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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배소 교회의 칭찬 (계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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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날이 갈 수록자신의 건강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몸 에 조금만 이상증세가 있어도 혹시 암이 아닐까 하여 병원을 찾을 뿐 아니 라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정기점검을 받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영양식품의 판매가 증가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육체를 건강하게 보존하는 것, 마땅한 일이요 아 주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 세분화되어가고 기계화되 어가는 현대 조직 사회에서 사람들은 인격의 건강에도 깊은 관심을 쏟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인간의 마음이 도시처럼 기계화 되어버릴까 두려워 많은 사람이 여가를 이용해서 레저 활동이나 취미활동을 영위하려고 합니다. 레 저 산업이 발달하는 이유, 취미생활을 위한 학원이 많이 생겨나는 까닭, 각종 전문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가 다 이러한 연유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육신 의 건강과 정신적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만큼 과연 우리가 영적건강에도 관신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이것을 점검해 보자는 것입니다. 한 세기도 못사는 인간의 육신이 그렇게 중요하거늘 영원을 사는 영혼의 건강또한 얼 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육체보다도 정신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 건강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영적 건강에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인 정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들 드린 다고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교회를 수십년 다녔다고 해서 다 영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예배처소를 옮기는 문제때문에 심이 피곤하고 헤이해지기 쉬운 이때에 우리 신앙을 점검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또한 창립 2주년을 맞이하고 3주년을 향해 독수 리가 날개치는 것과 같은 새역사와 힘을 얻기를 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교회의 영적건강상태를 점검해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7교회중 오늘은 에배소 교회를 택해서 우리교회와 우리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고자합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7교회는 모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교회들입니다. 또한 7교회에 나타났던 사건들 역시 역사적인 사실들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교회시대에 있었던 모든 교회의 형태를 그림자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모 든 교회들도 7교회와 같은 단점과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리고 7교회에 주신 말씀을 한교회 한교회 분류해보게 되면 7가지 내용이 있는데 먼저 주님은 그 교회에 상태에 따라 각기 나타나시는 모습이 다릅니다. 어두운 교회는 빛으로 나타나시고 병든 교회는 의사의 모습으로 나타 나십니다. 그리고는 칭찬과 책망과 권면과 경고와 약속과 끝으로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는 말씀과 함께 종결지으십니다. 이 짧은 시간에 7가 지를 다 말씀드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두시간에 걸쳐 칭찬과 책망에 대해서 만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에배소 교회는 지금의 터키 서부 항구지역입니다. 1세기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가장 중심되는 도시로서 육로와 해로의 교통요지였습니다. 그래서 상업이 발달했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죄악이 관영한 도 시였습니다. 특별히 아테네(다이아나) 여신을 섬기는 큰 신전이 있었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대표적 도시였습니다. 또한 로마와 깊이 관련된 도시기에 황제숭배도 강요된 도시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세속도시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던 대표적인 도시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3년동안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를 세웠고 후임으로 디모데와 사도요 한이 목회했던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에배소 교회는 창립한 지 약 40년이 지난 이후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이교회에 7별을 붙 잡고 계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야 인간들아, 너희들 보기에 이 교회가 이런 저런 복잡한 문제로 한심스럽게 보일런지는 모르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그래도 이 교회의 주인은 나다.
그러므로 이 교회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 이러한 격려와 위로를 하시기 위해 7촛 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6가지를 칭찬하셨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에배소 교회가 받은 칭찬을 더듬으면서 오늘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그물교회가 하나님께 과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교회인가 나는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그물교회 성도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번째 칭찬은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2) 이 말씀의 의미는 "내가 네 행위를 보니 과연 칭찬할만 하구나"라는 뜻일 겁니다. 여기서 행위란 믿음이 생활화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믿는대로 행 함이 뒤따르는 너희들의 모습이 과연 칭찬할만 하다는 뜻입니다. 믿음 다르 고 생활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과 생활이 같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의 믿음은 생활속에서 삶의 행위로 증명되어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인격으로 설명되어져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얻는다고 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는다고 해서 너무 십게 생각합니다. 회개하면 다 용서한다니까 너무 가볍게 생가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는 그것이 생활로 증명되어져야 하며 십자가의 은혜는 인격으로 증명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님은 생명이 없는 몸은 죽은 몸이듯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날카롭 게 지적했던 것입니다. 이시간 주님이 이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감찰하실 때 우리나름대로 자랑할 것이 있겠죠. 성경지식이 있노라고, 신학지식이 있노라 고, 교회 직분을 가졌노라고, 신앙연륜이 얼마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 "그러나 네 믿음의 행함이 얼마뇨"라고 물으실 때 머리를 들고 담대 히 말할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안믿는자와 구별 된 삶을 살지 못했던 우리라면 주님께 한마디의 칭찬도 기대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여기 에배소 교회에 말씀하신 "네 행위를 안다"는 말씀은 믿음의 행위됨을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2."네 수고를 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믿음을 지키면서 그 믿음이 생활화하기 위해 했던 그 수고를 내가 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생활화되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수고가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를 말하기를 이리떼 가운데 양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울부짖는 사단의 소굴에 사는 것이라고, 어둠속에 빛과 같이, 부패된 곳에 소금과 같이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진정한 삶속에는 핍박과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길 영생으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만 큼 어려움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역사 2000년을 살펴보아도 오늘날의 놀라운 복음확장은 먼저 믿은 믿음의 선진들이 고생과 수고를 기꺼이 감당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 100년사도 먼저 믿은 선진들의 피와 땀의 수 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가 주님위해, 믿음지키기 위해, 주님 사랑하기 위해, 주님 섬기기에, 교회 부흥위해 과연 수고했습니까 주님을 향한 신앙 에는 반드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맹점은 수고없 이 편하게 예수믿으려는데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라면, 교회 를 위해서라면 수고를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에배소 교회와 같 이 칭찬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믿음을 위한 수고가 하루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고에는 반드 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에배소 교회에 이것이 있었고 주님은이것을 칭찬하 신 것입니다. 얼마나 참기 어려운 긴 세월이었습니까 참고 참고 또참고 여가까지 왔으니 참으로 갸륵하구나. 이것을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언 젠가 명절때 TV에서 방영한 춘향전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춘향이가 중상과 모략과 억울함과 옥에 갇히다가 마침내 변사또의 생 일날 죽는 자리에 까지 오게 됩니다. 그러나 춘향이는 역시 변함이 없습니다. 지키는 절개, 참는 수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비록 그 모습이 처절했지 만 얼마나 아름다왔는지 모릅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토록 사모하던 이 도령이 암행어사로 출두합니다. 이도령이 모든 것을 밝히고 복수해 줍니다. 이제 고난을 끝났습니다. 위협도 끝났습니다. 죽음의 절망도 끝났습니다. 이제 춘향이에게 남은 것은 이 도령의 사랑과 절개지킨 영광뿐입니다. 저는 춘향이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위해 저렇게 절개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위한 여러분의 절개, 과연 춘향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 위한 나의 수고, 저렇게 인내할 수 있겠습니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 위해 얼마나 절개를 지켰으 며, 얼마나 수고했으며 얼마나 인내해 왔습니까 큰 교회 목사라해서 칭찬 받는 것 아니고, 사람많이 모았다고 해서 칭찬받는 것 아니고, 직분 가졌 다고 칭찬받는 것 아닙니다. 믿음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으며 그 수 고를 얼마나 인내했는가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에배소 교회는 이것을 갖추었기에 주님으로 부터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4. 악을 용납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양면이 있었는데 사회적인 악이 자꾸 교회안에 침투해 들 어오는 것이고 또한 내부적인 악이 자꾸 교회를 좀먹어가고 있었습니다. 사 회적인 악은 안일주의,향락주의,황금만능주의,과학만능주의,쾌락주의.등의 것들로서 자꾸 교회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니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선이 희미해집니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가 희미해 집니다. 죄와 선 사이가 희미해 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것들을 용서하지 않는 날카로움이 필요했습니다. 에배소 교회는 바로 이 선을 정확하게 그었던 것입니다. 또한 비 성경 적이고 비신앙적이고 비 복음적이며 비 신학적인 사이비적 요소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을 용납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니골라당은 노스틱 사상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말해 육체의 죄는 죄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초대교회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배소 교회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로보고 바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 것을 용납하게 될 때 진리고 복음이고 뭐고 다 잠식당하고 맙니다. 선을 분 명히 긋지 않으면 교회인지 세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악을 반드 시 제거해야 합니다.
5. 거짓 사도와 거짓 진리를 밝혀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사회적인 악은 물론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만 영원문제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진리문제는 영이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서는 그 무엇보다도 날카로와야 합니다. 바울의 경우를 보면 방법적인 면에 서는 모든 것을 다 양보했지만(율법문제,우상제물 문제,이방인과의 문제.)복음문제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의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는 과거와 다릅니다. 그렇기에 신앙의 선을 긋는데 그 어느때 보다 날카로와야 합니다. 어느것이 진리이고 어느것이 비진리인지, 어느것이 성경적이고 어느 것 이 비 성경적인지 날카롭게 구분해야 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우리는 진리 의 지도와 복음의 나침판을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지옥이라는 골짜기에 빠져들게 되버리고 말기 대문입니다. 6. 주님이 미워하시는 니골라당을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니골라당은 이미 말씀드렸듯이 교회내에 잘못된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주님 이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안에 있는 합리주의,인본주의,쾌락주 의,세속주의.등입니다. 주님이 미워하셨던 이것을 미워할 때 주님의 칭찬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옹고집 같아도 좋습니다. 배타적인 것 같아도 좋습니다. 편협적이라고 비난해도 좋습니다. 이길이 주님 원하시는 길이기에, 이길을 안갈 수 없습니다. 이 길 가야만 주님게 칭찬받을 수 있고 마지막 오시는 주님 맞이할 때 칭찬받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에배소 교회의 책망 성경


본문:계 2:1-7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먼저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이 땅위에 있는 교회 나 교역자나 신자는 하나님같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일면 칭찬받 을 만한 조건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면으로 책망받을 것이 있는 것이 지상의 교회요 교역자요 신자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모세같 은 신앙위인들도 그렇습니다. 흠모할 만한 부러운 면이 있는가 하면 우리에 게 경종을 주는 잘못된 면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 살면서 넘어지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하는 반복을 통해서 성숙해 나가는 것입니다. 잘못했다는 것, 물론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잘못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도 거절하면 죽게 됩니다. 어느 사람이 병에 걸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도 약을 먹지 않고 죽었다면 그 사람은 병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 죽은 겁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가 바로 이러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잘못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를 잘 받아들이면 살 수 있습니다. 에배소 교회는 몇가지 칭찬을 받았는가 하면 또한 책망도 받았습니다. 오늘은 책망에 대해서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내가 안다."고 여러번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돌부처가 아닙니다. 보는 눈이 있고,듣는 귀가 있어 우리 한가운데 서 계셔서 우리의 범사를 다 아시고 보시고 듣고 계십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두가지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행동이 절제가 됩니다. 주님이 보고 듣고 알고 계신데 어떻게 죄를 지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여전히 떳떳하게죄를 범합니다.
둘째로 나를 알아주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사니 행복하고 기쁩니다. 어려운일을 당했을 때도 주님 내 형편 아시니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애매한 누명을 써도 주님 아시니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만나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이 알아주시니 기쁘고 즐겁습니다. 성도 여러분, 에배 소 교회에게 안다고 말씀하신 주님을 모시고 살기 바랍니다. 칭찬할 것도 아시고 책망할 것도 아시고 누가 잘한 것도 아시고 누가 잘못한 것도 아십니다. 에배소 교회의 행위(수고, 인내, 악을 용납지 아니함)를 아신 주님이 바로 이 가운데 서 계십니다.
2. 또한 예수님은 책망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성경의 신앙위인들을 보면 비록 잘못했더라도 책망받았을 때 주저하지 아니 하고 회개함으로 버림받지 아니하고 계속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시지만 때로는 책망도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책망의 이유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데 있지 않고 흥하게 하려는데 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칭찬하는 말씀도 들으려니와 책망의 말씀도 들 어야 합니다.
3. 그러면 책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와 용서는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도 죄를 반복해서 지으니까 "벼룩도 낮짝이 있지 더 이상은 회개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핏 보아서 꽤 양심있는 사람같습니다만 실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과연 하나님께 용서의 한 계가 있겠습니까 일흔번을 일곱번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이십니다. 이는 490번만 용서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무제한적인 용서를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천만번 죄를 지어도 주님앞에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무제한의 용서 를 가지고 계신 주님께 용서 못받을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할것 없는 천사보다 회개할 것 있는 우리를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영혼을 가장 긍휼하신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럼 용서하시되 어디 까지 용서하십니까 1/100, 1/10, 아니면 1/2인가요 하나님의 용서는 100% 전부입니다. 뿐만아니라 사1:18 말씀을 보니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을 지라 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일순간의 용서가 아니요 근본적인 용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속 성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개합니가 5절에 보니 어디서 떨어졌나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생각하고 현재 를 생각하고 그래서 비교하여 반성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내가 왜 이모양이 되었나!전에는 감격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감격 이 사라졌나!전에는 경건의 모양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없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회개의 출발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원인이 발견되어집니다. "아하. 내가 돈을 사랑하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세상을 사랑하다가, 자식을 사랑하다가, 남편을 사랑하다가 이렇게 되었구나,"발견하게 됩니다. 발견하 면 이제 전처럼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탕자가 돼지 우리안에서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이라는 원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어나 아버지 집으로 가니 전처럼 다시 아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4. 그러면 무엇을 회개하라고 하셨습니까 우리야 회개할 것 많이 있지만 에배소 교회는 처음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치명적 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모든 계명중에
첫째되는 것이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모든 신앙 생활의 동기가 되는 것이요 사랑은 모든 신앙 생활의 완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고전 13장의 말씀을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사랑의 중요성을 잘 아실 것 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랑에서부터 출발되어지지 아니하면 그 어떤 신앙생활도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사랑은 주님을 사랑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그 어떤 신앙생활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에배소 교회가 칭찬받았던 앞의 몇가지 일은 사랑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사랑이 없이 도 얼마든지 습관적으로 의무감으로 책임감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생활은 인정받는 신앙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동기에서 신앙생활하는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자기 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교회에 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견뎌 합니다. 그래서 주일을 고박꼬박 지킵니다. 십일조를 안 하면 꼭 무슨일이 터질것만 같습니다. 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주일에 빠 지지 않고 십일조하는 신앙, 그러나 사랑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인정받 지 못하는 신앙일 뿐입니다.
둘째,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이 요즘의 시간예약이 되는 가전제품처럼 자동입니다. 교회가는 날,교회가는 시간, 주보 순서를 자동적으로 따라합니다. 과 연 이런 사람의 예배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드리는 예배가 되겠습니 까
셋째, 그런가 하면 책임감때문에 신앙생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직, 교사,성가대,각부임원들.책임때문에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세상 직장에서는 좋겠지만 주님은 한가지를 더 물어보십니다. "그래 너의 충성안에 사랑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사랑없는 행위는 형식과 의식이라는 껍데기만 남깁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가 있을 리 없고 힘써 신앙생활을 하지만 우리에게 남는 것은 피곤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인내는 짜증만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런 인내는 화목하게 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예배, 지루 할 뿐입니다. 설교도 찬송도 길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 지 겨울 뿐입니다. 예배니 인내니 봉사니 충성이니얼마나 중요한 신앙행위들 입니까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신앙행위가 될 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겉보기에는 그럴듯 해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형식과 원망과 피곤과 짜증과 불평뿐이요 피차의 저주와 정죄와 아집과 교만만 남 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사랑이 있는가 자신의 모습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큰 에배소 교회가 어떻게 하다가 그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까 바울이 목회했었고 디모데, 아볼로, 사도요한을 목회자로 두었었기에 가장 복음적인 교육을 받으며 훈련된 이 교회가 왜 이렇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상실했을까요 에배소 교회는 창립한지 40년이 지난 교회입니다. 이 40년이 라는 세월이 에배소 교회에 사랑을 빼앗아 버리고 타성만 남게 했던 것입니다. 이 자랑스러운 전통때문에 처음 사랑은 상실한 채 습관과 형식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40년만 되면 다 이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역사와 전통을 주님 사랑하는 일보다 우선할 때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 입니다. 또한 에배소 교회는 당시 소아시아의 많은 교회가 여기에서 개척 하여 나갔기에 소아시아의 모체와도 같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명성이 자자 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명성만을 유자하다보니 주님게 대한 감사와 감격과 사랑은 사라진 채 무거운 책임감만 남게 된것입니다. 이것이 에배 소 교회에 사랑을 잃게한 이유들이요 형식과 껍데기만 남게 한 이유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에배소 교회에게 지적하신 이 모습들이 나와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닌지 살펴봅시다. 이 가운데는 신앙생활 시작한지 얼 마 안된 분도 있을 것이고 수십년 된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된 신앙 연륜이 여러분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굳건 한 신앙 골격 위에 세워놓았습니까, 아니면 사랑은 빠져 버린채 형식과 습 관만 남게 했습니까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신앙이 아니라 완전히 자동계약 된 기계처럼 습관적으로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신앙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구원에 대한 감사 감격을 이기지 못해 주 님의 교회를 내몸처럼 사랑하는 충성을 보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책임감과 의무감과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충성하고 있습 니까 우리 교회는 이제 만2년이 되었습니다. 물론 2년이란 세월은 대단히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을 형식적으로 만드는데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우리안에 사랑을 뽑아내는데 충분한 기간입니다. 과연 우리교회가 에배소 교회와 같이 책망들을 교회는 아닌가 생각해 봅시다. 신앙 연륜이 오래지 않아도 그 속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주위를 보십시오. 예수 믿은지 1년도 안된 사람이 열심히 충 성합니다. 어떻게 신앙의 연수도 짧은 사람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들은 성경의 순서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 과 내가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창립 2주년을 맞은 우리 그물교회 가 에배소 교회가 칭찬받은 것처럼 우리교회도 칭찬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 라며 한걸음 더 나가 에배소 교회에는 없었던 사랑의 칭찬이 여러분과 우리 교회에 더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엎드리는 사람들 성경


본문:민 16:41-50 민수기에는 두가지 큰 반역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14장에 기록된 바란 광야 가데스의 반역 사건 입니다. 애 굽에서 나온지 2녕 정도 지난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렀 을 때 각 지파의 대표 한 사람씩을 뽑아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했습니다. 열두 명의 정탐군들은 모세의 파송을 받고 그 딪당에 들어가 40일 동안 비빌리에 샅샅이 정킹마을 마치고 돌 아왔습니다. 그리고 정탐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서 가져 온 실과를 보이며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며 심히 커 우리 실력으론 그 땅을 점령할 수 없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이 보고가 끝나자마자 백성이 소리를 지르며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원망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곳 광야에서 죽는 것이 좋았겠다.
2) 왜 하나님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칼에 죽게 하려는가
3)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 났겠다.
4)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 모세를 향한 반역이었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반 역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며 애굽으로 돌아가자던 그들은 단 한명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능히 들어갈 수 있다던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갔습니다. 민14:27절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조치가 기록되오 있습니다.
1) 나를 원망하는 이악한 회중을 어느때까지 참겠느냐
2) 내가 그들의 원망을 다들었다
3) 말한대로 해 주겠다.
4) 너희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다. 5) 너희 시체가 광야에서 없어질 때까지 너희 자녀들이 40년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게 될 것이다.
6) 그리고 하나님과 모세를 악평한 열명은 하나님 앞에서 재앙 으로 죽었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진노였습니다. 40년을 방황하게된 결정적 이유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반역한 죄의 결과였습니다. 다른 하나의 반역은 가데스의 반역이 있은지 38년, 길고도 험했 던 광야 바황이 끝나갈 무렵 당시 지도층 인사였던 '고라, 다단, 온'세사람이 작당하여 반역사건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주모자였던 '고라'는 레위 지파인데다 모세의 사촌 형제였 고 성막의 기물을 운반하고 관리하는 고핫 자손이었습니다. 한 마 디로 그래선 안될 사람이 반역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들 세 사람은 250명의 저명 인사들을 포섭하여 구테타를 모의 하고 항명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악은 언제나 악과 뭉치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내건 원망과 불평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다 왜 너희가 스스로 여호와의 총회 위 에 스스로 높이느냐
2)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과야에서 죽 이려하느냐
3) 우리 위에 왕이 되려느냐 4) 왜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지 않고 고생을 시키느냐 5) 이젠 가나안은 싫다, 물러가라는 것이었습니다. 38년전 바란광야 가데스의 반역 때문에 38년 동안 광야를 방황해 야 했던 그들은 38년후 고라의 반역으로 엄청난 징벌을 받게 되었 습니다. 민16:32절을 보면 땅이 갈라져 산채로 고라, 다단, 온 세삼과 그 의 가족과 온 집이 생매장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동조했던 250명 저명 인사들은 하나님의 불에 소멸되고 말았습니다(16:35). 그 뿐 만이 아닙니다. 그 사건 이후 하나님의 진노로 동조했거나 동의했 던 14,700명이 염병으로 죽었습니다. 이 두 반역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두렵고 치욕스런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두 반역 사건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의 항변이나 반역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든지, 그 이유가 무엇이든 하나님은 피조물의 도전이 나 항거나 반역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은 유일하게 인간들입니다. 개나 돼지나 소나 말 심지 언 범이나 사자도 창조주를 반역하지는 않습니다. 인간만 반역죄를 짓고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단코 그 죄를 용납하지 않은십니다. 롬9장20절을 보면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 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 느냐 말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말대로 된것입니다(14:28)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가나안은 절대로 못들어간다우리는 안들어간다"이 말은 저들이 걸핏하면 쓰던 상투어였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말대로 된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될꺼야'를 반복해도 좋은 사람이 되기가 힘든 법인 데 '나는 나쁜 놈이 될꺼야, 나는 죽을꺼야, 나는 망할꺼야'를 노 래 부른다면 그 사람은 그대로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는 원망과 불평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심리는 반드시 남을 끌어 드리고 싶어집니다. 동조자 를 찾고 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고라는 250명을 모았습니다. 네째는 모든 원망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바란광야 사건도 고라의 사건도 하나님이 친히 들으셨고 보셨습니다(민14:27). 하나님은 돌이나 나무나 쇠붙이로 만든 신이 아닙니다. 듣고 보고 느끼고 행동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19:14절에서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섯째는 모세 원망과 하나님 원망이 같은 맥락에서 취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14: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라고 했고, 14:11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 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14:27절을 보면 "나 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라고 했습니다. 민16:3을 보면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스렸다"고 했고, 16:30절을 보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했다"고 했습니다. 민16:4을 보면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고, 16:42을 보 면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 이요 보내신 자요 일군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개인적인 권력욕이 나 공명심 때문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해 내라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심부름 하고 있는 종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사역을 방해하고 반항 하고 반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반역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하나님 이 간섭하신 것입니다. 여섯째는 댓가 지불이 너무나 크고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가데스 사건의 경우는 주모자가 모두 진노로 죽었고 40년 방화이 시작 되었습니다. 고라의 경우는 당사자와 부화뇌동했던 250명 무 리들, 말로 마음으로 동조했거나 박수를 보냈던 14,700명이 멸망했 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 행동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초점은 처참한 비극을 들추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건을 대했던 모세의 태도를 살펴 보려는 것입니다. 14:5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자라"고 했고 16:4을 보면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라고 했고 16:45을 보면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고 했습니다. 출34:8절을 보면 "모세가 급히 엎드렸다"고 했고 민20:6을 보면 "모세가 회막문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힘들고 답답하고 속상하고 막막하면 땅에 엎드렸습니다. 신9:18-25을 보면 40일동안 그는 물도 떡도 먹지않고 하나님 앞 에 엎드렸습니다. 수5:14을 보면 여호수아도 엎드렸습니다. 모세한 테 배운것입니다. 도대체 엎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첫째는 자신을 낮춘다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 가진 사람 강한 사람은 대개 뻣뻣하게 서거나 앉기 마 련입니다.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은 종이 취하는 태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땅바닥에 엎드린 것입니다.
둘째,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땅바닥에 엎드린 종은 '머리를 들라'는 임금이나 주인의 하명이 있을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답답하고 속상하고 고통스러운 사건을 앞에 놓고 하나님 의 뜻을 기다리기 위해 엎드린 것입니다.
셋째, 기도를 의미합니다. 모세는 땅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말씀 드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뜻을 기다리기 위해 엎드렸던 것입니담. 한마디로 모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결과입니다. 엎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건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1) 절망하고 낙심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이 태도는 문제를 더 힘들게 만들 뿐 아니라 회복 가능성 차체를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2) 원망하는 태도입니다. 사회를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여건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망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원망하면 결과는 파멸입니다.
3) 출구를 찾는 태도입니다. 누구를 만날까 누구에게 호소할까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지 평선이나 수평선에서 출구를 찾는 것입니다.
4)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과 태도는 하나님께 부탁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회사 나 가정이나 업체에 찾아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토록 애타 게 찾던 누군가를 보내시고 누군가를 통해서 내 문제를 해결해 주 시는 것입니다. 죠지 뮬러는 한 평생 동안 기도 응답으로 최고 기록을 세운 사람 입니다. 통산5만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마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톺해서 기도 응답을 주셨습니다. 모세의 경우 엎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임재하셨고 사건에 개입하 셨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셨고 주변의 교통 정리를 해 주셨 습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였던 멜랑크톤은 "환난과 곤고는 나를 골방으 로 몰아 넣어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는 그 환난과 곤고를 내게서 떠 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죤 번연은 "만일 당신의 입이 벙어리일때 하나님 은 당신에게 귀머거리가 되실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벙어리는 말 못하고 디스크 환자는 땅바닥에 허리굽혀 엎드리지 못합니다. 나는 영적으로 버어리가 아닙니까 허리 못굽히는 허리병 환자는 아닙니 까 지금 입을 열어 기도합시다. 엎드립시다. 지금 하나님이 기도를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여 내가 기도하나이다 내 기도를 들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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