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웃기시는여호와하나님 (창21:1-7)
본문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체험할 수 있는 보편적이지만 가장 위대한 기적적 체험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낳고 또 자녀를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누구나 다 하니까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생명이 탄생하는 일을 지켜보신 일이 있습니까 생명이 탄생하는 것. 우리 한국에서도 요즈음 이런 제도가 도입되어서 몇 병원에서 실험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은. 미국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 반드시 남편이 그 자리에 입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와주어야 돼요. 그래서 출산하는 자기 부인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종종 제가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출산실에서 나오는 남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소감이 어떠냐고. 그러면 막 출산실에서 자기 와이프를 돕고 나오다가 보면, 남자들의 표정을 보면 굉장히 이상한 표정이에요. 한편으론 겁에 질린 듯한 표정 또한편 아기를 잘 낳았다는 안도, 어떤 희열, 영어에 복합적 감정을 나타낸 단어 가운데 mixed emotion 아주 복합된 표정의 얼굴들을 접하게 됩니다. 당연하죠. 생명의 탄생, 이것은 기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의사 가운데 폴 브랜드라는 분이 계신데 오묘한 육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 분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생명이 잉태하고 탄생하는 것, 그것은 이 하늘의 무변한 공간에 감탄 부호로 가득히 채워도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다. 이 하늘의 무변한 공간에다가 계속 감탄 부호를 다 채워도, 그것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기적, 이것이 바로 생명의 탄생이라는 기적이다. 여러분, 생명의 탄생만이 기적이 아니죠. 생명이 자라가는 것, 이것은 기적이 아닌가요 여러분의 친구들 혹은 친척들의 자녀들 한 1년, 2년, 3년 안 보았다가 갑자기 만나보게 되면 훌쩍 자라난 아이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신기하지 않습니까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지 않으시나요 지난 금요일 날이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본래 어린이 라는 단어를 방정환 선생님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지요. 뜻을 아십니까, 어린이 모르고 사용하십니까, 어린이 어리신 이, 그런 뜻이에요. 어리신 이, 어리신 분. 아이들에게 바칠 수 있는 그 존경과 경외감을 담아서 우리 방정환 선생님이 만드신 아주 아름다운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신 이, 어린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런 자녀를 낳고 어린이를 키워가는 이 기적을 경험하면서 이 기적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어떤 응답을 드리고 계시나요 오늘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오늘 본문에 보시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드디어 아들을 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이라는 새로운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보여주었던 반응을 우리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자녀를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 있어서 이 기적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응답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 아브라함이 자녀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 백 세가 되어 얻을 수가 있었던 것. 이 자녀의 얻음의 배후 속에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에요. 하나님의 신실하심. 사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자녀를 약속하신 것은 이때부터 25년 전이었습니다. 창세기12장에 처음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너를 축복한다, 너의 자녀를 통해서 온 세상이 복을 얻을 것이다, 그 약속을 한 것이 25년인데 아직도 자식이 없었어요. 드디어 25년 만에 응답된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타임테이블은 더딜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 진실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의 신실성이 결국 이 자녀를 아브라함의 품에 안게 만든 것이죠. 그러나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신실하셔도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면 백 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아요. 기적이죠.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처리할 사건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적 사건에만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예요. 한 생명의 탄생, 여기 계신 모든 부모 여러분들이 생명을 낳을 때마다 동일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떻게 응답했어요 그들의 응답은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하나님이 이것을 의롭게 여기셨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사라의 케이스에 있어서도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장 11절에 보시면 믿음으로 사라도.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였던 사라도 믿음으로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 이것은 이삭이 탄생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긴 했지만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무슨 일관성 있는 아주 특별한 믿음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믿음의 위기를 경험합니다. 어떤 때는 믿음이 흔들리고 또 믿음에 회의가 생기고 또 주저앉아 버리고 싶고 소위 우리의 모든 사람들의 신앙의 과정이 그런 것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의 과정에도 소위 굴곡이 있었어요 ups and downs 그 높낮이, 굴곡이 체험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자, 한 번 돌아가 보시면 창세기 17장을 보세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위기를 성경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창세기 17장 15절부터 보시면,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이때 17절 아브라함의 반응입니다. 다같이 읽어봐요. 17장 17절 시작.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자, 아브라함의 반응이 뭐예요 아브라함이 엎드리며 어떻게 했습니까 웃었습니다. 웃으며 가로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하하하하하…… 그렇게 웃었겠죠. 여기서 아브라함의 웃음은 어떤 웃음입니까 어떤 웃음이에요 기뻐서 웃은 웃음일까요, 어떤 웃음일까요 비웃음, 쓴 웃음, 상당히 냉소적인 회의가 섞여있는, 의심이 섞여있는 웃음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지금 제가 아이를 낳아요 하나님, 조크하십니까 그런 웃음이었어요. 아브라함의 믿음에 위기가 있었어요. 누구나 그런 것처럼 한결같이 믿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도 여기서 글쎄요 제가 지금 아이를 낳아요 하나님 농담하십니까 이게 아브라함의 반응이었어요. 자, 사라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그 다음장 창세기 18장 11절에 보시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더 이상 여인으로서 생산 능력이 없어졌다 그 말이죠. 그때 12절 사라의 반응입니다. 12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사라는 어떻게 웃었습니까 속으로. 여자니까 겉으로는 못 웃고 속으로 살짝 웃으면서 지금 제가 아이를 낳아요 호호호호호…… 아마 이렇게 웃었을 것입니다. 잘 나오지 않는, 속으로 웃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다음절 13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느냐 도대체 니 여편네가 왜 웃느냐 니 아내가 왜 웃느냐 하나님은 속으로 웃는 것도 들으세요. 보세요. 그러면서 14절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15절에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하나님 제가 웃지 않았어요. 겉으로 안 웃었으니까 속으로 웃었으니까.
그런데 하나님 뭐라고 그랬습니까 네가 웃었느니라. 유명한 웃음 논쟁입니다. 속으로 웃는 것, 내가 봤어. 사라에게도 의심이 섞여 있었어요. 냉소적인 의심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장, 믿음의 위대한 영웅들의 반열에 성경은 사라를 세웁니다. 그리고 11장11절에 보시면 믿음으로 사라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만약 히브리서11장을 기록하는 저자라면 저는 그렇게 기록하지 않아요. 사라가 처음에는 하나님이 웃긴다고 막 웃다가 의심하다가 흔들리다가 마침내 믿음으로. 나 같으면 그렇게 기록할텐데.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을 다 생략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믿었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믿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가 신앙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흔들릴 수가 있습니다. 또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에요. 마침내 우리가 의심을 넘어서서 회의를 넘어서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마침내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주 앞에 마지막에 믿음으로 선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마침내 믿었어요. 그리고 믿음의 응답을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기대하고 혹은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동일한 믿음의 반응을 보이고 계십니까 혹시 자녀가 필요한 분이 계십니까 아직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믿음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아멘을 크게 안 하나 내가 필요한 사람을 다 아는데 얼굴 보면. 그러나 자녀를 이미 낳은 사람들, 자녀를 낳는 일에 있어서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 것이 아니죠. 자녀의 회복이, 내 자녀에게 믿음의 회복이 필요하다, 내 자녀가 방황하고 있다, 오늘 내 자녀가 정말 부모가 기대한 것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의 가슴이 깨어지고 아파하는 여러분들, 자녀의 회복이 필요하시죠.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라면 또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면 우리 부모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내 자녀들의 삶 속에 그들이 필요한 믿음의 회복, 삶의 회복 그리고 꿈의 회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교회 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예요. 자녀를 키워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계속 이 자녀의 궁극적 주인이신 이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 이 자녀가 주님 자녀잖아요 나를 통해 주셨지만 하나님의 선물이잖아요 하나님 저는 믿어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능력 많으신 하나님, 우리 자녀 지켜주세요. 도와주세요. 자녀를 키워가는 과정에 있어서 아직도 그 약속에 성실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능력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6절을 다시 한 번 읽겠어요. 6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21장 6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자,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라가 가로되 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평범하거나 단순한 서술문이 사실은 아닙니다. 원문에서 보면 이 대목이 시예요. 노래입니다. Song예요. 찬양입니다. 이 대목이 찬양으로 되어 있어요. 성경학자들은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노래의 기원이 되었다. 노래의 origin이 되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 노래가 많아요. 한나의 노래 또 누가복음에 보면 마리아의 노래, 마리아의 송가, 엘리자벳의 노래. 일종의 노래입니다. 노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뭐라고 노래했습니까 사라가 가로되, 사라가 노래하되, 찬양하되 이렇게 바꿀 수가 있어요. 뭐라고, 내용이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 여기서 웃음이란 것은 긍정적입니까 부정적입니까 처음에는 옛날에는 어떻게 했어요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니까 사라가 제가요 지금 생산 능력이 없는데 제가 아이를 낳아요 이 할미가 낳아요 아마 그랬겠죠.
그런데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 말이죠. 아이를 낳고 찬양하면서 뭐라고 그랬어요 뭐라고 그랬습니까, 사라가 하나님이 드디어 나를 웃기셨습니다. 혹은 하나님이 드디어 나를 웃게 하셨습니다. 이 웃음은 어떤 웃음 감격에 가득찬 기쁨의 웃음이었을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자, 처음에 준다고 그러니까 굉장히 기대를 했다가 시간이 흘러가서 안 주니까 포기했다 말이죠.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서 약속을 확인하시면서 나는 틀림없이 줘. 나는 약속을 지켜.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다구요 아브라함이 웃었습니다. 제가요 지금요. 사라가 어떻게 했어요 웃었어요. 그러나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이 누구예요 이삭입니다. 이삭의 이름의 뜻을 아십니까 이삭이라는 말의 뜻이 웃는다는 뜻입니다, 웃음의 뜻입니다. laughter 웃음이란 뜻입니다. 대개 웃기시는 하나님이잖아요 이 하나님의 휴머를 보세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멋진 휴머를 보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라의 찬양, 아브라함의 찬양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들은 찬양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약속에 있어 성실하신 하나님. 사실 본문의 기자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그런 충분한 의지가 본문에서 보여집니다. 자, 1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창세기 21장 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여기서 두 번씩 반복되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입니까 말씀대로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이 말씀대로 두 번 반복되었어요. 약속대로 행하셨다.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셨다. 이 하나님의 신실성이죠. 또 2절에 보시면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하나님이 말씀하신 혹은 약속하신 때가 이르러 드디어 주셨다 이 말입니다. 약속하신 그대로 때가 이르러. 때가 이르러서 주신 것입니다. 자, 물론 아브라함과 사라 편에서는 지나간 25년이 얼마나 긴 기간이었을까요 하나님 약속하면 주셔야죠. 왜 안 나와요 5년이 지나갑니다. 10 년이 지나갑니다. 얼마나 긴 기간이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주신 거예요. 왜 하나님은 25년이나 기다리게 하셨을까 그건 물론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마도 내가 아들 줄게. 그리고 아들 딱 낳았다면 하나님이 주셨다는 실감이 안 났을지도 몰라요. 이건 누구나 다 낳는 아들이지, 꼭 기도의 응답이야. 믿음 없는 남편이 가끔 부인이 아이를 낳고 아! 하나님이 주셨다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주시긴 뭐, 옆의 집은 안 낳니 이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인간적인 가능성이 다 끊어졌어요. 인간적인 가능성이 다 끊어졌는데 주셨다. 자, 이때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아들, 기적의 선물, 이런 감회가 얼마나 절실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다리신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백 세는 안 넘기셨습니다. 아마 백 세 딱 넘기면 아브라함이 완전히 좌절하고 넘어지는 것을 하나님이 아셨을지도 몰라요. 마지막 데드라인 아브라함의 최후의 침몰직전 이 절묘한 타이밍, 딱 백 살에 하나님이 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때로 우리의 기도가 쉽게 응답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주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신실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아직도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의 성실성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때로는 아브라함처럼 사라처럼 좌절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아요. 빨리 주지 않는다고 막투정하고. 얼마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인데 제가 어떤 스님의 글을 읽어보니까 재미나는 글이 있더라구요. 요즈음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시주를 청하는 스님들도 참 애로사항이 많답니다. 문을 열어주나, 아파트 문을 열어주나, 공양을 주나, 아무것도 안 하니까 요즈음은 옛날처럼 스님 수업하기도 힘들다고 그래요. 어떤 스님이 어떤 집 앞에 가서 계속 염불을 하고 있는데 문을 안 열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스님이 의지가 강한 분이라 누가 이기나 보자 이런 태도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염불을 크레센토로 크게 더 크게 그냥 막 계속 염불을 해대는 거예요. 그래도 문이 안 열려요.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는 염불 끝에다가 계속 뭐라 그랬냐하면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그랬더니 갑자기 문이 턱 열리더래요. 그러더니 주인이 딱 째려보더니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요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의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냥 하나님께 매달리고 주여 그러면 하나님이 쭉 보다가 주나봐라 주나봐라 …… 그러다가 할 수 없어서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가 있죠.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가장 선한 것을 계획하시고 다만 나에게 유익함을 위해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을 응답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이 동일하신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오늘도 성실하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동일하게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또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 있는 분들도 참 키우면서 어려운 일이 생겨요. 왜 하나님이 빨리 역사하지 않나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이 자녀들이 주 앞에 열심히 서서 아름답게 주님을 섬기고 있는 광경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그리고 그렇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역사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줄 알아야 돼요. 자, 본문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자녀를 얻자마자 이삭을 얻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예요 4절, 21장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난 지 팔일 만에 뭐 했어요 할례했다. 쉽지 않았을 거예요. 아브라함은 할례가 뭔지 알아요. 자기가 할례를 받았으니까. 아마도 아버지 아브라함이 인류 역사사상 최초로 할례를 받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외과 수술도 없었고 얼마나 아브라함이 할례하면서 아팠겠어요. 무얼로 했다구요 구약성경에 가끔 나오는데 부싯돌로 갈아갖고 그걸 칼 삼아서 그걸로 째고 찢고 잘랐을 거란 말이죠. 얼마나 피가 많이 나오고 고통스러웠겠어요!
그런데 자기도 고통스러웠는데 자기의 태어난 아들, 팔 일 아직 핏덩이 같은 아들에게 그 칼을 대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런데도 할례를 행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무슨 메시지가 있어요 할례를 하나님이 명하셨어요. 할례는 무슨 표시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시예요. 구별된 자녀, 다르다, 아무도 할례 안 받았으니까 할례를 받으면 그 당시 차별화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는 다른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다. 구별된 삶을,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아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할례를 행하면서 계속해서 부모는 아브라함은 다짐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아들을 다르게 키우겠다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키우겠다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로 키우겠다고. 그렇습니다. 이 할례의 신앙고백적 의미는 하나님의 구별된 자녀로 이 자녀를 키우겠습니다. 오늘 헌아식을 했는데 헌아식의 의미가 뭐예요 사실 이 헌아식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자녀의 헌신이 아니라 부모의 헌신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삭의 할례가 있기 전에 아브라함의 할례가 먼저 있었다. 아브라함이 할례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그 아들에게 주는 할례가 또 중요하다는 것을 안 거예요. 무슨 얘기입니까 여러분 부모의 헌신 없이 자녀의 헌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거룩함이 없이 자녀의 거룩함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우리 큰 아이가 한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제가 수원 살았는데요 그때. 한 번은 그때만 해도 진흙탕 길이 많았습니다. 우리 큰 아이를 데리고 진흙탕 길을 걷게 되었어요. 제가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랬어요. 황이야 길조심해. 여기 흙탕물 많아. 아빠 꼭 보고 따라와.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때 저희 큰 아이인 황이가 저한테 한 마디 말을 딱 던지는데 그 말이 아주 제 마음속에 강력한 메시지처럼 각인이 되었어요.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그 아이는 그냥 말했을지 모르지만. 이러더라구요. 아빠, 아빠가 안 빠지면 나도 안 빠지지. 아빠가 안 빠지면 나도 안 빠지지. 아빠가 안빠지면 나도 안 빠지지. 이 강력한 메시지. 여러분, 우리 자녀는 입술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예요. 말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의 role modeling 우리가 어떤 모본을 보이느냐 우리가 어떤 모본을 보이느냐 부모가 하는 그대로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안 빠지면 자녀가 안 빠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자녀가 주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 자녀들이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 부모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틴에이저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 우리 부모의 문제, 우리가 새로워질 때 우리의 자녀들이 새로워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새로워지면 자녀가 새로워지고 자녀들이 새로워지면 새로운 역사가 그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88올림픽이 시작되었을 때, 88올림픽을 할 때 그때 저는 미국 살았는데요, 이 조국 소식이 궁금해 갖고 이 88올림픽 opening ceremony를 중계한다고 해갖고 교인 집에 가서 큰 테레비 앞에 놓고 온 교인들이 다 모였어요. 많은 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같이 보았습니다. 전 그때의 감동, 올림픽 개회식 입장식을 할 때 오프닝의 그 감동을 지금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막 떠들고 그러다가 한 순간 조용해지더라구요. 음악이 다 죽고 조용해지더니 스포트 라이트가 막 내려오더니 비치는데 갑자기 어린 아이 하나가 나타나더라구요. 굴렁쇠를 굴리면서 운동장 안으로 입장하고 있던 어린이의 모습, 생각나십니까 나는 미국에 있는데도 생각나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생각 안 나요 굴렁쇠를 돌리면서 입장을 해요. 한참 계속 조명이 따라가더라구요. 딱 stop되더니 아나운서가 이런 코멘트를 하더라구요. 저 어린 아이가 한국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라고.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이 저런 아이들이 평화의 꿈을 꾸기 시작하면 놀이터의 아름다운 환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어린 아이들의 꿈, 이것이 바로 올림픽의 꿈이요 인류의 꿈입니다. 이런 코멘트를 하더라구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 그들이 장차 평화의 도구가 되고 복음의 증인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위대한 증인이 될 수가 있다면 어린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바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가정이 어두워도 우리 자녀 정성 들여 기도해서 키워놓으면 어느 날 우리는 사라처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이 아이 때문에 우리 가정은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어둡고 아픈 많은 모습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교회의 젊은이와 어린이를 잘 키워놓으면 어느 날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의 젊은이들, 이 어린이들로 말미암아서 우리 한국 교회는 웃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 아직도 찢어져 있는 유일한 나라 그러나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평화를 심고 꿈을 심고 바른 교육을 시키면 그들을 통해서 분열된 이 땅이 통일되는 그 날, 우리 민족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 젊고 아름다운 세대들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 민족은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웃을 수 있도록 우리가 어느 날 찬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참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 분이 고통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분이 십자가에 가셨다는 사실을.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살고 그가 눈물을 흘리므로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 그가 생명을 주셨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자녀를 키워 내십시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우리의 민족 가운데 웃음과 찬양의 날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 다 일어나서 우리 함께 우리 잠시 기도할 때 우리 자녀들을 한 번 생각하시면서 여러분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여러분의 자녀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세요. 그러면서 이 자녀를 하나님 앞에 맡긴다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이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이 키워달라고, 인도해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자녀를 위해서 그리고 젊은이들은 장차 주실 자녀를 생각하고 장차 만들 가정을 생각하며, 하나님 우리 가정 축복해달라고, 내가 좋은 가정 만들고 싶다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정 속에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 앞에 나와 오늘도 우리의 경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오 하나님 우리 가정 속에 역사하시고 우리 자녀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는 성실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 입술로 찬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때로는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당장에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마음 아파하고 답답해 하고 좌절하지만 하나님,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우리는 믿고자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그리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찬양을 부르겠습니다.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믿고 일어나 찬양하며 걸어가겠습니다.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며 웃을 수 있는 그 날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 아브라함이 자녀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 백 세가 되어 얻을 수가 있었던 것. 이 자녀의 얻음의 배후 속에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에요. 하나님의 신실하심. 사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자녀를 약속하신 것은 이때부터 25년 전이었습니다. 창세기12장에 처음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너를 축복한다, 너의 자녀를 통해서 온 세상이 복을 얻을 것이다, 그 약속을 한 것이 25년인데 아직도 자식이 없었어요. 드디어 25년 만에 응답된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타임테이블은 더딜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 진실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의 신실성이 결국 이 자녀를 아브라함의 품에 안게 만든 것이죠. 그러나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신실하셔도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면 백 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아요. 기적이죠.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처리할 사건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적 사건에만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예요. 한 생명의 탄생, 여기 계신 모든 부모 여러분들이 생명을 낳을 때마다 동일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떻게 응답했어요 그들의 응답은 한 마디로 말하면 믿음이었습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그들은 믿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하나님이 이것을 의롭게 여기셨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사라의 케이스에 있어서도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장 11절에 보시면 믿음으로 사라도.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였던 사라도 믿음으로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 이것은 이삭이 탄생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긴 했지만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무슨 일관성 있는 아주 특별한 믿음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믿음의 위기를 경험합니다. 어떤 때는 믿음이 흔들리고 또 믿음에 회의가 생기고 또 주저앉아 버리고 싶고 소위 우리의 모든 사람들의 신앙의 과정이 그런 것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의 과정에도 소위 굴곡이 있었어요 ups and downs 그 높낮이, 굴곡이 체험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자, 한 번 돌아가 보시면 창세기 17장을 보세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위기를 성경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창세기 17장 15절부터 보시면,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이때 17절 아브라함의 반응입니다. 다같이 읽어봐요. 17장 17절 시작.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자, 아브라함의 반응이 뭐예요 아브라함이 엎드리며 어떻게 했습니까 웃었습니다. 웃으며 가로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하하하하하…… 그렇게 웃었겠죠. 여기서 아브라함의 웃음은 어떤 웃음입니까 어떤 웃음이에요 기뻐서 웃은 웃음일까요, 어떤 웃음일까요 비웃음, 쓴 웃음, 상당히 냉소적인 회의가 섞여있는, 의심이 섞여있는 웃음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지금 제가 아이를 낳아요 하나님, 조크하십니까 그런 웃음이었어요. 아브라함의 믿음에 위기가 있었어요. 누구나 그런 것처럼 한결같이 믿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도 여기서 글쎄요 제가 지금 아이를 낳아요 하나님 농담하십니까 이게 아브라함의 반응이었어요. 자, 사라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그 다음장 창세기 18장 11절에 보시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더 이상 여인으로서 생산 능력이 없어졌다 그 말이죠. 그때 12절 사라의 반응입니다. 12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사라는 어떻게 웃었습니까 속으로. 여자니까 겉으로는 못 웃고 속으로 살짝 웃으면서 지금 제가 아이를 낳아요 호호호호호…… 아마 이렇게 웃었을 것입니다. 잘 나오지 않는, 속으로 웃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다음절 13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느냐 도대체 니 여편네가 왜 웃느냐 니 아내가 왜 웃느냐 하나님은 속으로 웃는 것도 들으세요. 보세요. 그러면서 14절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15절에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하나님 제가 웃지 않았어요. 겉으로 안 웃었으니까 속으로 웃었으니까.
그런데 하나님 뭐라고 그랬습니까 네가 웃었느니라. 유명한 웃음 논쟁입니다. 속으로 웃는 것, 내가 봤어. 사라에게도 의심이 섞여 있었어요. 냉소적인 의심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장, 믿음의 위대한 영웅들의 반열에 성경은 사라를 세웁니다. 그리고 11장11절에 보시면 믿음으로 사라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만약 히브리서11장을 기록하는 저자라면 저는 그렇게 기록하지 않아요. 사라가 처음에는 하나님이 웃긴다고 막 웃다가 의심하다가 흔들리다가 마침내 믿음으로. 나 같으면 그렇게 기록할텐데.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을 다 생략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믿었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믿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가 신앙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흔들릴 수가 있습니다. 또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에요. 마침내 우리가 의심을 넘어서서 회의를 넘어서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마침내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주 앞에 마지막에 믿음으로 선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마침내 믿었어요. 그리고 믿음의 응답을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기대하고 혹은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동일한 믿음의 반응을 보이고 계십니까 혹시 자녀가 필요한 분이 계십니까 아직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믿음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아멘을 크게 안 하나 내가 필요한 사람을 다 아는데 얼굴 보면. 그러나 자녀를 이미 낳은 사람들, 자녀를 낳는 일에 있어서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 것이 아니죠. 자녀의 회복이, 내 자녀에게 믿음의 회복이 필요하다, 내 자녀가 방황하고 있다, 오늘 내 자녀가 정말 부모가 기대한 것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의 가슴이 깨어지고 아파하는 여러분들, 자녀의 회복이 필요하시죠.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라면 또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면 우리 부모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내 자녀들의 삶 속에 그들이 필요한 믿음의 회복, 삶의 회복 그리고 꿈의 회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교회 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예요. 자녀를 키워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계속 이 자녀의 궁극적 주인이신 이 하나님을 믿는 것. 하나님, 이 자녀가 주님 자녀잖아요 나를 통해 주셨지만 하나님의 선물이잖아요 하나님 저는 믿어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능력 많으신 하나님, 우리 자녀 지켜주세요. 도와주세요. 자녀를 키워가는 과정에 있어서 아직도 그 약속에 성실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능력에 있어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6절을 다시 한 번 읽겠어요. 6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21장 6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자,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라가 가로되 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평범하거나 단순한 서술문이 사실은 아닙니다. 원문에서 보면 이 대목이 시예요. 노래입니다. Song예요. 찬양입니다. 이 대목이 찬양으로 되어 있어요. 성경학자들은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노래의 기원이 되었다. 노래의 origin이 되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 노래가 많아요. 한나의 노래 또 누가복음에 보면 마리아의 노래, 마리아의 송가, 엘리자벳의 노래. 일종의 노래입니다. 노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뭐라고 노래했습니까 사라가 가로되, 사라가 노래하되, 찬양하되 이렇게 바꿀 수가 있어요. 뭐라고, 내용이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 여기서 웃음이란 것은 긍정적입니까 부정적입니까 처음에는 옛날에는 어떻게 했어요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니까 사라가 제가요 지금 생산 능력이 없는데 제가 아이를 낳아요 이 할미가 낳아요 아마 그랬겠죠.
그런데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 말이죠. 아이를 낳고 찬양하면서 뭐라고 그랬어요 뭐라고 그랬습니까, 사라가 하나님이 드디어 나를 웃기셨습니다. 혹은 하나님이 드디어 나를 웃게 하셨습니다. 이 웃음은 어떤 웃음 감격에 가득찬 기쁨의 웃음이었을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자, 처음에 준다고 그러니까 굉장히 기대를 했다가 시간이 흘러가서 안 주니까 포기했다 말이죠.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서 약속을 확인하시면서 나는 틀림없이 줘. 나는 약속을 지켜.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다구요 아브라함이 웃었습니다. 제가요 지금요. 사라가 어떻게 했어요 웃었어요. 그러나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이 누구예요 이삭입니다. 이삭의 이름의 뜻을 아십니까 이삭이라는 말의 뜻이 웃는다는 뜻입니다, 웃음의 뜻입니다. laughter 웃음이란 뜻입니다. 대개 웃기시는 하나님이잖아요 이 하나님의 휴머를 보세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멋진 휴머를 보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라의 찬양, 아브라함의 찬양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들은 찬양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약속에 있어 성실하신 하나님. 사실 본문의 기자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그런 충분한 의지가 본문에서 보여집니다. 자, 1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창세기 21장 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여기서 두 번씩 반복되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입니까 말씀대로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이 말씀대로 두 번 반복되었어요. 약속대로 행하셨다.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셨다. 이 하나님의 신실성이죠. 또 2절에 보시면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하나님이 말씀하신 혹은 약속하신 때가 이르러 드디어 주셨다 이 말입니다. 약속하신 그대로 때가 이르러. 때가 이르러서 주신 것입니다. 자, 물론 아브라함과 사라 편에서는 지나간 25년이 얼마나 긴 기간이었을까요 하나님 약속하면 주셔야죠. 왜 안 나와요 5년이 지나갑니다. 10 년이 지나갑니다. 얼마나 긴 기간이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주신 거예요. 왜 하나님은 25년이나 기다리게 하셨을까 그건 물론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마도 내가 아들 줄게. 그리고 아들 딱 낳았다면 하나님이 주셨다는 실감이 안 났을지도 몰라요. 이건 누구나 다 낳는 아들이지, 꼭 기도의 응답이야. 믿음 없는 남편이 가끔 부인이 아이를 낳고 아! 하나님이 주셨다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주시긴 뭐, 옆의 집은 안 낳니 이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인간적인 가능성이 다 끊어졌어요. 인간적인 가능성이 다 끊어졌는데 주셨다. 자, 이때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아들, 기적의 선물, 이런 감회가 얼마나 절실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다리신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백 세는 안 넘기셨습니다. 아마 백 세 딱 넘기면 아브라함이 완전히 좌절하고 넘어지는 것을 하나님이 아셨을지도 몰라요. 마지막 데드라인 아브라함의 최후의 침몰직전 이 절묘한 타이밍, 딱 백 살에 하나님이 그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때로 우리의 기도가 쉽게 응답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주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신실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아직도 약속에 신실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의 성실성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때로는 아브라함처럼 사라처럼 좌절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아요. 빨리 주지 않는다고 막투정하고. 얼마 있으면 부처님 오신 날인데 제가 어떤 스님의 글을 읽어보니까 재미나는 글이 있더라구요. 요즈음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시주를 청하는 스님들도 참 애로사항이 많답니다. 문을 열어주나, 아파트 문을 열어주나, 공양을 주나, 아무것도 안 하니까 요즈음은 옛날처럼 스님 수업하기도 힘들다고 그래요. 어떤 스님이 어떤 집 앞에 가서 계속 염불을 하고 있는데 문을 안 열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스님이 의지가 강한 분이라 누가 이기나 보자 이런 태도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염불을 크레센토로 크게 더 크게 그냥 막 계속 염불을 해대는 거예요. 그래도 문이 안 열려요.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는 염불 끝에다가 계속 뭐라 그랬냐하면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그랬더니 갑자기 문이 턱 열리더래요. 그러더니 주인이 딱 째려보더니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요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의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냥 하나님께 매달리고 주여 그러면 하나님이 쭉 보다가 주나봐라 주나봐라 …… 그러다가 할 수 없어서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가 있죠.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가장 선한 것을 계획하시고 다만 나에게 유익함을 위해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을 응답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이 동일하신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오늘도 성실하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동일하게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또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 있는 분들도 참 키우면서 어려운 일이 생겨요. 왜 하나님이 빨리 역사하지 않나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이 자녀들이 주 앞에 열심히 서서 아름답게 주님을 섬기고 있는 광경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그리고 그렇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역사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줄 알아야 돼요. 자, 본문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자녀를 얻자마자 이삭을 얻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예요 4절, 21장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난 지 팔일 만에 뭐 했어요 할례했다. 쉽지 않았을 거예요. 아브라함은 할례가 뭔지 알아요. 자기가 할례를 받았으니까. 아마도 아버지 아브라함이 인류 역사사상 최초로 할례를 받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외과 수술도 없었고 얼마나 아브라함이 할례하면서 아팠겠어요. 무얼로 했다구요 구약성경에 가끔 나오는데 부싯돌로 갈아갖고 그걸 칼 삼아서 그걸로 째고 찢고 잘랐을 거란 말이죠. 얼마나 피가 많이 나오고 고통스러웠겠어요!
그런데 자기도 고통스러웠는데 자기의 태어난 아들, 팔 일 아직 핏덩이 같은 아들에게 그 칼을 대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런데도 할례를 행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무슨 메시지가 있어요 할례를 하나님이 명하셨어요. 할례는 무슨 표시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시예요. 구별된 자녀, 다르다, 아무도 할례 안 받았으니까 할례를 받으면 그 당시 차별화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는 다른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다. 구별된 삶을,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아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할례를 행하면서 계속해서 부모는 아브라함은 다짐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아들을 다르게 키우겠다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키우겠다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로 키우겠다고. 그렇습니다. 이 할례의 신앙고백적 의미는 하나님의 구별된 자녀로 이 자녀를 키우겠습니다. 오늘 헌아식을 했는데 헌아식의 의미가 뭐예요 사실 이 헌아식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자녀의 헌신이 아니라 부모의 헌신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삭의 할례가 있기 전에 아브라함의 할례가 먼저 있었다. 아브라함이 할례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그 아들에게 주는 할례가 또 중요하다는 것을 안 거예요. 무슨 얘기입니까 여러분 부모의 헌신 없이 자녀의 헌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거룩함이 없이 자녀의 거룩함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우리 큰 아이가 한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제가 수원 살았는데요 그때. 한 번은 그때만 해도 진흙탕 길이 많았습니다. 우리 큰 아이를 데리고 진흙탕 길을 걷게 되었어요. 제가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랬어요. 황이야 길조심해. 여기 흙탕물 많아. 아빠 꼭 보고 따라와.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때 저희 큰 아이인 황이가 저한테 한 마디 말을 딱 던지는데 그 말이 아주 제 마음속에 강력한 메시지처럼 각인이 되었어요. 지금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그 아이는 그냥 말했을지 모르지만. 이러더라구요. 아빠, 아빠가 안 빠지면 나도 안 빠지지. 아빠가 안 빠지면 나도 안 빠지지. 아빠가 안빠지면 나도 안 빠지지. 이 강력한 메시지. 여러분, 우리 자녀는 입술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예요. 말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의 role modeling 우리가 어떤 모본을 보이느냐 우리가 어떤 모본을 보이느냐 부모가 하는 그대로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안 빠지면 자녀가 안 빠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자녀가 주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 자녀들이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 부모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틴에이저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 우리 부모의 문제, 우리가 새로워질 때 우리의 자녀들이 새로워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새로워지면 자녀가 새로워지고 자녀들이 새로워지면 새로운 역사가 그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88올림픽이 시작되었을 때, 88올림픽을 할 때 그때 저는 미국 살았는데요, 이 조국 소식이 궁금해 갖고 이 88올림픽 opening ceremony를 중계한다고 해갖고 교인 집에 가서 큰 테레비 앞에 놓고 온 교인들이 다 모였어요. 많은 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같이 보았습니다. 전 그때의 감동, 올림픽 개회식 입장식을 할 때 오프닝의 그 감동을 지금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막 떠들고 그러다가 한 순간 조용해지더라구요. 음악이 다 죽고 조용해지더니 스포트 라이트가 막 내려오더니 비치는데 갑자기 어린 아이 하나가 나타나더라구요. 굴렁쇠를 굴리면서 운동장 안으로 입장하고 있던 어린이의 모습, 생각나십니까 나는 미국에 있는데도 생각나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생각 안 나요 굴렁쇠를 돌리면서 입장을 해요. 한참 계속 조명이 따라가더라구요. 딱 stop되더니 아나운서가 이런 코멘트를 하더라구요. 저 어린 아이가 한국의 미래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라고.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이 저런 아이들이 평화의 꿈을 꾸기 시작하면 놀이터의 아름다운 환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어린 아이들의 꿈, 이것이 바로 올림픽의 꿈이요 인류의 꿈입니다. 이런 코멘트를 하더라구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 그들이 장차 평화의 도구가 되고 복음의 증인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위대한 증인이 될 수가 있다면 어린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바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가정이 어두워도 우리 자녀 정성 들여 기도해서 키워놓으면 어느 날 우리는 사라처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이 아이 때문에 우리 가정은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어둡고 아픈 많은 모습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교회의 젊은이와 어린이를 잘 키워놓으면 어느 날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의 젊은이들, 이 어린이들로 말미암아서 우리 한국 교회는 웃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 아직도 찢어져 있는 유일한 나라 그러나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평화를 심고 꿈을 심고 바른 교육을 시키면 그들을 통해서 분열된 이 땅이 통일되는 그 날, 우리 민족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이 젊고 아름다운 세대들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 민족은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웃을 수 있도록 우리가 어느 날 찬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참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 분이 고통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분이 십자가에 가셨다는 사실을.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살고 그가 눈물을 흘리므로 우리가 웃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 그가 생명을 주셨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자녀를 키워 내십시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우리의 민족 가운데 웃음과 찬양의 날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 다 일어나서 우리 함께 우리 잠시 기도할 때 우리 자녀들을 한 번 생각하시면서 여러분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여러분의 자녀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세요. 그러면서 이 자녀를 하나님 앞에 맡긴다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이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이 키워달라고, 인도해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자녀를 위해서 그리고 젊은이들은 장차 주실 자녀를 생각하고 장차 만들 가정을 생각하며, 하나님 우리 가정 축복해달라고, 내가 좋은 가정 만들고 싶다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정 속에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 앞에 나와 오늘도 우리의 경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오 하나님 우리 가정 속에 역사하시고 우리 자녀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는 성실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 입술로 찬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때로는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당장에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마음 아파하고 답답해 하고 좌절하지만 하나님,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우리는 믿고자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그리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찬양을 부르겠습니다.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믿고 일어나 찬양하며 걸어가겠습니다.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며 웃을 수 있는 그 날을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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