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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따라난자녀 (갈4: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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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BS 방송에서 House Party라고 하는 생방송 쇼프로그램을 26년간 진행했던 아트 링클레터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제 그 분이 쓴 책에 The New Kids Says the Darndest Things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어서 무려 400만 부가 팔리는 그러한 인기 있는 책으로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을 옮긴다면 애들이 기가 막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 책 첫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생전 처음 농장이라고 하는 곳에 구경을 간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양떼를 봅니다. 이 네살박이가 용기를 얻어서 양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Whoop, they make them out of blankets!야 사람들이 담요를 뜯어서 얘들을 만들었구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손으로 만지니까 담요 같거든요. 사람들이 담요를 뜯어서 이 양을 만들었다, 어린 아이가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이 엉뚱한 아이를 놓고 물어봅니다. "동생이 있어요" 이 질문에 애는 대답하기를 "아니요, 하지만 동생을 만드는 법을 나는 알고있어요.어떻게" 그는 대답합니다. "음…. 엄마한테 단 음식을 많이 먹여서 몸이 뚱뚱해지면 동생이 생깁니다" 그래요. "그러면 동생을 원해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앞으로도 동생이 없을 거예요"하고 딱 잘라 말합니다. "어째서" 애는 대답합니다. "나 하나도 낳은 것을 후회하고 부모님들이 귀찮게 여기고 있으니까요." 이제 이 아이가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엄청나게 똑똑합니다.
그런데 애는 지금 자기는 부모님들에게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귀찮아서 부모님은 다시는 아이를 안 낳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정체의식의 시작입니다. 롤로 메이라고 하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 이라고 하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는데, 현대인은 산업문명에 중독이 되어서 인간상실, 자아상실증에 빠졌다. 이 기계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인간성을 다 잡아먹어 버렸어요. 그래서 고독해하고, 불만해하고, 공허감에 빠지고, 방황하는 인간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문에서 읽었겠습니다 만은 요 며칠 전에, 요새 미국에서는 중고등학교의 교실에서 컴퓨터를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논란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이 컴퓨터라고 하는 것을 너무 어렸을 때부터 빠져들어 가니까 인간성이 발달하지를 않습니다. 여기에 미치면서 친구와 사귀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독에 빠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상 현실에 익숙해지면서 실제현실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꿈처럼만 생각을 하는데 현실은 그런 게 아닙니다. 특별히 지능지수도 떨어지고 인간관계 여기서 오는 소중한 것들, 심지어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오는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컴퓨터는 늦게 배워도 됩니다. 며칠 배우면 되는걸 일찍부터 배우게 해 가지고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상품은 될는지 몰라도 인간이 되는데는 문제가 있다, 이것을 지금 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된 자아를 찾는 길이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을 항상 물으며 살아가야 됩니다. '내가 누굽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굽니까' 그리고 가족들 앞에, 친구들 앞에, 모든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자 앞에서 '내가 누구냐' 이것을 물으면서 비로소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올시다. 사랑 받는 존재라고 하는 이 사실 하나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흔히 말하는 문제아가 있습니다. 왜요 또 어떨 때 보면 사람이 이렇게 그 달라지지 않는 걸 봅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뭐 그런 거 같은데 영 인간은 영 아니에요. 왜 그럴까 그 많은 날 공부했는데 왜 이 모양일까 더듬어 더듬어 올라가 보면은 어렸을 때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들, 이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어요. 이런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서 사람은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 종교관, 모든 것을 거기서 터득하고 그것을 가지고 한평생 살아가는 겁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내 주위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말은 못하나 느낌은 어른들보다도 더 민감합니다. 눈치 딱 보고 압니다. 저 사람이 날 사랑하는가 안 하는가.
자 이제 보세요. 그 사람이 나를 기뻐하는가 안 하는가, 좀 더 나아가서는 나로 인해서 행복해하는가 불행해하는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내가 저들에게 필요한가 필요치 않은가를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 사랑은 뭘로 평가가 됩니까. 얼마나 희생하는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희생하는가. 시간을, 물질을, 정신을, 얼마나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하는가 하는 것을 평가하고 그것에 따라서 사랑의 언어는 전달이 되는 것이올시다. 제가 언젠가 한번 미국가정에 한 63년 그때 가 보았을 때 아주 놀란 것은 지하실에 아이들을 위해서 장난감이 얼마나 많은지, 제가 어렸을 때 장난을 좋아해서 그런 그 많은 장난감 기구를 볼 때 너무 부러웠어요. 그래서 "야 너희들은 참 행복하다. 이렇게 많은 장난감이 여기에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 했더니 애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아빠 엄마가 저희들 놀러가느라고 우리 떼어놓느라고 사다준 겁니다" 그래요. 절대 고마워하지를 않아요. 나는 불편한 존재라는 거죠.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있었던 이야기로서 이것은 상징적이요 비유적인 소중한 신학적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다. 자 이스마엘과 이삭, 둘입니다. 여러분 아시니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미숙한 신앙에서 얻어진 부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 말씀하시면서 내가 네게 땅을 주겠고 내가 너에게 자손을 주겠다, 아들을 주마, 약속했습니다. 믿고 따라왔습니다 만은 한 10년 지내보고 나니까 아 점점 나이가 먹었지요, 아 아내는 쭈글쭈글해지지요.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가보다 조급하게 생각이 돼서 편법을 취합니다. 그래서 몸종을 씨받이로 이용해서 거기서 아이를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이건 참으로 불행하게 얻어진 아이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말하기를 "육체를 따라 났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태어난 아이라. 이건 실수로 태어났습니다. 낳았으니 어차피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은 생각해보세요. 태어나지 말아야 될 아이였습니다. 어쩌면 생기지 말았어야 할 아이가 생겨난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 후손이 아랍이 아닙니까. 요새 아랍과 이스라엘, 둘을 놓고 볼 때, 이 아랍사람들은 우리는 이스마엘이 후손이다 그래요. 다같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모슬람도. 이스라엘, 이삭의 후손입니다. 그때의 실수가 지금까지 수 천년동안 원수로 지냅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지요. 태어났더라도 이제라도 없어야 될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내쫓으라! 그래 내쫓습니다. 이런 불행한 일이 있습니다. 다섯살 짜리 어린아이가 어느날 상담실을 찾아왔습니다. 와서 "너 왜왔냐" 그러니까 "상담하러 왔어요." 그래요. "왜" 그랬더니 "죽고싶어서요" 그러더라고요. "왜 죽고 싶으냐아빠, 엄마가 나를 귀찮게 여겨요. 내가 우리 집에 세 번째 아이거든요.
그런데 늘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까, 가족계획 실패해서 내가 태어났대요." 안 낳아야 될 것을 낳아서 저 놈 때문에 말썽이라고 그러더래요. 자 나는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거예요. 기가 막힌 얘가 아닙니까 이걸 알아야 됩니다. 태어나지 말아야 될 자녀, 아주 귀찮게 여겨지는 자녀, 그것은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녀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것이올시다. 그 운명 자체가 불행한 것이올시다. 그런가 하면 이삭은 어떻습니까 바라고, 소원하고, 기다리면서 낳았지요.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참 이상하게도 아브라함과 사라가 원하는 시간에 주시질 아니하시고 말씀하신 후에도 무려 25년을 기다리게 합니다. 그 25년 동안에 자기는 늙고 아내는 단산까지 합니다. 아 이제는 인간적으로 끝났다 생각하는 바로 이 때에 찾아오셔서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 그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온전하라. 내년에 네 아내가 아들을 낳으리라." 아, 이거 참 기가 막힙니다. 이러고 보니 내가 이스마엘을 왜 얻었지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어쨌든 이래서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왜 하필이면 이렇게 했을까 여기서 우리는 소중한 계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자녀란 아브라함의 자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바로 여기서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세요. 최고의 축복이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이요 생의 의미가 그 이삭 하나로 인해서 있어지는 거예요. 최고의 선물로 주신다 그런 뜻이에요. 그런 뜻으로 하시는 거예요. 이 속에, 우리에게 주신 자녀 이 속에 하나님의 많은 말씀이 있는 거예요. 제가 잘 아는 장로님 가정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 맏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아버지가 경영하는 조그마한 공장에 다니는 직공과 친해져 가지고 아이가 생겼어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온 집안에 난리가 났지요. 그 권사님 펄펄 뛰지요. 이 가문 망신이요 뭐 어쩌고. 장로님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조금 속도위반을 했긴 했지만 그 놈 재주도 좋지" 아무렇지도 않아요. 감사하게. 결혼시켜주고, 고등학교 2학년 결혼주례 했습니다. 보세요. 왜 그랬을까 왜 그랬느냐구요 그 사모님이 내게 설명을 해줬어요. 이 사람이 나이 서른 될 때까지 방탕했습니다. 술 먹고 방탕하고 못된 짓하고, 국제 성병 걸렸어요. 온 몸이 썩어 나가는데 많은 시간 치료를 받고 겨우 병을 멈추어 가지고 결혼을 했어요. 결혼을 했으나 10년 동안 애가 없습니다.
의사는 말하기를, 아무래도 아이를 갖지 못할 거라고. 그런가 보다 하고 좀 나이든 다음에 양자라도 해야지, 하고 살았어요. 이제 예수를 믿었어요. 충만한 은혜를 몸으로 받았어요. 몸이 불덩어리 같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리고 아이를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연년생으로 다섯을 낳았어요. 너무너무 감사한 거예요. 이거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큰 축복이요 사죄의 은총이요 얼마나 큰 복입니까.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그 감사가 너무 크기에 뭐 오늘 이런 일 있다 하더라도 "그저 부전자전인데." 그만하면 괜찮다 이거예요. 야 놀랐습니다. 어찌 이런 극적 장면의 얘기만 생각하십니까 모든 자녀가 그렇게 태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큰 은혜로, 기적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에요. 이걸 잊지 말아야돼요. 그런고로 기도로, 기도 응답으로 태어나는 자녀래야 해요. 큰복으로 내게 주신 거예요. 내게 큰 선물로 주신 거예요. 내게 주신 모든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 이거예요. 맥아더 장군은 큰 일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그러나 그의 기도문에 아들을 위한 기도문에 보면 그런 말을 합니다. 내 아들, 이러이러한 아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나서 끝에 한 마디 딱 하는데 저는 그 기도문은 늘 외워 봅니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하게 하시옵소서. 내 생은 이것으로 끝나나 내 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자녀에게서 결정이 되는 것이예요. 그런고로 자녀를 이처럼 소중히 여겨요. 왜요 이건 내게 주신 사명이요. 소중한 사명일 뿐만 아니라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사실상 약속의 자녀 달랑 하나 주셨습니다, 이삭. 기적으로 주시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그렇게 원하고 계십니다. 이 자녀를 통해서, 이 자녀를 통하여 만백성이 구원을 받으리라. 복의 근원이 되리라. 이 아들 하나를 놓고, 이 아들을 통하여 계계승승 모든 백성이 구원받게 될 저 미래의 약속을 바라보도록 그렇게 원하시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의 자녀! 이 자녀와 함께 무한한 미래, 무한한 복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그러한 마음으로 자녀를 대하고, 자녀를 키워가야 되는 것이에요. 이게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런고로 늘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늘 기뻐할 수밖에 없어요. 이 자녀와 함께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 없어요. 인내하고, 믿고, 기다리고, 약속을 확인하고, 약속을 그에게 확증시켜줘야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녀들 가르치면서 뭐 말이 많습니다. 뭐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습니다. 이리 가르쳐야 한다 저리 가르쳐야 한다, 다 별 소용없는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자녀들이 바라고 또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그 자녀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계속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I am so happy because of you, 나는 너 때문에 행복하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문제가 아니다. 너를 보면서 행복하고, 너를 생각하면서 행복하고, 너희들의 장래를 지켜보며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나의 생은 너희들로 인해서 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즐거워하면 아이들은 그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에요. 약속의 자녀로 자라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한다는 게 뭡니까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접해요, 말씀으로 가르쳐요, 약속을 확인시켜주세요. 여러분 오직 참 사랑만이 교육을 가능하게 합니다. 뭐 이래라 저래라 할 것 없어요. 옛날 어른들은 교육학도 모르고 심리학도 몰랐어요. 유아교육법도 몰랐어요. 그래도 훌륭하게 키웠어요. 왜요 사랑하니까. 그 뜨거운 사랑 하나만으로 교육은 충분했어요. 실례지만 제 어머니는 그 흔한 국민학교도 못 나왔어요. 그래도 성경을 많이 읽었어요. 그의 사랑 하나로 충분합니다. 나는 너를 위하여 10년을 기도하고 너를 낳았다. 하나님 앞에 약속했다. 목사가 돼라. 이젠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 어머니는 항상 기뻐했어요.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기뻐했어요. 그는 나 하나 때문에 행복했어요. 그것을 알고 있었어요. 북한에서 94세까지 사셨습니다. 어쩌면 나 하나 때문에 나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 그는 오래오래 살았어요. 저는 94세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첫 마디 이렇게 느꼈습니다. '어머니 이 어려운 세상에 어째서 그렇게 오래 살았습니까.'
둘째는 '저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 살았군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뜨거운 사랑 하나만으로 교육은 충분한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랑만이 창조적이요 생산적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에요. 오늘 육체를 따라 난 자녀, 그 의미를 바꿔야 됩니다. 약속을 따라 난 자녀로 자녀에 대한 의미가 신학적으로, 성서적으로 중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중한 약속의 자녀 이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서 무한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내가 느끼고 살아갈 때 우리들의 자녀는 이 어려운 세대를 헤치고 밝은 미래를 창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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