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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아버지와함께 (누가복음15:11-21)

본문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살아있고 건강하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 아시고 우리 인간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아서 대체로 교회가 열심히 잘 모이고, 열심히 있고 기도 소리와 찬송 소리가 뜨겁고 교회로 오는 길이 열려있고 교회 문이 열려있고 교회로 드나드는 성도들이 많아지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뜨겁게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이어질 때 대체로 그런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다, 또는 살아있다, 건강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국가도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건강한 국가는 전문가에 의해서 진단해야 되고, 전체적으로 평가를 내리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도 객관적으로 간단하게 그 국가의 번영을 짐작해 알 수 있는 것은 비행장에 가 보면 압니다. 외국 손님들이 많이 드나들고 비행기가 열심으로 오르내리고, 내리는 비행기가 줄을 잇고 내리지를 못해서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리며 그 위를 상회하는 비행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그 나라는 발전하는 나라입니다. 또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에 고속도로를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차들이 줄을 지어 있으면 그 나라는 번영하는 나라입니다. 또 항만에 배들이 꽉 차서 컨테이너로 실어 나르는 배들이 대기해 있고 끊임없는 하역작업이 이어지면 그 나라 경제는 일어나고 있다, 잘되고 있다는 그런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에서, 하나는 지상에서 도로에서, 하나는 바다에서 이 삼면이 조화를 이루면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십 년 전에 구소련을 가보니까 비행장에 손님이 없습니다. 비행기 안에도 손님이 1/5도 없습니다. 사람을 도무지 비행기 안에서, 밖에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비행기는 많은데 뜨지를 않습니다. 고속도로를 스물 몇 시간을 모스크바에서 민스크까지 가도 차를 구경 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가도 차가 안보입니다. 레닌그라드에도 가보면 배가 없습니다. '여객선도 없고 화물선도 없고 유조선도 없다' 그러면 그 나라 경제가 어려운 거지요. 모두다 길가에 서서 서성대고 있고 할 일이 없습니다. 낡은 건물들입니다. 가게 앞에는 전부 줄을 서서 빵 한 조각 받기 위해서 수 백 명이 줄을 서 있고 버터 하나 받기 위해서 수 백 명이 줄을 서 있습니다. 중국에도 가보니까 구소련보다는 낫지만 제가 11년 전에 가보니까 역시 거기에도 하루 종일 가도 차를 좀처럼 만날 수가 없고 비행장에 손님이 없습니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도 경제위기를 만나서 한 이년 동안 도로에서 많이 경험했습니다. 일년 전, 이년 전에 도로가 그냥 그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화물차가 안 다닙니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고속도로에 화물차가 줄을 잇게 해 주십시오 도로가 지금 텅텅 비었습니다 승용차가 이렇게 다녀서는 안되겠습니다 화물차가 짐을 싣고 열심으로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차 타고 다니면서 혹시 차가 많다는 이유로 답답해하거나 신경질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로에는 차가 많아야 됩니다. 도로에 잡초가 우거져서 되겠습니까 도로에 짐승들이 돌아다녀야 되겠습니까 차가 많이 움직여야 됩니다. 복잡하면 도로는 더 닦으면 되는 것입니다. 열심으로 다녀야 됩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열심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살아있는 교회가 되며, 살아있는 경제, 살아있는 국가, 개인이나 모두가 다 건강하고 살아 있을수록 열심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부흥과 번영이 얼마나 귀합니까 천년을 살아도 일년처럼 감격스럽게 감사하며 살아야 되고 일년 흉년도 비극인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경제위기가 이년 동안 눈 깜작할 사이 지난 것 같지만 그 상흔과 상처는 형언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도 끊임없이 부흥하고 발전해야지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영적인 침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경제처럼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회복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가 잘 믿는 것 축복으로 알고 열심 있는 것 정상으로 알고, 천년 만년 항상 명성교회는 하나님 앞에 이런 성장과 부흥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늘 기도를 그렇게 드립니다. '하나님, 저의 후임자도 좀 부족할지라도 열심 있는 종이 와서 이 교회를 계속 부흥시켜 나가도록' 교회는 살아있어야 됩니다. 거지는 우리가 경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지가 무엇인가 우리가 알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을 믿어도 하루 믿은 것같이 믿어야 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언제나 감격스럽게 우리가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고속도로가 붐비듯이 교회는 열심으로 드나드는 성도들로 가득 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국 제품 쓰는 것을 아주 비애국적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외국 제품도 써야 됩니다. 외국도 가보아야 됩니다. 우리 것도 팔고 또 좋은 것도 사다가 우리가 좋은 것을 사용해서 우리 경제가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서 외국제품보다 더 좋은 걸 만들도록 해야 합니다. 외국 것을 쓰면 아주 나쁜 사람으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청년들이 모여서 그랬다 그러지요. '나는 애국자야 절대로 외국 것은 안 쓴다'고 그러니 또한 친구가 말했어요. '나는 더 진짜 애국자야 외국은 절대로 안 간다'고 또한 친구가 말했어요. '나는 더 애국자야 영어는 절대로 안 한다니까' 아닙니다. 영어를 해야됩니다. 인류역사상 한 언어로 전세계의 모든 회의와 모든 국경을 한 언어로만 패스시키는 시대가 없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지금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를 해야 되는 거예요. 영어를 하는 것은 더 좋은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을 가 보아야 됩니다. 북한보세요. 외국과의 왕래도 없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일본 경우에도 전에 대동아 전쟁을 일으켰던 내각들은 미국을 한 사람도 안가 보았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전쟁을 일으킨 거예요. 가 보아야 됩니다.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아야 됩니다. 그리고 본받아야 됩니다. 더 훌륭한 문화를, 더 훌륭한 삶을, 더 훌륭한 지식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더 좋은 제품도 받아들여야 됩니다. 미국 보십시오. 미국은 십 년 전부터 일본 자동차를 물밀듯이 수입을 해 가지고 미국 땅에 어떤 일본 회사도 다 들어와서 일년에 몇 백만 대씩 자동차를 팔게 하고 그 대신 미국 자동차는 경쟁에 져 가지고 다 문닫았습니다.
세계의 자동차 60%를 만들어 내던 미국이 다 손들어 버렸어요. 몇 만 명 직원들이 다 실직을 당하고 해고 당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국 자동차는 승용차가 버스 만합니다. 그래서 낭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차는 아주 실속 있게 경제적이고 실용적이고 깨끗하고 디자인도 심플하게 만들어서 미국을 다 눌렀어요. 미국은 결국 처음에는 졌지만 일본 자동차와 싸우기 위해서 다시 기술을 개발하고 다시 투자하고 다시 거기서 일어나서 지금은 일본 자동차를 다 누르고 다시 세계 자동차 대국으로 일어날수가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경쟁하는 겁니다. 다 경쟁이에요. 스포츠도 경쟁해야 발전하는 거예요. 지식도 경쟁해야 발전하는 거예요. 정치도 경쟁하는 거예요. 공산주의는 경쟁이 없어요. 정치도 혼자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어느 것도 경쟁을 안 하면 그 나라는 몰락하는 거예요. 천국도 교회도 경쟁하는 거예요. 마태복음 11장12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가 얻는다" 그랬어요. 열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고 그래서 교회도 열심히 모이는 곳에 가서 더 열심으로 모이려 하고 더 많이 모이는 데 가서 배우고 이렇게 도전을 받고 은혜를 받고 열심을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혼자 사는 걸 좋아하고 경쟁을 안 하려면 산으로 가십시오. 토끼하고 자든지 호랑이와 살든지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 나라에 크게 쓰임을 받으려면 우리는 언제나 경쟁하고 잘 믿는 사람을 만나서 더 잘 믿으려고 하고, 말씀을 듣고 더 큰 은혜 받으려고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새 시대 새 천년에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잘 믿어야 됩니다. 영적인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잘 믿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좋아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는 삶을 말합니다. 오늘 탕자가 아버지와 함께 살았을 때 천년을 하루같이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았을 때는 문제 거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서부터 그에게는 고통이 오고 환난이 오고 가난이 오고 부끄러움이 오고 멸시 천대가 따라왔습니다.
아들로서의 영광은 다 떠나가고 거지처럼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며 헤매이는, 온갖 축복을 받으려고 하지만 하나도 따라오는 것이 없는 허무하고 헛된 삶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은 풍요로운 삶, 넘치는 삶, 충만한 삶이 됩니다. 그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 사는 삶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의 삶인 것입니다. 그를 떠나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시험이고, 유혹입니다. 결혼도 사랑도 행복도 그 안에서, 지식도 국가의 번영과 발전도 그 안에서, 도덕도 행복도 그 안에서, 좋은 생각 선한 마음 위대한 사상도 그 안에서, 위대한 예술도 음악도 다 그 안에서 입니다. 그를 벗어난 예술, 그를 벗어난 음악은 우리 인간에게 더 큰 허무와 낭패와 불행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어도 얼마든지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긍정적인,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격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 모두 믿음 안에서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떠난 모든 것을 예찬하지 않습니다. 예수 떠나서도 우리보다 열 배 더 행복의 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사실은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인간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행복과 축복은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축복은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 위로부터 하나님에게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에밀 구에는 '나는 날마다 새로워지며 나를 만들어 가는 법을 배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입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결국 자살해 죽었습니다. 적극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을 우리는 신앙과 혼동하면 안됩니다. 애국과 구제와 봉사를 신앙과 혼동해서 안됩니다. 예수 안 믿어도 우리보다 더 애국하고 예수 안 믿어도 우리보다 이웃 사랑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것을 아름답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과 함께 해야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자녀도, 주 안에서 사업도 주 안에서 번영도…,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한대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주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동기는 교회 안에서, 말씀 안에서,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서 이 세상을 좋게 보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 천국이 있는 것을 모르고 세상을 천국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은 답답한 삶이고, 힘든 삶이고, 어려운 삶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내 마음대로 살고 내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아담과 이브처럼 높아지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이것이 시험이에요. 유혹이에요. 세상을 높이 보는 것 세상을 크게 보는 것 다 내 마음대로 될 것만 같이 보는 것 이것이 유혹이에요.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고 하지 않았습니까 옛사람, 세상을 좋게 보는 눈, 그런 마음들을 버리는 거예요. 그래야 영적인 성장이 오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했어요. 말씀을 들어도 세상의 정욕과 욕심이 가시나무처럼 덮으면 믿음의 싹이 자랄 수 없다고 마태복음 13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이 나를 누르고 내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힘있게 자라나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세상을 그늘로 만들고 하나님의 축복이 백향목처럼 힘있게 자라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옛날에는 성을 정복할 때 성문을 부수기도 하고 성을 타고 넘기도 하고 화살을 쏘기도 하고 불화살을 쏘기도 하고 군대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진격해 들어가는 방법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 성을 도무지 점령할 수 없어서 성과 같은 높이로 쌓아 올라가서 건너 뛰어가는 이러한 방법들도 있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마사다' 라고 하는 곳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다 점령했지만 예루살렘을 점령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습니까 그런데 AD70년에 예루살렘을 무너뜨립니다. 예루살렘이 요새이지만 예루살렘이 무너진 다음에 거기 있던 교인들은 마사다라고 하는 곳으로 도망을 갑니다. 마사다는 땅에서부터 한 400M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사방이 완전히 항아리같이 되어 있으며, 동서남북이 절벽으로 되어있는 완벽한 요새입니다. 설령 그런 곳이 있어도 물이 없으면 안 되는데 여기는 물까지 있는 거예요. 그 유대 나라에 땅에도 아무리 파도 물이 안나오는 곳인데 글쎄 마사다에 물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유대인들 1500명이 거기로 도망쳐 숨습니다. 무기도 없어요. 그러나 로마가 이걸 못 점령하는 거예요. 세계를 점령한 이 로마가 마사다를 이길 수 없는 거예요. 기적적으로 백 명이 올라와도 그 위에서 돌 하나만 굴러도 다 떨어져 죽는 거예요. 아무도 올라갈 수가 없어요. 삼 년을 버텼어요. 결국에는 옆에다 같은 성을 쌓는 거예요. 계속 흙을 가져다가 쌓아서 결국에는 마사다를 점령하는 거예요. 놀라운 일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점령해서 내 믿음의 성을 높이 쌓아 올려야 합니다. 내 기도의 성을 높이 쌓아 올려야 합니다. 이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세상보다 더 큰 영적 성을 쌓아야 합니다.
유럽을 가보십시요. 그들은 예수를 믿고 얼마나 영적인 성을 쌓아 올려서 교회들을 얼마나 높이 올렸습니까 여러분 파리에 가면 관광지가 어디입니까 제일 좋은 관광지가 교회들입니다. 몽마르뜨 거기가 다 교회예요. 영국에 가보십시오. 독일에 가보십시요. 최고로 좋은 것들은 다 천 년 동안 영적인 성을 높이 쌓았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터를 자자손손 높이 쌓아 올려서 저들이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고 하나님 앞에 복을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최고입니다. 하나님 잘 믿는 것이 최고입니다. 어느 것보다도 믿음 이상은 없다는 신앙을 높이 쌓아 올렸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신앙이 높습니까, 여러분이 아직까지 세상과 비교할 때 여러분의 믿음이 어느 정도 높아져 있습니까 세상에 바람 한번만 불어도 흔들리고 세상의 무슨 제품 하나만 나와도 깜짝깜짝 놀라고 감격해 하던 것을, 이제는 창세기를 읽어보면서 감격해 하십시요. 출애굽기를 읽어보면서 감격해 하십시요. 찬송 부르며 좀 눈물 흘려 감격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텔레비젼 보면서 가수들이 나오면 아이들이 오빠하며 울고 하는데 그냥 가수들이 나와서 약간 흐응 이러면 울고 어쩔줄 몰라 그래요. 뭐가 놀랍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대하게 보면서 새천년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 신앙 하나를 높여야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 삶을 최고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상의 것은 두려워할 것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고 바라볼 것도 없습니다. 솔로몬이 말한 대로 헛되고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들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우리가 이 세상을 따라가고 흠모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에게는 어떤 축복이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다스리는 삶이에요. 정복자예요.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축복이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입니다. 세상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아니라, 놀라는 일은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새 시대를 세상을 정복하는 위대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은 헛된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얻으려 하다가 삼손은 비참하게 죽었고 세상의 여인을 사랑하다가 그 자신이 죽고 말았습니다. 롯은 세상의 물질을 따라가다가 그의 가족들까지 다 잃어버렸어요. 삼손은 자기만 죽었지요. 롯은 온 집안이 다 망했어요. 어디에서 세상에서. 세상에서 잘 살고 행복하게 세상에서 멋대로 살려고 하다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나와도 세상에 있는 정욕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감사해야지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하면 신앙생활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옛날 어떤 고을에 너무 인자하고 훌륭한 원님이 있어서 그 지역에 살아가는 농민이 농사를 지었는데 어떻게 농사가 잘 되는지 무 농사를 지었는데 무가 사람만 해요. 그래서 두 내외가 "여보 우리 원님 덕택에 이렇게 농사가 잘 되었는데 이 무는 원님에게 갖다 드립시다" 하고 둘이서 이고 지고해서 원님에게 가져다 바쳤어요. "원님 덕택에 농사가 잘 되었사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겠습니까 무 하나지만 너무 이렇게 크고 잘생겨서 원님에게 가져왔습니다." 원님이 들어보니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여봐라 이방, 이렇게 좋은 백성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고! 혹시 방에 뭐 들어온 선물 없는가예 지난번에 어떤 분이 가지고온 황소 한 마리가 있습니다그래 그러면 그 황소를 저 무를 가져온 분에게 주도록 해라" 그래서 그 분이 황소를 가지고 집으로 가서 잘 살았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앞집에 있던 분이 '야 참 원님한테 저렇게 무를 가져가서 황소를 받아 왔구나' 이 사람이 머리를 썼어요. '그럼 나는 황소를 가져가야지 우리 집에 있는 황소 한 마리를 가져다주면 아마 고을 전체를 나한테 다 줄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황소 한 마리를 가져가서 "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원님 덕택에 황소가 잘 컸습니다 그래서 원님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랬더니 원님이 또 좋아서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이 어디있나' "이방 그 안에 들어온 거 뭐 혹시 없는가예 있사옵니다 지난 주일에 무 갖다 놓은 거 하나 있습니다그러면 저 사람에게 무를 주도록 하여라" 했답니다. 우리 생각에 하나님 믿어서 잘 살아야 된다 아니에요. 잘 살고 못사는데 너무 연연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잘 살아 내가 가져서 뭐 하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영원히 영원히 사는 삶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영원한 생명, 영원한 구원, 영원한 하늘과 땅의 복을 받았는데, 성경에 출애굽기에서 천대에 은혜를 주신다고 했는데 이제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에게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건 다 몰라도 믿음만은
첫째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경제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3년만에 경제위기는 거의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보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외화가 전 세계에 일곱 째로 많다고 합니다. 보통이 아니지요. 잠깐동안 엄청난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정치적인 경제위기도 소망이 있습니다. 지식의 경제위기, 그 국민이 배우지 못한 것도 언젠가는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경제위기는 도덕의 경제위기입니다. 학교에 다녀보십시요. 윤리 도덕 면으로 인간 됨에 F 맞은 사람은 안됩니다. 영적인 F를 맞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일 이년에, 십 년 이십 년에 회복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어렵습니까 그런 것은 잘 만 하면 한 순간에 바뀔 수가 있어요. 인간 안 된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안 되는 거예요. 천지가 열 번 바뀌어도 인간 안된 사람은 못쓰는 거예요. 나는 우리 나라가 경제위기가 올 것도 알았지만 지금 이런 식으로,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진 이런 한심한 시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회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살면서 이 시대를 보람있게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새 시대가 왔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 1장 17절에 온갖 축복이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옵니다. 속지 말라 그랬어요. 세상에 속지 말라, 좋은 것은 아버지께로 하늘로 위로부터 그리스도 안에, 교회 안에, 말씀 안에, 은혜 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세 가지 시인이 필요합니다. 세 가지 고백이 필요합니다. 세 가지를 돌이켜야 합니다. 첫째, 마음을 돌이켜야 하고 둘째, 발걸음을 돌이키고 세번째, 내 생활을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떠난것도 내가 떠났듯이 돌아오는 것도 내가 돌아와야 해요. 신앙은 언제나 내가 하는 거예요. 세상을 사랑한 것도 나인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내가 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결심해야 되는 거예요. 예수 안 믿는 것도 내가 안 믿듯이 믿는 것도 내가 믿는다고 내가 고백해야 됩니다. 내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고 간 것도 내 발걸음이라면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발걸음도 내가 옮겨야 되는 거예요. 이건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 이 아들은 지난날의 잘못된 것을 깨닫고 스스로가 돌이키는 거예요.
첫째는 마음을 돌이키는 거예요. 그는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속은 것을 고백했어요. 시인했어요. 그렇습니다. 인정해야 됩니다. 스스로 고백해야 됩니다. 세상은 헛되더라, 믿을 것이 없더라, 친구도 믿어서는 안되겠더라,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가 없더라. 속은 것을 언제나 입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17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눅 15장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세상에서 나는 이제 길이 없다 죽게 되었다 나는 이제 끝이다. 이런 말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내가 거지가 되었다 이런 말을 해야 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세상을 자꾸 예찬하는 분들이 있어요. 좋게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건 위험한 생각들입니다. 솔로몬처럼 헛되다 라고 말해야돼요. 삭개오처럼 지난날을 시인해야 됩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잘못했습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없어요. 베드로도 누가복음 5장에서 아버지를 떠나서는 고기 한 마리도 어제 밤에 잡을 수 없었다고 안되더라고,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두번째는 회개했어요. 자기 자신을 시인하는 거예요.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하나님 앞에 아버지께로 돌아왔어요. 아버지 앞에 와서 내 모든 잘못된 것을 고백했어요. 침묵이 금이 아닙니다. 신앙은 고백이 금이에요. 내가 나를 망쳤습니다 아버지 마음을 근심되게 했습니다. 변명하면 안됩니다. 변명하면 할수록, 요령부리면 부릴수록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주의 영을 근심되게 했습니다.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큰 은혜가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세번째는 품군이라고 자기가 결심을 했어요. 나는 이제 아버지 집에서 품군으로 살겠다는 거예요. 이것은 굉장한 선언입니다. 굉장한 선포입니다. 이런 결심하는 사람은 길이 많습니다. 좋은 자세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말하면 어디 가든지 사랑 받고 어디 가든지 성공하고 어디 가든지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허물은 다 덮입니다. 일자리가 많습니다. 용기의 사람, 능력의 사람은 나는 이제 품군으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마음 하나만 낮추면 모든 삶은 형통해 질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 하면서 높은 마음 갖지마십시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저는 탁구를 치는데 구경하는 분들이 늘 그래요. 나를 칭찬하지를 않고 그 폼 가지고 받아 내는 게 기적 같대요. 어떻게 공이 넘어가는지 이해가 안된대요. 나는 괜찮게 치는 것 같은데 자세가 탁구 자세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자세가 좌우합니다. 골프 자세만 잡는데에도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친다고 골프 잘 치는게 아니래요.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래요. 자세만 잘 잡으면 골프는 저절로 된 대요. 여러분, 가정에서도 행복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다 만들어 놓았지만 자세가 비딱한 가정은 행복이 비딱하게 가는 거예요. 가정이 건강한 가정 될 수 없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예요. 어느 자리에 가든지 나는 품군이다 라는 마음으로 살면 행복합니다. 잘됩니다. 성공합니다. 할 일 많습니다. 제가 어제 국민일보 특집을 처음으로 싣는데 저와 저희 교회를 실었어요. 한 면을 다른 것 하나 안 싣고 저와 저희 교회에 대해서 실었어요. 나는 너무 죄송해서 내가 거기 실릴만한 자격도 없는데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는데 목사님 이건 기자의 생각이 아니고 전체 언론계 신문사에서 회의를 했는데 저를 꼭 실어야 되겠다는 것이예요. 우리 나라 어른들도 많은데 곤란하다고 해도 꼭 실어야 겠다는 것이예요. 교회를 다니는 기자들이 아마 저를 좋게 보았나봐요. 기자 눈에 드는 것이 쉬운게 아닙니다. 그러면 하여튼 해보자고 그래서 했는데 좀 지나친 표현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한가지는 저는 어디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는 품군이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셔서 나와 함께 하셔서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생각 가지고 하니까 늘 감사하고 늘 기쁘고 그래서 무엇을 먹어도 저는 맛있고 어떤 옷을 입어도 내게는 너무 과한 거예요. 감사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옷을 입으면 벗을 생각을 안 합니다. 바꿀 생각을 안 합니다. 감사하니까. 여러분이 왜 입을 옷이 없습니까 여러분이 눈이 높아서 그래요. 전부 다 입을 옷들이에요.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옷 사려고 헤매는 것은 눈이 높아 그런 거예요. 어느 식당도 다 맛있는 식당이에요. 여러분 입 때문에 문제지요. 음식이 문제가 아니에요. 오늘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왜 우리가 만족이 없어요 왜 행복이 없어요 왜 여러분이 능력 있게 못사는 거예요 왜 감사하며 못사는 거예요 여러분이 높아서 그런 거예요. 그 자세 안 바꾸면 어느 직장 가도 쓰임 받지 못하고 누구와 결혼해도 어느 아파트에 가서 살아도 만족이 없어요. 주님 나는 품군입니다. 이것이 교회생활에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태풍처럼 몰고 오는 비결이 바로 이런 자세에 있는 거예요. 새 천년, 하나님의 성전에서 새 천년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든 성도 이 민족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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