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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 (마26:26-30)

본문

우리 주님 3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말씀하시기를 "공중 나는 새도 깃들 둥지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다"(눅 9:58)고 하시면서 이곳 저곳 떠돌이 생활을 하셨습니다. 간간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성만찬이 있기 하루 전에는 사랑하는 동네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 자기 생애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대접이라고 말씀하셨던 옥합을 깨뜨리는 대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따로 모아놓고 축복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께서 직접 장소를 마련하셨고 주께서 직접 음식물을 만들어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떡을 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식사가 끝난 다음 잔을 가지시고 사례하신 다음 "이것을 마시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것은 주님의 선언입니다. '내가 내 생애 전체를 놓고 가장 중요한 약속, 중요한 메시지를 내 몸 전체로 서약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보통 선언할 때 말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데모대에 가보면 "아무개 물러가라. 우리 주장은 뭐다." 선언을 계속 말로 합니다. 이 말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B.C 33년경에 중국 땅에 귀곡자(鬼谷子)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논리 수사에 뛰어난 스승이었습니다. 그에게 걸 맞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한 제자의 이름은 소진(蘇秦고)이 한 제자의 이름은 장의(張儀)입니다. 이 소진이 아침 햇살처럼 떠오르는 진(秦)나라의 세력을 보았습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다가 한 세력이 치솟아 올라오는데 그 거대한 세력 앞에 온 천하가 평정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소진은 특별히 동쪽에 있는 여섯 나라를 차례로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저 떠오르는 진나라를 이기려면 이 여섯 나라가 힘껏 뭉쳐서 대항을 해야 합니다." 그 때 진나라에서는 우리와 화친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를 계속 물어올 때였습니다. 소진은 여섯 나라가 힘을 합하면 진나라는 꼼짝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여섯 나라가 힘을 합했습니다. 진나라가 연(燕)나라를 치려고 들면 초(楚)나라가 배후를 공습합니다. 군대를 몰고 가다가 할 수 없이 퇴각을 합니다. 한(韓)나라를 침공했더니 제(齊)나라가 수도인 함양을 향해 군사를 몰고 온다는 소문에 진나라 왕은 다시 군사를 돌이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이 소진의 친구인 장의는 초나라의 대신이었습니다. 그가 왕궁에서 옥그릇 하나를 가져갔다는 누명을 쓰고 형을 받습니다. 보통 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태형이라는, 거세를 시켜버리는 형을 받습니다. 그가 집에 돌아왔더니 사람들이 장의는 이제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놀려댑니다. 그 때 장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세치의 혀가 잘라지지 않는 한, 나는 유능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원수를 갚기로 작정합니다. 초나라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그는 여섯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저처럼 힘차게 떠오르는 진나라를 상대할 수 없다. 결국은 망한다.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당신만 진나라와 화평하라"고 중심으로 설득을 했습니다. 그 말의 힘에 의해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 진나라와 화친했고 얼마 있다가 진은 천하를 통일하고 진(秦)이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왕은 시황이라는 이름으로 등극을 했습니다. 이것이 진시황(秦始皇)의 이야기이고 그 사이에 두 말 잘하는 소진과 장의가 혁혁한 공로를 부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세웠습니다. 말은 이처럼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언어를 가지고 우리가 믿고 알고 주장하는 바를 선언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 인류에게 문자가 생긴 다음에 글이라는 또 다른 자기 선언의 수단이 생겼습니다. 글로 인상깊게 남은 사건은 1863년 11월 19일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게티스버그(Gettysburg)의 군인들을 위한 국립묘지에서 연설했습니다. 이제까지 지지부진하던 전쟁이 메릴랜드와 펜실베니아 접경지역인 이 게티스버그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전세가 자기들에게 기울어져 승기(勝氣)가 잡혔지만 그 참혹한 전쟁터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위한 장례식을 거행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테드가 질병으로 며칠 앓아 누웠기 때문에 그도 잠을 자지 못해서 몹시 피곤했습니다. 아내는 중요한 식장인데도 불구하고 아이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해서 혼자 나섰습니다. 다른 장관들을 모두 대동하는데 그 중에 국방장관인 스탠튼은 그랜트 장군의 전쟁 결과 소식을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그 분 한 분을 제외해놓고 모든 장관들과 함께 게티스버그에 도착했습니다.
11월 중순이면 대개 미국 날씨가 추워질 때입니다.
그런데 미국 날씨 중에 조금 희한한 경우가 있습니다. Indian Summer라는 것 있습니다. 갑자기 시도 때도 아니게 더워지는 날입니다. 그 때도 갑자기 Indian Summer가 시작되어서 사람들이 겨울옷을 꺼내려다가 조금 얇은 옷을 입었습니다. 제일 앞에 링컨 대통령이 그 키에 걸맞지 않은 말을 타고 행진해 게티스버그에 도달했습니다. 병사의 시신은 모두 묻었지만 아직도 죽은 말들의 시신이 이곳 저곳에서 썩고 있는 그 현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에볼트라는 연설 잘 하는 분이 '그리스 시대의 전사자들을 위한 노래'라는 페리클레스의 시를 미국식으로 고쳐서 거기 누워있는 전사자들을 위해 두 시간 가량의 애도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 한 마디가 끝나고 나면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두 마디가 끝나도 박수를 칩니다.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이 의미 있는 전쟁터에서 그러나 비극의 전쟁터에서 무슨 말을 해야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면서 일주일 내내 원고를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게티스버그로 떠나기 한 시간 전에 메모 몇 자를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워낙 연설 잘하는 이 대통령이 무슨 말할 것인가를 기대했습니다. 어떤 때, 에이브라함 링컨이 연설하고 있으면 그 연설을 받아써야 되는 신문기자들이 연설에 홀려서 연설내용을 아무도 기록하지 않아, 잃어버린 연설이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의적절할 때마다 정확하게 멋진 표현을 하는 이 에이브라함 링컨이 지금 이 전쟁터에서는 무슨 말할 것인가를 사람들은 기대하고 그에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가 등단했는데, 갑자기 음악이 연주되었습니다. 그것은 에이브라함 링컨을 생각하면서 한 작곡자가 작곡한 것을 링컨 몰래 깜짝 놀라게 연주를 준비한 것입니다. 연주 때문에 또 늦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사진사가 링컨 대통령의 멋있는 연설 제스츄어를 잡기 위해서 사진단을 만들어놓았습니다. 드디어 단에 선 링컨이 연설을 시작합니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87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념은 오늘까지 우리에게 왔고 그리고 그 분들의 정의로운 생각 따라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존귀함을 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이 강조 때문에 우리 민족이 갈라지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러누워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은 영원히 기억되고 그들의 희생 위에 이 나라는 번영할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는 영원하리라." 그리고는 3분도 못되어 그냥 내려갔습니다. 사진사가 멋진 폼을 잡으려다가 사진 1컷을 못 찍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밑에 내려와서 내 평생에 가장 잘못한 연설을 했다고 침울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서 아들 옆에 3일 동안 인사불성으로 그냥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기록으로 표현해놓으니까 민주주의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Gettysburg Address"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로 선언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글로도 선언합니다. 만약에 루터가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언어로만 선포했다면 그처럼 거대한 운동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가졌던 그 귀한 진리가 글로 선언되었기 때문에 온 유럽을 뒤집어놓을 수가 있는 파괴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글의 힘은 위대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말로 선언하고 글로 선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은 행동으로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로 모든 것을 멸망시키신 다음 무지개를 직접 만드셔서 "내가 다시는 이 땅 위에 이런 무질서한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가족을 부르실 때는 할례라는 행동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 몸 안에 지울 수 없는 너와 나의 언약이 있다." 그런가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유월절이라는 행동의 선언을 하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은 유월절 날 양을 잡습니다. 그리고는 양의 피를 인방과 설주에 바릅니다. 양고기를 같이 나눠 먹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질문합니다. "아버지 이 날이 어떤 날입니까" 그러면 아버지는 자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날은 옛날 애굽에서 고통받던 그 때, 하나님께서 애굽을 마지막으로 치시던 그 밤, 우리가 이렇게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우리 민족을 구원해주셨다. 하나님의 무서운 죽음의 신이 양의 피가 발라져있는 집은 그냥 지나갔다." 이렇게 'pass over'라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넘어간 위대한 하나님의 절기, 유월절을 그들은 몸 전체로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신앙고백으로 표현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다시 몸 전체의 선언을 하십니다. 떡을 떼시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시면서 "이 떡을 받아 먹으라.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라." 또 주께서 잔을 가지셨습니다. 나누신 다음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 잔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선언하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친 모든 것을 종합해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를 위해 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몸 전체의 선언입니다. 행동의 선언입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임재하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잔을 받으라. 이 떡을 먹으라.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바 내 몸이니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린 바 내 보배로운 피니라. 너희 죄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사라지며 너의 저주는 너와 상관없다. 너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너희에게 생명이 있느니라."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죄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그의 찢기신 바 그 몸, 그리고 그의 흘리신 바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은 것을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이 떡을 받으십시오." 우리는 몸 전체로 선언하신 주님 앞에 몸 전체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신앙고백을 어떤 때는 말로 할 수 있습니다. 신앙고백을 어떤 때는 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신앙고백을 내 몸으로 하는 복된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하 성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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