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주기도문13 (마6:9-13)

본문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계속하여 오던 주기도문 설교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번 추수감사주일을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무엇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할까 생각하던 중 그 동안 우리가 계속해서 다루어 오던 주기도문 속에 우리의 감사의 조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주기도문을 거의 기도가 아닌 기도회나 회의를 마칠 때 주문처럼 외워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으셨습니다. 저는 추수감사절 설교를 따로 준비하려다가 주기도문 속에 이미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추수감사주일인 오늘 그냥 계속하여 주기도문 강해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생각한 응답과 감사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감사가 있다면 저는 그것을 '죄 사함에 대한 감사'라고 생각합니다. 천하의 몹쓸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씻어 주시고 하나님이 가장 귀히 여기시는 사역에 일꾼으로 써 주시는 은혜는 온 삶을 다 바쳐 하나님을 섬겨도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라는 사실을 저는 압니다. 저는 지금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부족한 것이 아직도 많은 사람이지만 저 자신을 생각하면 저는 대 성공을 한 사람입니다. 때때로 저도 저의 성공으로 인하여 교만하여지는 때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본래 이렇게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은혜는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저는 사도바울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한 말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울의 고백이 지금 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제게는 십자가의 은혜가 있습니다. 저는 그 십자가의 은혜가 바로 주기도의 응답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주기도로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었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생각한 응답과 감사는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서부터 저에게 믿음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설교 잘 듣는 은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말씀의 찔림도 있었고 말씀의 감동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말씀에 순종하고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혜요 은사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말씀에 은혜를 받는 일에는 남에게 별로 뒤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밤낮 말씀에 체하여서 뒤에서 말꼬리나 잡고 뒷소리하는 사람들이 제일 불쌍해 보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사 중에 하나는 비판 능력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을 졸업할 때 논문상을 받았는데 그 논문의 제목이 '칼빈주의 예정론 비판'이었습니다. 저는 논쟁과 비판에 관한 한은 남에게 크게 뒤지지 않고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감동은 비판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의 유치한 맹신적 믿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누구 못지 않게 비판적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맹신적이라고 하리만큼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집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감동과 은혜를 줍니다. 아주 건방진 말씀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수가 어느 정도 보입니다. 그것이 제가 받은 최고의 축복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믿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천국입니다. 구원입니다. 성공입니다. 승리입니다. 저는 가정생활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격적으로 원만하고 성공적인 가정을 꾸밀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혼자 자라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부부관계나 자녀관계에 치명적인 성격적 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정에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완전한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는 가정에 실패하지 않았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저희 가정에서 천국을 느낍니다. 아내에게서 아이들에게서 저는 천국을 느낍니다. 제가 가족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음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제 아내와 특별히 제 아이들에게 제 약점은 숨길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약점 가운데 장점으로 보여졌던 것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저의 믿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아이들은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쓴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책에 에필로그로 쓴 글 중에 일부를 읽어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월요일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에 내려가 '크리스천 베이직'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한다. 나의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한동대의 3학년과 2학년인데, 두 아이가 다 내 과목을 듣는다. 외부에서 많은 압력을 받아서 아주 힘들었던 주간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올라왔더니 컴퓨터 메일에 큰 아이가 보낸 편지가 올라와 있었다. '아버지 저 부열입니다. 오늘 강의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려는 아버지의 치열한 삶의 투쟁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저도 하나님 보시기에, 아버지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올라가시는 길 안전하도록 기도할게요. 몸조심 하시구요"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상은 이미 다 받았다. 더 이상 바랄 상이 없는 최고의 상을 받았다. 내 아들이 나의 이 싸움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려는 치열한 삶의 투쟁'이라고 인정해 주었다. 됐다. 그러면 됐다. 누가 뭐라든 난 이젠 아무 상관없다. 이 이상의 상은 없다. 상은 다 받았다. 이제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시면 된다. 이제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면 된다. 나는 내 아들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려는 치열한 투쟁'이라고 인정해준 그 근사한 싸움에 정말 내 생명을 걸 것이다" 믿음이 바로 저희 가정을 구원하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 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제가 그 증인입니다. 저에게는 많은 약점이 있지만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가 저의 온 삶을 구원하였습니다. 저는 제 목회에서 구원을 얻은 사람입니다. 목회적으로 볼 때도 저는 아주 부적격자입니다. 저는 성격적으로 목회가 맞지 않습니다. 저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회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잘 어울려야만 하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저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30분 이야기를 하면 3시간 잠을 자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람 대하는 것이 제일 힘들고 어렵습니다. 저는 무척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입니다. 당회를 하기 전 저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막상 회의를 시작하면 멀쩡하게 대범하게 밀고 나가지만 회의를 하기 전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본래 성격이 소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저는 성격적으로 목회가 어려운 사람입니다. 부적격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목회에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받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저는 저를 알기 때문에 제 목회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제가 제 목회에 실패하지 아니하고 저로서는 대 성공이라고 할 만큼 된 까닭은 믿음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도 다 마찬가지이지만 저 또한 목회를 믿음으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세상 상식을 따라 목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 믿음인데 그 믿음이 저를 성공할 수 없었던 목회에서 구원을 얻게 하였습니다. 가정과 목회에서 저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가정과 목회는 제 세상입니다. 세상의 전부입니다. 제 천국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도 있습니다. 저는 가정과 목회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날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오늘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제가 생각한 응답과 감사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입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집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특히 아버님이 연세가 많으셨기 때문에 저는 어려서부터 '우리 아버지 세상 떠나시면 나는 어떻게 먹고사나'를 염려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도 얼마든지 경제적으로 어려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저는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안정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경제적인 안정이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월급을 받기 시작하였을 때 제일 먼저 한 일 중에 하나는 적금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적금 통장 둘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한 적금 통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쓰려는 목적으로 든 적금통장이었습니다. 그 적금을 타서 어디에 썼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그 적금은 타서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 이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격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나름대로는 믿음으로 살림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영적인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일에도 적용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포항에 있는 아이와 군대에 가 있는 아이에게 저의 수입과 지출을 상세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어떻게 돈을 쓰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하여서였습니다. 저는 돈에 대하여 내 자식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제가 제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경제적인 안정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저는 영적으로 구원을 얻었고 경제적으로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저는 죽어서도 천당을 가게 되었고 살아서도 제 세상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가정과 목회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밖에도 저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악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시고 건져주셨습니다. 그 또한 주기도문에 대한 응답이라고 저는 믿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남은 여생 '내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고민하였던 시편 기자의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저는 그 해답도 주기도문에서 얻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저는 열심히 주기도문을 외우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기도를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의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이 같은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며 '내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무엇을 보답할꼬'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39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