, 은행에 20억, 집이 10억원…. 100억원은 넘겠네요.L씨(37)는 자기의 재산규모를 이렇게 소개한 뒤 뜻밖에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입 합격자 발표를 보는 날 그랬듯 내 재산이 100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도 행복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도망치고 싶습니다.L씨는 이른바 벤처 열풍이 낳은 벼락부자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다니던 증권사를 나와홀로서기를 해보겠다고 호기 부리다 고생도 많이 했다. 은행빚 전세금 중고차 1대. 퇴사 당시 그의 순자산은 4000만원이었다. 때마침 닥친 외환위기로 발까지 꽁꽁 묶였다. 낙천적인 성격이었지만큰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낼 6만원이 없다는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택시를 몰 생각까지 했다. 그 무렵 아버지 회사마저 쓰러졌다. 화병을 얻은 아버지는 부도 후 한달 만에 돌아가셨고 반년 뒤엔 어머니마저 눈을 감았다. 절망이었다. 혼자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울었다. 더 이상 무너져선 안된다는 생각에 이른바전주들을 찾아다니며돈을 벌게 해줄 테니 나를 고용하라고 설득했다. 때마침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반년 동안 사채업자 3, 4명에게 30억140억원씩 안겨주는 대가로 받은 돈이 2억원. 이것이 종자돈이 됐다. 경제위기로 직장을 잃은 옛 동료들이 너도나도 벤처 회사를 만드느라 자금지원을 호소해 왔다. 과감하게 출자했다. 1000만12000만원씩 투자한 돈이 억대로 불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투자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수십억원대 거부(巨富)가 돼 있음을 깨달았다. 벤처 회사 사장들로부터그렇게 돈을 벌고도 셋집에 산다니 말도 안된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그래, 부자는 부자답게 살아야지.우선 승용차부터 외제로 바꿨다. 집도 10억원짜리로 옮겼다. 골프도 배우고 회원권도 끊었다. 그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룸살롱 마담부터 대접이 달라졌다.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줄을 이었다. 실수해도 겸손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구나. 그러나 행복도 잠시, 예기치 않은 고민거리들이 생겼다. 우선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정신이 나갔던 아내는 요즘 그를 의심한다. 만취해 돌아오면어느 여자랑 마셨느냐고 시비를 건다. 옛날엔얼마나 힘드느냐며 꿀물을 타주던 아내였다. 구두쇠였던 아내도 가정부를 들이면서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100만원이 넘는 비싼 옷도 사들였다. 친구들에게 한턱낸다며 한끼에 몇 십만원씩 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L씨는 요즘아내에게 분명 애인이 생겼다고 추측한다. 아이들도 달라졌다. 실직자였을 땐 과자 한 봉지에도 고마워하던 아이들이 고가(高價) 게임기가 전제되는부촌(富村)문화에 젖어갔다. 의좋던 형제사이도 소원해졌다. 부자가 될 때까지 한마디 얘기도 없더니 사업자금도 못 대주느냐고 으르렁대는 동생과 제수씨들이 이제는 부담스럽다. 내친 김에 사업을 한번 크게 벌이느냐, 아니면 누구의 말처럼 인생관을 확 바꿔 이쯤에서 접고 베푸는 삶을 사느냐. 그것이 고민이다. L씨는 요즘 너무 외롭다. 그는 불면증을 견디다 못해 지난달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것이 돈의 실상입니다. 돈 자체는 행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돈 자체는 저주일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사랑이 없는 한, 우리가 갖는 최고의 가치는 무의미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언어는 소리나는 구리이고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다음 주에 그 사랑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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