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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확실히 구원받으셨습니까? (합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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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란 "의롭다고 인정하다"는 의미로서 히브리어로는 "짜다크"(tsadaq) 이며 헬라어로는 "디카이오오"(dikaioo)입니다. 두 말의 뜻이 비슷한데 본 래 뜻을 살펴보면,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 하고 선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경 말씀 가운데 칭의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 하심을 입느니라"(잠 17:15).
여기에서 "의롭다"는 단어가 바로 "칭의"에 쓰이는 "짜다크"입니다. "짜다 크"는 의롭게 만든다는 뜻의 말이 아닙니다. 악한 사람을 아무리 의롭게 만 든다고 해도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눅 7:29).
의로우신 하나님을 누가 의롭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짜다크"나 "디카이오오"는 의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롬 3:4).
이 말도 하나님께서 의롭다는 말이지 하나님을 의롭게 만들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쓰인 단어들의 뜻은 "의롭다고 인정하고 선포한다"입니다. 죄 있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고 선포해 주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인간은 죄 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그 성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렇 듯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죄인인 것입니다. 또한 인간 은 개별적인 죄를 범하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개별적인 죄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악한 생각도 죄고, 악한 상태도 죄고, 악한 태도도 죄고, 악한 말도 죄고, 악한 행동도 죄고,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런 개별적인 죄를 범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죄성이 있어서 죄인이요 죄를 범한 적이 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이렇게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인 정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인정하시고 그 사 실을 선포하셨는데 이것을 보고 칭의라고 합니다.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신 25:1).
재판장이 의로운 사람을 의롭다고 선포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죄성 이 있고 죄가 있는 우리를 죄가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그 사실을 선포 하십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교도로서 자기의 노 력으로, 즉 고행과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가서 고행으로 자기 죄를 사함받으려고 높은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무 릎으로 기어올라가는 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쯤 올라가다가 그는 갑 자기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의인인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의인이다." 그제서야 그는 오랜 그 갈등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내가 의롭 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이다. 이렇게 무릎에 피 가 나도록 계단을 오르내림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 았습니다. 그 직후 그는 독일로 돌아와 종교개혁의 새벽을 열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은 구약성경에 나옵니다(합 2:4). 구약 성경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 하나님을 믿을 때 의롭다 여겨 주셨습니다. 고행이나 선행 등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게 아 닙니다.
개신교에서는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 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입는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죄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이것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죄로부터의 자유를 누립니다. 재판장 하나님 쪽에서 죄인인 우리 를 향하여 죄가 없다고 인정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그 순 간부터 그분을 통해서 우리를 보시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으로 여겨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늘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자기 자신을 보니까 늘 낙심이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나.하나님께서 미워하시니까 교통사고가 났지." 이렇게 우리는 "혹시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것은 아닌지", "혹시 하나님이 나에게 화나신 것은 아닌지" 하면서 늘 불안해 합니다.
일단 예수 믿고 나면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내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봐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면 자유를 누립니다. 하나님 쪽에서 내가 죄 없다 인정하실 뿐만 아 니라 그렇다고 이미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죄 없는 사람 으로 인정해 주시고 영원히 죄없다고 판정하셨음을 생각할 때마다 그분께 감사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것도 없고 선행을 한 것 도 없는데, 의롭다 인정해 주시니 감격스럽다는 것이 개신교의 가장 중심적 인 사상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지금도 선행과 자선과 고행을 해야 합니다. 고난주간에 필리핀, 브라질, 멕시코 등 천주교 문화권에서는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긴 채찍으로 자기 몸을 쳐서 피 를 흘리면서 행진합니다. 아프리카의 한 사람은 십자가에 직접 자기 몸을 박아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렇게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고행해야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줄 아는 것입니다. 칭의의 교리를 정확히 깨닫고 성경적 으로 알 때는 그것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고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 자비와 은혜로 값없이 우리 모두 가 단번에 의롭다 함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그리스도 인입니다. 그럴 때 느끼는 감격과 감사는 엄청납니다. 저도 이것을 깨닫고 삶에 변화가 생겼고 그때의 감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칭의의 문제점 의로운 자를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가 있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 3:20).
선행을 하고 고행을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으려 해서는 어느 누구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행을 하다가도 금방 악한 생각을 하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행위를 가지고 스스로를 의롭게 할 수 있겠습니 까 인간 치고 율법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 개 참회록을 쓰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비교적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영혼이 깨끗해지면 깨끗해 질수록 죄가 더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고 주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조그마한 죄 때문에 괴 로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이 많습니다. 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이제는 실수로 좋지 않은 말이 툭 튀어나와도 그 일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죄성을 가진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 로 의인으로 인정받을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행하고 명상하고 좌선해 봐 도 행동까지는 조절할 수 있겠지만 생각을 어떻게 조절합니까 갑자기 엉뚱 한 생각이 튀어 나오니 말입니다. 저는 생각까지도 조절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꿈에 나쁜 행동을 하면 바로 회개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인간 은 철저한 죄인입니다.
의로운 자를 의롭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법은 분명히 잘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할 수 없습니다. 법은 법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했으면 범죄한 것입니다."…율법을 행하는 자 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2, 13). 율법을 완전히 행하지 않으 면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완전히 지킬 사람이 세상 에 어디 있습니까 지켰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어느 집회에서 어느 목사님이 자기는 완전히 성화(聖 化)된 이후 지난 25년 동안 한 번도 범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죄를 성경과 다르게 정의(定義)했던 것입니다. 그 분은 고의 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실수하는 것도 죄고, 모르고 잘못한 것도 죄라고 합니다. 즉, 율법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 했으면 다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은 전부 다 죄입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약 2:10). 수천 가지 율법 중에 한 가지만 범해도 율법을 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과일 하나 먹은 걸 가 지고 인류를 저주하시다니 하나님이 너무하지 않나. 그 과일이 몇 푼 된다 고…." 사람들은 죄를 생각할 때 양(量)을 생각합니다. 즉, 얼마나 악한 죄를 범했나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의 양이 아니라 죄의 질을 보십니다. 제 두 손을 가르는 데는 종이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두꺼운 벽돌 한 장이면 당연히 두 손 사이가 갈라지지만 종이 한 장만 있어도 됩니다. 그래서 공의의 하나님께는 큰 죄냐 작은 죄냐 하는 문제보다 죄 범한 사실 자체를 중히 여기십니다. 율법은 엄격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 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성상 죄를 간과하시지 못합니다.
이제, 지금까지 언급된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죄인이고 율 법은 그런 인간을 정죄하며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데에 칭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죄인인 인간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법
첫째로,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한 수많은 죄에 대한 대가를 무엇으로 어떻게 지불해야 합니 까 하루에 3번만 좋지 않은 생각을 하거나 좋지 않은 태도를 취했을 경우 한 달이면 거의 100번이고 1년이면
1,200번, 10년이면 12,000번 죄를 짓는 것입니다. 흰 종이에 점을 수만 번 찍으면 새까맣게 됩니다. 이렇게 저지른 그 수많은 죄에 대해 어떻게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까 무릎으로 기어 계단 을 오르는 고행을 통해서입니까 자기 몸을 채찍으로 때려서 죄를 통회하면 됩니까
둘째로,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데 그 죄를 무조건 용서하면 정의(正義)가 없어집니다. 악한 사람이 악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이 세상의 정의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세계에 공의가 없게 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살인한 사람, 사기친 사람을 그냥 용서해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율법의 요구 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도 문제고 그냥 용서해도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결국 세번째에 나타납니다.
셋째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의로 워지려고 몸부림 쳐도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진리를 깨닫기 전인 고등학생, 대학생 때 의롭게 되려고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말하고 행동해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제가 생각한 삶과는 더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의롭게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죄 의식에 얽매여 못살 것만 같았습니다. 아예 모르면 속편할 텐데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 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교하시고 내 삶은 그런 기준에 미치지 못해, 무 척이나 힘들고 답답했습니다. 저 혼자서 의롭게 되려고 발버둥치니 그게 되 겠습니까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음을 깨 닫고 나니까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께서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 의 롭게 될 수는 없습니다. 죄인이 어떻게 죄인을 의롭게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율법 자체는 변할 수 없 습니다. 하나님께서만이 율법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이 대가를 지불할 수도 없고 무조건 잘못을 용서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명백한 죄인이 의롭게 될 수도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 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죄에 대한 대가인 죽음을 대신 맛보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의롭다 하실 길을 마련 하셨습니다.
공의와 사랑은 십자가에서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해 주고 싶으셨지만 공의 때문에 그냥 용서할 수는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셨고 그 대가를 예수님이 치 르게 하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단번에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그렇다 선포하십니다.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신비와 능력과 자유가 있습니다.
칭의의네가지측면
첫째로, 칭의의 출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이 우리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칭의의 대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롬 5:9).
예수께서 피흘려 우리 죄의 대가를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셋째로, 칭의의 방법은 믿음입니다(롬 3:2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가를 지불하셨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 습니다.
넷째로, 칭의에 대한 증거는 행함입니다(약 2:24).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받고 나면 의로운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의로운 행동이 전혀 안 나타나는 사람은 거듭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어느 구석에 서도 변화된 의로운 행동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다시 복음을 전해 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해야 하고 거듭났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번 거듭난 사람, 곧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 속 에서 생명이 움직입니다. 그리하여 시간과 함께 그 사람의 삶에 조용조용히 영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조금씩 조금씩 행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칭의의 결과 칭의는 구원의 첫번째 축복입니다. 그리고 칭의에는 많은 축복이 따릅니다.
첫째/하나님과의 평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저도 칭의에 대해 알고 나서 젊었을 때의 그 갈등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성경의 이런 진리를 정확히 알아서 정확히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른 교리를 몰라 젊은 사람들이 몹시도 방황 합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난 다음에 앞으로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는 예수 믿기 시작할 때부터 구원의 문제와 거듭남의 문제와 칭의 문제에 대한 기본 적인 훈련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확신 시리즈 ("당신은 확실히 믿습니까"), 성장 시리즈("당신은 확실히 성장하고 있습 니까") 등의 책을 쓴 것입니다. 친구들을 전도할 때 제 책 1권부터 차근차근히 가르쳐 주고 공부시키고 성경을 읽게 하여 토대를 쌓아주 면, 조용한 가운데 꾸준히 성숙해 나가고 영적으로 건강하고 균형 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자(人子)가 온 것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함이라"(요 10:10)고 했습니다. 고민만 하는 삶이 아닌 풍성한 삶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원 에 관한 교리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즉 배울 기회가 없었 고 저에게 가르쳐 준 사람들이 없어 구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때 제 삶은 풍성한 삶과 정반대였습니다.
둘째/하나님 앞에서의 기쁨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 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었나니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 5:9, 11).
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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