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생명이다 (요15:1-12)
본문
요한 일서 5장 12절 말씀에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오늘은 이 말씀에 의지해서 이것이 생명이라 말씀드리겠습니다. 생명이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러시아 문학가 톨스토이는 인생의 참된 궁극적인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지각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를 극복하며 몸부림치다 소멸해가는 나그네, 인간의 생명, 이 생명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생명은 무엇이며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찾아보는 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에 영생은 큰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말씀을 통하여 생명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말씀에 보면 부자의 생명관이 있습니다. 그는 풍작으로 창고를 확장해 그 안에 곡식을 가득 채우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의미를 먹고 즐기는 것으로 여기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적인 존재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만을 위해 먹고 즐기기 위해 살고 있다고 하면 여기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한 데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부자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하고, 재물만을 모으려고 하고, 즐기자고 하는 그의 생명관에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의 생명을 취해 가셨습니다. 그러자 재물, 물질은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고 다 놓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는 사람들이 생의 의미를 물질에 두게 되면 허무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미국의 각 부자들을 모았을 때 거기 여덟 사람이 모였는데 그들의 재산 전체를 모으면 미국의 국무성 재산보다 많았습니다. 그들은 돈을 모으는 데는 천재적이여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력을 증가시켜 그 당시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5년 후에 그들의 생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철강회사 사장은 많은 빚으로 생계를 겨우 꾸려가다가 5년 후 세상을 떠나고. 주유소 사장인 포아티 합슨이란 사람은 파산해서 지내다가 죽고, 그 밖의 사람들도 실패해 자살하거나 정신병으로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자의 생명관은 정말 부질없는 것이라 여지없이 재물에 대해 생명을 의지하고 사는 생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돈, 돈' 하다 죽는 세상은 생명의 가치를 돈에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생명의 가치는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아는 데 있는 걸로 믿습니다.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천재지변으로 인해서 하루아침에 없어집니다. 여러분 Tv 라디오를 통해 한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수만 채의집이 무너지고 수만명의 이재민을 내고 몇 천명의 죽음이 하루아침에 그 땅에 일어났습니다. 정말 재물이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루아침에 불바다가 되는 것이며 노아 당시 지상에 흥수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했습니다. 또 폼페이시가 지진으로 인해 땅속에 묻혀 있는 세상을 보면서 어찌해서 우리의 생명을 물질에 의지하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정신차리고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신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목회하다 15년 전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15년동안 목회하는 가운데에 저는 이 일의 의미를 물질에 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데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전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입니다. 기술면에도 선진국이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더라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일본 땅에서 고난 가운데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병들어서도 목사에게 와서 기도를 부탁을 안합니다. 왜요 물질세상이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다 봐주기 때문에 보험으로 인해 처리가 됩니다. 저는 이 가운데 어려운 세상이지만 하나의 생명이 물질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이 진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어떤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15년전 부터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포 제 1세로 갖은 고생을 한 76세 정도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저를 찾아와 하는 말이 '내 재산의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합니다. 몇 년동안 그렇게 해오다 금년에 실천하게 됐는데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됩니까 이 재산을 무엇에다 써야 됩니까 처음에는 기도원을 짓기로 생각을 했지만 일본에 기도원을 세웠다 해도 경영자가 없으며 모이는 숫자도 없어 운영하기가 힘듭니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를 지으세요 목사가 있습니다. 성도는 있습니다. 전도하겠습니다.'라고 권면해서 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얼마 전에 땅을 계약을 해서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교회를 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교회를 짓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치면 10억입니다. 10억 이라는 재산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는 그 할아버지의 생명관은 물질에 있지 아니하고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씀드리는 것은 탕자의 생명관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말씀같이,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둘째 아들입니다. 그 아버지는 부유했습니다. 이제 그 아들이야말로 풍부한 생활 속에서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졌습니다. 힘들여 땀흘려 일하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생활이 지겨워졌습니다. 자기 본위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쉽게 돈을 벌고 마음껏 자유롭게 살려고 부모 곁을 떠났지만 얻은 것은 일시적인 것 뿐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가자 그에게는 배고픔이 다가왔고 돼지에게 주는 먹이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의 품 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때 그의 영토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부귀 영화를 소유하였지만 그가 죽을 때에 자신의 생명을 1시간만이라도 연장하여 주는 이가 있으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연장되지 못하고 부귀 영화를 뒤로 하고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나이가 젊은데, 나는 힘이 있는데 나는 권세가 있는데 하지만 나의 생명은 오래 살리라 장담하는 이가 누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감당할 수 없는 인간, 비로소 깨달은 것이 나의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는 것입니다. 역시 영의 창조.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탕자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부터 아는 것이 참 인생입니다 본문에 있는 말씀대로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소서' 이것이 세번째로 하나님이 보시는 생명관입니다. 잠언에 보면 '대저 나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입을 것이라' 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욥의 생활을 봅니다. 욥이야말로 생명의 가치를 을바르게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슬하에
Io남매가 있고 양이 7000마리. 양떼가 3OO0마리, 소 500결, 암나귀가 500결에 종들도 많았다 합니다. 그 시대에 그와 같은 부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명을 물질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물질이 다 없어지고 자녀 마저 죽고 자신의 몸에 창질이 나서 기와장으로 긁어내야 하는 그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아가서는 친구들이 와서 욥을 비난하고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감당해 나갔 습니다. 극복했습니다. 그리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더 많은 물질과 자녀를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우리 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누구에게 인정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인정을 받습니까 부모, 형제,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까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생애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정을 받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생명을 주관하신 하니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가난할 때, 어려울 때 좋은 신앙을 가집니다. 더욱이 처녀 총각때 좋은 신앙을 가집니다. 교회 나가면 좋은 신랑을 만나고 흑은 아내를 만납니다. 그러나 시집 장가가면 그 좋은 신앙이 어디로 갔는지 잃어버럽니다.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의 좋았던 신앙이 사회에 나오면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상실해 버려요 정말 신앙생활이란 처녀 때든 총각 때든 학생 때든 사회에 있든 하나님을 숭배하는 그 신앙을 상실해 버리지 않고 불굴의 신앙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 생명이 물질에 있었느냐, 어떤 주의와 사상에 있었느냐, 내 생명 이 고국에 있었느냐. 우리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저는 이북에서 피난 나온 사람입니다. 내 땅, 내가 사는 곳이 조국 입니까 내가 있는 곳에 하니럽이 있으면 그곳이 조국입니다. 저는 일본 땅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주여, 제가 일본인 한 생명이라도 구한다면 내마음이 족합니다. 죽을 때 일본 땅에 묻히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을 주관하심을 자신은 깨닫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여러분의 부모가 책임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명에 열이 날 때 열을 없애 주는 부모가 됩니까 해결할 수 없어 병원에 찾아갑니다. 그러나 의사가 책임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명을 사회가 책임질 수 있느냐, 여러분의 생명을 나라가 책임질 수 있느냐, 여러분의 생명을 어떤 대통령이 책임질 수 있느냐, 아무도 우리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만이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5장 11절에 증명은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5절에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요'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아들을 순종치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함이다' 우리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 것이냐. 죽을 때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이를 갑니다. 그러나 생명관을 바로 깨달은 자는 '주여, 언제든지 오시옵소서.' 하며 준비하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 말을 듣고 나 보낸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자는 영생을 얻었고, 여러분과 저는 영생을 얻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에 하니닙을 경외하고 하나닙의 말씀을 순종하 고 따르는 것이 생의 축복임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아는 자는 다시 살리리라'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생이 힘들고 어렵지만 참고 기다리면 마침내 이루어 주실 것으로 압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보면 요한복음 6장 68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의 영생의 말씀이 계심에 우리가 뉘께로 가오리까" 오늘 이 신앙고백 속에 산다면 염려할 것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하루의 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하루의 세 끼를 하니닙께서 주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배고파 죽었다 하는 사람 별로 없지요 하나님이 먹여 주십니다. 건강 주시면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자 영생의 말씀이 계심에 뉘께로 가오리까" 사도행전 5장 19절, 20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우리의 시인줄 믿습니다. 갈보리 성도 여러분은 이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의 예수 믿는 사람은 S0%입니다.자랑할 것 없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70%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이 말씀을 전하라' 여러분 이 말씀을 받았으니 이 말씀을 전할 사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음을 믿습니다. 더 나아가 이북에 있는 동족들입니다. 요전에 기독교 총회가 열렸을때 이북의 목사님 두 분과 정부원이 전쟁 이후 5o주년 총회에 침석했 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본에 무엇을 보러 왔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 보러온 게 아닙니다. 거기에 생명은 없었습니다. 정부에 아부하는 김정일의 말을 넣지 않고는 애기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평화를 해보자.' 그래서 금번 총회에는 백두산에서 십자가 옆에 세우는 나무를 가져오고 한국에서는 한라산에서 십자가를 세우는 나무를 가져와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이북의 대표 강남원 목사의 아들되는 사람과 한국의 대표가 나와 못을 박았습니다. 참으로 감개무량했습니다,이북과 이남이 십자가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성만찬을 같이 거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기념하지만 실제적으로 통일의 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올 믿습니다. 같이 하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한국에서 함께 이북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것은 그 땅에도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것올 기도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이것이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말씀을 통하여 생명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말씀에 보면 부자의 생명관이 있습니다. 그는 풍작으로 창고를 확장해 그 안에 곡식을 가득 채우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의미를 먹고 즐기는 것으로 여기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적인 존재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만을 위해 먹고 즐기기 위해 살고 있다고 하면 여기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한 데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부자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하고, 재물만을 모으려고 하고, 즐기자고 하는 그의 생명관에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의 생명을 취해 가셨습니다. 그러자 재물, 물질은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고 다 놓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는 사람들이 생의 의미를 물질에 두게 되면 허무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 미국의 각 부자들을 모았을 때 거기 여덟 사람이 모였는데 그들의 재산 전체를 모으면 미국의 국무성 재산보다 많았습니다. 그들은 돈을 모으는 데는 천재적이여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력을 증가시켜 그 당시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5년 후에 그들의 생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철강회사 사장은 많은 빚으로 생계를 겨우 꾸려가다가 5년 후 세상을 떠나고. 주유소 사장인 포아티 합슨이란 사람은 파산해서 지내다가 죽고, 그 밖의 사람들도 실패해 자살하거나 정신병으로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자의 생명관은 정말 부질없는 것이라 여지없이 재물에 대해 생명을 의지하고 사는 생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돈, 돈' 하다 죽는 세상은 생명의 가치를 돈에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생명의 가치는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아는 데 있는 걸로 믿습니다.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천재지변으로 인해서 하루아침에 없어집니다. 여러분 Tv 라디오를 통해 한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수만 채의집이 무너지고 수만명의 이재민을 내고 몇 천명의 죽음이 하루아침에 그 땅에 일어났습니다. 정말 재물이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루아침에 불바다가 되는 것이며 노아 당시 지상에 흥수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했습니다. 또 폼페이시가 지진으로 인해 땅속에 묻혀 있는 세상을 보면서 어찌해서 우리의 생명을 물질에 의지하겠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정신차리고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신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목회하다 15년 전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15년동안 목회하는 가운데에 저는 이 일의 의미를 물질에 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데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전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입니다. 기술면에도 선진국이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더라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일본 땅에서 고난 가운데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병들어서도 목사에게 와서 기도를 부탁을 안합니다. 왜요 물질세상이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다 봐주기 때문에 보험으로 인해 처리가 됩니다. 저는 이 가운데 어려운 세상이지만 하나의 생명이 물질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이 진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어떤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15년전 부터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포 제 1세로 갖은 고생을 한 76세 정도의 할아버지였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저를 찾아와 하는 말이 '내 재산의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합니다. 몇 년동안 그렇게 해오다 금년에 실천하게 됐는데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됩니까 이 재산을 무엇에다 써야 됩니까 처음에는 기도원을 짓기로 생각을 했지만 일본에 기도원을 세웠다 해도 경영자가 없으며 모이는 숫자도 없어 운영하기가 힘듭니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를 지으세요 목사가 있습니다. 성도는 있습니다. 전도하겠습니다.'라고 권면해서 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얼마 전에 땅을 계약을 해서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교회를 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교회를 짓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치면 10억입니다. 10억 이라는 재산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는 그 할아버지의 생명관은 물질에 있지 아니하고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씀드리는 것은 탕자의 생명관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말씀같이,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둘째 아들입니다. 그 아버지는 부유했습니다. 이제 그 아들이야말로 풍부한 생활 속에서 아버지의 간섭이 싫어졌습니다. 힘들여 땀흘려 일하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생활이 지겨워졌습니다. 자기 본위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쉽게 돈을 벌고 마음껏 자유롭게 살려고 부모 곁을 떠났지만 얻은 것은 일시적인 것 뿐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가자 그에게는 배고픔이 다가왔고 돼지에게 주는 먹이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의 품 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때 그의 영토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부귀 영화를 소유하였지만 그가 죽을 때에 자신의 생명을 1시간만이라도 연장하여 주는 이가 있으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연장되지 못하고 부귀 영화를 뒤로 하고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나이가 젊은데, 나는 힘이 있는데 나는 권세가 있는데 하지만 나의 생명은 오래 살리라 장담하는 이가 누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감당할 수 없는 인간, 비로소 깨달은 것이 나의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는 것입니다. 역시 영의 창조.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탕자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부터 아는 것이 참 인생입니다 본문에 있는 말씀대로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소서' 이것이 세번째로 하나님이 보시는 생명관입니다. 잠언에 보면 '대저 나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입을 것이라' 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욥의 생활을 봅니다. 욥이야말로 생명의 가치를 을바르게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슬하에
Io남매가 있고 양이 7000마리. 양떼가 3OO0마리, 소 500결, 암나귀가 500결에 종들도 많았다 합니다. 그 시대에 그와 같은 부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명을 물질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물질이 다 없어지고 자녀 마저 죽고 자신의 몸에 창질이 나서 기와장으로 긁어내야 하는 그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아가서는 친구들이 와서 욥을 비난하고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감당해 나갔 습니다. 극복했습니다. 그리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더 많은 물질과 자녀를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우리 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누구에게 인정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인정을 받습니까 부모, 형제,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까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생애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정을 받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생명을 주관하신 하니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가난할 때, 어려울 때 좋은 신앙을 가집니다. 더욱이 처녀 총각때 좋은 신앙을 가집니다. 교회 나가면 좋은 신랑을 만나고 흑은 아내를 만납니다. 그러나 시집 장가가면 그 좋은 신앙이 어디로 갔는지 잃어버럽니다.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의 좋았던 신앙이 사회에 나오면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상실해 버려요 정말 신앙생활이란 처녀 때든 총각 때든 학생 때든 사회에 있든 하나님을 숭배하는 그 신앙을 상실해 버리지 않고 불굴의 신앙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내 생명이 물질에 있었느냐, 어떤 주의와 사상에 있었느냐, 내 생명 이 고국에 있었느냐. 우리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저는 이북에서 피난 나온 사람입니다. 내 땅, 내가 사는 곳이 조국 입니까 내가 있는 곳에 하니럽이 있으면 그곳이 조국입니다. 저는 일본 땅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주여, 제가 일본인 한 생명이라도 구한다면 내마음이 족합니다. 죽을 때 일본 땅에 묻히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을 주관하심을 자신은 깨닫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여러분의 부모가 책임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명에 열이 날 때 열을 없애 주는 부모가 됩니까 해결할 수 없어 병원에 찾아갑니다. 그러나 의사가 책임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명을 사회가 책임질 수 있느냐, 여러분의 생명을 나라가 책임질 수 있느냐, 여러분의 생명을 어떤 대통령이 책임질 수 있느냐, 아무도 우리의 생명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만이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5장 11절에 증명은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15절에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요'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아들을 순종치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함이다' 우리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 것이냐. 죽을 때 살겠다고 발버둥치며 이를 갑니다. 그러나 생명관을 바로 깨달은 자는 '주여, 언제든지 오시옵소서.' 하며 준비하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 말을 듣고 나 보낸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자는 영생을 얻었고, 여러분과 저는 영생을 얻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에 하니닙을 경외하고 하나닙의 말씀을 순종하 고 따르는 것이 생의 축복임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아는 자는 다시 살리리라'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생이 힘들고 어렵지만 참고 기다리면 마침내 이루어 주실 것으로 압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보면 요한복음 6장 68절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의 영생의 말씀이 계심에 우리가 뉘께로 가오리까" 오늘 이 신앙고백 속에 산다면 염려할 것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하루의 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하루의 세 끼를 하니닙께서 주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배고파 죽었다 하는 사람 별로 없지요 하나님이 먹여 주십니다. 건강 주시면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자 영생의 말씀이 계심에 뉘께로 가오리까" 사도행전 5장 19절, 20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우리의 시인줄 믿습니다. 갈보리 성도 여러분은 이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의 예수 믿는 사람은 S0%입니다.자랑할 것 없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70%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이 말씀을 전하라' 여러분 이 말씀을 받았으니 이 말씀을 전할 사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음을 믿습니다. 더 나아가 이북에 있는 동족들입니다. 요전에 기독교 총회가 열렸을때 이북의 목사님 두 분과 정부원이 전쟁 이후 5o주년 총회에 침석했 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본에 무엇을 보러 왔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 보러온 게 아닙니다. 거기에 생명은 없었습니다. 정부에 아부하는 김정일의 말을 넣지 않고는 애기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평화를 해보자.' 그래서 금번 총회에는 백두산에서 십자가 옆에 세우는 나무를 가져오고 한국에서는 한라산에서 십자가를 세우는 나무를 가져와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이북의 대표 강남원 목사의 아들되는 사람과 한국의 대표가 나와 못을 박았습니다. 참으로 감개무량했습니다,이북과 이남이 십자가로 하나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성만찬을 같이 거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기념하지만 실제적으로 통일의 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올 믿습니다. 같이 하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한국에서 함께 이북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것은 그 땅에도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것올 기도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이것이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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