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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축복 (고후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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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저희 형님같이 의학공부를 하던 사람이 남한에 와서도 의사 면허를 따고 병원을 개업했는데 청년 시절에 열심히 믿고 집사까지 하던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아서 만날 때마다 교회에 나오라고 권면을 하면 "나 자가용을 산 다음에 나갈게" 하면서 핑계를 대다가 차를 산 다음에도 안 나와서 "이제는 차를 샀으니 교회에 나와야지" 하면 "나, 병원 빌딩 하나 짓고 나갈게"하고 핑계를 대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더랍니다. 얼마 후에 만났더니 안색이 안 좋아서 왜 건강이 안 좋아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소화가 좀 안돼서 그렇다고"하더랍니다. 몇 달 후에 전화가 와서 좀 오라고 해서 달려가 보니까 벌써 간암 말기가 되서 복수가 차 있더랍니다.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예수 믿던 사람이 예수도 안 믿고 돈만 벌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치셨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성찬예식을 베풀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했는데 몇 일 후 장례식에 가 보았더니 관 앞에 사진이 있고 그 앞에 의사 면허증과 박사 학위증, 상장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더랍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은 건강해도 부유해도, 벼슬을 해도 거기에다 소망을 두지 말고 그런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절망해야 됩니다. 세상에 대하여 절망해야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참된 영원한 소망을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일수록 절망의 구렁텅이에 집어넣기도 하고 심한 고생을 시키기도 하고, 큰 고통을 겪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끝장났구나"하고 생각할 정도로 심한 고생을 한 것은 자신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는 절망을 느끼고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 것은 다 믿을 것이 못 됨을 빨리 깨달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절망 없이 참된 은혜와 축복은 없습니다.
1. 사람에 대하여 절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새 성전 구경하고 하는 말이 "사람에 대해서 철저하게 실망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어떤 한 사람이 예배당을 다 지을 것처럼 생각했다가 도리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 한 후에 건축했다는 뜻입니다. 제가 목회 하는 가운데 발견한 진리의 하나는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게 되면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배신하게 하든가, 그 사람이 죽던가 해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5절부터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믿고 의지하면 사막의 떨기나무 같이 곧 시들고 실망하게 되지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아서 더위가 와도 두렵지 않고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고, 계속 잎이 청청하고 끊임없이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실험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철저히 실망해야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2. 물질에 대해서 절망해야 됩니다. 라스베가스에 부흥회에 갔다가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곳에 수 천 억짜리 호텔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큰 부자가 최근에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그 하워드 휴 라는 사람은 돈은 많지만 무엇이나 의심하는 정신질환에 걸려서 음식에 독약을 넣을까봐 음식도 못 먹고 누가 죽이러 올까봐 집에서 자지도 못 하고 의사가 죽일까봐 아파도 의사도 못 부르고 깊은 호텔 방에 숨어서 깡통 음식만 조금씩 먹다가 죽게 된 다음에 엠블런스를 불렀는데 가는 도중에 죽었답니다. 시체를 부검해 본 결과 아무 병균도 없고, 단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돈을 하나님처럼 믿고 거기에만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복음 12장에 한 부자가 농사를 많이 지어서 소출이 풍성해서 다 쌓을 곳이 없어서 창고를 더 많이 짓고 곡식과 물건을 거기다 쌓아두고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시고 그 날밤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불러 가시니까 그 많던 물건이 다 남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12장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신명기 8장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재물 얻을 능도 주시지만 재물을 하루아침에 다 불어 버릴 능력과 방법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재물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재물을 하나님처럼 믿고 거기다 소망을 두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재물을 아무리 많이 쌓아놔도 하루아침에 불타 버릴 수도 있고, 부도가 날 수도 있고, 내가 불치의 병으로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재물을 의지하는 대신에 그 재물을 도적이 구멍도 뚫지 못하고, 부도 나는 법도 없고, 화재 나는 법도 없는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세에도 하나님의 보장을 받고 내세에도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엊그제 어느 장로님께서 "하나님께 용감히 바치고 축복 받는 재미를 모르면 예수 믿는 멋을 잘 모른다"고 하는 명답을 들었습니다. 재물이 많아도 속으로는 늘 절망하십시오. 건간이 아무리 좋아도 건강을 믿지 말고 절망하십시오. 그런 사람은 재물도 건강도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고 오래 지속되게 해 주십니다. 물질에 대해서 절망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할 때 물질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3. 자신에 대해서 절망해야 합니다. 장갑을 낀 손을 장갑에서 뽑아 버리면 장갑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은 장갑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하고 자신에 대하여 철저히 실망해야 됩니다. 물 떠난 고기는 사는 길이 있을 지 몰라도 나는 주님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살수도 없음을 느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질그릇은 가치도 없고, 볼품도 없고, 깨지기 잘하고 깨지면 엿장수도 안 집어 가는 진흙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질 그릇 같이 연약하고 무가치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임을 인식하고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매달리고 의지해야 보배로운 주님과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배로운 그릇으로 자처하게 되면 주님의 능력은 우리는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중국의 내지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는 말하기는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행했던 하나님의 큰 인물들은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만 의지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스펄젼 목사님은 "내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내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가장 비참한 지경을 사실대로 알고자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님은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비참한 존재인가를 알려고 끊임없이 기도한 것입니다. 자신을 귀한 존재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볼품없고 비참한 존재임을 늘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배, 즉 예수님과 성령의 능력을 질그릇에 담아 주는 까닭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사람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실망하고 절망하는 자라야 보배로운 주님의 능력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연약하고 무가치하고 볼품없는 존재임을 깨우치기 위해 여러 가지 고통과 시련을 겪게 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8-9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바울은 날마다 죽음에 넘기운다고 했습니다.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를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즉 우리가 죽어지는 만큼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절에 보면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죽어지는 만큼 예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우리 옛 사람,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 죽어지는 만큼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으로 가득 차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 살리는 일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거꾸러뜨림도 당한 것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서 꼼짝없이 망할 줄 알았는데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서 낙심할 줄 알았는데 낙심하지도 않고, 핍박을 받아 버림받을 줄 알았는데 버림받지 않고 다시 살아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망할 줄 알았는데 망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보배가 되시는 예수님이 계셔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옛사람 아담에 속한 자아는 다 깨어지고, 바스러지고, 죽어져야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하는 예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흘려 들어가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The end of self in the beginning of God)란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는 하나님의 기회이다"(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란 말이 있습니다. 옛사람 자아가 완전히 끝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옛사람을 의존하거나 육신의 생명에 의존하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육신의 능력은 철저히 깨어지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려면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전도할 때 그 곳 사람들이 지식이 많고 철학자들이 많아서 지식을 총동원해서 설교했더니 결실이 없었고 실패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절부터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나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를 작정하였음이라"하고 그 다음부터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했는데 이는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혜나 재능이나 언변 논술에 의지해 전할 때에는 생명의 역사가 안 나타납니다. 무용지물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어리석고 미련해 보임으로 전하는 방법도 어리석어야 됩니다. 여기 한 알의 밀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전에 죽은 밀알의 생명이 전달된 것입니다. 죽음이 결실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웨슬레 목사님의 글에 보니까 한 젊은 목사가 웅변적으로 열심히 설교를 했는데 뭔가 허전하고 빠진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더니 "그래요 마음이 깨어지기 전까지는 그것이 있을리라 없지요. 얼마 동안 고통을 겪은 뒤에야 들을만한 설교가 나오지요"하고 말하더랍니다. (Dr. John Henry Joweit)은 "대가를 치르지 않은 목회란 아무 것도 성취할 수가 없다"(Ministry that costs nothing accomplishes nothing)고 했습니다. 자신에 대하여 철저히 실망하고 절망하고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존해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옛사람을 깨트리고 죽이기 위하여 많은 실패와 고통과 환난을 통과케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난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여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남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이 이와 같이 고난을 많이 당하면서 복음 전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성전건축이 끝나고 입당도 했으니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네 손의 든 검을 꽂지 말아라"하는 찬송가대로 늘 마귀를 대적하면 여러 가지 고난과 싸워나가야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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