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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없는 면류관 (계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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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우리가 본 받아야할 만한 몇몇 교회가 소개되어 있다. 이 교회들을 보면 몇가지 특징들이 있음을 쉽게 찾아 볼 수있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요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하여 성령의 사역이 증거된 교회였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과 방언과 빈부로 인하여 멍들었던 교회였으나 바울 선생의 끊임 없는 노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로 우리 가운데 전해지고 있다. 특히 고전 13장 이후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의 전승은 그 뒤에 있었던 여러가지 은혜와 은사의 사역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과 같은 신앙에 기초가 되는 중요 요소임을 볼 수가 있다.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7 교회는 어떤가 7 교회 가운데 칭찬을 받은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뿐이다. 그외의 다른 교회들은 우리 주님에게서 서릿발 같은 불호령을 받았다. 그러나 이 두 교회는 오히려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권고를 받았다. 우리 주님께서는 선한 수고가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신자에게 결코 칭찬을 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하며 애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열매를 맺는가를 헤아려 보시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고난을 잘 참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차 올 고난에 대하여서도 두려워 하지않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머나 교회는 역사가들도 칭찬한 교회였다. 당시 서머나 교회가 있었던 곳은 지금도 있으며 인구약 20 만이 살고 있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인구의 1/3 이 신자인 것으로 전해 지고 있다. 교회는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칭찬하시고 또한 세인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만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향하여 좋은 상급을 준비하여 놓으셨다. '생명의 면류관' 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경기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상급이 준비 되어있다. 아마추어 경기에서는 우승 트로피 혹은 상패들이 즐비하고 프로 경기에서는 거액의 상금까지 곁들여 있어서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이것들은 우승자가 누구인지 알고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오직 우승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급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고 거듭난 순간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면류관이 천국의 진열대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죄악 속에 파멸의 깊은 수렁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다면 나를 위하여 천국에 마련하신 생명의 면류관은 주인을 잃고 진열대에 외롭게 남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을 보고 마음 아파 하실것인가 아니면 주인 없이 놓여 있는 수많은 면류관을 보고 마음 아파 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이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희생 하시면서까지 손 쉬운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들려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에게도 나타나 여러분 개인과 우리 교회를 위하여 마련 해 주신 생명의 면류관이 결코 주인 없는 면류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머나 교회의 칭찬이 곧 우리의 칭찬이 되고 우리가 그 빛나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주인이 되자.
I. 환란과 궁핍을 살아 온 사람 .+ 우리 주님께서 성도들의 처지를 알고 계시다고 하는 말 처럼 힘과 용기와 소망이 되는 것은 없다. 우리 인간은 두가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1. 나는 알지만 하나님은 모르기를 원하는 것.
2. 나는 부족하게 알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세하게 알아 주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알고 계신 것은 궁핍과 환란이다. 인간의 궁핍과 환란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얼마나 부요한 것인가 하나님은 그들에게 실상은 너희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서머나는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현대과학과 의술이 가장 앞서 있는 도시인 셈이다. 자동차가 일곱집에 한대씩 있고 온갖 유통질서가 확립이되어 있고 통신망이 잘 되어 있어서 전화 한 통화로 만사가 해결되고 사람이 있건 없건 전화로 밥지을 것을 명령하고 커텐을 여 닫고, 목욕물을 데우기도 하며, 리모콘 시설이 되어 있어서 대문 밖에서 스위치 조작을 하면 대문이 징 열리고, 차고가 열리고 닫히고 하니 얼마나 편리한 시설인가 이러한 가운데 사는 성도들에게 너희의 환란과 궁핍을 안다 하신 것이다. 이 성도들의 부요는 육체적인, 물질적인 부요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영혼의 부도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온갖 시련은 육체를 단련하기도 하지만 영혼을 단련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을 아시고 너희의 환란과 궁핍을 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신 바 된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가
II. 장차 올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 .+ 10 절에서 주님께서 말씀 하신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의인의 고난을 의미한다. 루마니아의 공산세계에 복음을 밀 수출하던 범브렌트 목사는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수 없이 기록되어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몇번이나 기록되어 있는가 세어 보았더니 꼭 365 번 기록되어 있더라고 하였다. 이 숫자는 1 년 365 번에 꼭 하루씩 해당되는 수였다. 인간이 얼마나 두려움에 빠지기 쉬운 존재인가를 아시고 하나님께서 매일 같이 권면하여 주시는 말씀이다. 본문에서 주님은 환란과 두려움이 와도 처음이요 나중이신 내가 함께 하고 있으니 투옥을 당하고 시험을 당하고 환란을 받더라도 두려워 하지 말라고 미리 경계하고 계신 것이다. 투옥은 면류관을 받을 성도들이 당하는 첫 관문이다. 요셉을 보라.(창 39:20) 삼손과 세례 요한 그리고 사도들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초대 교회 성도들이 겪은 투옥은 겨우 첫번 째 관문이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투옥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들이 영원한 상급을 받게 하는 통로인 것을 알아야 한다. 사단이 와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유혹의 올가미를 씌워 넘어트리려 한대도 분명한 것은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단지 열흘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 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의를 외치며 말씀대로 살다가 옥에 던지우고 빈곤의 늪을 헤매는 사도들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있다. 교회의 멸절을 위하여 사단은 얼마나 교묘한 방법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모른다. 혹은 정치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혹은 문화적인 것으로 여러가지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물질적인 공세로 넘어트리고 향락에 도취되어 그 메시지를 약화시키려 드는지 . 그러나 이러한 시련들은 우리를 잠간동안 묶어 놓을 뿐이지 영원히 결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충성은 우리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게 한다. 서머나 교회는 초대 교부이자 감독인 폴리캅이 순교한 교회이기도 하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이기도하였다. 그는 11 년동안 재임하면서 헌신적 인 선교를 하였다. 이로서 그곳 서머나에는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신앙을 고수한 순교자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총독은 폴리캅에게 예수를 부인하고 믿지 아니한다고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폴리캅은 " 내가 86 년동안 그 분을 섬기는 동안 그 분은 한번도 나를 모른다고 한 일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그분을 거역하겠느냐 " 고 하면서 불 타는 장작더미 속에 들어 갔다. 스데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주후 300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하였는지 우리는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로마의 시가지 밑에 뚫려 있는 카타콤의 광대함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극심한 박해였는지를 말한다. 미첼 스테파노 드 로시 (Michele Stefano De Rossi) 와 마르키(Marchi) 의 계산에 의하면 885 Km 내지
1,207 Km 로 보고 거기에 매장된 시체의 수는 350만 에서 600 만 명까지로 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막기 위하여 사단의 무리는 여러가지 수단과 방법 으로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더욱 돕는 일이 되고 말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참 성도의 신앙은 결코 말살해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유혹의 올가미로 접근하여 온다고 하여도 고난의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신앙의 충성을 드리자. 생명의 면류관의 주인이 될 것이다. .+
III. 말씀의 경청자가 주인이다. .+ 성령이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신다. 하물며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을 수가 있는가 들은 바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고 행동으로 고쳐가지 않는다면 무슨 열매를 맺을 것인가 귀를 가졌지만 듣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도 무슨 말씀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귀가 어두워서 그렇다. 그것은 귀머거리이다. 성령은 마치 우리가 학교에서 뵈어 온 자상한 선생님 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 어떻게 증거할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가르쳐 주시는 분이시다. 여러분은 성령을 통하여 들려 주시는 말씀을 듣는가 오늘 이 교회를 통하여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지 않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여러분의 일상생활 속에서 표현되는 말로서 알 수가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기도하는 가운데 나오는 말인가 서로가 나누는 대화 가운데에서도 거기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동의 하시는 말인가 생각하시기 바란다. 어른들이 계신 가운데에서는 얼마나 조심하는가 우리가 앉고 일어 서는 것이며 음식을 나눌 때에 가져야 하는 예법이며, 나아가 어른들 앞에서는 말씀을 경청하는 일에 얼마나 조심하는가 어른들의 말씀이란 대개가 먼저 산 인생의 지혜가 대부분이다. 어른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마지막에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물며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다가 영원한 형벌에 던지운다면 그것은 얼마나 서글픈 이야기인가 성령은 여기에서 두가지 사망을 말하고 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말하는 것을 보니
첫째 사망이 분명히 있다.
첫째 사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영과 육신의 갈림이다.
둘째 사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갈림길이다. 이
둘째 사망을 선고 받는 영혼에게는 생명의 명류관을 차지한 영혼은 주님께서 재림 하실 때에 큰 심판이 있다고 하여도 거기 사망의 집행장에 피고로 나설 이유가 하나도 없다. 서머나 교회는 琯湧 환란과 궁핍 속에서 선한 일을 행하며 영혼의 부를 이룩한 교인들이었다. 옥에 던져도, 고난이 극심하여도, 서머나 교인들은 이 시련이 지나가면 모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영광의 승리자가 된다는 소망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나누는 사랑의 교인들이었다.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감격과 소망을 가지고 사는 가운데도 더러는 소외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정변이나 어지러운 시기에는 반드시 무서운 적으로 돌변하기 쉽다. 이것은 6. 25 사변을 통하여 이미 경험한 것이다. 당시 서머나 교회도 지배층이면서 세속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앞장 섰던 유대인들이 가장 악랄하게 사단의 앞잡이로 성도들을 괴롭혔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따 돌림을 받고 소외되어 있는 영혼이 있는가 살펴 보자. 하나님 앞에 주인 없는 면류관을 두게 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이 생명의 면류관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바울 선생이 남겨 주신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 보자. "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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