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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구원의속성 (빌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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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 임종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월터리드 육군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빌리 그레함 목사님께서 그 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그 면회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했습니다. 면회시간이 되어서 그는 찾아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다가 시간이 되어서 이제 나가려고 일어서니까 아이젠하워께서 말하기를 "좀 더 있다 가시지요" 이제 빌 목사님은 "무슨 특별히 하실 말씀이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신중하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이 아이젠하워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그 때에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기도교의 근본 교리를 간략하게 설명하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자기 의로 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잘한 일, 못한 일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슨 의를 잘했다고 내 놓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 은혜를 감사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됨을 하나님께서 확증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한참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상하다가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빌리, 감사하오. 나는 이제 준비가 되었소"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게 무엇입니까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할 것 없습니다. 참 구원이란 바로 이 마지막 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최종구원 Final Salvation, Final Triumph, 마지막 승리, 마지막 구원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생각해 보십시다. 저는 두 교회를 섬깁니다. 한 40여년 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봅니다만은 전에 그렇게 젊고 아름다웠던 분이 이제 할머니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당당하던 분이 이제 허리가 꼬부라지고 백발이 되고 또 우리 가운데 있는 분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는 것을 봅니다. 저희 교회만도요 1년에 300명 이상 주님 앞으로 갑니다. 이렇게 가다보면 여러분과 제 차례가 될 겁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이 순간 생각해 보십시오. 잘 살고 못 살고 부하고 가난하고 외롭고 출세하고 못 하고,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아이젠하워가 직면했던 이 시간입니다. 그 순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겁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종말론적 공동체라고도 하고 혹 비유적으로 말하는 분들은 천당 가는 대합실이라고 합니다. 여기 머물러서 주님 앞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구원, 이 참 구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우리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 그 구원을 우리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는 과거 구원입니다. 우리 옛날 죄로부터 믿기 전에 생활로부터 타락한 생활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그의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 앞에 가나안 땅이 있습니다. 약속의 땅,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그 곳에 우리가 가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구원입니다. 완전한 구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매일매일 구원을 체험하면서 성장해 나가는데 세상으로 기울던 사람들이 하늘나라 지향적으로, 물질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진리를 생각하고, 나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면서 현재적으로 많은 시험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고 구원받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적 구원입니다. 특별히 사도바울 신학에서 이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저 신학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구약으로 돌아가서 출애굽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구원론과 교회론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았습니다.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기적적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이제 애굽과는 관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첫째 구원이고 요단강을 건너가야 구원이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마지막 구원이 되겠습니다. 그 구원의 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 머무는 동안 이게 교회입니다, 광야교회. 그 교회 머무는 동안에 그들은 많은 시련 속에서 훈련을 받으며 이제 영원한 구원을 지향하게 됩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 광야교회에서 하는 일은 뭐냐 옛날 생활의 잘못되었던 풍속, 성품, 세계관, 가치관 이런 것들을 끊어 버리는 그리고 하늘나라 지향적인 사람으로 키워나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광야교회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옛 생활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버리는 겁니다. 이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여기서 의식을 바꾸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때에 지키게 될 율법, 하나님의 법을 미리 주어서 여기서 법에 대한, 하나님의 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법을 몸에 생활에 익히도록 비상한 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 훈련과정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걸 Discipline 이라고 합니다. 제자훈련, 훈련을 받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독일이 동서독, 독일이 통일이 된지 꼭 10년입니다, 금년이. 이제 우리는 한 번 생각합니다. 동독 서독이 통일된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정말 통일이 된 거냐고. 그거 잘한 거냐고 못한 거냐고. 지금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통일된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는 통일이 됐는데 의식이 아닙니다. 세계관이 아닙니다. 사는 자세가 틀립니다. 이것 때문에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지금 심지어는 통일된 것 잘못됐다는 말까지 지금 나오게 됩니다. 제가 동독을 방문하고 서독 방문했을 때도 이거 완전히 잘못된 거라고 그런 얘기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새 신문에 비판이 나온 것을 보니까 그랬어요. "멀고도 험한 완전한 통일의 길." 우린 통일 된 거 같은데 아니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이중식민지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사회주의 식민화, 이렇게 비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자, 물리적으로는 통일이 됐으나 정신적으로는 아니라 이거예요. 점점 더 어려운 갈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 이것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원받았으나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입니까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냐 어디까지 왔습니까 이것을 묻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 혹 자동차를 타십니까 자동차 운전을 할 때 보면 이거 뭐 운전면허 따고 자동차 내 자동차에 떡 올라탔습니다. 이거 분명히 내 자동차입니다. 내가 운전 할 겁니다. 자, 이제 운전이 마음대로 됩니까 내가 편안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되려면 아무래도 최소한도 3년 이상 걸릴걸요 또 어지간히 사고도 내고 이리 찌그러지고 저리 부딪치고 이래 가면서 이 운전이라고 하는 그 단순한 그것 하나를 몸에 익힌다 이 말이에요. 이 몸뿐입니까 기술이요. 마음이요. 정신까지 드라이빙 마인드가 있는 거예요. 이거까지 다 훈련을 해서 온전하게 운전이라고 하는 것을 내 것으로 삼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이게 쉽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수십년 운전하고도 영 판이 틀렸어요. 잘못됐어요. 잘못 배웠어요 그 사람. 왜 이런 겁니까 여기에 바른 훈련의 길이 있어야 되고요 긴 시간의 훈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운전사가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보면 "너의 구원을 이루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현재적 구원을 말하는 겁니다. 과거구원을 말할 때마다 "구원 얻었느니라" 그러구요, 미래의 구원을 말할 때마다 "구원 얻으리라" 하고 말씀하구요, 오늘 본문 말씀은 "구원을 이루라." 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기도문 가운데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것도 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이룬다' 하는 말을 헬라 원문으로는 '카텔리카제스테' 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워크 아웃(Work out), 그런 뜻입니다. 워크 아웃. 여러분 요새 신문에 많이 나오죠 워크 아웃. 그거예요. 아주 끝내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는 지성이 구원을 받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셨어요. 그걸 깨달아야합니다. 깨달음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믿은 줄 알았는데 아니요. 하나님이 나를 믿게 한 것이요. 내가 이 자리에 겨우 나와 앉은 거 이거 놀라운 기적이에요. 그것도 뭐 말마따나 "내가 예수를 믿다니 천지개벽 이후 최고의 기적입니다" 그래요. 내가 예수를 믿다니 기적이라요. 어떤 사람은 병원으로 몇 바퀴 돌아 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아예 그저 감옥에까지 갔다가 교회왔더라구요. 어려운 겁니다. 결국은 이제 깨닫습니다. 내가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고. 여기 하나님의 경륜이 있었다고 깨닫습니다. 이 깨달음, 항상 그런 깨달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고로 그는 만족합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하나님이 창조적으로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 속에 내가 있고 나를 주의 뜻에 인도하고 있다, 하는 것이지요. 이 교회 설립만 해도 그렇습니다. 23년 전에 제가 뭐 대학의 학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수요일 저녁에 누굴 만났는데 "아이 거 몇 사람 모여서 기도회를 한다는데 거기 목사님 설교 한 번 하러 가십시다.아 그러죠." 목사가 설교를 사양할 수가 있어요 "갑시다." 그 사람의 차에 탔습니다. 그리고 압구정동을 찾아옵니다. 난 압구정동이 북에 있는지 남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밤중에 찾아와서 열한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소망교회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입니다. 아, 여기가 한국의 일번지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유명한 압구정동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도 몰랐고 여러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거요. 이 깨달음에 의미를 깨닫고 은총을 깨닫는 그런 지성적 구원이 있어야돼요. 지성이 구원을 받아야 돼요.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 나라에 참 고맙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구개 누군고 하니 '창조학회' 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물리학자, 주로 물리학자들이 Ph. D., 박사학위를 가진 분들이 무려 300명이나 여기 등록이 되어 있는데, 회원으로, 이 분들은 철저한 과학자입니다만은 창조론을 믿습니다. 진화론은 거짓말이요, 성경말씀이 너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죠. 이걸 이렇게 믿고 신조를 고백하고 복음전파를 위해 애쓰는 분이 무려 300명이나 되요. 너무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이 세계의 유명한물리학자들 또 과학자들 요새 말하면 벤처의 기술자들 가운데는 특별히 요새는 지놈 학자들도 보면은 그중에 아주 신앙이 좋은 분이 있어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놀라는 것이에요. 너무너무 감격해요. 이건 지성이 구원받은 것이에요. 요새 보니깐 별로 시원치도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 이 딴 소리나 하고 앉았지. 과학자들이, 그 옛날 아인슈타인 박사도 그렇구요. 그 분이 조금만 더 살아 계셨더라면 신학에 더 큰 공로를 세웠을 거라고 그렇게들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연구를 신학적으로 했어요. 제가 왜 이 말씀드리고 하니 우리의 지성, 우리의 생각하는 것, 이성이 구원을 받아야 돼요. 이러고 보면 성경 어디를 읽어도 다 귀한 말씀이요. 다 옳은 말씀이요, 바른 말씀이요, 이렇게 이해가 되는 거고 합리적으로 이해가 돼요. 여기에 의심이 아직도 많다면 아직도 내 지성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지성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는 얘기고요. 중국에 가니까 그 분들은 아주 말을 해도 유식하게 말을 해요. '삼관개혁' 그러더라구요. 삼관개혁. 그래서 또 이 중국말이 원래 유식한데 무슨 소리하나 했더니 별 얘기가 아니에요.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의 개혁이 없이는 경제 정치 아무 소용없다 이거예요. 여러분 가치관의 변화가 없이 가치관이 중생하지 못하고 돈 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 살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돔 고모라가 되고 마는 거지. 그야말로 꽝하고 망하고 끝나는 거예요. 잘 사는 거 좋은 거 아니에요.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구원을 받아야돼요. 그리고야 참 구원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또 하나는 감성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그랬어요. 이 두려운 마음, 떨리는 마음, 이 경건, 이 경건적인 감성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 감성이란 감지능력을 말하는 것이요, 주변환경에 대한 내 반사능력을 말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자기를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는, 이것이 바로 EQ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신앙적 EQ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감성은 어디까지 왔습니까 무엇을 기뻐하고 있는 겁니까 무슨 일에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까 무슨 일이 자랑스럽습니까 이 감성이 아직 구원을 못 받으니까 그저 예수를 믿으면서도 즐기는 것은 노래방만 즐기고 있는 거예요. 이 딴 데로 가는 거예요. 뭔가 지금 아직 우리의 기쁨, 그게 없어요. 자,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구원받을 때에 열 가지 재앙을 보았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는 엄청난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그들 앞에 좀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원망해서 쓰겠어요
그런데 뭐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뭐 또 배고프다고 원망하고, 뭐 고기 먹고 싶다고 원망하고……. 여러 가지예요. 난 특별히 원망하는 얘기 가운데 드라마틱한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은. 마늘과 부추가 없다고 원망했어요. 근데 왜 마늘과 부추냐 그 설명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정력이 떨어져서 못 살겠다구 그랬어요. 아 원망도 여러가지더라구요. 여러분, 원망죄가 가장 큰 죄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래서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지금 원망이 얼마나 남아있습니까 아직도 불평이요, 원망이요, 이래 원망 저래 원망입니까 아직 당신은 미숙한 거예요. 유치한 거예요. 그 큰 은혜에 감격하고나서 보면은요 다 소화할 수 있어요. 이게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아무 것도 문제될 수가 없어요. 주님이 기뻐하시던 거 기뻐하고 주님이 사랑하시던 거 사랑하고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한 복음 14장에 말씀하십니다. 그 평안이 내게 있고. 또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 마음을 품으라. 주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빌립보 2장에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던 거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좋아하시던 거 좋아하고, 기 뻐하시던 것 기뻐하고,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EQ가 되는 것이올시다. 그저 신천의 교회에서 목회하시던 김익두 목사님이라고 있습니다. 그 분은 신천장의 유명한 깡패인데 거기서 예수 믿고 회개하고 목사가 되가지고 또 신천에서 목회하셨습니다. 제가 여러번 직접 뵈었는데요, 참 장대하게 생긴 분이구요 한 번 악수를 하면 손이 부러져나갑니다. 얼마나 센지. 이런 분입니다. 아예 좌우간 "목사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손 부러집니다" 제가 그랬어요. 얼마나 힘이 센지. 그런 분인데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어서 "김익두는 완전히 변했다" 하고 소문이 나고 이제 전도사가 돼서 사방에 전도운동을 하러 다니는데 어떤 분이 과거를 잘 아는 분이니깐 어떤 아주머니가 생각하기를 '김익두가 변하면 얼마나 변했겠나. 아이구, 그게 얼마나 무서운 깡패였는데' 생각을 한 거예요. 바로 문 앞에서, 자기 집 앞에서 예수 믿으라고 그러니까 어디 보자 하고 물바가지를 갖다가 얼굴에다 확 끼얹었어요. 그러구 기다렸더니 김익두 목사님 편안히 웃으시면서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그랬거든요. 그때 하는 말이 "어디 김익두 얼마나 죽었나 보자" 그랬다구요. 그러니까 김익두 목사님 말씀이 "내가 죽었으니 아주머니가 살아있지 않소." 아니 예수 믿기 전에 이런 일 당했으면 당신이 살겠소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게 바로 죽었다는 뜻이요.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죽었습니까 아직도 못된 게 살아 가지고 꿈틀꿈틀 하고 말이야. 이게 이래가지고 되겠냐 이말이에요. 또한가지는요, 의지가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에 가서는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대립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에는 '항상 복종하여' 그랬어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라. 복종할 때가 와야돼요. 결정적인 시간에 가서는 나를 죽여야 돼요.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바로 이러한 Total Commitment, 완전히 위탁하는 그런 신앙이 되야 된다는 말이죠. 소원을 성취할려면요 열 가지 단계를 거친다는 심리학적 연구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I won't, 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는 사람은 성공 확률이 제로요.I can't,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는 사람은 10%.I don't know how, 어떻게 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하는 그런 사람은 20%.I wish
I could, 하고 싶습니다,는 30%. What is it,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소, 40%.I thinkI might, 이것은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는 이 사람은 50%.I might, 할 수 있을 겁니다, 하는 사람은 60%.I thinkI can,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는 사람 70%.I can, 내가 할 수 있다, 하는 사람은 90%. By GodI can,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다, 그 신앙적으로 결단하는 사람은 100%,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이번에 운동 경기하는 것을 보았지요. 제가 자세히 보니까 준결승이라는 게 있고 결승이라는 게 있드만요. 결승을 Final이라 그러고 준결승을 Semifinal 그러드만요. 그렇습니다. 준결승에 실패하면 결승에 못 나가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결승에 나가기 위해서는 준결승에 이겨야 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말하는 매일 사는 생활은 준결승적인 의미가 있어요. Semifinal, 여기서 이겨야만 내가 저기에 도달할 수 있어요. 나의 구원 어디까지 왔습니까 당신의 구원을 묻습니다. 당신의 지성 감성 의지가 어디까지 왔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세요. 여기 이 준결승에서 승리해야 최종승리를 바라볼 수 있구요, 최종승리를 바라보기에 그 믿음 그 소망으로 오늘의 이 현재적 시련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올시다.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그 영광이 우리교회 23주년을 맞이하면서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은혜 베푸시고 저희 교회에 은혜 베푸시고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시사 여기까지 승리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승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고 주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지성 감성 의지가 온전히 구원함을 받아서 저 영원한 하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오늘을 이기게 하셔서 날마다 승리하게 하시고 그리고 최종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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