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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예배를 드리자 (시9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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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느냐 제가 이번 주, 다음 주 두 주간에 이어서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리로 우리 온 교회가 나아가기 위해서 두 주일을 예배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받으시는 것 가운데 예배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예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있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사 백 년 동안 살았지만 예배를 몰랐습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조건을 저들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거기 까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예배를 가르쳐 주셔서 예배드리는 백성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셔서 너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애굽에서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신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니 너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구원을 모르는 사람은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죄에서 건짐을 받았다 라는 고백이 없는 사람은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예배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하여 나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셨다, 이 큰 은혜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감사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한마디로 신령해야 합니다. 거룩한 예배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에서부터 끝까지 우리가 평생 드려도 그 예배의 깊이를 다 알 수 없는 신비에 가려져 있습니다. 지난주일 예배와 오늘의 예배가 다릅니다.
오늘 새벽 예배와 이 시간 예배가 다르고 내가 평생 드릴 예배가 항상 새로운 신비로, 새로운 거룩함으로, 새로운 신령한 은혜로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는 무한한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움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신비한 것을 부정합니다. 신령한 것을 무시합니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과학만이 신비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인류 역사에 오늘날까지 신비한 예배를 신령하게 드리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신령한 은혜를 통하여 예배에 은혜를 받은 민족이 과학적으로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온 세계 경제, 문화에 최고의 민족은 신비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것을 귀히 여기는 민족이 과학적으로도 앞서갑니다. 신령하고 신비한 예배를 무시하고 이것을 물질적으로 과학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지상에 아주 버림받은 불행한 민족으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학자 가운데도 개인적으로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이나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기도 많이 하고 예배 드린 사람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음악가 가운데도 헨델이라고 하는 분은 우리가 메시아 칸타타를 많이 들으면서 그 장엄함과 그 감격과 그 은혜를 우리는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자리에 나아가게 됩니다. 헨델은 성경 가운데도 마가복음을 많이 읽었습니다. 마가복음을 좋아했습니다. 성경에는 제목이 다 있는데 마가복음에는 특별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신 고난 당하신 예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신 나의 주님을 마가복음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헨델은 이 마가복음에서 받은 은혜와 감격과 말로 다 형언 할 수 없음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오셨다. 이제 영원히 우리를 다스리시는 부활하시고 살아 계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는 그 감격이, 그 신비함이 사람들에게 음악적으로 뒤떨어진 음악이 아닌 최고의 음악이요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감동을 주는 최고의 작품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신비한 은혜를 받은 화가들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화가들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그 걸작품이 너무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학이 전부가 아닙니다. 과학이 신비한 것 아닙니다. 신령하고 신비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정상적인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신비한 예배를 드려서 신령한 은혜를 받는 사람이 더 정상적인, 더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국가와 세계를 위해 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저버리면서 하나님 없는 삶에 무엇이 있는 줄 알고 지식과 물질과 과학과 쾌락이 우리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작품에 보면 주인공 파우스트는 인간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인지 모르고 고민합니다. 허무함에 빠지고 허탈감에 빠져서 걷잡을 수 없는 파우스트는 자살하려고 집을 떠나게 됩니다. 그 때에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립니다. 땡, 땡 하면서 종소리가 울립니다. 교회 종소리는 신령한 소리입니다. 영적인 소리입니다. 머리로 듣는 소리가 아닙니다. 가슴에 울리는 종소리입니다. 하늘의 종소리입니다. 내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입니다. 나를 부르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파우스트는 깨달았습니다. 그곳에서 찬송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그는 교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앞에 엎드리면서 놀라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새로운 마음에 기쁨을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나도 모르는 새로운 감사와 소망을 마음에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하나님의 축복이에요. 우리 인간이 행하는 최고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예배 드리는 몸과 마음이 하나님 앞에 최고의 가치와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 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기뻐하시고 만남을 통하여 우리 인간은 새 힘을 얻어서 능력 있는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싱가폴에 가면 새 공원이 있습니다. 싱가폴에 가서 크게 두 가지 볼 것이 있는데 하나는 물고기 수족관입니다. 참 세계적입니다. 싱가폴이 작다고 무시하면 안됩니다. 지금 세계에 서 신용에 일, 이등을 오가는 나라예요. 어마어마한 물고기들이 위로 왔다 갔다 하는데 수 천 마리가 떼를 이루어서 마치 바다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갖게 됩니다. 또 새 공원입니다. 공원 전체가 새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세계 나라에 새 공원은 그물을 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수 백 천가지의 새들이, 수 만 마리의 새들이 그 공원을 떠나서 날아가는 새들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다 그 안에 살아요. 어떻게 훈련을 시켜서 그 안에 그냥 있을까 신기하잖아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새가 날아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꼬리를 다 뺐어요. 옆에 날개는 있는데 꼬리를 빼 버렸어요. 그러니까 위로 날 수는 있어요. 점프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나가지는 못해요. 왜 방향을 꼬리가 잡는데 갈 수가 없으니까 그냥 내려앉는 거예요. 뜨기는 떠요 똑같은 힘이 있어요. 날기는 날아요 날개는 다 갖고 있어요. 나가지를 못하는 거예요. 어디를 가야할지 가는 곳으로 이끌어 주지를 못하는 거예요. 오늘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요 그래서 방황하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노인 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방황하는 시대예요. 내가 누구입니까 어디를 가야 합니까 그래서 현대인의 제일 큰 병은 모르는 병이랍니다. 잠이 안 오는데 왜 안 오는지 본인도 몰라요. 전문가에게 가도 몰라요. 모르는 병이에요. 집이 싫은데 왜 싫은지 몰라요. 그래서 가정을 떠나는 분이 많아요. 왜 싫은지 몰라요. 아프기는 분명히 아픈데 왜 아픈지 어디에 병이 있는지 모르는데 아파요. 병원에서도 몰라요. 아무리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녀도 모르는 환자가 그렇게 많습니다. 왜 살기 싫은지, 살기 싫어요. 이유는 없어요. 살기 싫어 의욕이 없어 잠이 안 와요. 왜 안 오는지 몰라요. 스트레스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몰라요. 원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울합니다. 왜 우울한지 모릅니다. 공부하기 싫어요. 왜 싫은지 학생들도 몰라요. 상담해도 몰라요. 공연히 어머니가 싫어요 부모님이 싫어요. 말 안 들어요. 나가요. 남편이 싫어요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른 데요. 나도 몰라 너도 몰라 전문가도 몰라 모르는 병이에요. 방황해요.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두 몰라요. 길거리에 헤매는 거예요. 중국도 지금 시장 경제 문을 연 지가 십 년밖에 안 되는데 방황해요. 2년 전에 자살한 사람이 중국에 이십 만 명이에요. 물질, 과학 인간의 방향은 신비하게 풀어나가야 길이 열리는 것이지 물질적으로 과학적으로 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어요. 하나님을 만나야 인간의 답이 오고 힘이 오고 풀려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일본도 자살율이 세계 선진국 랭킹 몇 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일본도 31,734명이 몇 년 전에 자살했어요. 우리 나라도 98년에만 8,569명이에요. 지금 교통사고를 넘어서서 자살자가 만 명이 넘어섰어요. 매일 수 백 명이 자살 해 죽어요. 왜 죽으려는지 이유 없어요. 사건을 다루는 경찰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요사이는 도둑질을 하는데 이유를 모른 데요. 그전처럼 배가 고파서 도둑질을 하는 것만은 아니래요. 그전에는 정말 사흘을 굶으면 담을 안 뛰어넘을 수 없어서 뛰어 넘는데 지금은 좋은 차 타고 도둑질을 한대요. 인물이 좋은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집안을 잘 꾸며 놓고 도둑질을 한다는 거예요. 몰라요. 왜 그래요 하나님을 떠나서 그래요.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섬길 때 주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은혜와 힘과 가치와 시간과 모든 생애 하나 하나가 하나님 앞에 중요하고 요긴하고 아름답게 오늘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 시편 100편 2절에 "기쁨으로 노래하며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기쁨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00편 1절 2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모두가 다 기쁜 것입니다. 두번째는 감사함으로 나아가라 그랬어요. 시편 100편 4절,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만 가지가 감사해요. 나를 불러주신 은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모든 삶을 이렇게 형통하게 돌보아 주신 이 모든 은혜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하니까 감사한 거예요. 예배 시간이 좀 더 길다면 하나님 앞에 의식도 행하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개신교는 중요한 의식이 많이 빠졌어요. 원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성전,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는 거예요. 예배 시작이 되면 성도들은 이미 먼저 와서 다 기다려야 돼요. 예배의 시간 됨을 알리면 성도들은 다 일어나야 돼요. 그 다음에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이 하나님의 성전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성가대원과 예배위원들이 바로 뒤를 따라오면서 오르간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나오는 예배가 시작되면서 신령하신 하나님도 하늘에서 영광 중에 영적으로 이 자리에 임재하여 예배에 같이 만나는 거예요. 예배는 만나는 시간이에요. 창조자와 피조물 된 우리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약한 우리 인간이 아버지 집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이 거룩한 날 거룩한 성전에서 만나는 거예요. 이 순간을 마치 달나라에 닐 암스트롱이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내 영혼에 큰 감동과, 감격과 전류가 흐르듯이 내 영혼에 예배시간이 선포되는 순간은 굉장한 은혜와 영광과 기쁨이 내 인격, 내 생각 속에 충만히 임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는 두려운 시간이에요. 황홀의 시간이에요. 말할 수 없는 감격의 순간이에요. 오늘 현대인들이 이런 감격과 감사와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방황하게 되는 거예요. 여기에서 가치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거예요. 찬송, 기도, 예배, 감사, 말씀 다 하나 하나가 귀한 거예요. 그래서 예배 시간은 짧은 시간이지만, 예배도 우리 나라가 제일 짧아요.
유대인들은 보통 3-4시간, 제가 필리핀, 남미, 중미, 미국, 유럽 여러 나라에 예배를 보면 보통이 두시간 반에서 세 시간 반, 네 시간까지 갑니다. 어린아이들이 참여해도 어린아이들도 흐트러지지 않아요. 왜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드리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신령한 은혜를 받고 예배에 깊이 들어가니까 예배가 귀한 거예요. 좋은 것에는 빠져야 돼요. 사랑도 빠져보세요. 사랑에 빠지면 사랑처럼 힘있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 없습니다. 빠지지 않는 사랑은 짐입니다. 빠지지 않는 사랑은 괴로움이에요. 고통이에요. 예배도 모르고 드리는 예배는 짐이 됩니다. 예배에 빠져서 드리면 한시간 한시간 어느 것 하나 하나가 그렇게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기다려져요. 신령한 성도 되어 신령한 은혜를 경험하는 예배가 평생 이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늘 예배 시간마다 독창과 중창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성가대는 거기 앉고 독창하는 문은 2층에다가 창문을 열어서 아주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독창을 한다 그러면 아주 찬양하는 독창자가 드레스나 그런 옷을 입고, 기계에 의해서 한 5m 겉으로 꺼내는 거예요. 공중에 떠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천사같이 왔다가 나가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이 쪽에는 바로 끝나면 중창단 창문이 열리는 거예요. 이건 아주 중창이니까 그래서 아주 미들 사이즈의 문이 크게 열려 가지고 또 기계가 한 3-4m 꺼내면 한 이, 삼십 명이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거예요. ♪전능 왕 오셔서 주 이름 찬송케 하옵소서 영광과 권능의 성부여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또 그 다음에는 성가대가 쫙 일어나서 창조자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바칠 최대의 우리의 사랑을 예배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 예배는 하나님께도 제일 기쁨이요 우리 인간에게도 제일 기쁜 복된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는 겸손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편 95편 6절에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경배할 때 굽혀 경배하고 우리를 지으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의 차이점은 동양 사람은 사람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자연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언제나 지배를 받으면서,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왔고 모든 자연을 섬기다 보니 어느 것 하나도 개발하지를 못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똑같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팔을 내밀어서 손을 잡는 것이지 아무리 높은 사람에게도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자연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돌, 나무, 산에다가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분은 전능하신, 정말 우리에게 가치 있는, 거룩하고, 높고 높으신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고 하늘 창을 활짝 열어서 우리에게만 복을 내리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은혜를 예배를 통하여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시골서 살 때 일 년 가운데 제일 기쁜 날은 설날이었습니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우리 아버님은 저를 이른 새벽에 일찍이 깨웁니다. 세 시, 네 시정도 되어서 깨우면 세수하고 빨리 새 옷을 갈아입고 단정하게 입고 우리 할머니가 계신 큰집으로 갑니다. 백부님, 백모님, 할머님 계시는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가서 우리가 가면 이미 불을 켜 놓고 저희들 오기를 기다리셨다가 우리가 가면 창문을 열어줍니다. 문을 열면 저희들은 문에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직계 자손만이 문 밖에서 절합니다. 그래서 가마니를 하나 깔아 주면 거기에다 아버님은 두루마기를 입고 저는 교복을 입고 우리 할머니에게 한 번, 백부님에게 한 번, 백모님에게 한 번 이렇게 절을 하고 방안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백부님과 할머님은 저를 보시고 드디어 주머니를 꺼내서 제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뱃돈을 일 년에 딱 한 번 주십니다. 시골에서 일 년 내내 돈 한번 만져볼 때가 한 번도 없는데 딱 일 년에 한 번 내가 쓸 수 있는 아주 많은 돈을 준비하셨다가 저에게 주는 겁니다. 그 순간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빨리 그 집에서 나와서 친구들 만나 가지고 자랑하고 싶고, 돈 쓰고 싶고 그 감격이 별 것 아닌 순간이지만 일 년 내내 제일 기다리는 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자, 나의 직계, 내 영혼의 아버지 앞에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면서 최고의 감격과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사랑을 표현하는 복된 시간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 감격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다른 것에 감격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을 하늘 문을 여셔서 내 평생 이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복을 내려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 시간 안에 받는 은혜가 많습니다. 예배는 당장 내 영혼에 기쁨을 위로부터 얻고 감사를 얻고 내 모든 죄를 예배 시간에 용서하여 주셔서 무거운 짐을 벗겨주시고 하나님께서 금생과 내생에 받을 수 있는 영, 육의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 것이 없고 그런 것을 믿지 않으면 뭐하러 예배를 드립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기다리고 그렇기 때문에 예배가 소중하고 그렇기 때문에 예배 시간이 우리에게 최고의 기쁨의 시간이요 감사의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그 귀한 이름 예수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주 예수께서 영원히 어제나 오늘이나 그 이름으로 우리게 참 복을 내리신다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주 이름으로 우리게 참 복을 내리신다♪ 어떤 우리 인간, 잘못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예배만 드리면, 예배에만 나오면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 받습니다. 전에 말씀 드렸죠, 박지만 군이 왜 그런지 자기도 몰랐어요 내가 왜 이러는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럴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도와주어도 어떤 방법으로도 안되었어요.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돼요 감옥에 들어가도 안돼요. 그런데 그 변호사가 예수 믿는 분이, 담당 변호사가 교회로 데려갔어요. 소망 교회에 데려가서 곽 목사님 설교를 들었어요. 얼마나 말씀이 은혜로운지 그만 그 말씀을 듣고는 새 사람이 되었어요. 바로 잡으려는 본인의 노력도 없었어요. 주변도 권고한 게 아니에요. 가만히 두고 하나님과 만났어요.
그런데 박지만은 달라졌어요. 고쳐졌어요. '아 내가 이렇게 귀하구나 내가 잘못 되었구나 내가 용기가 없었구나 내가 소망이 없었구나' 살아났어요. 사람의 마음속은 넓은 밭과 같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와 말씀에 뿌려지면 이 안에는 천 가지, 만 가지의 곡식이 자라나게 되어 있는 생명 있는 영혼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신령해야 합니다. 육적으로, 세상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에요. 거룩하고,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신령한 하나님 앞에 신령한 은혜를, 신령한 감동을 받는 순간이 예배예요.
그러므로 내 모든 문제가 신령한 은혜로 해결 되게 되어 있어요. 여기 와서 기도하고 가면 사업이 잘 되고, 가정이 잘 되고, 건강이 오는 줄로 믿습니다. 병이 있어서 여기 나와도 병이 고쳐져요. 예배시간에 고쳐져요. 할렐루야. 얼마 전에 나한테 유명한 신문사 편집국장이 오셨어요. 저보고 기도해 달라 해서 기도해 주었더니 '목사님, 목사님 기도 받고 나니까 우리 회사 그 노조 그렇게 해결 못하던 것이 다 해결되었어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내가 가서 회사의 무엇을 수습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 회사가 잘 되게 되어져 있어요. 가정이 잘 되게 되어져 있어요. 행복하게 되어져 있어요. 어떤 분은 기도 받을 때 제가 물어요. 나이가 몇이냐 하니까 마흔 세살, 결혼한지 얼마나 되었냐니까 18년 되었대요. 아이가 없어요. 예배 드리고 와서 기도를 받았어요.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하나님 아버지 이 분은 나이를 보면 지금 낳고 또 낳을 수 없으니까 한 몫 그냥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했어요. 쌍둥이를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일 년 되어 가지고 그 달에 배가 나왔어요. 아기를 낳았는데 그냥 계속 나오는 거예요 계속. 딸 하나, 아들 둘 이렇게 낳았어요. 삼 남매를 낳았어요. 18년 동안 아무리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 안 되던 분에게 기도대로, 예배를 신령하게 해 봐요. 나아만은 군대 장관이었지만 요단강에 목욕만 하면 낫는다는 걸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목욕하고 나을 것 같으면 내가 뭐하러 왔겠냐 그랬어요.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문둥병이 나았어요.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 불이 내려와서 다 태웠어요. 성경에 모두가 다 신비한 말씀들인데 신비한 걸 무시하면 사람이 굉장해지는 게 아니에요. 신비한 걸 빼 버리면 사람이 아니에요 동물이에요. 오늘 현대인들이 왜 동물적인 삶을 살아가느냐 신비한 걸 빼 버리니 그런 거예요. 사람은 다 신비함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권위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귀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자 앞에 나오는 것이, 이 세상에도 만든 분이 있는데 사람을 만드신,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시편 100편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그의 것입니다. 그의 양이에요. 그가 창조했어요. 그가 우리와 함께 해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에요. 그가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안 되는 것이 우리예요. 할렐루야! 오늘 새벽에도 말씀드렸지만 에디슨과 세계 최고의 아인슈타인 박사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 드리고 누구보다도 기도 많이 해 가지고 최고의 과학자가 되었어요. 에디슨은 초등 학교 3학년밖에 공부를 못했어도 하나님, 창조자를 찾고 창조자를 만나면 지혜가 생겨요. 그래서 예수 믿으면 창의력이, 예배를 드리면 머리가 아주 창의력이 생겨나요. 현대인들의 머리는 너무 터질 듯이 창의력이 없고 개발이 되지 않아서 하나의 지식 때문에 고민하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식은 얼마나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급해주고 개척정신을 주고 삶의 무한한 힘을, 뇌에 건강을 가져다주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초청을 받는 순간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시는 거예요.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불러주시는 거예요. 예배시간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세요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주일 날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엉뚱한 곳으로 가지 마세요. 우리 교인이, 중앙부처에 있는 몇 분이 모여서 서해안에 낚시하러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 날이 주일이에요. 남편은 세례도 안 받았어요.
그런데 그 부인이 남편보고 그랬어요. '여보 오늘 세례 받아야 되는데 당신 안가면 안돼요' 그렇게 매어 달렸어요. 부인 말을 들으면 만가지가 덕을 봐요. 그래서 마지못해 별난 부인 만났다고 생각하고 우리 교회에 나왔어요. 그래서 그 날 세례 받고 친구들은 다 서해안에 낚시를 떠났어요. 그날 떠났던 친구들이 서해안 태풍을 만나서 배 안에 있던 그 친구들이 몽땅 다 죽었어요. 중앙부처에 다 과장급들이에요. 훌륭한 분들이 그 때 많이 돌아가셨는데 산 사람은 누구냐, 우리 교인이 살았어요. 부인 말 듣고요. 교회 초청을 받아 나오면 만 가지가 유익인 줄로 믿습니다. 한 주일 내내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는 길을 인도해 주셔서 형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비하게, 어떻게 신령하게. 과학적으로는 설명 못해요. 논리적으로는 말할 수 없어요. 지식적으로는 말할 수 없어요. 그러나 신앙적으로 말할 수 있어요. 믿음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천군 천사로 여러분을 보호하여 주는 줄로 믿습니다. 예배는 항상 신령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시편 96편 9절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편 99편 9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결론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좋은 예배는 마음의 준비를 다 해야 합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를 드릴 수 없어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두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면 안돼요. 두 번째는 의복도 준비해야 해요. 예배를 드리는 의복을 언제나 하루 전에 준비했다가 그 옷을 입고 나와야 해요. 깨끗한 옷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늘 입는 그런 옷을 입고 나와야 해요. 제가 이스라엘을 가보니까 조그만 애들도 하나님 앞에 회당에 나갈 때 전부 까만 옷을 입혀 가지고 모자 다 씌워서 가더라고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준비된 예복을 입고 나오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사이는 노란 머리가 많이 오는데 안됩니다. 염색하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 내 모습 이대로 진실하게 믿음으로 나와 경배하시기를 바랍니다. 몸도 깨끗해야 된다 그랬어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이 씻어 주십니다. 내 영혼은 하나님이 정결하게 하지만 이 육체의 몸은 내가 씻어야 돼요. 그래서 토요일이 되면 꼭 목욕하시고 못 했으면 주일 날 아침이라도 꼭 목욕을 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돼요. 이건 성경에 많이 나와요. 씻으라 그랬어요. 씻고 나오라 그랬어요. 그래서 교회 문에다 마당에다 원래 손을 씻는 그릇을 반드시 준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손을 씻고 들어갔어요. 마지막으로, 물질도 준비하라 그랬어요.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예물을 가지고 나오라 그랬어요. 내가 큰 하늘의 복을 받기 위해서 내가 받은 은혜도, 선물은 주고받는 것이 좋은 거예요. 하나님 앞에 내 적은 물질을 드리면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예배는 더욱 신령한 예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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