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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구원을아는사람들 (창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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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지난 한 주간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인간의 만남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요, 어찌 생각하면 행복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흔히 소설이라던가 연극이라던가 혹은 영화를 보면은 통틀어서 그 성격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희극이고 하나는 비극입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느냐 그거 묻지 않습니다. 다만 끝에 가서 해피엔드로 끝나면 희극입니다. 마지막에 가서 두 사람이 그만 다 죽어버리면 비극입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맨 끝에 가서 어떻게 끝을 맺느냐, 그 마감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희극이 될는지 비극이 될는지 행복한 자가 될는지 불행한 자가 될는지 그러한 문제로 결론을 맺게 됩니다. 만남이라고 하는 것,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꼭 만나야 할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이것을 우린 축복이라고도 하고 큰 기쁨이요 행복이라고 합니다. 만나야 할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게 될 때 행복입니다. 그러나 만나서는 안될 사람 어쩌면 영원히 만나서는 안될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이것은 악연입니다. 저주요, 심판입니다. 만남의 관계에서 떳떳하게 사랑스럽게 자랑스럽게 만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어떤 사람은 두렵게 전혀 만나서는 안될 사람을 만나듯이 그렇게 만나는 관계를 우리가 보았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항상 사랑하는 사람으로 반갑게 만나며 그리워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만나는 게 반갑질 않아요, 어쩌다가 만나는 것도 안 만났으면 좋을 사람을 만나면서 사는, 그런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스스로 물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화란 출신의 신앙인인 "코리텐 붐" 이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나치 독일 점령시에 유대인을 숨겨주며 돕다가 그게 발각되어서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살아남아 믿음을 지킨 사람으로서 온 세계에 다니면서 신앙을 간증하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독일에 "뮤니히"라고 하는 교회에 가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간증 섞인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하고 강단에서 내려서면서 자기가 한 설교를 순종하기 어려운 사건을 만났습니다. 강단 밑에서 바로 자기를 찾아와 인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바로 라벤스브룩 수용소의 간수였던 사람입니다. 이 간수가 너무 잔인하고 포학해서 고생을 많이 했고 그 언니 되는 사람도 감옥에서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독일사람, 그 간수를 "원수를 사랑하라"는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만났거든요. 이 사람이 손을 내밀면서 "당신의 설교를 통해서 많은 은혜 받았음을 감사합니다" 그랬대요. 이제 이 코리텐 붐도 손을 내밀어야 하겠는데 그 순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른손이 뻣뻣해지며 옆구리에 화살이 꽂히는 것 같이 통증을 느꼈다' 그랬어요. '내가 이 사람의 손을 잡아야 되나' 그때 그 순간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다는 겁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저를 용서 못 하는 나를 용서해 주세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을 주어서 그 억울하고 분했던 생각을 다 잊어버리고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할 수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이 대할 뿐만 아니라 전혀 원수와 같은 사람 꿈에도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그 사람을 오늘도 만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랑의 눈빛으로 넉넉한 사랑의 마음으로 악수할 수 있는지 우선 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한 극적 장면입니다. 요셉과 그 형들의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 형들이 요셉을, 아무 죄도 없는 요셉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 시기 질투 때문에 열 일곱 살 가량 된 동생을 죽이려고 하다가 이제 그들은 다시 그를 물 없는 우물에서 끄집어 내 가지고 애굽으로 팔아먹습니다. 애굽으로 가는 장사치에게 돈을 받고 노예로 팔아 넘깁니다.
이러한 악한 일이 어찌 세상에 또 있다는 말입니까 인류 역사를 상기합니다. 에덴동산에 동쪽, 에덴의 동쪽에서 맨 먼저인류가 범한 죄가 유감스럽게도 형이 동생을 죽인 사건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죽이는 사건이 에덴동산 밖에서 있은 첫번째 죄악입니다. 오늘 다시 여기서 형이 동생을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애굽으로 팔아먹어서 한 평생 노예로 죽을 고생을 하는 그런 운명으로 저를 넘겨버립니다. 이런 비참한 일이 어찌 있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겁니까. 아마도 생각했겠지요. 영원히 안 만날 거라고. 만날 리가 없다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라. 그리 생각을 했을 것인데 하나님의 큰 경련 속에서 이 원수가 다시 만나게 됩니다. 꼼짝 못하고 그 형들이 동생을 만납니다. 원수의 관계 철천지원수의 관계로 만납니다마는 이제 다시 또 다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형제관계로, 사랑하는 형과 동생의 관계로 돌아가는 해피엔드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입니다. 형들은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애굽의 총리 대신 천하를 호령하는 이 분이 요셉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저들은 놀랐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이젠 죽었다. 꼼짝 못하고 죽었다.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죽음을 각오하는 그 지경까지 갔습니다. 요셉도 모름지기 처음엔 분하기도 했겠지요. 원통한 생각도 들었겠지요마는 그는 오늘 성경에 보는 대로 방성대곡합니다. 소리를 높여서 웁니다. 통곡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요셉이 형들을 위로합니다.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전혀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럴 수 있느냐 내가 그렇게 애걸복걸 하는데 어째서 나를 이쪽으로 넘겼느냐 누가 그랬느냐 누가 더 반대했느냐 누가 지지했느냐 전혀 말이 없습니다. 일체의 과거를 묻지 않고 특별히 내가 십삽 년동안 여기에 와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고 무진한 고생을 했다는 그런 얘기도 할만도 한데 없습니다. 전혀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오히려 성경을 자세히 보면은 요셉이 한 말들은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염려하지 마소서. 두려워하지 마소서. 지체하지 말고 내려오소서.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누구 때문이니 하면서 길에서 다투지 마소서. 당신들의 가족과 자녀들을 내가 기르리이다."
50장 20절에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합니다. 오히려 요셉이 형들을 위로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까 그러나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당연히 그러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은 요셉은 하나님의 경륜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은혜를 깨닫는 오늘까지 그는 원망과 불평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왜 내가 이렇게 억울함을 당해야 하는지 내가 왜 애굽으로 팔려 와야 하는지 왜 이렇게 죄 없이 감옥에 가야 하는지 그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마는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은 다 깨달았습니다. 은혜 안에서 다 소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알고 그 속에 있는 나를 생각하면서 그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바가 이것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습니다. 그러나 판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리로 보내신 겁니다.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 우리 후손들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앞서 먼저 애굽으로 보내신 겁니다.' 여기에 팔렸다는 말과 보냄 받았다는 말은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겁니다. 팔리는 것은 인간의 일입니다. 보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냈습니다. 그 보내는 과정은 맘에 안 들어요.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먼저 보내신 겁니다. 큰 사명을 가지고 가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겁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50장 20절에 보면은 또 형님들이 자꾸만 걱정을 하니까 그 때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나로서는 절대로 당신들에게 복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워하지도 않고 손을 대지도 않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정당한 복수를 할 수 있습니다마는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나는 사랑하고 나는 용서하고 당신들을 돌아보는 일 뿐 내 마음에서는 전혀 복수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하나님께 맡길 뿐이요 나로서는 내가 해야될 용서와 사랑뿐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시 그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사" 이 말 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아먹는 사건, 아주 인류 최악의 죄악이었지마는 이 모든 악을 모든 사건을 선으로 바꾸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해서 오늘이 있게 하셨습니다.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그걸 깨달았습니다. 죄송한 얘기입니다마는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친구 몇 사람이 있습니다. 고향에서 나온, 같이 나온 친구들입니다. 그 가운데는 총장도 지내고 뭐 교수도 있고 목사도 있고 박사도 있고 다 그렇습니다. 만날 때마다 가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고향에서 지게를 지다가 일생을 망쳐야 될 죄인인데 김일성 덕분에 여기까지 와서 참 많이 출세했다 너희들." 그럽니다 제가. 생각해 보세요. 아 그 분이 아니라면 내가 여기 왜 옵니까 죄송하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올 수가 없습니다. 대대로 내려가는 땅이요 내가 이거 중요한 위치의 아들인데 내가 어떻게 할 거예요 고향을 절대로 떠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할아버지 돌아가셨죠 아버지는 또 그들한테 총살당했죠 할머니와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이 두 분을 남겨놓고 내가 어떻게 떠난다는 얘기입니까 뭐 유학하니 공부하니 뭐 아무런 일이 있어도 절대로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씨께선 "나가라" 하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그래서 나와 가지고 그래 우리 하는 말이 "너 김일성 덕에 너나 나나 출세했다 이놈들아"
그러고 그럽니다. 여러분 물론 고생이야 많이 했지. 그러나 합동하여 선을 이루시는 거예요.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그 위대한 역사를 요셉은 알고 지금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나를 애굽에 전국에 주로 삼으셨습니다. 애굽에 총리대신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높여서 주권자를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같은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이 체험 이 간증 속에서 나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들을 내가 돌볼 것입니다"하고 화해하고 아름다운 만남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외모도 좋고 똑똑하기도 해서 뭐 경우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다 좋은데 덕이 좀 부족해요. 누구에게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은 생전 해본 일이 없어요. 너무 똑똑해서. 이런 분이 어느 날 소화가 잘 안돼서 병원에 갔더니 종합진찰을 하라고 뭐 씨름을 하고 진찰을 하고 엑스레이 찍고 다 한 다음에 의사가 아주 뭐라고난색을 합니다. "무슨 병입니까"하고 물어 보았더니 "글쎄요, 글쎄요."하는 겁니다. 이제 짐작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암 입니까" 했더니 "그렇습니다. 그저 한 삼개월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여집사님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전화번호부를 찾고 이제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부 전화를 걸어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죄송합니다. 내가 실수를 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겁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방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옷장을 열어 보니까 한번 입었던 옷도 물론이지만 전혀 입어보지 않은 옷도 많아요. 왜 이렇게 옷은 많이 했던가. 열어 가지고 치수가 맞을 만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뭐 줄 거 없나. 그리고 고아원을 방문하고 양로원을 방문하고 바빴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마음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없어요. 일생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어. 이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그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열 번도 더 하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오진입니다.위암이 아니고 위계양인데요. 조금 치료하면 될 겁니다.죄송합니다"라고 했지마는 여집사님은 오히려 말하기를 "아니요, 그 오진 때문에 제가 딴 사람이 되고 딴 세상을 살게 됐습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내가 받은 은혜가 크고 위대할 때 어떤 사람이라도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다 화해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한사람 요셉이 자기가 받은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 위대한 경륜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어요.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어요. 누구의 잘못도 탓하지 않았어요. 이것이 만남이요, 원수를 사랑하는 형님들로 맞이하게 됩니다. 도대체 만나서는 아니 될 관계가 이렇게 반가운 만남으로 승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부인에게 어느 기자가 묻기를 "이런 위대한 과학자와 함께 사는데 수학을 아십니까 물리학을 아십니까 남편과 그런 것을 얘기할 만큼 남편이 뭘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여러 가지로 물어 보았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에 부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오직 한가지, 그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것만 압니다" 그랬어요. 여러분 뭐 많이 알 것 없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마세요.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합동하여 선을 이루시면서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위대한 사랑만 깨달으면 더 이상 다른 것을 알 것도 없고 물을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 만남의 관계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성경에 분명히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궁극적 만남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는 나의 사랑이 되고 나는 너의 자랑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남이라는 것은 그저 그런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그거 만나는 거 그렇게 만나고 그저 울고 헤어졌으니다행이지 만일에 만나서 뭐 옛날 얘기 자꾸 시작하다가는 아마 많이 싸울걸요. 너 이놈 죽이자, 저놈 죽이자 할겁니다. 여러분, 사람의 만남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에요.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에 보면 "소망이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소망이 없는 만남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북한에 갔을 때에도 처음 갔을 때 "목사님 저희들이 보니까 4년 전에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났구만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 무덤이라도 한번 찾아 드릴까요" 그래서 "아니오, 저는 하늘 나라에서 만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만남이 무슨 대수로운 일입니까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는 나의 자랑이 되고, 나는 너의 자랑이 되리라." 그 앞에 가서 있는 만남, 거기에 기쁨이 있고 영광이 있고 자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모든 면에서 은혜로 소화할 수 있는 그러한 만남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날려고 하지만은 떳떳하지 못한 만남도 많고 어쩌면 만나서는 아니 될 그런 만남을 악연처럼 여기고 사는 때도 있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깊이깊이 깨달으면서 모든 사람을 반갑게 만나고 특별히 이땅에서만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주님 앞에서 그는 나의 자랑이 되고 나는 그의 자랑이 되리라 하는 그러한 자랑스러운 만남을 기약하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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