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있는것이좋습니다 (막9:1-8)
본문
미국에서 미식축구의 인기라고 하는 것은 하늘을 찌를 정도입니다. 어느 마을에 있든지 이 경기가 시작이 되면은 수 만 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성을 지르고 굉장한 그런 열기를 올리는 그런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 미식 축구의 결승전 티켓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여기에 이러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 결승전 열리는 날, 한 남자가 어렵사리 입장권을 하나 구했습니다. 그리고 먼길을 차를 몰아서 거기까지 가서 제 시간에 입장을 하고 보니까 자기 좌석이 그 큰, 십만 명이나 모이는 큰 축구장 맨 뒷좌석이란 말입니다. 거기서 바라보니까 선수들의 백 넘버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물가물 합니다. '아 이거 참 좌석 싼 걸 샀더니 이렇게 아주 잘못 구했구나.' 하지만 여기 들어와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하게 생각하며 구경을 하다가 보니까 저 앞자리에 멀리 한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았어요. '아하, 저거 어떻게 비어있을까' 그리고 슬슬 내려가서 그 옆에 있는 사람보고 "저 여기 앉아도 될까요" 그러니까 "앉으세요" 그러더랍니다. 너무 감격해서 그는 또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 자리가 비어 있습니까제 아내를 위해서 샀던 표인데 이렇게 비어있습니다.그럼 아내가 왜 여기 못왔습니까죽었어요.그러면 그 친구든지 친지라도 모시고 올 것이지 이 귀한 자리를 어떻게 이렇게 비워놨습니까그 친지들 다 장례식에 갔어요." 그러더라구요. 이 구경에 미친 사람 많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보면 야구 좋아하는 분이 있는데 제가 아는 분도 늘 병원에 입원할 때가 많은데 입원했다가 없어져요. 거기가 앉아있어요. 아주 의사를 골탕먹이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이랬어요.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말씀이에요. 여기 지금 이 시간이 좋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여기가 좋습니다. 지금이 좋습니다." 하나 덧붙이고 싶어요. "이대로 죽어도 좋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생각하면 지금보다 그 당시는 더 어려운 때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가정 이 베드로는 가정을 가진 사람이예요. 지금 가정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아요. 저 혼자 여기 앉아 가지고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대로 살아 버리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더라구요. 그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그 생각 없습니다. 암담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습니다. 오로지 만족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만족합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아주 극치적인 행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 분석학자인 롤로 메이(Rollo May) 라고 하는 분이 쓴 The Discovery of Being 이라고 하는 책에서 사람의 삶의 형태를 세 가지 형태로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학술적인 얘기기도 하지만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움벨트(Umwelt)라고 하는 환경세계라고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환경과 나와의 관계에서 행복이 좌우됩니다. 환경의 문제, 집이라든가 거처라든가 공기라든가 뭐 우리 주변환경, 모든 환경을 통틀어서 환경세계, 그 관계와 나와의 관계에서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또 하나는 밋벨트(Mitwelt)입니다. 밋벨트라는 말은 공동세계를 말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공동체, 이 사람의 세계. 지금 내가 혼자입니까 여기 친구가 있고 친척이 있고 부모님이 있고 자식이 있고 그리고 우리가 많은 민족이 있고 많은 사람 속에 내가 있거든요. 이 많은 사람과 이웃 관계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떻게 인정을 받느냐에 따라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밋벨트의 관계 속에 있고, 또한가지는 아이젠벨트(Eigenwelt)입니다. 이 자아세계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자아성찰적 존재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환경도 좋고 모든 관계가 다 좋다고 하지만 그 관계도 알고 보면 나 자신의 문제들이에요. 나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성찰하느냐에 따라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는 "여기가 좋습니다" 하는 이 이야기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충족되고 어쩌면 아이젠벨트가 증발했어요. 내가 누구냐, 내가 어떠냐, 내가 죄인이냐, 내가 의인이냐, 내가 얼마나 인정을 받느냐 그거 전혀 관계가 없구만요. 그대로 여기가 좋습니다. 이 순간이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요. 가장 만족한 극치의 시간이라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며칠 앞두고 불과 몇 주일 전에 제자들에게 이같은 놀라운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어쩌면 십자가 사건을 앞에 보시면서 예수님도 십자가를 져야하고 또 제자들도 십자가를 져야됩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다가오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이런 환상의 세계를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고 체험하게 했습니다. 요새말로 언어를 바꾸어 말하면 고난과 위기에 대한 대처 자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위기 극복능력을 가르치는 겁니다. 어려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지혜입니다. 여러분 세상 문제를 놓고 세상을 들여다본다고 해결이 됩니까 요새 뭐 문제 해결한다고 해서 뭐 검찰이다 뭐다 해가지고 아무리 쑤셔봐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안 된다는 것쯤은 이제는 알아야될 것입니다. 자 이제 보세요. 이 위기, 무엇으로 극복할 것입니까 누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떤 자세로 임하면 임하는 문제가 아주 편안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변화하셨다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변화하셨다, Transfiguration. 메테몰페데테, 모양을 폼을 형체를 변화시켰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이 변화된 것이냐, 아니면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본래 영광된 그러한 형체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잠시 육체를 입어서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 계십니다. 또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나서는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가서 영광된 형체로 그렇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면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 사이에 잠깐 있는 작은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이요.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십자가 문제를 놓고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나를 못 보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겠다." 세상에 십자가처럼 엄청난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아주 작은 것으로 보았어요. 아주 작은 사건으로 보았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True Fact 입니까 정말로 진짜 사실 본체적 사실이 무엇입니까 참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금 눈앞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고 영광된 세계란 말이에요. 그 영광된 세계가 그게 본체요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자그마한 잠깐 지나가는 사건들일 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러주시고 싶었던 겁니다. 보여주시고 싶었던 겁니다. 장차는 이렇게 된다. 그걸 바라보면서 오늘을 견디라 이거에요. 이건 문제가 아니죠. 저것만 확실하다면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어쨌든 이런 굉장한 사건이 있을 때, 잠깐 영원한 세계가 번쩍 열렸을 때 이 베드로라는 사람은 끼어 들기를 좋아하는 적극적 성격이에요. 그러다가 실수를 많이 했죠. 아무튼 끼어 드는데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 말이 잘 안되는 거예요.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여기가 좋습니다." 거기까지는 잘 했어요. 그 다음 말이 이게 이게 멍청한 소리예요. "천막 셋을 지어서" 이러고 나오잖아요. 이건 정신없는 소리했다고 성경에도 해석을 했어요. 이건 정신없는 소리 한 거다, 그럽니다. 이 영광 중에 천막이 왜 필요합니까 아 천막이야 자기들이 필요하지, 이슬 맞지 않게. 뭐 하룻밤을 자더라도 천막은 필요한 거지만 아니 이거 지금 예수님의 영광, 거기 엘리아와 모세, 아니 이 속에 왜 천막이 필요하냐구요. 이거 한심한 제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천막은 셋만 짓겠습니다. 엘리아를 위하여 모세를 위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그러면 자기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진짜 필요한 건 자기들에게 필요한데. 그리고 큰 천막 하나 더 짓겠습니다, 그래야지 어째 천막 셋만 하겠다는 거예요 자기들은 노숙하겠다는 건가 이게 도대체가 정신없는 소리고. 또 하나는 아 천막만 있으면 됩니까 먹을 것이 있어야지. 아니 담요도 있어야지. 안 그래요 우리 나진에 지금 저희 교회에서 큰 고아원을 하나 지었습니다. 한 천명 들어가서 수용하게 됩니다. 지금 다 지어서 이번에 이부자리 500개를 만들어서 지금 보내주었습니다만은 자, 이런 거, 집을 지어놓고 보니까 집만 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밥그릇에서부터 뭐 이부자리에서부터 게다가 또 거기에 또 물이 좋지 않아서 물을 또 펌프를 만들고. 아이고 뭐 또 전기가 오락가락하니까 전기 발전기……. 그 집만 가지고 됩니까 거기에 따르는 모든 부속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아 지금 그게 걱정이에요. 여러분 돈 좀 있으면 내 놓으세요. 그거 참 많이 필요하더라구요. 너무 뒤따르는 일이 많아요. 계속 공급되어야 되는데 이천명에 대한 식량도 그렇고요. 우유를 갖다 주어야 하는데 우유를 싣고 다니는 자동차도 있어야 되겠고, 아유 그렇더라구요. 자 보세요. 천막만 덩그랗게 있으면 되겠어요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도대체가. 그러고 보니까 이 사람, 정신없는 소리 한 거죠 너무 좋으니까. 이대로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 그대로 계속 있고 싶습니다. 마누라 생각도 안하고 여기가 좋습니다. 누구 데려올 생각도 안하고 여기가 좋습니다 이거야. 참 거 참 기가 막힌 시간입니다. 여러분 이게 진짜 같애요. 이게 진짜 행복인 거 같애요. 내가 지금 좋다고 해서 누구 생각나고 뭐 그러면 그 행복이 다 깨지죠. 그렇지 않아요 저는 가끔 좋은 음식을 대할 때마다 '아이고 참 우리 어머니는 이런 것도 못 잡숴봤는데' 그러면 입맛이 없어요. 재미가 없다구요. 그 생각도 사실은 없어야 맛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대로가 좋습니다.그런데 이건 미래 지향적인 약속된 현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은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저는 이 요절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어요. 죤 칼빈, 종교개혁자 칼빈은 세상 떠날 때 이 요절을 스물일곱번 외웠다 그래요. 똑같은 말을.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우리의 영광과 족이 비교할 수 없도다. 비교할 수 없도다" 하다가 스물일곱번째 다 외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우리 앞에 나타날 영광과 현재, 비교할 수가 없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갔어요. 고린도 후서 4장 17절에 보면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영원한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럴 때에 오늘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요, 작은 것이요, 경한 것이요, 지나가는 것이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그렇게 간주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현대를 가르쳐서 3F 시대라고 합니다. Feeling 시대라고 했어요. 감성의 시대라고. 요새 젊은 사람들을 보면은 그래요. 옛날에는 뭐 인물이 좋고 나쁘고 학벌이 좋고 뭐 재주가 있고 뭐 이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딱 만나면은 Feel 이 있냐 요런데요. 느낌이 있으면 되는 거예요. 느낌으로 사는 거지. 그거 참 일리가 있는 얘기예요. 그런가 하면 Female 시대라고 합니다. 전에는 근육위주의 시대예요. 완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노동자, 농민, 농사, 공장, 뭐 망치질 그렇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사이버의 시대고 정보의 시대이기 때문에 여성시대가 됐어요. 여성들이 아주 훌륭하게 남자와 못지 않게 동등하게 더 잘할 수도 있는 그런 세대가 되어서 지금은 여성시대다 그렇게 말합니다. 중요한 말은 Fiction 시대라는 겁니다. 사이버 문화의 시대요 가상현실에 익숙한 시대입니다. 가상현실. 그런고로 자아정체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Fiction 입니다. 상상의 시대입니다. 그것이 지금 현실로 다가옵니다. 깜짝 놀랄 일들이 자꾸 다가옵니다. 여러분 2020년이 되면은 미래학자들의 결정적인 이야기는 7%밖에는 생산직에 종사할 사람이 없답니다. 이제 나머지는 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요새 뭐 직장이 있다 없다, 없게 돼 있어요 세상이. 이제는 몇 사람만 일하고 나머지는 일할 것이 없어요. 자 이 시대가 다가옵니다. 이건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가 현실로 가까워 오고 있어요. 보다 더 추상적인 상상의 세계가 가까워 오고 있어요. 좀 더 멀리 내다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워 오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을 생각합니다. 현실을 생각합니다. 현실의 의미는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닙니다. 미래에 있는 것이에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타이타닉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지요. 좌우간 요 근래에 와서 최고의 흥행이 되었고 11개 부문에서 상을 받은 그런 작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을 줄 압니다. 그 영화에 주제가를 부른 사람이 세계적인 팝싱어인 셀린느 디옹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는 절정에 있는 가수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과 그 모든 명예를 다 버리고 그는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왜 이 화려한 영광을 버리고 가정으로 가느냐 그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같이 있고 싶어서. 사랑하는 남편은 지금 후두암에 걸려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분과 함께, 사랑하는 자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에 이 화려한 영광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예수님을 보세요. 그 많은 비난을 받고 수욕을 당하면서 빌라도 법정에 섰을 때 그 가소로운 사람들이 소리지르고 비난하고 비방하고 그 빌라도 법정이야말로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빌라도 법정입니다. 이 부정 부패와 악의 극치입니다만은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다 바라봅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생각은 벌써 저기 가 계십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이 마음으로 오늘의 비난을 이기고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여러분 이 놀라운 영광을 보여줬을 때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랬어요. 비밀을 지켜라, 그랬어요. "예수의 웃음"이라고 하는 책에 보니까 요 장면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니 그 영광된 장면을 잘 그렸어요. 보고 만약 비밀을 지키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얘기하고 그러면은 미쳤다고 할 거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 오해가 얼마나 많을 것이냐는 얘기예요. 그러게 되면 다시 또 이쪽도 흔들리게 된다는 거죠. 그런고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마음에 간직하고 비밀로 하고 신비롭게 간직하고 그리고 고난을 이겨라 그랬어요. 그리스도 인의 마음속에 이것이 있는 것이에요. 나만이 아는 비밀이 있어요. 나만이 아는 비밀한 행복이 있어요. 나만이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행복한 것이에요. 오늘의 고난을 다 쉽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인입니다. 순교자는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밝은 얼굴로 원수를 용서하며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하루 우리는 순교적 신앙을 가지고 그 영광된 세계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그리고 오늘을 살아갈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날마다 캄캄하고 어두워지고 있습니다만은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바라보게 하시고 간직하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변화산에 섰던 베드로와 같이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이 좋습니다 하는 감격 속에 그런 신비로운 체험과 행복과 영광을 느끼면서 오늘의 현실을 잘 풀어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이랬어요.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말씀이에요. 여기 지금 이 시간이 좋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여기가 좋습니다. 지금이 좋습니다." 하나 덧붙이고 싶어요. "이대로 죽어도 좋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생각하면 지금보다 그 당시는 더 어려운 때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가정 이 베드로는 가정을 가진 사람이예요. 지금 가정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아요. 저 혼자 여기 앉아 가지고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대로 살아 버리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더라구요. 그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그 생각 없습니다. 암담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습니다. 오로지 만족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만족합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아주 극치적인 행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 분석학자인 롤로 메이(Rollo May) 라고 하는 분이 쓴 The Discovery of Being 이라고 하는 책에서 사람의 삶의 형태를 세 가지 형태로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학술적인 얘기기도 하지만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움벨트(Umwelt)라고 하는 환경세계라고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환경과 나와의 관계에서 행복이 좌우됩니다. 환경의 문제, 집이라든가 거처라든가 공기라든가 뭐 우리 주변환경, 모든 환경을 통틀어서 환경세계, 그 관계와 나와의 관계에서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또 하나는 밋벨트(Mitwelt)입니다. 밋벨트라는 말은 공동세계를 말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공동체, 이 사람의 세계. 지금 내가 혼자입니까 여기 친구가 있고 친척이 있고 부모님이 있고 자식이 있고 그리고 우리가 많은 민족이 있고 많은 사람 속에 내가 있거든요. 이 많은 사람과 이웃 관계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떻게 인정을 받느냐에 따라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밋벨트의 관계 속에 있고, 또한가지는 아이젠벨트(Eigenwelt)입니다. 이 자아세계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자아성찰적 존재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환경도 좋고 모든 관계가 다 좋다고 하지만 그 관계도 알고 보면 나 자신의 문제들이에요. 나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성찰하느냐에 따라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는 "여기가 좋습니다" 하는 이 이야기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충족되고 어쩌면 아이젠벨트가 증발했어요. 내가 누구냐, 내가 어떠냐, 내가 죄인이냐, 내가 의인이냐, 내가 얼마나 인정을 받느냐 그거 전혀 관계가 없구만요. 그대로 여기가 좋습니다. 이 순간이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요. 가장 만족한 극치의 시간이라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며칠 앞두고 불과 몇 주일 전에 제자들에게 이같은 놀라운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어쩌면 십자가 사건을 앞에 보시면서 예수님도 십자가를 져야하고 또 제자들도 십자가를 져야됩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다가오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이런 환상의 세계를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고 체험하게 했습니다. 요새말로 언어를 바꾸어 말하면 고난과 위기에 대한 대처 자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위기 극복능력을 가르치는 겁니다. 어려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지혜입니다. 여러분 세상 문제를 놓고 세상을 들여다본다고 해결이 됩니까 요새 뭐 문제 해결한다고 해서 뭐 검찰이다 뭐다 해가지고 아무리 쑤셔봐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안 된다는 것쯤은 이제는 알아야될 것입니다. 자 이제 보세요. 이 위기, 무엇으로 극복할 것입니까 누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떤 자세로 임하면 임하는 문제가 아주 편안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변화하셨다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변화하셨다, Transfiguration. 메테몰페데테, 모양을 폼을 형체를 변화시켰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이 변화된 것이냐, 아니면 본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본래 영광된 그러한 형체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잠시 육체를 입어서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 계십니다. 또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나서는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가서 영광된 형체로 그렇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면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 사이에 잠깐 있는 작은 사건이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이요.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십자가 문제를 놓고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나를 못 보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겠다." 세상에 십자가처럼 엄청난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아주 작은 것으로 보았어요. 아주 작은 사건으로 보았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True Fact 입니까 정말로 진짜 사실 본체적 사실이 무엇입니까 참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금 눈앞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고 영광된 세계란 말이에요. 그 영광된 세계가 그게 본체요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자그마한 잠깐 지나가는 사건들일 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러주시고 싶었던 겁니다. 보여주시고 싶었던 겁니다. 장차는 이렇게 된다. 그걸 바라보면서 오늘을 견디라 이거에요. 이건 문제가 아니죠. 저것만 확실하다면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어쨌든 이런 굉장한 사건이 있을 때, 잠깐 영원한 세계가 번쩍 열렸을 때 이 베드로라는 사람은 끼어 들기를 좋아하는 적극적 성격이에요. 그러다가 실수를 많이 했죠. 아무튼 끼어 드는데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 말이 잘 안되는 거예요.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여기가 좋습니다." 거기까지는 잘 했어요. 그 다음 말이 이게 이게 멍청한 소리예요. "천막 셋을 지어서" 이러고 나오잖아요. 이건 정신없는 소리했다고 성경에도 해석을 했어요. 이건 정신없는 소리 한 거다, 그럽니다. 이 영광 중에 천막이 왜 필요합니까 아 천막이야 자기들이 필요하지, 이슬 맞지 않게. 뭐 하룻밤을 자더라도 천막은 필요한 거지만 아니 이거 지금 예수님의 영광, 거기 엘리아와 모세, 아니 이 속에 왜 천막이 필요하냐구요. 이거 한심한 제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천막은 셋만 짓겠습니다. 엘리아를 위하여 모세를 위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그러면 자기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진짜 필요한 건 자기들에게 필요한데. 그리고 큰 천막 하나 더 짓겠습니다, 그래야지 어째 천막 셋만 하겠다는 거예요 자기들은 노숙하겠다는 건가 이게 도대체가 정신없는 소리고. 또 하나는 아 천막만 있으면 됩니까 먹을 것이 있어야지. 아니 담요도 있어야지. 안 그래요 우리 나진에 지금 저희 교회에서 큰 고아원을 하나 지었습니다. 한 천명 들어가서 수용하게 됩니다. 지금 다 지어서 이번에 이부자리 500개를 만들어서 지금 보내주었습니다만은 자, 이런 거, 집을 지어놓고 보니까 집만 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밥그릇에서부터 뭐 이부자리에서부터 게다가 또 거기에 또 물이 좋지 않아서 물을 또 펌프를 만들고. 아이고 뭐 또 전기가 오락가락하니까 전기 발전기……. 그 집만 가지고 됩니까 거기에 따르는 모든 부속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아 지금 그게 걱정이에요. 여러분 돈 좀 있으면 내 놓으세요. 그거 참 많이 필요하더라구요. 너무 뒤따르는 일이 많아요. 계속 공급되어야 되는데 이천명에 대한 식량도 그렇고요. 우유를 갖다 주어야 하는데 우유를 싣고 다니는 자동차도 있어야 되겠고, 아유 그렇더라구요. 자 보세요. 천막만 덩그랗게 있으면 되겠어요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도대체가. 그러고 보니까 이 사람, 정신없는 소리 한 거죠 너무 좋으니까. 이대로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가 좋습니다. 여기 그대로 계속 있고 싶습니다. 마누라 생각도 안하고 여기가 좋습니다. 누구 데려올 생각도 안하고 여기가 좋습니다 이거야. 참 거 참 기가 막힌 시간입니다. 여러분 이게 진짜 같애요. 이게 진짜 행복인 거 같애요. 내가 지금 좋다고 해서 누구 생각나고 뭐 그러면 그 행복이 다 깨지죠. 그렇지 않아요 저는 가끔 좋은 음식을 대할 때마다 '아이고 참 우리 어머니는 이런 것도 못 잡숴봤는데' 그러면 입맛이 없어요. 재미가 없다구요. 그 생각도 사실은 없어야 맛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대로가 좋습니다.그런데 이건 미래 지향적인 약속된 현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은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저는 이 요절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있어요. 죤 칼빈, 종교개혁자 칼빈은 세상 떠날 때 이 요절을 스물일곱번 외웠다 그래요. 똑같은 말을.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우리의 영광과 족이 비교할 수 없도다. 비교할 수 없도다" 하다가 스물일곱번째 다 외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우리 앞에 나타날 영광과 현재, 비교할 수가 없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면서 세상을 갔어요. 고린도 후서 4장 17절에 보면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영원한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럴 때에 오늘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요, 작은 것이요, 경한 것이요, 지나가는 것이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그렇게 간주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현대를 가르쳐서 3F 시대라고 합니다. Feeling 시대라고 했어요. 감성의 시대라고. 요새 젊은 사람들을 보면은 그래요. 옛날에는 뭐 인물이 좋고 나쁘고 학벌이 좋고 뭐 재주가 있고 뭐 이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딱 만나면은 Feel 이 있냐 요런데요. 느낌이 있으면 되는 거예요. 느낌으로 사는 거지. 그거 참 일리가 있는 얘기예요. 그런가 하면 Female 시대라고 합니다. 전에는 근육위주의 시대예요. 완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노동자, 농민, 농사, 공장, 뭐 망치질 그렇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사이버의 시대고 정보의 시대이기 때문에 여성시대가 됐어요. 여성들이 아주 훌륭하게 남자와 못지 않게 동등하게 더 잘할 수도 있는 그런 세대가 되어서 지금은 여성시대다 그렇게 말합니다. 중요한 말은 Fiction 시대라는 겁니다. 사이버 문화의 시대요 가상현실에 익숙한 시대입니다. 가상현실. 그런고로 자아정체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Fiction 입니다. 상상의 시대입니다. 그것이 지금 현실로 다가옵니다. 깜짝 놀랄 일들이 자꾸 다가옵니다. 여러분 2020년이 되면은 미래학자들의 결정적인 이야기는 7%밖에는 생산직에 종사할 사람이 없답니다. 이제 나머지는 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요새 뭐 직장이 있다 없다, 없게 돼 있어요 세상이. 이제는 몇 사람만 일하고 나머지는 일할 것이 없어요. 자 이 시대가 다가옵니다. 이건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가 현실로 가까워 오고 있어요. 보다 더 추상적인 상상의 세계가 가까워 오고 있어요. 좀 더 멀리 내다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워 오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을 생각합니다. 현실을 생각합니다. 현실의 의미는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닙니다. 미래에 있는 것이에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타이타닉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지요. 좌우간 요 근래에 와서 최고의 흥행이 되었고 11개 부문에서 상을 받은 그런 작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을 줄 압니다. 그 영화에 주제가를 부른 사람이 세계적인 팝싱어인 셀린느 디옹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는 절정에 있는 가수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과 그 모든 명예를 다 버리고 그는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왜 이 화려한 영광을 버리고 가정으로 가느냐 그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같이 있고 싶어서. 사랑하는 남편은 지금 후두암에 걸려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분과 함께, 사랑하는 자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에 이 화려한 영광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예수님을 보세요. 그 많은 비난을 받고 수욕을 당하면서 빌라도 법정에 섰을 때 그 가소로운 사람들이 소리지르고 비난하고 비방하고 그 빌라도 법정이야말로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빌라도 법정입니다. 이 부정 부패와 악의 극치입니다만은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다 바라봅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생각은 벌써 저기 가 계십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이 마음으로 오늘의 비난을 이기고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여러분 이 놀라운 영광을 보여줬을 때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랬어요. 비밀을 지켜라, 그랬어요. "예수의 웃음"이라고 하는 책에 보니까 요 장면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니 그 영광된 장면을 잘 그렸어요. 보고 만약 비밀을 지키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얘기하고 그러면은 미쳤다고 할 거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 오해가 얼마나 많을 것이냐는 얘기예요. 그러게 되면 다시 또 이쪽도 흔들리게 된다는 거죠. 그런고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마음에 간직하고 비밀로 하고 신비롭게 간직하고 그리고 고난을 이겨라 그랬어요. 그리스도 인의 마음속에 이것이 있는 것이에요. 나만이 아는 비밀이 있어요. 나만이 아는 비밀한 행복이 있어요. 나만이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행복한 것이에요. 오늘의 고난을 다 쉽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인입니다. 순교자는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밝은 얼굴로 원수를 용서하며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하루 우리는 순교적 신앙을 가지고 그 영광된 세계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그리고 오늘을 살아갈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날마다 캄캄하고 어두워지고 있습니다만은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바라보게 하시고 간직하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변화산에 섰던 베드로와 같이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이 좋습니다 하는 감격 속에 그런 신비로운 체험과 행복과 영광을 느끼면서 오늘의 현실을 잘 풀어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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