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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눈물 (삼하18: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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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하늘은 맑습니다. 산에는 온통 생명의 신비를 뽑내고 삶에 지 친 사람들을 부르는듯 합니다. 5월은 그래서 가정의 달인지도 모르겠 습니다. 오늘은 어버지 주일입니다. 가정의 주체는 부모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건강하게 게시고 오래도록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 아계신 가정은 화목하고 행복하게 보입니다. 저는 자녀가 자라는 과정 을 보면서 50이 넘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얼마전 어느 목사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나도 이제 고아가 됐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저는 거기서 우리 부모님께서도 지금까지 살아계셨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을 했 습니다. 이것이 다 불효한 자식의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마음은 어두웠습니다. 저는 오늘 기독교의 가정에서 부모의 마음 을 이해해야겠다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정 에 바라시는 뜻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훌륭한 성군입니다. 용맹도 있고 믿음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도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나라 도 크게 번성할 수 있게 되었고 백성들도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불행한 것은 가정의 문제였습니다. 아들 압살롬 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대적한 것입니다.그래서 아버지 다윗은 군 대와 아들 압살롬의 군대와 전쟁을 했습니다. 아들의 미움은 아버지를 죽이고 한 나라의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진군해 왔습니다. 아 버지 다윗은 군대를 동원해 반란군을 막도록 했습니다. 아버지의마음 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들을 죽일 수는 없습닐. 그러면서도 반란군 을 진압시켜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군대는 보냈지만 아들이 죽지 말기 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구스 사람이 전령으로 왔습니다. 그는 고하기를 왕을 대적하던 원수들을 물리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쟁에서 이긴 것입니다. 왕은 그러나 기쁘직다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들은 어떻게 됐는가가 더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전령이 기쁘게 말하기를 왕을 대적하는 자 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니다라고 합니다. 그 말은 아들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그 순간 마음이 심히 아팠다고 했습니다. 심히 마음이 아팠다는 뜻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말하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면서 통곡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고 합니다. 아들은 대적해서 아버지를 죽이려 했는데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부모의 눈물이 주는 교훈을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 적한 압살롬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린 다윗의 눈물은 우리들의 부모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눈물입니다. 그 눈물에는 부모님만 가지고 있는 자녀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부모를 대적한 자식이지 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진 눈물입니다. 부모를 버리고 떠났찌 만 그 부모는 자녀의 평안을 걱정하는 눈물입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엇으면 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을 더욱 사랑하는 부 모의 눈물입니다. 이 눈물은 우리의 부모에 가슴에 가득 담겨져 있는 눈물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고통당할 때 자녀가 서운하게 할때 그리고 자녀가 불행해 질때면 그 눈물은 샘솟듯 쏟아지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파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병든 어머니를 자식들이 모시기를 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만 가실곳이라고는 자식들 집뿐입니다. 그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병들고 나이 많아지니까 서로 모시기 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작은 아들집에 몇일 쉬고 큰 아들 집 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앞에 쭈그 리고 앉아 있으니까 주위 사람들이 나서서 문을 열어주어 들어가셨다는 이야기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 대문밖에서 그 어머니는 무엇을 생각하셨을까요그가 흘린 눈물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요아들 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가진 슬픔의 눈물인 것입니다. 사랑 하기 때문에 아들을 이해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슬프고 쓰라린 눈물을 대문 밖에서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 눈물을 예수님의 사랑 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죄로 멸망해 갈때 예루살렘아 하면 서 우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의 눈물은 바로 주님의 눈물이요 사랑의 눈물인 것입니다. 다윗 은 지금 회개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자기 사람 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성군 다윗의 슬픈 과거였습니다. 다윗은 그의 값을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너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로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을 가져 왔다고 생각했을 때 다윗은 울지 않을 수가 없었 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압살롬을 사랑했습니다. 결국 아버지 다윗 은 그 아들이 반역하여 죽이려 했음에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래서 다윗은 그 아들이 반역하여 죽 어려 했음에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죽 엇을 때 그래서 다윗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 고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모습은 크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 우게 됩니다. 적게는 교회를 생각하게 합니다.더욱 가까이에서는 부모 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픔을 이해해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를 죽이기 하 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를 위로하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해주는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나를 나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남을 사랑할 수는 더욱 없을 것입니다. 5월의 하늘아래 외롭고 힘들 게 살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정성드리는 마음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뜨꺼운 사랑의 눈물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 문입니다. 더 많이 더가까이서 부모를 아끼는 자녀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부모, 어떻게 공경할 것인가 성경


본문:눅 15:11-24 창세기 1장 26절 말씀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 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본성과 창조사역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유의할 중요한 내용은 '우리'라는 단어가 세번씩이나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우리의 모양대로''우리가 사람을 만들 고'라는 말씀에서 '우리'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써 삼위일 체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씀이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존재성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신학자인 헬만 바밍컨은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영어로 트리니티라는 말인데 번역을 하면 하나의 셋, 셋인 하나, 하나인 셋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으로 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삼위일체가 아니라 면 하나님은 자신을 묵상할 수도 없고 자신이 느낄 수 없고 스스로 교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가 아니면 성경 어느 것 도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속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성경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두가지의 중요한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다.
첫째는 창조의 사역에 관여 하셨으며,
둘째는 구속의 사역에 관여하여 하셨 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성령 하나님을 통해 그의 죽으 심과 부활을 나의 것으로 믿게 하는 역사와 구속의 역사를 동시에 주신 것 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5장은 32절로 되어 있는데 이 말씀은 세가지로 분리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7절은 백마리 양을 가진 자가 한마리의 양을 잃 어 아흔 아홉 마리를 놓아두고 광야로 나가 다시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는 내용인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죄 가운데서 잃어버려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께로 되돌려 가는 구속사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8절-10절에는 드라크마를 잃은 어느 여자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어두움에서 처한 우리를 찾아 오셔서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는 성령의 사역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11절 이하의 탕자의 비유는 성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일반적으로 이 말씀은 구속적 입장에서 보지만 오늘은 이 말씀을 가 지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 받은 우리가 육신의 부모에게 어데게 효도해야 할까라는 교훈을 배워 보겠습니다. 효도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공자는 효를 인간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공자에게 자유라는 제자 가 효에 대해서 물었더니 공자는 봉양만 잘하는 것이 효도가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효도라고 했습니다. 황새나 까마귀는 어미가 늙어 활동을 못 하면 죽을 때까지 자기 둥지에 갖다 놓고 먹이를 바친다고 합니다. 이를 볼 때 효도는 모든 생물체의 본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효 하는 것은 인간의 인간되기를 포기하는 망동이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함무라비 법전에는 부모를 구타한 자는 그 손을 자랄 버리고 방탕한 자는 상속을 빼앗고 재차 범죄한 자는 외국으로 추방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엄격한 법보다 더 강경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비를 존 경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자는 그 눈을 골짜기의 까마귀에 쪼이우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이라고 하였으며 부모를 치는 자와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 라고 하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효하는 자는 환영받지 못했으며 죽음에 이르는 저 주를 받았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의 조사의 의하면 효도는 농경사회 때부터 있었습니다. 그 이 유는 첫재 신분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부모에게 삶의 기술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효도는 하나님이 지상명령"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부모 님을 자기의 대지라조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새 영이 길리라"고 모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효도를 통해 두가지 교훈을 주십니다.
첫째 효는 옳은 일이며 살 멩 있어서 정도라는 것입니다.
둘째, 효도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장수라리라"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 은 건강과 정력을 위해서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효 도하면 장수한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39장을 보면 요셉은 가는곳 마다 형통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영가상 위대한 인물들은 다 효 도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하이에서 주석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일을 다 마치 고 집에 오자 어머니께서 배추국을 끓여주었습니다. 이 배추는 배추장사가 팔다가 버린 것을 어머니가 주워가지고 끓인 것이었 습니다. 김구 선생은 어머니에게 대통령의 체면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고 부끄러워쟀습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김구선생의 종아리를 때렸 습니다. 그때 김구선생은 종아리를 맞으면서 지난 해보다 때리는 힘이 약해 지신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T.V 뉴스에 우리나라 사람 1,000명을 대상으로 효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문조사 한 자료가 보도되었습니다. 58.5%가 '편안하게 해 드린다'2
3.9%가 '대화를 자주 가진다'9.4%가' 모시고 다닌다'
5.7%가 '건강을 보살핀다 '9.8%가 '용돈을 드린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조사를 볼때 우리나라 사람 들은 그래도 성경적인 효도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교의 고전을 보면 머리와 발톱 등 모든 육체는 부모님이 물려 주신 것이 기에 육체를 해하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부모를 모신 사람은 노부모가 언제 돌아 가실지 모르기 때무에 십리밖을 나가지 않았고 돌아가신 뒤에는 묘지를 삼년이나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늘 마음 편안하게 사시도록 해야 합니다. 타락한 탕자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집으로 돌아 왔을때 그 아버지는 제일 좋은 것으로 그에게 입히면서 즐거워 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자리로 돌아 온것입니다. 효도를 하려면 두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부모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사랑과 용서, 인내하는 심정으 로 변함없이 자녀들을 돌아봅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가브리엘 천사에게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가 지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꽃과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의 웃음과 부모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아름다워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동안 꽃은 시들어 버렸고 아이는 성장하여 그모습 이 변하였지만 부모님의 사랑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하든 못하든 용서해 주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두번째는 부모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하지 마십시오. 지난 어버지 주일날 일어났던 사건 보도 내용을 여러분 잘 알 것입니다. 나이든 70노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어머니 오래 사세요"라고 말하 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기들끼리 놀라가 이에 분개한 어머니가 카네이션을 달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오늘날 많은 자녀들이 얼마나 이기주의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탕자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집을 나갔습니다. 그는 다시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범했으니 나를 아버지의 품꾼으로 써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잃었던 아들을 찾아 즐거워하 며 기뻐했습니다. 부모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이것이 효도입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소문난 효자의 집에 가보았습니다. 그 효자는 어머니가 세수를 시켜 주는 대로 얼굴을 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아들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 아들은 어머니가 그렇 게 해주는 것을 낙으로 여기소 계시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효도란 부모님께서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잘 못하면 나중에 여러분의 자식들도 배워 똑같이 여러분에게 할 것입니다. 노년기는 인생의 끝이 아니며 인생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노인들에게 관 심이 많으십니다 노년기는 축복의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바른 사명을 다할뿐 아니라 육신의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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