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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속죄그리고부활 (사1:18)

본문

성경은 우리들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 말씀이 맞습니다. 죄는 속성한 빛을 싫어하고 어두움을 좋아하기 때문에 밝은 대낮 보다 밝은 천국에 죄를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된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어두운 지옥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죄는 치명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고 불행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그 모든 사람 안에 들어 있습니다. 세상에 죄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이 다음에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 수 없습니다.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 삶을 우리는 살았다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생명과 같이 소중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세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과 한 아내의 남편 그리고 많은 교인들의 목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와 남편과 목사가 제게는 생명입니다. 그것이 제 인생입니다. 그것이 무너진다면 내 생명과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 아내에게 사랑 받는 남편, 그리고 교인들에게 인정받는 목사보다 제게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제 아이들은 제법 저를 아버지로 인정해 주고 심지어는 존경까지 해 주고 있습니다. 아내도 저를 남편으로 극진히 사랑해 주고 있으며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교인들이 저를 목사로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저를 제법 좋은 목사로 인정해 주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저를 아버지로 남편으로 그리고 목사로 인정해 주고 따라주는 가장 중요한 까닭은 저들이 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그와 같은 축복의 관계를 단번에 다 깨트릴 수도 있는 죄와 허물이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지은 죄의 1/10 아니 1/100 만이라도 드러나고 공개 된다면 저들은 제가 자신들의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목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할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제게 있어서 그처럼 치명적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말씀에 천번 만번 동의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 맞습니다. 자식에게 아버지로 존경받지 못한다면, 아내에게 남편으로 사랑받지 못한다면, 그리고 목사로서 교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삶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제 거의 다 장성한 아이들과 아내에게 제법 사랑받는 아버지와 남편입니다. 그리고 제법 많은 교인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목사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인데 그런면에서 저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복을 많이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가 그와 같은 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격이 없는데 그와 같은 복을 받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제가 제 속에 있는 죄와 허물을 감쪽같이 숨기고 속이는 위선자이기 때문일까요 저는 처음에 제가 그렇다고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그 모든 죄를 다 알려주고 드러내는 것이 꼭 옳은 일은 아닙니다. 많은 죄와 허물은 하나님에게만 고백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옳습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든 죄를 다 털어놓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사람들에게 저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털어놓지 아니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위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사람 앞에 자복하고 털어놓아야 하는 죄와 허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죄와 허물은 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저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다 털어놓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제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교인들은 계속해서 저를 좋은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괜찮은 목사로 알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좋은 관계를 저에게 축복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본래 그런 복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저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믿는 믿음이 제게 그 엄청난 자격과 복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도 확실히 믿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그 믿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이사야 1장 18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그 말씀이 맞습니다. 주홍 같이 붉었던 제 죄가 정말 흰눈 같이 되었습니다. 정말 양털 같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 그리고 교인들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도 누구도 그것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도 저를 위선자라고만 몰아 세워서는 안됩니다. 저를 복 받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생각하는 것은 옳으나 위선자라고 부르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제가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시편 32편 1절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이해합니다. 제가 그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중에 410장 찬송이 있습니다. 저는 그 찬송가 가사 중에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는 가사를 특히 좋아합니다. 복중의 복은 죄 사함의 복입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 크고 귀한 복은 없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복이요 넉넉하고 형통하게 사는 것도 다 복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복을 모두 다 합하여도 죄 사함의 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죄 사함의 복을 주시기 위하여 엄청난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 그 이상의 대가와 희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높고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시어 인간이 받으실 수 있는 모든 존귀와 영광을 다 받으셨다고 하여도 희생 이신데 예수님은 낮고 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셨으며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머리 둘 곳 없이 주리고 목말라 하시며 험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결국에는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다 쏟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희생과 사랑이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아비가 되지 못하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되지 못하고, 교인들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되지 못할 뻔하였던 저를 하나님 나라에도 들어가게 하시고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아비도 되게 하시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도 되게 하시고 할 걸음 더 나아가 교인들에게 인정받는 목사도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보혈로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와 같은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죽어서만 부활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살아있는 지금도 우리는 이미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죽은 후에 부활을 가져다 주었을 뿐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도 부활의 삶과 복을 가져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는 다 사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죄가 어떤 죄이었든지 간에 얼마나 많았든지 간에 정말 흰눈같이 깨끗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의 십자가와 보혈에는 그와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붙잡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은밀한 죄와 허물을 다 그 십자가 앞에 내어놓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회개하였던 강도와 같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매어 달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그 때 그 강도에게 해 주셨던 것과 똑같은 말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약속해 주실 줄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으로 부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본시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지만 믿음이 자격입니다. 율법과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 볼 때 우리 모두는 다 죽고 망할 죄인들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모두 다 의인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부활의 삶을 죽어 천국에서만 아니라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시범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새벽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들의 부활을 계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이미 부활하였고 훗날 예수님과 함께 부활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이 부활 주일에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이미 그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그리고 그와 같은 복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대가를 치루시고 지금 이 부활의 생명을 주시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귀한 것은 귀한 값을 하여야 하고 귀한 곳에 쓰여져야만 합니다. 저희 교회는 많은 예산을 들여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예배당을 건축한 후 우리가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우리 예배당이 충분히 잘 활용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귀한 예배당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텅텅 비워 둔다면 그것은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많은 예산을 들여 건축한 예배당 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값으로 치루시고 구원해 주신 생명들입니다. 귀한 생명은 귀한 일을 하는데 쓰여져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값을 치루고 구원해 주신 생명을 가지고 다시 세상과 짝하여 죄짓고 살수는 없습니다. 하찮은 일에 세월을 낭비하며 밥이나 먹으면서 살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큰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여도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구원해 주신 삶을 귀하고 가치 있는 일에 쓰지 아니하고 무가치한 일에 낭비하고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리석은 정도가 아니라 악한 일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귀한 존재들입니다.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아야 할 귀한 그릇들입니다. 그냥 밥이나 먹으면서 세상 재미나 보면서 살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다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평생 예수를 믿으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예배만 드려서 무엇하겠습니까 십자가의 값을 치루시고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생명을 낭비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무슨 진정한 예배가 되겠습니까 십자가의 보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의미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값을 치루시고 주신 부활의 생명이니 그만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어 십자가의 보람과 부활의 의미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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