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 (계21:18-27)
본문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개요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외적인 모습과 그 크기에 대하척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나라는 무엇으로 꾸며져 있는가에 대하여 그리고 그 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보석이라도 보석 의 진가를 모르면 보석으로 보이질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이아몬드 를 미제 초콜렛과 바꾸어 먹었다는 아프리카 미개인들의 얘기나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무리 좋고 아무리 훌륭한 재료들로 꾸 며진 나라라고 외쳐도 그 나라를 보는 믿음의 눈이 없으면 그 나라는 남의 나라는 될지 몰라도 내 나라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귀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고 안약을 사서 눈에 넣고 밝히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 대로 높은 산 믿음의 높은 경지에 올라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 나라의 재료들 18-21절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 으로 꾸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흥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흡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고 했 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최 상 최대의 보석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새 예루살렘은 투명 유리보다 더 깨끗한 순금으로 되어 있으며 온갖 진귀한 보석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예전부터 금이라 든지 보석들은 존귀, 영광을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왕관은 금으로 만 들고 보석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보석들을 값으로 환산한다는 것은 근본 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좁쌀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하나의 시계 값이 3000만원 하는 것도 있다는 얘길 듣고 그저 저로서는 어안 이 벙벙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영광과 광채로 가득찬 나라를 만일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라고 손꼽는 모모 재벌들도 잘해야 한 평 정 도나 천당을 살까 말까일 것입니다. 동서남북에 나 있는 열두 문은 진 주문입니다. 고대의 보석상인들은 일생동안 큰 진주 하나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를 찾게되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성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성 전체는 유리보다 더 맑은 정금으로 되어 있고 열두 문은 진주로, 기초석은 각색 뒤황찬 란한 보석으로 꾸며져 있는 그 나라가 곧 내가 들어 갈 나라라고 생각할 때 흥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의 참 가치는 황금이나 보석등으로만 측정해선 안 됩니다. 황금과 보석 으로 만들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보석 부인들이 좋아하고 군침을 삼키는 그런 물량적 가치만을 가진 나라라고 하면 별 의미가 없다는 얘깁니다. 우리들은 확실히 사람을 물량적 가치 속에 집어넣고 그 사람이 얼 마짜리 집에 살고 있느냐, 얼마짜리 반지를 끼었느냐. 어떤 옷을 입었 느냐는 등의 극히 외적인 것으로 가치를 평가헤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잘못입니다. 사람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드러난 것보다는 드 러나지 않는 것이 더 귀하고 높기 때문입니다.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고 있던 어느 증년부인이 어느날 애지증지하 던 보석 목걸이를 잃어버렸습니다. 있을만한 곳을 다 찾아 보았읍니다만 없었습니다. 평소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가정부를 의심하고 추궁 을 했습니다. _1러나 가정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그럴수 록 그에게 혐의를 두고 자백하지 않자 욕하고 때리기까지 한 후 결국 은 내쫓고 말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옷장에서 옷을 커내 입기위해 코트를 꺼내다가 코트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발견했습니다. 몹씨 뉘우 겼지만 이미 한 사람의 인격을 난도질 해 버린 뒤였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도 이런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되겠고 나아가 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하는 태도 역시 눈에 보이는 것, 황금, 보석 이 있고 그래서 좋은 나라라는 너무나 단순한 가치관을 버려야 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생활 이것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크냐도 증요하고 무엇으로 꾸며졌느냐 도 증요합니다만 그곳 생활이 어떠하냐가 더 중요합니다. 2
1장 22-27절에서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6가지가 없습니다. (l) 성전이 었습니다. 22절을 보면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성소를 의미하는 말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왜 성전이 없을까요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놓고 그 곳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도처에 교회를 짓고 그 제단에 나아가 예배를 드럽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나라 이기 때문에 그 나라 전체가 성전이요 거룩한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이라야 참교회입니다. 주께서 계시지는 .곳은 아 무리 호화찬란해도 교회일 숭 없습니다.
(2) 해와 달의 빛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23절이 밝혀 주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어린양 예수가 그 등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의 근원되신 하나님,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 의 조명을 위해 만드신 해나 달이 쓸 데 없어지고 맙니다. 어둔밤을 밝히기 위해 켜 놓았던 전등 불빛도 아침 해가 떠오르면 쓸 데 없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앞에 태양이나 달및도 필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문을 닫는 일이 없습니다. 25절에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 라'고 했습니다. 중앙청만 들어가려고 해도 증명을 제출하고 출입증 을 받아야 합니다. 경찰서만 들어가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출입의 제한이 없습니다. 그 곳엔 간첩도, 악한 자도. 도둑도 없기 때문에 문을 닫아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집마다 담장이 높아지고 철조망, 깨진 유리병, 심지어 쇠창살까지 심어 놓는 현실의 우리로서는 문을 닫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낮선 나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담장의 높이와 불신사조의 높이는 비례한다고 했습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잠을 자도 사고가 일 어나지 않는 사회가 바람직한 교회입니다만 그 실현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밤이 없습니다. 밤은 블신과 무지와 방탕과 타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고난과 시 련을 의미하며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밤은 심판이 지배하는 시 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망의 밤, 시련의 밤, 고난의 밤 통곡의 밤, 잠못이루는 밤. 죽음의 밤, 슬픔의 밤t.1 없습니다.
(5)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한 자유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더러운 것과 우상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는 행위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다 자유입니다만 속된 자유, 가증한 자유 거짓말하는 자유는 없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죄를 사랑하고 용납하시진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속된 것들과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계시록 20장 15절을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책입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수 있다면 자기는 생명책에서 제외되어도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3장 5절을 보면 사데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생명 책에는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둘째는 행위의 책입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보면 왕좌가 놓이고 책들이 펴 있더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2o장 12절을 보면 '내가 보니 죽은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성경책이라 죽은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 들의 기록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행위의 책에는 심판 받게 될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책에 , 심판받게 될 사람은 행위의 책에 기록되게 되는 것입니다.
3. 생명의 양식 결론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생명의 강이 흐르고 생명수가 넘치고 생명나무에 생명의 열매들이 철을 따라 열린다고 컨장 1-5절에 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렸던 에 덴동산을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l)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릅니다. 오염되지 않은 물입니다, 이 강의 발원지는 하나님의 보좌라고 했 습니다. 압록강이나 두만강은 백두산에 있는 천지연에서 부터 홀러 내 럽니다만 생명의 강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 내럽니다. 즉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로부터 홀러 내리는 생명수의 강물이 신천신지를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장 1o-15절을 보면 에덴동산에 네 개의 강이 흐 르고 있었습니다. 그 강은 비손강 기흔강 데겔강 유브라데강이었읍니다.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네 근원이 되어 동서남 북으로 갈라져 홀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생명강의 발원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그리고 그 강은 길가운데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심산유곡을 구비돌며 흐 르는 강이라면 찾아 가기도 힘들고 그 물을 마시기도 힘듭니다만 그러나 길 가운데로 흐르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나 마실 수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생명의 진리가 대증적인 진리임을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는 산 속의 종교도 아니고 골방의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거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수는 길 가운데를 흐르고 있읍니다. 그리고
Io년이나 20년을 연구하고 도통해야 깨닫는 그런 어려운 진리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깨닫고 믿을 수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불교는 이떻게 얘기합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은 부처님 하 나 뿐인데 모든 사람은 부처님을 스승삼아 완전을 향하여 배워가지만 그러나 부처처럼 완전한 인간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살은 3급,미륵은 2급, 부처는 1급인데, 57억 6천 만년 후에 이 지구에 미륵이 온다는 것입니다. 57억 6천 만년이라면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아마 그때까지 오실 날을기다리느라면 이 지구가 몇 천만번을 변해야할지 생각만해도 지루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속히 오시리라' 반드시 속히 오시리라고 했읍 니다. 기독교는 추상의 종교, 명상만의 종교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현실도피의 종교나 명상의 종교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독교의 교훈은 적극적이며 기독교의 윤리는 실질적이 고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양식 이며 생명의 나무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할 때 내 생명은 새로와지고 푸른 나무처럼 싱싱한 기분을 발하 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련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위자료 한 푼도 받 지 못한 채 집을 나섰습니다. 사건이 법정으로 올라가 여인이 판사 앞 에 서게 되었을 때 판사가 물었습니다. '부인은 앞으로 살아 나갈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이 때 부인대답하기를 '예 판사님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저에겐 세 가지가 있읍니다J '세 가지라니요 J '예 그떻습니다' '그럼 그 세 가지란 무엇인가요 J 의아해서 묻는 판사에게 그 여인은 '나의 손, 나의 건강,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이 여인은 생명 강가에 심기워진 생명나무의 신비를 캐달은 사람이었습니다.
(3) 저주가 없습니다. 계 21장 4절을 보면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울만한 일이 있어서 울고 탄식할 만한 일이 있어서 탄식하고 절망하 고 슬퍼할 만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절망하고 애통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심심풀이로 울고 절망하고 한숨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조건들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저 주도, 사망도, 애통도, 아픔도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나라는 희망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절망도 비극도 환멸도 없는 나라인 것입니다.
(4) 주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22장 4절을 보면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높으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감히 그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 이 구약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 여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얼굴을 볼터이요' 이 한마디로 모든 의심의 구름은 다 사라집니다. 장본인이신 쥬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특권은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 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것입니다.
(5) 세세토록 왕노릇하게 됩니다. 22장 5절 마지막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에 참여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반짝 빛났다가 꺼져 버리는 것과 같은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이 집트. 로마. 바벨론, 메데 페르샤 같은 대 제국들도 다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그 나라의 통치에 우리 도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밝은 눈으로 바라보십시다. 하늘나라의 찬송을 부를 때도 장송곡으로 부르지 말고 개 선의 노래로 알고 부릅시다. 김활란 박사가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개 선의 노래를 불러 달라고 유언했던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계는 잠깐 지나 갈 여행지에 불과합니다. 이 나리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다. 영원한 나라가 내 나라, 내 고향인 것을 확실히 믿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 나갑시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드린 대로 높은 산 믿음의 높은 경지에 올라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 나라의 재료들 18-21절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 으로 꾸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흥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흡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고 했 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최 상 최대의 보석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새 예루살렘은 투명 유리보다 더 깨끗한 순금으로 되어 있으며 온갖 진귀한 보석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예전부터 금이라 든지 보석들은 존귀, 영광을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왕관은 금으로 만 들고 보석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보석들을 값으로 환산한다는 것은 근본 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좁쌀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하나의 시계 값이 3000만원 하는 것도 있다는 얘길 듣고 그저 저로서는 어안 이 벙벙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영광과 광채로 가득찬 나라를 만일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라고 손꼽는 모모 재벌들도 잘해야 한 평 정 도나 천당을 살까 말까일 것입니다. 동서남북에 나 있는 열두 문은 진 주문입니다. 고대의 보석상인들은 일생동안 큰 진주 하나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를 찾게되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성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성 전체는 유리보다 더 맑은 정금으로 되어 있고 열두 문은 진주로, 기초석은 각색 뒤황찬 란한 보석으로 꾸며져 있는 그 나라가 곧 내가 들어 갈 나라라고 생각할 때 흥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의 참 가치는 황금이나 보석등으로만 측정해선 안 됩니다. 황금과 보석 으로 만들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보석 부인들이 좋아하고 군침을 삼키는 그런 물량적 가치만을 가진 나라라고 하면 별 의미가 없다는 얘깁니다. 우리들은 확실히 사람을 물량적 가치 속에 집어넣고 그 사람이 얼 마짜리 집에 살고 있느냐, 얼마짜리 반지를 끼었느냐. 어떤 옷을 입었 느냐는 등의 극히 외적인 것으로 가치를 평가헤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것이 잘못입니다. 사람의 가치라고 하는 것은 드러난 것보다는 드 러나지 않는 것이 더 귀하고 높기 때문입니다.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고 있던 어느 증년부인이 어느날 애지증지하 던 보석 목걸이를 잃어버렸습니다. 있을만한 곳을 다 찾아 보았읍니다만 없었습니다. 평소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가정부를 의심하고 추궁 을 했습니다. _1러나 가정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그럴수 록 그에게 혐의를 두고 자백하지 않자 욕하고 때리기까지 한 후 결국 은 내쫓고 말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옷장에서 옷을 커내 입기위해 코트를 꺼내다가 코트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발견했습니다. 몹씨 뉘우 겼지만 이미 한 사람의 인격을 난도질 해 버린 뒤였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도 이런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되겠고 나아가 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하는 태도 역시 눈에 보이는 것, 황금, 보석 이 있고 그래서 좋은 나라라는 너무나 단순한 가치관을 버려야 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생활 이것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크냐도 증요하고 무엇으로 꾸며졌느냐 도 증요합니다만 그곳 생활이 어떠하냐가 더 중요합니다. 2
1장 22-27절에서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6가지가 없습니다. (l) 성전이 었습니다. 22절을 보면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성소를 의미하는 말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왜 성전이 없을까요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놓고 그 곳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도처에 교회를 짓고 그 제단에 나아가 예배를 드럽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나라 이기 때문에 그 나라 전체가 성전이요 거룩한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이라야 참교회입니다. 주께서 계시지는 .곳은 아 무리 호화찬란해도 교회일 숭 없습니다.
(2) 해와 달의 빛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23절이 밝혀 주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어린양 예수가 그 등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의 근원되신 하나님,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 의 조명을 위해 만드신 해나 달이 쓸 데 없어지고 맙니다. 어둔밤을 밝히기 위해 켜 놓았던 전등 불빛도 아침 해가 떠오르면 쓸 데 없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앞에 태양이나 달및도 필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문을 닫는 일이 없습니다. 25절에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 라'고 했습니다. 중앙청만 들어가려고 해도 증명을 제출하고 출입증 을 받아야 합니다. 경찰서만 들어가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출입의 제한이 없습니다. 그 곳엔 간첩도, 악한 자도. 도둑도 없기 때문에 문을 닫아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집마다 담장이 높아지고 철조망, 깨진 유리병, 심지어 쇠창살까지 심어 놓는 현실의 우리로서는 문을 닫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낮선 나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담장의 높이와 불신사조의 높이는 비례한다고 했습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잠을 자도 사고가 일 어나지 않는 사회가 바람직한 교회입니다만 그 실현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밤이 없습니다. 밤은 블신과 무지와 방탕과 타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고난과 시 련을 의미하며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밤은 심판이 지배하는 시 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망의 밤, 시련의 밤, 고난의 밤 통곡의 밤, 잠못이루는 밤. 죽음의 밤, 슬픔의 밤t.1 없습니다.
(5) 속된 것,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한 자유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더러운 것과 우상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는 행위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다 자유입니다만 속된 자유, 가증한 자유 거짓말하는 자유는 없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죄를 사랑하고 용납하시진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속된 것들과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계시록 20장 15절을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두 가지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책입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수 있다면 자기는 생명책에서 제외되어도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3장 5절을 보면 사데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생명 책에는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둘째는 행위의 책입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보면 왕좌가 놓이고 책들이 펴 있더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2o장 12절을 보면 '내가 보니 죽은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성경책이라 죽은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 들의 기록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행위의 책에는 심판 받게 될 사람들의 행위가 기록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책에 , 심판받게 될 사람은 행위의 책에 기록되게 되는 것입니다.
3. 생명의 양식 결론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생명의 강이 흐르고 생명수가 넘치고 생명나무에 생명의 열매들이 철을 따라 열린다고 컨장 1-5절에 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렸던 에 덴동산을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l)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릅니다. 오염되지 않은 물입니다, 이 강의 발원지는 하나님의 보좌라고 했 습니다. 압록강이나 두만강은 백두산에 있는 천지연에서 부터 홀러 내 럽니다만 생명의 강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 내럽니다. 즉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로부터 홀러 내리는 생명수의 강물이 신천신지를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장 1o-15절을 보면 에덴동산에 네 개의 강이 흐 르고 있었습니다. 그 강은 비손강 기흔강 데겔강 유브라데강이었읍니다.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네 근원이 되어 동서남 북으로 갈라져 홀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생명강의 발원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그리고 그 강은 길가운데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심산유곡을 구비돌며 흐 르는 강이라면 찾아 가기도 힘들고 그 물을 마시기도 힘듭니다만 그러나 길 가운데로 흐르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나 마실 수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생명의 진리가 대증적인 진리임을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는 산 속의 종교도 아니고 골방의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거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수는 길 가운데를 흐르고 있읍니다. 그리고
Io년이나 20년을 연구하고 도통해야 깨닫는 그런 어려운 진리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깨닫고 믿을 수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불교는 이떻게 얘기합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은 부처님 하 나 뿐인데 모든 사람은 부처님을 스승삼아 완전을 향하여 배워가지만 그러나 부처처럼 완전한 인간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살은 3급,미륵은 2급, 부처는 1급인데, 57억 6천 만년 후에 이 지구에 미륵이 온다는 것입니다. 57억 6천 만년이라면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아마 그때까지 오실 날을기다리느라면 이 지구가 몇 천만번을 변해야할지 생각만해도 지루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속히 오시리라' 반드시 속히 오시리라고 했읍 니다. 기독교는 추상의 종교, 명상만의 종교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현실도피의 종교나 명상의 종교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독교의 교훈은 적극적이며 기독교의 윤리는 실질적이 고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양식 이며 생명의 나무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할 때 내 생명은 새로와지고 푸른 나무처럼 싱싱한 기분을 발하 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련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위자료 한 푼도 받 지 못한 채 집을 나섰습니다. 사건이 법정으로 올라가 여인이 판사 앞 에 서게 되었을 때 판사가 물었습니다. '부인은 앞으로 살아 나갈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이 때 부인대답하기를 '예 판사님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저에겐 세 가지가 있읍니다J '세 가지라니요 J '예 그떻습니다' '그럼 그 세 가지란 무엇인가요 J 의아해서 묻는 판사에게 그 여인은 '나의 손, 나의 건강,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이 여인은 생명 강가에 심기워진 생명나무의 신비를 캐달은 사람이었습니다.
(3) 저주가 없습니다. 계 21장 4절을 보면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 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울만한 일이 있어서 울고 탄식할 만한 일이 있어서 탄식하고 절망하 고 슬퍼할 만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절망하고 애통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심심풀이로 울고 절망하고 한숨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조건들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저 주도, 사망도, 애통도, 아픔도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나라는 희망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절망도 비극도 환멸도 없는 나라인 것입니다.
(4) 주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22장 4절을 보면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높으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감히 그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 이 구약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 여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얼굴을 볼터이요' 이 한마디로 모든 의심의 구름은 다 사라집니다. 장본인이신 쥬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특권은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 에게만 주어진 특권인 것입니다.
(5) 세세토록 왕노릇하게 됩니다. 22장 5절 마지막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에 참여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반짝 빛났다가 꺼져 버리는 것과 같은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이 집트. 로마. 바벨론, 메데 페르샤 같은 대 제국들도 다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그 나라의 통치에 우리 도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밝은 눈으로 바라보십시다. 하늘나라의 찬송을 부를 때도 장송곡으로 부르지 말고 개 선의 노래로 알고 부릅시다. 김활란 박사가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개 선의 노래를 불러 달라고 유언했던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계는 잠깐 지나 갈 여행지에 불과합니다. 이 나리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다. 영원한 나라가 내 나라, 내 고향인 것을 확실히 믿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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