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자유함이있는곳 (고후3:12-18)
본문
봅 바틀렛이라고 하는 탐험가가 경험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외국을 여행하는 중에 아주 희귀한 새 몇 마리를 얻었습니다. 이것을 새장에 가두어 가지고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이릅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중에 이 그 중에 한 마리가 유난히도 시끄럽게 굴면서 새장에 갇혀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새장을 발톱으로 할퀴고 머리를 찧는 등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새장에서 계속 푸덕푸덕 푸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몸부림을 치고 열광을 하니까 결국은 새장 문이 열렸습니다. 새는 망망한 대해 한 가운데로 도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자유를 얻었습니다. 새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창공을 높이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새장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몇 시간 후에 이 봅 바틀렛씨는 자기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렇게 날아올랐던 새들이 다시 배로 돌아와서 날개의 힘이 지쳐 가지고 그 갑판 위에 그냥 툭 떨어져서 쓰러지는 거예요. 저들은 자유를 얻었다고 날아올랐는데 망망대해에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물론 먹을 것도 없습니다. 죽기 살기로 이 배를 향해서 다시 돌아온 겁니다. 온 힘을 다해서 돌아와서, 간신히 돌아와서 갑판에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주어 담아서 다시 새장에 집어넣었습니다. 더 이상 이 새장은 그들에게 감옥이 아니었습니다. 새장은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끝없는 바다를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 새장에 있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고 편안하게 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이 새장 안에 있었습니다. 새장은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선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 자유가 무엇입니까 알면 자유요 모르면 필연입니다. 알면 은총이요 모르면 숙명입니다. 내가 처한 처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에 이것이 무슨 뜻이 있는지를 알면 그 어느 처지에 있든지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행복도 있습니다. 푸른 창공을 날아간다고 해서 자유인인 건 아닙니다. 참 자유의 의미,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토마스 H. 그룸(Thomas H. Groome)이라고 하는 미국의 교육학자의 저서 가운데 Christian Religious Education 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그 책 안에서 그는 세 가지 자유를 말합니다. 자유의 유형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유가 뭐냐하면 합리적 사유의 자유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자유. 여러분 이 자유를 물리적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은 육체적으로, 그런 건 아닙니다. 가장 중심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자유는 생각의 자유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생각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내 과거, 계속 나를 어지럽히고 뒤따라 다닙니다. 내 악몽, 억울했던 한이 있고 또 지금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그 생각은 그 어디에 있든지 자유롭지 못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많은 근심과 걱정이 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걱정처럼 불필요한 게 없습니다. 걱정하고 나면 잠도 못 자고, 몸도 해롭고, 결국엔 감성이 약해져서 좀 짜증도 나고, 백해무익한 것이 걱정입니다. 자 그래도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건 생각의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가끔 교양서적을 읽습니다. 책에 보면서 요새는 플러스발상 이라는 얘기,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모든 일은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망조가 든다 이거예요. 긍정적으로, 창조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조합니다. 아, 말을 하라면 잘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지 못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좋을 줄 누가 모르나. 안 되는 걸 어떡하노. 잊어버려야 될 것을 잊지 못하고 내 생각이 자유롭지를 못합니다. 생각 자체가 지금 무엇인가 꽉 붙들려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결국은 생각이 문제예요. 자, 여러분 은총을 알면 자유롭습니다.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으면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곳에 있는 줄 알면 나는 자유롭습니다 만은 왜 그런지 나는 어디론가 자꾸 이렇게 빠져 들어가고 있고 끌려가고 있습니다. 생각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성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각의 근원이 되는 기능, 이성이 자유롭지 못해요. 병들었어요. 합리적 사유를 못합니다. 진리 안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긍정하지 못하는 병든 이성이에요. 그래서 생각 자체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여러분 때로 우리는 가책에 매이기도 하고 유감스러운 일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는 아니 될 것인데' 하는 많은 후회가 있습니다. 여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신문을 보셨겠습니다 만은 바로 지난 10일에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4500명이나 되는 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는 르윈스키 스캔들로 말미암아 하원의 탄핵을 받은 지 일년 반만에 된 일입니다. 탄핵을 받고 하원에서 한시간 동안 연설을 하는 그 장면을, 마침 제가 미국에 갔던 때에요, 텔레비로 유심히 지켜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분이라고 그렇게 느꼈었습니다. 이제 일년 반만에 4500명의 목사님들 앞에서 진실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용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전 세계 앞에서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지해주신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원이 나를 탄핵했습니다. 탄핵해서 처음에는 괴로웠습니다 만은 오히려 그 탄핵으로 인해서 나는 자유롭게 됐고 이래서 저는 그분들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는 온 몸을 휩싸는 감사의 느낌을 갖습니다. 내가 철저히 무너지지 않았다면 100% 진지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바로 그 때에 내가 해야할 일을 하는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주 투명하게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어요. 그 때 가서 비로소 참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양심, 여러분의 이성, 여러분의 생각은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진실로 정직하고,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이 창공을 날으는 거 같은 그러한 상태가 될 때, 그러한 영적인 상태에서만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선택의 자유를 말합니다. 선택과 의지의 자유. 우리가 어떤 때에 우리는 자유 의지로 선택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깨끗한 양심을 따라, 신앙을 따라, 하나님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선택하느냐 아니면 이권을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고 뭐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잡스러운 생각이 우리 마음을 붙들고 거기서 결정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들의 결혼이 있지요. 그 혼사 문제가 있지요. 순수하게 신앙과 그 인격을 보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간간이 보면 이 분과 사돈 맺으면 장사가 잘 되고, 이 분과 어떻게 관계가 되면은 그 다음에 출세에 도움이 되고. 이 지저분한 생각들 때문에 판단이 흐려집니다. 선택이 빗나가요. 여러분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여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어요. 또한 가지는 행동의지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무엇엔가 또 끌리거든요. 이게 자유롭지를 못해요.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많은 책임, 또 나의 나약함, 그래 의롭지 못한 도덕성, 이런 것들 때문에 행동이 깨끗하질 못해요. 과감하지 못해요. 담대하지 못해요. 행동의지의 자유가 없습니다. 이걸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영국에 '브리테니카'라고 하는 요트가 있는데 이것은 영국 여왕이 애용하는 요트입니다. 이런 화려한 배가 있는데 이 배를 몰고 나갑니다. 선장과 거기에 있는 선원들까지도 의기양양합니다. '이건 여왕을 태운 배다. 이 배는 가장 존경을 받는, 또 막을 수 없는, 높은, 지체 높은 배다' 그리 생각을 하고 배를 몰고 나갑니다. 망망대해로 나가기 시작했는데 안개가 끼기 시작을 합니다. 캄캄해집니다. 아무도 안 보이는데 저 앞에 불빛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선장이 점점 가까워 오는 불빛을 보면서 호령을 했습니다. "비켜라. 이건 브리테니카호다. 여왕님이 탄 배다. 건방지게 어딜 가까이 오느냐. 비켜!" 그리고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점점 가까이 왔어요. 부딪칠 지경이 됐습니다. 그 불빛 속에서 이쪽을 향해 소리지르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나는 등대다" 그러더랍니다. 누가 비켜가야 되겠습니까. 내가 큰소리 친다고 이게 되는 겁니까 우리의 자유, 이것은 제한되어야 합니다. 내 잘못된 이성, 잘못된 욕심, 잘못된 판단, 여기에다가 무제한 자유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인간은 자유하지 못합니다. 물질, 환경,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입니다. 영혼이 자유하지 못하다 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수건이 쓰여져 있다. 뭔가 쓰였어요. 그래 자유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또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도 없고, 이성과 감성의지가 다 병들었기 때문에 결코 자유하지 못한다.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어진다 그랬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 영이 자유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는 곧 영이시다는 말씀이 있는데 '호큐리오스 토프뉴마 에스팀' 이건 유명한 요절입니다. 성령론에 있어서 이 요절은 대단히 중요한 요절로 늘 여기에 증거가 되고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는 영이시다' 라고 할 때 신학자들은 한 단어를 추가해서 해석합니다. 주는 지금 영이시다. 주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육체적 시간 공간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이십니다. 그런고로 무한한 자유, 자유를 누리고 계십니다. 그 영적 존재에 대한 속성을 설명해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 이 자유문제는 정신 문제요, 가치의 문제요, 세계관 문제요, 영적 문제입니다. 이건 몸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는 815 해방 이후로 50년 동안 자유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815 해방되는 그 날 날씨가 좋았습니다. 몹시 더웠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박치순 목사님께서 저희 집에 찾아 오셨습니다. 제 할아버지 연세 높으신, 교회의 어른이신 장로님을 찾아 오셔서 "우리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하고 둘이 부둥켜안고 그렇게 우는 것을 제가 어렸을 때 보았습니다.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해방을 맞았다. 자유를 얻었다고 그럽니다. 그래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나. 그랬습니다. 한달 동안 아무도 일 한 사람 없습니다. 마침 그때 공출해 가지고 쌓아놓은 곡식이 많이 있었어요. 소도 있었어요. 군인들에게 준다고 소를 다 공출해 놓은 게 있었는데 이거를 그냥 잡고 해서요 한달 내내 잔치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사실 시골에서 어쩌다가 소고기 못 먹습니다. 일년에 한 번 구경할까 말까 했는데 좌우간 제 기억으로 코에서 누린내가 나게 먹었습니다. 이대로 영원히 되는 줄 알았더니, 이대로 자유롭게 사는 줄 알았는데 왠걸요. 계속 문제에 부딪히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도대체 자유가 어디에 있는 겁니까 무엇이 자유였다는 얘기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해방을 맞은 겁니까 여러분 깊이 생각할 문제올시다. 자유에 대해서 이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쯤은 알만합니다. 아직도 그 뜻을 몰라서 스스로도 불행하고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방종은 자유가 아닙니다. 탕자가 집을 나갔습니다. 집을 나가 사는 모든 생활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건 무서운 속박입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절대로 자유인이 아닙니다.
32절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오직 진리가 진리를 떠날 때 거기에 자유 없습니다. 36절에 보면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아들이 자유케하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해 주실 때,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될 때 성령은 계속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하십니다. 로마서 8장에서. 그런고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그 사랑을 확증 받을 때 거기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오로지 거기에만. 유명한 에밀 부르너(Emil Brunner)는 "Justice and Freedom in Society" 라고 하는 책에서 "인간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 자유는 하나님께 얽매일 때 비로소 자유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자유의 역설을 말합니다. Paradox, 역설을 말합니다. 여러분, 사랑의 노예가 될 때 자유롭고, 진리의 노예가 될 때 자유롭고, 여러분 은총에, 하나님의 은총에 사로잡힐 때 거기에 자유가 있는 겁니다. 이건 정치도, 물질도, 지위도, 건강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배웁니다. 자유는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사랑이요, 용서요, 희생이요, 겸손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고 그 영이 있는 곳에 오로지 자유함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참 자유를 알고, 참 자유를 지키고, 그 자유 안에서 참으로 주의 은혜를 감사할 때 생명력이 넘치고, 소망이 넘치고,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올시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 기도 자비하신 주여,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직도 회개하지 아니한 죄가 있어서 우리는 자유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참 자유의 뜻을 모르기에 그 자유를 지켜가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의 영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로 자유롭게 하시고 온전한 자유를 누릴뿐더러 많은 속박에서 시달리는 우리의 귀한 주의 백성들을 자유케 할 수 있는 주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영에 온전히 사로잡히고 충만함을 입어서 온전한 자유인으로서의 생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첫째 자유가 뭐냐하면 합리적 사유의 자유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자유. 여러분 이 자유를 물리적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은 육체적으로, 그런 건 아닙니다. 가장 중심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자유는 생각의 자유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생각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내 과거, 계속 나를 어지럽히고 뒤따라 다닙니다. 내 악몽, 억울했던 한이 있고 또 지금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그 생각은 그 어디에 있든지 자유롭지 못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많은 근심과 걱정이 매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걱정처럼 불필요한 게 없습니다. 걱정하고 나면 잠도 못 자고, 몸도 해롭고, 결국엔 감성이 약해져서 좀 짜증도 나고, 백해무익한 것이 걱정입니다. 자 그래도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건 생각의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가끔 교양서적을 읽습니다. 책에 보면서 요새는 플러스발상 이라는 얘기,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모든 일은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망조가 든다 이거예요. 긍정적으로, 창조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조합니다. 아, 말을 하라면 잘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지 못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좋을 줄 누가 모르나. 안 되는 걸 어떡하노. 잊어버려야 될 것을 잊지 못하고 내 생각이 자유롭지를 못합니다. 생각 자체가 지금 무엇인가 꽉 붙들려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결국은 생각이 문제예요. 자, 여러분 은총을 알면 자유롭습니다.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으면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곳에 있는 줄 알면 나는 자유롭습니다 만은 왜 그런지 나는 어디론가 자꾸 이렇게 빠져 들어가고 있고 끌려가고 있습니다. 생각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성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각의 근원이 되는 기능, 이성이 자유롭지 못해요. 병들었어요. 합리적 사유를 못합니다. 진리 안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긍정하지 못하는 병든 이성이에요. 그래서 생각 자체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여러분 때로 우리는 가책에 매이기도 하고 유감스러운 일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는 아니 될 것인데' 하는 많은 후회가 있습니다. 여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신문을 보셨겠습니다 만은 바로 지난 10일에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4500명이나 되는 많은 목사님들 앞에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는 르윈스키 스캔들로 말미암아 하원의 탄핵을 받은 지 일년 반만에 된 일입니다. 탄핵을 받고 하원에서 한시간 동안 연설을 하는 그 장면을, 마침 제가 미국에 갔던 때에요, 텔레비로 유심히 지켜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분이라고 그렇게 느꼈었습니다. 이제 일년 반만에 4500명의 목사님들 앞에서 진실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용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전 세계 앞에서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지해주신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원이 나를 탄핵했습니다. 탄핵해서 처음에는 괴로웠습니다 만은 오히려 그 탄핵으로 인해서 나는 자유롭게 됐고 이래서 저는 그분들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는 온 몸을 휩싸는 감사의 느낌을 갖습니다. 내가 철저히 무너지지 않았다면 100% 진지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바로 그 때에 내가 해야할 일을 하는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주 투명하게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어요. 그 때 가서 비로소 참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양심, 여러분의 이성, 여러분의 생각은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진실로 정직하고,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이 창공을 날으는 거 같은 그러한 상태가 될 때, 그러한 영적인 상태에서만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선택의 자유를 말합니다. 선택과 의지의 자유. 우리가 어떤 때에 우리는 자유 의지로 선택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깨끗한 양심을 따라, 신앙을 따라, 하나님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선택하느냐 아니면 이권을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고 뭐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잡스러운 생각이 우리 마음을 붙들고 거기서 결정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들의 결혼이 있지요. 그 혼사 문제가 있지요. 순수하게 신앙과 그 인격을 보고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간간이 보면 이 분과 사돈 맺으면 장사가 잘 되고, 이 분과 어떻게 관계가 되면은 그 다음에 출세에 도움이 되고. 이 지저분한 생각들 때문에 판단이 흐려집니다. 선택이 빗나가요. 여러분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여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어요. 또한 가지는 행동의지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무엇엔가 또 끌리거든요. 이게 자유롭지를 못해요. 물질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많은 책임, 또 나의 나약함, 그래 의롭지 못한 도덕성, 이런 것들 때문에 행동이 깨끗하질 못해요. 과감하지 못해요. 담대하지 못해요. 행동의지의 자유가 없습니다. 이걸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영국에 '브리테니카'라고 하는 요트가 있는데 이것은 영국 여왕이 애용하는 요트입니다. 이런 화려한 배가 있는데 이 배를 몰고 나갑니다. 선장과 거기에 있는 선원들까지도 의기양양합니다. '이건 여왕을 태운 배다. 이 배는 가장 존경을 받는, 또 막을 수 없는, 높은, 지체 높은 배다' 그리 생각을 하고 배를 몰고 나갑니다. 망망대해로 나가기 시작했는데 안개가 끼기 시작을 합니다. 캄캄해집니다. 아무도 안 보이는데 저 앞에 불빛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선장이 점점 가까워 오는 불빛을 보면서 호령을 했습니다. "비켜라. 이건 브리테니카호다. 여왕님이 탄 배다. 건방지게 어딜 가까이 오느냐. 비켜!" 그리고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점점 가까이 왔어요. 부딪칠 지경이 됐습니다. 그 불빛 속에서 이쪽을 향해 소리지르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나는 등대다" 그러더랍니다. 누가 비켜가야 되겠습니까. 내가 큰소리 친다고 이게 되는 겁니까 우리의 자유, 이것은 제한되어야 합니다. 내 잘못된 이성, 잘못된 욕심, 잘못된 판단, 여기에다가 무제한 자유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인간은 자유하지 못합니다. 물질, 환경,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입니다. 영혼이 자유하지 못하다 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수건이 쓰여져 있다. 뭔가 쓰였어요. 그래 자유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또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도 없고, 이성과 감성의지가 다 병들었기 때문에 결코 자유하지 못한다.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이 벗어진다 그랬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 영이 자유해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는 곧 영이시다는 말씀이 있는데 '호큐리오스 토프뉴마 에스팀' 이건 유명한 요절입니다. 성령론에 있어서 이 요절은 대단히 중요한 요절로 늘 여기에 증거가 되고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주는 영이시다' 라고 할 때 신학자들은 한 단어를 추가해서 해석합니다. 주는 지금 영이시다. 주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육체적 시간 공간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이십니다. 그런고로 무한한 자유, 자유를 누리고 계십니다. 그 영적 존재에 대한 속성을 설명해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합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다. 이 자유문제는 정신 문제요, 가치의 문제요, 세계관 문제요, 영적 문제입니다. 이건 몸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는 815 해방 이후로 50년 동안 자유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815 해방되는 그 날 날씨가 좋았습니다. 몹시 더웠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박치순 목사님께서 저희 집에 찾아 오셨습니다. 제 할아버지 연세 높으신, 교회의 어른이신 장로님을 찾아 오셔서 "우리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하고 둘이 부둥켜안고 그렇게 우는 것을 제가 어렸을 때 보았습니다.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해방을 맞았다. 자유를 얻었다고 그럽니다. 그래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나. 그랬습니다. 한달 동안 아무도 일 한 사람 없습니다. 마침 그때 공출해 가지고 쌓아놓은 곡식이 많이 있었어요. 소도 있었어요. 군인들에게 준다고 소를 다 공출해 놓은 게 있었는데 이거를 그냥 잡고 해서요 한달 내내 잔치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사실 시골에서 어쩌다가 소고기 못 먹습니다. 일년에 한 번 구경할까 말까 했는데 좌우간 제 기억으로 코에서 누린내가 나게 먹었습니다. 이대로 영원히 되는 줄 알았더니, 이대로 자유롭게 사는 줄 알았는데 왠걸요. 계속 문제에 부딪히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도대체 자유가 어디에 있는 겁니까 무엇이 자유였다는 얘기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해방을 맞은 겁니까 여러분 깊이 생각할 문제올시다. 자유에 대해서 이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쯤은 알만합니다. 아직도 그 뜻을 몰라서 스스로도 불행하고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방종은 자유가 아닙니다. 탕자가 집을 나갔습니다. 집을 나가 사는 모든 생활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건 무서운 속박입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절대로 자유인이 아닙니다.
32절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오직 진리가 진리를 떠날 때 거기에 자유 없습니다. 36절에 보면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아들이 자유케하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해 주실 때,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될 때 성령은 계속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하십니다. 로마서 8장에서. 그런고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그 사랑을 확증 받을 때 거기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오로지 거기에만. 유명한 에밀 부르너(Emil Brunner)는 "Justice and Freedom in Society" 라고 하는 책에서 "인간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 자유는 하나님께 얽매일 때 비로소 자유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자유의 역설을 말합니다. Paradox, 역설을 말합니다. 여러분, 사랑의 노예가 될 때 자유롭고, 진리의 노예가 될 때 자유롭고, 여러분 은총에, 하나님의 은총에 사로잡힐 때 거기에 자유가 있는 겁니다. 이건 정치도, 물질도, 지위도, 건강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배웁니다. 자유는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사랑이요, 용서요, 희생이요, 겸손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고 그 영이 있는 곳에 오로지 자유함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참 자유를 알고, 참 자유를 지키고, 그 자유 안에서 참으로 주의 은혜를 감사할 때 생명력이 넘치고, 소망이 넘치고,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올시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 기도 자비하신 주여,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직도 회개하지 아니한 죄가 있어서 우리는 자유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참 자유의 뜻을 모르기에 그 자유를 지켜가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의 영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로 자유롭게 하시고 온전한 자유를 누릴뿐더러 많은 속박에서 시달리는 우리의 귀한 주의 백성들을 자유케 할 수 있는 주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영에 온전히 사로잡히고 충만함을 입어서 온전한 자유인으로서의 생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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