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7 (마6:9-13)
본문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짧은 인생을 실패하지 아니하고 성공적으로 살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혜와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두 가지가 없다면 우리는 절대로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실패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꾀와 요령으로 살려고 하지만 성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지혜로 살려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정확하고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입니다. 정확하고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이 없다면 그는 그 다음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다 헛일입니다. 색맹이 정확한 색을 볼 수 없고 음치가 바른 음을 낼 수 없듯이 정확하고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바른 삶을 살아 낼 수 없습니다. 그만큼 정확하고 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 중요한 판단력과 분별력을 주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삶과 아름다운 인생을 욕심 내고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지혜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저울이 정확하지 않으면 정확한 무게를 잴 수 없고 자가 정확하지 않으면 정확한 거리를 잴 수 없듯 지혜가 없어서 정확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아름답고 훌륭한 인생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욕심 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혜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꾀와 요령으로 인생을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실패하는 길입니다. 꾀와 요령으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지혜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라면 그 기도와 노력으로 말미암아 정말 금보다 귀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만큼이나 우리의 인생과 삶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기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그 지혜대로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길을 알아도 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지혜를 가지고 그 지혜대로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혜대로 세상에서 사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잘 못 살기도 하지만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지혜대로 살지 못하여 잘 못 살고 실패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지혜를 가지고도 그 지혜대로 살지 못하는가 왜 그것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가 그것은 세상과 사람들이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혜대로 살지 않고 악한 꾀와 요령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세상에서 지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에서 지혜를 가지고 지혜대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용기입니다. 세상을 거스리고 대적하는 용기와 힘이 있어야만 이 세상에서 지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Paul Tillich이라고 하는 신학자가 존재의 용기(Courage to be)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용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제목을 존재의 용기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예리한 통찰력인지 모릅니다. 용기 없이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용기 없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지혜만큼이나 우리의 인생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용기를 얻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혜와 용기는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만 합니다. 둘 중에 하나만 있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둘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용기 없는 지혜와 지혜 없는 용기는 아무 쓸데없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여러분과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신다면 그리하여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짧은 인생의 경주에서 진정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신다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지혜와 용기를 중히 여기며 그것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그 지혜와 그 용기를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지혜와 용기를 얻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불의한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지혜와 용기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욕심입니다. 그 욕심이 우리를 어리석게 하고 그 욕심이 우리를 비겁하게 합니다.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지혜로울 수 없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 1%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만 합니다. 지혜와 용기를 가지려면 그 무엇보다도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얼마든지 지혜도 얻을 수 있고 용기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와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서 가장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원죄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성경은 죄의 뿌리가 바로 욕심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세상적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욕심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욕심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 본능을 버리고 꺽는다는 것이 어떻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설교 중 여러 번 사용한 예화 이지만 오늘 말씀에 가장 적절한 예화라고 생각되어 다시 사용하려고 합니다. 청량리 중앙교회 임택진 목사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청량리 중앙교회가 주일날 교인이 약 20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였을 때 약 80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에서 청빙이 왔었습니다. 지금도 800명이면 작지 않은 교회인데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큰 교회였습니다. 어느 정도 목사님 마음이 움직이셨던 같았습니다. 그것을 눈치챈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가시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 큰 교회에서 생활비를 많이 드려서 그러십니까 우리도 다음달부터 목사님 생활비 올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장로님들에게 '소 시장의 묶어 논 소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값이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지만 나는 소 시장의 소가 아닙니다'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그 때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는 얼마나 감동했었는지 모릅니다. 나도 평생 소 시장의 소 노릇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얼마나 마음으로 굳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77년도 신대원 졸업반 때 큰 메리야스 공장을 하시던 장로님으로부터 설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공장에는 직장 예배가 있었는데 그 예배에 와서 설교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를 하였더니 교통비를 하시라며 봉투를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7천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77년도에 7천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가난한 신학생에게는 한달 용돈이 될만한 돈이었습니다. 장로님은 그 후로 거의 한 달에 한번 이상 저를 강사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저는 갑자기 용돈이 궁하지 않은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그 장로님의 부인되시는 권사님이 저에게 회사의 직원들이 저의 설교를 좋아한다며 이번 달에는 네 번을 계속해서 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갈 수 있겠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을 할 때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사칠은 이십 팔'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저 자신에게 참으로 실망을 하였었습니다. 소 시장의 소 노릇하지 않겠다는 감동이 있었고 그 감동은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보다 더 무서운 본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사칠은 이십 팔'이었습니다. 돈과 세상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은 우리의 본심입니다. 본능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 원죄적 본능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석어지고 비겁해 집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과 비겁함으로 인하여 부끄러운 삶,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과연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끊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아주 효과적으로 끊고 버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곳입니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을 볼뿐만 아니라 사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에 대하여 미련과 욕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올 1월 달에 케냐에 가서 우리 청년들이 봉사하고 선교하는 현장을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거의 원시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생활은 제가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과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케냐 원주민들의 생활에 대하여는 조금도 욕심이 없습니다. 미련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버릴 수 있고 얼마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혹시 저들을 사랑하고 저들에 대한 선교적 소명 때문에는 그곳에 갈 수도 있고 저들과 함께 살수도 있을는지 몰라도 저들의 생활과 삶이 욕심나서 그곳에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는 케냐 원주민들이 있다면 저들은 그 하찮은 것들에도 욕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할는지 모릅니다. 그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참으로 죽기보다 더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들도 저와 같은 문명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그 하찮은 것에 대한 욕심은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천국의 삶을 살게되면 세상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끊을 수 있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끊을 수 있으면 지혜가 생깁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지혜를 갖게 되면 정확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면 용기가 생깁니다. 우리를 향한 세상의 공갈은 우리가 욕심 내는 세상을 빼앗겠다는 것인데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빼앗겠다는 말에 겁을 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욕심 없는 사람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바라봄으로 세상에 대한 욕심을 끊고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람이 달라집니다. 아름다워 집니다. 훌륭해 집니다.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과 특히 자녀들에게 사랑 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특히 자녀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정말 초막에 살거나 궁궐에 살거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 세상을 보면 세상도 아름답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세상을 보면 세상도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도만 하면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원해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것들은 원해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얻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얻지 못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과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삶 속에 임하게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과 명예와 권력을 정말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근사한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게 되면 지혜가 생깁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훌륭한 인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이 주는 만족은 세상이 주는 만족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만족을 누리게 되면 세상이 변합니다. 세상이 천국 됩니다. 세상은 더 이상 큰 의미 없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하면 부한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초막에 살든 궁궐에 살든 아무 상관없이 천국이 됩니다.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놀라운 삶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고 기도하기 이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과 가정과 삶 속에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 속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므로 지혜롭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도 승리하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도 천국을 사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에게 그 중요한 판단력과 분별력을 주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삶과 아름다운 인생을 욕심 내고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지혜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저울이 정확하지 않으면 정확한 무게를 잴 수 없고 자가 정확하지 않으면 정확한 거리를 잴 수 없듯 지혜가 없어서 정확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아름답고 훌륭한 인생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욕심 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혜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꾀와 요령으로 인생을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실패하는 길입니다. 꾀와 요령으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지혜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라면 그 기도와 노력으로 말미암아 정말 금보다 귀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만큼이나 우리의 인생과 삶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기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그 지혜대로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길을 알아도 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지혜를 가지고 그 지혜대로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혜대로 세상에서 사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잘 못 살기도 하지만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지혜대로 살지 못하여 잘 못 살고 실패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지혜를 가지고도 그 지혜대로 살지 못하는가 왜 그것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가 그것은 세상과 사람들이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혜대로 살지 않고 악한 꾀와 요령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세상에서 지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에서 지혜를 가지고 지혜대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용기입니다. 세상을 거스리고 대적하는 용기와 힘이 있어야만 이 세상에서 지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Paul Tillich이라고 하는 신학자가 존재의 용기(Courage to be)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용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제목을 존재의 용기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예리한 통찰력인지 모릅니다. 용기 없이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용기 없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지혜만큼이나 우리의 인생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용기를 얻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혜와 용기는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만 합니다. 둘 중에 하나만 있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둘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용기 없는 지혜와 지혜 없는 용기는 아무 쓸데없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여러분과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신다면 그리하여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짧은 인생의 경주에서 진정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신다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지혜와 용기를 중히 여기며 그것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그 지혜와 그 용기를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지혜와 용기를 얻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불의한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지혜와 용기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욕심입니다. 그 욕심이 우리를 어리석게 하고 그 욕심이 우리를 비겁하게 합니다.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지혜로울 수 없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 1%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만 합니다. 지혜와 용기를 가지려면 그 무엇보다도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얼마든지 지혜도 얻을 수 있고 용기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와 용기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서 가장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원죄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성경은 죄의 뿌리가 바로 욕심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세상적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욕심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욕심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 본능을 버리고 꺽는다는 것이 어떻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설교 중 여러 번 사용한 예화 이지만 오늘 말씀에 가장 적절한 예화라고 생각되어 다시 사용하려고 합니다. 청량리 중앙교회 임택진 목사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청량리 중앙교회가 주일날 교인이 약 20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였을 때 약 80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에서 청빙이 왔었습니다. 지금도 800명이면 작지 않은 교회인데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큰 교회였습니다. 어느 정도 목사님 마음이 움직이셨던 같았습니다. 그것을 눈치챈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가시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 큰 교회에서 생활비를 많이 드려서 그러십니까 우리도 다음달부터 목사님 생활비 올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장로님들에게 '소 시장의 묶어 논 소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값이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지만 나는 소 시장의 소가 아닙니다'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그 때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는 얼마나 감동했었는지 모릅니다. 나도 평생 소 시장의 소 노릇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얼마나 마음으로 굳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77년도 신대원 졸업반 때 큰 메리야스 공장을 하시던 장로님으로부터 설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공장에는 직장 예배가 있었는데 그 예배에 와서 설교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를 하였더니 교통비를 하시라며 봉투를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7천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77년도에 7천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가난한 신학생에게는 한달 용돈이 될만한 돈이었습니다. 장로님은 그 후로 거의 한 달에 한번 이상 저를 강사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저는 갑자기 용돈이 궁하지 않은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그 장로님의 부인되시는 권사님이 저에게 회사의 직원들이 저의 설교를 좋아한다며 이번 달에는 네 번을 계속해서 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갈 수 있겠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을 할 때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사칠은 이십 팔'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저 자신에게 참으로 실망을 하였었습니다. 소 시장의 소 노릇하지 않겠다는 감동이 있었고 그 감동은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보다 더 무서운 본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사칠은 이십 팔'이었습니다. 돈과 세상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은 우리의 본심입니다. 본능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 원죄적 본능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석어지고 비겁해 집니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과 비겁함으로 인하여 부끄러운 삶,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과연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끊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아주 효과적으로 끊고 버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곳입니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을 볼뿐만 아니라 사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에 대하여 미련과 욕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올 1월 달에 케냐에 가서 우리 청년들이 봉사하고 선교하는 현장을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거의 원시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생활은 제가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과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케냐 원주민들의 생활에 대하여는 조금도 욕심이 없습니다. 미련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버릴 수 있고 얼마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혹시 저들을 사랑하고 저들에 대한 선교적 소명 때문에는 그곳에 갈 수도 있고 저들과 함께 살수도 있을는지 몰라도 저들의 생활과 삶이 욕심나서 그곳에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는 케냐 원주민들이 있다면 저들은 그 하찮은 것들에도 욕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할는지 모릅니다. 그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참으로 죽기보다 더 어려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들도 저와 같은 문명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그 하찮은 것에 대한 욕심은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천국의 삶을 살게되면 세상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끊을 수 있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끊을 수 있으면 지혜가 생깁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지혜를 갖게 되면 정확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면 용기가 생깁니다. 우리를 향한 세상의 공갈은 우리가 욕심 내는 세상을 빼앗겠다는 것인데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빼앗겠다는 말에 겁을 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욕심 없는 사람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을 바라봄으로 세상에 대한 욕심을 끊고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람이 달라집니다. 아름다워 집니다. 훌륭해 집니다.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과 특히 자녀들에게 사랑 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특히 자녀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정말 초막에 살거나 궁궐에 살거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 세상을 보면 세상도 아름답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세상을 보면 세상도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도만 하면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원해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것들은 원해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얻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얻지 못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과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삶 속에 임하게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과 명예와 권력을 정말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근사한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게 되면 지혜가 생깁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훌륭한 인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삶이 주는 만족은 세상이 주는 만족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만족을 누리게 되면 세상이 변합니다. 세상이 천국 됩니다. 세상은 더 이상 큰 의미 없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하면 부한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초막에 살든 궁궐에 살든 아무 상관없이 천국이 됩니다.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놀라운 삶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염려하고 기도하기 이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과 가정과 삶 속에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 속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므로 지혜롭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도 승리하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도 천국을 사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