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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하나님의얼굴을본사람 (창33:1-12)

본문

한 세기 동안을 많은 사람들의 우상처럼 되었던 사상가 칼 막스에게 큰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역사를 생존경쟁으로 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변증법적 유물사관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물질이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싸움이다. 약육강식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어치우는 그러한 세상이다. 그는 생각하면서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가난의 문제의 해결이란 혁명을 통한 공정한 분배에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산을 통해서, 보다 많은 번영을 통해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공정한 분배, 그것도 힘을 통해서 혁명을 통해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상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서 흔히 말하는 공산주의자가 된 것이죠. 또한가지는 경제문제의 해결이 모든 문제의 근본이다. 경제문제만 해결되면 모두는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평이 오고,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그렇게 내다보았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그렇습니다. 제가 탄자니아라고 하는 곳에 가서 국립공원에 갔다가 깜짝 놀란 일이 한번 있습니다. 사자 떼거리가, 무려 30마리나 되는 사자 가족들이 모여서 있는데 바로 그 앞에 인팔라라고 하는 노루 같은 조그만 것들, 뭐 토끼나 이런 것들이 그냥 모여서 같이 그 앞에서 놀고 있는 거예요. 나는 에덴동산에 온 줄로 착각을 했어요. 세상에, 아니 사자하고 노루하고 어떻게 같이 노느냐 이거예요. 어떻게 토끼나 이런 것들이 이렇게 평화롭게 지낼 수가 있나, 너무 궁금해서 이게 참 기가 막힌 낙원이다 이거, 그래서 안내자에게 물어 봤더니요 지금은 식사시간이 아니랍니다. 이 맹수는 배만 부르면은 절대로 아무도 해하지 않습니다. 배고플 때만 사냥을 합니다. 또 저축도 하지 않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정말 배만 부르면 No problem!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디 사람이 그렇습디까 사람은 안 그래요. 배부른 다음부터 문제라니깐요. 그게 사람이 다른 거예요. 여기서 막스가 실수한 거예요. 칼 융 연구소장이었던 존 레비의 쓰는 말 중에 우리가 아는 단어지만 그가 특별히 사용한 단어가 있습니다. Affluenza(애플루엔자)라고 하는 말입니다. 부자병이라는 말입니다. 부자라고 하는 것은 의욕이 상실되고, 의기소침하고, 특별히 더 재미있는 건 부할수록 더 욕심이 많아져요. 가지고 더 가지고 싶은 마음에 마음의 평안이 없어요. 그래서 만족감은 부와 반비례한다 그런 거예요. 많이 가질수록 만족하는 마음은 없어요. 오직 가난한 사람이 그저 뭐 자전거 하나만 사도 고맙고, 그저 셋방살이하다가 전세로만 들어가도 만족하고 말이죠.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만은, 여러분 집 좋은 것 가진 사람이 '이만하면 됐다'고 하는 줄 아십니까. 그건 우리가 그 자리에 못 가봐서 모르지 그 사람들은 평안이 없어요. 여기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만족이 없어요. 더 큰 욕망에 노예가 되고 있단 말이에요. 또한 지루하게 살면서 신나는 일이 없어요. 행복감이 없는 생을 산다는 것이죠. 이 보다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하면 불신입니다. 부자의 병은 불신이요. 아무도 안 믿어요.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안 믿어요. 여기서 분열이 일어납니다. 가난한 집의 형제들에게 화평이 있지요 부자 집 자녀들에게 화평이 없어요. 죽이려고 들어요. 무서운 것이에요. 부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분열주의자로 만드는 거죠.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만들어요. 화평이 없습니다. 화목함이 없습니다. 때로는 땀을 흘리지 않고 번 데 대한 자책감 때문에 열등의식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넉넉하니까 마음도 평안하고 여유가 있어야 될 것인데 안 그래요. 벌컥벌컥 화를 내고 끝도 없어요. 그 이것이 부자병이라고 하는 겁니다. 철학자 마틴부버의 Ich und Du 라고 하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고전입니다 만은 영어로 I and Thou 라고 하는 책입니다.
여기서 보면 이 세상은 아주 깨어진 세상이고 계속 깨어져 나가고 있다. 이 분열이 극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핵분열처럼 모두가 모래알처럼 따로따로 노는 거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한데 이러한 위기상황은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낸 세계를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는 데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 이 물질문명으로 인해서 인간성이 파괴되면서 전부가 이렇게 분열되고 있는데 이 어디까지 가야하나. 스스로 지배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가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로 그러한 거 같습니다. 인간은 한 평생 공부하며 산다고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 몰랐던 거 나이 들면서 깨닫습니다. 경험하기 전에 몰랐던 것 경험하면서 깨닫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깨닫고, 배우고, 느끼고 그렇게 성숙해 갑니다 만은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후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깨닫고 보니 잘못됐거든요. 오늘 깨닫고 보니 또 잘못됐어요. 오늘 새롭게 알고 보니까 또 지난날에 잘못했어요. 그때는 잘못한 줄 몰랐는데 이제 보니까 다 잘못했어요. 이거 잘못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 후회. 우리 인간이 가지는 인간적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후회라고 하는 고통이요. 이건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에 볼 거 같으면 야곱이라는 사람이 한 평생을 두고 깨닫고, 깨닫고, 뉘우치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 무언지 이제 비로소 알 거 같아요. 그 방법을 몰랐는데 이제서 알 거 같아요.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은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야곱이 이 본문에서 보면은 이제서 소중한 시점에 왔어요. 그는 정열의 사람입니다. 복에 대한 아주 집념이 강한 사람입니다. 또 신앙도 있어요.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래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주어지는 복이 아니라면 복을 빼앗기라고 해야 된다, 강탈하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편법을 써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쨌든 복을 받아야 된다. 그렇게 생각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야곱입니다. 그는 맨 처음으로 복을 생각하기를 물질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저 뭐니뭐니해도 돈이 많아야지. 재산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머슴살이를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어쨌든 물질, 넉넉한 물질이 있어야되죠.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요. 돈이 있어야 나이가 많아서도 손자들이 반가와 한다면서요 돈 없는 할머니 반가워하지 않는데요. 끝가지 내가 줄 수 있는 돈이 있어야지 이 손을 내밀게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넉넉히 돈을 쥐고 있어야 일년에 한번이라도 아이들이 찾아오지 그렇지 않으면 효도 받기가 어렵다는 거죠. 이 돈이 그만큼 소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저 목숨을 걸고 돈을 모으려고들 애를 쓰는데요 이게 첫째고요, 두 번째는 가정입니다. 좋은 가정을 가져야겠다. 옛날로 말하면 자녀가 많아야 되요. 넉넉한 자녀. 그래서 야곱은 두 번째로 가진 것이 가정이요. 열두 아들, 12지파의 족장이 됩니다. 그만큼 그는 큰 가정을 세우는데 주력했습니다. 그 다음에 아주 로맨틱한 얘기 하나는 아주 사랑하는, 화끈한 연애도 한번 해봤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로 맞습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 들어보았어요.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 14년 동안 머슴살이 한 일, 아마 이런 역사는 없을 거예요. 14년 하면 청춘 다 가는데, 안 그래요. 좌우간 라헬이라고 하는 여자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가 그를 얻기 위해서 머슴살이를 하는데 '7년을 하루같이 보내니라' 그랬어요. 어쨌든 연애 한 번 화끈하게 한 겁니다 이거는. 이렇게 애써서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어요. 어찌 생각하면 가진 거 다 가졌어요. 물질도 가졌고 자녀도 가졌고 사랑도 가졌고 다 가진 거 같은데 평안이 없어요. 두려운 마음이고 쫓기는 마음이에요.
항상 불안하고 평안함이 없어요. 그랬다가 그 나이 많아서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창세기 47장에 보면 그런 말을 합니다. "내 나이 130세입니다. 그런데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모으느라고, 이렇게 버느라고, 이렇게 잘 살아 보느라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어요. 자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화평이 없었기 때문이요, 화목이 없었기 때문이요. 더불어 살아야 되는데 나 혼자만 잘 살려고 했거든요. 그거 때문에 불행했던 겁니다. 일본에 유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하는 분이 계시죠. 그 분이 쓴 '인간 경영' 이라고 하는 그 분에 대한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참으로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진 사람의 고통만큼 그림자가 남는 것이다" 그랬어요. 내가 이겼어요. 이겼기 때문에 여기 진 사람이 있어요. 진 사람이 지금 쓰라린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림자가 남는 것이다. 그런고로 참으로 큰 승리라고 하는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는 화목하면서 이기는 것이다. 그게 진짜 이기는 것이지, 싸워서 빼앗고 얻는다고 하는 것은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 여러분 요새도 보면 그런 일이 많잖아요. 내가 어떨 때, 땅을 샀다가 샀는데 보니까 갑자기 땅값이 올라갔어요. 돈을 많이 벌었어요. 너무너무 좋아서 "아이구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저 쪽에 땅을 판 사람은 어떻습니까 조금만 더 있다 팔았으면 좋을 걸, 얼마나 가슴이 아파요. 내가 돈 벌었다고 기뻐할 때 한쪽에서 가슴을 치는 사람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가 증권에서 아주 그야말로 상한가를 쳐서 큰돈을 벌었다고 축제를 벌일 때, 한쪽에서는 가슴을 치며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했습니까 이 생각을 못하고 이루어지는 축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오래갈 수가 없어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유는 화목에 있어요. 더불어 행복하고, 더불어 번영하고, 더불어 잘 살아야 그게 진짜로 행복한 것이지 나 혼자만, 나 하나만, 우리 가족만, 우리 식구만, 안 될 소리요. 더구나 요새는 이 지구촌에 있어서 세계에서 "우리만, 우리 민족만" 아니에요. 다 함께 행복하기 전에는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특별히 신학적 사건이 있습니다. 야곱이 형님 에서와 만나는 순간에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형님하고 만나는데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고 그는 그런 절정적인 감격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너희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러 나올 때 누가 너를 원망하는 일이 생각이 난다고 하자. 제물을 거기 놓아두고 먼저 가서 화목하고 이유야 어쨌든 화목하고 다시 와서 제물을 드리라." 누가 너를 원망하고 있는 동안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 앞에 상달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또 히브리 12장에 보면은 말씀하시기를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요. 아무리 복을 달라고 빌어도 하늘이 복을 내릴 수가 없단 말입니다. 화평함이 없이는 원망과 불평하는 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내리지 않습니다. 야곱 쪽으로 볼 때에는 사실 변명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존 그레이라고 하는 유명한 인간관계 상담가가 있는데 그가 쓴 책, 벌써 나온 지 오래 됐습니다.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사랑 잠언록" 이라는 게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이유, 우리가 서로 상처받는 이유는 90%가 과거에 인연된다는 겁니다. 지난 일 때문이에요. 그래 과거에 메이는 사람들은 항상 부러워할 수밖에 없어요. 과거의 일을 깨끗이 잊고 오직 미래만을 생각할 때에 하나가 될 수 있는 건데 화평할 수가 있죠. 옛날 일을 가지고 되씹고, 되씹고, 되씹고 아무리 씹어봐도 이로써 화해되는 법은 없어요. 90%가 과거문제로 상처를 입는다는 겁니다. 오직 10%만이 실제 이유가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네가지 아주 그런 화학작용이 이루어집니다. 물리작용이 아니고 화학작용이 이루어집니다. 육체적 화학작용이 욕망을 만들고 감정적 화학작용이 애정을 만들고 정신적 화학작용이 관심을 만들고, 영적 화학작용이 사람을 만든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지금 화평을 잃어버렸어요. 그런고로 평안이 없어요. 이제 나름대로 할 말이 있지요.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이거 쌍둥이 아닙니까 에서와 사이에. 그 어느 날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오면서 몹시 배가 고플 때 그 죽을 쑤고 있는 야곱을 볼 때 "거 나 죽 좀 빨리 한 그릇 줬으면 좋겠는데안됩니다. 아니, 이거 한 그릇 줄 테니까 형님의 그 형님 권한을 내게 파세요" 이러고 나옵니다요. "아 내가 지금 죽게 됐는데 그까짓 거 형님은 무슨." 쌍둥이 형님 상관없다 이거요. "그래 너 가져라! 형님 너 가져라" 그래 놓고 죽 한 그릇 얻어먹었거든요. 야곱 쪽에선 거래가 끝났어요. 이제 야곱이 형이요. 그러니까 야곱이 아버지를 속인 건 잘못이지만 형이 화가 나서 야곱을 죽이겠다고 하는 것은 형의 잘못이요. 따지자면 할 말이 있어요. 남의 약점을 이용한 데는 좀 간사한 데는 있지만은 야곱은 야곱대로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양심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렇질 않아요. 세상사람 앞에는 내가 옳아요. 불화의 원인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저기에 있어요. 그것이 통하질 않아요. 야곱 자신은 이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형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해야했던 겁니다. 형님의 책임이라고 밀어붙일 수가 없어요. 책임을 전가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내 마음은 여전히 평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화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적 방법도 다 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일단 도망가기도 했고, 또 오늘 와서는 예물을 보내고, 만일에 형님이 쳐들어오면은 이리 저리 도망가겠다는 계획까지 세웠지요. 그래도 특별히 야곱이 좀 급한 것은 형님이 400명을 거느리고 온답니다. 400명을 거느리고 와서 나를 죽일 건지 살릴 건지를 알 수가 없어요.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그래서 그는 얍복강변에서 철야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남아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에는 기도제목이 많았을 겁니다. 건강주세요, 물질주세요, 자녀주세요, 뭐 그랬겠지만 오늘은 그거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화목을 주세요. 형님과 화평하게 해주세요. 어쨌든지 형님과 화해하게 해주세요. 오로지 화평, 그 하나만을 위해서 밤새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이 강을 건너서 형님을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엔 단독으로 만납니다. 무방비 상태로 만납니다. 형님이 그저 칼로 찌를는지 알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기도 응답을 믿고 가서 만납니다. 형님이 달려와서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너무너무 감격해서 오늘 성경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형님의 낯을 보니 내가 하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20년 동안 막혔던 담이 무너질 때 이 같은 감격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옛날 그는 고향에서 피난의 길을 떠날 때, 베델에서 하늘이 열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사다리가 놓이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만은 오늘은 좀 더 실제적입니다. 원수 되었던 형님과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순간 하늘이 열리는 기쁨을 느낍니다. 이기적인 복은 없습니다. 이기적인 기도도 없습니다. 이기적인 행복도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벤허라고 하는 유명한 영화가 있죠. 마지막 장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 내 손에서 칼을 빼앗아 가는 것을 느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 손에서 칼이 떠나버렸다. 그 후로 벤허는 칼 없이 싸우고 칼 없이 용감한 사람으로 승리합니다. 칼 없이 승리합니다. 이것이 벤허의 주제입니다. 여러분 불화의 이유 누구에게 묻겠습니까 아무도 탓하지 마세요. 그러나 반드시 화목을 해야됩니다. 어떤 희생을 지불하고도 화평이 없이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의 귀한 자녀들 잘살아 보려고도 하고 부하게 살아 보려고도 하고 때로는 살아 남으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마는 이렇게 애쓰는 가운데 소중한 화평을 잃어버린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남을 불행하게도 하고 내가 얻기 위해서 남을 손해 끼친 때도 많았습니다. 화평이 없기에 어디서나 기쁨이 없고 성취했으나 아무 보람도 없었습니다. 주여 원하오니 참으로 화목케 하시고 화목의 능력 화목의 지혜, 화목의 용기를 주셔서 화평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은 놀라운 감격으로 남은 해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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